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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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미나다! 이렇게 재미난 소설이 있는 걸 왜 그동안 몰랐지. 지하철에서 조금씩 읽으려고 가방에 넣었는데, 퇴근길 펼친 책을 놓지 못하고 집에 가서 내쳐 읽어버렸다. 소설책을 하루에 다 끝낸 것이 어언 얼마만인가. 책은 정말 달콤쌉싸름했다. 실은 ‘달콤쌉싸름한 초컬릿’이라는 것은 이 소설을 원작 삼아 만든 영화 제목이고 책의 원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초컬릿’이라는데, 영화의 제목이 훨씬 멋있다. 귀에 익기 때문만이 아니라, 책의 줄거리 자체가 정말 달콤쌉싸름하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울며 태어난 아이 티타는 ‘막내딸은 시집가지 말고 엄마를 모셔야 한다’는 희한한 ‘가문의 전통’ 때문에 사랑했던 남자를 큰언니에게 빼앗긴다. 오로지 부수고 가르고 파괴하는 데에만 능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엄격한 권위주의자 어머니는 언제나 티타를 억압하며, 행여 티타가 언니와 옛 사랑 형부 사이에 끼어들지나 않는지 감시한다.

티타의 사랑을 축으로, 티타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 과정이 실로 마술적이다. 피가 흐르고 흐르고 또 흘러서 마을을 휘감고 내를 만들었다는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처럼 티타의 눈물은 흐르고 흐르고 또 흘러서 계단을 따라 강물을 만든다. 욕정은 훨훨 피어올라 샤워장에 불을 붙여 티타의 언니를 핑크빛 불덩어리로 만들어 집 나가게 하고, 사랑은 모닥불처럼 활활 타올라 몸을 불태우고 모든 것을 잿덩이로 만든다. 사랑도 마술이고 인생도 마술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가닥의 진실과 비밀과 슬픔과 향기를 안고 산다.

티타의 슬픔과 사랑, 두근거림, 불안, 분노, 열정에 따라 펼쳐지는 것은 찬란한 음식의 향연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단락을 붙여, 작가는 열 두가지 화려한 요리들을 펼쳐보인다. 요리의 복잡한 레시피만큼이나 심리묘사는 오묘하고 감칠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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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자서전 -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넬슨 만델라 지음, 김대중 옮김 / 두레 / 2006년 3월
구판절판


내가 언제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언제부터 자유를 위한 투쟁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남아프리카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들의 인식 여부에 상관없이 정치화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나는 어느 한순간에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계시를 받았다거나 또는 진리를 개우쳐서 투사의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쌓여온 모욕감과 모멸감, 그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순간들이 내 안에서 분노심과 저항심 그리고 우리 민족들을 가두고 있는 사회 체제에 대한 울분을 키운 것이었다. 어느 특정한 날에 "자! 이제부터 나는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살겠다"라고 선언했던 것도 아니다. 그보다도 나는 어느 순간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와는 달리 행동할 수도 없었다.-143~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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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7-22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이 나왔군요.
헉, 무려 900페이지가 넘네요. ㅎㅎㅎ

딸기 2006-07-2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읽으셔요 ㅋㅋ
 
콘돌리자 라이스
안토니아 펠릭스 지음, 오영숙 외 옮김 / 일송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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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콘돌리자 라이스에게 관심이 많이 생겼다. 내가 뭐 콘돌리자 라이스를 아는 사이도 아니고(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한 인물을 내가 어케 알겠는가? 영어도 못하는데...)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편의상 조지 W 부시가 부르는대로 ‘콘디’라고 부르기로 한다(이 책에서 하도 콘디, 콘디 해서 귀에 못이 박혔다).

부시 정권 들어서고 나서 콘디 빼놓고는 미국 뉴스 담기가 힘들 정도로 콘디라는 인물의 비중은 막대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일 때에도 부시가 귀담아듣는 건 콘디와 체니의 말 밖에 없다는 둥, 백악관에 살다시피 하며 말 그대로 지근거리에서 부시를 보좌하고 있다는 중, 콘디네 흐름이 콜린 파월의 흐름을 이미 진작에 압도했다는 둥, 콘디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들이 미국 신문들에는 차고도 넘쳤다.

