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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 보고서
프랑크 비베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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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커다란 회사들은 '윤리적으로 볼 때' 어디가 나쁘고 어디가 훌륭한가. 그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밝힌 내용과 외부(주로 평가기관이나 비정부기구들)로부터 받은 평가를 바탕으로 소개해놨다. 기업들 스스로 밝힌 내용을 참고로 하되 정보공개의 '투명성'에 방점을 찍고 있고, 기업의 개선 의지에도 높은 배점을 부여했다.

기업의 행위를 '윤리적으로' 따지는 게 간단치는 않다. 탄소발자국이나 노동조건과 같이 어느 정도 글로벌하게 합의가 된 기준도 있지만 정보보호 측면(일례로 책에서는 페이스북의 경우 평점을 보류했다)이나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공적 경영(수익성)'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는 간략 보고서 형식이지만 충분히 재미있다. 아무래도 독일 기자가 쓴 것이다보니 독일이나 스위스 등 '독일어권' 기업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거기엔 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 그들의 나름 앞서가는 윤리기준을 엿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어권 기업이라 해도 대부분 엄청나게 유명한 기업들이다. 비록 외부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고는 해도 각 기업들이 스스로 윤리적 기준을 높이며 취해온 구체적인 조치들이 상세히 언급돼 있다는 게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이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유일하게 삼성전자가 들어가 있다. 삼성전자의 평점은 별 세 개, '평균'이다. 삼성의 기준이 그래도 한국에서는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판단을 유보하게 만드는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단서가 달려 있는 데에서 보이듯 아직 국제적인 민간기구의 감시가 부족하고 그래서 '덜 걸려든' 측면도 있다. 


저자가 누차 강조하듯이 투명하게 밝히고 적극 대응해 개혁하는 회사들은 아무래도 지적을 더욱 많이 받기 쉽고, 감추고 가리는 기업들은 문제제기를 덜 받는다는 딜레마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저자가 2014년에 책을 썼다면 삼성의 노동조건 문제, 산재 문제 등을 감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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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 프리즘 총서 11
로절린드 C. 모리스 엮음, 태혜숙 옮김 / 그린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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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박의 글은 두어번 본적 있지만 늘 어렵다. 스피박 뿐 아니라 라나지트 구하도 마찬가지다. 말이 비비 꼬여 있다. 하지만 끈질기고 엄밀하고 재미있다. 유럽철학 공부하는 사람들이 비비배배 꼬인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얻는 지적 쾌감과 반짝이는 통찰력에 대한 감탄 등등을 나는 인도 서발턴학자들의 글에서 얻는 것같기도 하다. 



이 책은 스피박의 유명한 에세이(바로 이 책의 제목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 나온지 25년이 지나서, 그 에세이 이후의 서발턴 논의를 보여줄만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애초의 에세이에 대한 차테르지 등의 평가도 들어있고, 스피박 스스로의 후일담같은 글도 묶여있다. 


무엇보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랄같은 문장의 군더더기들은 지워가며 읽으면 된다) 애초의 에세이를 두 번에 걸쳐 훑게 된다. 책 앞머리에는 스피박 스스로 수정하고 덧붙인 버전이, 맨 뒤에는 1983년의 에세이 ‘원본’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이 유명하고도 어려운 에세이를 읽은 내가 대견스럽기는 하지만 사실 재미있었던 것은 앞뒤의 스피박 에세이 사이에 끼어있는 글들이었다. 예를 들면 라제스와리 순데르 라잔이라는 사람은 서발턴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서발턴 즉 하위주체란 죽음으로 말할 때조차 제대로 읽히거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므로), 압둘 잔모하메드라는 이는 프레더릭 더글라스의 글을 인용하며 ‘노예제’를 서발턴 담론 안으로 끌어들인다(그러고 보면 <노예 12년>의 노섭은 참으로 특별한 존재다).


