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세계화 - 현대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
타모츠 아오키 외 지음, 새뮤얼 헌팅턴.피터 L. 버거 엮음, 김한영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편저자 이름은 유명한데 제목은 어째 번역해 내는 출판사에서 꿔다붙인 것 같고 출판사도 통 모르는 곳이고 해서, 알라딘에서 이 책 보관함에 넣어놓고 몇 번을 클릭했다 놓았다 반복했다. 인터넷에서 잘 모른채 책 샀다가는 실패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인터넷 서점 애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함정을 피해가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을 것이다. 뭐 노하우랄 것도 없이 저자 이름, 출판사 이름, 서평 같은 것들 가지고 책을 고르거나, 아니면 오프라인 서점에서 먼저 한번 구경하고 살지 말지를 정한다든가 하는 방법 말이다.

서점 나가서 일단 뒤져볼까 하다가 어찌어찌 여의치가 않아서 그냥 속는셈 치고 책을 샀는데, 책상 위에 놓여있던 이 책을 본 후배가 한 마디 던진다. “그 책 나도 샀는데 별볼일 없어요.” 어, 그럼 실패한 것인가.


전혀 아니었다. 뭐냐고? 전혀 실패가 아니었다. 이 책 별볼일 없다고 했던 후배는, 아마도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이름은 순전히 ‘이름값’으로 쓰기 위해 붙인 것 같다. 이 책은 각국의 학자들이 보스턴대학 교수 피터 버거의 세계화 잣대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현상들을 포착해 놓은 것이다. 저자는 제각각이지만 총체적으로 버거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버거가 서문에서 설명한대로, 책은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을 뼈대 삼아 세계화라는 도전과 그에 반응하는 각 지역/지역사회/지역문화의 응전을 다루고 있다. 지역은 세계화에 포괄되지만 무작정 휩쓸리지 않는다. 지역에 맞춰 세계화는 변용되고 ‘진화한다’(책의 원제는 그러나 ‘진화하는 세계화’가 아니라 Many Globalizations 즉 ‘다양한 세계화’다).

그 반응의 양상은 그야말로 다양하지만 그 속엔 세계화라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버거는 세계화가 각 지역들에서 이끌어낸 사회문화적 변화의 양상들 중 보편적인 네 가지를 추출해낸다. 첫째는 ‘다보스 문화’로 상징되는 국제 여피족 혹은 경제 엘리트들의 문화, 둘째는 맥도널드 헐리웃 영화 따위로 대변되는 미국식 ‘맥월드 문화’, 셋째는 지식인들 중심의 ‘국제적인 교수 클럽’ 넷째는 오순절교회로 대표되는 미국식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 종교의 확산을 비롯한 신흥종교운동.

이 네가지가 ‘보편적 요소’라고는 했지만, 경향성을 지칭한 것일 뿐이지 세계화의 흐름에 빠져든 나라들에서 이 네가지 현상이 모두 똑같이 나타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 같으면 워낙에 공화국 건국에서부터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오순절교회(그냥 우리나라 ‘교회’라고 생각하면 된다)가 종교현상의 지배적인 양상이 된지 60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개신교 확산이 가톨릭 대륙인 남미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하면 그것은 또한 세계화의 반영인 것이다.


책은 중국, 대만, 일본, 인도, 독일,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터키, 미국 학자들이 한 편씩을 맡아 자기네 나라에서 저 네 가지 요소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중심으로 특수성들을 펼쳐보이는 형식으로 돼 있다.

그리 게으르지 않은 후배가 이 책을 ‘별볼일 없다’고 한 것은, 아마도 이 책의 그런 특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칠레에서 오순절교회가 왜 확산되는지, 에이즈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남아공에서 개 나발부는 금연운동이 일어난 가닭이 무엇인지, 일본식 패스트푸드점이 맥도널드식 패스트푸드에 맞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인도의 사이바바 신앙촌은 대체 어떤 곳인지 등등 구체적인 사례들은 관심 있는 사람에겐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꼭 알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겐 너무 구체적이라 오히려 재미없고 알아도 그만 몰라도 아는척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 아주 재미있었다. 세계화가 미국화라고 하지만 그것은 일면의 진실이다. 무엇에든 절반의 자명한 진실과 절반의 가려진 사실이 있고, 어떤 현상에든 도전과 응전이 있다. 포괄적으로 주르륵 꿰는, ‘문명의 충돌’ 식으로 임팩트 팍팍 주면서 ‘세계화란 이거야!’ 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 지지부진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다양하다’는 것, 그 자체가 세계화를 지탱하는 가장 일관된 특징이자 역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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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05-2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필드면 <인류이야기>를 낸 출판사네요
 
수려한 新 보윤 보윤 에센스 - 40ml
LG생활건강
평점 :
단종


이 '보윤' 시리즈라는 것은 대략 영양크림이건 아이크림이건 에센스건 느낌이 비슷하다.
내용물이 똑같은데 물 양으로 조절한 것일까? -.-a

영양크림 아이크림 에센스 바르는 느낌 모두 좋다. 에센스는 부드러워서 얼굴에 잘 발리고,
바르고 나서 흡수가 잘 되면서도 촉촉한 느낌이 오래 남아있기 때문에
다른 로션 쫌 있다가 바르거나 안 발라도 된다.

