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고로야, 고마워
오타니 준코 지음, 오타니 에이지 사진, 구혜영 옮김 / 오늘의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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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닌 어떤 것이 인간들에게 희로애락을 주고, 또 그 기록을 읽는 사람들에게까지 감동을 전해줄 수 있군요. 여느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사지가 온전치 못한 '장애원숭이'의 이야기입니다. 오타니 준코와 오타니 에이지라는 부부가 작은 일본원숭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담담하게 적었습니다. 두어달 전 신문 북리뷰에 기사가 실린 것을 봤는데, 꼬마원숭이 다이고로의 사진이 눈길을 확 잡아끌었습니다. 즐거운 호기심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서 저 책을 꼭 읽어야지, 했었는데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휴가기간 중에 책장을 넘기게 됐네요. 한 장 한 장이 모두 감동입니다. 감동이라는 말을 남발하면 줄어드는 법인데^^ '생명은 정녕 그 모습이 어떻든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는 최재천교수의 추천사가 아깝지 않네요.

일본의 한 섬에서 태어난 다이고로는 나면서부터 두 팔의 팔꿈치 아랫부분이 없고, 다리는 아예 없는 기형이었다고 합니다. 방송국 직원이면서 이른바 '사회파 사진작가'였던 오타니 에이지는 촬영 도중 발견한 이 작은 원숭이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에이지와 아내 준코는 이 '아이'에게 다이고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자식처럼 키웁니다.

일본에서 1955년 이후로 기형 원숭이들이 많이 태어났는데 아직까지도 원인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즉 공해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겠거니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랍니다. 준코는 마침 원폭 투하가 있었던 히로시마 출신인데, 그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었지만 생명의 소중함과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계속 잃지 않은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부부는 세 딸과, 다이고로와 가족처럼 살아갑니다. 이들 가족이 다이고로와 함께 보낸 2년4개월의 기록인데, 사진들만 봐도 마음이 아프면서 또 따뜻해집니다.

다이고로는 죽었고,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부부는 88년부터 남편 에이지의 고향에서 민박집을 경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맛있는 무공해요리를 만들어주는 여관인데, 장애인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얇은 책 한권, 그리고 사진들 속에 담긴 메시지와 온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음에 넣어야 할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머리 속으로 생각한 것들을 몸으로 풀어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다이고로와 이들 부부의 삶, 두 가지 모두 그렇습니다. 2년여의 짧은 기간이나마 장애를 이겨내려 애썼던 작은 원숭이. 다이고로가 전해준 고마음을 다시 바깥 세상에 퍼나르는 부부의 인생. 가볍지 않은 감동이 들어있어서, 아주 재미있으면서도 눈물 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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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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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영어단어 실력이 줄어들었다지만 내가 정말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하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Ignorance. 곱씹어봐도 '무지' '모른다'는 뜻이 분명한데 왜 이 책의 제목이 '향수(鄕愁)'로 번역됐을까 해서 말이죠.

밀란 쿤데라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향수는 단지 고향을 그리는 것 뿐만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와 그 속의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인데, 그 그리움은 '기억'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끊어져 있으면서도, 그리움의 대상이 대체 어떤 형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몹시 궁금해하고 괴로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 괴로운가 하면, 내가 어떤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데 그 사람을 10년이고 20년이고 만나볼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얼굴과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지 알지 못해서 너무나 괴로운 상태.

그런데, 나는 너무나 그리워 하고 괴로워하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그리운 곳으로 찾아갔는데 기다리던 이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지키는데 급급해서 내가 보낸 시간에는 관심도 없고 모든 것이 엇갈리기만 한다면.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참 재미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특이하다든가, 새롭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재미가 있고, 반전(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마는)도 있습니다.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이레네라는 여자와 그 애인 구스타프, 체코에서 덴마크로 망명한 조제프라는 남자와 그의 옛추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망명이라는 것은 쿤데라의 삶의 궤적에서 나온 소재이겠지마는, 그저 '도구'일 뿐이지 체제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 소설에서 뒤를 밟아가는 대상은 바로 '엇갈림'입니다. 시간과 기억의 엇갈림, 애정과 관심의 엇갈림,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엇갈림을 아주 짙게 농축해놓은 소설입니다. 그 농도가 꽤 짙어서, 어제 저녁 한번 구경해보지도 못한 프라하라는 도시의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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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냐가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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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TV뉴스를 보는데, '우리는 지금'이라는 코너가 있네요. 우리가 고쳐야 할 것들을 지적하는 순서인 모양입니다. 질서 안 지키고 공공장소에서 떠들고 쓰레기 함부로 버리고, 우리 사회에서 고쳐야 할 것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조금 특이하네요. '점심 시간 너무 길다'가 주제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너무 길어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강남의 한 대중음식점에서 점심먹는 직장인들을 보여주고 외국계 기업 주재원들의 '평가'를 덧붙인 것만 봐도 의도는 명백하죠. 점심 때 부대찌개를 먹으면 총 45분이 넘게 든대요.