그런데 그렇게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콘디가 한 짓이 결국 부시가 한 짓이고 보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세계 만방을 돌며 미국 패권을 휘두른 것들이다. 그러니 그 능력 있다는 콘디라는 사람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흑인에, 여성에... 어퍼머티브를 잔뜩 주고 싶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마는 이렇게 주류적이고 보수적이고 패권적일수가. 콜린 파월이 겉만 검은 공화당 골수 보수파라더니, 콘디라는 이 여자는 한술 더떴다.


작년에 콘디가 국무부를 완전히 장악한 것을 넘어서 ‘개혁’까지 하면서 파월 시절 도널드 럼즈펠드의 국방부에 빼앗겼던 외교 주도권을 되찾아왔다는 미국 언론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학자 출신인 콘디라는 여성이 관료사회를 어떻게 장악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당연히 생겨났지만, 외신에 나오는 fact들 만으로는 이 사람의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가 좀 힘들었다.

결정적으로 콘디의 캐릭터를 알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지난해 콘디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이집트 국경검문소 폐쇄 소동을 해결했을 때였다. 이스라엘은 국경검문소를 닫아 가자지구를 봉쇄했고, 먹고 살 길이 막힌 가자 주민들은 아우성을 쳤다. 콘디는 이-팔 양측을 방문해 팔레스타인을 죄고 이스라엘을 야단쳐 국경을 다시 열게 했다. 어쩌면 이것은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의 승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을 옹호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식의 자유주의적(더 나아가면 ‘좌파적’) 발상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보수적인 현실주의자 콘디가 풀어냈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미국에서 콘디와 함께 ‘여성 대통령감’으로 지지자와 안티세력을 몰고 다니는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유대인들의 표와 돈을 원한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보이며 콘디와 같은 시기에 이스라엘을 방문, 유대인 비위맞추기에만 몰두해 눈총을 받았다(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지금도 힐러리는 열심히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라는 책은 콘디의 ‘위인전’이다. 머리 좋은 콘디가 자서전을 썼다면 절대로 이렇게는 안 썼을 것이다 싶을 정도로 유치찬란하다. 도대체가 국민학교 때 간디니 처칠이니 하는 사람들 위인전을 숙제 삼아 읽은 이래로, 이렇게 유치한 위인전을 다시 읽는 것은 처음이란 말이다. 게다가 무슨무슨 대학 총장을 했다는 번역자는 기본적인 단어의 뜻도 모르는 것 같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버젓이 ‘3부 요인’이라고 해놨다. 미국 국가안보위원회(NSA)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보리’로 표기했다. 안보리의 ‘리’가 이사회의 약칭이란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모스크바의 세인트피터즈버그’라는 코믹한 지명까지 등장할 정도이니, 유고의 베오그라드를 ‘벨그레이드’라고 쓴 것은 애교 삼아 용서해줄 수 밖에.


번역 때문에 눈에 가시가 걸린 것은 그렇다 치고, 책에 쓰여진 수사들은 참으로 화려하다. 콘디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며 그의 훌륭한 부모들은 콘디를 위해 헌신하였고 보수적인 남부에서 어린 딸이 인종차별의 설움을 겪지 않도록 완벽하게 보호했다. 콘디는 피아노 천재에 어려서부터 책 읽고 공부하고 스케이트도 잘 탔는데 이 모든 것은 ‘남보다 두배 열심히 해야 한다’는 라이스 가문의 가훈을 따른 것이었다. 콘디는 위대한 스승(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아버지)을 만나 학문의 길을 걸어 뛰어난 성과를 거뒀고 정·관계는 물론이고 기업체 이사로서도 명성을 쌓았다(콘디가 셰브론 텍사코 이사를 지낸 경력이 정경 유착 의혹의 한 빌미가 됐던 것도 저자에겐 ‘미담’이다). 콘디는 외교무대에서도 너무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으며 조지 부시 부자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콘디는 인격적으로도 뛰어나서 보수적이면서 우아하고 완벽하고... 탁월하고... 완벽하고... 뛰어나고... 우아하고... 탁월하고... 완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면, 첫째 콘디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상상하는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 저자의 화려한 찬사를 잠시 뒤로 치워놓고 골자를 보면 콘디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힘의 논리’에 충실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문제를 머리 속으로 ‘정리’하고 타인을 ‘설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흑인 여성으로서 스탠퍼드대학교 교무처장을 지낸 것은 우습게 볼 경력이 아니다. 국무장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계가 됐든 외교문제를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됐든 혹은 에너지기업이 됐든, 다양한 분야에서 인맥을 쌓으며 성공/승리/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했다. 언제나 노력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심지어 체력관리도 ‘스탠퍼드대학 운동선수들 수준으로’ 완벽하게 한다니! 콘디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아직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조지 W 부시보다는 낫지/나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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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9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6-07-1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럴리가요????? 내가 ++님을 만나서 얼마나 방가워하고 있는데요?
그리고 뭘 잘 모르시나본데...

