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울타리
도리스 필킹턴 지음, 김시현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만 두고 있다가 생각이 나서 회사에 들고 왔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길지도 않거니와 재미가 있어서 후다닥 넘겼다. ‘혼혈아들을 원주민들 틈에 버려둘 수 없다’는 이유로 호주 백인들이 몰리 자매 세 소녀를 이름만 학교일 뿐인 강제수용소에 넣었는데, 소녀들은 그곳을 탈출해 백인들이 쳐놓은 토끼막이 울타리를 따라 2400km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이 소녀들은 ‘혼혈’이었고, 책에는 백인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혹은 무의식중에 원주민들을 죽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다. 오히려 이 책 속의 백인들은 자기네들 멋대로 혼혈 소녀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고, 실제로 그런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호주의 백인들이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짓을 생생히 다룬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라면 역사책이나 ‘독수리의 눈’ 같은 책을 읽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오히려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것은(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들의 자연을 어설프게나마 상상해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소녀들의 독립심과 용기 같은 것들이었다. 저자 후기대로, 열 네 살에 인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용기 있게 대륙 횡단을 감행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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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러나 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몇 가지 사실들
제시카 윌리엄스 지음, 이해리 옮김 / 여름언덕 / 2005년 10월
절판


2000년11월, 나이키 공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방콕 샹그리라 호텔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호텔 안에서는 타이거 우즈가 한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우즈에게 공개서한을 전달했는데, 태국의 의류 노동자 한 사람이 38년을 일하면 우즈가 나이키에서 하루에 받는 액수 만큼의 임금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노동조합 전담자가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태국 노동자들이 최저생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나이키에게 요구하는 것을 도와 달라고도 했다. 우즈는 노동자들과의 면담을 거절하고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후에 이 문제에 대해 그가 던진 코멘트는 상당히 막연한 것이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의견이 있고, 이루려 하는 목표가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막으면 안 된다"
타이거 우즈는 골프 경기에서 우승하기를 바란다. 태국 노동자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를 바란다. 타이거 우즈는 나이키 모자를 쓰고 하루에 55000 달러를 받는다. 태국 노동자들은 그 모자를 만들고 하루에 평균 4달러를 받는다. 나이크는 '우리를 규정하는 모든 것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우즈를 고용했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나이키의 의도와는 달리 현대 마케팅의 역겨운 현실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가 되었다.-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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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5-19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책 좋아합니다.스타벅스 커피를 먹으며 남미 커피 노동자들은 커피값의 얼마를 받았을까? 메이드 인 차이나 폴로 티는 혹시 아이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전부 이런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왠지 책 표지의 그림이 그저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 의 좀 조악한 느낌을 주긴하는데....일단 보관하고

딸기 2006-05-1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조악하긴 한데요, 내용은 훌륭해요.
제가 좋아하는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책에서, 바로 드팀전님처럼 생각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철학하기'라는 내용이 나와요. 그러기 위해서,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많이 알아야 하고 많이 알려고 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드팀전 2006-05-19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은 저도 좋아합니다.아마 님의 페이퍼든 리뷰든 보고 알았던 듯 합니다.늘 좋은 책 ㄳ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러나 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몇 가지 사실들
제시카 윌리엄스 지음, 이해리 옮김 / 여름언덕 / 2005년 10월
절판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은 태평양 제도에 산다. 서태평양 섬나라 나우루에서는 성인의 77%가 비만이다. 부유한 유럽연합 회원국 비만율의 두배에 달한다. 이 지역 문화에서는 전통적으로 큰 몸집이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 예전에는 뚱뚱해질 정도로 많이 먹으려면 아주 부자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값싼 수입 식료품이 사람들을 위험한 비만 환자로 만들고 있다.
예전에는 이 나라 사람들의 식탁에 물고기와 열대 과일이 올랐지만, 이제는 바다건너 부유한 나라에서 내다버린 육류가 시장에 넘쳐난다. 미국에서 온 칠면조 꼬리,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온 양고기 부산물 등인데, 한때 비료나 애완동물 사료로 쓰이던 이런 고지방 육류를 이제는 태평양 제도 사람들이 즐겨 먹고 있다. 통가(남태평양 섬나라)에서는 몸에 좋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는 국산 생선이 양고기 부산물이나 수입 닭고기보다 15~20% 정도 더 비싸다.
육류 수출국이 '음식을 통한 집단학살'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모아의 말리탈루 시아파우사 부이 보건장관은 수입 육류를 가리켜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버리는 쓰레기 음식 junk food'이라 했다. 더 나아가 피지는 양고기 부산물의 수입을 금지했는데, 이에 대해 뉴질랜드는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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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러나 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몇 가지 사실들
제시카 윌리엄스 지음, 이해리 옮김 / 여름언덕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실린 어떤 사실은 수치를 보면서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 실린 어떤 사실을 계기로 우리의 생각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생각이 세상을 향한 실천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책 출간되는 과정에서 새발의피를 빨아먹는 벼룩의 간의 1000분의1보다 좀 작은 기여를 했다는 이유로 출판사 관계자(?)께서 책을 보내주셨다. 표지 디자인 어색하고 중간중간 잘못된 부분, 예를 들면 스리랑카 사람을 사람 이름처럼 띄어쓰기까지 해서 ‘스리 란칸’으로 쓴 것이라든가 콩고민주공화국의 킨샤샤를 ‘남아공 수도 킨샤사’로 해놓은 것 같은 말단지엽적인 오류들이 보여서 눈에 거슬렸는데, 책 내용은 매우 훌륭했다.


