여자 인디북 테마가 있는 단편소설
버지니아 울프 외 지음, 북클럽 세 번째 달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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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고종석의 <여자들>을 그다지 새로울 것 없이 재미없게 읽고 나서 지적인 남자가 쓴 여자론은 사서 읽지 말고 빌려 봐야겠단 이상한 다짐을 했다. '삼인'에서 십년 전에 출간한 <자유라는 화두>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나는 저자가 고종석이라는 점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아마 그 비슷한 류의 책을 기대했는가 보다. 

  '북클럽 세 번째 달이 찾아낸 아홉 나라의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여자>라는 소설집은 올해 들어 처음 읽은 소설집이자 어쩌면 올해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로 남을 책이다. 책날개나 소개말을 건너 뛰고 다 읽고 나서 그제서야 구석구석에 적힌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만큼 여기 모인 단편들이 좋았고 이 진귀한 작품들을 찾아낸 이들이 궁금해졌다. '북클럽 세 번째 달'은 열다섯 명의 회원으로 이루어진 독서 모임이란다. 직업도 다양한데 아마 정기적으로 모여 작품을 읽고 선별하여 이렇게 책으로 묶어 내기도 하는가 보다. 세상에 이렇듯 사랑스러운 모임이 있었다니. 무조건 부럽다.   

  이 책엔 다자이 오사무의 '뷔용의 아내'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어떤 연구회'까지 총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체홉의 <귀여운 여자>와 제임스 조이스의 <이블린> 외에는 아직 어느 책에서도 접해보지 않은 신선한 작품들이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재미있게 읽혔고 깔끔한 번역과 친절한 해설도 장점이었다. 무엇보다도 여자들만이 고를 수 있는 여자들, 여자들의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다 좋았지만 특히 타고르의 '눈'과 로렌스의 '국화 냄새'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타고르는 인도의 성자답게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도 구도자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의대생인 남편의 아집으로 시력을 잃은 쿠모는 볼 수 없다는 고통보다 물질 앞에서 변해가는 남편을 의식해야 한다는 고통으로 더 괴로워한다. 탐욕과 허영 앞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 남편을 맹인이 된 쿠모가 바른 길로 이끈다는 설정은 다소 윤리적이고 도식적인 감이 있지만 시시때때로 캄캄한 미혹 속에서 헤매곤 하는 우리네 삶을 돌아볼 때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혼은 고행이고 삶은 구도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작품. 그러나 누구 한 사람 마음의 불을 밝혀 길을 잃지 않는다면 벽이 아닌 문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국화 냄새'는 메시지보다 정황 묘사가 특출했다. 덕분에 <아들과 연인>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광부의 아내 베이츠는 결혼할 때, 아이를 낳았을 때, 축복의 의미로 국화를 받았지만 그 꽃은 만취해 돌아온 남편의 단춧구멍 안에도 있다. 그녀는 더 이상 국화를 아름답게 볼 수 없을 만큼 결혼생활에 지쳐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귀가가 늦어진 남편이 갱에 갇혀 시신으로 돌아오고 베이츠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어떤 진실을 깨닫는다. 알몸의 시체가 되어 누워 있는 이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 아기는 그녀의 자궁 속에 있는 얼음 같았다(p.270). 함께 아이를 낳고 살았고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있는 상태이지만 베이츠는 위와 같이 느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쪽으로 건너올 수도, 저쪽으로 건너갈 수도 없는 깊은 골짜기 앞에서 베이츠는 공포와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한다. 삶이 결코 가르쳐 줄 수 없었던 진실, 죽음을 통해서만이 드러나는 진실의 이면을 로렌스 특유의 섬세하고 촘촘한 묘사로 그려낸 수작이었다.  

