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거래한다 - 가난한 사람들의 무역회사 막스 하벌라르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외 지음, 김영중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있게 읽었다. '몬드라곤' 이래 이런 종류로는 제일 재미있었다(가 아니고 이런 종류의 책을 별로 읽지도 못했지만). 이른바 윤리브랜드(ethical brand) 운동의 효시가 됐던 막스하벌라르 커피 생산 프로젝트를 비롯해 같은 그룹(네덜란드 참여연대)에서 시작한 바나나, 청바지 등의 브랜드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나는 커피 브랜드 업체들도 시찰 여행에 참여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 안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항의에서 대화로’라는 새로운 연구 방법과 관계가 있다. 이 접근 방법은 시위와 항의에 강조점을 두는 단계가 끝난 다음에는 건의안을 작성하고 정책에 대한 대화를 모색하는데 목표를 두는 단계로 진행된다... 브랜드 업체들은 커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였고 가격 형성과 품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번도 커피재배 농부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시장은 익명이다. 가격 형성은 뉴욕 주식시장에서 이루어진다. 커피 재배농부들은 그들의 시야에 들어와야 했다.


나는 인간을 인간이 맺는 관계들과 맺어지는 관계들의 중간 지점으로 보려고 한다. 그것은 쌍방향 교류인 것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자면 인간은 하나의 점으로 표시되며 이 점에서 여러 직선들이 다른 사람들 방향으로 지나간다. 따라서 원의 형태가 아닌 별의 형태가 된다. 직선들은 계속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차한다. 인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와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맺는 관계들을 의식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우리’의 부분이 된다... 원하였던 관계든 원치 않았던 관계든 그 관계가 무시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은 임의로 다뤄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착취, 추방, 고문, 종속 혹은 그보다 더한 것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전쟁의 문제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미국은 '건조물 3347HG' '교량 4490BB' 따위를 공격할 뿐이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밀리암이라는 아낙네와 세 명의 아들, 그녀의 사촌인 젊은 병사 유세프, 유세프의 아버지인 농부 압둘인 것이다’ 유기농 식품 사먹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익명성을 넘어서야만 하는데, 그건 ‘구조’와 연결돼 있으니 힘들다. 사람들은 힘든 건 금방 까먹는다.


인디언 커피재배 농부들이 도움을 주고받는 모델에 걸림돌이 되는 점은 바로 상호성이 방해받는 것이다. 그들은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줄 수 있는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즉 커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개념, 그들의 인간상, 그리고 자연과 지내는 그들의 방식을 줄 수 있다.


우리는 가격을 보호해 줄 필요가 있는 불쌍한 농부들이 아니다. 우리는 친환경적이며 사회적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커피를 재배한다. 우리는 이렇게 생산한 커피를 판매할 시장을 찾고 있는 떳떳한 생산자들이다.


이 부분은 나의 소시민 의식과 부딪친다. 박완서 선생님은 뭐라고 말할까? 작은 실천은 너무나 중요하다. 본질 어쩌구 운운하는 좌익소아병 환자들을 경멸한다. 본질이 어떠네 구조가 어떠네 떠들면서 불우이웃돕기 안 하는 작자들이 제일 싫단 말이야!

이 부분에서 문제는 ‘변혁이냐 개량이냐’가 아니고, ‘내가 얼마나 변하는가’ 하는 ‘변화의 상호성’에 대한 문제인데. 그러려면 다시 문제로 돌아간다.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 기간은 나오미 클레인의 책 ‘반 로고’가 출간되어 반세계화주의자들의 현대적 바이블로 떠오르던 때였다. 이 책은 상표의 독재에 대한 고발이다. 사회에 의미를 부여하는 담론이 쇠퇴하고 광고와 마케팅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상표는 브로커들에게 중요하게 되었다. 나오미 클레인은 로고를 무가치하다고 고발했다. 그녀가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톱 브랜드의 생산 환경을 예리하게 분석한 것은 옳았다. 그녀는 인기 운동선수들에게 수억 달러를 주고 게약을 맺는 반면에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생산비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스포츠 스폰서 기업들의 미친 짓을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자본주의는 그와 같은 생각들을 흡수하며 그런 생각들을 해치지도 않습니다. 생태학적 공정거래 생산물의 개발은 오로지 문제를 비정치화할 뿐입니다. 이는 부분 시장에 머물 것이며 나머지 시장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내 생각으로 그녀는 소비자 운동의 변증법과 세계 경제의 질서에 대한 논의를 그렇게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지역적으로 행동하고 세계적으로 생각하라”라는 접근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 나은 접근인 것 같다. 불신하게 될 수 있는 세계경제의 질서화는 인간의 의식적인 윤리적 선택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행동을 위한 동기를 가져오겠는가? 나는 참여연대에게 다른 길을 가도록 조언하기로 결심했다. 상표의 힘인 로고가 좋은 쪽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 로고는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여야 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 운동은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사회 정의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을 닦는 데 회의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정치에 대한 실망을 말한다. 희망과 의심은 시계추의 운동 속에 있다.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위한 초석이 놓임에 따라 희망의 영역이 생긴다.


