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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음, 공경희 옮김 / 해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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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작자의 말대로 이제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가 나를 진짜로 사랑하는지를, 그를 계속 마음에 담아 둔 채 애닳아 하는 것이 현명한 짓인지를 말이다.

그가 나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전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출장이 잦아 나와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 나와 섹스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판다, 술기운에만 나를 찾는다, 결혼 이야기를 피한다,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한다, 갑자기 연락을 끊는다, 그를 독차지할 수 없다, 나의 감정을 무시한다......

작가는 이런 남자를 두고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공동 집필자 중 한 사람인 그렉 버렌트는 여자 작가들이 득실거리는 <섹스 앤 시티> 작가실의 청일점이다. 회의 중에 여자 작가들이 간혹 털어 놓는 연애담을 들으면서, 그는 재능 있고 똑똑한 그들이 끝없는 환상 스토리를 이어가는 모습에 혀를 끌끌 찬다.

이 책은 우유부단한 남자들에게 목을 매는 헛똑똑이 여자들에게, 마음의 결정을 못 지은 채 헛된 희망만 품고 사는 여자들에게 일침을 놓는 책이다. 그렉 버렌트는 말한다. 엉뚱한 남자를 붙들고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남자가 여자한테 반하면 자신이 그렇다는 걸 꼭 알리고 싶어한다고. 전화하고, 불쑥 나타나고, 여자의 친구들을 보고 싶어하고, 자기 여자한테서 눈이나 손을 떼지 못하고, 섹스할 기회가 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고. 그런 마음을 조금은 과장해서, "다음날 새벽 4시에 대통령으로 취임하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라고까지 말한다. 과연???!!!

공동 집필자 중 또 한 명인 리즈 투칠로는 여자 작가들이 지배하는 <섹스 앤 시티> 작가실의 책임작가이다. 그녀는 마흔한 살의 독신녀다. 예쁘고, 늘씬하고, 똑똑하고, 돈 잘 벌고, 누구보다 멋진 여성이지만,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스스로를 "회색분자"라 일컫는다. 흑과 백을 오가며 때로는 상처 받고, 때로는 힘들어하고, 때로는 무지무지 외로워하며, 발렌타인데이를 평생 같이 보낼 수 있는 남자를 찾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민녀'다. 리즈는 결혼 5년 차인 그렉의 냉정한(실은 너무도 맞는) 조언들에 성질을 내지만, 결국에는 그의 말에 수긍한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여자들이 전전긍긍하는 연애 문제 51가지에 대한 그렉 버렌트의 답변, 각 장마다 그렉과 리즈가 내린 결론, 그렉의 조언에 따른 가상의 여자들의 성공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들이 털어 놓는 이야기들은 아주 현실감 넘치고, 그렉이 들려주는 답변들은 시원시원하고 통쾌하다. 가령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하지 않는 남자를 두고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바쁘다' 라는 말은 '개똥 같은' 단어이며, '나쁜 자식'들이 애용하는 말이다, '바쁘다'는 관계 맺기에 대형 참사를 유발시키는 말이다. . . . . . 남자란 존재는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얻고야 마는 종족이다." (49)

이 책은 한마디로 유쾌하고 통쾌하다. 일단 손에 들면 놓고 싶지 않아진다. 여자들의 숱한 고민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대에게 반할 남자는 꼭 있다,' '그대는 멋진 여자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해 주는 그렉의 답변은 자신감을 불쑥불쑥 솟게 만든다. 그 무엇보다, 뜨뜨미지근한, 혹은 진전 없는 관계 때문에 가슴 졸이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여자들에게 지지부진한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찾도록 돕는 지침서라고나 할까.  

그렉은 말한다. "여자들이여, 인생은 짧고 남자는 많다." "당신은 똑똑하고 귀하고 소중하고 멋있고, 원하는 걸 모두 누릴 사람"이다.