책 제목대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몇가지 사실들을 짤막한 에세이식으로 다뤘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몇가지만 늘어놓아보면

 

-세계 비만인구 3분의1은 개발도상국에 산다

-인도에는 아동노동자가 4400만명 있다

-산업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식품첨가물을 매년 6~7kg을 먹는다

-2003년 미국 국방비는 7개 ‘깡패국가’들 국방비 총합의 33배이다

-유럽연합의 소들은 하루에 2.50달러씩 보조금을 받는다

-전세계 불법 마약거래 규모는 합법적인 제약산업과 같은 규모다

-뉴질랜드에서 영국으로 수입되는 키위는 무게의 5배에 달하는 온실가스를 내뿜는다


책은 가벼워보이지만 ‘가벼운’ 내용들은 절대 아니다. 에이즈, 고문, 낙태, 여성 할례, 소년병, 개인정보 침해 같은 중요한 이슈들을 읽기 편하고 재미있게 설명했다. 몇가지 내용은 참고가 될까 싶어서 노트해뒀다. 국제문제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먼저 이 책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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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5-1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비만은 가난의 상징이라는 말이 맞군요...

딸기 2006-05-1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자나라에서 쓰레기음식을 가난한 나라로 판대요

드팀전 2006-05-19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바로 탱스 투요........언젠가 회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100명중 몇 명이 정규직이 될 까 라고 물어봤더니 사람들 대답이 제각각 이더군요. 대략 10명 선이 가장 많았습니다.그런데 통계는 100명중 한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히 비정규직....신화를 깨는 현실을 알아야. 개인의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면..이란 거짓된 선전을 비판할 수 있는 거지요.

딸기 2006-05-1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그렇군요...
 
현대 일본의 역사 - 도쿠가와 시대에서 2001년까지 이산의 책 37
앤드루 고든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세미나용으로 샀는데 꽤 비싸다. 일본 근현대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기 위해서 이 책을 교재로 골랐는데, 그런 용도로 볼 때엔 나쁘지 않았다. 미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는 일본사를 ‘근대성’과 ‘연관성’이라는 맥락에서 조명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서문에서 밝혔는데,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한국어판 서문을 비롯한 저자 서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일본적인 특성과 근대성 사이의 무게중심을 바꾸기 위해 이 책에 A Modern History of Japan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제목은 일본이라는 장소에서 전개된 특별히 ‘근대적인’ 이야기를 강조한다. 다시 말해 일본의 근대사는 세계의 근대사라는 더 큰 밑그림에서 떼어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의 화두는 연관성이다....

도쿠가와 체제는 내적인 요인 때문에 위기에 처했으나 그 붕괴를 촉진한 것은 국제환경의 변화였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발흥은 19세기와 20세기 일본에서 진행된 근대화 프로젝트와 관련된 문제이다. ... 국가간의 갈등, 그리고 국가 만들기를 열망하는 국민간의 갈등은 근대 세계사의 세 번째 차원이다.”


“근대사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다양성은 연관성의 또다른 측면이다. 일본을 포함해 모든 지역의 역사는 세계사라는 더 큰 구도 위에서 펼쳐지는 변주곡이다.

... 이와 같은 일본 근대사의 뚜렷한 특징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학자와 연구자들이 일본사를 유례없이 특이하거나 이국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 일은더 중요하다. 이런 특수성의 함정이 존재하는 데는 일본인 스스로가 ‘일본적인 것’을 정의하고 보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사에 대한 개설서를 이전에 몇권 읽었는데, 내 경우는 창비에서 나온 ‘새로쓴 일본사’가 제일 명쾌·명료해서 좋았다. 이 책 ‘현대일본의 역사’은 저자가 앞서 인용한 ‘근대성과 연관성’이라는 생각의 틀을 유지하려고 애쓴 감은 있는데, 본문은 의외로 평이했다. 일본이라는 근대국가가 보여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 한 냉정한 시선은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이 씨실이라면 이산에서 나온 다른 책들, ‘번역과 일본의 근대’라든가 ‘도쿄 이야기’, ‘화려한 군주’ 같은 책들을 날실로 삼아서 디테일을 보완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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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5-1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료한 리뷰 좋은걸요.

반딧불,, 2006-05-1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추천 했다네요;;

딸기 2006-05-1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반딧불님

레이첼 2006-05-2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딸기 2006-05-3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레이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