나오미 클레인의 책은 읽지 못했지만-- ‘자본주의’와 ‘시장’의 문제,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뛰어들 것인가, 원조에서 공정거래로, 공정거래의 개념, 시혜가 아니라 1세계와 3세계가 함께 변하게 하는 지구 살리기 운동,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중운동의 변화 등등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 같아서 책을 다 읽고나서 며칠을 묵혔는데 별로 생각을 곱씹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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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2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겠습니다. 저도 보겠습니다...;;;

blowup 2005-11-24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책 골라서 리뷰 써주시는 딸기 님 예뻐요. 당근 추천. 근데 읽고 나면 맘 복잡해질 같아요. 우어우어.

딸기 2005-11-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꼭 읽어보세요.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나무님, 맘 복잡해지는 거 맞아요. ^^ 생각할 거리는 많은데 생각 않고 있다는 무뇌아병 자책감, 실천하지 않고있다는 패배감 기타등등 기타등등

승주나무 2005-11-2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장은 익명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군요. 우리가 믿는 신은 피가 흐르지 않는 시뮬라시옹의 '가격'일까요. 장인은 집을 다 짓고 나면 말없이 돌아서지만, 건축물 곳곳에는 그의 온기가 흐릅니다. 대량 생산되는 커피나, 요즘 안타깝게 흘러가는 쌀도 큰 문제는 직접적인 생산자들이 상품에 반영되지 않고, 철저히 배제된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리뷰 잘 보았습니다.

숨은아이 2005-11-24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질이 어떠네 구조가 어떠네 떠들면서 불우이웃돕기 안 하는 작자들이 제일 싫단 말이야!"에 추천합니다.

딸기 2005-11-25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반가워요 *^^*
승주나무님, 아이디가 특이하시네요. 반갑습니다. :)

하이드 2007-11-05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필받아서 책 찾아보다 이 책 추천받았어요. 땡스투 누르고 갑니다. ^^
 
과학 오디세이
정창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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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이 에트나 산을 '라 노스트라 시뇨라' 즉 어머니산이라 불렀던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경작을 계속하면 땅은 산성이 되어 황폐해진다. 이때 사람들은 논밭에 석회를 뿌려 땅을 중화시키는데, 이 지역에서는 화산재가 그 역할을 한다. 화산재가 바로 석회이기 때문이다. 즉 에트나 산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카로스는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햇볕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떨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하늘로 날아간다면, 주변 공기는 점점 식어갈 것이다. 그렇다고 이카로스 이야기를, 뭘 모르는 선조들이 만들어낸 넌센스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다이달로스의 미궁과 이카로스의 날개 사이에는 우리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불뿜는 화산을 지옥의 입구로, 굽이쳐 흐르는 강을 거대한 뱀으로 보았던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 저변에는 분명 자연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신화와 과학, 둘은 적인가.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신화는 자연을 설명하려는 최초의 서툰 시도, 즉 과학의 선조'라는 미국의 신화학자 비얼레인의 말을 빌어, 저자는 신화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1차 사료는 토머스 벌핀치의 '신화의 시대'.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서 지진이나 해일 같은 지질학적 현상과 유전 문제, 빛과 소리의 작용, 우주의 기원 등에 대한 인류의 생각을 읽어낸다.

문화인류학적 맥락에서 신화를 재해석하는 일은 늘 이뤄지고 있지만, 자연과학과 결부시켜 신화에 주석을 다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참신하고 흥미롭다. 더 의미있는 것은, 멀고먼 그리스신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에까지 시선을 확장시켜 진정한 '오딧세이'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신화를 모티브로 한 그림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공들여 책을 만든 티가 난다.