미셸 바렛의 ‘식민지 군대’에 관한 글은 지금껏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인 동시에, 식민통치를 겪었고 징병을 당했던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하지만 감춰진) 문제다. 리고베르타 멘추와 에스테르(사파티스타 여성 전사)를 다룬 진 프랑코의 글 역시 흥미진진. 그러고 보면 서발턴이란 난해한 말로 표현되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참으로 얼마나 많은지. 


정리해둬야할 내용들이지만 정리하기 힘들다는 핑계로 일단 책장은 덮고, 스피박이 하고 있다는 교육활동에 대해서나 좀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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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윤리 -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한 헌사 프런티어21 18
알랭 바디우 지음, 이은정 옮김 / 길(도서출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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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 이름만 알고 누군지는 잘 모르다가 지난달 <투쟁을 위한 철학>이 은근 재미있어서 내친 김에 손을 댔다. 바디우가 '우리 자랑스러운 프랑스의 철학자들'에게 보내는 헌사다. 책의 원제는 쁘띠 판테온 어쩌구 하는 건데, 국내판 제목은 거기 비하면 몹시 거창하다. 오히려 부제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한 헌사'가 딱 맞는다.


무슨 책인지 잘 살펴보지도 않은 채 저자와 책 제목만 보고 가방에 넣은 뒤 지하철에서 펼쳤는데, 이 책이 '지하철에서 읽기에 적당한 책'에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크 라캉, 사르틀, 알튀세르, 들뢰즈, 데리다... 흐흐흐. 어차피 이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도 모르는 판에 이들에 대해 품평한 책을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어서 살짝 망설이긴 했다. 


네임드로핑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프랑스 철학자들 이름을 입에 달고다녀서 싸잡아 싫어했는데, 책은 뜻밖에도 재미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부분을 드문드문 옮겨본다. 순서는 내 맘대로 바꿨다.


"새로운 세대가 성취한 것, 그것은 자본의 회의주의, 즉 그것의 니힐리즘이다. 여기에는 사물들이 없다, 여기에는 인간이 없다. 여기에는 국경이 없다. 여기에는 앎이 없다, 여기에는 믿음이 없다. 여기에는 살아야 할/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

리오타르가 가혹하게 맞닥뜨려야 했던 것, 관통해야 했던 것, 사유해야 했던 것은 이 살기/죽기의 부재다. 그리고 그것에 매진하면서도 사랑만은 에외로 남겨둔다. "그 시절 동안 사랑하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단 한순간도,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으로 향해갈 때면, 내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언제나 밤이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이 밤은 이제부터 우리의 거점이다. 그가 오롯이 15년 동안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것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이름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밤의, 어떤 특정한 밤의 정언명령. 예를 들면 알제리에 대한 1989년 텍스트의 서문에 등장하는 이 갑작스러운 진술들. 그리고 밤의 명령에 좀더 가까운, "자본주의의 지배를 대체할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원칙은 단녕되어야 한다." 정언명령의 기표 '되어야 한다'는 표현이 텍스트에서 강조되고 있다.


리오타르의 사유는 이 '해야 한다'에 대한 길고도 고통스럽고 복잡한 사색이며, 그가 사망한 후에는 우리에게 그 일이 맡겨졌다. 퇴락하지 않으면서 밤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 없이, 다시 말해 객관적인 역사적 주체 없이 그리고 어쩌면 그가 쓴 것처럼 "할당할 수 있는 목적들 없이"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이제 고집스럽게 충성해야 할 장소는 어디인가? 밤 속에서 우리의 일탈이 위치한 곳은 어디인가?


"사회 안에는 측량할 수 없는 다양한 장르의 담론들이 작동 중이며 어떤 한 가지도 나머지 모든 것들을 옮겨 적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들 가운데 하나, 자본 또는 관료주의는 자신의 규칙들을 다른 것들에 부과한다. 유일하게 전면적인 이러한 억압은 희생자들이 이에 대항해 증언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이러한 담론의 철학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이것을 파괴해야만 한다."



