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건강에 관한 생애사 연구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장애의 유형에 따라, 우리가 장애를 얻은 시기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우리 중 누군가는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 모두는 존중받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공동체의 의미 있는 구성원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우리 대부분은 지역 사회 안에서 장애가 있는 혹은 없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 책은 내가 어떻게 점점 더 강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우리 세계를 모두에게 더 나은 장소로 만들기 위해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를 어떻게 배웠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모든 나라와 지역의 독자들이 차별은, 그것이 누가 맞닥뜨린 차별이든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함께 목소리를 높여 말해야 한다. 우리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저는 이 모든 과정에서 그들의 사랑과 지지가 항상 제 귓가에 속삭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의 부모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부모님에게 그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지만, 만약 내가 그런 질문을 했더라도 부모님은 나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우리 삶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란 식의 대답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은 나의 장애를 수용했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바로 나의 부모였다.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는 가정은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치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사회의 유전적, 재정적 짐으로 여겼다.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 여겼다.

나의 부모님은 딸이 장애인이든 아니든 함께 살기로 했다.

그들은 증오와 비인간성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라 전체가 어떤 것을 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경험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은 어떤 것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어떤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반드시 그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권위 있는 사람의 지시이든, 선생님이 수업 중에 한 말이든 말이다. 부모님은 과거 혹은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일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했던 일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거라고 단정하는 남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말들을 기꺼이 뒤엎을 의지가 있었다.

세상을 바꾼 이야기는 어떤 것이든 항상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든 이야기다.

1953년에 나는 여섯 살이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박스 오피스 스타였으며, 재키 로빈슨이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이제 막 8년이 지난 해였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기 3년 전이며, 다저스는 여전히 브루클린에 있었고,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의 평화와 번영을 축하하며 700만 명의 베이비부머를 한창 만들어내던 시기였다.

어린이는 해결사다.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대부분의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에 배웠다.

매일매일 싸워야 할 일들이 어머니 앞에 떨어졌다. 나는 그 일들이 내가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정말로 내가 학교에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일제 휴먼을 내 어머니로 만들었을 리 없다. 일제 휴먼에게 불가능을 말하는 것 자체가 큰 실수였다.

어머니는 부정적인 대답을 들어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단서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집에서 어떤 것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방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우리는 논쟁하고, 토론하고, 정말 많이 웃어서 이웃들은 창밖에서 분명히 우리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아픈 사람은 집 안에서 침대에 누워 있다. 아픈 사람은 밖에서 놀지 않고,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아무도 그들이 밖에서 놀거나, 어떤 무리의 일원이 되거나,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나는 그들이 선호하는 구체적인 방식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으로 먹고 싶을까? 얼마나 빨리 씹고 나서 다음 한 입을 먹기 위해 도움을 받고 싶을까? 언제 감자칩을 먹고 싶을까? 샌드위치를 먹기 전? 먹는 동안? 먹고 난 후? 구석에 앉아 있던 포니테일 머리의 키 큰 여자아이 조니 라파둘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나이가 많았는데, 책을 잘 읽지 못했다. 역시나 나이가 많은 질 키르슈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 사람이 좀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돕기 시작했다.

내 새로운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만큼 또박또박 말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친구 사이니까 기꺼이 시간을 들여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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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나와 같은 심정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가려고 돌아섰으나, 자신의 관대한 충동을 채울 만큼 충분한 말과 행동을 해주지 않아서인지 뭔가 미흡해했다.

비가 내려 일시적으로 생긴 웅덩이를 사시사철 물이 솟는 영원한 샘으로 잘못 알고 믿는 건 미친 짓이지.

"만일 그가 편지를쓴다고 치자. 그다음엔 어쩔 건데? 즐겁게 답장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 바보야! 경고해주지! 답장은 짤막해야 해. 정신적인 즐거움도 누려선 안돼. 지성의 만족을 탐해서도 안돼. 감정을 부풀려서도 안돼. 너의 어떤 기능도 축제를 즐겨서는 안돼. 우정의 서신교환에 탐닉해서도, 다정하게 교류를 해서도 안돼……"

내가 ‘이성’을 따르는 것은 애정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

"달게 자거라. 내가 네 꿈에 금칠을 해줄 것이니!"

