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콜로지카 Ecologica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정혜용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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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랑스 사람들의 책은 내 취향이 아니야, 하다가도 이렇게 반짝반짝하는 책을 만나면 ‘이게 그들의 힘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앙드레 고르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스위스 로잔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언론인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렉스프레스>를 거쳐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창간하고 유럽 신좌파 이론가로 활동하며 68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 소개에 나와 있는데, 그 명성대로다.
더 이상 이익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금융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돈을 낳고 그 돈이 돈을 먹는 헛구르기만 계속하는, 궁지에 몰린 자본주의. 파괴와 낭비만 남은 자본주의의 탈출구는 ‘정치적 생태주의’라고 고르는 말한다.
굳이 ‘과학적 생태주의’과 ‘정치적 생태주의’를 구분해서 후자에 방점을 찍고는 있는데, 거창하게 부를 것 없이 전자는 기술발전으로 생태파괴를 막아보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예 통째로 세상의 체제를 바꿔 생태주의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니 전자보다는 후자로 가야 자본주의라는 체제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사회주의자이고, 사회주의에 ‘에콜로지’를 덧붙였다.

이반 일리히에게서 가져온 것이긴 하지만 자동차 문화와 도시생활의 확대에 대한 부분(자동차 때문에 점점 직장에서 먼 곳에도 살 수 있게 되고 결국 이동 시간은 줄어들지 않는다는)이나 해커의 사회학에 대한 접근(인터넷 초창기에 많이 나타났던 해커 예찬 같은 느낌도 들지만)은 재미있었다.
오늘날 넘쳐나는 ‘비정규직’의 비생산성을 자본주의의 위기와 연결지어 설명한 것도 눈에 띄었다. 지금 우리는 생존권 차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고르의 통찰에 따르면 넘쳐나는 비정규직- 서비스직 일자리들은 자본주의의 막장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비생산적인 노동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사실 일자리라고 해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의미하는 대로 ‘생산적’인 것은 아닙니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다시 말해 자본증식을 낳는 일자리만이 ‘생산적’인 거죠. 특히 미국 경제활동인구의 5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용역이 그 경우라고 할 수 있죠. 그 일자리들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며, 창출된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죠. 이들에게 지불되는 보수는 그들의 고객이 생산적인 노동을 하여 올린 소득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러니 ‘2차 소득’이며, 1차 소득의 일부를 2차적으로 재분배한 것입니다.
... 용역 서비스 업종은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지 않고서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서비스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활동들을 보수를 받고 제공하는 용역으로 변모시킨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일자리로 변모시킨다고 해서 실제로 노동시간이 절약되는 것도 아니고 전 사회 차원에서 시간을 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사고파는 서비스들의 비생산적 성격이 잘 나타나고 있지요.”
 
 

그리하여 생산성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수많은 서비스직, 비정규직, 용역직 노동자들은 이 사회의 ‘워킹푸어’가 되고 만다.

100쪽 조금 넘는, 그나마 글씨도 엄벙덤벙 크고 여백이 운동장만한 책에서조차 프랑스식 글쓰기의 특징인 ‘중구난방 어법’이 마구마구 나타난다. 쉽게 말하면 될 것을 참 어렵게도 한다. 지금은 당연한 듯도 들리는 그 쉽고 흔한 이야기에까지 이르는 생각의 길이 굽이굽이 길고도 험난했기 때문일까. 2차대전에 68혁명에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을까. 고르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20여 년 간 간호하다가 2007년 자택에서 아내와 동반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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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1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쪽 조금 넘는, 그나마 글씨도 엄벙덤벙 크고 여백이 운동장만한 책에서조차 프랑스식 글쓰기의 특징인 ‘중구난방 어법’이 마구마구 나타난다

오호 읽기 망설여지는군요 --;;

딸기 2009-04-15 02:47   좋아요 0 | URL
그래도 한번 읽어보세요 ^^
글씨도 엄벙덤벙 크고 여백이 운동장만하고 중구난방어법인데도
반짝거리는 통찰력이 있거든요.