잠시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과학책을 왜 읽어야 하나. 핵무기, 인간복제, 환경오염 같은 과학의 이슈들은 이제 진부하다 싶을 정도지만, 그런데도 정작 과학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떤 사회집단 혹은 학문이 '절대권력'이 되려한다면 모든 지식인집단이 들고일어나 견제를 한다. 그런데 유독 과학이라는 권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맹신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과학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권력으로서의 과학'을 구분해내는 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자연 앞에서 인류는 신화시대 사람들의 겸손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어떻게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것인가. 이 문제에 그리스 로마 신화는 멋진 조언을 해주고 있다. 생명윤리는 불로불사를 얻고자 하는 티토노스의 자기애가 아니라, 고통을 견디며 의지를 꺾지 않은 프로메테우스의 인류애를 바탕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과학잡지를 만들었던 저자의 통찰력에서 나온 이야기이니 귀담아 들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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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1-2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렵지 않을까? 하다가 보니 중고등학생 권장도서라 되어 있길래 얼른 보관함에 넣어 봅니다.
ㅎㅎ 근데 저는 언제나 책을 떡~ 사자마자 읽고, 읽자마자 리뷰쓰고, 하는 날이 올까요?

바람돌이 2005-11-2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것 같네요. 저도 추천하고 보관함에 넣을게요. ^^

바람구두 2005-11-21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 아니던데... 흐흐.

딸기 2005-11-2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 아니라고 썼자나...

딸기 2005-11-2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놀자니깐 왜 안 놀아줘? 마감도 끝났음서...

딸기 2005-11-2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사랑님, 바람돌이님, 이거 한개도 안 어렵고 재밌어요 ^^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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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지병으로 숨졌을 때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신문에 쓰인 대로 굴드는 '스타 과학자'였다. 30년 가까이 수많은 에세이와 저술을 남긴 대중적인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스타성은 학문적 업적과 날카로운 사회적인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굴드가 숨진 지 1년이 넘어서야 그의 최대 역작 중 하나인 이 책이 국내에도 소개됐다.


책은 생물학적(유전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서(이는 굴드의 인생을 관통한 테마였다고 해도 될 것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굴드의 다른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주제가 명확하다. '인간의 지능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는 것이다. 센세이셔널하게 표현하면 'IQ는 없다'가 될 것이다. "지능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세상에는 머리 나쁜 인종과 머리 좋은 인종, 머리 나쁜 성(性)과 머리 좋은 성이 따로 있다"는 '지능 이데올로기'를 뒤집는 것이 책의 목적이다. '지능'으로 표현된 유전적 결정론의 내면에는 백인 남성 우월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잘못된 척도에 대한 오해'라는 뜻을 제목(The Mismeasure of Man)에 담고 있는 이 책은 지능을 기준삼아 저질러지고 있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비판한다.

"100% 유전적 근시도 20달러짜리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는데" 유독 '지능'이라는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 계급을 만드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지능에 따라 사람들을 서열화하고, 차별하는 풍조는 과학의 탈을 쓴 정치적 범죄에 불과하다고 굴드는 말한다.


여기서 근원적으로 한걸음 물러서, 저자는 '지능'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그런 실체가 존재하는가. "놀랄만큼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간의 능력을 나타낼 때 '지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축약된 말은 물화(物化)의 단계를 거쳐 단일한 실체라는 의심스러운 지위를 얻게 된다".

과학자들과 기득권자들의 결탁 속에서, 인간 뇌의 다면적 기능은 '지능'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표현되고 막강한 지위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다음 수순은? 서열화다. 지능에 따라 사람들을 줄세우는 것. 줄을 세우는 기준은? 계량화다. IQ테스트다. 이런 '생물학적 지능결정론'은 과거 서구의 식민주의가 즐겨 써먹었던 '개종'이나 '동화'로도 해결될 수 없는 서열화라는 점에서, 차별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차별이다.

