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잠을 자기 위해 리틀록의 한 모텔에 처음으로 차를 세웠다. 굳이 마음속에 그려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이미지는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연방군이 지켜보는 앞에서 고함을 치고 침을 뱉는 성난 백인들 사이를 지나 학교로 향하는 어린 흑인 학생들의 모습. 미국의 테러.

이튿날 아침, 나는 다시 기나긴 여정길에 올랐다. 미시시피 강을 건너고 멤피스를 가로질렀다. 또 다시 살아나는 마틴 루터 킹의 암살. 미국의 테러.

테네시를 지나치는 내 앞에 미국 도로 역사의 더 많은 부분을 알려주는 표지판, 네이선 베드포드 포레스트 주립공원이 나타났다. 연방군 흑인 병사들에 대한 학살이 자행될 때 남부연합군을 지휘했던 포레스트는 후일 KKK단의 창설에도 일조를 했다. 미국의 테러.

몇 마일을 더 가자 샤일로 격전지라는 또다른 표지판이 나타났다. 이곳은 1862년 4월 이틀간 벌어진 전투에서 남부연합군 1만3천명과 연방군 1만1천명이 목숨을 잃은, 피로 얼룩진 곳이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발 밑에 시체가 밟히는 유혈낭자한 전투였다. 당시 연방군과 남부연합군 전사자는 독립전쟁, 1812년의 미영 전쟁, 멕시코 전쟁의 전사자를 다 합친 숫자보다도 많았다. 그 학살의 목격자 중 한명은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뒤 사랑하는 이들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수많은 뉴요커들처럼 군인 남편을 찾아 나선 젊은 여인이었다. 전선의 간호사로 일할 것을 강요받은 이 여인은 의료 텐트에 산더미처럼 쌓여가던 절단된 팔다리들의 끔찍한 모습을 후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미국의 테러.

내슈빌과 역사책에 나오는 올드 히코리, 즉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고향인 인근의 허미티지. 하지만 인디언들은 그를 예리한 칼이라 불렀고, 그는 수천 명의 인디언들을 그들 조상이 살던 고향에서 내쫓아 처절한 눈물의 행렬로 내몬 인디언 제거 정책의 장본인이었다. 미국의 테러.

녹스빌이 가까워오자 오크리지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과학자들의 숙소로 만들어진 마을치고는 무척이나 목가적인 이름이었다. 그것을 보자 검게 그을린 히로시마와 세계무역센터의 어지럽게 뒤엉킨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미국의 테러.

평지에서 컴버랜드의 언덕으로 힘겹게 올라가 다시 버지니아로 들어서니, 셰난도어 계곡과 남북전쟁의 흔적을 보여주는 더 많은 유적지가 나타났다. 윈체스터로 나아가는 출구가 이곳에 있었다. 길고도 치열했던 남북전쟁 기간 동안 미국인끼리 싸우며 70번 이상이나 주인을 갈아치운 곳이 바로 이 도시였다. 그러고 나서 이제 형제들의 싸움으로 생겨난 웨스트버지니아로 들어서니 하퍼스 페리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이곳은 광적인 노예제 폐지론자 존 브라운이 자살 공격을 감행하여 화약통에 불을 질렀던 곳이다. 그런 그를 누구는 테러리스트라 불렀고, 누구는 순교자라 불렀다.

메이슨-딕슨 라인을 넘어서 메릴랜드의 해거스타운과 샤프스버그로 들어서면, 하루 동안에 치른 것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앤티탐 격전지를 볼 수 있다. 미국의 테러.

이제 지형은 펜실베이니아로 바뀌었다. 이곳, 한때 굶주린 로버트 리의 남부연합군 병사들을 잡아끌었던 그 풍요로운 들판이 9월의 태양 아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옥수수밭은 샛노란 호박색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풍요로운 수확을 약속해주는 황금 물결로 일렁거렸다. 게티스버그를 지나려니 1865년 7월의 사흘 동안 일어난 유혈 참극이 머리에 떠올랐다. 미국의 테러.