무해한모리군 2009-04-16 08:39   좋아요 0 | URL
다시 용기를!!
중구난방 사이의 통찰이 내게도 번쩍여주기를!!

드팀전 2009-04-14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드레 고르는 순애보로 먼저 알게되었어요...ㅋㅋ 잘 지내시죠

딸기 2009-04-15 02:48   좋아요 0 | URL
잘 못 지내요. 저 감기 걸려서 엄청 끙끙 앓았어요 ^^
 
슈퍼자본주의
로버트 라이시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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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주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를 넘어 라이시는 1970년대의 자본주의를 ‘슈퍼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이 자본주의에 ‘슈퍼’라는 형용사가 붙는 것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침공해 들어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국면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우리들은 거기 공모해서 시민으로서의 존재의식을 잊고 소비자·투자자로서의 권리만 중시하게 되었다. 우리의 공모 속에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가치는 퇴색했다. 정치는 로비에 물들어 슈퍼자본주의에 결탁했다.
이 과정은 레이건 때문에, 대처 때문에, 신자유주의 때문에, 냉전 종식 때문에, 세계화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슈퍼자본주의는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면서 ‘우리의 공모 덕에’ 발전해왔던 것이다. 기업들은 점점 치열해져가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고, 소비자들은 이 경쟁 속에서 값싼 제품과 서비스를 찾아다녔을 뿐이고, 너나없이 펀드에 돈을 넣으며 내가 투자한 것이 조금이라도 이익을 가져다줬으면 하고 바랬을 뿐이다. 그것이 오늘날의 슈퍼자본주의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이 과정이 ‘옳은 것’ ‘바람직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지만, 불공평하고 잔인한 과정이었다.

생각 있다는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얘기하며 “나쁜 기업들을 좋은 기업들로 바꾸자”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이다. 이 자본주의의 규칙을 바꾸어야만, 즉 법과 규제를 통해서 룰을 바꿔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쁜 월마트, 착한 월마트’는 없다. 월마트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해 소비자들에게 값싼 물건을 파는 경쟁력 있는 기업일 뿐이다. 기업은 원래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있는 조직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기업의 자선행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민적 각성을 통해 정부를 움직여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갈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라고, 이제는 자본주의에 침공당한 민주주의에 다시 숨통을 틔워줄 때가 되었다고 라이시는 말한다. 요는 '민주적인 자본주의'를 만드는 방법인 것이다. 
꼭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는 ‘좋은 기업’들의 실패담을 종종 듣는다. 더바디샵이 몇 해 전 로레알에 넘어갔을 때를 생각해보라.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낸 그라민 은행도 요즘 흔들린다 하는 판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이 바로 그 책임을 다 하는 동안 ‘무슨 짓이든 하는 기업’들에 경쟁에서 밀리는 일은 허다하다. 아니, 이는 경쟁 구조의 본질에서 나온 필연적인 귀결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참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는데, 그렇다고 부인하기엔 너무 씁쓸한 진실을 담고 있다. 못된 기업이 착한 기업을 이기는 것은 우리 안의 ‘투자자’가 ‘시민’을 이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의 시민이 힘을 갖게 하지 않는 한 착한 기업이 나쁜 기업을 이길 도리는 없다. 착한 기업 이야기가 나오면 냉소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성공할 리가 없다’며 ‘합리적인 소비자들의 선택’을 들먹인다. 착한 소비자는 많지 않다고. 여기서도 문제는 ‘착한 소비자’가 아니다. 기업과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책의 내용은 상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가자는 얘기를 진실성 있게 전하기 때문이다. 나도 주주다. 나는 여러 언론사의 주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적립식 펀드에도 투자를 해놓고 있다.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인 ‘캘퍼스’ 만이 제 3세계에서 악명을 떨치는 악덕 기업들에 투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돈을 집어넣은 펀드가 지구 반대편 사람들에게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 줄 누가 알랴. 우리는 알려 하지 않고, 알아도 모른 체 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면에서라면 이 금융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중에 자유로울 자 누구인가.

