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북라인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자인 김정란교수는 이 책에 대해 '먹을 수 있는 철학책'이라면서 '철학지망생이었던 한 명의 작가가 써낸 매우 흥미로운 철학요리서'라는 설명을 붙였다. 벌써 지난 봄에, 이 책의 앞부분을 읽다가 그만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옆의 선배 자리에 쓰레기처럼 쌓여 있던 더미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이 책을 찾아냈다. 알고보니 그 더미는 내 '쓰레기들'이었는데. 책상과 책상 사이의 좁은 틈을 기준으로 '내 세상'과 '타인의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규칙이 많고 꼼꼼한 사람들의 얘기인데도 난 내가 그런 사람인줄 착각하고 있었다.

'장 콕토는 자기는 개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경찰 고양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양치기 고양이라든지 사냥 고양이, 장님 길잡이 고양이, 서커스 고양이, 썰매 끄는 고양이도 없다. 고양이는 명예를 걸고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서 제일 맘에 드는 구절이다. '명예를 걸고'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로 작정'했다니! 존재 그 자체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자만이 저런 '명예'를 운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설픈 의식 따위를 벗어던진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 바로 고양이에게 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느슨하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데, 앞의 '개와 고양이'처럼 두개씩의 대립항으로 여러 얘기를 풀어간다. '대립'은 단순하고 재미있지만 야박하고 극단적이고 풍요롭지가 못하다. 어쨌든 투르니에가 골라놓은 대립쌍들 중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꽤 있다. '지하실과 다락방' '오리나무와 버드나무' 같은 것들은 이 작가의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통찰력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어떤 지하실에든 숨겨진 행복의 약속이 있는 것이다. 한 집의 살아있는 뿌리가 지하실 안에 박혀 있다. 다락방에서는 추억과 시가 떠다닌다. 지하실의 상징적 동물은 쥐이다. 그런가 하면, 다락방의 동물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새 올빼미이다'

어차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처지에, 프랑스의 지하실과 다락방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집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지하실과 다락방이 있을테니까. 숨겨진 행복의 약속이 있는 자리와, 추억과 시가 떠다니는 자리. 추억과 시의 자리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붙여둔 것이 철학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놓으려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결리기는 하지만.

당신은 목욕을 좋아하는가, 샤워를 좋아하는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중에서는 어느 한쪽을 쉽게 골라낼 수 있겠지만(하긴, 요샌 트랜스젠더들도 있군) 목욕 쪽인지 샤워 쪽인지, 유목민인지 정착민인지, 일차적인간인지 이차적 인간인지, 우파적 인간인지 좌파적 인간인지, 관념론자인지 리얼리스트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나를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렵지만 재미있다. 나는 낙관론자, 좌파적 인간, '인류 전체에게 말을 거는 넓은 정신의 소유자'를 꾸준히 동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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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4-11-1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운빈현님... 실은 지금 제 서재에 문제가 있어서 말이죠... 저거 옛날 책 읽고 옛날에 쓴 서평이예요. 뭔가 고장이 나서인지, 복구된 서평들이 제대로 안 올라가서 어지러워요... 저 책이 다시 나왔군요. :)

브리즈 2004-11-1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 님의 리뷰는 언제 봐도, 참 시원시원하네요. 공감이 가고 매력적인 생각들도 가득하고요.

가령, "집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지하실과 다락방이 있을테니까. 숨겨진 행복의 약속이 있는 자리와, 추억과 시가 떠다니는 자리. 추억과 시의 자리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붙여둔 것이 철학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놓으려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결리기는 하지만"..

또 하나, "인류 전체에게 말을 거는 넓은 정신의 소유자를 꾸준히 동경하고 있다"는 말.여러모로 곱씹게 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추천합니다. :)

딸기 2004-11-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즈님 칭찬은 정말 기분 좋다니까요. ^^

실은 저 책 때문에 그 뒤로 투르니에의 에세이집만 나오면 사버리는 버릇이 생긴 거예요. 저는 투르니에 책들 중에 저 책이 가장 좋았어요.
 
