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 받자마자 내 사수의 환자를 위해 코드 블루를 불렀는데 거의 10명이 몰려들어 살려냈다. 그런데 2시간 후에 또 코드 블루가 와서 또 살려냈는데 새벽 1시에 다시 코드 블루가 왔을 때는 살리지 못했다. 그나마 환자가 거대한 사람이라 2번의 코드를 넘긴 것 같다.
인계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다른 환자의 방에서 코드 블루가 울렸다.
코드 블루가 온 날이 처음은 아닌데 이렇게 코드 블루를 4번이나 겪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차 안에 앉자마자 큰아들의 문자가 와서 읽고 문자 보내다가 주저앉은 김에 북플에 들어왔다. 바람돌이님이 올리신 따님의 사진이 큰 위로가 되었다. 젊음, 생동감, 자유, 밝음, 행복같은 좋은 기를 받은 것 같다.
집에 가서 씻고 자야지. 자고 일어나면 <코스모스>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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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06 01:46   좋아요 1 | URL
고생하셨어요. 맘이 많이 안좋으시겠어요. 간호사나 의사라는 직업이 참 숭고하다는걸 또 느끼게 되네요. 이럴 때 전 신앙이 없는게 아쉽기도 해요. 돌아가신분이 좋은 곳으로 가셨을거라고 믿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 집 딸래미 사진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니 참 다행입니다

라로 2021-01-06 16:41   좋아요 0 | URL
어제는 정말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싶었어요. 더구나 첫번째 코드 블루에 온 의사가 뒷짐지고 이것저것 지시하는 것 보고 정떨어지고. 너가 의사 자격이 있냐? 막 소리쳐주고 싶고. 호흡기 담당 덩치 큰 남자는 CPR 안 하고 눈치보면서 다른 사람이 하길 바라면서 가운을 벗었다 입었다 아깝게 버리기만 하고... 전 참 못됐어요. 남의 안 좋은 면만 보고. 그런데 올려주신 사진 보니까 모든 것이 다 싹 날아가더라고요. 피곤함마저!! 넘 좋아요!!!👍👍👍😍

psyche 2021-01-06 08:12   좋아요 1 | URL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라로님 집에서 푹 쉬세요

라로 2021-01-06 17:31   좋아요 0 | URL
덕분인지 넘 오래 잤어요. 😅밤낮이 바뀌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
 

큰시누이가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프리페이드 된 비자 카드를 보냈다는 글을 쓰면서 내가 “앞으로 세상이 VISA화 되나봐요.”라고 적었더니 그 밑에 레일라 님이 신기한 선물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프리페이드 된 비자카드 뿐 아니라 더 손쉽게 돈을 주고받게 되었다. 카카오 페이 같은 것도 그렇고 페이팔도 한때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기록을 해 놓은 덕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기록으로 남는 것일 뿐이다.

나는 13년 전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고, 그다음 9년전, 6년전, 3년전, 그리고 작년부터 다시 활발히 (?) 알라딘에 글을 올리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흔적을 남기려고 애를 쓰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받으려고 노력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면 얻을 수 있지만, 그래도 시원하지 않다. 나는 왜 쓰는가? 그것에 대한 정확한 또는 확고한 생각이 없다면 안 해도 되는 것이다.


간호일지는 이제 그만. 간호일지 글을 좋아하신다며 책까지 선물로 보내주신 ㅈ님께 가장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글을 읽고 좋다고 하신 분들의 공감은 감사히 받고,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읽고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안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이국종의 책을 읽고 힘들어서 읽다 말았으니까.

몇 개 없지만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셨던 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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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1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31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1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0-12-31 13:08   좋아요 0 | URL
ㅠㅠ 저는 속상합니다. 불편해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다고 여기는지라. 갠적으로 저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1인^^;;. 그렇다 해도 이건 제맘이고 라로 뜻을 존중합니다. 라로님 글은 상큼발랄합니다. 그렇게 사시는 듯해요. 새해에도 쭈우~~~^^

라로 2021-01-01 17:07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고마와요, 책 님!! 제 글이 상큼발라 한 건 제가 아직 철이 없이 순수(응?^^;;) 하기 때문인가봐용~~^^;; 농담이구요, 간호일지는 제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이니까 혼자 열심히 써보려고요. ^^;; 우리 새해에도 쭈욱 상큼발랄하게 살아요!!^^ 해피 뉴 이어~~~!!

초딩 2020-12-31 23:49   좋아요 0 | URL
리로님 해피 누 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여~

라로 2021-01-01 17:08   좋아요 1 | URL
초딩님 2020년 정말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해피 뉴 이어~~~!!^^

2021-01-03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4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cuse me, I have work to do.