저는 그렇게 복잡미묘조심섬세한것과는 담 쌓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매시고... 이제보니 +=님도 섬세한 분이시군요 ^^

그러지 말고 우리마을에도 많이오고 여기도 많이오고 자주 봅시다!

거기를 없앤 것은-- 당초 분위기 좀 바까볼라고 다시 시작을했는데
역시 안 되겠더군요. 여기저기 갈데 많으니깐 걍 거기는 포기하려고요. ^^

2006-07-19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6-07-19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는 꼭두새벽에 출근을 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컴퓨터를 착용^^해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특별할인가)
마르코 카타네오.자스미나 트리포니 지음, 김충선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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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적 꿈이 '바미얀 석불 보는 것이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는다. 어케 어릴적에 바미얀 석불 같은 걸 알았니(괄호열고 이 잘난척쟁이야) 이런 어감의 웃음 말이다. 근데, 사실이다. 난 어릴 적에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고 바미얀 같은 곳에 가고 싶었다. 지금도 나는 유럽이나 미국이나 그런 곳에는 관심이 없다. 어른이 된 뒤에 돌이켜보니 가장 쉬운 구분으로 따지면 내가 좋아했던 곳은 대략 오늘날의 이슬람권에 해당되는 곳들이었다. 바미얀, 실크로드, 아름다운 모스크들, 사막, 피라미드, 그런 것들.

나의 취향을 이런 쪽에 고정시킨 것은 사실 내가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 유전자 속의 어떤 취향이란 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아이가 어느어느 지역을 골라 좋아할리는 없다. 내 취향을 만들어준 것은 결국 어릴적 보았던 그 책들이었다.

집에는 '모던 실크로드 따라 2만리'라는 책이 있었다. 그것이 내 어린시절을 '지배'했던 책이다.


오래전 그 책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어제 산 책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일전에 교보문고에서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내놓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리즈를 봤었는데, 액면가 9만5000원짜리를 3만5000원에 팔고 있었다. 사실 백과사전처럼 큰 판형에 컬러도판이 수두룩한 하드커버 책꽂이장식왓따용 책을 3만5000원에 산다면 거저먹는거나 마찬가지다;; 라고 생각하지만 지난번에는 들고다닐래야 들고다닐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어제는 마침 드라이버가 대기중이었기에-- 별로 큰 고민 없이 질렀다. 어제 산 것은 '세계문화유산'. 이탈리아 팀이 쓴 것인데, 750개 가까이 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자연유산 문화유산 외에 별도로 '고대문명'으로 구분해 3개로 나눴다. 

그나마도 어제는 자연유산편이 다 나갔다고 해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문화유산편만 사들고 왔다. 기대 만빵. 지겨운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아이 옷을 책에 입혀 꼭 끌어안고(가방에 안 들어감) 한 손으로 우산 받쳐들고 아이한테는 엄마 잘 잡으라 하고 차를 타러 나왔다.


그렇게 기대를 하면서 집에 왔는데...


평소 덜렁이인 나는 책 읽을 때에는 쫀쫀깐깐하기 때문에, 고유명사 표기 틀리게 번역해놓은 것 보면 뇌세포들이 머리 속에서 지랄을 떤다. 터키에서는 모스크를 '자미/차미(cami  : c에 꼬다리 달려 있음)'라고 쓰는데 버젓이 카미라고 해놨고, 멕시코 오아하카는 오악사카라고 해놨다. Oaxaca는 내가 옛날에 어느 글 쓰면서 확인해봐서 잘 아는데, 의외로 책이나 신문에 꽤 많이 나오는 지명이고 종종 틀리는 지명이기도 하다.

내용은 잘 안 읽어봤지만 제목에서 오아하카 틀리는 바람에 이미지 잡쳤음. 왜냐? 이건 무려 3만5000원짜리, 장서용! 책이거든. 한번 보고 내던지는 책이 아니란 말이다. 난 어린시절 나의 환상, 나의 꿈까지 되새겨가면서 다섯살 딸아이와 두고두고 같이 넘겨보기 위해 이 책을 샀다.