일본정신의 기원 - 언어, 국가, 대의제, 그리고 통화 이매진 컨텍스트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이매진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가라타니 고진의 책은 재미있다. 특유의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느낌마저 주는 필치랄까. 고진의 글은 술술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서평을 쓰기가 힘든 것이 고진의 책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고진의 글에 상당히 반해있으면서도 뭐라 평가하기가 참 힘들다. 그저 재미있다,고 말할 밖에는.

이 책은 내가 올들어 읽은 첫번째 책이다. 때마침 나는 일본으로 건너오게 됐고, 뭐든 일본에 대한 책을 붙잡고 공부를 해야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 그리고 '일본 정신의 기원'. 이 책만큼 어울리는 것이 어디있겠나 싶어 책을 펼쳐들었다. 책의 전반부는 제목 그대로 일본 정신의 기원을 논하는 것이어서 재미있었고, 뒷부분은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충분히 해당될,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와 대안을 언급한 것이어서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고진은 우선 보편적인 의미(서구적인 의미)의 '근대성'의 개념과 언어와의 관계를 살피고,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이 시도했던 식민지 동화계획을 되돌아본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개념을 원용해 고진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기획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뒤이어 고진은 본격적인 '일본 정신' 분석으로 들어간다. (일본정신의 기원? 글쎄, '기원'이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메이지 유신을 거쳐 성장하고 군국주의로 귀결된 일본의 근대가 어디에 기원하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같기도 하고, '고래로부터 전해오는 일본의 정신'을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된 문제가 아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고진도 깊이 언급하고 있지 않으므로 넘어가자) 고진은 '일본정신'은 바로 '변용의 정신'이라고 진단하면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신들의 미소'를 꺼내보인다. 일본의 혼령이 서양의 전도사에게 말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 이 소설은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종교관을 다루는 것을 넘어, '일본에 오면 모든 것이 일본화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고진은 아쿠타가와의 말을 받아들여, 외래적인 것이 일본으로 넘어와 일본화될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일본의 힘을 설명한다. 한자와 가나의 병용에서 보이듯 외래문화의 형식과 내용을 분리해 외래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이 공존하게 하고, 또한 상호 변화하게 만드는 힘. 이것이 일본만의 힘이냐고?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란 언제나 흐르고, 상호작용하게 마련이므로. 하지만 조선과 비교해보면, 일본 문화가 갖고 있던 '변용의 힘'이 더 컸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자와 가나의 병용을 놓고 일본문화의 '변용적 특성'을 설명하는 것은 고진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고, 일본정신을 논한 다른 저술들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정작 책이 재미있어지는 것은 책의 타이틀을 좀 벗어난 듯한 주제, 즉 '투표라는 형식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점검하고 있는 책의 후반부다. 아쿠타가와의 소설을 통해 일본정신의 일단을 보여줬듯, 이 장에서 고진은 또다른 단편소설(기쿠치 칸의 '투표')을 통해 '대의제'의 한계를 논한다. 맑스와 칸트를 좋아하는 고진은 이 책에서도 여러가지 철학적 개념들을 들어 민주주의의 한계를 말하지만 논지는 명확하다. 개인이 다른 개인을 진정으로 '대표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며,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은 고진에게는 철학적/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뒤이어 고진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대안으로서 시민운동의 형태를 띈 참여민주주의의 방안(예를들면 시민통화 개념이라든가)을 모색하는데 이 부분은 발상은 재밌지만 다소 나이브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이 책은 지극히 '가라타니 고진的인' 책임에는 틀림없다. 책 말미에는 고진이 언급한 단편소설들 전문이 나와 있어 또한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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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평전
벤저민 양 지음, 권기대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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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덩샤오핑이라고라고라... 덩샤오핑의 평전이라고라고라...

