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베넷의 논문에 대한 노트를 만들어 R에게 메일로 보냄. (베넷의 논문은 짜증날 정도로 허술하다!)

점심 때 R과 베넷에 대해 토론하기로 했지만, R이 발제문이 아직 안되었다고 해서 다음으로 연기함.

노직의 논문을 읽다가 중요한 통찰을 얻음. (나의 테제가 회의주의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것)

노직을 읽고 나서 옆에 서점에 갔는데 많은 철학책들이 쌓여 있더라. 값도 비싸고. 기분 전환하기 위해 서점에 간 것이었는데 압박감을 받고 나옴. 비트겐슈타인의 수리 철학 관련 책을 샀다. 전날 A에게 받은 자극때문이라기보다는 와이즈만의 비트와의 대화록을 좀 더 잘 읽기 위해 산 것. 

다른 학교에서 있는 에티카 강의를 들으러 먼 길을 걸음. R과 연락이 엇갈려서 학교까지 혼자 갔는데 결국 강의를 듣지 않고 돌아섬. 여기엔 스토리가 있다.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집에 거의 다 와서 R에게 전화가 옴. R은 강의를 들었다 함. 그러나 역사적인 내용이 많았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고 함.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라고 대꾸해 줌. 

하루 종일 피로감을 느낌. 이러 저러한 자극들이 나를 분발케 하는 것은 좋은데, 어제는 새벽 두 시까지 공부하다 잤더니 오후가 지나면서 머리가 완전 방전되어 버렸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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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R과 내셔널 갤러리에 갔다. R은 화가. 피카소가 20살 때 그린 작품이 새로 대여되어 온 것에 흥분함. 

R, 그리고 R의 소개로 만난 A와 브리또(?)로 점심을 먹었다. 엄청난 양의 음식이라 나는 반만 먹고 나머지는 저녁으로 남겨 두었다. 여학생들도 그것들을 앉은 자리에서 다 먹는다. 대단하다.

A는 박사 과정 학생이다. 수리 철학 전공. 나의 관심사를 묻기에 작년 연말에 쓴 에세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럿셀 이론에 대한 일반론을 이야기하고 나서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설명하려다 포기. 예전에 쓴 것이라 까먹기도 했고, 또 논고 전반에 대한 나의 새로운 해석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이런 복잡한 논리를 영어로 풀어갈 자신이 없었던 것. 입술을 깨물었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는데... 끙.

오후에는 지칠 때까지 베넷의 논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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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과 카페에서 만나 공부. 나는 무어를 읽고 그는 칸트를 읽음. 스피노자에 대한 공부를 같이 하기로 함.

N과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눔. 나는 사르트르의 의식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함. N은 수업이 있어 자리를 뜨고 나는 그에게 하던 얘기를 마무리하는 메일을 써서 보냄.

옆 대학에서 구루의 강연을 들음. 현대 사회에 있어서의 영성이라는 주제였는데 큰 인상을 받지는 못함. 금방 전까지 의식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던 차라 철학에서 영성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음. 채식주의 음식이 제공되어 받아먹음. 학교 다니면서 내 돈 내고 뭘 사먹은 것은 커피 한잔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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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Morton, 5.57
Ep3, Moore,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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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

1. 무어의 논문을 읽다가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논고의 명제 4에 대한 해석이다. 이 해석은, 말하자면 흄에서 훗설로 가는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다. 저녁에 유부초밥과 홍합탕을 먹고 투 스모킹 배럴스를 중간까지 다시 한번 보고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2. 토요일날 싸이가 영국 인기 차트에서 2위하는 걸 봤다. 전주엔 1위였다고 하는데 나는 못봤다. 엊그제 만난 중국 친구가 싸이가 국제적 현상이 되었다고 하더라. 그에게 되물어 봤다. 나도 그 비디오를 한번 봤는데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그 친구 말은 리듬이 무척 재미있단다. 암튼... 대단한 싸이다.

3. 일요일 아침 뉴스에 살해된 아이의 시신을 찾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더라. 영국엔 이런 뉴스가 너무 잦다. 나는 뉴스를 잘 챙겨보지 않지만 3월달쯤 영국에 건너 와서 이런 뉴스를 본 게 벌써 세 번째다. 부모가 방화하여 6명의 아이들이 희생된 사건, 할머니의 남자 친구가 그 손녀를 살해한 사건, 그리고 이번 5살 여자 아이 살해 사건... 

