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생활도 어언 스무날을 넘기고 한달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엄청 좋네요. 유로2008 8강전 이후로 몇 경기 리얼타임 생중계로 새벽에 봐줄 여유도 있었고.
*업자 주제에 발리까지 놀러갔다 왔답니다.

날마다 새벽 다섯시 반에 출근하는 생활에서 갑자기 백수의 처지로 바뀌고 나니
너무너무 여유도 많고 ^^;; 할일이 없는 듯 하면서도 있고, 있는 듯 하면서도 없고...
게다가 남편과 함께 커플 백수로 노닐었으니...

내일은 새 직장에 찾아가야 하는 날. 아마도 목요일부터는 다시 출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마흔이 코앞인데... 회사를 바꿔서 대체 뭘 어쩌려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새롭게 적응할 생각, 내 스타일대로 일할 수 있도록 터잡을 생각을 하니 마음 갑갑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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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7-1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잘하시겠죠 ..

딸기 2008-07-14 01:17   좋아요 0 | URL
으잉 라주미힌님 이 시간에 접속을...
저도 제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격려 고마워요

파란여우 2008-07-1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자기 이름 넣고 ㅁ 일보에서 검색했는데 마지막 기사입력이 6월 18일인가해서
장기출장갔나...했었다능.
마흔무렵에 새 직장이라면 아직 충천하구만 뭘!^^
잘 할꺼얌.

딸기 2008-07-14 16:56   좋아요 0 | URL
장기출장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
ㅁ일보에서 경향신문으로 옮겼어요. 나중에 제가 부탁하면 경향신문 한 부 구독해주시기예요!

무해한모리군 2008-07-1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너무 직장을 옮기고 싶은데, 뜻대로 잘 안되고 있답니다..
일견 딸기님의 능력이 부러운데요 ^^

딸기 2008-07-14 16:56   좋아요 0 | URL
월급 줄여가며 옮긴 건데, 그것도 능력에 해당될까요. ^^

로쟈 2008-07-1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에 이어 딸기님까지, 직장 이모작하시는군요!..

딸기 2008-07-14 16:57   좋아요 0 | URL
저는 마냐님처럼 업종변경을 한 게 아니고 회사만 바뀌었으니
완전 이모작이라 할 수는 없겠고요, 암튼 제2의 인생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비연 2008-07-1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잘 되실 거에요~

딸기 2008-07-14 16:57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비연님. ^^

ceylontea 2008-07-14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홧팅!! 잘 하실거예요...
저도 업종을 바꿔 일을 바꿔보고 싶은데.. --;
아직 바꿀 업종을 결정 못해서요.. 저도 이제 40을 앞두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네요.

딸기 2008-07-14 16:58   좋아요 0 | URL
저는 가진 재주가 없어서 업종 변경은 못 했답니다.
실론티님도 여러가지 고민이 많으시구나... 언제 함 만나서 수다 떨어요. :)

물만두 2008-07-1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되실겁니다^^

딸기 2008-07-14 16:58   좋아요 0 | URL
만두언니, 고마워요!

울보 2008-07-1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종종 일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용기강 없어서..
그래도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것 얼마나 좋은일이예요 잘 되실거에요,아자아자 화이팅입니다,

딸기 2008-07-14 16:58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울보님. 앞으로도 격려 많이 해주세요.

마노아 2008-07-14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딸기 언니! 그 사이 큼직한 일들이 있었군요. 새 직장은 어디일까요? 동종업계일까요? 휴식으로 충전하셨으니 더 멋지게 날아오르실거죠? 부릉부릉 화이팅이에요!

딸기 2008-07-14 16:59   좋아요 0 | URL
큼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상하게 큰일이란 느낌이 안 들어.
같은 업종, 같은 일, 그것도 바로 옆 회사(위치가 매우 가깝거든)로 옮기기 때문에 그런가...
마노아도 언제든 화이팅!