오늘 아침까지 (저녁에 일하니까 시간을 말하기가 좀 애매한데) 3일을 내리 일했더니 너무 피곤했다. 그 3일 중에 이틀 째(12/27) 일하던 날 나의 사수였던 남자 간호사 A가 맡은 환자는 처음에 2명이었는데 한 명은 그 환자 (내가 12월 16일에 돌봤고 그 남자에 대해 올린 글이 있다. 글의 제목은 Excuse me, I have work to do)의 친척이 (그는 멕시코에서 온 남자인데 부인은 멕시코에 살고 있다고 하고 자식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형과 조카들이 보호자로 되어 있다) 담당 의사의 설득으로 결국엔 compassionate extubation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16번 방 환자다. 


그 다음 맡은 환자는 바로 옆 방의 17번 방 환자인데 여성 환자이다. 나이는 60세. 역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딸 둘과 함께 살고 있다는 기록이 있고 스페인어 계통의 이름이 아닌 계절 이름을 가진 딸과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가진 딸이 매일 전화를 한다. 이 환자도 예전에 맡아서 돌본 경험이 있는 환자라 오늘 밤 어떻게 간호를 해야 하고 어떤 일이 생길지 일하는 일정이 대강 감이 잡혔었다. 


어쨌든, 우리는 간호를 하기 전에 낮에 간호 했던 간호사로부터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서 인계를 받는데 특별히 변화가 생긴 것이나 abnormal에 대한 것을 주로 보고 받는다. 그리고 환자의 기록을 읽고 의사들의 진단서와 각종 기록을 읽는다. 나는 그녀의 기록을 읽으면서 그녀가 알코홀성 간경변 (alcoholic liver cirrhosis)이라는 기저질환 뿐 아니라 신장병, 당뇨병등 많은 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가 겨우 60세인데 병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걸려서 응급실에 딸들과 함께 왔고 결국엔 기관삽입을 하게 되었고 중환자실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 환자의 예후는 다른 환자들보다 더 나빴다. 간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약이 들어먹지를 않았고, 환자의 삼투압은 심하게 나빠져서 third-spacing (한국어로 뭐라 표현하는지 모르겠다)이라는 것이 되어 온 몸이 썩은 고구마처럼 누르면 살이 올라오지 않고 그 자리에 오래 머물다가 천천히 올라와서 환자를 만질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살아있는데 (그러니까 벤틸레이터로 숨을 쉬게 하니까) 눈을 제외한 모든 구멍에서 피가 나왔다. 


처음 그녀를 맡았을 때, 석션을 해주려고 나 혼자 그녀에게 갔다가 각혈보다 더 심하게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서 기겁을 하고 RT를 부르고 다른 간호사를 잡고서 (내 사수는 쉬러 갔었다) 안절부절 하던 생각이 난다. 나와 그 간호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침대머리를 올리고 석션을 계속 해주면서 흐르는 피를 닦아주고 있으니까 사수가 와서는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예상하고 있는 일"이라고 해서 벙쪘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그녀의 상태는 더 나빠져서 귀에서도 피가 흐르고, 말 그대로 우리 몸에 있는 거의 모든 구멍에서 계속 피가 나왔다. 먹는 것도 없는데 피똥을 누고 온 몸은 third-spacing이 심해져서 물을 잔뜩 머금은 흉측한 스폰지처럼 되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기록을 보면, 응급실에 실려온 그녀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오래 살 수 있도록(오래 목숨이 붙어 있도록) 어떤 일이든 해주세요."라고. 나는 그 것을 읽고 암담했다. 저렇게 누워 있으면서, 자신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면서까지 하루라도 더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런데 그건 딸들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목숨이 붙어있게 해달라고 매일 전화로 메달렸다.


27일 밤, 낮도 정신없이 바빴다고 한다. 나와 안면이 가장 오래된 남자 간호사 H는 그래서 12시간 자신의 일을 한 후에도 오버타임을 하고 있었다. 물론 자진해서 하는 것이지만 12시간 일했는데 4시간을 더 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중환자실에서. 내가 햄튼에게, "오늘 낮에는 어땠어?"라고 하니까 한국어 단어를 조금 알고 있는 그가 이렇게 말한다. "미쳤어."라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웃겨 죽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 내 사수 A와 나에게 16번 방의 환자 보호자들이 compassionate extubation을 결정했으니 곧 보호자들이 환자와 페이스타임(물론 환자와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환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겠다는 것임)을 한 후에 compassionate extubation을 하게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compassionate extubation은 말 그대로 환자에 했던 기관 삽입을 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환자는 산소가 모자라서 결국엔 아주 빠르게 죽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이 굉장히 이모셔널 하기 때문에 죽는 과정은 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서류 작성부터 여러가지로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의사가 환자의 죽음을 선언하지 않고 간호사 2명이 선언을 할 수 있어서 나, H,그리고 나의 사수 A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다른 환자도 위독하니까, 결국 나와 내 사수 A는 16번 환자의 죽음을 선언할 수 없었고 대신 다른 간호사가 H와 함께 했다. 나와 A는 그 순간 17번의 방에 있었다. 그녀가 피를 흘리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었지만, 갑자기 혈압이 막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와 그녀의 딸들이 원하는대로 우리는 그녀의 목숨을 계속 붙잡아 줘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 혈압이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norepinephrine의 투여량을 조금씩 올려주고 있었다. 


