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스티븐 런치만 경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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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를 줄까, 네개를 줄까 망설였다. 고민 끝에 별 네 개. 이런 종류의 '교양서적'을 읽는 것에 별로 익숙치 않아서일까, 재미는 있었지만 이 책의 '질'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일단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해야하려나.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최후'를 가져왔던 전투와, 그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다. 제목에 걸맞게,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을 꽤 정성들여 묘사했다. 도시의 지도와 성벽의 구조, 병력 배치 따위를 상세하게 설명해놓아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당시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오스만제국의 초기 역사도 간략하지만 정리가 잘 돼있고, 오스만 이후 무라드 1세까지 이어지는 술탄들의 면면을 깔끔하게 묘사했다. 콘스탄티노플 점령 이후 메메드2세의 전후처리와 동로마제국쪽 인물들의 후일담까지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서유럽 중심의 역사'를 배우느라 이름만 듣고 지나갔었을 '동로마제국'의 이야기라는 점에도 점수를 주고 싶다. 저자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담담하게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서도, '헬레니즘의 보루'가 역사의 폐허가 되고말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는다.   

여러가지 장점이 있는 책인 반면, 당시의 역사를 구성했던 인물들에 대한 설명은 꽤 상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메메드2세에 대해서는 너무 조심스럽게 언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저자들이 메메드2세를 '집착이 강하고 잔인한 인물'로 평가절하하는 것과 달리 런치만은 그를 제법 능력있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메메드2세를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책의 테마를 만든 인물임을 고려할 때 충분치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이상했던 점은, 중간에 예언자(무함마드)의 예언을 인용한 부분. '이삭의 아들들'로 되어있는데, '이스마일의 아들들'이 잘못 적힌 것이 아닌가 싶다. 문맥으로 봐서 도저히 맞지 않아 의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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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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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서평' 거리가 될 만한 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신문이나 방송 기사에 대해서 '미디어 비평'이라는 장르가 정착한지 오래이긴 하지만 이 책을 '책'으로 놓고 보면, 신문에 실렸던 칼럼들을 묶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맘먹고 서평을 쓴다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중에는 관심거리 내지는 논란거리가 될만한 것들이 많았고, 나 개인한테 던져주는 생각거리들도 많았다.

개혁. 개혁이라는 말이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분명 어떤 분야에서든 '개혁'은 의미가 있고 필요한 작업이다. 모순투성이 우리 사회를 고치고 바꾸겠다는데, 사회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개혁이라는 말 자체에 반기들고 나설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개혁이라는 말은 또한 언제부터인가 무언가 특정한 작업을 지칭하는 일종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렸고(비록 분야에 따라 의미는 다를지언정) 이 단어의 신선도도 많이 떨어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혁의 덫'을 논한다. 아직 개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마당에 덫이라니! 하고 흥분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가리키는 '덫에 걸린 개혁'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뜯어고치기'에 한정돼 있으니, 그를 조선일보 식의 보수우파로 몰아붙일수는 없다. 오히려 책은 '제대로 된 개혁'을 해보자는 얘기로 가득차 있다. 다만 '개혁'의 잘못된 방향을 꼬집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개혁의 구체적인 모습을 충분히 제시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뿐. 이 점은, 원고지 몇장으로 분량이 한정돼 있는 신문 칼럼의 속성상 어쩔수 없는 한계였다는 것도 인정해주자.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밟아온 과정 혹은 인물에 대해 '섣불리' 말하기가 참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나는 '혁명'과 '변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배들이 목청 터져라 외쳤던 두 단어는 옛소련의 붕괴와 함께 물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저 두 단어가 사라진 자리를 '개혁'이라는 어정쩡한 용어가 메꾸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 보고들었던 개념들, 역사관들은 아직까지 내 머리속에 강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나는 그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박정희 정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꿔 말하면 한국의 '개발독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장하준교수는 개발독재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질타하고 '재벌구조 해체'가 만병통치약인양 주장했던 일군의 '경제개혁가'들을 거세게 비판한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 개발독재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을 재비판하고 ▲ 개발독재의 후유증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미국식/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최근 몇년간 나의 인식은, 굳이 정리해서 말하자면(아직 제대로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개발독재가 당시의 조건에서는 유효한 발전전략이었다는 것, 박정희 정권의 공과는 따로 떼어놓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 우리 국민 모두가 개발독재의 직간접적 수혜자였다는 쪽으로 변해왔다. 재벌체제 또한 마찬가지다. 문어발 경영의 문제점은 이미 모두가 다 아는 것이지만, 개발독재와 동전의 양면을 구성하고 있는 재벌경영 그리고 국가주도형 경제가 발전의 동력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본다.
작년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문화일보에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인터뷰를 실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나는 김우중이라는 사람을 편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도망자 처지로 인터뷰에 응했던 그 사람의 말들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IMF 경제위기의 수습역을 맡았던 김대중 정권이 자신을 '용서'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물론 그릇된 판단이었다. 이미 그때는 개발독재의 시대는 지나간 뒤였다는 것을 김우중은 몰랐던 것이다. 정부관료와의 결탁을 통해, 대우그룹의 재정적 문제 쯤은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그렇게 판단했던 것이다. 김우중 본인도 자신의 판단이 시대를 읽지 못한 것이었음을 인정한다(그가 자신의 잘못들을 '반성'했는지와는 별개로). 또한 그는 "대우그룹을 해체했던 것처럼 현대그룹을 해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생각해볼 여지가 많았던, 어찌보면 의미깊은 말일 수 있었다. 비록 현대그룹은 안팎의 여러가지 사건들로 이미 해체의 과정을 겪고 있었지만.