굴드는 이전 세기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통계치를 어떤 식으로 악용 또는 오용해서 인간 지능 서열화에 써먹었는지 탐정처럼 밝혀내면서, 서구식 '진보' 개념과 연결된 서열화를 통렬하게 비판한다(진화생물학에서 '진보' 개념에 대한 비판은 굴드의 마지막 저작이었던 '풀하우스'에 체계적으로 나와 있다). 굴드가 미국에서 인종차별 철폐투쟁이 가열하게 일어났던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반골임을 염두에 두고서 읽으면 다소 과격한 그의 논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생물학에 관한 대중적 저술 중에서는 '고전'에 해당된다. 과학저술가로서 굴드의 인기를 생각하면 국내 출간은 많이 늦은 셈이다.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981년. 이 책을 20여년이 지난 지금 읽으려면, 그가 던진 메시지의 '현재적 의미'를 살펴봐야만 한다. 지난 96년 굴드는 15년만에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생물학적 결정론의 90년대적 의미'를 해석했다. 바이오테크혁명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1920-30년대 우생학자들의 논리로 다시 회귀하는 듯한 90년대 미국 보수주의와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가 다시 판치는 세상.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우생학의 논리를 21세기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지금 우리는? 외국인노동자를 비하·학대하고 고정된 성역할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이야말로 굴드의 메시지를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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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1-18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지 않다면 읽어보고 싶어요.

서연사랑 2005-11-1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19900

리뷰랑 전혀 상관없이 캡쳐하기...ㅋㅋ

숫자, 예쁘죠?


딸기 2005-11-18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사랑님 땡큐 ^^
나무님, 저 책 안 어려워요. 의외로 슉슉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nemuko 2005-11-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리뷰 늘 간단명료해서 좋아요^^
저 책도 책꽂이에서 1년째 울고 있는데 얼른 읽어줘야 겠어요.

이네파벨 2005-11-1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제이 굴드...

그의 주장에 공감하든 하지않든...미워할 수 없는...아니..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저씨죠. 그냥..이런 사람들이 사는 것 만으로 세상이 좀 더 훈훈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는....

몇년전 이 사람이 죽었을 때는 눈물이 다 슬쩍 나려고 하더군요...아까운 나이이기도 하고...단순히 그가 내놓은 학문적 업적이나 훌륭한 글들 뿐만 아니라...글 뒤에 있는 그 자신이 사람들의...그리고 나의 마음 속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가지 않았나 싶어요..

다른 저서를 몇권 읽었는데 이 책은 아직 못읽었어요.
(보관함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죠...값이 좀 쎄서뤼....)
딸기님께서 요즘 저의 구매욕에 불을 활활 지피시네요~~

딸기 2005-11-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네파벨님... 너무나 공감 가는 말씀을.
그의 주장에 공감하든 않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저씨. 그렇죠.
저도 굴드가 죽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답니다. 너무 아까워서요.
 
전쟁의 세계사 히스토리아 문디 5
윌리엄 맥닐 지음, 신미원 옮김, 이내주 감수 / 이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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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닐이 Plagues and Peoples 를 1975년에 쓰고 1982년에 이 책, The Pursuit of Power 를 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나란히 ‘전염병의 세계사’ ‘전쟁의 세계사’라는 말로 나왔다. 무리 없는 제목이고, 어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구미에 맞는 제목인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전작이자 대표작인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병원균과 인간(숙주)의 관계를 ‘미시기생’으로, 피지배층과 지배층 즉 인간 간의 착취관계를 ‘거시기생’으로 표현했었다. ‘전염병의 세계사’는 미시기생에 관한 것이고, 구분하자면 ‘전쟁의 세계사’는 거시기생에 관한 것이다. 전자가 환경/생태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것이었다면 후자는 전쟁무기를 소재로 삼아 물질문명의 역사 쪽을 들여다본다.


“인간에게 유일하고 중요한 거시기생체는 다른 인간, 즉 폭력행위의 전문가로서 자기가 소비하는 식량이나 생활물자를 스스로 생산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들 사이의 거시기생을 연구하려면 그 연구대상은 단연 군사조직이며, 거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전사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장비의 변화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설명한 것은, 좀 억지스러운 해석같기도 하다. 이 책을 읽기 위해 ‘거시기생’이라는 개념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책은 고대와 중세를 거쳐, 주로 유럽을 배경으로, 전쟁과 전쟁기술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해갔는지, 전쟁기술 및 장비의 발달과 전쟁의 상업화 과정을 뒤쫓는다. 적어도 중세까지는 ‘전쟁의 상업화’일 것이고 근대 이후로는 ‘산업화’가 될 것이다. 전쟁이 산업이 되는 과정은 전쟁 무기의 발달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전쟁 무기의 ‘혁신’은 국가기구의 발달과 묶여 있다.

