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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aw Ramallah (Paperback, Reprint)
Murid Barghuthi / Anchor Books / 2003년 5월
평점 :
올 들어 읽은 얼마 안 되는 책들 중, 마음의 울림이 가장 컸던 책이다. 읽으면서 가슴이 시큰했고, 오며가며 책장 넘기다가 갑자기 서글퍼져 눈물이 핑 돌 때도 많았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뿌리내릴 곳 없는 자의 슬픔. 저자인 무리드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이것으로 많은 부분이 설명이 되려나.
그의 고향은 라말라,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중심도시로서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소재하고 있는 곳이다. 바르구티라는 성(姓)은 아주 흔해서, 팔레스타인에서는 ‘열 명 중 하나는 바르구티’라고 한다. 실제로 PA 지도부에도 바르구티라는 성을 가진 이들이 여럿 있어서, 외신에서는 심심찮게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무리드 바르구티는 라말라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인생은 자기 고향에서 보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 고향을 다시 밟기도 힘들었다. 이집트 카이로에 유학을 갔던 그는 그곳에서 67년의 전쟁을 맞는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 대부분을 앗아간 ‘점령(the Occupation)’으로 귀결됐던, 이른바 ‘3차 중동전쟁’이다. 그의 고향은, 라말라는, 요르단강 서안은,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점령’됐고 국경은 막혔다. 이제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게 그는 난민이 되었다.
1980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이스라엘하고 손을 잡아버린다. 중동아랍권의 맹주라는 이집트가 ‘아랍국가들 중 (요르단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버린 것이다. 이집트는 더 이상 팔레스타인의 편이 아니다. 이집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팔레스타인 망명단체들과 운동가들은 추방당한다. 카이로에서 대학을 나와 이집트 여성과 결혼해 시인으로 살고 있던 무리드 바르구티 역시 추방 대상이 됐다.
이렇게 그는 이중의 난민이 됐다. 역시 문인이자 대학교수였던 이집트인 아내와 돌배기 어린 아들을 카이로에 남겨둔 채, 그는 이집트에서 쫓겨나 세상을 떠돈다. 이 책은 그렇게 뿌리 뽑힌 채 살아가야 했던 한 지식인의 자기 기록이다. 떠돌아다니는 사람, 세상 어디에도 ‘나만의 풀뿌리 하나’ 심을 곳 없는 사람.
"떠돌이는 언제나 주거지 등록을 갱신해야 하는 사람이다. 주거지등록 신청서의 빈 칸을 채우고 인지(印紙)를 사 붙인다. 떠돌이는 끊임없이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 사람, 언제나 ‘어디 출신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혹은 ‘당신네 나라는 여름에 더운가요?’와 같은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다.
떠돌이는 자기가 머무는 나라의 자세한 사정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건 그들의 ‘내부적인 정책’일 뿐이라는 걸 곧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내부적인 정책’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나라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떠돌이에게는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에게 두려운 일은, 모두 떠돌이에게도 두려운 일이다. 시위가 일어나기라도 하면, 비록 떠돌이는 그날 조용히 방안에 있었다 할지라도, 언제나 그는 ‘시위에 끼어드는 요소’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떠돌이는 존재하는 장소와의 관계가 어긋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 곳에 다가가려 하지만 동시에 그 장소를 밀어낸다. 떠돌이는 일관된 내러티브 속에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 순간만을 사는 사람이다. 기억조차 그의 명령에 저항한다. 그는 자기 안의 숨겨진, 고요한 곳에 머문다.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조심하고, 그것을 캐내려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떠돌이는 전화벨 소리를 반가워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친절한 이들은 그에게 “여기가 네 두 번째 집이라고, 친척들이랑 같이 사는 거라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낯선 티를 내면 무시당하거나 동정을 받는다. 동정을 받는 것이 멸시당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 월요일 정오에 나는 추방당했다."
displacement. 난민은 영어로 refugee 라 하고, 국경을 넘지 않고 한 나라 안에서 집을 잃거나 해서 떠도는 유민(流民)들은 (internally) displaced person 즉 ‘IDP’라 부른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67’이라는 공포의 숫자로 남은 그 전쟁으로 바르구티는 displaced 되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두번째 집’에서도 displaced 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사실상 너나없이 모두 이렇게 정처를 잃었다. 아버지는 요르단에, 어머니는 팔레스타인에, 큰 아들은 돈 벌러 사우디아라비아에, 작은 아들은 공부하러 카이로에, 딸들은 시집가서 아랍에미리트에, 삼촌은 불법이주노동자로 프랑스에. 이런 일이 허다하다.
뿌리 뽑힌 바르구티는 곳곳의 아파트들과 호텔을 전전한다. 떠돌이에게는, 호텔에 머무는 사람에게는 꽃병의 물을 갈아줄 의무가 없다. 그래서 그는 화분 하나, 꽃병 하나를 보면서도 슬픔을 느낀다. 그의 글은 너무 슬프다. 여러 나라로 흩어진 가족의 전화를 늘 기다리지만, 혹시나 그 전화가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은 어느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일까 늘 두렵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나날들.
93년 이츠하크 라빈과 야세르 아라파트는 빌 클린턴 중재로 오슬로 평화협정에 서명한다. 책에는 여러 가지 층위가 있고, 이 책의 제목과 관련된 두 번째 층위는 거기에서 시작한다. 오랜 방황 끝에 간신히 이집트의 집으로 돌아갔더니 어느새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어있다. 그리고 96년 어느 날 드디어 그는 고향 라말라에 갈 기회를 얻었다. 이스라엘이 국경을 ‘개방’해준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국경이라고는 하지만 그 국경의 통제권은 이스라엘이 갖고 있다. 이-팔 공동 통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모든 권한을 갖는, 그런 협상, 그런 개방.
라말라.
책은 그렇게 수십 년 만에 단 며칠 동안 라말라를 방문한 그가 느끼는 것들, 그가 돌아본 것들을 담고 있다. 라말라로 가는 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이 그에게는 천년의 시간이자 인생의 모든 것을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돌아간 라말라는 또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멈춰져버린,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이스라엘에 빼앗겨 버린 도시에서 그는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맛본다. 이 세상 모든 곳이 ‘발전’하고 있을 동안 라말라는 ‘헤브루 국가 주변의 언덕배기 시골’이 되어버렸다. 점령은 사람들에게서 상상력과 배움과 모든 기회를 앗아갔다. 바르구티는 미래에 대한 꿈을 이제부터 다시 꾸어야 하는 사람들, ‘고향의 이방인’이 되어버린 그들과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책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비애와 고통을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 얘기’에 치중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최소한도로 제한되어 있고,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조차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자기 마음에 흐르는 생각들, 자신에게 강요된 느낌들을 보여주고 눈에 비친 것들을 전해줄 뿐이다.
바르구티는 나기브 마흐푸즈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다. 아랍어로 된 그의 글은 읽지 못했지만, 영어로 된 이 책의 문장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정제된 슬픔, 담담한 희망을 잘 전해주는 문체. 영역을 한 아흐다프 수에이프 역시 이집트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영문판은 2000년 출간됐고, 권두의 추천사는 바르구티처럼 팔레스타인 출신의 지식인으로 카이로에서 공부했던 에드워드 사이드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