최근에 읽었던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에 [큰병은 팔자소관, 작은 병은 관리소홀]이라는 소제목의 글이 있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그 사람의 원초적인 성격이나 기질은 타고난다. 편협된 성격이나 기질이 오랜 시간 쌓이면 대병이 된다. 대병이란 고질병을 지칭한다. 이러한 고질병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에서 연유한 것이고 그 기본적인 성격과 기질은 애초부터 타고나는 것이라서 사주팔자에 나타나게 마련이다. 고로 팔자를 보면 그 사람의 고질병을 예견할 수 있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p.92


사주에 있어서 서당개에 머물고 있는 나는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면서 매일 죽음을 접하는 간호사, 특히 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 죽는 환자를 담당하게 되는 간호사들의 사주는 도대체 어떤 사주일까?를 궁금해 했었는데 이제는 이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팔자를 타고 났기에 이렇게 고통을 받으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나는 17번 환자의 상태를 보면서 16번 환자를 처음 간호하고 나서 알라딘에 글을 올린 것이 생각난다. "아무리 당신 몸이 당신 소유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져서 자포자기하며 살았습니까?" 거기다 그녀에게는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랬으면서 1분이라도 더 살고 싶은 이유는 뭔가요?"


나는 결국 완전하지 않은 그녀의 사주를 봤다. 환자의 기록에 태어난 시각은 알 수 없지만, 생년월일은 나오니까. 물론 그것도 정확하다고는 할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사실 서당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의 사주 지식으로 그녀의 사주를 봤지만, 뭔가 이해가 되었다. 그녀가 알코홀성 간경변에 걸린 것을. 


원래 나와 나의 사수가 기관 제거를 하고 죽음을 증언하고 했어야 하는데 결국 다른 간호사들이 하게 된 것도 그렇고. 이런 것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사주가 재밌다. 왜냐하면 사주 말고는 이런 것을 설명해주는 글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사주, 타로, 점성술, 별자리, 관상, 손금, 신점, 풍수지리, 수맥, 혈액형 성격론, MBTI….

세상에는 수많은 미신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믿든 말든 미신은 역사를 만들어왔다. 이건 미신이 과학적으로 타당한지 아닌지와는 무관하다. 틀리든 말든 믿는 사람들이 있고, 그 믿음이 어떤 식으로든 역사에 흔적을 남긴다.


p.9




16번 환자가 더이상 고생하지 않고 죽자, 이제 나와 나의 사수는 불안한 상태의 17번 환자를 보면서 16번 환자의 사후처리를 해야 했다. 우리는 환자의 몸을 닦아주고, 절차대로 신체 기증 기관에도 연락을 하고 등등. 코로나로 죽은 환자를 넣는 가방은 다른 병으로 죽은 환자와 다르게 검은색인데 너무 많은 사람이 죽으니 그 검은백이 없어서 일반 환자가 죽으면 넣는 하얀 가방에 넣고 빨간 코로나 환자라는 태그를 붙였다. 죽어서도 용서 받지 못할 죄인도 이렇게까지 구분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죄인도 아닌데 낙인이 찍히는 것 같달까? 


내 사수는 계속,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서 하라며 나를 가르쳤다. 좋은 사수였다.


밤은 길었다. 16번 환자를 시체저장소에 보낸 이후에 다시 새로운 환자가 16번 방을 차지하려고 들어왔다. 환자가 중환자실로 들어오기 전에 그 환자의 정보가 먼저 전달이 된다. 그 정보에 따라서 내 사수는 새로운 16번 방의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ER에서 코드 블루가 울렸다. 나는 초짜라서 몰랐는데 내 사수가 그런다. 원래 오려고 했던 환자가 아닌 저 코드 블루로 살아나면 그 환자가 올 것이라고. 중환자실 답게 가장 상태가 중한 사람이 오게 되는 거라고. 


16번 환자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새로운 16번 환자가 왔는데 나는 기겁을 했다. 누워있는 환자의 배만 보였다. 거대한 배가 침대 위에서 출렁이고 있었다.ㅠㅠ 내 사수는 그 환자가 도착하자 그 환자가 오기를 열렬히 기다린 사람처럼 성큼 앞으로 달려가서 그 환자를 받는데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도저히 저 거대한 고래 같은 환자 곁에서 그 환자를 옮기고 뭐고 할 엄두가 안 났다. 나는 계속 뒷걸음질쳐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도망갈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17번 환자의 펌프에서 알람이 울렸고, 사수가 나더러 "너는 17번 환자를 맡아!"라고 해서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얼른 옆방으로 갔다. 17번 환자가 날 살리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ㅠㅠ 미안해요, 거대한 16번 환자님. 나는 거대한 당신들이 너무 겁나요.


나중에 일을 다 마치고 인계까지 하고 집에 가려고 하니까 사수가 나를 불러 세우면서 오늘 하루 나에 대한 평가를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거대한 환자를 보고 도망가고 싶었다는 심정을 솔직히 말했더니, 사수가 하는 말이, "그 사람은 뚱뚱해도 배가 공 같아서 이리저리 움직이기 쉬웠다."고 해서 나도 웃고 사수도 웃었다. 나도 웃었다니...


