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조국의 기자회견의 일부를 봤다. 솔직히 보다가 잤다...


예를 들면 이렇다. 기자들이 묻는다. 이러 저러한 장학금 수급은 불법이거나 적어도 혜택이 아닌가? 조국은 이렇게 답변한다. 검찰에서 지금 다 조사하고 있다. 조국이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이 될 자인데다 그 사안을 지금 검찰이 수사 중이니까. 그러나 기자들은 단지 묻는 것으로 끝내어서는 안되었을 것이다. 학점 미달 상태에서 몇 학기 연속 받았다는 그 장학금 재단을 취재하여 일반적 지급 기준을 파악했어야 한다. 만일 조국의 딸이 그 일반적 수급 자격에 부합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니 질문 자체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만일 조국의 딸이 지급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그 점을 들어 조국을 더 추궁했어야 한다. 설사 조국이 답을 하지 않고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조국의 침묵이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이런 취재가 그렇게 힘들까? 그 기자들은 취재를 안했거나 취재를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취재 결과를 덮고 말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느 경우든 그들을 기자라고 불러 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 그리고 언론이 언론이기를 포기했을 때 남는 것은 진영 논리 뿐일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진영 논리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에너지를 드러내는 현상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오늘날의 한국을 건설해 낸 것은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조국의 딸은 고등학생일 때 의학 논문의 제1저자가 되었단다. 당시 책임 저자가 해명하기를 조국의 딸이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1저자를 준 것은 지나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자 서울대 학생들이 촛불 집회를 열고 (불법인지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상대적 박탈감에 근거하여 조국을 비판한다. 그런데 여기서 상대적 박탈감이란 보수주의 저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노동 계급의 질투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영국과 같은 계급 사회에서라면 조국의 딸이 문제될 리가 만무하다. 한국에서의 조국의 딸 논란은, 적어도 내 눈에는 한국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사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역동성이 영원할 수는 없다. 303이라는 독일 영화를 보면 독일에서는 두 가구 중 한 가구가 혼자 사는 가구라는 대사가 나온다. 놀래서 찾아보니 대도시들의 경우 일인 가구가 거의 절반에 이르렀다고 하더라. 그런데 진짜 놀라운 것은 일인 가구가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었다. 일인 가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도 한국이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도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조로하고 있다. 혈기 왕성한 역동성을 없애버리는 방법은 스스로 빠르게 늙어버리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피로감을 가능한 줄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국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누구나 다 기자들을 욕하지만 그 기자들의 수준이 바로 우리들 자신의 수준이다. 온갖 이슈에 대해 진영 논리를 들이대면서 기꺼이 충돌하고, 충돌하면 반드시 이겨내려고 하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 예를 들면 우리는 지난 탄핵 정국에서 박근혜-최순실에 부역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감옥에 쳐넣으려고 했다. 구속적부심에서 구속이 기각되면 법원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렸다. 이런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박근혜에 대한 탄핵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보자, 예컨대 이인화같은 사람이 구속되었어야 했을까?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그런 급박한 정국에서 허물어져 버리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가 훼손되어 버리고 만다. 사회적 피로감을 줄이는 확실한 토대가 바로 민주주의인데 말이다. 


지금의 조국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각 진영의 극대화된 대치 때문에 사회적 논쟁을 통한 해결이 불가능해져버렸기 때문에 검찰이 공공연하게 청문회를 앞둔 장관 지명자 주변에 대해 압수 수색을 실시해 버린다. 이런 걸 정상 상태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이런 건 굉장히 위험한 사태라고 본다. 검찰 총장이나 검사가 스타가 되는 나라가 있는데, 그것은 마치 골기퍼가 최우수 선수가 된 경기와 마찬가지로 결코 긍정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런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사회적 피로감을 가능한 줄이는 방식을 선호하지만, 탄핵 정국을 통과하며 성립된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세운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곳곳에서 첨예하게 갈등이 빚어지는 것도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지금 조국 논란의 핵심은 검찰 개혁에 있고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 권력의 분산에 있고, 그러한 권력의 분산은 한국 민주주의의 안정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고 지금의 혼란을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은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실력일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태우스 2019-09-04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읽었습니다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시다

weekly 2019-09-04 16: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말씀 감사합니다.
 

요즘 즐겨 듣는 조용필의 음악들.



핑크 플로이드 풍의 장중한 음악. 조용필의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의 작품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연주와 구성이 빼어나다.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곡의 진행이나 문법은 온전히 위대한 탄생이라는 밴드의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조용필은 명곡은 많이 만들었지만 명반은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리라. 이 곡도 '나는 너 좋아' 가 타이틀 곡인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조용필의 장중한 롹 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앨범 저 앨범에서 몇 곡씩 뽑아 들어야 한다.) 



몇 개의 곡을 이어붙인 형태의 곡. 조용필의 밴드 특유의 베이스 소리를 특히 좋아한다. 



나는 이 곡이 한국의 국가가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여우들이 자주 정원에 와서 쉬고 놀고 하는데 작년에 못 보던 새끼, 혹은 청소년 여우 둘이 새로 나타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토요일에 이 집으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가든 파티 비슷한 것을 했다. 아는 한국인 가족분들 초대했다. 우리까지 전부 7명 뿐인 단촐한 파티. 그릴도 부랴부랴 새로 샀는데, 해본 적이 없어서 다른 분이 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배워야 했다. 여튼 재미있게 놀고 떠들고 먹고 하였다. 


손님으로 온 분 중에 영국에서 꽃꽂이로 석사를 따신 분이 있었다. 그 분이 정원 여기 저기를 휘젖더니 금방 꽃다발을 하나 만들어 주셨다. 마술과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토요일, 모처럼 런던의 포일스 서점에 갔다. 포일스 서점은 런던에서 제일 커다란 서점일 것이며, 아마도 런던에서 유일한 대형 서점일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교보문고. 


1, 2년 전에 큰 공사를 해서 내부를 단장해 놓은 덕인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책을 한 권이라도 사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책값에 치여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예전에 화제를 끌었던 하이데거의 검은 노트북이 세 권인가 네 권으로 번역되어 나와있었고 꼭 사고 싶었지만 50파운드나 하기 때문에 살 수가 없었다. - 요즘 하루에 2 페이지 정도 꾸준히 이러 저러한 주제로 노트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는 걸 규칙으로 하고 있는데, 그 통에 그 유치하고 매가리없는 글뭉치들에 매일 매일 좌절을 하고 있다. 대가들의 수준은 어떠할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다. 조만간 사게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얼마 전에 "존재와 시간'의 일부를 다시 읽었는데, 그 강렬함은 다른 어떤 철학자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책을 한권도 사지 못하고 포일스 서점을 나서게 되었다. 충족되지 못한 쇼핑 욕구에 이끌려 근처 헌책방들 몇 개가 몰려 있는 거리로 갔다. 내가 즐겨가는 헌책방이 있고 거기 가면 괜찮은 책들이 나와 있을 때가 많았다. 이번에는 1911년에 나온 베르그송에 대한 책을 4 파운드에 샀다. 베르그송과 동시대의 사람들은 베르그송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재밌을 것 같았다.


(사진은 템즈 강의 어느 다리를 건너다 대기가 너무도 투명하여 찍어 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