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사회주의의 역사 - 갈무리신서 5
이반 버첼 / 갈무리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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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유럽 사회주의의 역사는 '개량주의의 역사'다"
영국의 좌파 지식인인 저자는 1944년에서 1985년까지 서유럽에서 부침을 겪었던 사회민주주의를 통틀어 개량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성을 개량이라는 당근으로 회유함으로써 자본주의와 지배계급을 위기 때마다 살려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전후 경제가 장기불황에 접어들면서 개량조차 수행할 수 없게 되자 개량주의는 설득력을 잃었으나, 대체할 만한 혁명적 좌파정당이 없다고 개탄하고 있다.
시시콜콜하게 서구 각국의 개량주의 사례를 모아놨는데 거시적인 분석이 없다.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사민당의 경제적 기반과 부침의 배경을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개량주의는 한계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책이 쓰여진 시기 자체가 80년대 중반인 탓에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의 이론틀을 요구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겠지만, 이데올로기만으로 정치세력을 평가하는 모양이 관념적 좌파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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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기둥 1
송대방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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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서양 정신사 전반에 대해 해박하고 독창적인 시야를 갖고 있는 저자의 지성이 돋보인다.
파르미지아노의 '긴 목의 성모'라는 그림을 화두로 연금술의 세계관을 미스터리 기법으로 그렸다. 이탈리아의 한 미술사학도가 만나는 살인극과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를 이중구조로 결합시킨 치미란 구성은 작가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임을 보여준다.
유황(남성)과 수은(여성)의 결합으로 금(완전성), 즉 두 세계의 일치와 반대되는 것들의 합일을 얻을 수 있다는 연금술의 이상. 저자는 그 이상이야말로 르네상스인들이 진정 추구하던 것이었다고 말한다. 헤르메스신으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이성이 크리스트교와 결합돼 다양한 알레고리들을 만들어낸다. 그 우의를 풀어가는 것이 이 소설이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너무 '에코적'이라는 것. 탐정소설같은 시나리오에 해박한 역사적 지식을 버무린 '에코의 자식들' 중에서는 내용이 충실하고 재미있지만 물리고 물리는 구성에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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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이후 당대총서 7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강문구 옮김 / 당대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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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나 앨빈 토플러 류의 '자본주의 미래학' 서적을 읽다보면 어느새 갈증이 느껴진다. 이 책은 화려한 수사 속에서 빠져버린 진보에 대한 갈망, 진보적 미래전망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켜주는 책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89년 구 소련의 몰락으로 공식 판명된 사회주의의 몰락-후쿠야마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종언-은 바로 근대 세계를 지배해온 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것이다.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는 현상적으로는 갈등관계인 것처럼 비쳐졌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혁명 이후 계속된 '위험한 계급'들의 준동을 막아보려는 장치들이었다는 해석이 새롭다. 이들 사상의 패키지는 본질적으로 '국가발전'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유럽 68혁명은 이 자유주의 패키지의 허구성, 특히 구 좌파운동의 허구성을 낱낱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종말을 보여준 극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또한 20세기 전반을 장악한 미국 헤게모니의 균열과 자본주의의 경제주기가 장기적으로 하강국면을 맞은 상황에서 불거져나온 것이었다.

68년 지식인들의 눈에 포착된 미국 헤게모니의 균열은 이란의 호메이니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일으킨 도발로 굳어졌다. 저자가 이 두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호메이니는 얄타협정 이후 고착화된 미-소의 세계분할지배를 거부하는 것이었으며, 후세인의 도발은 북-남의 본격적인 무력대결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섣부른 낙관과 비관을 모두 거부하는 불확실성의 시대, 앞으로 약 반세기동안 벌어질 이 변화의 시기에 진보운동은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국가주의', '발전주의'와 절연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어떤 사회운동도 다른 사회운동의 우위에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며 다양하게 중첩되는 집단들이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집단적 해결책을 모색할 때라는 것.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려하는 이 시점에서 아직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진보세력의 변혁전략과는 다른 틀로 사고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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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리처드 파인만 시리즈 4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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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인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책입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했구요, 두 권으로 돼 있습니다. 원제는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입니다.
'파인만의 책'이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파인만이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은 인생의 에피소드들과 추억, 그가 저지른 온갖 장난을 구술 식으로 정리해놓은 겁니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이라고 하면 좀 무겁겠고, 에세이집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장르를 구분하기가 힘든 것은 이 파인만이라는 사람이 워낙 '별난'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파인만은 1918년 생입니다. 아주 오래된 사람이죠. 세상을 떠난지가 이미 12년이나 됐구요. MIT와 프린스턴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코넬대학과 캘텍에서 교수생활을 했죠. 브라질에서 잠시 강의를 하기도 했구요. 여러 방면으로 취미가 다양해서, 자기가 그린 그림들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발레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는군요.