분노로 심란할 때면 사람들이 위스키를 마시듯이 나는 물을 마셨다.

이제는 난로를 보면 편안한 느낌이 들고 영국인이 벽난로를 좋아하듯이 이 검은 난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괴상한 집이었다. 어떤 구석에 처박혀 있어도 간섭을 받았고, 눈물도 마음대로 흘릴 수가 없었고, 무슨 생각만 해도 염탐하는 자가 곁에서 보고 추측을 했다.

"루시 양, 슬퍼하고 있구려."5
"선생님, 저도 슬퍼할 권리는 있어요."6
"마음에 병이 있고 기분도 안 좋은 것 같소."7 그가 계속했다. "슬퍼하고 우울해하면서도 반항적이니 말이오. 당신의 뺨에 불꽃처럼 뜨겁고 바닷물의 결정체처럼 짠 눈물이 두방울 흐르고 있소.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날 바라보는구려. 당신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해도 되겠소?"

"정말이지 전 쓴 약은 싫어요. 그리고 쓰다고 다 몸에 좋은 건 아니에요. 독약이건 음식이건 간에 일단 달콤한 것이 맛있잖아요. 달콤한 것 자체를 부인할 순 없죠. 매력 없는 인생을 질질 끌며 오래 사는 것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빨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오, 그래? 날 보고 싶었다면 물론 내가 해줄 일이 있어서겠지. 스타킹을 수선해야 하나보구나." 나는 그녀가 요만큼이라도 사심이 없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나는 지식이 부족한 것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게 좋았고, 많은 책보다는 몇권의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문체나 감정에 작가 개인의 성격이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좋아했으며, 아무리 재치 있고 가치 있는 책이라도 개성이 없으면 시시하게 여겼다. 내 정신에 관한 한 신께서는 알아서 제한된 능력과 기운을 주셨고, 나로서는 주어진 재능에 감사하며 더 큰 재능에 대한 야심을 품거나 교양을 높이려고 안달하며 열성을 부리지도 않았다.

"아! 너무 좋아서 당장 읽기 아깝다는 말씀이시군. 내가 어렸을 때 아주 잘 익은 복숭아를 아꼈던 것처럼 그 편지를 아끼는 거요?"

"즐거운 순간을 갖자고 자기 자신과 약속했구려."

너무 듣기 좋아서 분별 있는 사람조차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하는 위안의 말도 존재한다.

행복은 천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 내리는 영광의 빛이며, 여름 아침 천국의 시들지 않는 꽃과 황금 열매에 맺혀 있다가 우리 영혼 위로 떨어지는 신성한 이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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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빌레뜨 1 창비세계문학 81
샬롯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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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자체는 2권을 읽지 않아도 대충 감이 잡힌다. 19세기 작가인 샬럿이 생각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21세기 사람인 내가 읽어도 그다지 진부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표현과 문장도 많았지만, 스토리의 전개는 가끔 지루하고 그녀의 트릭은 좀 고루하다. 유령의 정체 때문에 2권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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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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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를 열심히 읽으며 따라가다 보면 당황하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끝은 소설이 끝나도 끝이 없지만, 가슴속은 뭔지 모를 것으로 점점 차올라서. 남미 작가들은 참 지칠 줄 모르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도 느낀다. 노승영씨의 번역은 그 안에서 반짝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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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12-18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고 싶은 책이에요~^^

라로 2022-12-18 15:31   좋아요 0 | URL
찌찌뽕요!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읽고 싶어진 책은 참으로 오랜만이에요.^^

dollC 2022-12-18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기 시작해야겠어요. 책상에 쌓아놓고 구경만하지 말고요~😅