전자인간 2008-07-14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을 두 가지나 볼 수는 없고, 온라인 경향신문에나 많이 가 봐야겠네요.

딸기 2008-07-16 00:45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한달 가까이 미디어와는 담을 쌓고 산 탓에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겠어요. 저희들 하는 일이 하루살이 생활인지라, 일 시작하면 당분간 좀 헤맬 것 같긴 해요. ^^

서연사랑 2008-07-15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 6월달부터 경향신문보고 있어요.

며칠뒤부터 반가운 이름을 신문에서 볼 수 있겠네요^^

딸기 2008-07-16 00:46   좋아요 0 | URL
아, 그래? 나도 반갑네. 기사 열심히 써야겠당. ^^

2008-07-15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8-07-16 00:46   좋아요 0 | URL
**님, 고맙습니다. 어떤 격려보다도 힘이 되네요. :)

2008-07-15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8-07-16 00:47   좋아요 0 | URL
어울리는 말 아닌 것은 아니예요. 고맙습니다. ^^

2008-07-18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8-07-18 13:14   좋아요 0 | URL
오옷 이게 누구야... ***님, 정말 반가워요.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신문을 보시길래 제가 이직했다는 기사(?)까지 보셨는지 ^^;;
앞으로 소식 좀 자주자주 전해주세요.

무스탕 2008-07-1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낯선 긴장으로 시작하셨겠어요.
완전 갈아타신게 아닌 옆탕으로 발을 바꿔 담그셨으니 조금은 맘이 놓이시려나요?
더운여름에 건강 잘 살피시면서 힘내세요~!! :)

딸기 2008-07-18 13:15   좋아요 0 | URL
네, 분위기 괜찮아서 마음은 오히려 편해요. ^^
 
도도의 노래 1 - 도도가 들려주는 자연의 생존과 종말 이야기 김영사 모던&클래식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 푸른숲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섬에는 거인, 난쟁이, 잡종 예술가, 그리고 온갖 종류의 비순응주의자들이 존재한다. 마다가스카르섬에는 몸길이가 겨우 1인치 밖에 안 되는 지상에서 가장 작은 카멜레온종(이것은 육상 척추동물 중 가장 작은 동물이다)이 살고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지금은 멸종한 피그미하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코모도 섬에는 거대한 도마뱀이 살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바다를 헤엄치는 이구아나가 다른 파충류의 신체적 한계를 비웃으며 바다 밑에서 해초를 뜯어먹으며 살아간다. 뉴기니의 중앙 고원지대에서는 리본꼬리 풍조를 볼 수 있다.
인도양의 작은 산호섬 알다브라에는 갈라파고스 거북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용을 가진 큰거북이 살고 있다. 세인트헬레나섬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이언트집게벌레종-세상에서 가장 크고 또 아마도 가장 혐오스러운 벌레-이 살고 있었다. 자바섬에는 피그미코뿔소의 일종인 자바코뿔소가 살고 있으며, 하와이에는 다른 곳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기이한 새인 꿀빨이새가 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잘 알다시피 캥거루와 유대류가 살고 있으며 태즈메이니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서도 희귀한 유대류인 주머니곰, 베통, 숲왈라비, 주머니고양이 등이 살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산타카탈리나 섬에는 방울 소리를 내지 않는 방울뱀이 살고 있다. 뉴질랜드에는 큰도마뱀 투아트라가 살고 있다. 모리셔스 섬에는 유럽인들이 침략해오기 전가지만 해도 도도가 살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멀리 모리셔스 섬에 살다간 도도라는 새는, 인류에게 “아, 내가 이 두 손으로 다른 종(種)을 지구상에서 멸종시켰구나”라는 인식을 최초로 갖게 해준 새로 유명하다. 물론 그 전에도 그 뒤로도 인간이라는 존재로 인해 멸종된 종들은 많았겠지만.
인간 덕분에 살아가는 숱한 종들도 있으니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플러스 & 마이너스 ‘똔똔’이 되면 종 다양성 문제를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텐데,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요사이 인간들은 멸종을 너무 많이 초래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구 전체로 보면 종의 숫자가 점점 마이너스 되어간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멸종시켜온 종의 리스트는 점점 길어만 간다. 멸종을 쉬운 말로 풀면, ‘다 죽었다’가 될 테니 결국 인간이 멸종시킨 종이란 것은 ‘인간이 하나도 안 남기고 다 죽여버린 혹은 다 죽어버리게 만든(그거나 그거나) 동물들 목록’이 되는 셈이다.
몇 해 전 번역자이신 이충호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이 책 두 권을 선물로 받았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마음에 담아만 둔 채 책표지조차 넘겨보지 못한 채로 서너 해가 지난 듯싶다. 그러다가 빚 청산 하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는데, 이건 완전히 내 취향의 책이었다. 나온 지 시간이 좀 지난 터라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표지, ‘도도가 들려주는 자연과 생존의 종말 이야기’라는 판에 박힌 문구. 하지만 책은 폭이 넓으면서도 깊이가 있고 생생했다.