바디우는 선배이고 동료이고 때론 논쟁의 적이었던 철학자들의 저서와 생각에 스스로의 평을 붙여 요약하고, 그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헌사를 바친다. 이런 철학자들이 백가쟁명한 '철학의 시대'가 존재했다는 것, 그 자체로 얼마나 대단한가. 

책에는 사르트르와 미셸 푸코가 나란히 1971년 구트도르(파리 18구의 무슬림 이주민 거주지역)에서 벌어진 이주민 차별 시위에 나섰을 때의 사진이 실려 있다. 위 사진에서 전단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사르트르, 그 왼쪽이 푸코라고. 사르트르가 거리에 나서서 전단지를 돌리던 시대.


바디우는 '우리 프랑스의 철학자들'을 자랑스러워할만 하다. 이 헌사들은 지나간 '철학의 시대'에 대한 바디우의 추억담이면서, 그런 시대를 흘려보내고 반성 없는 막가파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건네는 편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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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 단세포적으로 마구마구 번식한다. 

이 책을 챙겨왔다. 

 일전에 로쟈님 소개글 보고서 맘속으로 찜해뒀던 책. 

그리고 

 언제 볼까 싶지만, 그래도 일단은 쟁여둠.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 내가 꿈꾸는 것.

 살까말까 예전부터 망설였던 책인데 마침 쌓여있네!

 쟁여둠.

  원제가 THE BOTTOM BILLION 이다. 나의 관심사 중의 하나.

  요새 이런 책이 증말 많이 나오네? 너나없이 워킹푸어 혹은 노잡푸어인 현실...

  원제가 Private Power, Public Law 인데 한국어판은 제목에서 점수를 까먹고 들어가네.

  

  지젝... 아마 안 읽지 싶다 -_-

 부제가 '아름다운 기초과학 산책'인데, 나중에 기분전환삼아 들춰봐야지. 

 현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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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의 책들은 번식을 한다!
오늘의 매개(숙주)는 바로 나다. 내가 책 번식 바이러스를 데리고다니며 이 녀석들을 날라왔다.

특히 이번엔, 간만에 맘에 드는 소설들을 건져왔다(언제 읽을지는 알수 없지만;;) 
야근을 하다가 북리뷰 맡고있는 후배를 만나, 문화부 테이블에 가서 주워왔다.
앙꼬는 다 가져가고 겉절이만 남았다 해서 별 기대 없이 훑어봤는데, 내가 보기엔 넘 훌륭한 것들이 거기 있었다.  

그 중 첫번째, 

  

내 생에 꼽을 재미난 소설 중의 하나인,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1001개의 거짓말>의 작가
라픽 샤미의 책이다.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네 -_-;; 

이런 걸 다들 몰라서 안 가져갔다니... 내겐 너무 다행스런 일이다.

 남아공 소설은 존 쿳시의 '포'를 본 것이 전부다. 기대! 

 모리스 블랑쇼... 잘 모르지만, 폼 좀 잡은 책인 듯하다. 이것도 상당히 기대. 

  

아지즈 네신의 책들. 앞의 두 권은 오늘, 맨 오른쪽 것은 일전에 챙겨놓은 것들이다.
정작 읽지는 못하고 있다. 계속 나오는 모양인데... 그저 관심만 갖고 있을 뿐. 조만간 처치하리라. 

 

"전에는 몰랐던 시칠리아의 심장소리를 여기서 듣게 될 것이다"
책띠에 이렇게 써있다. 시칠리아! 이것도 기대주로 분류. 

 

체코 작가의 소설이다.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제목 꼬라지로 봤을 때 번역의 수준은 의심스러움... 

 미국 작가의 청소년 소설. 일단 챙겨둠. 

 그리고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이 책을 번역한 한글본 <9월의 빛>. 

실은 얼마 전에 스웨덴 대사관에서 아래의 책도 선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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