어린 시절부터 머리가 아주 좋았던 모양입니다. 주변에 보면 라디오 따위를 분해해보고 가전제품들 뜯어고치고 복잡한 산수 계산도 아주 잘하는 애들이 있잖아요. 파인만은, 미국 영화에 나오는 그런 '전형적인 천재꼬마'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엔 그런 '과학적인 꼬마들'이 별로 없을까요. 우리 교육의 문제를 다시한번 느끼게 만드는군요) 책에서 파인만은 자기가 저지른 가지가지 장난,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조그만 이벤트들을 회고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주 재치있고 똑똑하구요, 재미있습니다. 특히 수학이야기, 물리 이야기는 제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영역이지만 참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어느 천재의 재미난 인생' 정도로 느껴지겠죠. 더우기 그 어마어마한 '노벨상'을 받은,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구요. 또 워낙 성격이 명랑했는지 어려움이나 고민, 불행 같은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오로지 재미난 회상만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파인만이 제아무리 잘난척하면서 재미난 얘기만 들려준다 해도 오로지 재미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데 있습니다. 이 위대한 물리학자의 경력에는 미국 명문대 교수경력, '파인만 다이어그램'이라는 물리학적 업적을 이룬 것, 세계 각국에서 한 강의와 연설, 취미생활 등 다양한 것들이 들어가겠지만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2차대전 때 파인만은 '애국심에 불타서' 그리고 '가만 있으면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할 것 같아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합니다. 하지만 뉴멕시코의 로스앨러모스라는 '인디언 땅'에서 원자폭탄을 만들며 보낸 시간들에 대해 파인만은 정말이지 시시콜콜한 얘기들만 늘어놓습니다. 그 때 미국 정부가 과학자들의 편지를 어떻게 검열했고, 그래서 나는 내 마누라랑 편지를 쓰면서 어떻게 그 틈새를 요리조리 빠져나갔고, 거기 있는 수많은 금고들을 여는 방법을 알아내서 관리들을 놀려줬고...

프로젝트를 주도한 오펜하이머가 종전 뒤 반핵운동가가 된 것과 비교해 파인만의 사고방식은 순진함을 넘어선 무책임함의 극치로만 보입니다. 일본에 떨어진 귀여운 리틀 보이가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데 대한 파인만의 별명은 딱 한 문장 나와 있습니다. "나는 선배로부터 '과학자는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배웠다".

위대한 반골로 알려진 파인만이 이 책에서 언급을 회피하는 이유를 알려면 파인만의 다른 책들, 혹은 로스앨러모스에 대한 언급들이 있는 다른 과학책들을 봐야 합니다. 오펜하이머가 어떻게 파인만을 꼬셨는지, 그리하야 저 반골이 어떻게 인디언 땅에 묶여있을 수 밖에 없었는지. 사정을 알고 나면 가슴이 아파오지만, 어쨌든 이 책에서 파인만은 그런 과거를 '묻어둔 채' 농담을 진행합니다. 다른 생각 말고 그냥 농담을 쭉 따라가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한 방법이 되겠지만, 숨겨진 행간을 보는 것은 그의 농담을 읽는 또다른 방법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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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체스판 -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과 유라시아
Z.브레진스키 지음, 김명섭 옮김 / 삼인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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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수 없는 오만함이 아니다. '유라시아 변두리 인민'의 입장에서 참아서는 안 되는 제국주의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 세계는 인권과 자유의 길로 발전해야 한다는 믿음,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은 평화공존이라는 사고방식에 칼을 꽂는 발상.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폴란드 태생인데 '공산주의가 싫어서' 미국으로 건너갔다더니.

역사의 진보에 대한 확신, 그리고 인권과 자유라는 것들은 근대 이래 서구에서 시작된, 그리고 서구가 제3세계에 이식시켜놓은 가치관이다. 이런 가치체계들은 그저 정치적인 수사이며 제국주의자들의 자기기만일 뿐이라고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것이 이 책이다. 만일 모든 국가의 정치엘리트들이, 특히 '역사적으로 유일무이한 세계제국'이라는 미국인들이 모두 브레진스키처럼 생각하고 있다면, 평화공존과 만인을 위한 복지의 확대라는 전지구적 이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브레진스키의 사고방식은 정말 오만할 뿐더러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우리를 불쾌하고 불안하게 만드는건 그가 주장한 '지정전략'이 현실에서 미국의 힘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겠지.

이 안정되고 평화로운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세계체제를 최대한 존속시키기 위해 유라시아의 가상 적국을 파괴하라-브레진스키라는 노장이 미국의 젊은 엘리트들에게 주는 충고다. 충고의 내용은 참 흥미진진했다. 손자병법을 연상케하는 글로벌 패권게임의 다양한 전략전술과 게임 참가자들에 대한 분석은 냉정하고 정확한 것 같다. 아직도 자기들이 세계적인 강국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프랑스나 영국은 실상 별거 아니다, 중국이 잘난 줄 아는데 그래봤자 빈국이다 라는 식의 독설도 재미있었다. 그가 내세운 결론이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면 무협지를 보는 심정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는 21세기 최초의 빅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세계제국의 전략가는 '한국이 통일되지 않도록 현상유지에 힘쓰되 주한미군은 절대 철수시켜서는 안 된다'는 솔직담백한 심경을 내놓고 있다. 며칠전 매향리에서 미군의 사격훈련을 반대하며 신부님들이 사격장 안에 들어가 시위를 하는데도 미군이 그대로 총을 쏘았다더니, 이 책을 통해 너무나도 반인권적인 그 오만함의 글로벌版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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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보 2009-03-1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딸기님
삼인 학생 마케터팀 한성진입니다.
원서 'second chance' 에도 리뷰 달아주셨는데요
한달전에 삼인에서 <미국의 마지막 기회>라는 이름을 달고 변역되어 나왔습니다.

이미 읽어보셨지만, 주변에 많은 홍보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