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기후를 지배할 수 있을까?
윌리엄 K. 스티븐스 지음, 오재호 옮김 / 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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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이 지금 창밖을 보고 있다면 당신이 본 날씨의 일정 부분은 당신이 만든 것이고, 앞으로 50년을 더 내다볼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356쪽)


미국의 기후전문가 토머스 리처드 칼이라는 사람은 어릴 적부터 날씨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참 특이한 취향이다;;). 그 어린아이는 자라서 미국 기후연구 센터에서 일을 시작했고, 기후변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가 됐다. 칼박사가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기후변화가 지구온난화라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온난화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현상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었다고 한다(물론 지금도 조지 W 부시라든가 몇몇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위에 인용해놓은 것은 칼 박사의 말인데,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마흔 넘으면 자기 얼굴을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소리가 생각난다. 이제 우린 정말 ‘날씨에 책임을 져야 하는’ 처지가 됐는데 그 생각을 못한다. 나이 먹어 늙는 것 못 받아들이고 보톡스 맞고 리프팅하는 것처럼, SUV 타면서 황사 탓하고 여름 길다고 에어컨 슝슝 틀어댄다. (갑자기 또 열받네... 대체 이노무 나라는, 전세계에서 유독 미국 따라 반(反)환경 일관된 노선을 걷고 있으니... 사방천지 몽땅 포장된 나라에서 SUV가 웬 말이며, 거기다가 세금 혜택까지 줘가며 권장한 나라는 대체 언놈의 것인지;;)


기후에 대한 책 통 잊고 있다가 며칠 전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읽은 김에, 그 전에 얻어두었던 이 책을 펼쳐들었다. 제목부터 심상찮은 것이 아니고 극히 심상하다. ‘인간은 기후를 지배할 수 있을까?’ 문장 말미의 물음표는, 저자가 이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인간은 기후를 지배할 수 없다! 과학 믿고 까불지 말라!

일면 맞고, 일면 아니다. 이 책 앞부분은 지구 탄생 이래 생겨난 기후변화(빙하기-간빙기-온난기 등등)와 기후변화 사이클에 대한 설명 등으로 이뤄져 있다. 기후에 대해 ‘통 먼지 모르겠어여~’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슥슥 넘기며 한번 읽어볼만 하다. 뒷부분 절반 이상은 ‘지구온난화 논쟁사’에 해당된다. 지구온난화, 그딴노무 것이 대체 있는겨, 없는겨? 있다면 왜그런겨? 왜 지구가 따끈따끈해지는겨? 사람들 탓인겨, 원체 그런겨?

저자의 대답을 말하자면 ‘지구온난화라는 것은 분명 있는 것 같다, 그게 사람들 탓인 것도 맞는 것 같지만 아직까진 연구해야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정도가 될 것 같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의 저자는 굉장히 신중하다. 뉴욕타임스 과학전문기자라고 하는데, 기후변화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기후변화론자들’을 적나라하게 명시하면서도 아직까지 확실하게 결론이 나오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차카게 써놓았다.

하지만 우린 사실 알고 있자나,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 중국에서 황사가 해마다 날아오다 못해 학교 휴교령 내릴 지경이라는 것, 물론 지구 대기순환 사이클 혹은 그보다 더 큰 맨틀 밑 어떤 움직임 그리고 태양의 활동 이런 것들이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날씨, 기후라는 것은 하나의 요인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인간들이 ‘지금 여기 이 기후’에 적응해서 살고 있다는 점이고, 조금의 변동에도 몹시 취약하다는 것이고, 특히나 ‘사회적 약자들’이 더더욱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야지. 책에 나온 인디언 전설 하나 소개한다.


이로쿼이족의 전설에서는 먼 북쪽에 사는 가오라는 위대한 신령이 바람을 상징하는 네 마리 동물의 영혼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오가 곰을 풀어놓을 때에는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표범은 서풍을 이끈다. 큰 사슴은 동풍, 구름, 그리고 큰 비를 가져온다. 그리고 새끼 사슴이 풀려나면, 남쪽에서 대륙을 가로질러 산들바람이 불어오면서 봄이 온다.

