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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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처음부터 이 책이 재미있을 줄 알았다니까. 기대 만땅이었다. 책을 읽기 전, 책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작가 이름이 마누엘 푸익이라는 것, 남미 쪽 사람이라는 것, 영화로도 나왔다는 것. 그것 뿐이었다. 책의 리뷰들도 제목만 보고 일부러 읽지 않았다. 책의 줄거리를 전혀 몰랐으니, 그저 나의 궁금증은 '대체 거미여인은 누구이며 누구한테 키스를 하는가'라는 거였다. 

책 속에 참 여러가지가 나온다. 여자, 남자, 좀비, 표범, 야만, 억압, 공포, 사랑, 슬픔, 동성애, 게릴라, 라틴아메리카. 잘도 조합해놨다. 거미여인이 누구인지, 누구에게 키스를 하는지, 왜 하는지, 거미여인과 거미남자(키스의 상대)는 어떤 관계인지-- 엽기적 로맨스를 연상하며 소설을 읽어가는 과정은 힘들고도 재미있었다. 힘들었던 것은 책 속의 액자에 박힌 그림들이 너무 섬세하고 날카롭고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고, 재밌었던 것은 그림(영화/노래/책/이야기)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상징적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다음 장의 내용이 기다려진다기보다는 좀 무서웠다. 내가 왜? 남미의 게릴라도 아니고 동성애자도 아니고 표범여인도 거미여인도 좀비도 아니고 좀비 부인도 아닌 내가 왜?  
이 책은 어딘가, 관음증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다. 두 사람, 어쩌면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를 '남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상상을 음미하는 사람들.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은밀한 쾌감. 그리고 그들을 들여다보고 엿듣는 나. 그래서 두근거렸다. 어쩌면 내가 지금 관음증환자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남의 나라 남의 방 남의 머릿속이 아니라 인간 누구나가 갖고 있는 야릇한 사랑, 원초적인 공포 같은 것들이 아닌가 싶어서.  
 
책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대화가 이뤄지는 공간은 밀실이다. 밀실 중에서도 또 밀실, 억압과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있는 공간. 그 곳에서 두 사람은 영화를 보고 꿈을 꾸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리하여 밀실은 공포와 긴장과 갈등과 억압의 공간에서 우정과 사랑이 충만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어울리지 않는 자들의 결합은 항상 신선하다. 헌데 이 작가는 어찌나 심술궂은지, 그 신선함에서 이야기를 끝내 상큼한 여운을 남겨주는 대신(해피엔딩을 좌시하지 못하는 작가들은 꼭 있다) 기어이 끝장을 보여주고야 만다. 밀실에 갇힌 두 사람이 나누는 은밀한 이야기는 기어이 제도/폭력/통제 따위에 포위된다. 관음의 쾌락이 넘실거리는 듯하던 밀실은 '사방이 트인' 횡단보도로 바뀐다.  
그러나 과연 밀실은 어디이고 광장은 어디인가. 배신과 신뢰 사이, 적과 친구 사이를 어떻게 구분할까. 사랑은 어디에 있고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작가가 집어넣은 액자속의 이야기들에서 사랑과 죽음은 항상 한 존재의 두 얼굴이다. 그렇게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놓고서 마누엘 푸익은 "이것은 짧지만 행복한 꿈"이라 말한다. 

역시, 재미있어,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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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1-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볼 만하답니다.^^

딸기 2005-01-1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문화를 고급문화로 격상시킨... 어쩌구저쩌구 해설이 길던데, 영화가 마구마구 상상이 되는 거 있죠!

urblue 2005-01-1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먼저 봤더니 책 읽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요. ㅠ.ㅠ

딸기 2005-01-19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도, 영화가... 영화가... 별로 좋지를 않아요
물론 재미있게 본 영화, 기억에 남는 영화도 많이 있긴 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이(보는 시간 내내) 너무 힘들어요
 