  나는 2011년을 사는 요즘 여자이지만 이 책 속의 옛날 여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세상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고 여자들 스스로도 할 일이 많아진 요즘 내가 아는 여자들과 여자로 성장할 내 딸에게도 언젠가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좋은 소설은 아름다운 방식으로 교훈을 주고 그렇듯 희귀한 소설을 찾아낸 북클럽 세 번째 달이라는 모임이 다시 한번 무조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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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1-01-1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궁금한데요!!
보관함으로..^^

깐따삐야 2011-01-17 14:24   좋아요 0 | URL
여자들의 이야기라 많이 공감하면서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보석 2011-01-1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끌리는 리뷰! 저도 보관함으로 ..ㅎㅎ

깐따삐야 2011-01-17 14:25   좋아요 0 | URL
새색시가 되신 보석님께도 추천합니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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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대에는 보다 성숙한 이십대를 기대했고 이십대엔 날로 능란해지는 삼십대를 기다렸다. 삼십대엔 좀 더 안정된 사십대를 준비하고 사십대엔... 아직 모르겠지만 내 바람을 비껴간 세월을 상기하면서 더 이상 기대나 소망 같은 것은 싸그리 거두게 될까. 아마 그리 되지는 않고 또 무언가 바라거나 계획하다가는 곧 망연자실해지겠지. 올리브 아줌마는 슝슝 구멍난 치즈 같은 노년이지만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절로 외치게 되는 브라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엄마한테 끊임없는 지청구를 듣고 살지만 올리브 아줌마도 내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넌 네가 아직도 사춘기 소녀인 줄 아나 보지. 정신 차리라구. 영달이 엄마.   

  이 책을 읽으면서 곧 죽어도 큰소리에,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올리브 아줌마는 어쩜 그리 우리 엄마랑 비슷한지 두 분을 만나게 하면 둘도 없는 절친이 되거나 서로의 발톱을 알아보곤 무애무덕하게 거리 두고 지내거나. 몹시도 신랄하고 얄짤없지만 인정도 철철 넘치는 두 여인을 약간의 두려움과 짜증스러움은 차치하고라도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삶을 마법으로 만들 줄 아는 분이자 최고의 이야기꾼인 어머니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했다. 나는 삶을 혁명으로 만들 줄 아는 분이자 역시 최고의 연사인 우리 엄마에게 딱히 바칠 것은 없고 잘 사는 모습이나 뵈드리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올리브 아줌마라면 아마 동의해 주실 거라고, 소심한 결론을 보았다.     

  조금 늦게 만난 책이지만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좋은 책이 맞다. 퓰리처상 수상작답게 미국적이지만 그 안에 뭉근하게 반짝이는 보편적 진실이 숨어 있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줄거리랄 것도 없고 올리브 키터리지와 남편 헨리, 아들 크리스토퍼, 그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마을 사람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엮은 소설인데 그 소소한 일상 안에 그 동안 지나쳤거나, 앞으로도 지나치기 쉽상인, 삶의 아차하는 순간과 감정이 오롯하게, 하지만 딱히 도드라지지도 않게, 마치 꼭 찾아야 했던 퍼즐조각처럼 담겨 있다. 이렇듯 흥미로운 구성과 산뜻한 기지는 아주 오랜만에 맛보는 거라 작가의 다음 소설을 자연히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과연 더 나올 것이 있을까, 의구심을 동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독자도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지라 먼 나라 올리브 아줌마의 삶에 내 나중 삶을 중첩시키며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살다보면 남편이 새로운 사랑에 흔들릴 수도 있고 머리 굵어진 영달이가 웬 건방진 녀석을 남자친구라고 소개하거나 히스테릭하게 늙어가는 내게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할 수도 있겠지. 그러다 남편이 먼저 쓰러지거나 내가 혹 치매에 걸려 사랑하는 영달이에게 이 아가씨는 누구실까, 이런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슝슝 구멍난 치즈 같아진 내가 그때 가서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된다면 올리브 아줌마처럼 씩씩하게 남은 삶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영달이 엄마. 오늘이나 당장 잘 보내라구. 인생이 항상 착한 손님만 들여보내주는 건 아니라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 무섭지만 바른 말 잘하는 올리브 아줌마가 내게 충고하고 있다. 그렇죠. 맞아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들 뒤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올리브는 때로 이 모든 일 속에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해 전, 충치를 때우면서 치과 의사가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돌리는데,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것이 마치 죽도록 깊은 친절인 것처럼 느껴져 올리브는 샘솟는 눈물을 숨죽이며 삼킨 적이 있었다. ("키터리지 부인, 괜찮으세요?" 치과 의사는 물었다.) - p.403 