사수와 나는 17번 환자가 아마도 오늘 아침 (12월 28일)에 코드를 받고 죽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2월 28일 저녁에 (어제 비가 오던 날) 일하러 가서 가장 먼저 그녀의 병실을 보니 피가 많이 빠져 나가서 그런가 간이 나빠 온 몸에 황달이 심해 노랗게 보이는 그녀가 아직도 누워있었다. 헤모글로빈수치가 낮아져서 피를 수혈받게 되어 있다고 담당 간호사가 말해줬다.


그런데 밤 12시쯤 되어서 코드 블루가 울렸다. 그녀가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코드팀이 그녀 옆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부디, 저 세상에서는 아프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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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20-12-30 20:16   좋아요 1 | URL
아, 라로님
이런 살아있는 글을 남겨 줘서 감사합니다
숙연하고 뭉클하고 두렵고...
예견된 침상을 사명감으로 지키시는 라로님께 존경을!

라로 2020-12-31 08:54   좋아요 0 | URL
언니! 바쁘신데 언제 이 긴 글을 읽으셨군요!! 이제 자 혼자 쓰는 일기에 쓰고 공개는 그만 하려고요. 😅 언니의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언니의 사랑과 우정에 많은 빚을 지고 있네요!!!🙏👍❤️😘

행복한책읽기 2020-12-30 23:58   좋아요 1 | URL
라로님. 바쁜 와중에 어찌 이리 생생히도 의료 현장을 전달해주시는지. 고맙고 감격스럽고 그러네요. 글로 보는 그레이아나토미 같아요. 라로님, 맛난 거 챙겨 드시고 건강 유지하기에요^^

라로 2020-12-31 08:56   좋아요 0 | URL
현장은 두렵죠. 😅너무 생생하게 전달한 것 같아 이제는 그만 쓰려고요. 쓰는 저도 힘든데 읽으시는 분들은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거든요. 😅

2020-12-31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31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31 0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31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1-01-03 10:02   좋아요 1 | URL
이런 일을 매번 겪는다니 아 얼마나 두렵고 힘들까요. 정말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 대단하십니다. 라로님도 지치지 않으시기를. 건강 꼭 챙기세요

라로 2021-01-04 15:05   좋아요 0 | URL
정말 두렵고 힘들어요.ㅠㅠ 더구나 거구들이 오면..ㅠㅠㅠ 프님은 아시죠?? 여기 거구들이 보통 거구들이 안니거???ㅠㅠ 얼른 NP되고 싶어요.ㅠㅠ 고마와요. 늘~~~~!!
 

12월 21일 밤에 일한 것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두 번째 밤에 일하게 된 것이라 앞으로 계속 밤에 일 할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드디어 내 밤 간호 사수인 한국인 K와 일을 한 날이고 더구나 기관 삽입을 하는 환자에게 의사와 함께 내가 모든 필요한 것을 다 했던 날이었다. 이 모든 경험이 내 사수인 K 덕분이었다.


나는 처음 이 병원에 입사 했을 때 6주동안 낮에 낮의 사수와 일을 하고 나머지 6주는 밤의 사수와 함께 일을 하는 스케줄이었는데 코로나로 간호사들이 많이 안 나오니까 낮에 4주만 일 했고 지난 주 금요일부터 밤에 일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처음 교육 기관에 교욱에 대해서 안내를 받을 때 내 밤사수가 K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구나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K는 나보다 키가 훨씬 크고 (내 딸보다 더 큰 것 같다), 살집은 없지만, 골격이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다. 예전 우리나라 농구 대표선수 박찬숙씨를 떠올린다고 하면 쉽게 상상이 갈 것 같다. (박찬숙씨 보다는 호리호리함) 처음에 한국인이 내 사수라고 해서 (더구나 우리 병원에 한국인은 나 포함 2명 lol) 좀 실망했었다. 심리적으로 피곤할 것 같아서. 그런데 내 예상은 늘 그렇듯 완전히 빗나갔다. K는 8살에 미국에 이민을 와서 그런가 일단 영어를 너무 잘하고 (한국어는 잘 하는 것 같은데 아직 나에게 한마디도 안 했다. 하지만 다른 스태프가 K에게 한국드라마를 보면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보는 것을 들었는데, "~싶다"고 하는 정확한 발음을 해서 그녀의 한국어 실력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간호 실력도 아주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낮에 내 사수를 했던 사람들보다 더 정확하고 꼼꼼하고 실력이 좋았다.


더구나 그녀는 42살에 간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나보다 2살 어린 52살이라고 얘기해줬다. 내가 작아서 자기보다 좀 더 어릴 줄 알았다고.ㅎㅎㅎㅎㅎㅎㅎ 나 그렇게 안 작거든! ^^;; 어쨌든 좋은 사수를 만나서 너무 기쁜데 더 좋았던 점은 다른 사수들처럼 허드렛일을 다 나에게 시키려고 하지 않고 반대로 허드렛 일을 다 자기가 하고 나는 중요한 일만 시키는 거다. 예를 들어 의사에게 전화하는 것, 또는 환자 기관 삽입 하는데 NGT, IV, F/C삽입 같은 것들! 