마이크 레스닉의 <키리냐가>를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오늘 집에 누워 뒹굴뒹굴(인간 본연의 자세는 직립이 아니라 뒹굴뒹굴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하면서 속독 겸 숙독(뒹굴뒹굴 하다보면 이것이 가능합니다)을 했는데 말이죠. '지킨다'는 것과 '자란다'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대립이 존재합니다. 한쪽은 전통(긍정적 측면)이자 수구(부정적 측면)이고, 또 다른 한쪽은 발전(긍정적 측면)이자 정체성 상실(부정적 측면)입니다. 근대적 맥락에서는 원주민과 식민주의의 싸움이고, 기술 발전 이후의 상황에서는 보존과 개발의 딜레마와도 상통합니다.

참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중층적인 대립구도 사이에 레스닉은 한 가지 중요한 주제를 더 끼워넣습니다. 인간의 자율성에 관한 겁니다. <키리냐가>는 케냐의 키쿠유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키쿠유족 본연의 정체성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한 '케냐인'이 되어버린 키쿠유족의 현실을 안타까와 하던 한 키쿠유 노인이 서기 2130년대의 어느 시기 '유토피아 위원회'라는 범우주적 관리기구의 허가를 얻어 지구화된 무인행성 하나를 개척합니다. 이 노인은 부족의 주술사를 자처하며, 이 행성 '키리냐가'에 거주하는 키쿠유족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전하기 위해 애씁니다. 옛 부족은 생각할 필요도, 발전할 필요도 없으며, 유럽식 사고방식을 절대로(마이신 연고 한 개라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노인은 자연스레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요구하고 나선 부족민의 반발에 부딪쳐 결국 지구로 쫓겨나지만, 그의 실험이 성공했는지, 키쿠유들의 지구에서의 식민화 경험 대신 자생적 발전의 길을 택해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는지는 미결로 남습니다. 독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고민도 생각도 없이 누군가의 조정에 맞춰 걱정없이 사는 것이 과연 유토피아인가'하는 겁니다. 어려운 문제로군요. 만일 '유토피아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문제의 키쿠유 노인같은 이는 '당신은 서구식 사고체계에 병들어 있을 뿐'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르죠.

저는 아침 6시에 출근을 합니다. 11시30분에 업무가 끝나면 회사를 빠져나가, 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오후 2시30분까지 놀다 옵니다. 말하자면 저는 하루의 배꼽을 잘라, 먹고 떠드는 재미에 삽니다. 점심시간은 저에게 재충전의 시간이자, 하루 생활의 즐거움의 원천입니다. 그 시간 동안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어떤 때에는 홍대 앞에 가서 차도 마시고, 회사 부근 할리스 커피숍에서 모카커피도 먹고, 휴게실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죠.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름 하에 점심 시간을 '외국기업에 맞춰' 줄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동양의 미학인 느림과 여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죠. 서양에서도 일본식 선(Zen)이 유행을 한다는데, 밥 먹는 시간까지 '서양식 합리주의'에 맞추고 싶지 않거든요.

<키리냐가>에 나오는 키쿠유 주술사 노인네의 소영웅주의와 독선, 아집, 여성비하 따위가 몹시 거슬리긴 했지만, 아무리 우리가 영어 없이는 못 사는 처지일 지언정 내가 점심을 몇 분간 먹느냐 하는 것까지 남의 잣대에 재단 되어 경쟁에 떼밀리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던진 어려운 질문의 해답은 잘 모르겠지마는, 때로는 '양보하기 싫은 것'들이 있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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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매트 리들리 지음, 하영미 외 옮김 / 김영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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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공부를 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비교적' 과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관심의 이유는 지적 호기심, 혹은 지적 허영심, 쉽게 말하면 '알고 싶은 게 많아서' 이고, 어렵게 말하면 내가 물질 중심의 사고관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 모든 이유들을 한마디로 하면 '알고싶어서'다.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

올해에는 특히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소식들이 많았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첫번째 것은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됐다는 것. 인간게놈지도를 완성시킨 것은 두 집단인데, 하나는 '모험(벤처)적인 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이끄는 셀레라 제노믹스라는 '기업'이고, 또 하나는 '공리적인 과학자' 존 설스턴이 이끄는 HGP(인간게놈프로젝트)라는 단체다.