덩샤오핑. 너무 거대한 이름이라서, 책을 손에 쥐기까지 우습게도 나는 조금 쉽지 않은 여러가지 생각의 단계들을 거쳐야 했다. 마오쩌둥과 함께 현대중국을 만든 지도자, 13억 중국의 현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개혁개방의 설계사',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장강을 헤엄쳐 건너 세계를 놀라게했던 작은 거인. 덩샤오핑이라는 인물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과연 이 사람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또한 어떤 책을 읽은들 이 사람의 진면목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섣부른 회의도 있었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는 마오쩌둥이지만 가장 고마워하는 지도자는 덩샤오핑이다." 이 책의 광고문구를 보는 순간 '고마워하는'이라는 말에 '좋아하는'이라는 느낌이 겹쳐졌다. 중국사람들은 덩샤오핑을 좋아하나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결국은 책을 손에 잡게 됐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의 저자인 벤저민 양이라는 사람을 색안경 끼고 바라봤던 것 같다. 어떤 인물인지 사전 지식은 전혀 없었고, 책을 다 읽고난 지금도 저자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쓰여진 간단한 약력- 중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 유학했다가 눌러앉은 사람이라는 것, 그것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책의 전반부를 넘기는 동안 저자가 덩샤오핑을 폄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질 못했다. 책은 덩샤오핑의 키가 작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풍채 좋은 마오쩌둥과 달리 작은 키에 귀염성있는 얼굴이었던 덩샤오핑, '작고 평범한 덩씨'를 강조하면서 저자는 이 '작은 덩씨'가 어떻게 거인이 됐는지를 추적한다. 책은 '평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고,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덩샤오핑과 관련된 일들을 시시콜콜 오만가지 주워섬기면서 이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묘사해보는 것. 그 점이 이 책의 탁월한 점이고, 또한 단점이기도 하다.

덩샤오핑의 정치인생의 전반부(무려 일흔이 넘도록 덩샤오핑은 인생의 '전반부'를 보냈지만)는 수동태로 진행된다. 저자는 덩씨 아저씨에게 별다른 재능이나 특출난 사상이 없었다면서, 재능이 있었다면 '정치적인 재주' 즉 '마오쩌둥의 눈치를 살피는 재주' 뿐이었다고 말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은 마오의 제국이었고 마오는 제왕이었기에, 덩의 저런 재주는 덩의 운명을 결정한 핵심적인 요인이었다고. 곡절을 겪긴 했지만 덩은 어쨌든 마오에게 끝까지 버림받지는 않았었다. 죽어가는 마오가 덩을 후계자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중국인들은 마오 사후의 혼란을 잠재울 지도자로 결국 덩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이로 따지면 늙을대로 늙은 덩은 혼돈 속의 공화국을 이어받아 경제대국의 초석을 닦는다--는 것이 책의 줄거리다.

마오와의 관계를 덩의 인생의 핵심으로 놓았기 때문에 덩의 인생의 '전반부'는 그닥 재미가 없다.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전반부의 덩은 그저 눈치 잘 보고 대인관계 감각이 있는 인물에 지나지 않아보인다. 책이 재미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덩의 행위가 '능동태'로 해석되기 시작하는 후반부부터였다. 시기적으로 따지자면 대약진운동이 비극으로 귀결되고 덩이 마오의 카리스마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는 때부터라고 볼 수 있겠다. 덩은 마오의 제왕적 카리스마의 위력을 잘 알았고 거기 거스르지 않게 노력하긴 했지만 이 때부터 마오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과 애정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더불어 덩을 평가절하하는 듯했던 저자의 시선에서도 존경심이 묻어나오기 시작한다.