한때 겁에 질린 미국인들이 로버트 리 장군의 접근을 피해 도망친 해리스버그를 지나 동쪽으로 방향을 트니 뉴욕이 점점 가까워졌다. 우애의 도시로 불리는 미국의 본향 필라델피아 시의 표지판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한때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미국의 애국자였을까? 하지만 의회파들에게 그들은 반역적인 테러리스트였다.

도로 위에서 40시간 이상을 보낸 뒤 마침내 조지 워싱턴 다리에 이르자 대통령이 교회에 있었다. 보아하니 그곳에서는 속죄보다는 복수와 테러 종식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가는 듯했다. 그 순간 미국은 어둠을 조금밖에 밝히지 못하는 손전등을 들고 아주 길고도 어두운 터널의 입구에 서있는 듯했다.


좀 길게 인용했는데, 책은 유럽인들의 북미 진출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미국 역사를 촘촘하게,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미국의 역사가 이렇게 길었나, 싶을 정도로 씨줄 날줄을 촘촘히 엮었다.

케네스 데이비스는 미국에서는 ‘Don't know much about~'이라는 시리즈를 내놓아 명성을 얻은 인기 저술가라고 한다. 이 사람이 쓴 ‘우주의 역사’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 있다. 그때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어쩜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딱 ‘일반인들’ 용으로 꾸몄나 싶어 감탄했었다.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요점정리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았던 저자인데, 미국사에 대해서는 또 어찌 이리 해박할 수 있는 것인지. 진정한 ‘제너럴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말한 대로 저자는 제너럴리스트일 뿐, 역사학자가 아니다. 이 책은 미국사에 대한 학술서적이 아니며 말 그대로 ‘교양서적’이다. 저자는 미국인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역사에 대해 호기심은커녕 지루함만 느끼고 외면해버리는 ‘반역사적인’ 미국인들에게 역사의 참맛과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깨우쳐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사료, 주로 여러 종류의 책에서 모은 것들을 요약·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을 놓고 역사논쟁을 벌이기는 힘들 것 같다. 여러 가지를 꿰었는데, 그 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서 나처럼 미국사에 대해 ㅁ 자도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 딱 알맞다. 교양서적이라고 하지만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다소 시니컬하면서 경쾌한 문체인데 읽는 재미 못잖게 던져주는 것들이 많다. 위에 옮겨적은 것은 저자의 후기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으며, 미국이라는 신생국가의 성장 동력을 때론 경외로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저질러온 숱한 범죄들에 대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눈 감지 않기 위해서야말로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 후기를 쓴 시점은 아마도 2001년 9·11 동시다발 테러 직후였던 것 같다. ‘잔혹한 역사’에 눈감지 않는 저자는, 끔찍한 테러를 겪은 뒤에 오히려 미국의 ‘테러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탁월한 능력이고 엄청난 객관성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괜찮은’ 지식인들이 넉다운되어 ‘반테러 전선’으로 달려갔던 것에 비하면 더더욱 눈에 띈다.

책이 꽤 두꺼운데, 참 재미있게 읽었다. 질문-대답 형식으로 읽은 책이지만 그렇다고 의문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례로-- 조지 워싱턴은 벚나무와 무슨 사이였나? 워싱턴은 체리파이를 좋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워싱턴이 어릴적 벚나무를 도끼로 잘라놓고 아버지에게 이실직고했다는 일화;;가 기억난다. 그걸 가지고 ‘정직한 워싱턴’이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정직한’ 소리 안 들을 사람이 어디있을까마는... (나야말로 정직의 화신이다, 난 항상 들켰고 들키면 일단 이실직고했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워싱턴의 포토맥 강가에는 벚나무들이 늘어서 있다는데(이건 일본에서 줬다나) 좋은 책 읽고 벚나무에 몰두하면 실없는 사람 되겠지. 암튼 공부해야 할 것들은 많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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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3-0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께요...^^; 이런 좋은 책이 있다니...히~~
 
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지호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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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독일의 칼 하겐베크라는 ‘동물 전시사업가’ 사례를 중심으로 현대적 동물원의 탄생을 조명했다. 책 읽는 동안 ‘제목에 비해 참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 사례만 다룬 데다가 어째 영 저자의 시각도 ‘객관을 가장한 편파’인 것 같아서 입 내밀고 읽었다. 중반부 넘어가니 재미가 있고, 이 작업이 왜 의미가 있는지도 알겠다.