호기심을 부추긴 두 번째는 '광우병'이다.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 프라이온이라는 이상하기 짝이없는 단백질, '변형프로이츠펠트 야코프병'이라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질병의 뉴스를 수시로 듣다보니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매트 리들리의 <게놈>에는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아주 재미있고, 잘 쓰여진 책이다. 알다시피 인간의 염색체는 23쌍인데 그 중 성염색체를 제외한 22쌍의 염색체마다 지능, 학습, 우생학, 자유의지 따위의 주제를 결부시켜서 인간-유전자-환경의 문제를 설명한다.

영국 텔레그라프지의 과학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리들리는 정말 쉽고도 흥미진진하게 우리 유전자의 속성과, 그것들이 갖고 있는 의미와, 그 귀염둥이들에 대한 탐구의 역사를 설명한다. 리들리라는 유전자덩어리가 얘기한 것을 딸기라는 다른 개성을 가진 유전자덩어리가 해석한바에 따르면, 전자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결정론을 거부하지 말라. 인간들은 지난 세기의 전반기에 나치스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과민반응의 결과, '유전학적 결정론'을 극단적으로 거부해왔다. 환경결정론에 기대어 '부모 탓, 교육 탓, 사회제도 탓'을 하면서도 희한하리만치 유전적 결정론을 거부해왔는데, 우리가 거부할 것은 '결정론'이 아니라 '숙명론'이다.

리들리의 비유 하나. 솥에 국을 끓이면서 비소를 넣으면 독이 되지만 그렇다고 요리하는 행위 자체를 독약 취급하면 안 된다. '요리사가 쓰면 식칼, 살인범이 쓰면 흉기' 식으로 '도구 무책임론'을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한데, 나는 기본적으로 리들리의 생각에 동의한다. 과학만능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은데, 그렇다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동차니 세탁기니 보일러니 하는 것들도 모두 포기해야 되지 않느냔 말이다.

어쨌거나 인류는 그동안-적어도 한 200년 전부터는- 모르는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특히 과학의 영역에서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애를 써왔다. '게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유전자가 갖고 있는 의미와 그것들의 기능, 생성과정을 알기 위해 똑똑한 과학자들이 얼마나 수고를 해왔나 하는 것이다. 인간은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 나는 그 성과를 고맙게 생각하고, 그것들을 좋은 일에 자꾸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우병이나 헌팅턴병에 대한 연구과정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내 유전자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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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겐의 반지 1 - 전편 - 라인의 황금
마츠모토 레이지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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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레이지의 <니벨룽겐의 반지> 1부와 2부를 읽었습니다. 마쓰모토 레이지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우주전함 야마토, 하록선장, 그리고 은하철도 999.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은하철도 999 만화책을 몇권 봤는데, 기분이 아주 이상하고 음침한 느낌이 들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재작년에 극장용 후속편을 비디오로 빌려다봤는데 영 꽝이더군요.

니벨룽겐의 반지는 아시다시피 독일의 전설이죠. 그리고 바그너(와그너?)의 오페라이기도 하구요. 마쓰모토는 바그너의 팬이라고 하는군요. 이 만화는 그 오페라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는 아니고, SF물입니다.

첫 장면부터 저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우주선입니다. 일본의 SF물은 메카닉(기계장치) 설계가 뛰어난 것들이 많다고 하는데, 마쓰모토의 메카닉은 정교하다기보다는 '풍성'합니다. 가운데 부분에 바위를 집어넣은 모양의 독특한 우주선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놀라움은 장면장면 계속되지요. 마쓰모토 외에 또 누가 그런 상상력으로 독자를 즐겁게 해주겠습니까.

하록선장과 메텔은 이 작품에도 등장합니다. 은하철도 999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가 이 작품에서 표현하는 것은 역시나 '시간'입니다. 광활한 우주의 끝까지 울려퍼지는 오르간 소리. 그 음악은 신들의 언어입니다. 오르간을 연주해서 의사소통을 한다는군요. 요샌 워낙 현란한 만화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마쓰모토의 '옛날식' 그림은 오히려 더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투박해보이면서도 따뜻합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선과 악의 대립. 라인의 행성에 숨겨져있던 저주받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반지. 이 반지가 만들어지면서 고대의 악령들이 잠에서 깨어난다...으스스... 우주를 지배하려는 악령에 맞선 사람들. 주인공은 별로 매력이 없는 '철이' 풍의 남자인데, 그보다는 분위기있는 조연인 하록선장이 정말 멋있습니다.

운명적으로 서로 싸워야 하는 사람들의 만남. 이야기가 아주 복잡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찬탄을 금치 못했답니다.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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