그래, 맞다.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인정하겠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마크가 한 말을 그대로 읊을 줄 아는 남자가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I like you just as you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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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 2005-04-0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너무 멋져요. ^-^;
남자들 참.. 문제 많죠.. 저 역시 ㅡ,.ㅡ;
이와 비슷한 한국책으로는 이시형 박사의
여자는 모른다가 있는데.. 제가 읽으면서도 참으로 뜨끔했다는.. ㅡㅡ^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멋지네요.

리안 2005-04-1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맘에 드는 책이네요. 읽어 봐야 겠어요~ 잘 보고 갑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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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을 하기를 꿈꾸고 실제로 사랑을 한다. 누구나 단 한 번의 절대불변의 사랑을 꿈꾸어 보지만, 실제로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이들이 첫 사랑에는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그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내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으리라, 혹은 못하리라.' 같은 어줍잖은 다짐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길든 짧든), 누구나 언제 그(그녀)를 사랑했던가 싶게 또 한 번 또는 세 번 네 번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왜 인간은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는가. 첫 사랑의 시련을 통해 사랑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뼛 속 깊이 깨달았을 터인데도, 왜 다른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가. 사람에 따라 사랑의 양상이야 천태만상이겠지만,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사랑하는 이들이 느끼는 감정에는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3월의 따스한 봄볕에 봉오리를 막 열어젖히는 나무들처럼 사랑의 꽃이 이제 막 피려는 자, 사랑의 열매가 무르익어 행복감에 젖어 있는자, 부풀어 오른 열매가 터지면서 지리멸렬해 가는 감정에 어리둥절한 자, 꽃도 열매도 잎도 다 떨어져 사랑의 겨울을 맞이한 자, 실연의 아픔에 긴긴 날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울면서 혹은 멍하니 있는 자,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을 회의하며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겠노라 여기는 자. 그런 사람들은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아니면 인터넷 서점으로 들어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사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에 관한, 정확하게는 연애에 관한 책이다. 제목과 촌스러운 표지만 보면 <하이틴 로맨스> 류의 유치한 이야기가 연상되지만, 책장을 열면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 구조는 지극히 단순하다. 1인칭 화자인 나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어쩌면 운명적으로) 클로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을 느끼고,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인 연애를 하고, 달콤쌉싸름한 연애의 절정을 맛본 뒤 결국에는 그녀에게 이별을 통고 받는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이런 평범하고 진부한 연애담이 드 보통의 손에서 독창적인 사랑 이야기로 돌변한다. 이 책은 사랑의 기승전결을 모두 담고 있다. 운명적인 만남에서부터 구애 과정, 연인의 이상화, 친밀성, 서로를 알아가는 기쁨, 행복 이면의 두려움, 거부 당하는 사랑, 돌연히 닥친 이별, 이별의 고통과 시련, 비참한 상황에 대처하기까지. 

 

