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서양 근현대미술의 거장전>을 보러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찾았다. 9시까지 전시라 8시 전에 입장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녁 먹고도 7시 반쯤에는 들어갈 수 있었고, 전시 작품 수가 많지 않아 느긋하게 오래오래 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점. 넓지 않은 전시장에 네다섯명 쯤의 도슨트들이 서 있다. 아무나 붙들고 물으면 바로 작품 안내를 시작한다. 도슨트마다 전공이 틀린 듯. 한 명이 전시장 전부를 도는게 아니라 부분 부분만 설명한다. 이런 럭셔리함이라니! 기존 전시장에서는 꿈도 못 꾸던 일이다. 다만 좀 버벅거리는 사람도 있었다는게 흠이라면 흠.
전시회 팜플릿. 빠닥빠닥한 종이에 전시 작품 대부분이 인쇄되어 있다. 그림 크기가 좀 작지만 상당히 만족스럽다. 표지는 저 유명한 모네의 <대운하>. 경매 추정가 $12,000,000~16,000,000란다. 몇몇 아이들이 뛰거나 부산스레 움직일 때마다 경비원들은 상당히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에 유리액자도 없으니 당연하겠지.
제일 좋았던 작품은 달리의 <기억의 메아리>와 베이컨의 <자화상을 위한 3개의 연구>. 어째서 그림을 직접 봐야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인터넷 갤러리에서 찾다찾다 못 찾았다. 수많은 갤러리에 달리의 수많은 작품들이 올라와 있는데, 유독 이 작품만큼은 어디에도 없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고 그러더니, 사실인가보다. 가운데 마당과 저 안쪽으로 보이는 쪼그만 마당의 밝은 기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상당히 음산한 느낌을 준다.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면, 앞쪽에 기대어 있는 맹인이 달리 자신을 표현하는데, 자신은 어둡고 절망적인 삶을 살지만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빛이 비치는 안마당처럼, 자신의 작품을 통해 즐거움을 얻기를 바랐다고 한다. 사실인지 어떤지 알 수는 없다. 흠.
이 작품은 실제로 보는 것과 차이가 너무 심하다. 같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 저 얼굴에 찍힌 파랗고 빨간 선은 칠판 지우개로 찍은 것처럼 선명한데 팜플릿에서는 다 뭉개진 것처럼 보인다. 바탕의 검은색도 저렇게 어둡지 않고 좀 더 맑은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난 베이컨을 상당히 오해하고 있는 듯.
친구는 몇 주 연속 로또 당첨되면 저 작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아, 어디 갤러리 페이크 같은 데 없나. 나한테 싼값으로 진품 팔아 줄. 말도 안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