인류가 새로운 장소에 발을 디딜 때마다 사라져간 동물들의 흔적을 찾는 작업이라면, 모리셔스와 도도라는 새의 사라져간 존재는 극적이면서도 또 너무나 상징적이어서 식상하게까지 느껴질 수도 있겠다. ‘자연 생태 저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는 타이틀로 붙잡아놓은 도도를 잠시 제쳐둔 채,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게 들리는 ‘섬 생물지리학’이라는 생물학의 한 분야를 설명하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윈의 갈라파고스, 도도가 있었던 모리셔스, 코끼리새처럼 커다란 새들이 살았다는 마다가스카르 같은 섬들. 생물학자들에게 섬은 진화와 종의 신비를 보여주는 자연의 ‘고립된 실험실’이다. 그런 섬들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섬 생물지리학이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구나 싶지만, 섬 생물지리학은 우리에게 ‘멸종의 노래’를 들려주는 학문이기 때문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1천 년 전 그 코끼리새는 이 세상에서 오직 마다가스카르 섬에만 존재하였다, 이제는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섬) 생물지리학이 하는 일이다.”
생물지리학, 특히 섬 생물지리학은 멸종의 위기들을 찾아다니는 작업이고, 멸종을 목도하고 기록하는 작업인 셈이다. 어쩌면 지구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큰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또 가장 큰 슬픔을 안겨주는 직업 중의 하나가 ‘섬 생물지리학자’라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저술가이면서 또한 스스로 섬 생물지리학자가 되어 마다가스카르와 아마존, 말레이 군도, 뉴기니, 코모도, 태즈메이니아 등지를 찾아다니며 개발의 소음에 가려진 멸종의 노래를 전해준다. 코모도 드래곤과의 조우, 서양 학자들과 친하게 지내다 살해당한 원주민 청년의 비극적인 스토리, 희귀종 원숭이를 보기 위한 여성 생물지리학자의 집념 등을 소개한다.

세상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 종들의 이야기를 담은 ‘생태 여행기’ 정도로만 읽어도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읽고 넘기기엔 2권짜리 책은 적지 않은 분량이다. 알짜배기 책들은 꼭꼭 씹어서 단물을 다 빨아내야만 수지가 남는다. 더군다나 이 책은 ‘단물’ 정도가 아니라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책이다.
이 책은 멸종이라는 것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종들에게 들이닥치는지에 대한 현장보고서다. 저자는 좀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다종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멸종의 필요충분조건들을 분석해나간다. 그러니 인간은 멸종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광범위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인류가 종 다양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멸종의 서사시, ‘도도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으로도 족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것은 섬 생물지리학을 통해 인류에게 멸종의 경고장을 던진 학자들의 논쟁이다. 개미학자이자 국내에서는 ‘통섭’을 주창한 사람으로만 잘못(?) 알려진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의 ‘진짜 공적’이 나온다. 책의 후반부에는, 쟁쟁한 이름들과 함께 ‘멸종을 막기 위한 생태계의 최소 면적’에 대한 다층적인 논쟁이 소개된다.
자연에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실용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이른바 ‘생물보호구역’을 최소한 얼마 이상 남겨둬야 하는가에 대한, 인간들의 인색한 자연 접근법에 대한 논쟁이 되는 것이고, 넓게 보면 자연의 재생력을 보전하기 위한 인간의 최소한의 의무로서 멸종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질문이 되기도 하다. 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생물학자들의 여러 연구들을 소개함으로써 인색한 인류가 다른 생물종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개략적으로나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

