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쓴 일본사
아사오 나오히로 외 엮음, 이계황.서각수.연민수.임성모 옮김 / 창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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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역사책치고는, 특별히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되었다거나, 좌파적이라거나, 극단적인 뒤집어보기를 시도한다거나 하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사에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같은 몽매한 독자들 입장에서는, 일본사 개론서로 대단히 훌륭한 책이고, 까만 별 일곱개 정도는 주고 싶다.

책은 일본사를 선사시대에서부터 아주 최근(1990년대 이후)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그래서 책이 좀 두껍다). 단락별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을 모아 엮었는데, 최근의 연구 성과와 학계 견해까지 되도록 수록하려고 애쓴 기색이 역력하다. 고대사와 중세사에 비해 아무래도 근현대사를 좀더 열심히 읽었는데, 일본의 '주류' 역사학자들이 이 정도로 건강한 역사인식을 갖고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일본 역사는 일본 역사이고. 책을 읽다보니 우리나라의 역사교과서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생활사의 비중을 높인 것과 함께, 동아시아사(세계사) 속에서 일본의 행위를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현대 일본의 역사와 우리 역사는 워낙 얼키고 설킨 것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한국)의 역사 또한 좀더 세계사적 맥락에서 볼 수 있게 됐달까. 책을 읽으면서 첫번째 받은 느낌은, 우리나라 역사책(예를 들면 국사 교과서)이 우리 역사를 딱 국경 테두리 안에서만 다루고 있구나, 하는 거였다. 국제관계 속에서의 한국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적어도 내 기억 안에서는. 국제관계 속에서의 한국사라고 하면, 근대 이전에는 중국과의 '조공무역' 때문에 어딘가 사대적으로 느껴져서 기분 나쁘고, 근대 이후에는 일본한테 잡아먹혔으니 또한 기분나빠서, 그래서 '심정적으로' 역사책 안에서는 폐쇄적이 되고 국수적이 되었던 것일까.

근대 이후의 역사 자체가, 일본에 비해 조선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고 바깥 사정에 어두웠으니 역사서술 또한 '동아시아(세계) 속의 한국'보다는 '조선의 역사'에 그칠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겠고.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역사 서술을, 역사를 보는 눈을 울타리 너머로 좀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책은 일본 역사의 '변두리(류큐와 아이누)'를 비롯해서 민중생활사와 경제사까지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다루려 시도하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다음에는 일본 근현대사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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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1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4-10-0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그랬군요! 추석이 나에게 보탬될 때가 있구나... ㅋㅋ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이산의 책 10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 이산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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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펜스의 책 몇권을 읽었고, 아직 읽지 않은 몇권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 스펜스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역사'의 풍요로움을 생각하게 되고, 좀더 비약해서 말하자면 '인문학'이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게된다. 무엇이다 딱 잘라 말하긴 힘들지만 '과학'이라는 이름이 따라붙는 분야가 존재하듯이, 분명 인문학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스펜스가 보여주는 역사는 무엇보다 풍요롭다. 그가 유려한 문장을 통해 들려주는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가 스펜스의 책을 뽑아들 때에는 '옛날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서 손을 뻗치는 것이고, 역사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해서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본다면 스펜스는 가장 훌륭한 '역사이야기꾼'이다.

그동안 읽은 스펜스의 저작들은 모두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칸의 제국'에서는 맑스 엥겔스 에즈라파운드에서 이탈로 칼비뇨의 소설까지 이르는 서구의 다양한 저작들을 통해 서양인의 눈에 비친 중국을 그렸는데, 이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외부 세계에 대한 서구의 인식의 역사'까지 모두 아우르는 것이었다. 이번에 읽은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스펜스는 '여러가지 역사'를 아우르는 작업에 도전한다.

이탈리아인(서양인)이자 예수회 선교사(기독교도)였던 리치라는 인물의 눈을 통해 스펜스는 우선 16세기 중국의 역사를 그린다. 동시에 스펜스는 리치 시절의 유럽을 보여주고, 또한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세계 진출'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지역과 테마를 넘나드는 여러가지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기억술'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신비적으로 보이는 화제를 택했다. 리치의 '기억의 궁전'에는 무장한 전사와 이슬람교도 여인, 추수한 곡식을 들고 있는 농부와 아이를 안은 여인이 있다.

