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1년만에 돌아온 집, '오랜만'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예전부터도 뭐든 잘 까먹었으니까. 언제나 나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
방금전에 찾고 있던 것은 오래된 독서카드. 공책들을 분명 어느 상자엔가에 넣어두었고, 그 상자는 책꽂이 어딘가에 올려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따위 정보조차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
서울에 돌아와서 나.름.대.로. 책꽂이 정리를 했었다. 오래된 책들을 버리고, 상태가 괜찮은 것들은 아름다운가게에 가져다주고, 그렇게 해서 한 100권은 처치한 것 같다. 그리하여 책꽂이에 여유가 생겼고, 새로 주문해서 받은 것들을 꽂아놓고, 폼이 나겠다 싶은 것들은 일부러 골라서, 예를 들어-- 영어로 된 타셴의 작은 화집들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일본어책 몇권은 마루의 잘 보이는 책꽂이에 꽂아놓는 짓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넘의 상자는 어디에 간 것일까. 보이질 않는다. 작년 이맘때, 대체 나는 공책들을 어떤 상자에 넣어서 책꽂이 어디에 놓아두었는지 모르겠다. 바부팅이...
책꽂이를 뒤지다보니 예상치 못했던 소득도 있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화집이 나왔다! 미술과 관계가 많은 여동생에게 물으니,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두고간 것이란다. 크기가 제법 크다. 허접너저분로만치크 장르에 속하는 알마 타데마의 그림은, 몹시 안 어울리지만 내 취향에 맞는 것이어서 간혹 이너넷을 뒤져 찾아보곤 했는데 이게 왠 떡이다냐.
그래, 분명 나는 노트들을 상자에 놓아두었어, 하면서 책꽂이 곳곳에 숨어있는 상자들을 찾았다. 이번엔 알퐁소 뮈샤의 그림을 소재로 만든 직소퍼즐 통이 나왔다. 1000피스 퍼즐 들어있던 통이라서 제법 크기도 크고, 어쩐지 기분에 내 공책들이 들어있을 것만 같은 기분.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뮈샤에 폭 빠졌던 적이 있었다. (후까시 잡을라고 마루에 내놓은 타셴의 화집은 베르메르, 호퍼, 클림트, 그리고 뮈샤의 것이다. 진정 유치하고 폼생폼사하는 나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캬하하)
상자를 열었다. 허걱... 퍼즐통엔 아랍어로 된 낡은 신문들. 맨 위에 있는 것은 사담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가 발행했던 바벨 신문인 것 같고 신문지들 아래에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 디나르 지폐가 숨도 못 쉰채 눌려있다 ^^;; 한때 '후세인 축출 기념품'으로 인터넷에서 고가에 판매되기도 했다는 바로 그 디나르 지폐다. 그걸 한뭉텡이 갖고 있었는데 몇몇 친구들에게 선물로 한 장씩 주었고, 몇장은 상자에 넣어놨던 모양이다. 나머지 지폐다발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쩝.
책꽂이 구석 캐비닛 안에는 아예 머리쓰개까지 들어있다. 몇해전에 사서는 친구들과 송년파티 코스프레 한답시고 한번 쓰고 말았던 머리쓰개라니. 이노무 집구석, 이노무 인간은 대체 책꽂이에 뭣들을 쌓아놓고 있었단 말이냐. 심지어 골프공;;에 양초, 크레용, 아령까지 들어있구만.
대체 독서카드 공책들은 어디로 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