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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자본주의 - Living with Global Capitalism
앤서니 기든스 외 지음, 박찬욱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난 아직 아이가 없지만 내 주변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은 여럿 있다. (아마 이 글을 읽을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해당될 걸.) 그런데 그네들이 정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거냐고 되묻는다면, '예스' or '노' 대신에 여러가지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내 주변의 여자들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집에서 아이를 직접 '키우고' 있는 것은 다른 여자들이다.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의 종류는 할머니, 외할머니, 가정부 등 다양하다. 가정부의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급의 가정부가 있는가하면 조선족 여자도 있다. 가정부 중에는 자기 아이를 다른 여자에게 맡기고 남의 아이를 보러 온 사람도 있을테고, 자기 손녀를 보는 대신에 돈을 볼러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만일 아이를 낫는다면 위에 열거한 케이스 중의 어느 하나가 될 것이 뻔하다. 적어도 내가 '남자같은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은. 그렇다면 내 아이를 키우는 어떤 '아이엄마'는 자신의 아이에게 갔어야 마땅할 애정의 일부를 내 아이에게 '전이'시키면서 어떤 감정의 기복을 겪을까. 또 나는 이렇게 체계화되고 조직적이면서 동시에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보살핌의 사슬' 속에서 어떤 변화를 얻을 것이며, 내 계산기에는 어떤 손익표가 나올까.
나는 조선족 가정부에게 내 아이를 맡길 수는 있지만 필리핀인 가정부에게 맡기는 것은 주저할 것이고, 필요에 따라 미국 사람을 상대로 이메일을 통한 취재를 할 수는 있지만 먼 나라의 기자들보다는 내 주변 친구들에게서 가장 큰 '친화력'을 느낀다. <기로에 선 자본주의>는 나같은 사람들, 나처럼 '기로에 선' 사람들에 대해 성찰해보려 하는 책이다. 앤서니 기든스와 윌 허튼 편저.
필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두 사람의 편저자를 비롯해 미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폴 볼커, 울리히 벡, 로버트 커트너, 조지 소로스까지. 훑어보는 주제도 다양하다. 정보화 사회, 국제 금융시스템과 IMF의 기능, 소득 불평등 문제, 환경 제국주의, 글로벌 시대에서 '개인주의'의 문제, 미디어 제국주의, 그리고 '보살핌의 사슬'까지 종횡무진 오간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핵심은 결국 '세계화'라는 것, 그리고 그 세계화의 동력인 '국제금융자본주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책 자체에 대해 평을 하자면, '평이하다'. 큰 담론들이 짤막한 글들에 담겨 있어 깊지 않으며, 자칫 하나마나한 소리로 치부될 거대 규모의 해법들로 가득차 있다. 난 당장 옆구리가 쑤신데, 어깨가 결린데, '의료체계의 개혁'이라고 쓴 처방전을 준다면 화가 나지 않을리 없다. 더우기 번역도 거지같다.
그렇지만 '별 1개'로 점수를 매기기에는 좀 아깝다. 여러가지 화두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보살핌의 사슬'이라는 것도 그렇고, 환경 제국주의에 대한 것도 그렇다. 남쪽 나라들이 북쪽 나라들의 쓰레기를 떠맡아 지구적 차원에서 환경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정도는 다 아는 얘기겠지만 눈꺼풀을 한번 뒤집고 읽으면 신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재미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기로에 선 나에게 '니 얼굴을 똑바로 봐라'라는 자극을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별 4개를 줄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