가오가 겨울여행을 하면, 북풍은 종종 휴식을 취하면서 겨울을 상징하는 가우위디네라는 노인의 오두막에서 담배를 피운다. 가우위디네는 눈을 내리게 하고, 추위를 몰아오고, 그리고 비를 불러들이며, 태양을 남쪽으로 떠나게 한다. 하지만, 곧이어 온화하며 키가 크고 건장한 전사 가오는 늙은 겨울 노인의 오두막을 두드린다. 노인은 젊은이에게 나가라고 호령하나, 가오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불을 피웠다. 힘을 과시하는 겨울은 가오를 협박한다. 그러나 겁먹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노인의 힘은 이미 보잘것없이 약해졌으며, 겨울의 친구인 북풍을 집으로 불렀음을 알린다. 그는 노인에게 태양이 오기 전에 빨리 떠날 것을 경고한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라고 노인이 묻자 “나는 고헤이(봄)다”라고 가오가 답했다. 그가 오두막 문을 열자 새끼 사슴은 남풍을 이끌었고, 거대한 새는 노인과 겨울을 새의 큰 가슴에 감싼 채 북쪽으로 데려가버렸다.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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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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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래스카 코르도바 지역의 마지막 에야크 인디언인 마리 스미스는 유일한 순혈 에야크인이자 에야크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게 왜 나인지,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건지 나는 몰라요. 분명히 말하지만, 마음이 아파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35쪽)

테비크 에센크, 붉은천둥구름, 로신다 놀라스케스, 로라 소머설, 네드 매드럴, 아서 베넷은 서로 수천 킬로미터씩 떨어진 곳에서 현저하게 다른 문화적·경제적 환경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들의 사회를 파괴하고, 그들을 죽어가는 언어의 마지막 대변자로 만든 정확한 요인들은 상당히 다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놀랄만큼 비슷하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운명은 어떤 하나의 공통적인 양상을 드러내는데 사실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다. 즉 세계의 언어들이 무서운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난 5백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의 언어들 중 거의 절반 가량이 사라졌다. (14쪽)


최대의 생물언어적 다양성은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세계 인구의 4%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언어의 최소한 60%를 사용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생태계들의 일부를 통제하거나 관리하고 있다. (33쪽)
필리핀 북서쪽 민도로섬에 사는 만2000명의 하우누족은 450종 이상의 동물과 1500종의 식물을 구별한다. 이들은 1000종 이상의 식물을 야생에서 채취하고, 밭에서는 430종을 재배한다. 하우누 농부들은 10종의 기본 토질과 30종의 아종 토질을 구분한다. 토양의 굳은 정도에 따라 네 가지 다른 용어를 쓰고, 서로 다른 토질을 구별하는 아홉가지 색깔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 땅의 지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땅의 경사진 정도를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낸다. (279쪽)

토착 언어에 담긴 지식은 토지 관리, 해양 기술, 식물 재배, 동물 사육 등에 관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잠재적으로 매우 귀중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과학 이론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93쪽) 그러므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언어를 지원해야 한다. 세계의 토착언어들에는 대개 기록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과학적 지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은 여전히 유럽인들과 그 언어들, 특히 영어의 세계관에 주로 토대를 두고 있다. (137쪽) 위기에 처한 언어들에게 닥치고 있는 여러 변화들은 통해 식물, 동물, 전통 민속과 지식 등에 관한 어휘들과 같은 문화적 특수성을 밀어낸다(93쪽). 그들의 지식을 그저 '무시하는' 정도라면 차라리 양호한 수준인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서방의 과학자들과 기업들은, 반다나 시바가 지적하듯, 토착민들이 토착언어에 쌓아놓은 지식을 훔쳐다가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로채기도 한다.


언어적 다양성을 유지한다는게 ‘언어는 변치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경제가 제공하는 신나고 유익한 혜택을 누리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어나 다른 세계어를 습득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성이 다양성 유지와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언어들은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하며 공존해 왔다. 더욱이 이중 또는 다중 언어는 강력한 지역적 정체성과 아울러 세계적인 의사교류 체제의 이점을 거의 추가 비용 없이 제공해준다. (290쪽) 단일 언어를 토대로 한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라는 모델은 자연스런 상태의 세계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도, 토착사회의 대안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도 아니다. 이 모델은 독점적인 식민주의 세력이 강제로 정착시킨 것이다. (292쪽) 일부 정치권에서는 다중 언어 사용과 다문화주의가 마치 최근에야 등장한 것처럼 거론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사회의 존재만큼이나 오래된 삶의 조건이었다. (318쪽)


어떤 이들은 빈곤 퇴치나 환경보호 등과 같은 다른 문제들이 언어의 사멸보다 더 시급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변방 국가들의 언어 보존과 경제개발 필요성은 상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일한 문제에 대해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상적인 과거에 대한 감상적 찬미가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지역 상황에 적합하게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되돌려주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256쪽) 지금껏 사람들은 개발하고 잘 살려면 중앙집권-단일언어 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세상을 끌고 갔다. 소수 언어를 보존하자고? 그럼 그 사람들은 그냥 원시시대로 살라는 거야? 이렇게 ‘보호’와 ‘개발’을 양분해서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언어를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경제적 불이익과 정치적 변방으로 몰아넣겠다는 것이 아니다. 소규모 언어들을 가장 잘 보존할 대책들은 그 언어사용자들의 생활수준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증진하는데 도움을 줄 대책들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지난 30년 동안에 걸쳐, 개발에 관한 많은 전제들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61쪽)

