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아이스 그리폰 북스 7
스티븐 백스터 지음, 김훈 옮김 / 시공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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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리폰북스라고 돼 있는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하도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차에, 읽는데 좀 오래걸렸다. '대체역사소설'이라 해서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그냥 '가상 역사소설'이로구만.

그럭저럭 재미있고, 현학적인 양 딱딱거리면서도 재미있는 문체가 맘에 든다. 하지만 초장부터 너무 쉽게 주제 혹은 문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터에 긴장감은 확실히 떨어졌다. '20세기-핵무기-미국'을 '19세기-안티아이스-영국'으로 그대로 등치시켜 놓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 여지가 없었다.

멍텅구리 정치인들이라든가, 자기가 발견해놓고도 뒤처리를 하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천재과학자라든가, 어리버리 운 좋은 청년이라든가-- 등장인물이 도식적이다. 기찻간에서 읽기에 딱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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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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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 표지에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써 있고, 느낌표까지 찍혀 있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제목 정도는 안 들어본 이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이제야, 큰맘먹고 읽었다. 1976년에 발표됐다가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왔는데 내가 본 것은 을유문화사에서 새로 나온 책이다. 널리 알려진 책이고, 그동안 재미나게 읽었던 매트 리들리의 <게놈> <이타적 유전자> <붉은 여왕>이 모두 이 책을 바탕으로 쓴 것이어서, 정작 도킨스의 '획기적 이론'(발표 당시)은 아주 낯익게 다가와버렸다.

이기적 유전자 개념이나 확장된 표현형 개념은 수긍이 가고, 또 다양한 시뮬레이션 과정이 참 재미있는데, 정작 인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뜬금없다 싶었다. 동식물(개체)은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위해 이용해먹는 생존 기계, 즉 운반자에 불과하다--라고 결론 내렸으면 그 논리를 100% 고수할 일이지. 사회학자들에게 욕 먹을까 걱정되어 '인간의 특수성'을 억지로 꿰다 맞춘 꼴이 된 느낌. 인간의 '이타주의'를 몽땅 부정해버리면 안 되니까, 유전자 gene에 대비되는 문화적 유전자 meme의 개념을 제안한다. '인류에게 있어 소크라테스의 유전자보다 의미있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정신, 즉 meme의 전달이다' 라는 황당한 논리를 만든 셈이다.

그래도 논리적 일관성 면이나, 칼로 끊듯 불필요한 부분 잘라내고 개념 딱딱 집어내어 설명하는 것이나, 도덕성 최대한 배제하고(meme의 문제는 분명 사족이다) 건조하게 유전자의 속셈을 까발기려 한 것 따위는 아주 맘에 들었다. (여담이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기도 전부터 도킨스를 좋아했던 이유는 다른데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나 리처드 르원틴은 도킨스식의 과학낙관론에 극도로 반대하면서 '감성에 호소하는' 글들을 많이 내놨다. 그렇지만 나는, '히틀러 복제'가 무서워서 파킨슨병 환자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짓따위는 그야말로 비인도적인 짓이라는 쪽이다. 나는 '과학기술 발전에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는 도킨스의 장담에 오히려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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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최재천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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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간지에 썼던 과학칼럼들을 모은 것인데,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조금씩 재미있게 읽었다. 저널에 실리는 글들이 재미는 있지만 정작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최재천교수의 글은 그렇지 않다. 과학자들 중에 글 잘 쓰는 두 사람이, 최교수와 모씨라고 하는데 그냥들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에게건, 동물에게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정말 본받을 일이고, 또 힘든 일이기도 하다. 최교수의 글은 제목처럼 '생명이 있는 것' 모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세상의 일에 대해서도 안타까움과 연민, 애정을 듬뿍 보낸다.

동물보호론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남의 나라 식생활 왈가왈부하는 것 정말 싫다. 그 못잖게 꼴보기 싫다 싶은 것이 동물사랑 유별나게 드러내놓는 사람들이다. 동물을 괴롭히는 건 나쁘지만 동물사랑한다고 유난떠는 것도 꼴불견이다. 남는 시간 재력 다 투자해서 동네 개들 돌봐준다며 TV에 나오는 사람들 보면 괜히 밉다. 저 돈으로, 저 시간에 불쌍한 아이들 노인들이나 도와줄 일이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책의 제목만 보고 판에박힌 환경사랑 이야기나 현실과 동떨어진 자연예찬, 어설픈 동물애호론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재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공부 이야기를 잘난척 않으면서 적당히 풀어놓고, 우리 주변 내가 모르는 낯선 동물 이야기를 전혀 낯설지 않게 던져놓는다. 맘에 드는 것은 세상을 보는 최교수의 따뜻한 눈이다. 말 안되는 인간사회의 잔인한 구조는 물론이고, 전혀 합리적 근거가 없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따갑게 질타를 한다. 그렇다고 '동물이 착하니 우리도 착하자!' 식의 유치한 논리는 전혀 아니다. 최교수는 마치는 글에서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제가 자연에게 써올린 반성문들'이라고 했다.

