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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풍수 - 도시, 집, 사람을 위한 명당이야기
최창조 지음 / 판미동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風水 : 집·무덤 따위의 방위와 지형이 좋고 나쁨과 사람의 화복(禍福)이 절대적 관계를 가진다는 학설. 중국 후한 말에 일어난 음양오행설에 바탕을 둔다.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풍수에 대한 사전적 의미이다. 지금이야 도시에서는 우리가 사는 집에 그다지 풍수 또는 풍수지리에 대해 무게를 두거나 중요시 생각하지 않고있지만, 아직도 지방, 또는 옛 어르신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해 풍수를 상당히 많이 따지는게 사실이다. 하긴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풍수에 대한 말을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통해 많이 들었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개운치 못한것이 집에 수맥이 흘러 그렇다느니, 일이 잘 안풀리는 것이 묘를 잘못써서 그렇다느니 하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었다. 그렇다면 과연 풍수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시풍수" 의 저자 최창조선생은 도시풍수의 명당이란 그저 우리가 살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연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만족하다면 그곳이 바로 명당이라고 말해준다.
어려서는 흙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와 딱지치기, 숨박꼭질 그리고 공이나 찰 수 있는 공터가 있는 곳이면 우리에게는 명당자리였다. 지금이야 그러한 흙으로 된 땅을 찾아볼래야 찾아볼수도 없을 뿐더러 행여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의 부모들은 세균이 옮는다고 흙놀이는 하지도 못하게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 집안에서 그것도 사방이 온통 아파트로 둘러쌓인 아파트숲의 한 층 한 칸에서 놀다보니 친구들도 사귈 기회가 별로없게되고, 아파트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 어릴적에는 적어도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은 없었는데 말이다. 어린시절 우리에게 있어서의 명당은 바로 뛰어놀 공간이 있는 곳이었다.
차츰 자라면서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명당의 개념은 바뀌게 된다. 좋은학교가 밀집해 있는 곳이 바로 명당중의 명당. 소위 말해 8학군지역이 명당이 되어버린것이다. 그곳에서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학창시절에도 8학군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학교들이 많이 밀집해 있고,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면 학생인 나에게는 명당중의 명당이었다.
좀더 나이를 먹어 대학이라도 갈라치면 더 이상은 명당의 개념이 없어진다. 대학 들어가기도 힘든데 집이 어디면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학교와 상당히 거리가 있어도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말이다. 다행히 나는 학교와 집이 그다지 멀지 않아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같이 다니는 친구는 지방에서 또는 1-2시간을 차나 지하철을 타고 온 친구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생활에서의 집에 대한 명당의 개념은 희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을 하고 군대를 다녀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집에 대한 도시에 대한 명당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우선은 회사와 가까워야 한다. 그리고 가격이 싸야한다. 적어도 결혼전까지는 돈을 모아야 하기때문에 집에대한 명당의 개념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물론 부모 잘만나고 아니면 부모와 함께 생활한다면 또 모르지만 독립을 해 혼자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있어서의 명당은 자연히 회사와의 거리와 싼 집값이다.
결혼을 하면서 집에대한 명당의 개념은 정립을 하게된다. 무엇보다 투자의 가치가 있는냐 하는 것과, 향후 아이의 교육을 고려했을때 좋은 곳이냐 하는 것, 교통이 편리하고 혼잡하지 않으며 공기가 좋으냐 하는 것, 그리고 주변에 장이라도 볼수 있는 시장이라던지 마트 또는 체육시절이 잘 되어있는 하다못해 산책이라도 할 수 있는 공원 등이 조성 되어 있는냐 하는 것등이 명당을 고르는 기준이 된다.
이렇듯 과거와는 달리 특히 도시에 있어서의 명당의 개념은 바뀌었다. 이제는 집에 수맥이 흘러, 또는 집의 방향이 안 좋아서라는 배부른 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지금에 있어서의 명당의 개념은 "어느 지역인데", "교통이 어떤데", "값이 얼마나 나가는데", "주변에 무엇이 있는데" 등으로 변해 버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그 곳이고 내가 사는데 불편함이 없다면 바로 그 곳이 명당이요 풍수적으로 좋은 곳이 된다는 것이다. 옛날에야 앞에 물이 흐르고 뒤에 산이 있으면 가장 좋은 명당이라고 하지만 지금 그런곳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한강을 낀 저 변두리의 산동네가 가장 좋은 자리라는 의미인데 사실은 그렇지 안은게 현실이다. 산도 없고 물도없는 빌딩들로 둘러쌓인 강남의 모처가 가장 좋은 자리 아닌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도시풍수를 보면서 무엇을 바란것도 없고, 무엇을 얻겠다고 한 것도 없었다. 그저 저자는 도시풍수, 명당에 대해서 어떠한 관점으로 서술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읽게 되었고, 명쾌하고 어떠한 지관(地官)적인 지식을 얻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엮어나간 저자의 글에 어느정도는 공감한다. 사람이 많든 도시의 땅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에 인식을 같이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 도시가 변하고 땅이 땅의 구실을 못하는 현실을 볼때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적어도 예전에는 땅을 투기나 투자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냥 땅에 내몸 누울 집하나 짓고, 그 땅에서 나는 것 먹으며, 그곳에서 뛰어놀다 다시 땅속으로 돌아가는 안빈낙도하는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어차피 죽으면 한뼘 또는 한평 남짓한 땅속으로 묻히고 말텐데 왜 사람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땅에 목숨을 거는지.
風.水 말그대로 바람과 물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