어쨌든 도도는 멸종했다. 인간들은 아프리카 연안 작은 섬에 살고 있던 이 덩치 큰 새들이 더 이상 지구상에서 우리와 함께 존재하지 못하게끔 모두 죽여버렸다. 몇 해 전에는 열대의 불쌍한 개구리 한 종류가 지구상에서 최초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멸종된 것이 확실한’ 종으로 기록됐다. 흥미롭게도, 그리고 비참하게도 저자의 순례기에 등장하는 한 곳은 태즈메이니아다. 거만한 정복자들이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 그러니까 ‘인간 한 종’을 멸종시켰던 곳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종들 뿐 아니라 문화의 종들, 언어의 종들을 제거함으로써 스스로에게까지 절멸의 칼날을 들이대왔던 것이다.
멸종의 순례기 끝에 저자는 도도의 고장에서 몇몇 사람들의 노력 덕에 힘겹게 멸종을 피할 수 있었던 ‘모리셔스황조롱이’의 사례를 전한다. 비록 미약하나마 희망은 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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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전 지구적 통합의 역사
나얀 찬다 지음, 유인선 옮김 / 모티브북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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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해 주고픈 책이다. 이렇게 열심히 썼다는 자체만으로. 책 겉모양도 훌륭하고, 이 정도면 ‘고전’ 급은 아니어도 이것저것 묶어놓은(‘짜깁기’라고 하면 좀 비하하는 감이 있으니까 이런 표현으로 바꾼다) 책으로는 꽤 괜찮다.
목차를 보면 알수 있겠지만, 제목 그대로 ‘세계화, 전지구적 통합의 역사’를 한눈에 훑어보려는 사람에겐 훌륭한 1차 교과서가 될 수 있겠다. 아니, ‘2차 도서’들을 안 읽고 그냥 이 한권으로 세계화의 기나긴 역사를 정리하고 만족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더욱 더 요긴할 것 같다(그러고 보니 요즘엔 세계화를 근대 이전으로 소급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유행인 것 같다).


1차, 2차 도서 운운한 것은 이 책이 말 그대로 ‘정리요약본’이기 때문이다. 책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DNA의 이주경로를 살피고(브라이언 사이키스의 <이브의 일곱 딸들>과 루이 카발리-스포르차의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 중세 유라시아의 무역상들의 행로와 부(富)의 이동을 개괄한 뒤(안드레 군더 프랑크 <리오리엔트>) ‘인도의 콜센터’로 대표되는 세계화의 현장(토머스 프리드먼 <세계는 평평하다>)을 짚어간다.
중간 중간 세균 이야기(윌리엄 맥닐 <전염병의 세계사>와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도 나오고 무기 이야기도 나오고, 사회문화적 측면도 간간이 짚어준다. 읽기 지루하지도 않고 분량도 ‘적당히 방대하면서 적당히 요약본인’ 수준이니까 참 좋다.