동물원- 즉 이국적인 동물을 전시하는 것은 인류가 나라를 만든 이래 생겨난 오래된 일이다. 따라서 ‘현대 동물원의 탄생’이라고 말하기 위해선 의미를 한정시킬 필요가 있다. 저자는 전근대 시대 유럽 왕실이나 귀족들이 취미삼아 이색 동물들을 모았던 ‘미네저리’와 구분되는, 일반인들도 가서 보고 구경하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교육시설 간판을 내건 동물원의 탄생’으로 논의를 한정지으면서, 그런 동물원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핀다. 이런 동물원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은 첫째 이국 동물들을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준 서구인들의 식민지정복 둘째 ‘보통 사람들’의 ‘교양 욕구’ 같은 사회적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동물원들은 모두 이 두 가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니 동물원은 첫째 제국주의의 속성과 둘째 현대 부르주아의 감수성이 결합돼 나타난 산물인 셈이다. 여기서 첫째 제국주의의 속성에는 비(非)서구에 대한 우월감(폭력), 그리고 그것과 맥을 같이 하는 자연에 대한 우월감(폭력)이 뒤섞여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20세기 초반 하겐베크라는 걸출한 사업가의 사업영역이 이누잇이나 인도인, 아프리카인 등 ‘인간 전시’(원주민 쇼)로 확장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현대적 동물원 개념의 바탕이 된 당대 유럽인들의 사고구조로 봤을 땐 전혀 논리적으로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동물원의 동물들 뿐 아니라 사람 쇼의 진행과정에 대해서도 당대의 팜플렛이나 기고문 같은 여러 자료를 동원해 상세히 설명한다. 너무 상세히 설명하는 까닭에, 이걸 시시콜콜히 다 알아보고 있을 필요가 있었으랴 싶을 정도다(지엽적인 문제에 천착하여 귀납을 이끌어내는 전통이 없는 이 쪽 문화에선, 독일이나 일본 같은 쪽의 이런 연구가 부럽다 못해 얄미워지곤 한다).


“1886년 북해에 있는 노르도스틀란트의 북쪽 해안에서 바다코끼리 370마리가 단 한 척의 배의 선원들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대자연은 370의 자녀수만큼 가난해졌고, 배는 370의 가죽만큼 부자가 되었다.” (p.297)


서양의 제국주의, ‘사람 쇼’로까지 이어졌던 그들의 우월감. 동물원에 동물들을 데려와 ‘과학교육용’ 심지어 더 나아가 ‘동물 보호를 위한 노아의 방주’라고 홍보하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자연 상태의 동물들을 희생시켰을까. 저자는 그런 것을 ‘너무 담담히’ 말하는 스타일이다. 저자는 ‘동물원을 만들겠다고 동물들을 떼로 죽인 인간들은 다 나쁜 놈들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부분에서 폭력적인 측면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 얼버무리나, 지금? 책 읽으면서 속을 욕했다. 그러나 마음속에 찝찝한 것이 계속 남아 있었다.


“가령 칼 하겐베크에게서 즉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인상 두 가지를 들자면, 그가 동물 거래상이었다는 점과 동물 애호가였다는 점이다.” (p.327)


나는 하겐베크와 다른가? 하겐베크라는 인물은 독일에서 탁월한 사업가를 넘어 동물 애호가로 이름이 높았고 말년엔 영웅시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이중적이라는 것이다. 현대 동물원의 속성, ‘동물원의 이데올로기’는 하겐베크 이래로 바뀌지 않았다.

