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제임스 레스턴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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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종류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지라, 아주 오랫동안 묵혀놓고 있었다. 이슬람에 관심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정수일 선생의 ‘이슬람문명’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내 책꽂이에서 주인의 손을 타지 못했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아무래도 해치워야! 하는 생각에서 출근길 전철용 책으로 골랐다. 의외로(?) 재미있었다.

 

저자의 글쓰는 방식은 경쾌하면서도 산만하고, 시니컬하면서도 재치가 넘친다. ‘문체’라는 측면에서 냉소와 재치는 대개 같이 가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그 배합 비율이다. 너무 틱틱거리면 읽는 사람 입장에선 짜증나기 쉽고, 너무 우직하면 저널리스트(노블리스트도 마찬가지다)의 근성이 의심스럽다. 너무 꼬아놓으면 정신 산만해지고, 너무 투박하면 읽는 재미가 떨어진다. 제임스 레스턴의 경우는 워낙 대 문장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거니와, 비꼬기와 따스함, 신랄함과 재치가 괜찮은 비율로 배합돼 있어서 읽는 맛이 있었다.

 

살라딘과 리처드의 이야기를 당대 유럽과 이슬람의 이야기와 연결지어서 교차시켜 놓았다. ‘십자군-유럽-리처드’의 한묶음과 ‘이슬람-아랍-살라딘’ 한묶음이 번갈아 이어지는데, 저자의 ‘애정’은 45대 55, 혹은 40대 60 정도인 것 같다. 리처드는 카리스마 넘치는 멋쟁이 낭만파이지만 정치력이 떨어지고 경솔하다. 살라딘은 때론 신중함이 지나치지만 관대하고 신앙심이 깊다. 리처드가 ‘군인’이라면 살라딘은 ‘군주’다.

그런데 애정의 강도와 관계 없이, 저자가 서양문명권의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한계 탓에 기독교-유럽 문명권에 대한 빼곡한 설명에 비해 이슬람-아랍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울만한 서술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전쟁 소설을 기대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인상깊었던 것은 저자가 복원해낸 십자군 시절 중근동 도시의 풍경이었다. 중세 도시 아크레에 대한 묘사 같은 것들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는 향료 냄새, 햇살과 먼지, 비릿한 내음이 코끝을 맴도는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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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6-28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뷰 좋습니다.
이건 안본건데요. 나중에 찾아봐야겠어요.

딸기 2006-06-2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이 책이 취향에 맞으신다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솔직히 100% 제 취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읽는데 오래걸렸는데요, 뒷부분으로 갈수록 재밌더군요.
 
디아스포라의 지식인 - 현대 문화연구에 있어서 개입의 전술 이산의 책 36
레이 초우 지음, 장수현.김우영 옮김 / 이산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디아스포라 문제에 관심이 좀 있어서 이 책을 읽고 싶었는데, 알라딘 서재에 페이퍼를 올렸더니 역자인 김우영 선생님이 마침 그 페이퍼를 보고 친절하게도 책을 보내주셨다. 김선생님은 윌리엄 맥닐 ‘전염병의 세계사’를 번역하신 분이어서 여차저차해 연결이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산에서 나온 책들을 여러권 번역하셨다.

그런 연유로 책을 손에 넣었고, 지난달 멀리 여행할 때에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배낭에 넣어갔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시간 때울겸 읽기에는 버거운 책이었다. ‘디아스포라’의 개념도 이 책에서는 아주 넓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다, 서벌턴이니 담론이니 아도르노 비릴리오 하는 것들은 나한테는 너무 낯선지라 소화하기가 힘들었다.

이거, 이러다가 소화불량 걸리겠네, 하면서 대충 훑어 넘기려는데 중국 얘기가 나왔다. 저자는 ‘중국여성지식인’인데 홍콩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 미국 대학에 교수로 재직 중인데, 책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의 기본은 그런 배경에서 출발한다. 중국, 제3세계, 여성, 서벌턴, 지식인.


“1세계에서 활동하는 3세계 여성지식인이 1세계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국 밖의 디아스포라 중국지식인은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중국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가.”


나는 담론이니 하는 것 잘 모르니까, 내가 읽은 대로 생각나는 문제를 정리하면 이런 질문이 된다. 확장하면, “서벌턴은 말할 수 없다”라는 역설에서 출발해서 그 역설을 뒤집기 위해 ‘디아스포라의 중국지식인’같은 1세계적인 3세계 인물들(3세계의 특권층 엘리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좀더 보편적인 문제로 가는데, 저자는 자기 존재조건을 가지고 스스로 ‘서벌턴 말하기’의 실험을 하는 것 같다.