  어젯밤 이 부분을 읽다가 왈칵할 뻔 했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힘이 들 때, 힘 든 것이 지나가고 문득 삶이 무상할 때, 올리브 키터리지 아줌마를 생각할 것 같다. 엄마가 무섭거나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 엄마 안의 올리브 아줌마를 떠올리면 마음이 누그러질 것 같다. 엉켰다 풀렸다 하는 겨울날, 따숩고 한결같은 책을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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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1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이 인용해주신 부분을 읽는데, 저도 제 기억이 떠올랐어요. 턱이 아파서 치과를 갔었는데, 그때 치과 닥터가 신경성이라고 말하면서 '요즘 뭐 힘들어요?' 라고 묻는데 정말 왈칵, 하더라구요. 그때 되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전 그 닥터를 그날 처음보는데도 불구하고, 네, 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막 늘어놨어요. 누군가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게 갑자기 어떤 구원처럼 여겨져셔요. 올리브가 느낀것 처럼 닥터가 내게 그렇게 물어준게 '죽도록 깊은 친절' 혹은 죽도록 깊은 관심 같았어요.

추천하기에 망설임 없는 책이요, 올리브 키터리지는.

깐따삐야 2010-12-17 14: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덕분에 좋은 책을 알게 됐어요. 추천해주시는 대개의 책들이 다 재미있어요. 내 커피 취향을 아는 던킨도너츠 점원에 대한 부분 역시.^^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그가 특별히 친절했다기 보다는 그간의 모진 외로움 탓에 사소한 한 마디가 죽도록 깊은 친절로 다가와 와르르 무장해제 되어버리는 느낌. 나중에 누군가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제 앞에서 털어놓았을 때 내가 엄청 믿을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무척 외로웠다는 것도 알 수 있었죠. 서로 그러면서 사는가 봐요. 어딘가엔 환자를 앉혀놓고 신세 한탄하는 의사도 있을 것 같아요.
 
전원 교향악 펭귄클래식 39
앙드레 지드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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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에서 무심천을 건너면 바로 이웃 동네로 이어진다. 그곳엔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있고 도로 오른편으로 즐비한 노점상과 비교적 작지 않은 규모의 서점이 있다. 생각보다 바람이 너무 차서 영달이에게 미안해 하면서도 호떡과 도넛 등을 파는 노점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결국 책 두권에 호떡을 보태어서 귀가했다.   

  요즘 동시에 읽고 있는 책이 세 권이다. <올리브 키터리지>, <장 크리스토프 1>, <커피하우스 가십, 뉴욕>. 그런데 지금은 그날 서점에서 들고 나온 <전원 교향악>의 리뷰를 쓰고 있다. 내 일과는 너무나, 정말 너무나 규칙적이지만 수중에 들어온 책들로 나는 방황과 일탈과 행패를 즐긴다. 그러니까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사랑하기도 하고, 조금 맛보곤 집어던지거나 처박아 놓기도 하고, 종종 사야 할 책이 아닌 다른 책을 집어들고 나오며 약간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도 호떡과 함께 예정없이 집어든 책인데 알라딘 보관함에 넣어두곤 언제든 내키면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중학교 시절 과학 선생님을 좋아해서 나는 과학에 소질이 있는 모양이라고 착각하며 지낸 적이 있는데 그맘 때 처음 읽었던 책이다. 앙드레 지드는 <좁은 문>의 작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좁은 문>에 감흥하기에는 내 마음의 문이 너무 좁아 큰 기대가 없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이 작품만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십대 시절은 물론 이번에 다시 읽고도 그랬고 아마 마흔, 쉰, 예순에 또 읽는다 해도 그럴 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 가난한 노파가 죽자 마을의 목사는 노파가 기르던 눈 먼 소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장님인데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소녀를 목사는 길 잃은 양이라 여기고 정성을 다해 성장을 돕는다. 마침내 소녀는 놀랄만한 발전을 보이며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하지만 그녀가 시력을 회복했을 때 암흑 속의 진실이 빛과 함께 드러나며 비극에 이른다.   

  사람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이성은 끊임없이 마음과 맞붙어 싸워서 자주 그 마음을 제압하곤 한다(p.17). 목사의 처음 마음은 길 잃은 자를 인도하는 목사이자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스스로 공을 들인 창조물에 애착을 갖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목사 아내의 불길한 예감에서 엿보이듯 그 애착은 마냥 순수하기 어렵다. 오로지 나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아름다운 소녀가 나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해보자. 목사는 끝없는 기만으로 소녀를 향한 욕망을 제압하고 합리화 하지만 그는 목사이기 이전에 한 남자고, 인간이다.  