저자는 기억의 궁전 네 귀퉁이에 자리한 네 부류의 인물들과, 리치가 남긴 네 장의 그림들을 가지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16세기의 역사를 풍요롭게 구현해낸다. 스펜스가 선택한 테마들은 왕조사 중심으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중국사 혹은 국가의 역사와도 다르다. 분열과 폭력에 얼룩진 이탈리아와 문약에 빠진 중국의 대비, '이단'에 맞선 싸움과 전교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서방의 동방 진출, 예수회와 포르투갈 상선단의 동방 무역, 중국의 동성애에서 성모 신앙의 수용까지, 책에서 다뤄지는 테마들은 모두 흥미롭다. 역사를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루면서 풍요롭게 재현해내는 것은 진정 스펜서만이 갖고 있는 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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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10-1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 여인의 죽음'을 꽤 재미있게 읽었어요. 조너선 스펜스의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은데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책 고르기가 어렵네요. 이런 제게 한 권 추천해 주심은 어떨런지요? ^^;;;

딸기 2004-10-19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지금 판다님 접속중이시구나. 쫓아다니면서 코멘트 달아야지. ^^

판다님, 저도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서요, 지금부터 중국사 좀 공부해보려고... 실은 요즘 중국에 대한 책 몇가지 펼쳐놓고 있답니다. 예전에 사진 보려고 사둔 시공 아크로총서 켐브리지 중국사 한 권 있고요,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것은 명말 청초 이후이니깐... 조너선 스펜서가 쓴 마오쩌둥이랑, 벤저민 양의 덩샤오핑 책 있고요, 이것들 읽고 나면 이번에 나온 후진타오 한번 읽어보려고요(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는 스펜스의 책은 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가장 역작이라면 아무래도 '현대중국을 찾아서 1.2' 이것들일테죠. 정말정말 훌륭합니다. 혹시 안 읽으셨다면 초강력 추천! 그리고 '천안문'하고 '칸의 제국' '강희제' 모두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번에 스펜스의 '반역의 책'도 샀는데, 읽어보고 말씀드릴께요.
판다님도 중국에 대한 책 읽으시면 저한테 얘기 좀 해주세요.

panda78 2004-10-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그렇다면 현대 중국을 찾아서부터읽어볼게요. 저 책들 다 읽으셔놓고 지식이 전무하시다니 겸손이 지나치셔요. - _ -
켐브리지 중국사는 사진이 많아서 꽤 재미있을 것 같던데, 비싸더군요. ^^;;

현대 중국 읽고나면 스트롱베리님 서평 올리신 거 참고해서 다음 책을 정해야겠어요. 추천 정말 감사합니다. <(_ _)>
 
화려한 군주 - 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이산의 책 26
다카시 후지타니 지음, 한석정 옮김 / 이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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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판업계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출판사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르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나온 책이라면 믿을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출판사는 분명 있다. 내게는 '이산'이 그런 출판사다. 이산에서 나온 몇편의 책들은 모두 내게 풍요로운 독서의 기억을 선물해주었고, 이 책 '화려한 군주' 역시 그랬다.

이 책에는 '근대 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 다카시 후지타니는 "절대주의 국가의 화려한 의례와 상징들은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전제 아래(물론 이같은 전제는 에릭 홉스봄 등의 선배들에게서 나온 것이며 다카시의 독창적인 고안물은 아니다),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근대 일본의 화려한 국가의례를 조명한다. 책은 '근대 이후 국가의례의 형성'이라는 전제를 세워놓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나타난 국가의례와 상징적인 행사들을 분석함으로써 전제를 입증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카시는 전통 혹은 의례의 발명과, 그것을 발명한 메이지 시대 지배계층의 의도에 대해 '망각하기' '기억하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메이지 시절의 민중들에게 별반 중요하지 않았던 천황의 불분명한 이미지를 잊게 만들고, 새롭게 강력하고 자비로운, 따라서 충성을 바쳐야할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를 심는 것, 즉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