기관 삽입을 하기 위해 의사를 기다리면서 함께 찍은 사진. 내 옆에 키가 큰 반짝이는 눈을 한 사람이 K이고 그 옆이 R이라는 남자 간호사인데 그 간호사의 환자에게 기관 삽입을 하게 되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그날 밤의 차지 널스 C인데 성격이 아주 좋아서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N. 그녀는 내 첫 밤 근무의 사수가 되어 주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들뜬 마음으로 (왜냐하면 밤에 기관 삽입 하는 일이 드무니까)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ER 의사가 왔다. 그런데 N95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것이다. 왜 안 쓰냐고, 너 백신 맞아서 그러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암튼 바쁘니까 더이상 얘기를 하지 못하고 곧바로 기관 삽입을 하러 환자의 방에 우루루 의사를 따라 들어갔다.


환자는 68세의 남자 환자였다. 사람이 너무 아프거나 산소의 공급이 우리의 몸에 원활하지 않으면 Delirium이라는 상태가 된다. 이 환자도 마찬가지여서 자기 몸에 삽입이 된 IV를 뽑아내고 해서 손목이랑 다른 부분에 핏자국이 많이 있었다. 그런 환자들은 일단 자기에게 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restrains를 한다. 양쪽 손목을 침대에 메달아 두는 것인데 그래도 환자들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벗어나려고 한다.


환자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으면서도 의식이 돌아오면 발버둥 치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에 의사가 기관 삽입을 하려고 하니까, 머리 맡에 있는 의사를 공포심을 가지고 환자가 올려다 보면서 알라듣지 못하는 말을 내뱉으며 또 발버둥을 쳤다. 머리 맡에 있는 의사와 환자를 둘러 싼 5명의 우리 간호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환자의 몸을 토닥거리면서 안심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환자는 계속 겁먹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게요"라는 말을 하면서 기관 삽입 전에 주는 약을 주니까 10초도 안 되어서 환자는 의식을 잃었다. 그런데 환자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순간이 환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는지 알게 해주는 눈물.


나는 죽은 환자를 중환자 간호사로 일하게 되면서 두 번이나 목격했지만, 이번처럼 기관 삽입하는 경우는 처음인데 정말 드라마틱 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올 고통을 직감하고, 아니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를 느껴서 발버둥치면서 온 몸으로 거부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런 환자가 10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의식을 잃고 죽은 사람처럼 잠잠해지는 모습은 매우 슬펐다. 


내 사수가 적극 밀어준 덕분에 나는 우선 환자의 코에 NGTube를 넣었다. 먼저 오른쪽 콧구멍에 넣으려고 시도했는데 코피가 흘러서 왼쪽 콧구멍에 넣었는데 성공했다. 이미 중환자실로 올 정도의 환자들은 혈액응고억제제를 맞거나 먹기 때문에 조그마한 상처에도 피가 금방 흐른다. 내 사수는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겁을 먹은 나를 위로하면서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왼쪽에 시도하라고 했다. 다행히 성공해서 입으로 삽입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다음은 인공요도관을 삽입했다. 나는 한번에 성공했다. 차지 널스가 농담으로 나에게, "너무 쉬운 환자가 걸렸어. 너는 운이 좋아!"라며 따뜻하게 말해줬는데,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여자 환자였다면 한번에 성공할 확률이 50%정도니까. 더구나 이 환자는 전립선 문제가 없는 환자라서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얘기지만, 학생 때 전립선 암을 앓고 있던 환자에게 인공요도관을 삽입했어야 했는데 실패했었다. 그래서 결국 콘돔형을 해야 했었다는.


그리고 IV 삽입을 마지막으로 했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정맥은 잘 사라진다. 정맥을 찾았어도 IV를 삽입하려고 하면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찾은 것도 그랬다. 그래서 내 사수가 아주 좋은 정맥을 찾아줘서 역시 한번에 성공했다. 그러면서 사수가 하는 말이 디렉터에게 부탁해서 어느 하루는 ER에 가서 하루 종일 IV 넣기를 부탁하면 좋을 거라고 해줬다. 나는 원래 ER에서 근무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니까 사수의 조언대로 IV를 잘 삽입할 수 있도록 디렉터에게 부탁할 예정이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신의 은총과도 같은 일이니까 여기서 최선을 다해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더구나 K와 같은 훌륭한 간호사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나에게는 축복이니까.