  소설의 백미는 목사가 미처 알아차리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자기기만에 대응하여 벌어지는 갖가지 관계와 대화들이다. 그의 아내는 수수께끼 같은 말로 사랑에 빠진 목사를 비판하고 아들 자크는 제르트뤼드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목사는 아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아들 자크를 비난하고 만류한다. 목사는 스스로를 솔직한 사람이라 규정하고 있지만 본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눈 감고 있는데다 더욱이 진실을 얘기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앞세워 교조적인 포즈로 일관한다.  

  만일 너희가 눈이 먼 사람이라면 죄가 없으리라(p.79). 그렇듯 온통 행복과 소망의 빛으로 찬란했던 제르트뤼드가 시력을 찾았을 때 그녀는 목사가 읽어주지 않았던 성경 구절을 알게 된다.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p.106). 눈을 뜸과 동시에 그녀는 스스로의 사랑에서 '죄'를 보게 되고 더욱이 사랑했던 대상이 목사가 아니라 자크였음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보게 된 제르트뤼드에게 남은 선택은 한 가지 뿐. 만일 그들이 그들의 불행을 모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p.29). 친구 마르탱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역자 해설 부분에는 앙드레 지드가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그(목사)를 통해 나는 내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하기보다는, 그 윤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너그럽든 너그럽지 않든 언제나 깨어 있는 비판 정신에 의해 엄격하게 감시받지 않을 경우, 내 자신의 견해가 봉착할 수 있는 위험을 묘사했습니다. 필수적인 그 비판 정신이 목사에게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습니다(p.121). 독자로서, 인간으로서 나는 목사의 사랑을 이해하지만 지드의 말처럼 성경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합리화하는 태도는 눈살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동정과 비웃음만 자아낸다. 그러나 항상 깨어 있는 비판 정신으로 스스로를 엄격하게 감시하며 사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더욱이 신앙이나 핏줄보다 앞선 사랑의 불가사의한 위력 앞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과학 선생님을 좋아하는 소녀였던 시절엔 이 책을 순수하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쯤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때는 <독일인의 사랑>이라든가 <봄의 폭풍우> 같은 작품에 홀딱 반하던 촉촉한 감성녀였으니 그랬겠지만 지금 다시 읽은 <전원 교향악>은 백 페이지 남짓한 할랑한 분량임에도 짙고 거세고 묵직한 그림자를 내 가슴 속에 드리우는 것 같다. 아무리 먼 나라, 먼 시절의 이야기여도 고전의 힘과 멋이란 이런 데에 있고 내가 끌리는 책에서 가면을 벗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추하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 과정이 없다면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터. 원래 사려던 것은 호떡도 아니고 이 책도 아니었지만 호떡과 함께 이 책을 산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합리화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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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책들 - 왕상한 교수, 내 인생의 책을 말하다
왕상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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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상한 교수를 처음 본 것은 'TV 책을 말하다' 에서 였다. 그는 멋있다기 보다는 착실한 사람처럼 보였다. 젊은데 넘침이 없었고 날카로웠지만 가시가 없었다. 개구진 눈빛을 단정한 말투로 순화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사람들 눈은 다 비슷한 건지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자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왕상한 교수는 이미 딸에게 쓰는 편지로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인세도 전액 유니세프에 기부한단다. 한 아이를 사랑하면 모든 아이를 사랑하게 된다. 덕분에 내 돈 주고 책을 사면서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의 독서기를 읽을 때 그 누군가가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더욱 반갑고 친근하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와 유시민의 <내 청춘의 독서>는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고 권할 만한 훌륭한 서평집이었다. 인생 선배들의 풍성한 독서기를 읽다 보면 가장 먼저 책이 보이고 이후에 그 사람이 보이고 마지막엔 내가 보인다. 겹치는 책에서는 공감의 미소로 가슴 한켠이 뜨뜻해오고 새로 발견한 책 중 사정없이 마음을 끄는 책이 있으면 메모해 둔다. 늘 혼자 책을 읽다가 이처럼 책 읽어주는 남자 또는 여자를 만나면 마음이 약간 느슨해지며 그들이 안내하는 책의 바다에서 기분 좋게 유영하곤 한다.   