메이지 시대 '천황 만들기'는 두가지 단계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저자는 파악한다. 첫째는 저자가 뭉뚱그려 '패전트'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천황의 순행이다. 천황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을 보여줌과 동시에 '백성을 굽어보는 윗사람'으로서 새롭게 각인된다. 두번째는 도쿄와 교토가 각각 '능동-현대-현실의 수도' 그리고 '신비-역사-상징의 수도'로 위상이 매겨지는 단계다. 도쿠가와 막부의 근거지였던 도쿄는 막부 시절의 기억이 지워지는 '재형성의 과정'을 겪으면서 제국의 수도로 부상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필두로 한 메이지 신정부의 권력자들은 유럽의 수도들을 모델 삼아 의전의 장소들을 만들면서 도쿄를 재정비한다. 새롭게 구획된 도쿄는 막부의 기억이 탈색되고 제국의 권위가 덧입혀진 곳으로, 더이상 이전의 '에도'가 아니다. 이 새로운 도쿄에서 천황은 메이지 헌법을 하사하고, 황실 결혼식을 거행하고, 승전 기념식을 치른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봉건적 군벌체제에 익숙해있던 일본의 민중들은 '국민'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전제에서 보이듯, 분석의 목적은 분명하다. 자못 '역사적인 것'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따라서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의례와 상징들이 기실은 그닥 긴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그것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의 의도적인 고안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고, 버클리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런 탓인지 일본, 그리고 '그늘진 일본'의 정점인 천황제의 역사를 대단히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객관적 서술 만으로도 책은 충분히 비판적이다. 근대 내셔널리즘의 막중한 무게 때문에 가려지기 쉬운 의례와 상징들을 여러가지 역사기록물을 활용해 설명한 풍부함이 눈에 띈다.

일본, 그리고 내셔널리즘이란 문제에 부딪치면 항상 생각은 '지금, 우리'에게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식민주의를 비판해온 우리는, 일본의 네오내셔널리즘을 맘놓고 비판할 자격이 과연 있는가. 명백한 문제를 지적하는 데에 '자격' 운운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역사의 숨겨진 맥락을 구체적으로 되짚어보고 설명해내려는 다카시와 같은 노력이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만은 분명 사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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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10-05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인데....
올만에 딸기님 서재에 글 남기네요. 흐흐.

딸기 2004-10-05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바람구두님이다아아아아아

저 책, 재밌게 읽었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문학성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싶었어요

바람구두 2004-10-06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그런 생각했어요. 좋은 책인 건 알겠는데... 거기에 읽는 재미까지 있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요. 게으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역시 별로 미련이 없는 탓에 책을 읽고 쉽게 방기해버리는 딸기님! 사람에게도 그럴 것 같지만...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단정하기 어려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경험... 중동지역의 경험.... 솔직히 말해서 그대는 글을 제법 잘 씁니다. 책을 읽고 죄다 내버리지 말고... 세상에 기사 말고, 책으로 엮이는 글 하나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그대의 책이 나온다면 기꺼이 사서 읽으련만... 원래 칭찬을 잘 안하는 사람이 칭찬하는 건... 그냥 하는 칭찬 아니라는 거 알아주시길... 예전에 우리 잡지에 주었던 글 ... 지금 다시 읽어도 역시 좋은 글이더이다.

딸기 2004-10-0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옴머옴머... 바람구두님이 딸기를 칭찬하고 있다!
구두님, 저는 저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답니다. 글을 제법 그럴싸해보이게 쓸 수는 있지요. 대가리가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수준, 딱 그만큼만 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글을 쓰려면 노력 뿐아니라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재능을 타고 나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고 죄다 내버리는 것은 글재주와 상관없는, 다만 버릇일 뿐이지만요. 그리고 책을 낸다는 것은, 남들한테 할 얘기가 있는 사람, 즉 알맹이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지요. 저는 알맹이가 없습니다. 읽어야할 것은 산더미같고 남에게 들려줄수 있는 것은 비비탄 구슬만한 정도이니 어디 감히 책 운운하겠습니까.
구두님이야말로, 서평이나, 망명지에 올렸던 종류의 글 말고 다른 글을 써보지 그러세요. 물론 서평이나 유리병편지 모두 대단히 훌륭하고 때로는 눈물자아내지만, 구두님의 文材가 맘껏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거든요.
이상, 덕담 주고받기 끝.