우리가 다루는 변화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기업은 도덕성과 무관하다. 실상을 말한다면 우리 대부분은 소비자이자 투자자이며, 그런 맥락에서 슈퍼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덕을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공정한 게임을 이상으로 여기는 시민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와 투자자뿐 아니라 시민으로서 우리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규칙 말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적절한 경계선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의 게임과 그 룰을 만드는 방식을 구분해서 양쪽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업은 시민이 아니다. 기업은 계약들의 묶음이다. 기업의 목표는 경제의 게임을 가능한 한 치열하게 수행하는 데 있다. 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업들이 룰을 정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22쪽)


중요한 것은 법과 제도라는 점. 라이시와는 통 인연이 없어서 <부유한 노예>도 몇 장 펼쳐보다가 말았는데 이 책은 생각보다 소박해서 순식간에 읽었다. 자유시장 만능론 같은 것과 ‘딱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자본주의의 개량을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개량은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끊임없는 개량만이 희망일지도 모른다.


▶ 대기업의 사회적 성격에 관한 문제는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제기되었고 산업화되어가던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결국에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만드느냐가 관건이었다. 일부 가능해 보이는 해결책이 유럽과 러시아에서 나왔다. 하나는 독점기업과 거대기업을 국가가 소유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말하는 사회주의였다. 이보다 더 과격한 방식은 공산주의였는데,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에 기반한 것이었다. 세 번째 해결책은 거대기업을 정부의 일부로 만들고 한 사람에게 정부의 권한을 집중하는 것. 그러니까 파시즘이었다. 세 가지 모두 시도되었고 세 가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이 선택한 길은 일련의 실용적인 방법들을 결합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지나치게 큰 독점기업들을 더 작고 경쟁적인 단위들로 쪼개준 것이었다. 1890년의 셔먼법 Sherman Act은 미국 최초의 반反독점법이었다. 스탠더드오일과 아메리칸 담배가 대법원의 명령으로 해체되었다.  그후 수십 년의 기간에 걸쳐서 US스틸, 인터내셔널 하베스터, 제너럴 일렉트릭, 그리고 AT&T가 반독점 기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반독점 법은 효과적인 무기가 되지 못했다. ‘독점’을 입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37쪽)

▶ 1950~60년대에 정치학자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특성을 규정하고자 애쓰면서 ‘이익집단의 다원주의’ 같은 추상적 용어들을 사용했다. 이 말은 예전의 교과서에 나오는 직접 민주주의나 대의 민주주의에 합치하지 않으면서도 대다수 시민들의 욕구와 희망에 나름대로 부웅하는 그런 시스템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들이 볼 때, 민주주의적인 정부는 서로 경쟁하지만 서로 얽힌 집단들 간의 지속적인 협상이었다. 이런 집단들은 서로 연합해야 무언가를 이룰 수가 있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시스템은 탄력성과 적응력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는 다수의 지배도 소수의 지배도 아닌 ‘소수들의 지배’ 였다.
연방정부는 간헐적으로 경제적인 힘의 새로운 중심들을 만들어 거대기업들의 힘을 상쇄시켰다. 노조와 소매업자, 소기업, 소액투자자들의 저항에 따른 이와 같은 상황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일어났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이것을 ‘대항력 countervaillng power’이라고 표현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민간의 시장 지배력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대항력의 증가는 경제의 자율적인 규제 능력을 강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정부의 불가피한 통제나 계획의 양을 감소시킨다”고 그는 썼다. (62쪽)