어쨌든 시대는 변했다. 지금 개발독재시절의 경제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바보같은 사람은 없다. '파이를 키워줬던' 재벌들을 무조건 두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장하준은, 재벌들이 파이를 키워줬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들이 어떻게 파이를 키웠는지, 그들이 파이를 키울수 있도록 국가가 어떤 정책을 펼쳤었는지, 그때의 문제점을 어떻게 고치고 장점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그가 비판하는 '잘못된 개혁'이란, 시대가 변했다는 이유로 그시절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비난하면서 그보다 더 못할 가능성이 높은 미국식 자본주의 방법을 무조건 들여오는 류의 조치들이다.
장하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나는, 개발독재(그시절 사회생활을 하지 않은 어린아이였던 나로서는 그냥 수혜자일 뿐이지만)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입장에서 한걸음 물러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관찰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됐다. 적어도 IMF식, 영미식 '개혁'이 많은 부분 잘못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장하준이 제시하는 수치들 또한 새롭거나 숨겨져있던 것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하준의 지적에 공감하는 나를 보면서 또한 헷갈려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신경쇠약의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직도 죽은 박정희와 싸우고 있는 모양인데, 박정희 정권의 공과 중에 어느덧 '공' 쪽에 눈을 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것. 진보세력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고 노무현정권의 열광적 지지자도 아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의 보수화를 경계해야 할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자각같은 것일지도. 과거를 부드러우면서도 냉정하게 보되, 기준이 닳아없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 장하준의 이 책은, 우리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들과 함께, 그런 고민까지 나에게 던져줬다.