더군다나-- 유럽 얘기가 절반이다. 그러면서 어케 설명하냐면 "유럽이 문화유산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필연이다" 이러는 거다. 필연은 필연이지. 유네스코를 유럽이 주도하고 있으니 필연이고, 유럽인들이 문화유산 보호에 먼저 눈 떴으니 필연이다. 하지만 '유럽이 문화적으로 뛰어나서 필연이다'라고 하면 뻥이고 환상이고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다. 이탈리아(요즘 마테라치 땜에 이탈리아에 매우 감정 안 좋음;;) 넘들은 후자의 논리를 택하고 있다. 뻔뻔한 녀석들... 책 내용이 꼼꼼하지 않은 것은, 개괄적인 안내서이니 당연하다 쳐도 말이지... 유럽의 왼갖 유적지는 대략 훑으면서 아프리카에서는 유럽인들 구미에 맞는 모로코 페스 이딴것과 말리 말고는 거의 없음.

이집트가 '고대문명' 쪽으로 가면서 빠진 탓도 있지만, 북아프리카는 보통 '아프리카'로 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아프리카는 통상 사하라이남 블랙아프리카를 말한다) 말리 외에는 거의 나와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유적지는 도시별로 소개해놨다. 그러면서 유럽은 필연 어쩌구? 어쩌면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에게,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럽은 팍팍 줄이고 아프리카 중동 이런 지역들 잔뜩 넣어놓으면 외려 인기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나에겐 너무나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좀 실망했다. 하지만 어쨌든 자연유산 고대문명 시리즈도 사놓을 생각이긴 하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고대문명 시리즈도 있는데 고대 인도, 고대 중국... 거기에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은 왜 들어가니? 너무나도 판에박힌 편집들이라서(출판사 잘못이라면 '판에박힌 책을 옮겨온 것' 뿐이겠지만) 싼 맛-9만5000원짜리 2만얼마로 할인-에 사려다가 말았다.


어제 본 책에서 가장 이뻤던 곳- 에스토니아의 탈린.

그런데 유럽, 특히 동유럽은 솔직히 사진들 모두 '다 똑같이 이쁜 것들'이라서 매력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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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7-25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내 기억 속 어린시절 그 책들보다도 오히려 못한 것 같더라고.
그나마 오늘 꼼꼼이가 한 장 찢어버렸음 -_-
그것도 하필이면 예멘의 사나 부분을... ㅠ.ㅠ
 
리오리엔트 이산의 책 24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 이산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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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이산에서 나온 다른 책들처럼 이 책 역시 알차다. 동어반복 같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저자가 되풀이해서 자기 논지를 정리하면서 넘어가니깐 머리 나쁜 학생이 이해하며 읽기엔 더 좋다.

원제는 ReORIENT: 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 라고 하는데, 저자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브라질과 멕시코, 칠레에서 교편을 잡았다. 독일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 곳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글로벌한 교수님인데, 젊었을 적에는 종속이론에 천착했고 뒤에도 줄곧 글로벌 경제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했다고 한다. 책에는 왈러스틴이나 사미르 아민 같은 사람들 얘기가 많이 나온다(물론 개인적인 얘기가 아니라 학문적인 이야기이다;;)

제목만 보면 ‘아시아시대의 도래’를 예찬하는 척하면서 ‘유럽대신 중국 시대’ 식의 논리를 펼칠 것만 같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저자 자신도 그런 비판이 나올 것을 상당히 의식한 듯하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젊은 시절의 자신도 포함해서, 경제(사)학자들이 세계경제를 유럽(서방)의 눈, 유럽의 기준으로만 바라봤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유럽을 기준으로 경제사를 보았던 탓에 세계 경제의 흐름을 편협하고 왜곡되게 인식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글로벌 경제 자체의 역사적 함의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으며 오늘날의 세계경제와 앞으로의 전망 또한 올바로 분석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가는 나무만 보면서 글로벌 경제라는 숲을 무시했다”고 단언하면서, 유럽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선학들과 동학들을 통틀어 비판한다. 이 비판의 도마에는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같은 전세대 인물들부터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려 애썼던 왈러스틴이나 아민 같은 이들도 모두 오르내린다. 대신 저자는 재닛 아부 루고드나 K.N.차우두리 같은 신진 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에 높은 점수를 매긴다.