‘전염병의 세계사’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면 유럽에서 전쟁의 발발을 해당 사회의 인구 압력과 연결지은 부분인데 이 문제는 이 책의 중심 주제도 아니고, 크게 눈에 띄거나 재미있지도 않다. 이 책의 재미는 정치-경제-사회의 변화와 무기의 변화가 만나는 지점을 들여다보는 데에 있다. 특정 무기의 개량이 어떻게 전쟁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는지, 그런 개량은 어떤 사회에서 가능했던 것인지, 그리하여 일견 사소해 보이는 무기의 개량이 전쟁의 양상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설명하는데 무기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조차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맥닐 같은 유명한 역사학자한테서 잡학상식 류의 무기 얘기만 들어야 한다면 이 책을 아기다리고기다리고했던 의미가 없지! 책의 백미는 역시나, 맥닐이 보여주는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다. 고대와 중세 초기를 설명한 맨 첫 장을 넘기고 나면 두번째 장에서는 배경이 서기 1000년 무렵의 송대로 바뀐다. 문약했던 것으로 알려진 송의 수도 개봉, 그곳이 어떻게 ‘전쟁의 세계사’의 중심 무대가 되는 것일까. 역사가로서 저자의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11세기 이후 1000년간 서구의 확장과 발전의 근본적인 동력이 ‘중국의 부(富)’를 얻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맥닐은 ‘명령’과 ‘시장’이라는 두 가지 동원체계의 분기점이 바로 서기 1000년 개봉이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시장’이라는 말은 근대 이후의 자본주의를 설명할 때 혹은 요즘 우리가 글로벌화를 얘기할 때 쓰는 시장이라는 말과는 의미가 좀 다르다. 명령이냐 시장이냐 하는 것은, 사회의 권력관계가 신분구조와 억압에 의해 이뤄지느냐, 아니면 돈의 논리에 따라 이뤄지느냐를 말한다는 정도로 해두자.

저자는 1000년 전 개봉에서부터 세상은 후자, 즉 돈의 논리를 따르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가 발흥하기 이미 1000년 전에, 세상은 힘이냐 돈이냐에서 ‘돈이 힘이 되는’ 세상으로의 구조적인 변화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비롯된 이 대현상은 시장에 의해 규제되는 행동양식을 문명세계의 여러 민족 사이에 유례없는 규모와 심도로 보급시켰다. 구시대적인 명령 일변도 사회의 통치자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예전만큼 철저히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역사의 시간이 어느 지역에나 동일하게 흐른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근세 이후 시장의 지배가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빨리 사회를 변화시켰지만 중국에서는 “시장적 행동양식의 거센 불길이 시장에 적대적인 중국의 명령구조 자체를 녹여버리는” 데에 9세기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서유럽과 그 밖의 문명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대규모 자본의 사적인 축적에 대한 억압(예를 들면 상공인들에게 적대적이었던 중국의 관료들과 같은)이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전쟁 자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전쟁의 역사를 쓰는 사람에게 ‘당신은 전쟁을 좋아합니까’ 내지는 ‘그래서 당신은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문이다. 맥닐은 “전쟁을 비롯한 인간의 조직적인 폭력 행위에는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양의성(兩義性)이 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인간의 사회성은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영웅적 행위나 자기 희생, 용맹을 통해 최고도로 발휘된다.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명과 자산에 대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파괴 행위는 현대인의 도덕의식에 깊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오히려 그는 전쟁 자체보다는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게끔 만드는 구조, 그 불합리성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편이 맞겠다. 어쩌면 이것이 사실은, 전쟁을 역사의 ‘필요악’으로 보는 많은 이들의 시각에 더 들어맞는지도 모르겠다.

“1884년에 정신없이 쏟아져 나왔던 기술혁명이 이처럼 가장 얄궂은 결과를 낳았다. 20세기 초 건함 경쟁의 수많은 다른 측면과 마찬가지로, 이 포격통제 논쟁 역시 다가올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기술이 제어되고 있지 않고 또 제어될 수도 없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시대를 예시한 것이다. 가장 큰 역설은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경영하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이 모든 개별적인 측면에서는 위대하고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시스템 전체는 제어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합리성을 추구하다가 비합리성의 극단으로 나아간’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고도의 과학성, 합리성이 경직성과 비합리성을 낳게 되는 아이러니. 그리하여 서기 1000년 개봉에서 시작된 변화는 ‘합리적인 국가경영’이라는 명제와 결합돼 ‘모든 사회의 군수화, 모든 전쟁의 산업화’를 불러왔고 전쟁산업을 모태로 한 국가주의라는 리바이어던을 낳았다는 것이다. 전시 동원으로 시작돼 군비경쟁으로 치달은 20세기는 그런 시대였다. 맥닐은 대량생산과 서구의 눈부신 경제발전에서 되살아난 ‘명령’의 망령을, ‘명령’이라는 동원수단을 다시 불러냄으로써 더욱 강하게 세상을 쥐어짜내는 ‘시장’의 위력을 본다. ‘결론’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결론 대신 SF 한 편을 선사한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고도의 합리성과 총체적인 비합리성이 우울하게 결합돼 우리를 계속 옥죌 것인지는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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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1-18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가로로, 세로로...종횡무진 묶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해 주는 책이겠네요. 오늘은 출근하시자마자 리뷰 한 편 해치우기?^^