노동의 세기 - 실패한 프로젝트?
에릭 홉스봄 외 지음, 임지현 엮음 / 삼인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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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지 몇년 지난 책이다. 다소 '선정적인' 제목에, 에릭 홉스봄의 이름을 표지에 박아놨다. 책은 1999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어느 학술대회 발표문들을 모은 것인데, 홉스봄이 총론격인 글을 썼다. 
홉스봄의 글을 많이는 안 읽어봤지만 논지가 명확하면서도 뭐랄까, 낙관적이랄까,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든다. 여기서 '낙관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홉스봄이 지나온 '노동의 세기(20세기)'를 의미없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노동운동 자체를 '실패한 프로젝트'로 평가절하해버리지 않는다는, 숱한 '좌파 출신 학자들'처럼 얄팍한 자아비판 내지 반성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참 힘든 일이다. 자본의 승리가 너무나 굳건해보이는 이 세상에서 '노동운동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래서 홉스봄은 '(현실)사회주의 기획'과 '노동운동'을 구분한다. 사회주의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노동이 존재하는 한 노동운동 또한 존재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 외의 글들은 각론에 해당된다. 지역적으로 서유럽/동유럽/제3세계에서 지난 세기(이 학술대회가 열렸을 당시는 '금세기') '사회주의'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조명한다. 한국에서는 책을 엮은 한양대 임지현 교수의 글이 실려있고, 학술대회와는 상관없이 임교수가 국내 학자(차문석)의 글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한국 학자들의 글은 주로 동아시아를 들여다보면서, 이 지역의 사회주의가 '서구적 근대화'에 맞선 '민족주의적 근대화'의 이데올로기 도구가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대약진운동이나 북한의 천리마운동 따위를 떠올리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 부분은 라틴아메리카/여성/인종차별과 노동운동(남아공) 등등을 다루는 짤막한 논문들로 구성돼 있다.

구성이 좀 산만하긴 한데... 결국 독자가 궁금한 것 &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독자: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회주의'는 실패한 프로젝트다는 얘기인가요?
학자들(=책): 그렇죠. 노동운동 자체가 실패라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정치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실패했습니다. 서유럽에서 사회주의/사민주의는 자본과 동거하는데에 만족했고요, 동유럽에서 사회주의를 좀 제대로 해보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는데.. 그넘의 스탈린주의 땜에 다 망가졌지요. 아시아에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돼서 외려 독재의 수단이 됐고...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홉스봄처럼 '노동운동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지금까지의 (스탈린주의적 혹은 제3세계적) 사회주의 '기획'(이 말 참 아리까리하다)과 다른, 노동운동의 새로운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큰 이야기 대신 '작은 이야기'의 의미를 찾으려는 포스트모던한 움직임도 보인다. 책의 뒷부분, 라틴 아메리카의 노동운동 연구와 젠더 문제, 인종문제를 다룬 세 편의 논문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것인가'라는 점에서 참 재미있었다. 
다니엘 제임스라는 학자는 라틴아메리카 노동운동사라기보다는, 노동운동 '연구사'에 대해 짧고도 흥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인류학적 연구방법이 노동운동 연구와 결합되어 어떻게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단초를 제공해주는지를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거 종속이론이 국제관계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주변부적 위치'를 진단한 것이었다면, 이 사람이 언급한 '민족지학적 연구'는 밖에서 안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시선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젠더 문제를 쓴 쉴라 로우보섬이라는 여성 학자는 주로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젠더 렌즈'로 노동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이 '여자들을 위한 것'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노동/노동운동을 새롭고 더욱 역동적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뒤이어 남아공의 한 학자는 자기네 나라에서 인종문제가 어떻게 노동운동과 얼켜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노동운동을 지역/젠더/인종과 결합시켜 생각해보는 것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초정보화시대 새로운 노동형태-새로운 노동운동을 고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노동'이라는 테마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러가지 렌즈를 가질 필요가 있다.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닌, 지역/젠더/인종 렌즈조차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자본의 글로벌화 못잖게 노동력의 글로벌화도 이뤄져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겐 노동운동은 있어도 인종문제 따위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장 동남아 출신 '불법노동자'들이 그렇게 학대를 당하고 있는데 말이다.
뭐 대단히대단히 참신한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가지 렌즈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선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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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너머의 연인
유이카와 게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신영미디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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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는데 일본 소설만 잘 팔린다는 통계조사가 나온 모양이다. 하긴, 한국 소설 읽은지 오래된 나도 최근 몇년간 일본 소설은 읽었으니까.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마루야마 겐지, 요시모토 바나나, 아사다 지로 같은 소설가의 책들. 
다만 국적이 일본이라는 이유로 저 소설가들을 줄줄이 묶었지만, 실상 저들의 소설은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소설들이 주는 재미도 작가에 따라 다르고, 주제나 분위기도 모두 다르다. 나름의 재미가 있고 나름의 장점이 있다. 그러니 일본 소설이 이러저러해서 재미있다고 딱 잘라 말하긴 힘들다.