사람에게도 미련이 없는 탓에 쉽게 방기해버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안 그렇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은 방기해버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의를 다하나? 기준은 없습니다. 별로 생각이 없는 탓에... 구두님의 장문의 메일에 대한 답을 아직도 보내지 않았는데요, 앞으로도 안 보낼 생각입니다. 메일로, 쪽지로 구두님과 저는 이미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대화를 나눴다고 봅니다. 그 이상은, 앞으로의, 좀더 다른 방식의 몫이고, 메일이나 쪽지의 몫은 아니라고 봅니다. 돌아가서 뵙지요.
 
제국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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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좌파의 전통이 강한 나라라고 하지만, 이탈리아 작자들의 책을 읽은 것은 아주아주 오랜만이다. 이탈리아 좌파의 학문적 경향이 어떤지는 전혀 알 수 없고, 안토니오 네그리가 제법 유명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책을 공동저술한 마이클 하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저자들은 근대-제국주의-제국주의적 (국가)주권이라는 것과, 탈근대-제국-제국주권이라는 한 쌍의 시대를 구분한다. 전자는 안과 밖, 대립, 위기와 대응 같은 '이분법'이 통용되는 시대였지만 탈근대, 즉 제국의 시기에는 그같은 이분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핵심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밖'이 없는 시대라는 것이다. 인민에서 대중으로, 변증법적 대립에서 잡종성의 관리로, 근대 주권의 장소에서 제국의 무장소로, 위기에서 부패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도전과 자본 자체의 팽창에서 오는 모순에 대해 자본은 효과적으로 대응한 나머지, 근대의 국경을 넘어버렸다. 오늘날의 제국은 무정형으로 편재하는, 존재다--
저자들이 묘사하고 있는 '제국'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영화 '매트릭스'에 표상된 세계를 생각했다. 인간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매트릭스의 제국은, 네그리의 '제국'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우화가 아닐까 싶다. 스스로 성장하고, 동시에 위기를 만들어내는 제국. '소통'이라는 무정형의 인간행위(새로운 형태의 노동)를 통해 팽창하는 제국.
그렇다면, 이 제국에 맞선 '저항'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좀 옛스런 말투처럼 들리지만, 이들은 공화주의적 원칙을 내세운다. 이 공화주의의 첫번째 층위는 도주, 탈출, 그리고 유목주의다. 안과 밖이 따로 없는데 어디로 도주를? 이들이 말하는 탈주의 개념에는 지리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동시에 포함되며,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온갖 종류의 '삐딱해지기'가 모두 포함된다. 제국의 소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주권국가의 국경을 넘어버리는 일(이동 노동)이라든가, 젠더에 따른 관습적 구분을 벗어던지는 새로운 탈인간화 같은 일.
자본의 전지구화(無장소)에 맞선 21세기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의 형태로 노동의 이동성(無장소)을 제시한 것은 설득력있었다. 비록 현실에서는 쫓겨난 이들의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노동의 이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거기에서 전복의 가능성을 열어보이는 네그리의 '구멍찾기'는 재미있었다. 여기에다가 '탈출'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패셔너블해 보인다. 팽창할대로 팽창한 제국의 생산 메커니즘을 러프하게나마 그려보인 것도 좋았다. 지난 세기 좌파들의 금과옥조였던 변증법을 거부하라고 선언하는 것도 쌈빡해보인다.
그런데! 우리 모두 이민노동자가 될 수는 없잖아. 어디에서? 움직이는 자본의 제국은 '밖으로의 도주'를 허용치 않는데, '무장소의 저항'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단 말인가. 허무한 도주를 벗어날 길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네그리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또다시 허무하다. 어차피 책을 통해 '나의 저항'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길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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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서남동양학술총서 20
정문길.최원식.백영서.전형준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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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티의 문제는, 참 뭐라 단언하기 힘들다. 누구는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고, 이건 오만가지 책들에서 인용되는 걸로 봐서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상상 나부랭이'로 치부해버리기엔 덩치가 너무 크다.
하지만 '민족이란 무엇이다'(그것을 '국민'으로 번역하든 '민족'으로 번역하든)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해도, 분명한 것은 있다.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국민, 민족, 부족, 종족, 인종, 종파 등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규정된다. 이름을 지은 사람이 타인이든 자신이든 간에, 이런 이름들이 따라붙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긴 힘들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떤 이름이 붙건 간에,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삶(사회-문화)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셔널리즘 내지는 네이션의 테두리에 고정된 사고를 버리자고 백날 말해야 무의미하다. 이런 원론은 대가리가 있는 족속이라면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다(그나마도 못 알아주는 꼴통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생각을 진정으로 네이션의 테두리를 넘어 확장할 수 있으려면, 네이션의 테두리 안에 가둬진 자신을 해방시키고 테두리 밖의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이 테두리에 갇혀있음으로 해서 나의 인식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또 나의, 그리고 우리가 테두리를 고수함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피해를 입는지를 알아야 한다.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는 좀 학술적인 책이다. 어떤 이에게는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셔널리즘의 테두리를 좀 벗어나고픈 사람에게는 반드시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
내 얘기를 하자면, 내셔널리티의 테두리에서 내 인식을 해방시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무슨 얘기냐, 울나라의 꼴통 우익보수파들이 구역질난다는 의미다. 모든 것을 국수적으로 취급하는 재수없는 종족들이 보기 싫다는 그런 의미에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이런 내셔널리즘의 테두리는 내 머릿속에서도 당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아시아? 좋다, 아시아. 누가 뭐래도 나는 아시안이다. 국경을 넘어(울나라는 그나마 제대로 된 국경조차 없지만) 글로컬하게 인식을 확장시키자--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네이션의 테두리 안에서 동아시아를 사고할 경우 '중국-한국-일본-동남아시아 기타등등 여러나라' 이렇게 밖에는 머리가 안 굴러간다는 점이다. 아시아는 나라 이름을 주욱 열거해놓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고, 또한 개별 국가들의 총합과도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아시아를 '아시아 국가들의 총합'으로 볼 경우, 네이션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집단, 많은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그 특수성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을 뿐더러, 그들을 아예 배제해버리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엄연히 실존하고 있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없애버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강자의 논리대로 테두리를 긋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동아시아? 동북아시아라 하면 보통 한-중-일을 지칭하는데, 이 경우 명백히 중화문화권이었고 동남아 국가들과 역사적 배경이 다른 베트남을 사상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나라 이름 부르기'로 만들어 버리면, 재일교포와 조선족 같은 한반도 출신 이민자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지역 강자'(때로는 중국 때로는 일본)의 그늘에 가리워져 버린다.