우리가 21세기에 당면한 주요 개발 목표들은 첫째 인류 인구증가를 안정시키고 둘째 개도국 농촌 빈민 뿐 아니라 선진국 고립지역 빈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 셋째 세계의 생물언어적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 주목할 점은 그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권한을 부여받아야 할 사람들이 세 경우 모두 같다는 것이다. 즉 주로 열대 지방에 위치한 변방의 촌락사회가 그 주역들이다.
이들은 생태학적 다양성을 보유한 환경에서 살며, 지속불가능한 개발로 인해 밀려나 낙오되고 있는 빈민들이다. 대부분의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돌보는 이들이 이 사람들이다.
개발과 생물다양성, 그리고 언어적 다양성 문제들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이 문제점들은 역사적으로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해결책 또한 같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지역 주민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대부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질은 심각하게 저하될 것이다. 만일 내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사람이 된다면,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노쇠해 사라져갈 때마다 "이제 말할 사람이 없네" 하는 처지가 된다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이다. 이 책에 인용된 목소리의 주인공들 중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삶의 의미 자체를 상실하는 것일 수도 있다.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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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2006-11-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와 바람을 미세하게 구별하던 우리 농경언어도 사라지고 있지요... 이 책, 사놓고 안 읽고 있음... 어서 읽어야지.

딸기 2006-11-0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저는 주부이다보니깐, 김치 이름 같은 거 가끔 생각하게 되는데요,
저같은 요즘 주부들은 그저 배추김치 밖에 몰라요. 기껏 알아봤자
깍두기 물김치 파김치 정도... 여러가지 김치 이름들이 있고 만드는 방법들이 있는건데
어쩌면 다 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마늘빵 2006-11-0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관함에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꾹.

딸기 2006-11-0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셔요. 번역은 좀 별로이지만, 와닿는 이야기더군요. 특히나 영어배우기에 목 매야 하는 처지에 '우리 언어'라는 것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러시아 경제사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31
따찌야나 미하일로브나 찌모쉬나 지음, 이재영 옮김 / 한길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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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로 돼 있는데 ‘학술명저’라 보기엔 뭣하다. 그래도 명색이 한길사에서 나왔는데, 이게 뭔 명저래? 그냥 러시아 경제를 줄줄이 쓴 것인데... 회사에서 세미나하는데 내가 이거 골랐다가 별로 좋은 소리 못 들었다... 일단 재미 끝장으로 없음.

러시아 대학 교과서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교과서같다’. 울나라 교과서들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런 것은 학술명저번역총서로 한길사에서 나올 것이 아니라 대한교과서주식회사에서 ‘러시아사’ 편으로 내놓으면 딱 될 것 같다. 정치사회적 맥락이 거의 없이 지나치게 ‘경제사’라는 말에 국한되게 역사를 서술했기 때문에 영 재미가 없다.

뭐, 읽기에 그닥 나쁘진 않다. 왜냐? 역사에서 ‘해석’이 없으면 어려울 것이 없다. 연표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래놓고 가격 무려 3만원! 알라딘 가격으로도 2만8000원 넘는다. '가치평가가 없는 역사책'에 치르기엔 과히 좋은 가격 아니다.

러시아사에 영 무지한 나에게 그 나름으로 도움이 됐냐고 한다면- 러시아 혹은 옛 소련, 차르 혹은 공산당은 참으로 농민들을 빨아먹었구나, 개혁한다 한다 하면서 결국 못 해가지고 망했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는 점. 이왕 경제사를 다룰 거면 도표라든가 사진이라든가 지도라든가 그런 걸 좀 싣든가...

 