6명의 아이가 방화로 희생된 사건은 내가 어느 정도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었다. 어느날 텔레비를 보니까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들이 나와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엔 아직 방화범이 밝혀지지 않았었는데 그 부모들은 기자회견 내내 울먹이면서 지역 공동체, 경찰 등의 헌신에 감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억지로 우는 것 같았고, 어머니라는 사람은 일부러 정신이 멍한 척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이 부모들이 범인으로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내가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이들의 체포를 전하는 비비씨, 가디언 등 내가 접속해 본 거의 모든 뉴스 사이트들이 댓글을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법률에 의해서 그렇게 했단다. 그러나 단 한 군데 야후 유케이는 댓글을 열어두고 있었다. 거기에 달린 많은 댓글들에서 사람들은 그 기자회견 때 그 아버지라는 사람이 눈물도 나지 않는데 흐느끼고 있었다고, 뭔가가 이상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후속 뉴스를 계속 주목해 보았다. 그러나 부모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어떻게 범행했는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적어도 내가 찾아본 바로는 알 수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한 기사들은, 지역 공동체가 아이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 아이들의 장례식이 있었다 등의 내용에 한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보았다. (유튜브에 그 사람이 토크쇼에 출연한 영상이 있다.) 내가 영국에 와서 가장 강한 혐오감을 느끼게 된 순간은, 그 아버지라는 사람이 철저하게 영국적인 문화의 산물이라는 걸 깨닫게 된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

4. 영국은 한국 이상의 드라마 제국이다. 그런데 그 드라마의 상당 부분이 범죄 드라마다. 제목에 살해, 살인... 이런 말들이 곧잘 들어간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손바닥만하고 두툼한 책을 읽고 있다면 제목에 "murder"라는 제목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채리티 샵 도서 코너에 가보면 기증된 책의 대부분이 이런 쟝르다. 헌책방에는 이런 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나는 이런 농담을 즐겨 한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영국에서는 탐정 소설이 인민의 아편일거야! 토요일날 런던의 중고 책 장터에 가서 오랜 시간을 헤매고도 나는 책 한권을 제대로 골라 내지 못했다. 책들이 대부분 범죄 소설, 과학 소설, 요리, 정원 가꾸기, 정치, 역사 등등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관심사는 주로 철학이긴 했다. 그러나 런던보다 규모가 작았던 암스테르담의 중고 책 장터에서 나는 훨씬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책들을 찾아냈었다. 나는 럿셀의 "의미와 진리의 탐구" 등 몇 권만 사고 몇 권은 포기해야 했었다. 테스코에 장보러 갈 때 잡지 코너를 휙 지나면서 내가 눈여겨 보는 것이 있다. 영국의 왕세손비 케이트의 얼굴이 잡지의 표지에 실려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본 바로는 케이트 얼굴이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이런 순간에 대놓고 영국에 대한 경멸을 즐긴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은 대부분 무척 아름답게 생겼다. 나는 여자 선수들이 인터뷰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놀라곤 했는데, 말씨가 무척 여성스럽고 우아했기 때문이었다. 운동선수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의 상류 계층의, 사립 학교 출신이라고 하더라. 중하류(?) 계층의 영어를 듣고 싶으면 베컴 등의 축구 선수들에 주목하면 될 것이다. 영국 프로 축구 스타들은 유독 기행과 성추문이 심하다. 놀라울 것이 없다. 그저 영국 사회의 반영이니까.

내가 보기엔 이렇다. 영국은 혁명 등의 격변으로 나라 전체가 뒤집어 진 적이 없다. 한국이 일제의 지배와 한국 전쟁 등으로 양반/상민의 계급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과 대비된다. 영국의 지배 계층은 하위 계층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지배 계층의 지배 전략은, 내 생각에는 그네들은 그네들끼리 살도록 놓아두자는 것인 것 같다. 복지 시스템, 축구, 드라마, 리얼리티 쇼, 컴피티션 쇼, 범죄 소설, 여자 연예인 이상으로 언론에 노출되는 다이애너 전왕세자비나 케이트 왕세손비 등등이 다 이런 장치들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영국의 시스템은 배가 고파서, 혹은 너무 심심해서 우리를 뛰쳐나가지 않는 돼지들을 길러 내는 것인 것 같다. (표현이, 물론 과도하긴 하다) 