'제가 감히 인류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함께 무릎을 꿇게 해드렸다면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너무 늦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그저 일부라는 엄연한 사실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길 빕니다'. 그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인류와 다른 생물들이 평화공존을 할 수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들끼리의 생활도 나아질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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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생 텍쥐페리 지음, 유혜자 편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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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명상가이고 시인이다. 야간비행, 사막, 바람과 모래와 별들. 그리고 실종. 영화처럼, 소설처럼, 그림처럼 낭만적인 말들로 이뤄진 그의 생애. <어린 왕자>의 문구들은 언제 읽어도 가슴에 저며온다. '네 개의 벽과 기둥이 지붕을 덩그러니 받치고 있다고 해서 모두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붕을 올리고, 벽돌을 쌓아올렸다고 모두 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 공간에 대한 추억과 애착만이 그것을 진짜 집으로 만들어주며 그곳에 담긴 인간의 영혼을 보호해준다' 저 글을 보는 순간, 내가 은근히 꿈꾸어왔던 것은 바로 저런 집을 갖는 것이 아니었던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추억과 애착이 있는 곳, 인간의 영혼을 보호해주는 곳.

생텍쥐페리는 '진실'과 '언어'의 문제, 죽음과 헤어짐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되새겨보고 기억하면서 무언가를 향해간다. 말은 다만 표현하는 것 뿐이라고, 그 자체가 진실은 아니라고,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기 위해서는 눈과 귀와 마음을 모두 열어두어야 한다고. '관습과 인습을 넘어 삶의 비극을 느낄 수 있을 때, 그때야말로 우리가 진정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비극적인 존재감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가 전하는 '작은 행복'의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걸까.

'네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한 계절은 꽃을 피우고, 한 계절은 열매를 맺고, 다시 어떤 계절은 사랑을 가져다주었지. 인생은 그렇게 쉬웠어.'

별로 오래 살지 않은 생텍쥐페리의 글이지만, 적당히 나이든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한 때를 생각하는 듯한 그런 느낌. 우습게도 나는 '벌들도 사랑 때문에 죽거든'이라는 준비에브의 말을, '별들도'라고 생각했다. 별들이 사랑 때문에 죽는다-- 엄청난 에너지로 세상에 태어나 빛을 발하다가 사라져가는 별들, 별들의 죽음이 사랑 때문이라면. 나는 상상속의 그런 이미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그냥 저 문장을 별들의 이야기로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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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1400년
버나드 루이스 엮음, 김호동 옮김 / 까치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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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버나드 루이스의 책은 필수다. '서구 중심 시각'이라는 비판이 만만찮기는 하지만, 어쨌든 루이스만큼 이슬람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풍부하게 알고, 펼쳐보일 수 있는 학자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학자로서, 저술가로서 루이스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중동 정치나 유럽과의 관계 못잖게 이슬람 사회의 제도와 조직체계, 도시생활, 문학, 미술, 건축, 음악까지 사회문화적 측면들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화질은 떨어지지만 삽화와 사진도 많이 넣었다. 사실 루이스가 아니면 서구의 어느 학자가 이란의 시와 아다브 문학, 모스크의 건축원리같은 것들을 이렇게 한 상 요란하게 차려줄 수 있을까.

그런데 공부삼아 루이스의 책을 읽다보면 그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많이 생긴다. 이 주제 저 주제를 넘나들다보니 정신이 없다고 할까. 일목요연하게 꿰어지지가 않는다. 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펼쳐놓지만 글이 그다지 아름답지가 못하다. 역시나 저술가의 책이라기보다는 '학자의 책'이어서일까. 게다가 투르크(오스만)를 중심에 놓고 있기 때문에(이것이 바로 서구적인 시각) 아랍의 본류를 놓치기가 쉽다. 더욱이 치명적인 약점은- 1976년에 쓴 것이다보니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점. 이건 작가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무려 이란 팔레비왕조 시절에 쓴 책이라니. 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의 이슬람은 그 이전의 이슬람세계와는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그것을 반영하지 못해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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