blowup 2005-11-18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산출판사에, 딸기 님의 촘촘한 리뷰까지. 언제 읽을지 몰라도 일단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딸기 2005-11-1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도 이산출판사 팬이시군요. 제가 그렇거든요 ^^

페일레스 2005-11-1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딸기님. 저번에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기 전에 <전염병의 세계사>를 읽어보는 게 낫겠다고 말씀하신 게 맞나요? 생각이 잘 안 나서... -_-;
이산출판사는 저도 팬이어요! '이산의 책 02'인 <도쿄 이야기>부터. 흐흐. -_-)b

딸기 2005-11-1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 균, 쇠를 읽기 전에 전염병의 세계사를 읽으셔도 좋고요,
사실 순서는 상관없을 것 같아요.
굳이 고르라면, 전염병의 세계사를 먼저 읽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
도쿄이야기도 재밌었지요. :)
 
우주의 발견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충호 옮김 / 푸른숲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우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공상과학 작가나 공 대신 로켓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는 어린 천재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숱한 탐사선들을 우주로 내보냈다. 나사의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는 가히 우주탐사 1번지라 해도 된다.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와 챌린저호, 화성에 착륙했던 패스파인더호, 우리나라의 무궁화1호 인공위성 등이 모두 이 곳에서 발사됐다.

유럽도 지난 6월 자체적으로 `화성특급' 비글호에 비너스 익스프레스(금성탐사선)를 보냈고, 중국도 유인우주선을 2대나 쏘아올렸다. 중국은 2020년까지 화상탐사선을 내보낸다 하고, 러시아는 30년 안에 화성에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한다. `우주개척'의 카우보이 시대다. 문제는 무주지 선점(無主地 先占) 식으로 진행되는 우주시대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우주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 우주가 누구의 것이기에 서로들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일까. 아직 많은 이들에게 우주개척은 영화 속의 이야기일 뿐, 1999년7월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유엔 회의가 열렸다든가, 이미 1967년에 유엔 외부우주공간조약이 채택돼 우주를 평화적으로 탐사·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 따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데이비스는 지금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알아야 할 까닭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우주를 어떻게 탐사할 것이냐를 놓고 벌어질 논쟁은 중요한 공공 문제이기 때문에 충분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우주탐사를 공공의 이슈로 받아들이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정보공개를 요구하지 않으면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같은 것들이 언제라도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수상한 사업에 쏟아 붓고 국제관계를 냉각시키는 짓들이 또 벌어질 것이다 하는 얘기다. 미국인들에게 하는 이야기라지만, 우리도 귀담아 들을만한 소리다.

책은 우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쉽게 설명해주면서, 동시에 인류가 걸어온 우주탐사의 역사를 풀어놓는다. 화성에는 정말 운하가 있을까, 별점은 들어맞을까 같은 흥밋거리부터 최근의 천문학 연구 성과까지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과학 전공자가 아니라 이 책과 비슷한 `무엇무엇 알아보기(Don't know much about)' 시리즈들을 펴냈던 저술가로, 말하자면 잡학가(雜學家)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했다는 책들이 실제 책장을 펼치면 쉽지도 않고 재미도 없기 십상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정말로 쉬운데다 문장이 만화체처럼 재미있다. 외국 책인지 우리나라 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한자까지 풀어 설명한 이충호씨의 번역도 만점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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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5-11-1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보관함에....

깍두기 2005-11-1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와 내용 많이 겹치나요?

딸기 2005-11-1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 안 봤어요
그런데, 이 책은 아마도 코스모스와 겹칠만한 책은 아닐 것 같아요.
이 책은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