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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공존 - 하랄트 뮐러의 反 헌팅턴 구성
하랄트 뮐러 지음, 이영희 옮김 / 푸른숲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갑자기, 서구 학자들이 '학술용어'들을 놓고 껌씹기같은 놀이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화, 문명, 아시아적 가치, 민주주의같은 개념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또 그 홍수가 오랫동안 계속되다보니 받아들이는 뇌가 지쳐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단물 빼먹듯 개념들을 널려놓고 자작자작 씹어대는 것을 보니 식상하긴 하지만, <문명의 공존>의 저자인 하랄트 뮐러 때문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뮐러가 비판하는 새뮤얼 헌팅턴에 대해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정확히는 헌팅턴의 '이데올로기'를) 조목조목 비판한 책이다. <문명의 충돌>을 읽으면서 '뭐 이런 제국주의자가 다 있어'라고 분노했거나 '재미없는 책이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헌팅턴의 오만방자한 저서를 읽으면서 '그래도 재미있는걸'(나도 이런 부류였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뮐러는 이 책에서 헌팅턴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웃기는 대립주의를 설파하고 있는지, 헌팅턴의 오만이 얼마나 '미국적'인지를 따지고 든다.
첫째, '문명'은 협의의 '문화'보다는 훨씬 광의의 개념인데 헌팅턴은 의도적으로 그 개념을 '종교적 측면'으로 줄여서 얘기하고 있다.
둘째, '문명'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다못해 독일조차도 '유럽 문명'의 멤버십을 확인받은지 몇십년이 안 됐다. 문명을 고정적인 그 무엇으로 생각하고 '문명들간의 전쟁'을 상정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세째, 최근 발생한 국지적 분쟁의 대부분이 '문명의 단층선'에서 발생했으며 또 그 3분의2는 이슬람권과 다른 문명권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헌팅턴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분쟁은 헌팅턴식으로 말하면 같은 문명권 안에서 일어났으며, 이슬람권이 전쟁을 많이 하는듯 비치는 건 단지 이슬람권이 다른 문명권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부분이 넓기 때문이다.
네째, 따라서 양키들이 퍼붓는 차이나포비아나 이슬람 위협론은 허구에 불과하다.
다 맞는 지적이다. 그런데 특히 내가 재미있게 본 것은 첫째는 헌팅턴이 노골적으로 풍기는 오만함을 뮐러에게서는 거의 느낄 수 없다는 것. 이건 미국과 유럽 지식인의 차이이면서, 동시에 '전략적 투쟁론자'와 '대화론자'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서구적 가치'의 중요성을 계속 지켜나가자고 뮐러는 주장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동감한다.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며, 또 그 보편의 가치를 표현하는 이름이 서구의 근대화과정에서 발달한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둘째는 뜻밖에도 뮐러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중대한 과제로 여성의 지위 강화를 들었다는 점이다. 뮐러는 여성 지위상승의 '효과'로 여러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인권의 성취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또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진되면 빈민층의 상태가 엄청나게 개선될 것이다. 또 여성이 경제생활로 계속 편입되면 인구증가 압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들었다. 난 여성의 지위 상승이 그런 '지구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은 미처 몰랐다.
헌팅턴이나 브레진스키같은 오만방자한 미국 학자들 때문에 역겨웠던 뱃속이 뮐러 덕택에 조금 풀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아 있다. 우선 헌팅턴식 사고방식(미국의 정치이데올로기)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의구심이다. 둘째, 우리같은 '약소국'은 글로벌한 역학관계의 변화과정에서 어떤 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역시나 해답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엘리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