책장을 덮긴 했는데, 대답은? 잘 모르겠다. 내가 잘 모르는 탓도 있지만, 저자의 논의가 ‘문제 제기’에 많이 머물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다. 무슨무슨 유명한 유럽 철학자들 이름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이 전형적인 이름따오기 하는 것 같아 무식한 독자가 지레 거부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화불량 감수하고 꿋꿋이 넘기다가 의외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천안문 학살과 문화대혁명에 대한 해석 부분, 그리고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것 같은 ‘구체적인’ 것들이었다.


“1989년6월의 천안문 학살사건은 근대중국의 역사를 정지시켰다. 이것은 파국적 정지이다. 지난 150년 동안 중국역사가 재앙의 연속이었다면, 1989년 6월 4일의 사건은 그 완결편이라 말할 수 있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중국의 전통적 부패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희망을 상징하던 정부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근대성'이라는 지속적 외상 trauma 속에서, 문화의 연속성과 (재)생산에 대한 질문이 중국 지식인을 다시 찾아와 괴롭힌다. 그것은 교육 pedagogy에 관한 질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파국에 이른 문화를 어떻게 전승할 것이며, 누가 무슨 수로 전승할 것인가?”


“‘중국인이라는 것’이 고정된 정체성의 축으로 남아 있는 한, 중국의 지식인은 근대에 반복적으로 표면화된 폭력의 중심에 있는 정치적 중앙집권주의를 영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은 전통적 지식의 정통성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정치적 반대세력의 구축에 이용하는 대신에, 다른 장소로 관심을 돌려 새로운 투쟁의 장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디아스포라 상태의 중국지식인에게 중국학이 저항의 논리적 거점이 될 수는 없을까?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의 지식인은 전지구적 대중운동의 결과로 발생한 논의에 좀더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이런 지식인이 취할 수 있는 대안적인 길은 담론의 개입적 성격을 비판적으로 이용하여 담론을 개입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저자의 개념으로 보면 ‘중국지식인’은 띄어 쓰는 ‘중국 지식인’이 아니라 한 단어로 ‘중국지식인’이 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번역서는 ‘중국지식인’을 한 단어로 쓰고 있다.

서벌턴들이 말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고, 앞 부분 ‘서벌턴 논의 이것이 잘못되었다’ 하는 논문들에서는 말도 개념도 너무 복잡한데다가, “토착민은 없다, 그들을 바라보는 잘난척 서양 마초들만 있을 뿐이다, 3세계 지식인이 3세계를 옹호하는 것도 모두 1세계 논리로 1세계 시선에 봉사하는 것이 된다”라고 하면 대체 그럼 뭘 어쩌란 말이냐! 하는 거부감이 좀 들었다.

하지만 홍콩의 엘리트가 천안문 학살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오늘날의 중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일단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송두율교수 케이스를 ‘코리안 디아스포라지식인의 개입과 한국 사회의 반응’ 맥락에서 접근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천안문의 중국’보다 나았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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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6-0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이런 책은 내 취향엔 영 안 맞는데, 그래도 아무튼 재밌는 구석들이 있었어.
 
이슬람문명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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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끌고 있으면서 마음의 빚 같은 것까지 얹혀져있던 책인데, 마침내 ‘해치웠다’. 공들여 쓴 책, 고졸한 문체에 이슬람에 대한 애정이 팍팍 느껴지는 글, 곁들인 사진과 연표, 표지도 멋지고 종이 질도 좋고... 그런데 솔직히 ‘재미’는 없다. 이슬람 ‘문화’에 대해 맛뵈기로 알기 위해서라면 도움이 되고, 정치사정에 대해서라면 큰 도움은 안 된다. 또 이슬람에 애정이 많다보니(저자는 무슬림인 듯) 너무 좋게만 설명해놓은 듯한 감이 없잖아 많다.
다른 이슬람 관련서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문명의 문제를 넓고 길게 보는 것, 산전수전 다 겪은 노학자에게서 나오는 통찰력과 세상사에 대한 애정어린 잔잔한 시선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좋다. 아랍어 전공 교수가 '개괄서'로 쓴 책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시선이 이 책의 최대 강점이다.

뒷부분에 한국과 이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한 챕터를 할애했는데, 그 분야야말로 저자의 전공이다. 신라 설화 속 처용이 서역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정수일선생이 주도적으로 해왔던 논지이고, 그것에 대한 책도 낸 적이 있다. 이 책에서도 우리와 이슬람의 관계에 대해 사료들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여러가지를 짚어가면서 설명을 하고, 또 그것을 문명 간의 만남의 한 예로 설명해준다. 정수일 선생이 아니고서는 짚기 힘든 부분들인 듯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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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6-07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멋지옵니다^^

딸기 2006-06-07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반딧불님이랑 저랑 '통했습니다'

balmas 2006-06-0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에도 재미가 없긴 없더군요. ㅋㅋ

딸기 2006-06-08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다. 발마스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

조선인 2006-06-08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넘해요. 난 무지 재미 있었는데. 훌쩍 훌쩍 =3=3=3

딸기 2006-06-08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러셨어요? +.+ 죄송....