라로 2022-12-20 11:55   좋아요 1 | URL
어여 시작하세요! 다 읽으시면 또 읽고 싶어지니까요!! 올 안으로 두 번은 읽으실 수 있잖아요.^^;;
 

전간기에 에르빈 루돌프 요제프 알렉산더 슈뢰딩거는 유럽을 송두리째 휩쓴 역경을 적잖이 겪었다. 파산했고 결핵에 걸렸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몇 년에 걸쳐 쇠약해져 사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와 더불어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잇따라 수모를 겪으며 한때 창창하던 앞날도 엉망이 되었다.
그에 비하면 대전大戰은 비교적 평온한 사건이었다.

전쟁 기간에 그는 머리 쓸 일이 하나도 없었다. 오지 않는 명령을 기다리고 아무도 읽지 않는 보고서를 작성하다 급기야 극도의 무기력증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생물학적 불임과 지적 불임으로 인해 이혼을 고려했다.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양자역학을 고전 체계의 영역에 둘 방법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양자 수준에서 물질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학문의 토대를 바꿀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 큰 것에 대한 물리학과 작은 것에 대한 물리학이 따로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쓰러져 헐떡거리다 얼굴을 나무 바닥에 바싹 붙인 채 손수건을 입에 물고서 몸을 들썩이며 구역질을 했다. 손수건을 꺼내자 활짝 핀 장미처럼 커다란 혈흔이 보였다. 결핵이 재발했다는 명백한 징후였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녀처럼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식사객의 절반이 마치 교회 통로에서 똥 누는 개를 보듯 그를 쳐다보았다.

첫 수업 날 슈뢰딩거는 아침 내내 채비를 갖췄다. 목욕하고 꼼꼼하게 면도했으며 처음에는 머리카락을 내버려둬야 할 것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격식을 차려야 할 것 같아 빗질했다. 자신도 잘 알다시피 여자들이 그의 넓고 말끔한 이마를 칭찬한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점심은 가볍게 때웠다. 오후 네시에 샛문 반대편에서 자물쇠 딸깍거리는 소리에 이어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락 말락 두 번 들리자 발기가 시작되는 바람에 그는 헤어비히 양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려야 했다.

소녀는 머리가 명석했으며 슈뢰딩거는 그녀에 대한 욕정이 가셨는데도 함께 있는 것이 즐겁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녀는 눈이 움푹 들어간 핼쑥한 얼굴로 진딧물 암컷이 조그만 새끼 수십 마리를 낳는 광경을 밤새 지켜보았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경이로우면서도 징그러웠던 장면은 이 새끼들이,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새끼를 낳더라는 것이라고 소녀는 말했다.

마치 징그러운 러시아 인형처럼 세 세대가 한몸에 깃들어 있었다.

상어 같은 종은 더 무자비하다고 헤어비히 양은 설명했다. 어미의 자궁에서 부화할 때 이미 이빨이 나 있어서 자기 뒤에 부화하는 새끼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탄생과 죽음의 환각 속에서 바다 위 파도처럼 한 유령에 이어 또 한 유령이 나타난다. 생명의 과정에는 물질적 형태와 정신적 형태의 명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그럼에도 불가사의한 현실은 여전하다. 모든 피조물 속에는 숨겨진 미지의 무한한 지성이 잠자고 있으나 이것은 깨어나 감각적 정신의 무상無常한 그물을 찢고 육신의 번데기를 부숴 시간과 공간을 정복할 운명이다." 슈뢰딩거는 이것이 오랫동안 자신의 생각을 사로잡은 것과 같은 개념임을 알아차렸다.