이 ‘학술명저번역총서’ 목록을 보니까 이 책 말고 내가 읽은 것이 딱 한 권 있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라는 것인데, 그 책 역시 ‘주제는 재미있을 수 있었는데 서술을 참 재미없게 한’ 책이었고, ‘학술’ ‘명저’ ‘번역’ ‘총서’ 모든 항목 해당 없을 법한 책이었다. 그냥 나쁘진 않은 수준. 아무래도 이 총서 시리즈는 돈 주고 사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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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11-0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너무 부실하더라고...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매우 떨어짐.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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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유형의 작물들을 한데 모아 심으면, 인접한 식물들이 서로 다른 깊이의 땅 속에서 수분을 흡수할 수 있다. 작물들을 분산시켜 심어 놓으면 단일 작물을 경작하는 밭보다 해충의 피해를 덜 입을 수 있다. 서로 다른 키의 작물들을 심는 혼합경작은 수분도 보존하고 생산성 높은 국지적 기후를 조성하면서 잡초의 생장도 억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혼합 경작은 지역 주민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즉 연간 노동의 투입과 식량의 수확을 고르게 분산시켜서, 단일 작물의 수확을 기다리면서 겪는 궁핍한 농한기 따위를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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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미래 자연과 인간 10
에드워드 윌슨 지음, 전방욱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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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름휴가 때 폼 잡으려고 들고 갔다가 당연히 다 못 읽고,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야금야금, 꽤 재미있게, 끝을 냈다. 한번 훑어보긴 했지만 워낙 단어가 딸려서;; 다 이해했다고 말은 못하겠다. 책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자는 내용인데 멸종 위기 동식물 구체적인 케이스들과 보존운동을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 이라는 이름이 주는 모종의 관념이 있다. 이 사람에 대한 글 토막들은 여러번 봤고(교양 수준의 생물학 책 중에서 윌슨 이름 한번 나오지 않는 책을 찾기는 힘들다) 윌슨의 저작을 직접 읽은 것은 ‘통섭’ 이래 이번이 겨우 두 번째다. 그러니 내가 윌슨에 대해 안다 모른다 말할 게재는 전혀 아닙니다만..,, 이 책은 아무래도 주요 저작이라기보다는 ‘소품’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윌슨의 학문적 경지를 군데군데에서 느낄 수는 있지만(더불어 생물학의 틀을 넘어선 그 박학다식함이란) 매스미디어에 실리는 에세이 성격이 강한 글들로 이뤄져 있다.

윌슨의 문체는 다소 시니컬하다. 시니컬한 재치 혹은 재치 있는 냉소 - 리처드 도킨스와 조금 톤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번번이 읽는 사람 키득거리게 만드는. 그런데 문체는 쌀쌀맞지만 윌슨이 말하는 내용은 시니컬하지 않다. 이 책의 서론 격인 ‘소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윌슨은 고전적인 자연주의자들과 자신의 경계선을 분명히 밝힌다. 윌슨은 “사람은 누구나 자연과 생명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바이오필리아 biophilia 는 ‘무턱대고 사랑’ 이런 것과는 좀 다르다. 어디까지나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근거가 있는’ 자연사랑이 되겠다(물론 자세한 내용은 이 책에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왜냐? 이 책은 진화생물학 책이 아니라 자연보호 책이기 때문에). 윌슨이라는 사람은, 꽤나 깐깐하고 치밀하고 고집 세고 성격에서나 학식에서나 한 끗발 하는 이 학자는, 생명사랑 자연보호 당위성을 그렇게 인간의 본능으로 승격시킨다.

 

소로와의 경계선을 보든, 기술낙관론을 보든 윌슨은 환경보호운동가가 아니라 말 그대로 ‘과학자’다. 환경운동가들의 ‘격문’과 다르게 ‘윌슨 식으로’ 환경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책은 제법 재미있다. 지구온난화에만 신경쓴다 하지 말고 생물다양성에도 좀 관심을 가져보란 말이야! 어떤 환경론자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윌슨은 어쩐지 자연보호 하는 사람들 안 좋아하고 무시할 것 같지만... 역시나 윌슨은 ‘위대한 학자’인 것 같다.

 

마지막 부분,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리 한다는 비아냥 들을지 모르겠지만 그걸 감수하고라도, 환경운동 한다는 자들에 대해서 내가 칭찬 좀 하고 넘어가야겠다” 하는 구절은 정말 재미있었다. “성난 꿀벌처럼 세계무역기구나 세계은행, 세계경제포럼 회의장에 모여드는 환경운동가들, 때론 바다거북 모양 옷차림 하고 피켓 들고 나타나 목소리 높이는 저 그룹, 그들의 지혜는 어떤 찬송보다도 깊고 권력 가진 어떤 자들보다도 강하다.” 칭찬도 시니컬하게, 그러면서도 뜨겁게! 다른 건 차치하고 일단 이 문체는 매우매우 맘에 든다. 랄랄라.

인간의 habitat preference를 설명하면서 사바나를 언급한 부분, 남북한 DMZ를 생태공원으로 만들자고 한 부분, 신드바드의 로크새 부분도 내 관심사랑 연결돼 있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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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1-0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도 시니컬하게. ㅋㅋ
그런 사람 칭찬 들으면, 매 맞으면서 좋아하는 기분이랄까.

딸기 2006-11-03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밌는 비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