서평 거리는 아니라고 했지만 어쨌든 책은 책이고 리뷰는 리뷰다. '필자'로서의 장하준에 대해 말해보자면, 외국에서 주로 공부하고 지금도 외국에 체류중인 학자치고는 깔끔하게 글을 쓰는 편이라고 해야 하려나. 이 신문 저 신문에 냈던 글들의 내용이 엇비슷해서 지루했던 감도 있지만 그래도 논지가 명확해서 좋았다. 97년말, 혹은 98년 초였던가. 외국 신문에 실린 장하준의 칼럼을 번역해서 국내신문에 싣는 일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그의 글을 접했다. 영문학 전공자도 아닌 주제에 영어 문장의 질까지 들먹일 수는 없겠지만 역시 인상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그가 국내에 전혀 알려져있지 않아서 사진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다. 어쨌든 그 뒤로 그는 꽤 알려진 인물이 됐고, 특기할만한 가족들을 둔 덕분에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만으로는 그의 '학자적 수준'까지 가늠해보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좀 다른 종류의 책이 나온다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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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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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삼아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문턱'을 깨닫게 된다. 한가지 주제나 상황에 대해 쓰여진 책을 3권 읽으면 감이 잡히고, 10권 정도 읽으면 좀 알겠다 싶은 걸 보니 '10권'이 내게는 문턱인 셈이다. 그런데 이젠 문턱을 넘었을 때가 되었는데도 도통 내 머리로 '상상' 내지는 '재연'을 해내기 힘든 종목이 있다. 바로 물리학이다. 과학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내가 감히 깜이 오네 안 오네 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학적 상상력의 부재'는 자못 심각하다.
뭐, 자괴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 세상엔 여러가지 사람이 있고 여러가지 관심사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물리학자'라는 직업도 따로 존재하고, 더불어 물리학 책을 쓰는 사람이 생겨나고, 그걸 읽는 독자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나는, 물리학자들이 우주만물의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이제까지 알아낸 것이 대체 뭔지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일반인을 위한 과학'류의 책들을 읽어주는 독자다.
나같은 독자에게 '과학적 상상력'의 부재는 어떤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다 주느냐-- 과학의 성과가 갖고온 사회적 영향력, 이런 것들은 내 머리로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나는 빛이 입자이자 파동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이중 슬릿의 그림 따위는 너무나 많이 봤지만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고!), 에너지와 질량이 어떻게 호환이 되는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으며(아인슈타인이 불세출의 천재이자 시대의 영웅이라는 것은 백번 인정한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왔다갔다 하고 공간이 휘어지고 하는 것은 죽어도 이해를 못하겠단 말이다. 그러니, 10차원 11차원에 공간을 휘어감고 찢었다붙이는 초끈이론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물리학 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한번씩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수퍼스트링. 내겐 돌부리나 목에 걸린 가시같은 존재였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하필이면! 저 초끈이론에 대한 책이다. 위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갈팡질팡하는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까만별 10개를 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초끈이론을 완전히 이해했느냐고?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읽었던 통일장 이론을 다룬 교양과학서 중에서는 가히 최고였다.
책은 뉴턴 물리학을 뒤집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적어도 내가 보아왔던 책들 중에선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어떤 선생보다도 멋지게, 기가막히게 웃기는(코믹하다는 것이 아니라 상황설정이 재미있다) 비유를 들어 상대성원리를 설명해낸다. 예시한 사례와 그림을 보다 보면 어쩐지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같은 기분이 든다. 책 전반부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탄생과정, 기본개념들을 설명하는데, 본론 못잖게 재미있었다.
이 책은 이론물리학의 첨단 조류를 다루고 있다. 별 관측하고 플라스크 들여다보는 과학자들의 얘기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적절한 수학적 방법을 찾는 이론물리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 과정을 포함해서, 초끈이론의 탄생과 그동안의 발전을 생생하게 소개해준다. 대체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해서 그런 걸 알게 됐을까, 과학자들은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과학 문외한들이 궁금해하기 마련인, 물리학자들의 연구 방식(생각을 전개해가는 방식)에 대해 알려준다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이다. 덕택에 구체적인 과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끈이론 학자들의 논리를 멀찍이 떨어져서나마 따라갈 수가 있다.
더불어 막강하고 훌륭한 번역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책을 읽는 재미 중에 무시 못할 부분이, 괄호 안에 들어있는 옮긴이의 설명을 읽는 거였다. 끈이론을 공부할 당시의 경험을 예시해가면서, 위트를 섞어가며 저자의 말을 풀이해 들려주는데 이게 또 쏠쏠히 재밌었다.