요는, 내가 동물원을 좋아한다는 거다. 나는 어쩌다 한번 동물원에 가는 정도가 아니라 몹시, 많이 좋아한다. 동물원의 이색 동물들은 꼭 가서 보고 자료라도 찾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까닭에 내 컴퓨터엔 동물자료가 심심찮게 쌓이곤 한다. 한때는 서울대공원 어디에 어느 동물이 사는지도 줄줄 꿰고 있었다. 슬렁슬렁 책장을 넘기는데 결국 내 아픈 구석을 찌르고야 마는구나. 나 같은 소시민은 소시민 근성을 들켰을 때에 가장 아프고 찔린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하겐베크 같은 지나간 시대의 인물들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의 나 같은 사람들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는 묻지 않은 채 제국주의를 욕하면서 하마와 코끼리를 감상하는 사람들 말이다.


“사람 쇼의 인기가 감소된 것 같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 문화에서 그런 쇼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다양한 지리 잡지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온갖 진기함이 대량 소비되는 숱한 토크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p.33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물고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떠오른다... 칼 하겐베크와 같은 인물을 동물이나 사람보다는 돈에만 신경을 쓴 사람이라고 너무 쉽게 속단해버리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자신들이 이국 동물사업과 맺고 있는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상호작용이란 케이블 채널의 ‘동물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행위도 포함하는 것이다”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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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28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야만성...음, 이런 책 읽으면 욕이 더 늘텐데...

딸기 2006-02-2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욕이라기보다는요, 뜨끔한 구석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 세계화, 비판을 넘어 대안으로, 확대개정판
세계화국제포럼(IFG) 지음, 이주명 옮김 / 필맥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2003년의 이라크 전쟁, 그 이전인 2002년을 기억한다. 미국은 전쟁을 향해 달려갔지만 모두가 꿈쩍 못하고 질질 끌려가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세계는 들끓었더랬다. 그걸 자꾸 잊는다. ‘미국의 힘’이 너무 압도적으로 보여서, 조금씩, 그러다가 결국 많이 좌절하면서.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이 비록 전쟁을 막아내진 못했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전쟁 스케줄을 변경시키고 미국의 도덕적 권위(만일 그런 게 있었다고 한다면)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는데도 말이다.

 

책은 2003년에 벌어진 세 가지 사건, 칸쿤과 마이애미에서 벌어진 거센 반세계화 시위의 물결과 이라크전 반대운동을 다루면서 출발한다. 책의 저자는 ‘세계화국제포럼’이라고 되어있는데, 낯익은 이름들이 들어있는 것을 보니 세계사회포럼을 이끌고 있는 그들인 모양이다. 

이 책은 반세계화운동의 ‘교과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지구상 수많은 ‘운동권’들의 주장 중에서 핵심적인 것들을 뽑아내 공통의 이상을 추렸고, 작지만 의미 있는 여러 운동들을 소개하면서 반세계화 운동권의 행동 방향을 정리했다. 하나하나의 아이템이 다 재미있었다.


업무상;; 필요한 것들이 있어서 책의 내용을 쭉 한차례 정리해놓고,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부분을 따로 옮겨 적어 놓았다. 배울 것이 많고 기억에 남는 것도 많은 책이라서 읽은 뒤 내내 뿌듯했다. 정리 노트에 옮겨 담은 것들은 세계화의 10가지 핵심 원칙, 국제기구 개혁 방안, 대안 이니셔티브 사례들 같은 것들.

옮겨보자면 10가지 핵심 원칙은 ① 새로운 민주주의와 책임성 ② 부차성 Subsidiary ③ 생태적 지속가능성 ④ 공동유산(공동자산) ⑤ 다양성 ⑥ 인권 ⑦ 일터, 생계, 고용의 보장 ⑧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안전성 ⑨ 형평성 ⑩ 예방의 원칙 등으로 되어 있는데 공동유산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다. 사유화/상품화되어선 안될 사회 인프라를 ‘현대적 공동자산’으로 규정해 설명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GDP를 대신할 진보지표 GPI 부분도 재미있었다.