그런데 에센스가... 완존 허우대... 내용물 느낌은 좋은데
통 크기에 비해 무쟈게 빨리 떨어짐.
그리고 통 아래쪽에 좀 남았는데 위에서 스위치(라고 해야하나 암튼 눌러 짜내는거) 눌러도 잘 안나온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1cm 정도??는 스킨 부어서 묽게 만들어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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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마르크 레비 지음, 김운비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마노아님을 만나 선물 받고, 지하철 5호선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몇페이지 읽고, 너무 재밌어서 오랜만에 자기 전에 책 펴들고 누웠다. 보통 딸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잠들기 때문에 잠자리에서 내 책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데, 마침 금요일이었던지라 운이 좋았다. 4분의1쯤 남겨놓고 잠들어서는 토요일 아침 눈뜨자마자 다시 펼쳐들고 끝장을 봤다.

 

남자는 어느날 뚱딴지처럼 자기 집에 나타난 여자, 지금은 코마 상태가 되어 시체처럼 병원요양실에 누워있는 한 여자를 만난다. 말하자면 여자는 유체이탈한 영혼 같은 것이고, 남자의 눈에만 보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이라고 시작되는 여자의 설명은 당연히 남자에겐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로 들리겠지. 그런데도 또한 당연히!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영락없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같은 책. 템포가 굉장히 빠르다. ‘영화로도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에 씌여 있었는데 정말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전형적인 ‘기네스 펠트로 주연’ 로맨틱 코미디 같은 느낌이 났는데, 역자 설명에도 ‘영화에는 기네스 팰트로가 나온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어찌 보면 그만큼 전형적이다(영화맹인 내가 곧바로 배우 감을 떠올렸을 정도이니).

그런데 나는 책 뒷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남자는 여자의 영혼을 몸으로 되돌려보내고, 여자를 깨우는데 성공한다. 의식을 되찾아가는 여자는 남자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이제부터는 남자가 설명할 차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그런데 내가 이 여자라면, 과연 이 남자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를 믿을까, 안 믿을까? 아무래도 믿을 것 같다. 세상은 로맨틱하고, 때로는 코믹하다. 솔직히 나는 영화를 봐도 로맨킥 코미디만 골라 보는 스타일인지라...

 

선물받은 책은 표지에 알퐁소 뮈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때 내 홈페이지 프런트를 장식했을만큼 마음에 들어했던 그림. 이 책 선물받기 전날 친구(뮈샤 덕에 알게 된 친구;;)와 뮈샤 이야기를 했었는데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마 이 책이 제목이 바뀌어, 더 비싼 버전으로 나온 모양인데 난 절판된 이 버전의 제목이 훨씬 좋다. '천국 같은'은 또 뭐며, 그 만화스러운 표지는 머란 말이냐. 뮈샤 그림 불법으로 땡겨 썼다가 저작권 문제 땜에 표지 바꾼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화스러운 걸 지향한다면-- 순정만화 표지그림들의 원조야말로 바로 뮈샤라는 사실을 좀 알아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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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5-2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처음 표지랑 제목이 더 맘에 들어요. 영화는 만들어졌는데 주연이 리즈 위더스푼인가 그랬어요. 전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잠깐만 보았거든요^^

다락방 2007-05-2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표지로 읽었어요. 제목도 근사하잖아요? 그런데 리즈위더스푼의 영화는 또 뭐며(이상하게 보기 싫더라구요) [천국같은]은 또 뭐예요. 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에필로그에선 먹먹해지기도 했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딸기 2007-05-22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리즈위더스푼, 나 걔 좋아하는데 +.+
다락방님, 위더스푼 귀엽지 않나요? 똘똘하게 보이고...
암튼 저 책 나중에 나온 제목과 표지는 꽝이예요.

다락방 2007-05-2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므낫. 전 위더스푼 보다는 안젤리나 졸리를 좋아해서요. 훗. :)

딸기 2007-05-22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젤리나 졸리는 정말 훌륭한 사람 같아요. 참 그렇게 하기 힘들텐데...
 
윤리학과 경제학
아마티아 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불평등의 재검토’를 가지고 머리 속에 버터를 한겹 발라 놓으니깐 센의 책을 읽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추천사 빼고 목차 빼고 참고문헌 빼고 나면 111쪽, 글씨도 큼직큼직한데 이런 편집 이런 분량 이런 표지에 책 값이 1만원이라면 꽤 비싸다. 한울아카데미답다. 좀 신경쓰면 좋으련만 참 보기 싫게 만든 책... 하지만 아무튼 내용은 좋았으니 1만원 이상의 값어치는 하는 책이다.