슈뢰딩거와 헤어비히 양은 오후 내내 힌두교, 베단타, 대승불교에 대해 마치 둘만의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방금 발견한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슈뢰딩거는 이 짧은 접촉의 순간을 갈망했기에 그녀와 몸을 맞댈 구실을 만들려고 물을 하루에 3리터나 마셨다.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제가 여기서 나가면 제일 먼저 뭘 할 건지 아세요? 술에 취해서 제가 찾을 수 있는 제일 못생긴 남자와 잘 거예요." 슈뢰딩거가 귓속에서 진주알을 빼며 물었다. "왜 제일 못생긴 남자죠?"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첫번째는 저만의 시간이 되게 하고 싶으니까요." 슈뢰딩거는 그녀에게 남자와 잔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헤어비히 양은 생자生者의 세상을 잠시 방문하는 망자처럼 느릿느릿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읊었다. "어느 남자와도, 어느 여자와도, 어느 짐승과도, 어느 새와도, 어느 야수와도, 어느 신과도, 어느 악마와도, 어느 유무형의 존재와도, 이것과도, 저것과도, 어느 것과도 없어요."

슈뢰딩거는 그녀의 진주알을 귓속에 넣은 채 밤을 꼬박 새웠다. 젊은 여인이 진주알을 입에 넣는 광경, 걸쇠를 문 그녀의 팽팽한 입술, 그녀가 진주알을 뽑을 때 침방울에 어린 빛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하도 깡말라서 슈뢰딩거는 자신의 시간과 그녀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파동 함수가 실재에 대해 실제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 중 하나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썼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론이다. 인류가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하고 우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뭔가 기이한 구석이 있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는 듯하다.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내가 보여주는 세상은 당신이 나를 적용하면서 생각하는 세상과 같지 않다고." 슈뢰딩거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개념을 설명하는 일에 열중했으며 어딜 가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러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만났다.

당신이 자신의 지성에 집착하는 건 변태가 여자의 보지에 집착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홀렸어요, 교수 양반. 자신의 머릿속에 홀딱 빠져 있다고요.

이 모든 광기는 어디서 시작됐지요? 언제부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춘 겁니까?"

보어가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을 때 하이젠베르크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에는 절대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개념과 슈뢰딩거의 개념을 합쳤더니 양자 물체가 고정된 정체성을 가지지 않고 가능성의 공간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었다.

전자는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여러 장소에 존재하며 하나의 속도가 아니라 여러 속도를 가진다고 하이젠베르크는 설명했다.

하나를 더 정확히 파악할수록 다른 하나는 더 불확실해졌다.

이를테면 핀에 꽂은 곤충처럼 전자를 궤도에 잡아두어 정확한 위치를 확정하면 속력은 전혀 확정할 수 없게 된다. 전자는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도 있으며 어느 쪽인지 알 방법은 전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전자에 일정한 운동량을 부여하면 위치를 도무지 확정할 수 없게 된다. 전자는 당신의 손바닥에 있을 수도 있고 우주 끝에 있을 수도 있다. 이 두 변수는 수학적으로 상보적이다. 하나를 확정하면 다른 하나는 사라진다.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새 개념을 뒷받침하는 수학적 근거를 적어둔 종이를 꺼내 건네자 보어는 눈밭에 앉아 읽었다. 하이젠베르크에게 영원처럼 느껴진 시간 동안 보어는 말없이 계산을 검토했으며, 다 끝나자 일어나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추위를 떨치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보어는 이것이 실험적 한계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느냐고,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대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물질 자체에 관계된 것이고,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어떤 현상이 완벽하게 정의된 특징들을 한꺼번에 가질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애초 직관은 옳았다. 양자의 실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양자계를 기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림도 은유도 아니라 숫자의 집합이다.

결정론자들은 만일 물질을 지배하는 법칙을 밝혀낼 수만 있다면 가장 태곳적 과거로 돌아가 가장 머나먼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미래도 아니요 과거도 아니요, 현재 자체다.

마치 실재가 우리로 하여금 한 번에 한쪽 눈으로 세상을 수정처럼 투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허락하되 양쪽 눈으로 인식하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입자는 여러 방식으로 공간을 통과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만 고를 수 있다. 어떻게? 순전히 우연으로.

