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 공주 그림책이 참 좋아 8
최숙희 글.그림 / 책읽는곰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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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희 작가의 책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미리 구경하거나 다른 독자의 리뷰를 참고하지 않고도 그냥 사는 편이다. 그만큼 삽화, 스토리, 구성, 이야기가 건네는 메시지, 모두 마음에 든다. 신작 <모르는 척 공주> 역시 적절한 타이밍에 영달이와 함께 읽은 좋은 책이다.

 

쥐덫 같은 데 갇혀서 둘이 집요하게 씨름하지만 승자가 없는 기분. - p.247 (앤 타일러, 놓치고 싶지 않은 이별 中) 부부싸움에 대한 모자람 없는 정의. 그렇다. 남편과 나는 가끔 싸운다. 승자도 없고, 승자가 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결국 승자 없이 기운만 빠지고 상처만 후벼파는 몹쓸 짓임을 알면서도 싸운다. 영달이 앞에서 싸우지 말자고 다짐하고도 필만 받으면 또 싸운다. 급기야 영달이는 엄마, 아빠, 얘기하지 말라고 선언했고 나는 찌질한 목소리로 엄마가 원래 목소리가 커서 싸우는 것처럼 들리는 거야, 라고 비열하게 변명하곤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공주, 왕자, 새, 생쥐, 공룡의 엄마 아빠도 우리처럼 싸운다. 공주는 모르는 척 밥을 먹고 혼자 놀다가 자신과 비슷한 입장에 놓인 친구들을 하나, 둘, 만난다. 그리고는 설움에 북받쳐 펑펑 울어대고 울음소리는 세상 멀리멀리 퍼져 그 소리를 들은 엄마 아빠들이 달려온다는 이야기. 영달이는 친구들이 엉엉 울어대는 장면에서 우는 시늉을 하며 슬퍼하기도 하고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그봐, 영달아.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은 다 싸우는 거야(정말?). 아빠는 이게 하고 싶고 엄마는 저게 하고 싶고 아빠는 이 생각을 좋아하고 엄마는 저 생각을 좋아하고... 그러다보면 싸우는 건데 싸우고나서 다시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영달이는 미심쩍어하는 눈치였지만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너무도 정직한 엄마는 다시는 안 싸울게, 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혀를 꽉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아가며 노력하고는 있지만 별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의 싸움으로 우울해 있거나 정서에 검은 줄을 확 그어버린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우리 엄마 아빠만 싸우는 게 아니었구나, 공감하고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랬지만 부모가 싸우면 아이들은 본인 잘못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 생각이 다르면 누구나 싸울 수 있고 화해하고... 사는 모양새가 그렇다는 것. 아직 어리지만 모르는 척 할 정도면 이런저런 과정에 대해 알아두어도 괜찮을 법 하다. 그래도 아이 앞에서는 안 싸우는 부모가 되는 것이 최선이고 또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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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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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 비슷하게 살다 보면 다른 생각,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나를 비롯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드는 짠한 소회.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날마다 다른 옷을 입으면 뭐하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인데. 홍삼란이나 유정란이나 알고 보니 다 그게 그거였더라는 뉴스도 들려온다. 며칠 전 영달이는 베스킨라빈스의 슈팅스타를 먹다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더니 희한한 표현을 했다. 엄마! 아이스크림이 웃고 있어! 나는 유레카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는 지루한 글을 쓰는 작가들을 향해 코웃음을 쳤고 새로운 문장을 찾아 헤매는 스스로를 쥐어박았다. 이 책은 그 와중에 골라든 책. 씨네21의 이다혜 기자는 직업의 특성 상 나보다는 많은 사람들,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테고 영화를 잘 보기 위해, 잘 본 영화에 대해 잘 쓰기 위해, 나보다 더 다양한 책을 읽고 참신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 길에 듣는 이숙영의 방송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전화목소리, 그 담백함과 수수함이 좋았고, 한편씩 골라주는 영화 또한 백퍼센트 재미있어서, 얼굴도 모르지만 믿음이 생겼다.