센이 1986년 UC버클리에서 했던 강연을 손보아 묶은 것이라고 하니깐 21년 전 얘기인 셈이다. 요지는 제목에 다 나와 있다. 윤리학과 경제학. 경제학은 윤리를 알아야 하고, 윤리를 도와야 하며, 윤리와 결합돼 발전해야 한다는 것.

저자의 말을 내 식으로 풀어보면 경제학엔 두 가지 뿌리가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다같이 잘살자 경제학’이고, 하나는 애덤 스미스의 추종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읊어대는 ‘돈계산 잘하자 경제학’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앞의 것은 윤리학적 전통에, 뒤의 것은 공학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같이 잘살자 경제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윤리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목표치를 두는 반면에 돈계산 잘하자 경제학은 목표 얘기 생략하고 돈 버는 방법을 ‘공학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둘 다 중요한데, 현대에 들어서는 돈계산 잘하자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졌다. 돈계산 하는 목적, 인간들 어떻게 잘 먹고 잘 살 것이며 무엇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에 맡겨봐” 한마디로 정리해버리고 ‘공학적 계산’에 치중하는 것이 경제학의 대세가 됐다. 그래서 확실히 경제학이 정밀해지는 효과는 있었다.

그런데 윤리가 빠지니까 세상이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의 합리성에 대한 신앙과 경제학의 성공에 대해서조차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은 합리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합리성의 길로 이끌어준다?

그래서 센은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이 합리적인가요?” 사람들은 ‘일관성’과 합리성을 혼동하거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곧 합리적인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일관성을 합리성으로 보든, 이익 추구를 합리성으로 보든 간에 양쪽 다 문제가 있다. 일관되게 안 좋은 선택만 하는(사업에 계속 실패하는 사람 같은) 경우도 있고, 이익 추구보다는 불우이웃 돕기에 신경 쓰는 사람들도 있다. 비합리적으로 조직에 충성을 바친 일본 기업의 근로자들은 큰 파이를 얻어낸 반면 합리적으로 개인 이익을 주장한 미국 경제는 한때 바닥을 기었다. 돈계산 잘하자 경제학은 ‘합리성’을 내세우지만 이런저런 현상들을 별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경제 돌아가는 것으로는 ‘시장’과 ‘합리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의 경제활동에는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요인들을 더 많이 반영해서 경제학을 더 과학적으로 만들고 돈계산 정말 잘하게 만들려면 ‘잘먹고 잘살자’ 개념이 들어가 줘야 한다. 윤리학과 경제학이 다시 만나야 사람들 사는 게 실제로 좀 더 나아지고(잘먹고 잘 사는데 더 도움이 되고) 경제학 자체도 더 발전해서, 돈계산도 제대로 잘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더불어, 경제학의 계산법들이 사람들 복지를 좋게 하는 정책들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되니까 후생경제학 도움 받으면 윤리학도 더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돈계산주의자들이 교조로 모시는 애덤 스미스도 사실은 다같이 잘사는 법을 찾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었는데, 후대의 신도들이 왜곡을 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용은 어렵지 않고 어찌 보면 단순한데 개념을 정리하고 정리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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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0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마도 복거일의 책에서 본거 같습니다. 음. 이 책도 일단 넣어둡니다.
 
불평등의 재검토
아마티아 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 저 책 읽다 보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에 대한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센이라는 돌부리에 걸려넘어지길 몇 차례, 결국 촌스런 편집에 목에 걸리는 번역의 책 두 권을 사버렸다. 하나는 제일 유명하다는 이 책 ‘불평등의 재검토’이고, 또다른 하나는 ‘윤리학과 경제학’이다.

불평등의 재검토- 제목에서부터 뭔가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팍팍 난다. 예상대로 어려웠다. 개념이 특별히 난해해서가 아니라 잘 모르는 존 롤즈의 정의론 얘기를 계속 풀어내고 있어 어려웠다.
그리고 예상대로 중요한 내용이었다. 평등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평등인지가 중요하다, 돈을 똑같이 가졌으면 평등이냐, 기회를 똑같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럼 기회만 같으면 평등이냐? 세상에 유리 천장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출세하고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걸로 평등 끝인가. 아니다, 사상의 자유를 비롯하여 내 것 내던지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핍박받으며 싸울 자유도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평등과 복지의 내용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간다. 평등/불평등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모든 사회제도와 국가정책의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자들은 ‘기회 균등이 곧 평등이다’ 라면서 자기네들이 평등사회에 산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그 사회의 뒷골목엔 마약중독자 거지가 넘쳐난다. 어떤 자들은 남녀평등이 지나쳐 남자들이 기를 못편다고 주장하는데 그 나라에서 남녀가 받는 월급 격차는 직장에 오래 다닐수록 커진다. 저자는 평등 문제에 아주 실질적, 실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센에 따르면 “평등주의의 핵심 쟁점 중 몇 가지는 정확히 공간에 따라 평등이 달라진다는 점 때문에 나타난다. 평등의 윤리학은 공간들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폭넓은 다양성에 대해 적절하게 주목해야 한다. 중심변수의 다원성은 정확히 인간의 다양성 때문에 크게 달라질 수 있다.”(61쪽)