▶ 스스로 ‘업계의 정치인’을 자임했던 이 경영자들은 지주 의회에 나가 증언을 섰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 의견과 시간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이들이 경영자로서 업계의 정치인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그럼으로써 이들이 보기에 자기 회사의 소비자와 주주들의 이익보다 전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과점 체제가 그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자가 치고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걱정 없이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푸짐한 임금과 복지혜택을 줄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들이 다른 곳에 관심을 쏟는 동안 경쟁자가 시장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걱정 없이 워싱턴에 가서 마셜플랜을 지지할 수 있었다. (68쪽)

▶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시스템을 떠받치던 거대 과점 기업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매출과 수익, 고용은 훨씬 더 취약해졌다. 그리고 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큰 회사들이 점점 더 약해진 것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소비자들과 투자자들이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규모는 더 이상 진입 장벽이 아니었다. 2006년 평균적인 ‘포천 500’ 기엽은 1980년에 비해 (실질적인 기준으로) 3배나 커졌다. 그러나 가격을 높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기업들은 똑같은 것을 더 싸게 혹은 더 잘 제공하는 경쟁자의 침공을 당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의 증거는 경제의 중심에서 거대기업들의 가격설정 능력이 꾸준히 감소했다는 것이다. 과점 체제와 그것이 지탱하는 계획 경제의 논리적인 근거 자체가 점차 약해졌다. 이와 같은 변화는 1970년대에 시작된 생산성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금까지 일어난 변화의 이야기에는 영웅도 없고 악당도 없으며, 그 줄거리는 상당히 직선적이다. 이것은 1970년대에 새로운 기술들과 함께 시작되는데, 이 신기술들은 (내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국방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신기술들이 차츰차츰 퍼져나가 여러 방면으로 확산되어 때로는 국경을 넘기도 하면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단위당 원가를 낮추는 생산 체제들 속으로 들어간다. (83쪽)

▶ 세 가지 상황 변화를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 모두 냉전 혁신들의 간접적인 산물이었다. 첫 번째는 이른바 말하는 세계화 globalization 이다. 두 번째는 새로운 생산 방식의 출현이다. 세 번째는 탈규제 deregulation 이다. 이것들 모두 규모의 경제와 20세기 중반의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88쪽)

▶ 1980년대의 적대적 인수, 기업 사냥꾼, 정크 본드, 위임장 쟁탈전, 그리고 차입 매수를 촉발시킨 것은 욕심이 아니었다. 2000년대의 헤지 펀드, 사모 투자 회사, ‘소수파 행동가들’, 그리고 또 한번의 차입 매수와 위임장 쟁탈전을 유발시킨 것도 욕심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경우들에서 동기 유발의 요인은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기회들이었다. 욕심과 기회를 혼동하는 것은 욕망과 가능성을 혼동하는 것과 같다. 대학생들의 욕망은 40년 전에 비해 더 많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능성은 훨씬 더 커졌다. (106쪽)

▶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은 우리 대부분의 안에 두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와 투자자로서 우리는 더 좋은 거래를 원한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런 거래에서 비롯되는 많은 사회적 결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는 균형의 수단이 없다. 대개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우리의 욕망이 우세를 보인 다. 시민으로서의 우리의 가치관은 사실상 적절한 표현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30쪽)

▶ 슈퍼자본주의는 수익을 악화시키는 착한 기업의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기업도 경쟁자들이 함께 하지 않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할 수는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슈퍼자본주의에서는 규제만이 기업들이 수익에 해가 되는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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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그린 -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영민 외 옮김, 왕윤종 감수 / 21세기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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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행이라고 해서 또 꾸역꾸역 읽었다. 이 책에 나온 기후변화/에너지에 대한 것들은 대개 어딘가에 나왔던 것들이기 때문에, 이 이슈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을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정책이나 국제정세(특히 프리드먼의 강점인 중동 정세에 대한 지식)와 연결지어서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있어 보이게’ 썼기 때문에, 이왕이면 유명한 사람이 쓴 책을 보고 어디 가서 아는 척 좀 하고 싶은 독자에게라면 괜찮을 듯.