사노 요코의 <어쩌면 좋아>라는 책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나는 매일 자연을 보고 있다가는 더 이상 진기하지도 흥미롭지도 않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다.

p.25










사실 나는 밤간호로 가게 되었을 때 좀 걱정을 했었다. 사노 요코처럼 매일 환자를 보고 있다가는 더 이상 애처로운 마음이 안 생겨서 무덤덤해지면 어떻하나, 하고. 그런데 아니었다. 환자의 감은 한쪽 눈에만 고여 있는 눈물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깨달았다. 톨스토이의 작품 <안타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서로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들은 각각 나름대로 불행하다. p.11









환자는 다 아프지만, 환자들의 아픔은 각각 나음대로 아픈 곳이 다르고 불행하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불행한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대하니 매일 이렇게 건강하게, 비록 오십견으로 고생은 하고 있지만, 일하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2020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알라딘 친구들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길 바라고 다가오는 2021년을 희망차게 맞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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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2-24 10:23   좋아요 1 | URL
라로님 태그가 정말 글과 딱 맞네요. 매일이 축복.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

라로 2020-12-24 14:35   좋아요 0 | URL
북플로 보니까 태그가 뭐였지 기억이 안 나요. 오늘 글을 많이 올랐잖아요. 이러면 친구/즐찾이 떨어져 나가던데. ㅎㅎㅎㅎㅎ 비연님도 행복한 하루로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

다락방 2020-12-24 11:36   좋아요 1 | URL
라로님 공부하시고 새로운 일 하게 되시는 걸 응원했는데, 이렇게 일을 시작하시니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네요.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저는 역시 매일 일상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적는 글들이 좋더라고요.

라로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라로 2020-12-24 14:38   좋아요 1 | URL
공부 할때와는 완전히 다르네요. 하지만 간호는 공부를 끝없이 해야 하니까 앞으로 공부 얘기도 가끔 할게요. ㅎㅎㅎㅎ 열심히 읽어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많은 응원과 힘이 됩니다!!!👍 저도 매일 일상에서 일어난 글을 쓴 글이 더 좋아요. 다락방 님의 글도 그래서 좋구요. 우리 좀 비슷한 면이 많죠? 사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응???😅😅
다락방 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

기억의집 2020-12-25 00:05   좋아요 1 | URL
라로님 꾸준히 간호 일지 써 주세요~

라로 2020-12-25 04:56   좋아요 0 | URL
반응이 시원찮으면 그만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더 열심히 써야겠어요. 그런데,,, 잘 쓸 자신은 없어요. ^^;;;;

psyche 2020-12-25 09:22   좋아요 2 | URL
있는 그대로 쓰시는 글에 감동이 있답니다! 라로님 글을 읽으면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거 같아요. 같이 마음 아프고, 감동 받고 그렇게 되네요.

라로 2020-12-26 11:34   좋아요 0 | URL
이런 칭찬을!!!! 저는 자주 겪는 일이라 이젠 좀 무덤덤해 질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글이 많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쓰는 사람도 지치니까?
 

이틀 전에 캘리포니아 주에서만 single-day COVID-19 사망 기록이 295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엘에이 카운티의 어제 하루 새로운 코로나 확진자의 수는 14,418명이고 지금까지 580,325명이 감염되었다. 또한 현재 엘에이 카운티 뿐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중환자실 침대는 0% 사용 가능 하다고 하니, 중환자실에 와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그나마 행운의 여신이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저버린 사람들인지.


월요일부터 간호사의 숫자 역시 확연하게 줄어서 1사람의 간호사들이 3명의 환자를 돌보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거의 2500명의 간호사들이 갑작스럽게 나빠진 근무 환경 등을 내세워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도 나왔다. 나는 갓 졸업한 사람이라 여기에 해당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 아직도 감이 안 잡히는데, 이런 악조건이라면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파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열악한 스태핑으로 인해 간호를 잘못하게 되면 각자 어렵게 따낸 간호사 자격증이 위태로울 수 있으니까. 더구나 그 의미는 환자들이 적절한 간호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하니까. 


그렇다고 코로나에 걸린 간호사들을 다시 일자리로 불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호사뿐 아니다. 월요일에 같이 근무했던 H라는 의사와 마스크를 쓰고 얘기했지만, 한 발자국 앞에서 대화를 했는데 어제 내 사수였던 J의 집에 갔다가 그 의사와 B라는 infection control을 담당하는 의사 두 명이 화요일에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했다. 


어제 그동안 나를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내가 식사 대접을 하기로 해서 스시를 사 가지고 J의 집에 가서 맛있게 먹고, 준비한 선물도 주고 돌아왔다. J는 내 두 번째 사수였다. 첫 번째 사수였던 P의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에 주눅이 들어서 J로 바꿔달라고 했는데 아주 탁월한 판단이었다. J는 나이는 어리지만 (31세) 영리하고 일단 간호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된 사람이다. 간호대학에서 배운 대로 엄격한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허락 받고 올리는 사진이지만, 내 얼굴은 가리면서 J의 얼굴을 다 보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가렸다.ㅎㅎㅎ 혼자 사는 아가씨 답게 집도 아담하고 귀엽게 잘 꾸며 놓은 것을 보니 부러웠다. 나는 왜 저런 시절을 놓쳤는가 싶어서. ^^;