그런데 굳이 저렇게 내가 괄호 열고 내가 읽은 책들 이름을 넣어가며 잘난 척을 한 것은, 저 괄호 속의 책을 읽은 사람들에겐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기 언급한 책들을 읽고나서는, 그 뒤에 읽은 책들 상당수가 재미 없어져버렸다. 돌고 도는 참고문헌의 목록이 이젠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잘 정리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내겐 별로 뼈다귀를 건질 게 없는 책이 돼버렸다. 내용이 참신하면 뼈다귀를 건지고 사례가 방대하면 살붙이들을 건지는데, 이 책은 정리요약본이니 반찬거리도 많이 건지진 못했다. 책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나는 그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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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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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건의 글은 항상 울림이 있다. 신간 좋아하는 내가 이미 돌아가신 세이건 박사님의 책을 뒤늦게 골라가며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그런 울림 때문이다.

UFO를 신봉하는 사람들, 외계인들에게 납치됐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동향 같은 것은 너무나 미국적인 현상들이어서 크게 다가오지 않았으나(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착각일 뿐이라고 저자도 지적하지만), 꼭 UFO 얘기가 아니더라도 ‘비과학적인 사람들’은 너무너무 많다. 개신교 골수 신자들, 점 보러 다니는 사람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건 그렇다 치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과학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해도 해도 정말 너무 비과학적인 얘기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이다. 과학 지식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과학적 접근’, 그러니까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돌이켜보며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고서 세상을 살아야 할 필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당장 지금 문제가 되는 광우병이니 조류독감이니 유전자변형 농산물이니 하는 것들에서부터 어린아이 어떻게 과외 시키고 두뇌개발을 해서 머리 속에다가 지식을 쑤셔 박고 하는 것들까지, 한발 물러서서 ‘과학적으로’ 생각을 좀 해봐야 하는 일들은 산더미처럼 많다.

세이건 박사님이 얘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후지따 쇼오조오가 ‘철학하는 법’에서 얘기했던 것들하고도 일맥상통한다. 곱씹어보고 뒤집어보고 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얘기다.

“과학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과학 스스로는 인간 행위의 방향들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 대안적인 행위 방향들에게서 비롯될 가능성 있는 결과들은 설명할 수 있다. 과학은 아무리 이단적이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라면 무제한적으로 개방적일 것과 가장 엄격한 태도로 회의적으로 검토할 것, 다시 말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성의 지혜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 이런 종류의 사고는 변화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본질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인간은 절대적인 확실성을 바란다. 인간은 절대적 확실성을 동경한다. 그러나 과학의 위대한 계명 중의 하나는 ‘권위에 의해 지탱되는 논변을 신뢰하지 마라’이다.”

그래서 과학이 없는 세상, 무시당하는 세상, 혹은 거짓 과학이 판치는 세상에는 광기가 돈다.

“모든 시대는 그 나름의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 시대가 갑자기 시작한 거대한 계획이나 소규모 계획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공상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이득을 보려는 욕심에 의해서 또는 자극이 필요해서 아니면 단순히 모방력에 의해 박차가 가해진다. 이러한 것들에 빠지면 그 시대는 약간 광기를 보인다. 그러한 광기는 정치적 원인이나 종교적 원인 또는 양자가 결합된 원인에 의해 선동된다.”

생각은 자꾸자꾸 뻗어나간다. 우리 시대의 광기는 신문만 펼치면, 창밖만 열면 보인다. 이명박, 기독교, 이제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

“걱정되는 것은 그런 사기꾼이 매력적이고 위엄있고 애국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지도자를 지지하고 믿고 따를 기회를 향해 달려들 것이다. 대부분의 기자들, 편집자들, 제작자들은 진정한 회의적인 정밀조사를 내던져버릴 것이다. 그런 지도자는 기도나 마법사의 수정이나 눈물을 팔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전쟁이나 희생양 또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는 믿음의 다발을 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광우병 정치인들을 생각하며 울고 싶어질 지경이다.