기본적으로 난해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책이 워낙 재미있어서, 읽는동안 내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 이런 책이 좀더 나와준다면, 어쩌면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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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1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턱은 이미 넘으신 것 같은데요?^^

balmas 2004-10-18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서평을 참 재미있게 잘 쓰세요.^^
왠지 이 서평도 뽑힐 것 같은 기분 ...(부러워라^^)

딸기 2004-10-1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아직도 문턱을 못 넘었다니깐요 ^^
발마스님, 칭찬 고맙습니다. 발마스님이야말로. ~~

마냐 2004-10-18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못하겠지만...딸기님이 "당신에겐 안 맞을 책"이라는 식으로 뭐라했는데...여봐란듯이 잘난체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샀지. 이게 뭔 심뽀인지. 암튼 당근 내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같은 책. 사실 첫장 이후 넘어가보지도 않았지. 근데..이글은 왜 이리 낯익지? 혹시 딸기네 있던 글인가.

딸기 2004-10-1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건 오해예요. 나는 그런식으로 얘기한 게 아니라구요. 마냐님이 이 책 빌려달라고 하고, 거사님이 '쉽게 볼 책 아니다'라고 해서, 내가 '마냐님이 빌려달라는 이유는 (나하고 똑같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러저러해서 아무튼 읽고 싶다, 이런 거였다고요.

아무튼, 그때 사놓고 나도 이제야 읽었다니깐. ㅋㅋㅋ 그러니 벌써 몇년이 지난 건가. 산같은 책이라고 거사님이 그러셔서 나도 쫄았는데 읽다보면 재밌어요. 초강추.

딸기 2004-10-19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기억 못하겠지만~' 이라는건 좀 웃기는걸요. 원래 기억하는 건 나의 일 아니었나. 흐흐. 어차피 마냐님도, 내가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거면서. ^^

에레혼 2004-10-1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부터 <엘레건트 유니버스>란 제목을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적어놓았는데(제목이 무척 엘레강스하잖아요?^^), 아직 도전 못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문턱의 높이가 얼마쯤인지도 가늠 못 하고 있으니, 스트롱베리님의 몇 년보다 더 세월이 지난 뒤에야 이 책의 첫장을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ㅜㅜ

깍두기 2004-10-19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찜이에요,찜. 너무 재밌을거 같아요. 중3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본 이후에 천문, 물리계통의 교양도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건만 코스모스보다 어려운 책은 절대 이해 불가능입니다. 이건 물론 코스모스보다 당근 어렵겠지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하셨죠? 저 님의 말씀을 믿고 이 책 살테여요. 책임지세요^^
(저랑 같은 고민을 하셨네요ㅎㅎ. 아랫글을 보니^^)

나같은 독자에게 '과학적 상상력'의 부재는 어떤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다 주느냐-- 과학의 성과가 갖고온 사회적 영향력, 이런 것들은 내 머리로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나는 빛이 입자이자 파동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이중 슬릿의 그림 따위는 너무나 많이 봤지만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고!), 에너지와 질량이 어떻게 호환이 되는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으며(아인슈타인이 불세출의 천재이자 시대의 영웅이라는 것은 백번 인정한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왔다갔다 하고 공간이 휘어지고 하는 것은 죽어도 이해를 못하겠단 말이다.

딸기 2004-10-19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지못할 고개를 넘어보고자 과학책을 몇번씩 들여다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고민을 이해할 겁니다. ^^ 저 책 재미있으니깐, '끈기를 갖고' 보세요. '만물이론'을 다룬 책들을 몇권 봤는데, 보통은 상대성이론 설명하는데 한참, 그리고 최근의 연구결과 나열하는 식이었어요. 저 책은 저자가 초끈이론 신봉자이다 보니 아무래도 설명이 구체적이죠. 초끈이론이 현재 학계에서 과연 그같은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지는 논외로 하고, 어쨌든 재미는 있습니다.

마냐 2004-10-20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노무 기억력. 칫. 아...이노무 건망증..이 아니라 뇌용량 한계.

딸기 2004-10-2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노무 기억력도 요즘 시원찮다 못해 의심스러운 수준이긴 해.
게다가 요샌... 흰머리... 탈모... 잔주름... ㅠ.ㅠ

마냐 2004-10-2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같이 늙어가서 다행이다.

딸기 2004-10-2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도 흰머리 생기는 중? 난 아주 미치겠또...
 