중동 문제에서 세계화로, 그리고 다시 기후변화 시대의 에너지 전략으로 갈아타는 걸 보면 프리드먼이 저술가로서 능력이 있기는 하다. 프리드먼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도 사실이고.
책에는 아이디어가 넘쳐나는데 정밀하지는 못하고, 또 그 ‘미국 잘난 척’ 때문에 짜증나는 부분도 있다. 자기 글은 어차피 세계가 다 읽는다는 걸 알면서 이렇게까지 나라사랑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이렇게 “내가 이게 다 미국을 사랑해서 하는 소리다”라고 강조하지 않으면 에너지낭비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에게 배척받을까 지레 걱정되어 그러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이것도 미국인들의 석유중독이 그 정도로 심하다는 반증인 셈인가.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사건들을 살펴보면 극도로 강력한 두 가지의 또 다른 힘이 지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바로 지구온난화와 세계 인구의 급증이다.
이 책은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로 인해 극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다섯 가지 핵심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점점 부족해지는 에너지 공급 및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의 증가, 석유 강국들과 이른바 ‘석유독재자들’에게로 부가 막대하게 이동하는 현상, 파괴적인 기후변화, 세계를 전기를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로 날카롭게 양분하는 에너지 빈곤, 동식물들이 기록적인 속도로 멸종해가면서 급격히 가속화되는 생물다양성의 감소가 바로 그 핵심 문제들이다.” (50쪽)

저자는 다가올/다가온 시대를 ‘에너지기후시대’라 이름붙이고(이름 짓는 것 참 좋아한다) 서력 기원전·후처럼 앞으로는 ‘ECE(Energy-Climate Era) 몇 년이라는 개념이 통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대테러전 한다며 아랍국들 몰아붙이고 뒤에서는 석유대금 퍼안기지 마라, 걔네들 오일달러로 근본주의 테러범들 육성한다는 것이 앞부분의 이야기의 한 축이다. 뒤에는 에너지기후시대를 앞서가는(저자의 말을 빌면 out-green 즉 친환경 측면에서 앞서가는) 것이 어떻게 돈이 되고 힘이 되는지, 그러므로 미국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특히 미국의 정치지도부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는 것들이 주로 나온다.

IT와 ‘그린’을 엮어 친환경 에너지 그리드 개념을 구체화시킨 것, 중국 지도부의 놀라운 그린 리더십 잠재력에 대한 얘기 등등은 흥미로웠다. 빈곤과 빈부격차 문제, 디지털 & 에너지 디바이드 등등 온갖 층위의 온갖 이슈들을 종횡무진으로 엮을 수 있다는 것은 프리드먼식 저널리즘의 큰 장점이다. 한 권으로 오만가지를 훑을 수 있게 해주니까.
책의 큰 주제와 상관없이 너무 길게 가져다붙인 감은 있지만 중동-이슬람권의 ‘사우디아라비아화’ 즉 이슬람 근본주의화에 대한 얘기들은 내 개인적인 관심사여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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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03-22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권으로 오만가지를 훑을 수 있게 해주니까"라는 게 개인적으로는 독서를 주저하게 만들어요. 다들 읽는 책을 읽는 건 비효율적인 분업 같기도 하고...

딸기 2009-03-23 13:5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이 책은
1. 분야별로 책을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많지 않은 사람들
2. 프리드먼이 워낙 유명하니까 어떤 소리를 하나 좀 들춰보려고 하는 사람들
이 두 종류의 독자들을 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장기 20세기 - 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9
조반니 아리기 지음, 백승욱 옮김 / 그린비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세계체제를 다룬 책들은 어쩐지 구미에 맞는달까. 이 책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재미있다고 하면 뜨악한 눈으로 보는 친구들도 많지만, 아무튼 이 책은 재미있다. 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원- 이런 부제가 달려있는 책인데 재미없을 리 있나. 재닛 아부-루고드의 <유럽 패권 이전>과 안드레 군더프랑크의 <리오리엔트> 등을 이미 읽은 탓인지 논리 구조도 낯설지 않아 어렵잖게 책장을 넘겼다.

