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가 무서워요!
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 / 사계절 / 1993년 12월
평점 :
절판
매우매우 재미없게 읽었다.
우리 꼼꼼이는 돌 지날 무렵까지는 개를 무서워하지를 않았었다. 통 뭘 모를 때였으니까,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이 당연한 듯 싶기도 하다. 2살 무렵에는 개를 무서워했는데, 그러면서도 호랑이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딱 그 꼴이었다. 동물원에 갔을 때 호랑이 우리 앞에 서서는 호랑이 읽으라고 제 동화책을 내미는 것을 보고 막 웃었던 기억이 있다.
언제부터였더라. 대략 2돌 지나고서부터 개와 고양이를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 식구가 살았던 마을에는 개와 고양이가 참 많았다. 동네 놀이터이건 어디건 고양이가 없는 곳이 없었다. 큰 개를 끌고 다니는 이들도 많았던 그런 동네였는데, 아이가 개를 무서워하니 어디 데리고 다닐 때마다 곤란할 지경이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집에서 개를 키웠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어려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에는 개가 없었던 기간보다는 개가 있었던 기간이 훨씬 길었다. 그래서 나는 개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별로 없다. 아무리 큰 개를 만나도, 들개가 아닌 다음에야(길에서 들개를 만난 적은 없으므로;;) 눈높이만 맞춰주면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야 어디 그런가. 처음에는 딸아이가 개를 무서워하는 걸 볼 때마다 "안 무섭다"고 가르치려 애썼다. 바꿔 생각해보면 아이 입장에서는 제 키의 절반 가까이 오는, 혹은 제 키와 맞먹는 짐승을 만나는 것이니 무서울 수도 있다. 무섭지 않아, 왜 무서워하니, 라고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끔씩은 커다란 개를 끌고다니는 이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혼자 속으로 '이봐요,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도 있다고요, 개가 아이 옆을 지날 때엔 좀 신경을 써주면 안되나요' 라면서, 개를 끌고다니는 이들을 향해 항변 아닌 항변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타인들에게 '우리 아이를 위해 개를 키우지 말아달라'라고 할 수도 없고, 또한 그보다는 우리 애가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개와 즐겁게 노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이 동화책의 주인공은 꼬마 남자아이인데 개를 무서워한다. 아이는 자기도 무서운 개가 되길 바라는데 어느날 요정이 와서 소원을 들어준다. 그러고나니 이번엔 꼬마 남자애들이 무서워진다. 그래서 다시 소원을 빌어 남자아이로 돌아온다는 줄거리. 좀 어이가 없었다. 개가 왜 무서운지에 대해서도 아무 설명이 없고, 개가 왜 남자아이들을 무서워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 설명이 없다. 니가 무서우면 걔도 무서운거야,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었고, 아이도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