1장(현실의 세계사와 유럽중심적 사회이론의 대결)에서는 학계의 지배적인 흐름을 비판하면서 ‘유럽중심주의가 아닌 글로벌리즘’에 눈뜨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2장(세계무역의 회전목마 1400~1800년)에서는 세계경제에서 그동안 무시돼오다시피 했던 ‘유럽 이외 지역’의 경제 흐름들을 살핀다. 요는, 서아시아와 인도양, 동남아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등등 유라시아 곳곳에서 적어도 1400년대부터는 ‘세계화’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 ‘1차 사료에 취약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2차 사료를 꼼꼼히 검토해 전근대의 무역 흐름을 조망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재미있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아시아의 일원인 한국의 역사교육에서는 거의 배제됐던 인도양 지역과 동남아시아 등지의 활발한 무역관계에 대한 것들이 인상적이었다. 포르투갈 상인이 말라카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당대 무역의 중심이던 말라카에 포르투갈 상인이 입성하려 애를 썼다는 것인데, 이것만 해도 ‘발상의 전환’이다.

3장(화폐는 세계를 돌면서 세계를 돌게 한다)은 1400~1800년 세계경제의 굵직한 흐름(말 그대로 유통)을 만들어냈던 가장 중요한 원자재로서 ‘화폐’라는 것의 가려진 측면을 부각시킨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라는 식민지를 갖게 됨으로써 얻은 것은 자원과 노동력, 시장 등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중에서도 저자는 화폐의 재료인 은(銀)이 가장 큰 자산이 됐다고 말한다. 유럽은 아메리카의 은을 가져다가 아시아에 건넴으로써 ‘글로벌 카지노’에서 한 몫을 챙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세계의 은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것은 중국이었고,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지역의 생산력이 유럽을 앞섰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저자는 엄청난 양의 은이 아시아로 쏟아져 들어간 뒤에도 아시아지역의 인플레가 극심하지 않았다는 점, 인구증가가 계속됐다는 점 등을 들며 ‘아시아가 갑자기 망해버린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4장(글로벌 경제-비교와 관계)은 수백년간의 그같은 ‘아시아 우위’를 증명해보이는데 할애됐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인 동시에 가장 많은 논란이 벌어질 수 있는 부분은 5장(횡으로 통합된 거시사)이다. 저자는 세계경제를 콘드라티예프 장기사이클에 맞춰 세계사의 흐름을 규정하려 시도한다. 경제학 책에 나와있는 모든 사이클 중 가장 장기적인 사이클이라는 이 사이클의 A국면은 상승국면이고, B국면은 하강국면이다. 저자는 아시아가 쇠락한 듯 보이지만 그 쇠락은 비교적 최근에 이뤄졌다는 것(적어도 1800년대 이후), 유럽이 잘나서가 아니라 아시아가 B국면으로 접어든 상태였기 때문에 유럽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유럽인들이 특별히 창조적이거나 ‘자본주의적’이어서가 아니라 다만 상대적으로 비싼 노동력 등등의 차이점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따라서 유럽은 20세기 ‘아시아의 용’들이 발딱 일어설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발주자의 이점’을 살렸을 뿐이라는 것 등을 강조한다.

저자도 여러 부분에서 윌리엄 맥닐을 인용하고 있지만, ‘세계의 블랙홀은 중국이었다’는 것은 맥닐의 주장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단절이 아닌 연속성 중심으로 보려고 애쓴 점이라든가 인구학적 모델들을 결합시킨 점(이게 요즘 유행인 모양이다) 등은 눈에 띄었는데, 남는 궁금증은 있다. 장기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지만, 경제에 무지한 내 눈으로 보기에도 과연 세계경제의 흐름을 ‘순환’으로 볼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생긴다. 순환은 돌고돌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제아무리 나선형 순환이라 표현한다 할지언정 ‘순환’에서는 ‘반복’의 의미를 배제할 수 없다. 저자는 오늘날 중국의 용틀임과 아시아의 발흥을 이 순환의 상징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저자가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순환적인 흐름이 과연 존재하는 걸까. 1000년전 세계 최고 부자였던 중국이 21세기 혹은 22세기에 다시 세계최고 부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우연’이 아닌 ‘역사의 순환’으로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인가.

6장(왜 서양은 -일시적으로-승리했는가)과 7장(역사서술의 결론과 이론적 함의)에 준엄하게 표현된 저자의 역사론은 군데군데 지루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참신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아프리카는 무시당하는구나, 쉽게 말하면 저자의 오리엔탈리즘 비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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