조선인 2006-06-0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죄송이라는 말은 너무 심하세요. 다 성향이 다르니까.
장난으로 넘어가 주사와요. 뻘쭘. ^^;;

딸기 2006-06-0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난이죠~~~ 은근슬쩍~~~
 
콜롬비아의 딸 잉그리드 베탄쿠르
잉그리드 베탄쿠르 지음, 이은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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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마르께스와 보떼로의 나라, 오리노코강이 흐르는 나라, 마약왕과 마피아들이 설치는 나라, 게릴라와 납치범 천지인 나라, 축구를 잘하지만 월드컵에는 못 나오는 나라. 보떼로, 네루다 같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특권층 부모 밑에서 태어난 여성정치인의 일대기.

제목이 멋지게 들려서 재작년 위인전 좀 읽어야겠다 생각했을 때 충동구매를 해놓고 펼쳐보지도 못한 채 꽂아만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 전철 안에서 쉬엄쉬엄 읽을 책이 뭐 있을까 해서 책꽂이를 뒤지다가 ‘적당한 두께’라는 점 때문에 이 책을 집어 가방에 넣었다. 뭐 대단한 기대는 안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라고 하면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의 상투적인 수식어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흥미진진했다. 과연 이 책을 쓴 사람이 정치인 맞나, 혹시 소설가 아니야 할 정도로 재미나게 써서 책장 넘기는 동안 숨이 가빴다.


미모의 어머니와 외교관·장관 출신 아버지에게서 자라난 베탄쿠르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명망가 친구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난다. 엄청난 특권을 누리며 자라지만 아버지는 “어떤 콜롬비아 꼬마도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네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콜롬비아 덕분이다”라면서 잉그리드에게 애국심(이렇게 써놓으면 진정 구태의연하게 들리지만)을 심어준다. 하지만 아버지는 정치에 뛰어들기엔 소심한 인물이었다. 사회적 생을 살고자 했던 어머니는 남편과 딸들을 남겨두고 홀로 정치에 뛰어든다.

소녀 잉그리드는 프랑스에서 명문학교를 나온 뒤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한다. ‘우아한 외교관 부인 생활’에 만족하는 대신 남편과 이혼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마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정치에 뛰어든다. 마피아 두목이 감옥 안에서 배신자를 처형하고 대통령과 결탁해 국정을 주무르는 나라, 의원이나 언론이나 경찰이나 마약조직 돈을 받고 검은 그물망으로 엮여 있는 나라, 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탄 암살범들이 총질을 해대는 나라. 잉그리드는 그런 나라를 ‘깨끗하고 희망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벌인다. 이 책은 잉그리드가 태어나 ‘산소당’ 당수가 되기까지의 일을 담은 자서전이다.


1961년생. 정치인치고는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잉그리드의 이야기는 너무나 드라마틱하다. 줄거리가 극적일 뿐만 아니라, 그의 투쟁과 콜롬비아의 현실이 극적이다.

더 극적인 것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 자서전의 ‘뒷이야기’다. 잉그리드는 이 책이 나오고 얼마 지나 좌익 게릴라 반군에게 납치됐다. 아직도 그는 풀려나지 못하고 있고, 국제적인 구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외신에는 잉그리드의 러닝메이트로서 산소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함께 납치됐던 또다른 여성정치인이 게릴라 반군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대체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실화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드라마틱한 곳이 콜롬비아다.