내일부터 당장 night shift가 되어서 너에게 더 이상 배울 수 없다며 슬퍼했더니 J의 말이 현재 우리 병원 중환자실의 밤 근무 직원들 6명이 단체로 그만뒀단다. 돈을 많이 준다는 KP그룹으로 (우리 회사가 주는 돈의 2배를 준다!!! 하지만 간호사의 몸에 트래킹 할 수 있는 것을 달아서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 가고 어디에 있는지 뭐 하는지 다 확인한다고 하니 나는 돈을 두 배 아니 세 배를 줘도 그런 곳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 - 물론 나는 새내기라 그런 제의가 들어오지도 않지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가기로 했다고 알려줬다. 사실 J도 C라는 미국에서 유명한 암 전문 병원으로 옮기려고 인터뷰를 한 상태이다.ㅠㅠ


J와 마지막으로 일 한 날, 우리가 맡았던 할머니 두 분 중 한 분도 코로나에 걸려서 ER에 왔고 상태가 심각해져서 기관 삽입을 할 수밖에 없는 데다 ER에서 중풍이 왔다. 이유는 할머니의 심장이 A-fib이라는 리듬이었는데 A-fib은 중풍을 일으키는 심장 리듬이라 어느 정도 예견이 된 일이었다. 다행히 응급실에서 A-fib이 왔기 때문에 대응을 잘 했지만, 그 이후로 혈액 응고 억제제를 IV로 맞아야 했다. 혈액 응고 억제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IV로 받는 경우 환자의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궤양성 대장염까지 있는 할머니였다. 혈액 응고제를 사용하기엔 너무 안 좋은 케이스였지만, 중풍이 더 위험하니까 의사가 어쩔 수 없이 사용한 것 같다.


우리가 할머니를 맡았을 때 할머니의 상태가 너무 나쁜 상태였다. 피오줌과 피똥을 누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에게 환자를 인계한 밤 간호사는 환자의 대변이 tarry stool (타리 변)인 경향이 있고 (타리 변은 내장 출혈을 의심해야 한다) amber 색의 오줌을 눈다고 했는데, 인계를 받고 할머니의 병실에 가서 사정(assessment)을 해보니 할머니는 인공요도관과 인공항문관(? rectal tube)을 사용하는데 인공 요도관에는 선명한 붉은색의 오줌이 가득했고, 렉탈 튜브에는 타리 변이 있었지만, 타리 변의 구멍으로 들어가야 하는 양보다 더 많아서 그런 건지 피와 대변이 섞여서 범벅이 된 채로 시트 위가 검붉었다.


사정을 하고 바로 환자를 닦아줘야 하지만, 아직 두 환자를 사정하지 않은 상태인데다 J가 월요일에 600파운드 나가는 환자(그 다음 날 죽은 환자)를 나와 또 다른 남자와 함께 자세를 바꿔주다가 어깨를 다쳐서 light duty로 전환이 되어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치워주게 되었다. 누가 나와 함께 그 환자를 치워줄 지 찾았는데 내가 병원 첫날 내 사수인 P의 오프라 대신 나를 받아 준 K가 도와주겠다며 선뜻 나섰다. 나는 속으로 눈물겹게 고마웠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환자를 닦아주는 기술이 부족한데 내가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하는데 K가 나서주니 그녀가 맡아서 하고 나는 보조만 하면 될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K는 역시 베테랑이었다. 그녀의 상태를 보자마자 (할머니의 기록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할머니가 삽입하고 있는 렉탈 튜브 때문에 피똥을 누는 것 같다면서 치우는 김에 렉탈 튜브를 빼겠다고 했다. 나는 의사의 오더가 있어야 뺄 수 있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물어봤더니, 아니라면서 렉탈 튜브를 뺐다. 나는 렉탈 튜브를 삽입하고 있는 환자는 봤어도 빠진 것은 K 덕분에 처음 봤는데 삽입 구멍이 딱딱하고 커다란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 온 몸의 피부가 너무 얇고 잘 찟어지는 데다 혈액 응고제를 받고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피를 흘리는 할머니의 항문으로 저렇게 거칠고 두꺼운 것을 집어넣었다니!! 더구나 할머니는 궤혈성 대장염을 앓고 있는 환자인데!!!! 환자가 자꾸 설사를 싸니까 간호하기 지친 어느 간호사가 의사에게 렉탈 튜브 삽입 오더를 내리도록 한 것이라며 K는 울분을 토했다. "너나 나의 엄마가 저런 튜브를 간호사의 편의를 위해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봐. 어떻겠어?"라며 빠르게 말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Do you belive karma plays a role in real life?"라고 물으면서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I do!"라며 할머니를 닦아주면서 얘기한다. 자기는 환자를 대할 때 늘 좋은 업보를 쌓으려는 생각으로 일 한단다. 자기 엄마나 아빠가 저런 상태가 되었을 때 어떤 간호사가 간호를 해주게 될지 모르지만, 좋은 간호사를 만나 정성껏 간호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자신이 조금 편하기 위해서 렉탈 튜브를 환자에게 끼우는 그런 일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결정하는 간호사를 만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더 나아가 자기가 저렇게 누워 있을 때 자기를 간호하는 간호사가 자신의 몸처럼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나는 그 순간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간병인을 둬야 했다. 한국의 간호사들은 내가 봤을 때, 간호조무사나 가족들이 그런 뒤치닥꺼리를 해주지 간호사가 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도 간병인과 아버지, 나, 내 여동생이 돌아가며 엄마의 대변을 처리해드렸다. 그런데 엄마는 엄청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해 하셨다. 수술한 다음 날에도 몸을 씻고 하실 정도로 깔끔하신 분이기도 했는데다. 그래서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이유도 어쩌면 자신이 그런 상태에 처한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수치심에 희망을 내려놓았던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 엄마에게도 K와 같은 간호사가 있었다면, 어쩌면 좋아지셔서 지금도 살아계실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눈물이 나왔다. 