책의 묘미라면 묘미랄까, 저자는 앞서 덩을 폄하했던 부분들, 바로 그것들이 위대한 지도자 덩을 만든 힘이었다는 역설을 강조한다. "덩은 수많은 부대와 함께 전투를 치렀지만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면 군사 문제를 그다지 잘 알지 못했다. 소련측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두고 유창하게 논쟁을 했지만 사실 잘 아는 편은 아니었다. 근대 경제나 경제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적었지만 1980년대를 통틀어 경제 재건에 폭넓게 관여했다. 또한 국제 문제에도 전혀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그는 국제연합과 여러 외빈들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연설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덩은 모든 일을 조금씩 할 줄 알았지만 어느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니었다. 정치만 제외하고 말이다. 덩은 자신이 다른 무엇이 아닌 정치인임을 보여주었고, 그가 정통했던 것은 바로 인간관계와 조직력이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좋은 일이건 아니건 덩은 처음부터 공산주의 교리 원칙에 노예처럼 헌신하지 않았으므로 궁극적으로 그것들을 떨쳐 버리기가 더욱 수월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반교조적인' 생애를 살았던 덩샤오핑의 철학, 즉 '실용주의'는 철학이라 이름붙이기 뭣할 정도로 '내용이 없다'. 말 그대로 실용주의이기 때문에 어떤 도그마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그러나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덩샤오핑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덩의 면모를 보여주는 여러가지 일화들이 나와 있어서, 적어도 덩샤오핑이라는 지도자에게 접근하는 한가지 길은 되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의문들. 중국은 대체 어떤 나라인가. 중국은 대체 어떤 나라를 향해 가는가. 일단 현재의 모습은 경제대국/미국의 카운터파트로 가는 것같긴 하다. 책은 97년 덩 사망 직후에 출간된 것 같은데, 덩이 만들어놓은 기본 틀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데에 방점을 찍고 있고, 적어도 덩 사망 이후 7년이 지난 지금 저자의 예상은 들어맞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덩이 고심 끝에 후계자로 낙점했던 장쩌민, 상하이 출신의 벼락출세 정치인이란 소리를 들었던 그 사람은 그닥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채 결국 물러나버렸다. 장쩌민의 은퇴와 뒤를 이은 후진타오 세력의 집권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는 또다른 문제이겠지만, 장쩌민이 사실상 '실각'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최근 많이 나온 모양이다. 그렇다면 덩의 '후계자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개혁개방은 중국에서 대세가 된 듯하고, 실용주의 또한 시대의 흐름으로 인정받는 모양이다.

세계 곳곳에는 '마오주의 게릴라'들이 적잖게 존재하고 있지만 '덩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저기, 13억 인민들이 마오주의 대신 덩주의를 추종하고 있다지 않은가. 그러니 덩은 과연 '거인'의 대열에 오를법한 인물이다. 천안문 사태로 숱한 비난을 받긴 했지만 '귀엽게 생긴 덩씨 아저씨'의 약발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책은 덩의 인간적 면모, 성격, 행동 양태 따위를 들어 덩의 정치행보를 서술하는데 촛점을 맞춘 것이어서 개혁개방을 향한 덩의 정치적 선택과정에 대해서는 의외로 소홀하다. 독자로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덩이 비록 '정치적 인간'이긴 했지만 정치적 야심이 인민을 위한다는 마음까지 잡아먹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 저자의 말대로 덩은 '정말로 원시안적이고 복잡한 마음을 소유한 정치인'이었던 탓에 여전히 내게는 '미지의 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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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11-1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좋아하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의 장점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의 단점이라고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마오는 혁명가였고, 덩은 정치가였다고 규정하는 건 어쩌면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와 흡사할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국이 어디로 갈지에 대해 미리 예측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장담할 수 있으리라 짐작되는 건 최소한 앞으로 10년 이상 중국은 친미국가일 거라는 겁니다. 그런 뒤에 일어날 일들은 중국 외부보다는 중국 내부의 문제가 되겠지요만... 어찌 되었든 이 책은 저도 사놓고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인데, 서평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다는 인사와 추천 하나 남기고 갑니다. 2월에 귀국한다고?

딸기 2004-11-1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좋아하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의 장점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의 단점이라고요.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좋아했다가 안 좋아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랑했으면 미워하게 될 수 있으니까.

중국의 '친미성향' 말인데요, 이라크전 일어나기까지 밀고 당기는 외교전 보면서 정말이지 중국이란 나라-- 황당할만치 대단하고, 기묘하고, 으뭉스런 나라여서 말이죠. ^^

2월에 귀국해요. 출근은 3월부터이지만 그 전에 이것저것 준비도 해야 하고 해서요. 흑흑 이제 벌써 다 끝나가네요. 아쉬워라...

미완성 2004-11-14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사뭇 진지하면서도 발랄해서 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리뷰였습니다.

새글이 떠서 놀러와보았더니 세상에나, 그 사이에 올리신 리뷰가 한둘이 아니군요. 새삼 놀라고 갑니다.

딸기 2004-11-1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초능력을 좀 하거든요.