소설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드라마인데, 책방에서 드라마 얘길 하려니 좀 우습지만-- '맘에 드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MBC에서 방영했던 '아줌마'와 SBS에서 몇년전 내보냈던 '퀸'이다. 여성성이라는 것, 혹은 젠더라는 문제를 경쾌하면서도 새롭게 다룬 드라마들이었다. '아줌마'의 원미경이 못나 터진 남편과 헤어져서 장사를 시작하고, 곁에 있어줄만한 남자를 만났는데도 결혼보다 장사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더불어 남편을 빼앗아가려했던 연적 심혜진과도 묘한 우정을 나눈다는 결말. 
'퀸'도 마찬가지였다. 노처녀 이미숙이 결혼이 아닌 사업을 선택하고, 당차고 자의식 강한 김원희는 항공기 조종사가 되고, 애교 만땅이던 윤해영이 봉사활동 나서고,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자라난 이나영(그땐 연기 진짜 못했는데) 또한 자기의 길을 찾는다는 내용. 연애 이야기로 시작해 연애 이야기로 끝나되, 그 끝은 연애/결혼이 아닌 새로운 인생. 사랑은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동시에, 사람을 성장하게 해주는 학교이기도 하다. 사랑을 차버리지 않으면서 쿨하고 경쾌하게 성장과 꿈, 새로운 모색까지 이야기하는 드라마들. 영화 '싱글즈'도 비슷했던 것 같다.  
'아줌마'보다 두어해 먼저 방영됐던 '퀸'을 보면서 무릎을 쳤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드라마가 있다니! 나중에 보니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원작 소설인 '여자들의 지하드'는 못 읽어봤다. '싱글즈'도 일본 소설을 리메이크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깨 너머의 연인'은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이다. 가볍다면 가벼운 연애소설. 두 여자, 그리고 몇명의 남자들, 그들이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 
사랑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이다. 사랑은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니다. 소설의 결말 부분은 '싱글즈'하고 거의 똑같다. 사랑의 결말에는 단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랑의 형태 또한 제각각이라는 것-- 이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가 사회의 자유도/성숙도를 판가름케 해주는 지표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성애를 인정하느냐, 동거 커플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느냐, 결국 '사랑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 사회는 이런 면에서 아직은 자유도가 굉장히 낮은 사회다. 
  
그래서 일본 소설을 읽는다. 가볍다고? 흔히들 일본 소설이 가볍다고 말한다. 아마도 일본 소설 전체를 평가하는 말은 아닐 것이고, 맨 위에서 언급했던 최근 국내 유행중인 '인기 작가들'(마루야마 겐지는 좀 다르지만)에 대한 평가 쯤 될 것이다. 
저들의 소설이 '가볍다'는 평가에는 쉽게 동의해줄 수 없지만 쿨하고 경쾌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 자유도가 낮은 사회에서, 사랑마저 제도적 억압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그 억압을 조금이라도 없애주는 것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해방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광고의 카피였던 것 같은데.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정말 맞는 말이다. 아주 작은 차이, 예를 들면 연애소설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와 역경을 헤치고 '결혼한다/안 한다' 같은 차이가 그저 평범한 연애소설과, 명품 소설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질척질척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의 나라(그 나라도 그닥 경쾌하진 않지만) 소설가들의 쿨한 소설을 읽으며 잠시 대리만족을 맛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죄 없는 자, 나를 돌로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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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1-1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글즈 원작소설' 29세의 크리스마스' 먼저 봤었는데, 제가 비슷한 나이여서, 막 공감하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요즘은 (가벼운?)일본소설들( 내용은 없고, 감정만 있는;;) 이 유난히 안 읽혀요. 읽다가 접어둔 책들이 한두권이 아니네요. (미루야마 겐지와 아사다 지로는 빼고요)

딸기 2005-01-1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루야마 겐지는 너무 무거워서 잘 안 읽히죠 ^^

딸기 2005-01-1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루야마 겐지 작품 별로 안 읽었어요.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였나, 제목만큼 멋진 소설이었죠. 그 다음에 단편집 하나 읽고, '천년동안에'로 넘어갔어요. '천년동안에' 읽고 나니까 저 아저씨가 멋져 보이더군요. 그 책은 참 좋았어요.
그래도 아무튼 쉽게 손에 잡히는 작가는 아니죠.

nemuko 2005-01-1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저도 일본작가들인 쓴 소설은 거의 무조건적인 애정을 갖고 읽었습니다. 딸기님 표현대로 질척하지 않은 그들의 표현방법이 맘에 들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대체로 나의 예상대로 굴러가지 않는 내용이 좋기도 했구요. 지금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굳이 찾아 읽게 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소설보다는 좀더 관심이 가긴해요.