대안 이니셔티브들을 지역별로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고 있어서 케이스 스터디에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다. 다만 여기에 소개된 것들이 중남미와 아시아 일부 지역(반다나 시바가 활동하는 지역 ^^;;)에 한정돼 있는 것은 아쉬운 점. UNCTAD에 대한 평가라든가,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세계기구 같은 항목도 재미있었다.


마지막 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결국 이것이 가장 중요하겠지. 사실 이 책은 '리뷰'를 할만한 책이 아니다. 리뷰는 책을 놓고 잘 썼네 못 썼네 이런점이 아쉽네 하는 것인데, 이 책은 조목조목 따져가며 지식을 쌓으라고 내놓은 책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지,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지 생각하라고 촉구를 하기 위해 내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좀더 정신 차리고, 주변을 잘 둘러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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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태어났어요 달팽이 과학동화 1
심조원 글, 박경진 그림 / 보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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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보았던 달팽이 과학동화 시리즈 모두 재미있었는데 이 책은 좀...

꼬추달린 아빠 별, 아기집 달린 엄마 별.

이렇게 가르칠 거라면 차라리 그냥 엄마아빠 사람 모습으로 그려서 '제대로' 가르치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재미 없는 내용, 너무나 간단하고 평이한 설명, 좀 안어울리는 동양화풍의 선 굵은 그림, 성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유아 대상 동화책이라는 컨셉이 억센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빠 별 엄마 별이 외롭게 살다가 (거의 왕따 수준으로 설정된 것은 대체 어떤 이유에서인지)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어 아기 넷을 낫는다는 것도 우습다. 의인화를 하려면 아예 의인화를 제대로 하든가. '네 마리' 라고밖에는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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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3-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달팽이고, 솔거고 전집은 수준미달이 꼭 있어요.^^

딸기 2006-03-06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반적으로 달팽이는 너무 좋아요 히히

반딧불,, 2006-03-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흐뭇하죠^^
 
유년기의 끝 그리폰 북스 18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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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책.

그저 ‘멋지다’는 말로는 사실 설명이 안 되는데 말이다. 책은 반세기 전,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에 쓰여졌다. 저자는 SF계의 3대 거목으로 불린다는 아서 클라크다. 나는 그와 함께 ‘3대’라는 이름이 붙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제대로 된 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고, 로버트 하인라인의 책도 11년 전 단 한권 읽은 것 말고는 접하지를 못했다. SF에 별반 관심이 없다 해도 무방하다. SF라 부르는지 그냥 ‘소설’이라 부르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종류의 책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다른 모든 소설들을 합쳐서도 ‘가장’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로저 젤라즈니의 ‘앰버연대기’이다.


‘유년기의 끝’은 멋지다. 굳이 이 책이 ‘오래전에 쓰여진 책’임을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SF로 읽더라도 책은 충분히 멋지고 재미있다. 그래서 이 작가가 거장이라는 칭송을 듣는 것일까? 소설은 미국과 소련이 우주선 발사 경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에서 출발해, 불현듯 상공을 메운 ‘외계인’들의 출현 이후의 시기로 곧장 넘어간다. 책 전반부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강도 높은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외계인들의 형상이라든가 인간을 계몽하고 훈육하는 외계인들의 시스템 같은 것들이 이색적이었다.


공상과학소설이라기보다는 철학책 한 권을 읽은 듯했다. 일본 만화 중에서 나는 유독 ‘선계전 봉신연의’를 좋아한다. 다소 조잡한 그림, 우스꽝스럽고 엽기적이며 원색적인 액세서리들에도 불구하고 그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다. ‘복합적’이고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미래를 따를 것인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을 것인가.

나는 봉신연의가 그것을 아주 익살스럽게 다룬 만화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유명한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그런 코드로 읽었다. 정해진 미래인가, 인간의 자유의지로 개척해가는 미래인가. ‘은하철도 999’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기계인간으로서의 영생인가, 자유의지로 살다 가는 치명적인 인간의 생인가.