...가 아니고, 예전 마이리뷰를 복구요청 했는데 복구가 잘 안 되어서 좀 날려먹고, 결국 삭제하고 다시 올리는 짓을 하고 있답니다. ^^ 하지만 이 리뷰는 중고 아니예요... 신품이예요. ^^

미완성 2004-11-14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님의 초능력;;으로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있는 걸요...! 대단합니다 -_-b

이제까지 읽은 님의 리뷰는 다 재밌었지만 거기다 요놈;;은 신삥이라 하시니 더더욱 좋네요. 이렇게 재밌는 님의 리뷰를 복구해주지 않다니! 알라딘 미워요!

딸기 2004-11-1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리뷰로 사과님의 멍이 가라앉을수만 있다면... ^^

알라딘에선 다 복구를 해줬는데요, 카테고리 이동이 안 되는 거예요

이동시켰다고 나오는데, 정작 옮긴 카테고리에선 사라져버렸지 뭐예요...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 푸른숲 비오스(Prun Soop Bios) 2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남경태 옮김 / 푸른숲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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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너선 스펜서의 책이라면 무조건 별 다섯개를 주고 보는 것이 나의 버릇 아닌 버릇이건만, 이 책은 국내에 출간된 스펜서 책들 중에서 확실히 태작이다. 분량이 짧다. 마오쩌둥을 좋아하건 안 좋아하건, 영웅으로 칭송하건 독재자라 욕하건 간에, 명색이 당대의 중국 전문가인 스펜스같은 학자라면 이정도 분량으로 다룰 인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스펜스가 개인적으로 마오쩌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것은 나하고 별로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학자에게도 취향이 있을 것이고, 글 쓰는 스타일이 있을 터이니깐.

스펜스는 1차 사료를 독특하고 재미난 방식으로 '요리'해서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저술가다. 이 책 또한, 분량은 적지만 방대한 사료를 참조해서 썼다고 봐야겠다. 간략히 말하자면 스펜스는 마오쩌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마오에 대해 내린 평가는 '담대한 혁명가에서 독재자로 변해버렸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혁명 초창기(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 마오에 대한 묘사에서도 애정어린 시선은 별로 나타나지 않지만, 후기(집권 이후~문혁)의 마오를 보는 스펜스의 눈은 몹시 냉랭하다. 물론 문혁이니 홍위병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까지 찬양 섞인 평가를 하는 학자들이 (중국 밖에서) 누가 있을까마는.