  이 책도 권할 수 있는 서평집 중 하나다. 어느 한 장르에 쏠리지 않고 비교적 공평하게 소위 '좋은 책'들을 소개해 놓았다. 화려한 공부 경력을 가진 저자이지만 학자연하거나 젠체하는 거품을 빼고 시종일관 투명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인생의 결정적인 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부터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까지 '천하의 개고기'라고 불렸던 구제불능 꼬마가 치열한 사회 속에 섞이기까지의 제법 파란만장한 성장기를 다양한 책과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왕상한 교수의 인생을 좌르르 훑어 본 느낌이어서 '한눈에 읽는 왕상한'이라는 부제를 달아도 괜찮을 듯 싶다.     

  특히 이 책을 젊은 학생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여기 실린 책들은 누가 봐도 좋은 책들이어서 저자의 서평 또한 남달리 특징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가 털어놓는 개인사였다. 선생님과 학우들로부터 상처 받고 동네 의원 의사선생님에게 속내를 고백하는 병약하고 외로운 아이, 건강을 잃어가며 기를 쓰고 서울대에 입학하지만 아집의 철옹성에 갇힌 채 허망해하는 청년, 지금은 아내가 된 변우영 아나운서와의 거리를 좁혀보기 위해 매일 직접 구운 빵과 새벽 기사를 자청했던 성실한 남자, 두 딸과 제자들 앞에서 소박하고 인정있게 늙어가기를 바라는 중년의 사내,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부재 중이면 아직도 불안해하는 소심한 아들, 개인적 신념과 집단의 공모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회인... 밖으로 알려진 교수나 MC로서의 모습 이면에 평범한 인간 왕상한의 면모가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과정마다 나침반이 되어주었던 책이 있었다. 갈지자로 방황 또는 반항 중인 청춘들이 이 책을 통해 왕상한 교수의 삶을 읽고 그가 소개하는 명저들을 하나씩 찾아보면 좋겠다.   

  아직도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니 유감이군요.  

  내가 죽는 것이 가슴 아픈 유일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P.192)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말이란다. 이런 책은 반드시 읽어줘야 하므로 메모. 

  맥, 내 생각에도 비난의 소지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의 전부랍니다. 될 수 있는 한 전체를 바라보고 싶어요. '선'과 '악', 딱 둘로 나누는 색안경을 써서 시야를 제한하고 싶지는 않아요. 만일 어떤 한 가지 일에 '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우린 그 일을 검증해 볼 자유를 잃게 되는 거지요. 왜냐하면 그 속에 나쁜 것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P.233)   

  존 스타인벡의 <의심스러운 싸움>에서의 한 구절. 저자가 국회 파행 사태에 대해 조소 어린 질문을 해온 미국인 교수에게 답변을 하지 못한 채 다시 읽었다는 소설이다. 나는 왜 <분노의 포도> 밖에 모르고 있었던가. 다른 사람의 서평록에서 이처럼 괜찮은 책을 발견했을 땐 심봤다고 외치고픈 심정이 된다.     

  그밖에도 <홍당무>와 <삼총사>를 다시 읽고 싶어졌고 균형잡힌 시야를 위해 내게 좀 더 고른 분야의 독서가 필요하다는 반성을 했다. 이 책을 읽고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아직 못 읽었단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틈틈이 리스트를 짜고 폭넓은 책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이 책이 많이많이 팔려 유니세프에 많이많이 기부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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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2010-11-1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깐따삐야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깐따삐야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리플 남기고가네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검정도 색깔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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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힘든 독서였다. 저자의 가쁜 호흡과 들끓는 문체를 따라가기에 내 마음과 내 삶은 너무 건조했다. 나 자신 타고난 성품도, 생활도 그다지 드라이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작가이자 창녀이자 예술가인 뜨거운 여인 앞에서 입은 다물고 무릎은 꿇어야 했다.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패전 독일의 연합군, 도시의 야수, 집 잃은 고양이 같은 남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몸을 판다. 아이들이 잠든 후 사람들 몰래 집을 빠져나와 밤길을 거닐다 보면 신호를 보내는 남자들이 있다. 그녀는 섹스 이외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에 자신을 기꺼이 노출시킨다. 어느 날은 한푼도 못 쥐어본 채 길가에 버려지고 어느 날은 배부른 식사를 대접받고 두둑한 지폐를 챙겨오기도 한다. 처음엔 흑인 애인과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시작한 매춘이었으나 어느새 그녀는 사랑과 성을 파는 노동자로 스스로를 규정해 나간다.      