그리하여 나는 이 책 ‘유년기의 끝’도 그렇게 읽었다. 소설에서 작가는 지구의 인간들과 외계인들, 그리고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우주의 ‘근원적인 힘’을 이야기하면서 자아가 있는 개체와 개별성을 잃은 완벽한 통일체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다.


“모든 사람의 정신이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고 해봅시다. 모든 섬이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섬은 자기들의 기반인 반암(盤岩)에 의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일 바다가 사라진다면 섬도 사라지죠. 그 섬은 모두 대륙의 일부가 될 것이고, 섬의 개별성은 사라질 겁니다.”


작가는 그렇게 ‘정신의 통합’을 설명한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할지도. 과학은 이미 많은 상상들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이 책 혹은 저자에 대한 서지학적 지식이 없는 상태인 덕분에 나의 느낌, 감정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가며 읽었다. 오버로드라는 희한한 이름에 인류에 익숙한 형상을 한 외계인들은 훈육을 하고, 지구인들은 훈육을 받는다(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에는 봉신연의의 태공망이나 999의 철이 같은 극렬한 반항아는 없다는 것이다).

지구인들은 거대한 정신으로 변해간다. 이것은 아주 놀랍고도 재미있는 주제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의 생각이 별로 정리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책은 마치 선문답을 하듯이, 이미지와 색깔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으로 지구인의 정신이 우주와 통합돼 가는 과정을 그린다.

작가는 인류 역사를 시니컬하면서도 재치 있는 방식으로 묵살해버린다. 싸움쟁이 갈등투성이 범죄투성이 인간의 역사를 과감히 진화의 먼 초창기 아메바 시절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인류가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상태를 '유년기'로 정의한다. 책은 말 그대로 '유년기의 끝'에서 끝난다. 유년기 뒤에 오는 것은 위대한 정신일까, 아니면 죽음도 삶도 아닌 우주의 암흑물질 같은 것일까.

소설은 너무 철학적이고 어렵지만 멋있다. 폼이 팍팍 난다. 그리고 작가는 화두만을 던진 채 뒤로 숨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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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2006-02-1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딸기님은 언제나 제게 '넌 갇혀있구나..' 하고 질책하는 것 같네요..^^ 요즘 소설만 읽고 있었는데, SF 서평을 보니 뜨끔합니다. ㅋ 딸기님 서평이야 말로 정말 읽어보고 싶게 하는 게 있는 걸요..ㅋ

딸기 2006-02-1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옴마야, 저야말로 SF에 대해선 통 모르는걸요
그런데 로즈마리님 언제 시내 나올 일 없으세요?

로즈마리 2006-02-17 0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월요일에 신촌 갈 거 같아요. 20일에 오후에 잠깐. 22일 저녁에도 홍대 나갈 일이 있는데..볼까요? 제가 전화 드린다 생각하면서, 전화를 못 드렸네요. 현대를 살아가기 어려운 족속입니다, 제가. 전화로 얘기하는 게 종종 불편해서요..아니, 불편하다기 보단 뻘줌하여서..ㅋㅋ 근데 딸기님이 말하는 시내가 이쪽 동네도 되나요? ^^

딸기 2006-02-1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녁에는 좀 힘들고요(저의 하루생활 2라운드-집안일-가 있거든요)
20일 오후, 괜찮습니다. 제 연락처-- 011 251 3092 전화주시거나
불편 or 뻘쭘하시다면 (저는 둘 다 아니고, 걍 건망증이 심해서
전화를 잘 안 갖고다녀요 그날은 꼭 갖고나올께요) 여기다가
댓글로 남겨주세요.

로즈마리 2006-02-1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 좋아요. 그날 연락 드릴게요. ㅋㅋ

딸기 2006-02-2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걱... 로즈마리님
제가 오늘 핸펀을 두고 나왔지 머예요
011-702-6160 으로 전화하셔서 딸기 바꿔달라고 하세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