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는 이렇게 말했다 - 이슬람교의 역사와 신화
하르트무트 보브친 지음, 염정용 옮김, 배철현 감수 / 들녘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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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이 좀 황당하다. 이 책은 무함마드의 언행록(하디스)도 아니고, 부제에 붙어 있는 것처럼 ‘이슬람교의 역사와 신화’를 다룬 책도 아니다. 서구의 기존 무함마드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이슬람 옛 문헌사료들을 통해 본 이슬람 초기 성립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다. 이슬람교의 ‘역사와 신화’라는 말도 우습지만, 번역자의 수준이 높은 데에 비해 제목이 책의 가치를 많이 갉아먹는다.

200쪽이 채 안 되니, 분량이 많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슬람 사료들을 빼곡히 인용해 무함마드의 행적과 이슬람교 초기 성립과정을 충실하게 재구성해낸다.

저자는 독일의 이슬람/아랍어문학자라고 하는데 기존 서구의 이슬람/무함마드 연구를 섭렵하고 있어 이 작은 책 한권이 예상 밖으로 내게는 큰 도움이 됐다. 사료 중심이어서 학술서 같은 느낌이 강하기는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유물론적’ 역사해석을 경계하고 ‘대언자(예언자)로서의 무함마드’를 강조한다는 것. 1400년전 아랍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함마드의 소명 체험이 꾸란과 시라(전기)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를 조목조목 따지면서 ‘체험의 진정성’을 강조한다. 서구 이슬람학자들이 이슬람 성립 당시 사회경제 돌아가는 것과 무함마드의 포교가 가진 정치적 의미만을 부각시켜온 결과, 정작 이슬람의 종교적 측면과 이후 확산-정착 과정이 제대로 설명이 안 됐었다는 반성인 듯.

이슬람에 대한 것 뿐 아니라 어떤 일에서든 사회경제적 측면만 너무 몰두해서 바라보면 역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 같은 것을 무시해버릴 수 있고, 오히려 역사를 생생히 재구성해볼 수 없게 만들곤 한다. 요즘 내 관심사가 이런 쪽(‘토대’만 보려 하지 말고 관념론과 같이 놀자)에 가 있기 때문인지, 이 책의 서술 방식이 제법 신선했고 읽는 내내 즐거웠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아랍어를 우리말로 표기하는 데에 굉장히 신경을 쓴 것 같긴 한데, 저자의 원래 표기가 이집트 방언처럼 돼있다는 것. 자지라트 jazirat를 gazirat 라고 쓰고 jinn은 ginn 이라고 쓰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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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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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자체에 별반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럽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지라, 유럽현대사 공부하는 셈 치고 읽었다. 실은 책을 다 읽은지 며칠이 지났는데, 독후감을 쓰기 전에 이 책의 ‘의미’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을 못했다. 왜냐? 휴가 받아 노느라... 그러고 나서 까먹어버렸다. 내가 분명 며칠전에 무슨 책 하나를 읽은 것 같은데 뭐였더라... 폼잡으려고 사무실 책상 내려앉도록 쌀가마니처럼 쌓아둔 하드커버 책들을 훑어보니 ‘파시즘’이 보였다. 이런, 까먹고 있었잖아. 

책은 아주 묵직하다. 두껍고 자세하고 재미도 있다. 괴물처럼 변신하며 자라나는 파시즘의 정체를 찬찬히, 그러면서도 속도감 있게,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역사를 결정론적 시각에서 보지 않는다는 것(파시즘은 역사의 ‘당연한 귀결’은 아니었다)도 인상적이다. “이 책의 목표는 파시즘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찾아냄으로써 파시즘이 지닌 고유한 매력과 그것의 복잡한 역사적 경로, 그리고 파시즘이 지닌 극단의 공포를 더욱 명료하게 설명하고, 이를 통해 파시즘이란 개념을 의미의 남용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이다”.