“과학의 가치는 숨기거나 감추지 않는 데 있다. 과학은 특별히 유리한 조건이나 특권적 지위를 고집하지 않는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모두 판에 박히지 않은 의견과 활기찬 논쟁을 장려한다. 과학은 겉으로만 지식을 추구하는 척하는 이들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길이다. 과학은 신비주의에 대항하고 미신에 대항하며, 무관한 영역에 잘못 적용된 종교에 대항하는 보루이다.”

그래서 어느 시대에건 과학은 필요하다. 과학자도 아니고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도 ‘과학적인 태도’는 필요하다. 생각, 또 생각.

“보통 보수주의적 혹은 근본주의적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반증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들에겐 과학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종교지도자와의 신학적 토론에서, 나는 그들에게 만일 신앙의 핵심적인 교리가 과학에 의해 반증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곤 했다. 이 질문을 달라이 라마에게 던졌을 때, 그는 보수적이거나 근본주의적인 종교 지도자라면 하지 못했을 답변을 해주었다. 즉 만일 그렇게 된다면, 티베트의 불교는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정말로 핵심적인 교리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 때도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과학이 무엇을 더 알아낼 것인지 걱정하는 또다른 교리와 이해관계 그리고 관심이 있다. 어떤 이들은 아마도 모르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제안한다. 만일 남성과 여성이 다른 유전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구실로 사용되지 않겠는가? 만일 폭력 성향에 유전학적인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한 민족 집단이 다른 집단을 억압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될 수 있지 않은가? 혹은 예방적 차원에서 미리 제거해버리는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우리가 진리에 최고로 가까운 근사치를 알게 되고 어떤 이익집단이나 믿음 체계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날카롭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거짓말 혹은 숨겨진 사실이 보다 고차원의 사회적 목적에 기여할 것인지 어떨지를 미리 알 정도로 현명하지 않다. 특히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과학에 대한 열정, 남아 있는 수렵채집가들에게서 얻은 교훈은 바로 다음과 같다. 과학적 성향은 어느 시대, 어느 곳, 어느 문화에서든 늘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 수단이고, 천부적 소질이다.”

“시민권자로서의 본분은 위협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민자들의 시민권 선서와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암송하는 맹세에 ‘나는 지도자들이 내게 말하는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을 약속합니다’ 같은 것이 포함됐으면 한다. ‘나는 나의 비판 능력을 사용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나의 사고의 독립성을 개발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교육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래서 세이건 박사님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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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과학적 나라에 사는 슬픔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06-14 09:22 
    *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2008년 6월 13일자 딸기님의 리뷰에서 발췌  “과학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과학 스스로는 인간 행위의 방향들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 대안적인 행위 방향들에게서 비롯될 가능성 있는 결과들은 설명할 수 있다. 과학은 아무리 이단적이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라면 무제한적으로 개방적일 것과 가장 엄격한 태도로 회의적으로 검토할 것, 다시 말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성의 지혜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할 것을
  2. 과학에 대한 변호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12-03 16:20 
    * 과학에 대한 변호  미국 쇠고기 수입에 허가 조치에 따라 촛불 시위가 한창 있을 당시 저는 촛불 시위를 정치적 항변으로 보았습니다. 저의 의견은 당시에 백안시당했으나 알라딘 서평을 볼 때 현재는 과학적 논쟁보다는 정치적 논쟁으로 인식이 전환되었다고 봅니다. (저의 개인적인 인식에 의하면) 보다 논쟁의 본질에 접근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는 것도 쉬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서평  
 
 
마립간 2008-06-1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심스러운 것은,... 보수주의(?미국소를 현재 조건을 수입하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촛불 집회를 사람들을 보는 관점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며 딸기님의 리뷰에 동감할 수 있다는 것이죠.

딸기 2008-06-14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잖아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문제는 광우병 자체보다도 저 정부의 행태인 거겠죠.

dd 2009-10-2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쎄요. 학계에서 광우병에 대한 결론은 잠정적 소강상태 정도이지.. 아직까지 확정된 게 없습니다. 광우병이 극단적으로 위험하다는 주장도 맞진 않지만, 99.9% 안전하다느니 어쩌구하는 건 바보같은 소리입니다..
 