그러니까, 인간들이 이렇게 제각각이니 거기서 평등을 논하려면 무엇에서의 평등인지, 그게 진짜 평등인지 짝퉁인지 요모조모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이 하듯 소득불평등만 가지고 평등 문제를 다루면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왜냐,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소수민족 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평등은 생사가 걸린 문제이고, 평등에도 너무나도 다양한 차원(저자의 표현으로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기초재와 자원을 마음대로 쓸수 있는지, 그걸 써서 얼마를 벌어들일 수 있는지, 자기가 할수 있는/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와 능력 같은 것들을 따져보면서 평등을 하나의 잣대로 전환해버리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왜 평등/불평등을 재검토하느냐?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과정은 빈곤에 대한 것이다. 빈곤도 평등과 마찬가지로, 숫자놀음에 당하기 쉬운 항목 중 하나다. 대개는 파이가 커지면 파이 쪼가리도 커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센의 고향인 인도(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내놓은 이 나라 경제는 승승장구한다는데 여전히 지참금 적다고 살해당하는 여성이 연간 수천 수만명이란다)가 대표적인 예다.

센은 빈곤의 실체를 따질 때에도 소득 하나만 놓고 말하지 말고 능력 실패/기능실패 같은 것들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생물학적 사회적 요인, 특히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끊임없이 재발하는 성차별 전통과 관련되는 경우 때문에 소득을 특정 기능으로 전환시키는데 불리함을 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단지 소득 크기에만 주목한다면 결핍 수준을 과소평가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분명히 능력실패라는 기준을 도입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202쪽)

여자들이 기업체에서 최고경영자가 못 된다, 이런 류의 유리천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인도같은 나라에서는 여자들이 영양보충도 못한 채 물 긷다 쓰러져 죽고 딸아이들이 젖도 못 먹어 굶어죽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소득크기에만 관심이 있다면, 부유한 사회에서 굶주림이 지속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미국에서 굶주림은 수많은 파라미터와 연결되는데, 그 중에서 저소득은 단지 하나의 파라미터일 뿐이다. 건강은 사회환경, 의료혜택, 가족생활유형, 기타 수많은 요인들과 관련된다. 따라서 소득에 기반을 둔 빈곤분석은 중도에서 이야기를 그치는 셈이다.”(204쪽)

마찬가지로 계급을 중심으로 한 맑스 식의 분석만으로는 한 계급 내 여러 집단(예를 들면 여성들)의 현실이 더 열악해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한다. “상품과 소득에서 기능과 능력으로 관심 방향을 돌린다면 상대적인 특성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차이는 사회적 교육적 그리고 병리학적 조건의 차이와 상당부분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223쪽). 평등도 빈곤도 다양한 방향에서 들여다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아니 이렇게 당연한 말을 하고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른바 ‘주류 경제학’에서 센 같은 ‘후생경제학’은 상대적으로 밀리는 처지였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장의 손에 무엇이든 맡기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것에 엄밀한 분석틀을 들이대고 경제학의 영역으로 집어넣어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센의 공로였다. 숫자 놀음으로 전락해버린 경제학이 인간의 아픔을 바라보게끔 하자는 것이 센의 주장이었다.
적어도 오늘날 글로벌 시대의 복지를 말하는 모든 이들은 센의 분석틀 없이는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걸 보면 경제학이 주판알 놀이에 그치지 말고 인간 세상을 위한 도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움직임이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몫을 찾아낸 사람이 센이라는 것, 그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인도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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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7-04-3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독해가 가능하셨더랍니까?
전 조금 읽다가 번역이 무언가 부자연스러워.... 난해한게야...... 하고
건방지게 원서를 사들었다가 음.... 원서도 난해하구만.... 다 못 보고 밀쳐 두었답니다. ^^a
근데, 다른 글들도 보니까 센은 원래 글을 그렇게 만연체로 쓰더라구요.

딸기 2007-04-3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스... 이 책의 원서;;는 죽어도 읽지 못할 것 같아요.
난해했죠... 한글로 읽어도 독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중간 부분 넘어가면서부터 좀 괜찮아졌어요. 사실은 다 읽는데 3~4개월 걸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