이 책을 읽는 재미는, 흔하디 흔한 사랑의 우여곡절을 꼼꼼하게 따지고 드는 드 보통의 해석이다. 연애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과 생각을 저자는 수많은 문학가와 철학자들의 견해를 끌어들여 이야기한다. 몽테뉴, 스탕달, 롤랑 바르트,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비트게슈타인, 마르크스, 파스칼 등등. 그래서 이 책을 읽노라면 한 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무슨 철학서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은 저자가 풀어내는 생각들이 너무 현학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것은 저자가 스물 다섯이라는 패기만만한 나이에 이 책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로서는 그 젊은(어쩌면 어린) 나이에 그렇게 많은 책을 독파하고 사랑이라는 소재를 이 정도로 깊이 있게 다룬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학적인 냄새가 풍긴다고는 하나, 드 보통의 현학을 따라가는 것이 결코 싫지만은 않다. 그의 사변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그래, 맞아 맞아' 하며 무릎을 치게 하는 뛰어난 통찰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맥 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고, 누군가와의 만남에 <운명>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우연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고 싶어서이며, 사랑을 얻고자 할 때는 자아마저 내동댕이친 채 오로지 상대에게만 집중하지만, 상대로부터 사랑의 보답을 얻게 되는 순간 그/그녀에게 매력을 못 느끼며 달아나려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면서 느끼게 되는 심경을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늘 상식적인 생각처럼 유쾌한 과정은 아니다 . . . 기분 좋은 유사성과 마주칠 수 있는 가능성만큼이나 위협적인 차이와 만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이런 차이와 마주치면 칠수록 더욱 잘 알게 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혼자 있을 때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있을 때는 잘 파악되지 않았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이 연인 앞에서만큼은 곧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 보통은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스탕달의 말을 끌어들여 연인을 나를 비추는 거울에 비유한다.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식의 철학적인 사유로 가득하지만, 이 책이 무겁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에피소드 중간중간 등장하는 드 보통의 재치스런 입담은 때때로 옅은 미소를, 때로는 박장대소를 일으키기도 한다. 가장 재미난 대목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버림을 받고 난 후 화자인 내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었다. 나의 죽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볼 수 없다는 깨달음에 화들짝 놀라 먹은 약을 다 토해 버리는 나, 심각한 자살을 이런 식으로 황당하게 처리하는 작가의 능청스러움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자살 시도도 해보고, 자신의 슬픔에 취했다가 고통을 하나의 자질로 승화시키고, 사랑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급기야 금욕주의자에 이른 화자는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을까. 드 보통의 번뜩이는 기지와 비상한 통찰력을 잘 읽어내려 간 사람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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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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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경험했던 노동수용소 생활의 하루를 이반 데니스비치 슈호프라는 평범한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침 다섯 시. 그 시간이면 늘 기상을 알리는 신호 소리가 울린다. 수용소의 삶은 지극히 비인간적이다. "수용소 생활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침 식사 시간 십 분, 점심과 저녁 시간 오 분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그러나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죄목은 참으로 모호하다. 어떤 특별한 정치적인 임무를 갖고 활동한 적도 없으면서, 스탈린 공포시대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억울한 죄목을 뒤집어쓴 채 수용소에 갇히고 만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지배 권력의 희생양이 돼 버렸다. 주인공 슈호프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수용소라는 억압적인 환경에서 매일매일을 어떻게든 살아내거나, 혹은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작가는 평범하고 약한 개인이 거대한 지배 권력의 폭압에 얼마나 비참한 운명으로 떨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보이고 있다.


무고한 개인이 정치권력에 희생양이 되는 것은 비단 스탈린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전에도 늘 있었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으며, 어쩌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그런 모든 폭압적인 권력에 대한 고발이자, 그러한 권력에 무참히 희생되는 약한 개인에 대한 인간적인 헌사이다. 츠바르도프스키는 이 작품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권력의 악용에 대한 사건들을 명확하고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 우리들이 할 일이다. 세월은 흐르고 우리들 모두는 사라질 것이며, 우리는 결국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숨쉬는 동안에 밝힐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마땅히 밝혀야 하며......이와 같은 비극이 앞으로는 절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슬프게도 인간의 비극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원리인가라는 의구심이, 때로는 확신마저 든다. 그래서 또 한 번 슬프게도 인간적인 삶을 향한 투쟁도 끝나지 않나 보다. 슈호프가 하루를 마감하며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고,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고, 저녁에는 순번을 대신 맡아 돈도 벌고, 잎담배도 산 것에 대해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며 감사하는 마지막 대목은 읽는 이의 가슴을 애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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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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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만에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생각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멋진 소설을 만났다. 사람이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가 있듯이, 책에도 그 책만이 주는 독특한 빛깔과 향기와 즐거움이 있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는 무료하고 갑갑한 일상에 쏟아지는 소낙비 같은 책이었다.