이 기나긴 책의 내용에 대한 학문적 평가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고 내가 그 이상을 아는 것도 아니니 생략하고, 그냥 책을 읽고 남은 의문만 적어놓고 넘어가려 한다.
요는, 지금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과연 ‘장기 20세기(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의 끝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위기’가 과연 ‘체제의 위기’인지 아니면 그냥 경기가 하강하고 주가가 떨어지는 그렇고 그런 위기의 하나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의 저 대공황도 ‘장기20세기’의 위기라기보다는 순환적 국면에 해당됐었는데, 이번 위기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평가’의 차원이라기보다는,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대안으로 어떤 시스템이 부상할 것이냐에 달려 있을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지금 보고 겪고 있는 것이 진정한 시스템의 위기라면, 이것은 ‘장기 20세기’라는 자본주의의 한 국면의 위기 즉 ‘교체기’일까, 아니면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일까? 지금도 사회주의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이길 바랄 것이고, 그냥저냥 착한 사람들이라면 신자유주의의 위기 국면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둘 중 어느 쪽도 아니고 못되어먹은 사람들이라면 “위기를 기회로 삼자”며 이 참에 없는 자들 것을 더 빼앗아 양손에 거머쥐려고들 할 것이다. 한국의 천민자본가들처럼 말이다. 못되어먹었지만 고상한 척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저런 논리를 들먹이면서 “자본주의는 영원하다”며 위기 국면을 거쳐 자본주의가 체질개선을 해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 참에 구조조정 내지는 경제개혁을 하여 생산성 효율성을 높이자고 소리치면서 말이다.

아쉽게도 <장기 20세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심지어 ‘중국의 세기’ 이전에 나온 책이기 때문에 작금의 위기에 대해 직접적인 힌트를 주지는 않는다. 역자의 해설과 저자의 개정판 서문을 보니 저자가 일본을 과대평가한(이 책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에 들어가기 전에 쓰였다) 것이 약점이라고 하는데, 뭐 그리 ‘치명적인’ 약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좀 섣부른 예측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 자본주의의 ‘섬들’(일본을 필두로 한 아시아의 용들)을 너무 칭찬해놓은 것 등등을 보면 아시아 경제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안다 싶지는 않다.
나중에 다른 저작에서 일본 대신 중국을 부각시켰다고는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일본이냐 중국이냐- 이것은 자본주의의 시대구분에서 본질적인 구분일까, 아니면 금융중심지가 바뀐 정도의 대수롭지 않은 변화일까? '팍스 자포니카'가 이미 물건너간 얘기가 된 상황이라고 치면, 이 문제는 '중국이 이끌어가는 자본주의(이런 시대가 정말로 올지는 모르지만)'가 어떤 모양과 내용이 될 것인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중국이 어디로 갈지는 참 궁금하고, 또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 것 같다. 아리기에게 물을 일은 아닌데, 앞날을 과연 누가 알리오마는 그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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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3-2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가 조금 더 근자의 논문-다양한 세계체계론자들-을 모아놓은거 아닌가 싶던데요...서점에서 대충 넘겨봤을 때 말이지요. 이 책은 너무 늦게 번역본이 나온거 아닌가 싶어요...