  떠오르는 일화 하나.  

  고향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삼십분 가량 나가면 시내가 나오는데 터미널 근처의 골목에 엄마의 단골 미용실이 있었다. 긴 머리에 연예인처럼 생긴 미용사 아줌마와 허여멀끔한 날건달처럼 보이던 아줌마의 남편을 기억한다. 어른들이 풀어놓는 뒷담화의 세계에 일찍이 맛을 들인 나는 그날도 미용실에 모인 아줌마들의 수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미용사 아줌마는 그 여자가 여관 청소만 한 게 아니고, 로 시작하여 장황하게 썰을 풀었고 결론은 이랬다. 청소 다니며 몸도 팔았던 젊은 아낙이 근방 사내들의 돈을 싹 긁어모아 아이들을 데리고 타향으로 떠버렸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대개의 반응이 비난이 아닌 칭송이다시피 했던 것. 철없는 남편과 고단한 생에 찌들어 있던 아줌마들에게 이 짜릿한 일화는 이보다 더 신날 수 없는 감정이입과 대리만족 감이었다.

  그러니까 질서정연해 뵈는 낮의 세계에 길들어버린 내 이해의 범위는 생계로서의 매춘을 용납하는 것 정도였나 보다. 몸을 파는 여인의 뒷방에는 굶주린 아이들, 병약한 노모나 모두들 수재라고 일컫는 동생, 혹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기둥서방이 있지는 않을까. TV문학관이나 수사반장을 즐겨본 탓인지 무언가 사연이 있겠지, 사연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은연중에 소망하거나 상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몇 차례 주어졌던 다른 노동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그녀에게 매춘은 단순한 생계 수단 이상의 자발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건물 청소를 한 뒤 앓아눕고 인디언 아내로서의 부유하지만 지루한 생활을 박차고 나온다. 각종 성병과 포악한 사내들에게 시달려야 하면서도 밤이면 또 다시 거리로 나서고 흑인 병사와 기약없는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방으로 익명의 남자들을 불러들인다.  

  끊임없이 격렬하게 이어지는 그녀의 매춘기를 읽으면서 '배운 게 도둑질'이란 옛말과 함께 사람마다 적성이 따로 있긴 있나 보다, 라는 생각. 나는 왜 생계형 매춘 밖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각자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는 것이다. 공장에는 노동자가 있고, 가정에는 주부가 있으며, 길거리에는 창녀가 있다. 보석처럼 밤을 반짝반짝 빛내는 그녀들이 있다. 우리는 사랑을 다루는 위대한 예술가일 뿐이다. 결코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p.434). 결혼이라는 제도가 온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매춘은 악으로 규정되어야 하고, 규정될 필요가 있고, 그러나 수요가 있는 한 더 음습한 곳으로 피해갈 뿐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필요악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데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우리에게 그 이상을 호소해온다. 이쯤 되면 로맨틱한 자유의 나라, 프랑스에서조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수긍이 간다.   

  평생토록 백인을 조롱하고 흑인을 사랑했듯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안착보다는 자유, 적응보다는 일탈을 지향하는 타고난 창녀였던 셈이다. 구슬픈 재즈 같기도 하고 서정적인 서사시, 화려한 회화 같기도 한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뜨겁고 자유로운 혼이 일찍이 매춘 아닌 다른 것에 눈뜨고 인도받았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마를린 먼로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얻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 강력한 성적에너지와 사랑에의 갈망을 정열적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면! 그러나 레알 그녀의 주장처럼 그 또한 창녀를 당당한 성 노동자로 인정하기는 커녕 동정의 포즈로 바라보는 것에 지나지 않을 터. 이미 결혼이라는 굳건한 제도에 안착한 내 고루한 의식은 그녀의 혁명적 구호를 따라가기엔 내내 숨이 차다.   

  An original writer is not one who imitates nobody, but one whom nobody can imitate. 샤토브리앙의 말이다.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사람.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그런 면에서 내가 만난 매우 독창적인 작가들 중 하나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었겠는가. 이 낯설고 이색적인 책에서 나는 다른 세상을 만났고 관심 밖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겁고 굼뜬 내 느리적거리는 의식은 차치하고라도 분명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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