잿빛 일상이 지겨워 모래땅으로 곤충 채집을 도피하듯 떠나는 한 남자. 그의 여행 목적은 사구라는, 생명의 근접을 허용하지 않는 땅에서 새로운 종을 채집하여 자신의 이름을 <곤충도감>에 영구히 보존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오히려 그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소멸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모래 구덩이 속에 세워진 집에 갇힌다. 그 구덩이에 갇혀 흘러내리는 모래에 집이 파묻혀 버리지 않도록, 마치 쉬지 않고 돌을 굴려야 하는 신화 속의 시지프스처럼 매일매일 삽질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래의 이미지는 판에 박힌 현실 세계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다.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멸망시킨다....."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하여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이다......"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기기. 소설 초입에 하나의 지식으로만 존재하던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는 소설 말미에서 남자의 몸과 의식 안으로 깊이 스며든다. 그는 <모래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모래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 그것은 모래 구덩이 안의 세계와 밖의 세계가 결국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 세상과 모래 구덩이 속의 세계가 사실은 한 공간의 서로 다른 모습인 것이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일상에 묻혀, 나중에는 모래 구덩이에 갇혀, 사막과 구덩이 밖이라는 다른 세계를 꿈꾸었지만, 결국 존재하는 곳이 곧 다른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깨달음이 그에게 이런 여유를 안겨준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모래의 여자>는 미시마 유키오의 지적처럼 한번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의 말처럼 이 소설에는 한편으론 신경을 바짝 곤두서게 하는 긴장과 전율이 있고, 또 한편으론 현실 사회의 문제를 예리하게 들여다보는 사색이 있다. 한마디로 재미있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까뮈와도 비슷하고, 카프카와도 비슷하다. 문단에서는 아베 코보를 "일본의 카프카"라고 칭한다고 하는데, 소설을 읽고난 뒤의 느낌은 과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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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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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들어갔을 때 내가 받은 첫 중간고사의 수학 성적은 35점이었다. 중학교 선생님들이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수학은 차원이 다르다 라고 누누히 일러주시긴 했지만, 난 그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어 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35점. 그 숫자는 내 머리를 어지럽혔고 무엇보다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다행한 것은 35가 그 때는 치욕스런 숫자였지만 지금은 사랑스럽고 고마운 숫자로 내게 남아 있다. 35 덕분에 난 여름 방학 동안 땀흘리며 수학 문제와 씨름했고, 땀 흘린 것만큼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수학을 좋아했지만 숫자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학은 내게서 멀어졌고 물건을 살 때나 누군가의 나이를 따지거나 오늘이 며칠인가 지금이 몇 시인가 생각할 때를 빼고는 숫자를 거론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숫자는 숫자일 뿐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었다.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우리가 무심히 보고 넘기는 수(더 크게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말해 준다. 17년 전 교통사고로 뇌의 일부를 손상 당한 박사. 그의 기억은 1975년에서 멈춰 있다. 30년 전 자신이 발견한 수학의 정리는 기억해도 엊저녁에 뭘 먹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뇌 테이프는 정확하게 80분만 돌아간다. 80분이 지나면 이전 기억은 깡그리 삭제되고 새로운 내용이 녹음되는 것이다. 그러나 80분만의 기억 회로를 가진 박사가 전해 주는 수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 있다.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들은 그냥 수가 아니라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가령 박사에게 루트는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이다. 220과 284는 우애수다. 6과 28은 완전수다. 18은 과도한 짐을 진 과잉수이고, 14는 결여된 공백이 앞에 놓인 부족수다. 박사가 가장 사랑하는 수는 소수이다. 그에게 소수는 한마디로 사랑의 대상이다. 소수 찾기를 광대한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는 격에 비유하는 박사의 표현은 아름답다. 또한 우리네 인생 살이에 대한 명답이기도 하다.  

"숫자가 커지면, 소수가 전혀 없는 사막지대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수도 있어. 하염없이 걸어도 소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지. 사방이 온통 모래의 바다야. 태양은 쨍쨍 내리쬐고, 목은 바짝 마르고, 눈은 가물거리고, 정신은 몽롱하고. 앗, 소수다! 하고 뛰어가 보면 그냥 신기루일 뿐.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은 모래 바람뿐.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지. 지평선 너머에 맑은 물이 출렁이는 소수란 이름의 오아시스가 보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말이야."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우리에게 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인간 관계의 아름다움도 전해 준다. 80분이면 기억이 사라지는 박사가 숫자를 통해 화자인 나와 소통하고 그녀의 아들인 루트에게 보이는 애정, 나와 루트가 야구를 통해 박사에게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가 사랑한 야구 선수의 카드를 찾는 행동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이 책은 수를 사랑하는 것이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멀리 있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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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8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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