예를 들면, 6명의 아이들을 방화로 숨지게 한 남자는 껄렁한 백수였다. 이 여자 저 여자를 임신시켜 많은 아이들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영국의 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받아 어쨌든 잘 살아가고 있었다. 정부에 당당하게 요구해서 얻은 집에서 한 명의 아내와 다른 한 명의 임신한 상태의 여자 친구, 그리고 아이들과 잘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기행자들에 윤리적 비판을 삼가는 것이 영국 사회의 특징이고, 또 이런 기행자를 텔레비에 초대해서 유명인으로 만들어 주는 게 영국 사회의 특징이다. (너희들끼리 놀아라 정책이다) 이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자라는 캐릭터로 유명해 졌다. 그런데 이 남자가 갑자기 방화를 해서 자신의 자식들을 죽게 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데 영국이라는 나라는 이런 질문들을 무례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영국 테레비들은 단지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놓고 간 꽃다발을 끊임없이 비출 뿐이다. 언론은 댓글을 닫고, 더 이상 보도도 하지 않는다. (언론이 봉쇄되자 나는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타블로이드 신문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현실인지 소설인지 분간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음 이래서 사람들이 타블로이드를 사보는 구나... 하고 느꼈다.) 이번에 살해된 5살 아이를 추모하기 위한 특별 예배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찾았다는 방송 화면이 끊임없이 나오는 동안 나는 혐오감을 느꼈다. 전에 솔즈베리 성당을 찾았을 때 그곳에서는 (아마도, 그러나 당연히) 영국 상류 계급들끼리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 신부는 물론 하객 모두 키가 훤칠하고 영화 배우처럼 잘 생겼으며 영화에서나 볼 듯한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솔즈베리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 극단적인 풍경들, 이것이 영국이다. (우디 앨런의 매치 포인트라는 영화가 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영국) 상류 계층의 예의바르고 관대하고 순수한 사람들/그렇지 않은 계층의 위험한 사람들. 전자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영국의 메달리스트나 솔즈베리 성당 결혼식의 하객들을 떠올렸다. 우디 앨런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 테지만...)

5. 지지난주에 하치랜드 파크에 다녀왔었다. 귀족들의 저택과 정원을 재단이 관리를 인수하여 보존하면서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친구랑 광활한 공원을 걸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물론, 사회주의자 등이다. 그리고 다른 한 부류는 보수주의자, 혹은 인문주의자라 할 만한 사람들이다. 후자의 사람들은 왜 자본주의를 싫어할까? 자본주의는 돈이 최고라는 주의이고, 인문주의(보수주의)는 돈 이상의 다른 가치가 있다는 걸 믿는 사람들이니까. 흔한 이야기다. 만일 영국에 귀족제가 진작에 폐지되었더라면, 이 좋은 공원들도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귀족들이 대저택과 대지를 돈과 바꾸었을 테니까. 이십세기 초 대저택과 대지를 유지하기 힘들게 된 영국 귀족들 중 일부는, 이를 돈과 바꾸는 대신 재단에 맡겨 모든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 귀족들은 돈 이상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돈 이상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를 비틀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돈을 벌어서 무얼 하겠어요?"(버나드 쇼오의 "인간과 초인"의 대사) 좋게 바라보자. 그것들을 보존한 것은 잘한 일이고 위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글을 너무 길고 장황하고 두서없게 썼다. 정리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올린다. 내가 느끼는 혼란의 반영일 테고, 그것이 또한 이 블로그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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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Dancy, 0.42
Ep3, Morton, 0.23
Ep3, Moore,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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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런던에 소풍을 나갔다. 워털루에서 테이트 모던까지 걸어가는 길에 먹거리 장터가 둘이나 있어 매운 인도 카레밥, 말레이시아 면 음식 등을 사먹었다. 

테이트 모던에서 뭉크 전을 보았다. 

차이나 타운에 있는 왕기라는 음식점에서 중국 음식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DVD로 짐 캐리 주연의 라이어 라이어, 리치 가이 감독의 투 스모킹 배럴스를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까지 런던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집에 와서 DVD 두 편을 보고 잤다. 몰아서 본 이유는, 내일부터는 정말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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