 

  서점주인 아저씨 왈, 이 책이 신문에 났나요? 나 말고도 찾는 사람이 또 있었는지 책 표지에 전화번호가 적힌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입맛을 다시며 서점을 나왔고 그 다음날에야 이 책을 구할 수 있었다. 책은? 재미있었고, 좋은 문장도 있었고, 알퐁스 도데의 어린왕자니 하는 엉터리 구절만 없으면 곁에 두고 보기 괜찮은 책이었다. 물론 헤밍웨이나 나쓰메 소세키 같은 거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조금 더 나아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급선회해서 꾹, 맺어버리는 글을 읽을 때는 기자근성인가 싶기도 했지만 요즘 <테레즈 데케루>와 <밤의 종말>을 연달아 읽어내며 테레즈의 캄캄한 마성에 휘둘렸던 나로서는 이 두툼하지만 부담없이 상큼한 책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그렇게 시간이 간다. 꽃이 아닌 꽃받침으로. - p.23

 

즐기는 게 이기는 것이다. - p.44

 

그렇다. 맛있는 건 언제나 옳다. - p.72

 

인간은 사랑받을 타이밍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보다 얻어맞을 타이밍을 알아챌 수 있는 쪽을 선호하게 된다. 적응이란 그런 것. - p.150

 

야구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예술품 같아서 기쁨의 순간은 있어도 궁극의 만족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 p.201

 

종교는 우리의 고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때로는 잔인한 눈속임일 수도 있는 것이다. - p.218

 

여자는 연애도 글로 배우려들고, 남자는 '기분' 대로만 하려고 든다. - p.271

 

감정을 통역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녀의 아찔한 고독. - p.301

 

세상에 익숙해진다는 건 자라고 하면 다시 잠을 잘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 p.357

 

  인용한 문장들 외에도 한번 쯤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별다른 꾸밈없이 경쾌한 글 속에 맛있게 어우러져 있다. 고전 위주로 솎아놓은 무겁고 빤한 서평집이나, 최근에 읽고 좀 실망한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처럼 제멋대로의 스타일도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혼이든, 비혼이든, 여성이라면 한뼘 점도 더 공감할만한 재미있는 리뷰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거의 40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인데도 가지고 다니며 읽었을 정도면 뭐.

 

  특히 부록으로 실린 다혜리의 책 정리법은 심하게 공감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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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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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계에선 괜찮아 시리즈가 대세인가 보다. 서점에 들러서 언뜻 본 '괜찮아'만 해도 세 권. 그 중의 한 권이 이 책이다. 수중에 문화상품권이 없었으면 안 샀을지도 모를 책.  

 

처음에는 학급문고에 비치된 <불편해도 괜찮아>를 읽고 저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두 권의 책 모두 술술 읽힌다. 본인의 겉마음, 속마음, 상대의 속마음, 겉마음까지 알아서 읽어준다. 평일 오후, 시원한 카페에서 착하고 입담 좋은 남자친구와 맛난 커피를 연이어 시켜가며 즐겁게 수다 떨고난 느낌.  

 

두 권을 읽고 난 저자에 대한 느낌은 대략 이렇다. 배경은 주류인데 나름의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완벽한 주류는 아니고 자아비판 및 자기고백을 밑거름 삼아 보수와 진보를 향해 양날의 비판을 시도하는 모습이 독특하다는 것. 편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욕 좀 먹겠다 싶은 케릭터.

 

소장하고 애장할 이유까지는 못 찾겠지만 누가 나 좀 아프지 않게 긁어줬으면 싶을 때 읽으면 유쾌하고 유익한 독서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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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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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따듯하고 착한 소설.

 

구구절절한 서사나 눈부신 묘사 없이도 충분히 강렬히 아름답다.

 

좋다.

 

리뷰는 종종 그 책을 흉내내고 싶어진다.

 

고로 나도 긴 말 하기 싫다.

 

황정은의 소설로 낙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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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02-0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12-02-06 10:17   좋아요 0 | URL
소설이 이상하고 좋아요.^^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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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읽어내려갔지만 두번은 읽기 힘든 책.

  이것은 주인공 윤영과의 삶과도 같다. 예전에 유행가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다시 살라 하면 나는 못 가요. 윤영은 생존본능에 의해 숨쉴 틈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낸다. 그러나 본인 삶의 레파토리를 안 후에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에게 마이크를 대고 물어보시라. 아, 다시 살라 하면 절대 못 살지요.

  작가의 메시지는 전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 변화없음이, 어쩌면 변화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변했다. 잠을 못 자고 밥을 많이 먹게 되었으며 운동하는 시간도 아까워 그 시간을 노동과 잠깐의 휴식으로 보낸다. 내 이름 석자는 어느새 잊었고 영달이 엄마로서 다시 살고 있는 느낌. 점점 힘이 세지고 억척스러워진다. 나는 이런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아이를 위해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 위에 엄마 있고 사람 아래 엄마 있다. 그렇듯 엄마라는 존재는 천상과 바닥을 아우르고도 남는 존재이다. 

  윤영이 엄마가 아니라면 이 소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부모와 형제와 남편, 그들을 위한 희생에는 한계가 있다. 나를 버리되, 모두 버리지는 못한다. 관계의 벼랑 끝에 다다른다고 해보자. 에라이.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들은 어른 아닌가. 그러나 아이는 다르다.  