굉장히 성공적인 저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책을 읽고나니 과연 파시즘이란 개념(말)이 남용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며, 군더더기를 없앤 뒤의 파시즘이란 놈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그려보게 된다. 설명이 아주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서 독자가 헤맬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런데 난 지금 헤매고 있다. 책에서 이해하지 못할 내용은 별로 없었다. 헤매는 이유는 단순하다. 저자가 말하는 파시즘의 모습에, 이문열의 표현을 빌자면 ‘홍위병’ 혹은 ‘노란 풍선’ 따위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이슬람 극단주의보다 차라리 유대극우주의가 파시즘에 더 가깝다는 저자의 지적은 아주 잘 이해가 되는데, 그런데 나는 이문열도 아니고 조선일보도 아주 싫어하는데, 거기에 이른바 ‘홍위병’들의 모습이 겹쳐서 보이니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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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디즈니 만화로 가장한 미 제국주의의 야만
아리엘 도르프만 외 지음, 김성오 옮김 / 새물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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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슬픈 사랑이야기이지만 디즈니의 `머메이드(Mermaid)'에 이르면 극단적인 이분법 대결구도로 바뀌어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내용의 단순성은 차치하고, 동글동글 예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행동은 가관이다.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뒤에 안데르센의 책을 본다면 "속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우리 모두 그렇게 속았던 경험이 있다. `마징가Z'와 `요술공주 새리'가 일본만화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 `똘이장군'이 어린이들에게 반공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는 거친 수작이었음을 알았을 때. 1971년 칠레에서 출간된 이 책은 바로 그런 `배신감'에서 나온 저술이다. `도널드 덕' 만화의 숨겨진 메시지를 분석한 이 책을 역자는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 제국의 문화상업주의에 맞서기 위한 해독제'라 했는데 그 말이 맞다.

현미경을 들고 샅샅이 들여다본 만화책은 "부자와 무일푼인 사람, 고결한 오리들과 추레한 도둑들 사이의 사회적 차이로 가득차 있다". 원주민들은 범죄자나 열등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디즈니의 메시지들은 2차대전후 미국의 강대국 패권주의, 매카시적인 대결 이데올로기와 일치한다. 말하자면 도널드는 그 시대의 `람보'였던 셈이다.

저자들은 이런 논리가 정확하게 디즈니사의 내부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노동착취와 제3세계 하청은 자본주의 모범생인 디즈니사의 숨겨진 얼굴이다. 기업만 있고 예술가는 없는 생산체제. 그래서 디즈니의 산물은 오직 `상품'일 뿐 `작품'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도널드 덕 혹은 미키마우스 같은 디즈니만화의 스페인어 판에 대한 독해 형식으로 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캐릭터상품과 TV로만 보아온 귀여운 오리들을 생각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오리의 얼굴을 한 독수리(엉클 샘)가 제3세계의 한 나라에서 어떤 횡포를 부렸는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라 생각하면 편하다. 책이 발간되고 2년 뒤 칠레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 책은 판금과 탄압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오히려 국경을 벗어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국내에서도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 해적 번역본으로 떠돌다가 뒤늦게 정식 출간됐다.

(책이 꽤 좋았었는데도 별을 네 개만 준 것은, '재미'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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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7-0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별 넷 준 이유가 모든 걸 압도하는군요. -,.-

딸기 2005-07-0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치? 윗부분은 무려 3년 전에 북리뷰에 썼던 거고, 마지막줄만 덧붙인거야.

chika 2005-07-0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마지막 줄 때문에 읽어볼까, 하는 맘이 대략 사라져버려요... 책 대신 딸기님 리뷰로 대신... ^^;;

2005-07-18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5-07-18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맞아요. 근데 사실인걸 어떡해요...
왜 슬럼프일까나...

로쟈 2005-07-20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어야 한다'가 아니라 '죽여야 한다'인가요? 우리가요?..

딸기 2005-07-20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든지요 ^^
 
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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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읽고 감동받아 이 책을 읽어버리고야 말았다. 단 하루만에. 심신위축증에 걸린 만년부장 아저씨를 ‘플라잉 대디’로 만들어줬던 소년특공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책은 옴니버스처럼 몇 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돼 있다. 짜식들, 귀엽고 웃기고 발칙하다. 작가는 이 우스꽝스런 삼류고교 삼류인생 예정자들의 순진난만한 모험담을 펼쳐놓는 와중에 한마디씩 톡톡 폭탄알을 심어놓는다. 이 자그마한 폭탄들이 파열음을 내는 곳은 경직되고 계급화된 일본 사회이지만 내 눈엔 우리 사회도 남의 말 할 처지는 아닌 듯싶다.


내가 밟은 몇 개의 폭탄들.


헤헤헤, 알만하군. 순신은, 늘 다수측이 이기게 돼 있어, 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아까 우리에게 굴복한 놈들은 머지않아 사회의 한가운데서 다른 형태로 우리들을 굴복시키고 승리를 거머쥐려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몇 번이나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되리라. 하지만 그게 싫으면 이렇게 계속 달리면 된다. 간단하다. 놈들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초등학교 1학년생들의 달리기 시합처럼 계속 달리면 된다.

빛 대신에 모두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모두들, 뛰어, 뛰어, 뛰어......