다른 세상의 아이들 - 세계화 시대의 야만, 어린이 노동
제레미 시브룩 지음, 김윤창 옮김 / 산눈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정말로 ‘다른’ 세상의 아이들인가. 눈 먼 우리에겐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싸구려 흰색 블라우스, 지금 내가 신고 있는 (역시나 싸구려인) 검정 샌들, 학교 다니며 웃고 떠드느라 정신 없는 내 딸이 입고 다니는 티셔츠와 바지 따위가 ‘저 아이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아니, 사실은 보지 않아도 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피땀을 통해 내 곁에까지 와 있다는 것을. 나 뿐만 아니고 누구든, 저 아이들을 ‘다른 세상의 아이들’이라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우리 세상의 아이들이고, 나와 내 아이의 검은 그림자다.

아동 노동에 대해서는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다. 머리로 안다 해도 아는 것이 아니고, 그들은 여전히 내게 ‘다른 세상’의 아이들이니. 아프리카 가나에서 어부들의 노예로 팔려갔던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 아이들과 부모들의 ‘반갑지 않은 해후’를 보며 마음이 씁쓸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순간 지구 반대편 내 딸이 국제전화로 내게 장난감을 사다달라고 주문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나는 그들의 얼굴을 잊지 말자 하면서도 자꾸만 잊는다.

어쨌든 세상엔 그런 아이들이 있다. 노동하며 사는 아이들. 작은 몸 작은 손으로 목숨 걸고 일을 해 간신히 살아가는, 그리하여 제 몸을 팔아 제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나 같이 멀리 떨어져있는 곳의 ‘부유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설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먹고 살아야 하는 그 아이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세계화와 빈곤 문제에 천착해온 저널리스트다. 그의 시선은 다만 노동으로 얼룩진 방글라데시 아이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가 포착한 지점은 산업화 시기 영국의 아동 노동과 21세기 방글라데시의 아동 노동이 너무나도 닮았다는 것.

시기와 장소를 뛰어넘는 그 유사성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서양 선진국들은 아이들의 노동을 착취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그 힘으로 남의 땅을 점령해 부를 축적했다. 그들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이제와 그들의 노선을 따르려고 한다. 가난한 나라들은 여전히 가장 손쉬운 착취 대상인 아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려 하지만, 서양 선진국을 따라잡긴 힘들다. 이 나라들엔 ‘식민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들은 선진국은 못 따라잡으면서 세계화가 만들어낸 착취의 악순환에 빠져 반영구적으로 아이들 피땀을 빼먹는 꼴이 되고 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책은 그렇게 착취당하는 아이들을 다루되, 그 아이들을 일면적으로 불쌍히 여기거나 아동 노동을 단칼에 매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많은 고민거리를 던진다. “아동노동을 금지하자”는 말만으로는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군다나 아동노동을 별스런 것으로 보는 행위 자체가 ‘근대 서구적 가치관의 산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일리가 있다. 아이들은 언제나 부모를 도왔고,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 ‘아동 노동’은 삶의 당연한 일면이었을 뿐이다. 노동과 노동 아닌 것의 명확한 구분, 어린이와 어른의 명확한 구분은 아주 최근에야 자리를 잡은 서구적 가치관의 산물이 분명하다. 이를 강조해 지적하는 의도는 분명하다. 아동노동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그 어린이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접근은 현실적으로 일을 해 먹고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더 깊은 나락으로 내몰 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저자는 아이들이 일을 통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서구식 학교 교육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아이들의 노동이 그저 착취에 불과한 노예노동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한 바탕이 되는 노동인가를 가르는 것은 그 내용과 질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문제는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그 가족들)의 삶과도 연결돼 있다. 게다가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아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고장난 물건을 고치고 또 고쳐 새것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들이 겹쳐 있으니, 어렵지만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

안타까운 것은 이 좋은 생각들이 방글라데시 같이 무능하고 부패한 빈국 정부나 착취를 본업 삼는 다국적기업들에게까지 연결되도록 하기가 여전히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려면, 우선은 알아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항상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어째서 우리는 그들을 ‘다른 세상의 아이들’로 보는가.