물전쟁
반다나 시바 지음, 이상훈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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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닥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역시나, 머릿속으로 '물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아는(안다고 착각하는) 것과, 구체적인 사실들이 적시된 보고서를 읽는 것하고는 다르다. 이 책은 반다나 시바가 전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물전쟁에 대해 사례를 들어가며 적은 보고서다.

나 또한 이른바 '생수'를 사먹었더랬다. 무엇이 살아있는 물이고 무엇이 죽은 물이냐. 반다나 시바가 다루는 '물전쟁'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물을 상품으로 보는 '세계화된' 시각(가치관)과 물을 자연의 선물로 소중히 여기는 생태정 가치관 사이의 전쟁,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물 파는 기업'과 지역사회 간의 전쟁. 흐르는 강물을 놓고 싸우는 국가간의 전쟁, 물 관리에도 '중앙집권'을 도입해 결국 생태계를 파괴해버리는 정부와 '물 관리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지역사회 간의 전쟁.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갈길은 너무도 멀기 때문에 책을 읽고 오히려 아득해졌달까. 책은 인도의 '파괴와 저항'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케이스스터디라고 보기엔 '논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정도라도,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일단 반다나 시바의 이름 때문에 책을 골랐다. 반다나 시바를 처음 접한 것은 반세계화론자 몇명의 글을 엮은 책에서였고, 그 뒤에 중앙일보에서 '21세기 지식인지도'를 연재했을 때 다시한번 이름을 확인하게 됐다. 그 뒤 반다나 시바의 이름은, '반세계화운동'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세계사회포럼이라든가, 환경회의 같은 데에는 어김없이 그녀의 이름이 보였다(내 친구 중 하나는 반다나 시바와 아룬다티 로이가 인도가 낳은 가장 유명한 여성들이라고 주장하는데, 인디라 간디가 이 얘기를 들으면 몹시 서운할 것 같다). 아쉽게도 '물전쟁'이라는 이 책은 반다나 시바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을 해놓고 있지 않기에, 그녀에 대한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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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0-08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아나키즘,생태주의, 협동조합 등에 관심을 가졌을 때, 알게 된 인물이죠. 핵물리학자였다던데, 환경과 여성운동으로 관심을 돌렸다고 하지요. 요즘엔 아룬다티 로이가 유행하나봐요. 권하는 사람이 정말 많더군요. "살아남기"와 "에코페미니즘"(공저)가 그녀를 더 많이 알게 해줄 좋은 책들이라고 봅니다. 또...세계화와 관련지어 관심이 있으시다면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도 추천하고 싶네요.
아, 초면에 죄송합니다. 저도 이 책을 알게 되어서요...

딸기 2004-10-0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면에 계속 죄송해주십시오. 훌륭한 도움말 고맙습니다. *^^*
아룬다티 로이는 벌써 오래전에 '작은 것들의 신' 나왔을 때부터 알게모르게 유행(??)하지 않았던가요? 저의 경우는, 그 소설을 나오자마자 사놓고 결국 안 봤습니다만, 제 친구 중 한 녀석이 아룬다티 로이를 몹시 좋아해서 언제나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녀석은 무려 인도까지! (물론 업무차 간 거였지만) 가서, 아룬다티 로이를 만날거라고 뽐내더니, 정작 로이의 남편만 만나고 왔답니다. ^^
저는 세계화에 특별한 관심은 없지만 세계가 세계화된다고, 혹은 되었다고 하니... 관심 여부를 떠나서 결국 존재의 기반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여성과 환경 그리고~~' 이 책은 한때 어디선가 굴러들어와서 책꽂이에 꽂아뒀다가, 제목이 넘 길어서 그냥 버렸는데... ㅠ.ㅠ 아깝군요. 읽을 걸 그랬네요...