책은 그렇게 가리워져버렸던 집단을 재조명하고 있다. 타이완 섬에 살던 원주민들은 청 말기 중국의 이주민들 때문에 한차례 식민주의를 겪었고, 일본과 중화민국에 의해 잇단 지배를 받았다. 우리가 '한때 자유중국'이라 불렀던 그 섬의 이야기를 우린 제대로 알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한때 그 섬을 '자유중국'이라 불렀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반공주의가 맹위를 떨쳤기 때문에 자의반타의반 '중화민국 국민'으로 정체성을 고정시킬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의 화교 이야기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2000년 첸수이볜의 승리와 타이완의 '타이완화'를 보면서 갖는 복합적인 상실감에 대해서는 물론 알지 못한다.
뿐만인가. 일본의 근대성을 논할 때,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논할 때 일본과 아시아국가들의 관계만 보게 될 경우 일본 내부의 피식민지들, 아이누와 오키나와는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류큐국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미국 점령지에서 다시 그들 스스로 '일본인'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 따위는. 티벳은 또 어떤가. 중국 내 숱한 '회족', 변방의 회교도들은 어떤가. '나라이름 부르기'에서 떨궈져버리는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책은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 한국내 화교, 재일교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짦은 논문을 묶어놓은 형태로 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 너무 학술적이거나 시의성이 없는 것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인식의 틀을 조금이나마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네이션의 틀을 머리속에서 깨뜨리기 위해서는 우선 틀 밖에 '버려졌던' 사람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과 함께, 책에서 재밌었던 것은 '한반도의 실험'으로 제안된 부분이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는 동아시아의 블럭화가 중국-일본 사이의 선점 경쟁으로 엇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선 남북 화해-경제 블럭화를 통해 중-일이 못 벗어나고 있는 내셔널리즘의 틀을 부수면서 '새로운 동아시아 주의'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중요한 것은, 남북 화해 역시나, 국가주의를 벗어나 우리가 스스로를 '주변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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