딸기 2009-03-23 13:57   좋아요 0 | URL
돈이 궁해서 요즘 책을 못 사고 있는데, 말씀하신 책은 아무래도 사서 읽어봐야겠어요.
이 책은 좀 늦게 번역본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나와준 게 어딥니까. ^^
 
헝그리 플래닛 -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피터 멘젤 외 지음, 홍은택 외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질문이다. 이 물음에 한마디로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인들은 참 여러 가지 음식을, 참 여러 가지 방법으로들 먹고 있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먹거리가 있는가하면 글로벌하게 인기를 끄는 먹거리들도 있다. 문화에 따라 차이가 나는, 기호가 크게 엇갈리는 음식이 있는가하면 ‘먹거리 문화의 보편성’이라는 것도 무시 못 한다.
피터와 페이스 부부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주 등 세계 24개국 30가정을 방문해 그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가’를 살핀다. 과연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먹고 있는지, 사진과 글을 통해 그들이 먹는 음식물들과 조리법 등을 엿보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다.

피터는 사진을 찍고 페이스는 글을 쓴다. 이들이 만나 식사를 함께 한 가족들은 그 나라 그 사회의 단면을 보여줄 ‘대표성’이 있는 동시에, 그들만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 이야기는 책이 주는 두 번째 재미다. 호주의 애버리진(원주민) 가정, 전쟁 이후 보스니아 사람들, 아프리카 차드의 난민, 불가사리 튀김까지 먹는 중국인들, 경제제재에 짓눌려있지만 ‘그래도 삶이 있는’ 쿠바의 식탁, 그린란드 얼음땅 주민들의 외로운 사냥, 이탈리아 시칠리섬 가난한 생선장수의 삶, “항상 8분(80%)까지만 먹어라”라는 오키나와의 건강식단, 모든 먹을 것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석유부국 쿠웨이트 중산층 가정, 오버사이즈에 허덕이는 미국 가정의 살빼기 노력...
먹는다는 것은 곧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밥상은 삶과 뗄 수가 없는 것이고, 밥상 문화에는 좋든 싫든 그 사회의 단면이 들어있다. 피터와 페이스 부부는 사진과 짧은 글들을 보다 보면 세계 곳곳 사람들의 삶이 저절로 눈 앞에 펼쳐진다.

아이디어도 좋고 포맷도 좋고,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해도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는 재미난 책이다. 하지만 ‘남들은 무얼 먹나’ 재미삼아 들여다보기 위한 팔자 좋은 부부의 여행기는 아니다. 피터는 과학·환경 문제를 다뤄온 보도사진기자이고 페이스는 TV 프로듀서 출신의 작가다. 부부는 이 책 이전에도 세계를 돌며 ‘물질적인 세계’ ‘벌레를 먹는 사람들’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주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세계는 지금 다양한 것을 먹고 있다. 그런데 다양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패스트푸드처럼 국적 불명에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것들이 점점 더 퍼져나가고 있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의 지방덩어리, 당분·칼로리 덩어리 음식에 우리의 밥상을 내어줄 것인가. 세계는 지금 먹거리, 곧 삶의 기로에 놓여 있다.”

저자들은 한 가정을 찾아가 장을 보는 데에서부터 음식을 차려먹는 것까지를 충실하게 기록한다. 어느 곳에 가든, 시작은 장을 본 일주일치 먹거리들을 몽땅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가족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사진들을 넘기다 보면 비닐 포장된 음식재료, 인스턴트식품이 세계의 식탁을 얼마나 점령했는지를 보며 놀라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의 타이틀, ‘헝그리 플래닛(배고픈 세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세상엔 배고픈 사람 못잖게, 탐욕으로 배를 채우는, 먹거리가 아닌 탐욕의 ‘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지구를 갉아먹는 것은 진실로 배고픈 이들이 아니라, 더욱더 많은 칼로리를 먹어치우려 애쓰는 영양과잉의 우리들이다.

만일 피터와 페이스가 우리 집에 와서 취재를 한다면 뭐라고 쓸까. 고속 개발된 국가의 전형적인 대도시 주민,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지만 실제 집에서 밥을 먹는 시간은 거의 없는 핵가족, 첨가제 덩어리 인스턴트식품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유기농 먹거리를 고집할 돈과 의지는 모자란 현대인, 아마 그렇게 비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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