nemuko 2005-01-1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구 '여자들의 지하드' 읽어봤는데, 드라마보단 그래도 훨씬 설득력이 있던데요. 전 그 소설을 먼저 읽어선지 '퀸' 짜증내면서 봤어요^^

딸기 2005-01-1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전 퀸 보면서 환장했었는데... (원래 환장이 취미인 인간이긴 합니다만)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지호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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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저자 소개에는 물리학 박사라고 나와있는데, 그러니 물리학에 대한 책인 줄 알고 펼쳐들었는데 세르비아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앞의 4분의1 정도는 지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지진의 원인은 무엇인가. 지진을 예측하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아니 불가능한가. 그러더니 역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경제 얘기도 나온다. 대체 이 책은 무슨 책인가. 진정 유비쿼티(책의 원제목)를 책 한권 안에서 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물리학 박사이자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어떤 얘기를 꺼내고 싶어서 다종다양한 세상사와 자연계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일까.

굳이 말하자면 '역사물리학'이다. 저자 스스로 이런 용어를 내뱉긴 했지만, 이런 분야는 없다. 하지만 과학에도 '역사'(시간의 흐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아주 최근의 것은 아니다. 정적인, 예측가능한, 평형적 과학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동적이고 변화하는, 예측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과학을 해보려는 시도는 이미 30년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여기에 새로운 이름(네트워크 과학)이 붙고, 새로운 실험들이 가능해진 데에는 분명 컴퓨터의 영향이 한몫 했을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과학(비평형 물리학)이라고 했지만 여기에도 법칙은 있다. 이 법칙을 찾는 것, 무엇이 세르비아의 총성 두 발로 전쟁을 일으키고 대규모 지진으로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지, 이 복잡다단한 세상, 예측 불가능해보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을 찾는 것이 책의 목표다. 지진으로 시작해 경제와 역사를 아우르는 저널리스틱한 감각으로 저자는 '멱함수의 법칙'이란 것을 선보인다. 자연/세계에는 스스로 임계상태(아슬아슬한 균형 혹은 균형이 무너지는 시점)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는 것. '멱함수'라는 말에 주눅들지 말자. 큰 사건과 작은 사건들 사이에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원인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 그것만 알아두면 된다. 큰 지진은 적게 일어나고 작은 지진은 많이 일어난다. 바꿔 말하면, 단층의 움직임이 임계상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작은 지진들만 일어나지만 지층의 스트레스가 임계상태에 이르면 드디어 큰 지진이 일어난다. 그러니 큰 지진이건 작은 지진이건 원인은 똑같고, 다만 규모의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규모를 결정하는가. 무엇이 고베 지진같은 초대형 지진을 일으키는가, 왜 테러리스트의 총성 두 발이 전쟁으로 이어졌는가. 저자는 프랜시스 크릭의 '얼어붙은 우연'이라는 말은 인용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한다. 세상은 네트워크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고. 단층 속의 바위들도, 생태계의 종들도, 주식시장의 인간들도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아주 작은 우연이 하필이면 네트워크의 약한 고리에 떨어짐으로써 '격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건의 흐름(역사)을 제대로 보려면 네트워크를 알아야 한다. 물론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가 (결과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복잡계의 진화 방향은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어찌 보면 이 책은 물리학책이라기보다는 '과학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과학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세르비아의 총성으로 시작된 이 책은 지진이라는 자연과학적 소재를 넘어 인간들의 움직임으로 뻗어나간다. 자본시장의 움직임과 전쟁 같은 것들로. 세계/역사를 이해하는 또하나의 방법으로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세상은 평형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예측불가능성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므로. 
'인간은 누구나 탐욕스럽다/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고전경제학의 기본 전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실제로는 이 전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주식시장의 컴퓨터 시스템을 아무리 잘 고쳐도 블랙 먼데이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사람들의 불안감,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는 시장의 스트레스가 임계상태에 도달하는 바로 그 순간, 아주 작은 손동작 하나가 블랙 먼데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평형계(정적/합리적인 세계)에 대한 확신을 버리자, 낙관론과 합리주의를 경계하자!