  세상에는 고상하고 우아한 모성애와 저급하고 누추한 모성애가 따로 있지 않다. 태생과 여건의 차이일 뿐. 아무개 엄마는 누구에게나 오롯한 고유명사인 것이다. 윤영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사나요, 그런 방식으로 새끼를 부양하는 것이 진정 올바른 어미의 길일까요, 그런 질문은 합당하지 않다. 윤영에게는 정신과 육체와 삶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철없거나 이중적이거나 혹은 위선적인 어떤 여인들마냥 의미와 비유에 기대어 사는 것이 아니다. 생과 맞서 분투하고 살고자 하는 의지로 참아낸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그 동안 한국문학 속 여성들은 어느만치 권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무엇인가. 억눌린 감각을 어설픈 지성으로 표출하는 듯한 여인들의 지루한 목소리. 나는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일상의 권태와 환멸 속에서 붙들 수 없는 환영에 휘둘리고 있는 여인들. 다른 한편에서는, 이 힘겹고 징그러운 현실이 차라리 환영이었으면 좋겠다고, 숱한 윤영들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작가는 그 수많은 윤영들을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근래의 소설 읽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한 선택은 쉽지 않은 일이며 이례적인 사건이다.

 또한 이 작가는 치열하고 성실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으로 쪼고 갈아낸 듯한 깔끔한 단문과 오감에 찌릿한 전율을 느끼거나 실제 구토를 느낄 정도로 직접적이고 생생한 표현력이 압권이다. 필연적인 고통과 피로가 뒤따르는, 집중력의 소산이라고 본다.   

  나는 요즘 엄마로서, 아내로서 무척 힘이 든다.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다. 이 시간이 꿈처럼 빨리 지나버렸으면, 하고 기다리다가 그리고나면 내게 남는 건 권태일까, 앞질러 우려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하나도 교훈적이지 않을 뿐더러 나에게 무엇을 어찌 하라고 종용하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힘을 준다. 자기 위안으로 삼기엔 윤영과 나는 너무 다르고, 그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질기다 싶은 생의 의지가 소설 전체에 켜켜이 엉켜있기 때문인 듯 싶다. 이 소설을 읽고 주어진 삶 앞에서, 운명 앞에서, 비겁해지면 안되겠다는 비장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작가의 눈길과 문체에 주목한다. 어디를 바라보고 어떻게 쓰는가. 그 정직성과 성실성에 계속 믿음이 가고 변함없는 응원을 보낸다. 이 나약하고 현란한 시대의 신선한 히로인 윤영과, 비로소 윤영들의 목소리를 찾아준 작가 김이설을 열렬히 환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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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8-16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깐따삐야님을 환영해요! :)
이 책 저도 매우 잘 읽었는데, 깐따삐야님의 조곤조곤한 평을 읽으니 더 반갑고 기뻐요

영달이 많이 컸겠어요~

깐따삐야 2011-08-17 10:26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잘 지내고 있죠? ^^
벌써 읽은 지 꽤 됐는데 리뷰를 이제서야 올렸네요. 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어요.

영달이는 걷고, 뽀뽀하고, 장난치고, 떼쓰고... 감사하게도 무럭무럭 잘 크고 있어요. 총기발랄한 웬디 이모를 보면 무척 좋아할텐데 말여요.

레와 2011-08-1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이닷!! 와락!! ^-^

깐따삐야 2011-08-17 10:27   좋아요 0 | URL
아, 반가워요. 레와님!

치니 2011-08-16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환영 3! 그간 육아에 많이 시달리셨던가 봐요. 하지만 행간에서 어미가 된 깐따삐야 님의 힘이 아름답게 읽혀요.
김이설의 이 책은, 리뷰 쓰기가 참으로 어려워서 좋게 읽고도 쓰지 못했는데, 깐따삐야 님 리뷰로 속이 시원해집니다. 참 좋은 리뷰, 고마워요. :)

깐따삐야 2011-08-17 10:34   좋아요 0 | URL
치니님, 정말 오랜만이죠? 저는 요즘 육아전쟁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지금이 가장 힘들 때, 라고 정리를 해주더군요. 그래도 영달이가 예쁘니까요.^^

저도 읽고 나서 바로 리뷰를 못 올리고 지금에야 올렸어요. 훌륭한 소설이 많지만 김이설 작가님 소설은 매번 울끈불끈, 하는 생의지를 갖게 해요. 좋은 리뷰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소설을 빌려 푸념을 하고 싶었던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