환자를 닦아주다가 안경 위에 고글을 끼고서 울고 있는 나를 발견견한 K가 더 이상 말을 안 하며 묵묵히 환자를 닦아주고 나는 울면서 K가 환자를 잘 닦아줄 수 있도록 물컹물컹하고 곧 찢어질 것 같은 환자의 엉덩이를 잡고 있었다. 


M 할머니는 렉탈 튜브를 빼고 나서도 피똥을 눴지만, K의 예상대로 우리가 렉탈 튜브를 제거한 지 5시간 정도 만에 피똥을 멈췄고 할머니의 맥박도 내려갔다. (할머니처럼 의식이 없는 사람이 맥박이 올라가는 이유는 고통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바이탈을 잘 관찰해야 한다)


좋은 업보를 쌓기 위해서든, 아니면 empathy를 느껴서이든, 자신의 목숨과 몸을 간호사에게 맡긴 환자를 위해서 어떤 마음 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K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았다. 저런 상태의 환자를 환대하며 간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몸에 환자의 상태를 대입하면서 환자를 대해야겠다는 생각. "내가 만약 저렇게 누워 있는 환자라면,,,,"이라는 끊임없는 생각을 하며 치료에 대해 생각해야 겠다는. 의식이 없는 환자라고 간호하기 쉬운 방법을 찾아서 간호사의 편의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이런 것이 하늘이 이치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되니까.















병원(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율성을 박탈당하고 (...) “(...)돌이킬 수 없이 강등되었다는 공포감”을 경험한다. 환자(아이)의 이미지는 여기서 그들의 신체와 정신이 더 쉽게 침범될 수 있음을 표시한다. 그들은 더 작은 명예를 지니며, 더 쉽게 모욕당하고, 그러면서 그 모욕의 무게를 평가절하 당한다. 그들은 불완전한 사람, ‘모자라는’ 사람이다. 그들의 그림자는 남들보다 작고 희미하다.


p.141



개인은 (사회화를 거쳐서) 일단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환자는) 남의 도움 없이 계속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다. 병원 (사회)생활의 모든 순간에 그는 간호사나 다른 병원 직원(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음으로써 매번 사람다운 모습을 획득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간호사나 다른 의료인(개인)은 그러므로 다른 환자(참가자)들의 사람다움을 확인해주고, 사람이 되려는 그들의 노력을 지지해줄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 역으로, 그는 남들이 자신을 사람으로 대우해주기를 기대할 의무를 갖는다.


p.116

작가의 글을 내 맘대로 빼고 넣어보니 환자에 대한 글이되기도 한다.


환자도 사람이다. 간호사는 그들을 다시 온전했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의무가 있다. 이것은 신성한 의무이든 직업적 윤리이든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은 그것을 윤회사상이나 업보에까지 비유하더라도. 그 어떤 생각의 전환점을 가져와서라도 고귀한 생명에 대한 예의는 잊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늘 K를 통해 값진 교육을 공짜로 받았다.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에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시가 나온다. 나는 그 시를 읽으며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K와 함께 할머니를 도와주고 나서 나는 내 일기장에 적은 이 시를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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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19 10:00   좋아요 1 | URL
밤 일하러 가야 해서 오타나 엉망인 문장 수정은 나중에..^^;;

psyche 2020-12-19 14:51   좋아요 1 | URL
지금 일하러 가셨겠네요. 오늘도 화이팅! K와 라로님 같은 간호사님들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라로 2020-12-20 10:34   좋아요 0 | URL
처음으로 밤 일을 했더니 힘드네요. 아침 8시에 집에 와서 씻고 지금까지 잤어요. ㅠㅠㅠㅠ

잘잘라 2020-12-19 17:57   좋아요 1 | URL
온갖 불평 불만이 사라지는 글, 감사합니다. 라로 님!

라로 2020-12-20 10:36   좋아요 0 | URL
가장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갖었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잘잘라 님!❤️

행복한책읽기 2020-12-20 21:40   좋아요 0 | URL
비에도 지지 않고, 필사 들어갑니다. 두 분 덕에 뒷배가 든든합니다~~~^^

라로 2020-12-21 13:33   좋아요 0 | URL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요!!ㅠㅠ 더구나 늙어서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