책을 읽는다고 1차 대전의 원인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 모래 한 알이 모래더미를 무너지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한 알의 모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네트워크 전체의 불안정성이었다는 것, 임계상태라는 개념을 알아놓는 것으로도 복잡한 세상을 좀더 단순하게 보는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 그것만 이해한다 해도 책을 읽는 의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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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1-1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뱀딸기....>ㅂ< 뱀쇼 하시려구요? 큭큭큭! 브리핑 보다가 쓰러졌습니다.ㅎㅎㅎ

딸기 2005-01-13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제가 어제 판다 가게를 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알라딘이 방해를 해요...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 행복한 물리학자 파인만에게 듣는 학문과 인생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정영목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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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꽤 재밌게 읽었다. 시나리오 작가라는 믈로디노프가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이론물리학 연구원 생활을 했던 첫 1년 동안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연구실을 두고 있던 파인만을 만나 들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저자 자신의 설명을 빌면 "이 책은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한 젊은 물리학자의 이야기이며, 인생의 끝에 다가선 상태에서 깊은 지혜로 그를 도와준 한 유명한 물리학자의 이야기"이다. 또한 "리처드 파인만의 말년, 역시 노벨상 수상자였던 머레이 겔만과 파인만의 경쟁, 지금은 물리학과 우주론을 개척해나가는 중요한 이론으로 자리잡은 끈 이론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가 촉망받던 물리학도 출신(1981년 당시 칼텍 출신 노벨상 수상자 수가 스무명에 이르렀다고 한다)으로 유명 시나리오 작가라니 일단 흥미가 생긴다. 게다가 제목에서부터 '물리학계 전설의 스타' 파인만을 내걸고 있다. 파인만의 암 투병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고, 적어도 물리학 쪽에서 파인만처럼 대중적 매력이 있는 사람도 흔치 않을테니까.

박사학위 논문을 잘 써서 학계의 눈길을 끈 덕에 칼텍에 일자리를 얻은 믈로디노프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와 자신감 부족 때문에 연구원 생활 첫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지낸다. 과연 나는 물리학자라는 직업에 맞는 인물일까, 과연 나는 이 자리에 어울릴만한 업적을 쌓을 수 있을 것인가. 그때 암투병 중인 파인만이 눈에 들어온다. 어릴적 파인만의 책을 읽고 물리학을 전공으로 택한 저자는 흥분에 가슴이 설렌다. 전설의 스타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니,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그렇지만 상대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물리학자인데다, 개성이 철철 넘치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 반면 이쪽은 이제 갓 연구원 자리를 얻은 새내기 학자이고, 대체 뭘 연구해야할지 감도 못 잡고 있는 처지다.

조심조심 살금살금 '우연을 가장해' 파인만에게 말을 거는데 성공하고, 파인만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진다. 책은 일반인 독자들을 위해 쓰여진것이고 물리학에 대한 내용은 아주 개괄적인, 꼭 필요한 정도의 설명(예를 들면 파인만이 왜 유명한가 하는) 밖에는 나와 있지 않다. 저자가 파인만과 나눈 이야기들도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닥 많지 않다. 자신감 부족에 시달리는 후학에게 파인만이 던져준 답은 "원숭이가 한다면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선문답 같은 대화. 파인만을 숭상해마지 않았던 젊은 물리학자는 '퉁명스런 한마디'에서도 속뜻을 읽고 영감을 얻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독자 입장에선 파인만과의 '짧은 만남 얕은 인연'만을 가지고 책 한권을 엮는 것은 좀 무리한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라는 제목에 비하면, 파인만이 인생의 길에 대해 독자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솔직히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가르쳐주는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파인만은 젊은 후학에게 인생의 길, 학문의 길을 가르쳐주는데에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할 사람 같으면 그건 파인만이 아니겠지.
책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참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저 정도의 대답을 듣기 위해 파인만에게 길을 물을 필요까지는 없었겠다 싶고, 오히려 저자가 말한 다른 부분, 끈이론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와 당시 학계 분위기, 파인만과 머레이 겔만의 경쟁관계 같은 에피소드들이 더 재미있었다.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대목 한 토막. 파인만의 말이다.

"자네가 여기에 처음 와서 내가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을 때 나는 당황했네. 사실은 나도 모르기 때문이지. 그것은 지네에게 어느 발 다음에 어느 발이 나오냐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것 같네."

저 말은 정말 기억에 남는다. 왜냐면 -- 나는 어릴적부터 저 문제에 골몰했었다. 지네는 어느 발 다음에 어느 발이 나오는지 어떻게 결정할까? 의식적인 것일까, 무의식적인 것일까. 무의식적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자동으로 이뤄질까. 지네도 발이 걸려 넘어질 수가 있을까. 파인만도 그걸 궁금해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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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1-13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인만이 길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닌데...그렇담 과장된 제목...유명인사와의 짧은 만남을 책으로 쓰는 것도 마음에 안드는 기획....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니..오, 놀라워라. 궁금하군.....

딸기 2005-01-13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 읽어봐. 어찌 보면 과장된 제목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었어. 서울 가면 책 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