콜롬비아에 대해서라면 노엄 촘스키가 여러 책에서 다뤘지만, 상황이 좀 복잡하다. 미국과 콜롬비아 우파 정부는 좌익 반군들이 마약을 팔아 무기를 사서 유혈분쟁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전쟁 대행사’들을 고용해 반군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죽인다. 코카밭을 말리겠다며 헬리콥터로 고엽제를 들이붓는다. 반군들은 자기네가 아니라 우익 민병대들이 마약범들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한다. ‘마약과의 전쟁’을 빌미로 벌어지는 유혈사태 속에 콜롬비아는 납치산업이 기승을 부리는 나라, 용병들이 판치는 나라가 됐다(미국은 페루나 콜롬비아에서 반군 때려잡던 용병들을 이라크로 수입하려고 하고 있단다. 이건 또다른 이야기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라틴아메리카에 좌파 바람이 부는데 유독 콜롬비아에서는 며칠전 대선에서 친미 강경 우파인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재선됐다. 60%가 넘는 지지를 얻어 20%대 지지율에 그친 좌파 후보에게 압승을 거뒀다. 콜롬비아가 향후 미국의 중남미 외교 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것저것 종합해볼 때 가장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름대로 구성해보면 콜롬비아에는 마약 조직들, 즉 범죄조직들이 판치고 있고, 그들은 우파 정치인들에게 돈을 댄다. 우파 정치인들의 은밀한 지원을 받는 우익 민병대들이 역시 마약조직들과 연결돼 좌익 반군을 상대로 싸움질을 한다. 미국은 마약조직을 때려잡는다면서 우익 민병대나 우파정권은 그대로 놔두고 좌익 게릴라들을 못살게 군다. 그러면서 용병회사들에게 미국 ‘마약과의 전쟁’ 예산을 풀어서 미국 무기를 사들이게 만든다. 그러니 살찌는 것은 콜롬비아의 썩은 정치인들과 미국의 무기회사들이고, 죽어나자빠지는 것은 코카 재배 농민들과 좌익 반군들이다.

이 복잡한 구도 속에서 잉그리드는 ‘반 부패’를 외쳤고, 당연히 정치권의 미움을 샀다. 그는 좌익 반군들과의 대화를 주장했지만 결국 반군들에게 납치됐다. 반군들이 그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은 이렇게 꼬인 사실들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잉그리드의 자서전이 소설처럼 느껴지는 첫 번째 이유는 그렇게 꼬인 정치적 상황이 너무나 드라마틱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정치인의 책 같지 않게 너무 솔직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조국을 위해 가족을 떠나간 엄마’와 아버지의 이혼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자라나서는 이번엔 자신이 남편을 떠나 정치에 뛰어들게 된 사연, 적들의 위협 속에서 아이를 잃게 될까 두려워하는 엄마의 마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어져만 가는 아이들, 그런 감정들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또 부패한 정치인들과 유치한 언론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들. 실명을 마구 거론한 이 ‘정치고발서’를 콜롬비아의 우익 정권이 출판금지시켰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보떼로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미스테리같지만, 잉그리드가 빨리 석방되어서 ‘산소 같은 정치’에 성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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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6-0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롬비아라는 나라 사실 너무 먼것 같은 나라인데 이 책 읽으면 좀 더 알수 있을 것 같군요. ^^좋은 책 한권 건졌습니다. 추천도.... ^^

딸기 2006-06-0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고맙습니다.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재미삼아서라도 한번 보실만 할 거예요.

페일레스 2006-06-02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롬비아가 치안이 나쁘다는 소리만 들었는데 이런 깊은 사정이 있군요.
'구기자님'(...응? -_-;) 항상 좋은 리뷰 써주셔서 감사해요! ^ㅡ^

딸기 2006-06-0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페일레스님 ... ㅋㅋ
 
마음의 땅, 보이지 않는 자들 - 알려지지 않은 쿠르드족 이야기
힐미 압바스 지음, 조경수 옮김 / 이매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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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은총 속에 삶을 영위하고 최고의 희열을 누렸을 때, 사람들은 자기들 삶의 균형 때문에 불행해졌다. 만물에 신들의 은총과 사랑이 넘쳤고 선한 정령들이 언제라도 기꺼이 인간을 도와줬던 까닭에, 어떤 인간도 불만을 토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든 불만의 행위가 변했고, 행복한 평화가 공허한 희열과 작을 이루어, 사람들의 삶에 충만했다. 하지만 당시 인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인간들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인류는 병이 들었고, 불만이 산 자들의 마음을 좀먹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근심 없는 삶의 과잉으로 죽었다.
신들은 인간이 이 삶을 견디기에 충분히 완성되지 않았음을 통찰하고 깜짝 놀랐다. 불결한 정령 디브는 사람들에게 모든 인간 존재가 영혼들의 비밀로 결합된, 불충분하고 그릇된 결론들의 파편으로 형성되었을 뿐이라고 가르쳤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를 제거하기 위하여, 신들은 인간에게 생각의 자유를 선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일이 있자마자 인간의 눈 앞에서 가능성의 한계가 무너졌다. 산 자들은 끊임없이 원초적 힘의 맥박을 추구했다. 자주 자신을 파괴하면서, 하지만 결코 이 파괴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면서, 그 시간부터 삶이 끝날 때까지 자기 의지의 힘에 도취돼 비틀거렸다. 만약 청춘의 태평함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쫓아내지 않는다면, 고통과 근심으로 가득한 길은 밤처럼 캄캄할 것이다.-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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