스펜스는 책 제목에서 마오의 이름 앞에 '무질서의 지배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친절히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옛날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무렵 잠시 '야자타임'처럼 신분의 지위를 역전시키고 노는 풍습이 있었고, 이때 사회를 맡아 '높은 사람'역할을 하는 낮은 사람을 '무질서의 지배자'라 불렀었다고. 저자가 마오를 어떻게 보는지 분명히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굳이 좋게 해석하자면 글자 그대로 마오는 무질서한 중국을 통일해 지배자가 된 인물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스펜스의 의중은 분명 그것은 아닌 듯하다. 마오가 짊어져야 했던 시대는 제국주의에 짓밟히고 혼돈이 극에 달했던 무질서한 세계였다. 동시에 마오가 만들어낸 '중화인민공화국' 또한 무질서의 또다른 모습이었다고 스펜스는 보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짧은 책이긴 하지만, 마오의 여러가지 면모를 엿볼 수있다는 장점은 분명 있었다. 예를 들면 도표와 통계수치에 강했다는 점은 마오가 '아래로부터의 혁명' '농민혁명'을 이뤄낸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기반이었고, 좀더 연장시키면 '하방운동'(평가는 차치하고) 같은 방식을 고안해낸 것까지 이런 관점에서 설명이 될 수도 있겠다. 짤막한 책의 최대 장점이라면, 요점만 간단히 나와 있다는 것이다. 마오를 보는 스펜스의 시각이 명료하게 나타나 있고, 구구절절한 줄거리는 간단히 소개한채(고유명사는 최대한 생략) 핵심적인 역사적 사실들만 언급하고 있어 초심자에겐 오히려 좋은 책일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오의 생각의 변천과정이 자세하게 나와있지가 않았다는 점. 중국의 전제군주들에 찬사를 바쳤던 스펜스가 '현대판 황제'에게 냉랭한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그저 '집권 뒤 궁전에 처박혀 옹고집이 됐다'는 결론 밖에는 안 나오는데, 마오의 평전 치고는 역시나 부실하다. 덩샤오핑과의 관계가 치밀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는 점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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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미술 Art & Ideas 11
조너선 블룸 외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길아트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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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나와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헌데 솔직히 책 자체로만 보자면 별다섯개 짜리는 아니다. 명실상부한 '개론서'로서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 자체에 대한 책들도 변변히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미술에 대해 제법 알차게 소개한 이런 책이 나와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한길아트에서 시리즈로 나온 책들 중 하나인데, 이런 미술 시리즈 중에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이 한권도 없다는 사실이 아쉽긴 하지만 그런것까지 별점 매기는데 고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개론서로서 장점을 말해보자면, 도판이 많은데다가 화질이 그런대로 좋다는 점이다(책값이 비싼 이유가 되기도 하겠지만). 책은 '이슬람 미술'이라는, 시대적 지리적으로 굉장히 애매할 수 있는 소재를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있다.
이슬람 미술에서 회화의 중요성이 다른 문화에 비해 낮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서구에 경도된 학문 보편의 문제점 때문에 흔히 대학의 미술사 수업에서도 이쪽 동네는 제껴지기 십상이다. 부부 미술사학자인 저자들은 책에서 이슬람 세계의 건축과 책, 공예를 주로 다루는데 이슬람 미술의 특징을 아주 잘 잡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회화가 없다 해서, 그리스 조각같은 조각상이 없다 해서 미술이 없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저자들이 핵심적으로 포착한 것은 페르시아를 중심으로한 이슬람의 제책술이라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인물 도상이 적은 대신 '손재주'로 발전한 다종다양한 공예품과 직물들, 그리고 이슬람 문화의 핵심 중의 핵심인 '책'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있다면.
개론서라는 특성상 여러가지를 두루두루 짤막하게 소개하다 보니 정작 이슬람 미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슬람 미술에 대해 모종의 로망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운 좋게도 이슬람 세계의 미술작품 몇몇을 직접 내 눈으로 볼 기회가 있었다. 모래바람에 덮인 사막의 모스크, 아름다운 금박으로 새겨진 쿠란, 아야 소피아의 거대한 현판, 오스만의 화려한 보석들, 술탄의 하렘을 장식한 푸른 모자이크 타일들, 사마라의 거대한 나선형 탑. 이 책은 그것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설명이 너무 건조하다. 미술을 다루는 책은 글조차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라고 하면 지나친 바램일까.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은 주로 제책술과 서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페르시아 문화권(페르시아/무굴)의 작품들에 설명이 집중돼 있다. 반면에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었던 바그다드의 미술에 대해선 최소한도로만 언급하고 있고, 오스만의 건축들에 대한 설명도 적다. 개론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어쩔수 없는 한계이긴 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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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1-0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움이 묻어나는군.....요즘 '다독'하시는구만..ㅋㅋ

딸기 2004-11-05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밤중에 접속이라니!

그리움이라기보다는... 뭐. ^^ 히히히 그런거지 뭐. (말이... 안 되는군...)



나 요새 다독 연습중이자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영... ㅠ.ㅠ

마냐 2004-11-05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적 노동강도 때문에 숨넘어가는 즈음이닷. 다다음주가 1주년. 글구보니...다음이 마지막 원고인가? 아쉬워서 어쩌나. ^^;;;

딸기 2004-11-05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필자교체 확정된 거야? 야호~~~

마냐 2004-11-0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내가 확답을 안했었군....1년맞이 뭔가 대대적 개편을 하고파들 하는데....별거 있는감. 뭔가 코너 좀 바꿔보구...뭐 그런거. 안 봐두 비디오잖아. 사실 나두 까먹고 있었는데...어제 부장이 후속 칼럼 어찌됐냐구 쪼잖아...이번엔 그 자리에 정치 뒷얘기를 넣자시네.....내 생각엔 어차피 인사(언제나 그렇듯 말만 무성타가 그냥 연말설) 나구 난뒤에 새 부장이 쫘악 짜보는 편이 좋을텐데 말야.....암튼...........필자님.....염가에 부려멌었는데요, 고맙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