꿈에 히로시가 나타났다. 히로시는 변함없이 뼈와 껍질만 남은 몸이었고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 속 눈이 노란 빛을 띠고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헤헤헤, 하고 웃었다.

- 너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나 돈이든 여자든 명예든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을 작정이야. 가능하면 세계도 바꾸고 싶고. 부럽지. 나는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한껏 즐길 거야. 하지만 너만은 절대로 잊지 않을게. 네가 원했던 것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볼 생각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나타나지 마. 오줌 쌀 것 같단 말이야.

내가 말을 끝내자 동시에 히로시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토실토실한 히로시로 돌아갔다. 나는 히로시를 마주보면서 키들키들 웃었다.


천장에 매달린 주간지 광고의 커다란 글자가 입체적으로 눈에 날아들었다. 어떤 기사의 표제는 모든 주부가 남편이 없을 때면 바람을 피운다고 단정 짓고, 또 어떤 기사의 표제는 모든 여고생이 약물 중독과 음란 행위에 노출되어 있다고 단정 짓고, 또 어떤 기사의 표제는 모든 재일 외국인은 범죄자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가령 내가 장차 회사원이 되어 이런 광고가 주르륵 매달려 있는 전철을 몇 년이고 몇 년이고 계속 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나중에 문득 자신을 돌아보니,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버릇이 생겼고, 그 탓에 만사에 금방 실망하고 그 탓에 만사를 금방 포기하고 그 탓에 늘 불평만 해대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 돼 있을 것인가? 아아 싫다. 악순환의 고리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지금 이 순간에라도.


사기충천 천진난만 소년병들에게,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작가의 고군분투에 경의를 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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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1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5-06-01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

2005-06-01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5-06-02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문제 없을 것 같은데요 ^^
 
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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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카즈키. 일본 이름의 재일조선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집에 이 작가의 소설책 몇권이 있었는데 한번도 들춰보지를 않았다. ‘재일한국인(자이니치)’이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러웠다고 할까, 아무튼 그랬다. 독자인 내가 저 꼬리표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책장 한번 안 열어봤을 정도인데 작가 자신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그 꼬리표는 소설 안에서 그냥 달랑달랑, 분명 눈에 띄는 표식인 동시에(주인공의 한 명인 ‘박순신’의 이름에서 드러나듯) 무겁지도 음울하지도 않게 달려있다. 무거움, 어두움, 그런 것들을 예상하고 있던 나의 선입견은 책 앞날개에 쓰여 있는 작가 소개를 읽으면서 달아나버렸다. 이 정도면 마음 편히 읽어도 괜찮겠구나. 벌써 꽤 오래 계속되고 있는 내 ‘소설기피증’은 다른 말로 ‘무거움 기피증’ ‘사람 들여다보기 싫음증’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 소설은 작가 소개 덕분에 내 나름의 필터를 무사통과한 셈이다.

책은 한 소시민 아버지가 폭력에 희생된 딸을 트라우마에서 구하기 위해 무장투쟁에 나서는 과정, 그리고 이 아버지를 돕는 외인부대 소년병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으랏차차 스모부’나 ‘섈 위 댄스’ 같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자부활전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경쾌한 문체에 빠져들었다. 내가 읽어본 일본 작가의 소설 중에서 이와 비슷한 문체가 분명 있었는데,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 분명 하루키는 아니다. 류도 아니다. 그럼 누구일까 궁리 아닌 궁리를 하다가 아사다 지로가 떠올랐다. 직설적이고 유쾌한 화법이 얼핏 아사다 지로와 닮은 듯한 느낌. 하지만 아사다 지로에게서는 조폭적인, 권력의 뒷골목 같은 냄새가 나는 반면에 가네시로에게는 변두리 사람들에게서 풍겨나오는 산뜻한 도발, 그런 분위기가 있다. 파릇파릇한 외인부대의 감성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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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5-2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쾌한 문체...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변두리 사람들에게서 풍겨나오는 산뜻한 도발이라니, 이 리뷰가 딱 그런데요?ㅎㅎ
산뜻한 도발에 방점.^^

panda78 2005-05-2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볼루션 NO.3도 재밌습니다. (이 책에 나온 박순신 외 패거리들이 레볼루션 NO.3의 주인공들이거든요.)
GO도 괜찮구요.
저는 영화 GO를 먼저 보고 나서 이 사람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라, 처음부터 자이니치의 그림자는 기대도 안했지요. 흐흐.

딸기 2005-05-26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볼루션, 어제 다 읽었습니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