이전에는 모든 결과에 대해 원인이 있었지만 이젠 확률의 스펙트럼이 존재할 뿐이었다.

만물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물리학이 발견한 것은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이 꿈꾸었듯 세계의 끈을 당기는 합리적 신이 지배하는 단단하고 확고한 실재가 아니라 우연을 가지고 노는 천수千手 여신의 변덕에서 탄생한 놀랍고도 희한한 세상이었다.

"생명 현상은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 이것은 세상의 사실들에 대한 관찰과 객관적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리학은 실재가 아니라 우리가 실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에만 관여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과학이 연구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의 ‘현실 세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초연한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행위자로서의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이제 실재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면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분류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한계를 맞닥뜨렸습니다. 이것은 개입이 탐구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과학이 세상에 비추는 빛은 우리가 바라보는 실재의 모습을 바꿀 뿐 아니라 그 기본적 구성 요소의 행동까지도 바꿉니다." 과학적 방법과 과학의 대상은 더는 분리될 수 없다.

공식 토론과 별도로 아침식사 시간마다 아인슈타인이 수수께끼를 내면 밤마다 보어가 정답을 내놓았다. 두 사람의 결투는 회의를 압도했고 물리학자들을 대립하는 두 진영으로 나눴지만, 결국 아인슈타인은 항복해야 했다. 그는 보어의 추론에서 단 하나의 모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마지못해 패배를 받아들였으며 양자역학에 대한 모든 증오를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훗날 거듭거듭 되풀이하게 되는 이 문장을 그는 보어가 떠나기 전 그의 면전에 대고 마치 침을 뱉듯 내뱉었다.
"신은 우주를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소!"

그가 모든 사람을 차단하려고 친 수치심의 장막은 그와 세상 사이의 장벽이 되었으며 그의 누나조차도 들출 수 없었다.

그는 대통일 이론을 수립하려고 분투했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았으나 젊은 세대로부터는 완전히 소외당했다. 그들은 수십 년 전 솔베이에서 신과 주사위 운운하는 아인슈타인의 공격에 대해 보어가 내놓은 답변을 정답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신에게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그래요. 밤은 정원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식물이 잠을 자느라 감각이 무뎌지거든요. 다른 곳으로 옮겨도 마치 마취된 환자처럼 고통을 덜 느끼죠. 식물을 대할 때는 세심해야 합니다."

저 나무는 반쯤 죽은 채 썩어가고 있지만 아직 살아서 자라고 있다고 그가 말했다.

비밀의 삶을 잃고 세상에 드러난 사람은 영영 영문을 모른 채 서서히 쪼그라들고 속에서부터 말라비틀어진다.

그는 볼썽사나운 이혼을 겪었고 외동딸과 소원해졌고 피부암 진단을 받았으나 이 모든 것이 아무리 고통스러울지언정(핵무기나 컴퓨터, 생화학 무기, 기후 재앙이 아니라) 수학이 우리 세상을 무시무시하게 변화시키리라는 돌연한 깨달음에 비하면 부차적이라고 주장했다.

기껏해야 20년 안에 우리는 인간성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자를 쪼개고 최초의 빛을 포착하고 우주의 종말을 예측하는 데는 한 줌의 방정식과 구불구불한 선, 알쏭달쏭한 기호만 있으면 충분하다.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이 수식들을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조차 더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줄 알며 양자역학은 마치 신기한 기적처럼 작동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

늙은 나무는 만일 벌목되지 않거나 가뭄, 질병, 무수한 해충, 균류, 역병의 공격에서 살아남으면 열매를 너무 많이 맺는 바람에 쓰러진다고 한다

일생의 끝에 이른 나무에서는 마지막으로 무수한 레몬이 달린다. 마지막 봄이 되면 꽃눈이 트고 거대한 꽃송이가 피어 공기를 향기로 채우는데, 어찌나 달콤한지 두 블록 떨어져서도 콧구멍이 아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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