비로그인 2004-10-0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컥... 그냥 절 주시지 그랬어요. 헤헤...
친구분이 환경이나 여성운동... 하여튼 시민운동에 관계하시나요? 올해 초에 간 인도라면... 올해 초의 세계사회포럼을 말씀하시는 건가....저는 로이의 이름을 올해 갑자기 많이 듣게 되어 알게 되었는데, 읽은 책은 하나도 없어요. 저는 원래 많은 사람들이 권하면 권할수록 안읽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

딸기 2004-10-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 친구는 여성 -_- 에게 관심이 많지만 여성의 관심을 별로 못 받고 있는 녀석일 뿐입니다 ^^ 올해 초에 간 것은 아니고... 작년인가 갔던 것 같아요. 아주 로이한테 홀딱 빠져있었답니다, 그 친구.

panda78 2004-10-1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은 것들의 신 몇년 전에 사놓고는 아직도 안 읽고 있는데.. ;;;

딸기 2004-10-1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러시군요! 반가워요. >.<
 
왕 여인의 죽음 이산의 책 22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재정 옮김 / 이산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마이리뷰를 써볼까 하고 '왕여인의 죽음'을 검색해보니 두 종류의 책이 나온다. 하나는 이화여대출판부에서 예전에 냈던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이산에서 펴낸 이 책이다. 내겐 '왕여인의 죽음'이라는 책이 두 권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를 갖고 있는데, 사정이 좀 있었다. 처음에 이대출판부에서 나온 책을 샀는데-- 허거걱 번역도 엉망이고 책도 너무 구식이어서 읽을 기분이 안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던 차에 후자를 어찌어찌 구하게 됐다(그렇게 해서 이산의 제법 훌륭한 버전으로 책을 읽게 된 셈인데, 말 나온김에 번역 얘기하자면 이 책의 번역은 꽤 훌륭해서, 읽을 때에 술술 넘어갔다).

스펜스의 책은, 언제나 내겐 별 다섯개다. 이 책도 마찬가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동안 읽은 스펜스의 책들이 모두 까만별 다섯개짜리였는데 이 책에만 별표를 줄여버리면 (책이) 의리없다 할까봐 다섯개를 준다. 스펜스의 저작들 중에서 이 책은 '소품'에 해당된다. 오랜시간 공들이고 공들여, 학문적 성과를 총동원해 쓴 책은 솔직히 아니다. 분량이 적은만큼 빨리 술술 읽힌다. 책의 배경은 산둥성 탄청현, '명소도 없고 영웅도 나지 않은' 평범한 고장, 그러나 평범하다 하기엔 너무 못살고, 지지리 고생많았던 곳. 때는 명말 청초, 정권교체기답게 수탈과 혼란과 민중의 간난고초가 극에 달했던 시기. 저자는 탄청현의 공식 기록인 '탄청현지'와, 지역 벼슬아치가 남긴 기록, 그리고 푸쑹링의 '요재지이'라는 세 가지 자료를 기본으로 해서 17세기 탄청 사람들의 고생스런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요재지이'라고라고라... 이렇게 요상스런 소설을 '사료' 마냥 버젓이 제시해놓은 데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삼백년전 탄청 사람들의 꿈과 판타지까지 역사의 일부로 포괄하고 있다는 것만 얘기해두자.

별다섯개의 두번째 이유. 역사를 '힘센 자들의 기록' 혹은 '영웅의 이야기'로 보는 서술방식을 줄곧 거부해온 스펜스답게, 이 책의 주인공도 그저 '보통사람들'이다. 책에 나온 인물들 중에는 순악당 무뢰한도 있고 현명한 과부도 있고 무능한 지식인도 있지만, 그래봤자 뽀다구 안 나는 사람들이다. 다른 역사책 같았으면 결코 등장하지 못했을 사람들.

세번째, 두번째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왜 하필 왕여인인가. 다른 사내와 바람나 남편 버리고 도망갔다가, 결국 되돌아와 남편에게 살해당한 왕여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이 여인은, 타이틀롤임에도 불구하고 뒷부분에만 등장할 뿐이다. 그녀의 죽음이 특별히 의미가 있는가? 혹은 유독 비참한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라고 왕여인이 없었을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혹은 지금도 60억인구의 절반 중에는 수많은 왕여인이 있다. 그리하여 별 다섯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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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0-0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때 무진장 읽고팠던 책인데..까먹고 있었네요.

딸기 2004-10-08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길지 않아서, 술술 잘 읽혀요. 나조차도 불과 하루에 다 읽었다니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