“필시 우리는 예전의 우리 아이들이 알았던 그 고통에 관한 모든 기억을 우리의 집단적인 경험에서 깨끗이 지워버렸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동일한 경험으로부터 그 고통을 상기하지 않으려고 말이다. 이는 우리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그 아픔을 다카의 어린 소녀들, 인도의 소몰이들, 인도네시아의 어린 공장노동자들의 여린 어깨 위로 옮겨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공모된 건망증이 그들과 우리의 유사성을 없애버린다. 아울러 그들이 가진 피부색, 다른 기후, 별개의 종교, 이질적인 언어가 우리를 이러한 망각의 길로 세차게 이끈다.”(135쪽)

18~19세기 영국으로 가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한강의 기적’의 바탕이 됐던 어린 여공들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된지 얼마나 됐다고, 우리는 ‘그들의 여린 어깨’를 잊어버리고 다른 세상의 일로 받아들이며 먹고 산다. 못 살던 기억을 잊지 않는 것, 그들의 여린 어깨를 기억하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아동노동의 산물들을 소비하는 나, 나의 문제다.

(번역은 매우 껄끄럽다. 번역기를 돌린 것보다야 물론 낫지만 수동태 문장이 너댓개씩 이어지는 것은 읽기 안 좋다.)


▷만약 제3세계 빈민층, 특히 아이들의 노동 여건이 극도로 가혹한 노예제를 닮아 있다면, 이는 필시 영국인들이 지난 200년 동안 마음대로 처분했던 방대한 배후 식민지를 갖지 못한 채 외래 모델들을 따르려는 노력의 직접적인 결과다.


▷선언과 결의, 협정들 자체는 어린이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불법화하는 서구 국가들의 입법 가결이나 마찬가지로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최악의 어린이 노동 양상을 근절하기 위한 최근의 ILO 협정은 일할 수밖에 없는 전세계 수백만 어린이들을 더욱 사려깊고 세심하게 고려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다.

어린이 노동과 어린이들의 일을 구별하려는 시도들이 이뤄져 왔다. 이는 오로지 가장 위험하고 착취적인 노동만을 금지하겠다는 것이자, 남반구의 많은 가정들이 자녀들의 수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1일 노동시간이 제한되고, 적당한 시간이 교육과 놀이에 할애되고, 오늘날의 일반적인 상식이 통용되기만 한다면, 어린이들의 노동 또한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이제는 필히 어린이들 자신에게, 그들이 일을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족에게 주는 도움을 자랑스럽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많은 아이들이 전적으로 학업에 몸담고 싶어 하지만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바는 착취와 폭력,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는 것, 어른들처럼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 조직을 이룰 수 있도록 허용되는 것, 그리고 가족과 사회에서 자신들의 기여를 평가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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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8-06-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끄덕끄덕............
나같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고 외면하며 살고있는 문제들을 찾아내고 들춰내고 빛을 비추는 사람들...
이 책의 저자도 그렇고 딸기님도 그렇고...진정 훌륭합니다.

어린이가 가장 착취하기 쉬운 대상이라는거...정말 맞아요. 바로 제가 요즘 울 애들 노동력을 기가막히게 착취하며 살고 있죠. 100원 200원이면 쓰레기 버리기서부터 방청소 걸레질...안되는게 없어요. ㅡ,.ㅡ

딸기 2008-06-16 14:42   좋아요 0 | URL
저는 그래서 그런거 안 시키려구요.
당연히 애가 해야할 일인데 돈을 왜 주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