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너무 거칠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대립하고 싸우면서 논리가 뒤틀린가짜 뉴스에 휘둘리기도 하는데, 토론 교육이잘 진행되면 우리나라는 굉장히 괜찮은 나라가될 겁니다. 우리나라 정치도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달라지리라 확신해요. ‘지금 구태여 왜 교육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의 두 번째 이유입니다.

‘민도가 향상됐다. 합리성을 지녔다‘라는 말씀을
‘인권 의식이 향상됐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저는 민도의 향상을 ‘인권 의식이 나아졌다‘라고 보아왔는데요. 옛 선조들이 말한 덕德을 요샛말로 하면 인권 의식과 연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은 서양인도 "우물에 빠진 아이구하기"라는 맹자의 표현을 많이 인용합니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본다면, 누구나 재지 않고 아이를 구하려 몸을 던지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요. 맹자의 말씀을 현대식으로풀이하면 인권 의식이 아닐까요? 그래서 ‘민도가 향상됐다‘라는 건 ‘사회 전반에 좀 더 서로를생각하는 마음이 자리했다‘라는 뜻으로 파악했어요.

우리가 마스크를 쓸 때 뜻밖의 설문조사 결과가나왔습니다. 왜 그렇게 마스크를 성실히 쓰느냐고 물었는데, 우리 국민의 60퍼센트 이상이 "남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면 스스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답을 했어요. 그런 생각이 ‘서양 교육을 받아서 습득한 합리성인가요?‘라고반문하면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서 제가 시나리오 하나를 만들었어요. 1년내내 그 내용을 강의했는데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2021년 5월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진이 국제학술지〈종합환경과학Science ofthe Total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이 마치 제 강의를 듣고 쓴 것처럼 똑같은 거예요. 제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온대와 열대를 포유류종 수로 비교할 때, 박쥐를 빼면 신기할 정도로똑같아요. 온대 포유류 종 수와 열대 포유류 종수는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박쥐를 넣으면비교가 안 됩니다.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이 너무나 심해졌습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이주하려 할 때 만날수 있는 생명체는 인간 혹은 인간이 기르는 가축일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다이아몬드선생님 말씀도 맞죠. 20~21세기에 우리가 겪은 바이러스가 한두 종류가 아닌데 전부 팬데믹이 되지는 않았잖아요. 21세기만 놓고 본다면, 신종인플루엔자와 코로나 19만이니까요. 초동 대응 실패가 팬데믹을 만든 원인이에요. 그러나 유행병이 잦아진 이유는 그 배후에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선생님이나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JeremyRifkin 선생님은 기후위기를 유발한 인간의 활동을 코로나 19의 원인으로 꼽습니다. 시바 선생님은 이전에 있던 인수공통 전염병zoonosis이 모두 숲에서 왔다는 점이 개발 중심 경제활동에 대한 경고라고 하며, 기후변화와 인간이 활동하면서 생긴 생물 다양성 파괴를 지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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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사람의 마음이 담겼는데, 글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야말로 다친 마음을 알아보고 다가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상황 자체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그런 힘없는 말을 그래도 하는 것이 글 읽은 사람의 도리이고, 문학의 진정한 역할 아닐까 이야기했다.

누구를 구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만든다면 생각해 볼 수 있고 논거도 만들어볼 수 있다. 어떻게 함께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겠는가로 문제를 바꿀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죽여야 하는가로 문제를 내고 설득력까지 갖춘 답을 내게 한다면, 또 그 답을 낸다면 그거야말로 범죄라는 것. 세상의 큰 범죄들도 결국은 다 그렇게 해서 생겨나지 않는가.

글 배웠으면 빛나는 논리로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도 있고, 입장을 유리하게 할 수도 있고, 이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이다. 틀린 것은 틀리다고 할 줄 알아야 한다. 그저 생각 없이 순응함으로써, 혹은 작은 목전의 이득을 위해, 혹은 귀찮아서 잠자코 있음으로써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상의 문제를 악화시키는지.

그러나 높인 목소리에 자신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고 남들만 비난하는 것일 때, 그것이 무슨 진정한 힘이 있겠으며 거두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하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글을 읽어오면서 문학이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남기고, 전하고, 읽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글에는 사람이 담긴다.

우리가 가장 힘들여 남기고, 전하고, 읽는 것은 아마도 바른 삶이어야 할 것이다. 글 읽는 시간이란 것도 궁극적으로는 바른 삶을 생각하는 시간일 것이다.

아주 작은 접시에 담겨 내 방 유리장 안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2센티미터도 안 되는 몽당연필. 언젠가 몹시 지쳐서 딸과 함께 먼 나라의 기차 안에 앉아 있었을 때, 곧 그 기차가 다음 정거장에 닿으면 내려서 차를 갈아타고 아주 멀리로 갈 딸이 문득,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연필 한 자루를 부러뜨려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딸도 연필 한 자루밖에는 가진 필기도구가 없었다. 글을 쓰며 피로감을, 고독을, 온 인생의 짐을 지고 가라는 말없는 당부였다.

그 작은 몽당연필로 대단한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생을 감내한 것 같다. 글을 쓰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어느 제자로부터 선물받은 책 한 권 ? 황송하게도 "스승이자 친구이자 어머니인 선생님께"란 글귀가 적혀 있어 값진 책이 되었다.

그 작은 것들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준 기쁨이 간직되어 있다. 살면서 받은 헤아릴 수도 없는 이런 작은 선물들을 돌아보노라면, 가끔씩 치미는 이런저런 불평불만이나 삶에 대한 회의는 터무니없어 보인다. 이 작은 사랑의 징표들이 나를 삶에 붙들어두는 장본인들인 것도 같다.

그런데 왜 나 자신은 무슨 날이 되면 무언가 그럴듯한 선물을 하기 위해 평생 그토록 조바심했던가. 무얼 해야 하나, 또 무슨 선물을 사야 하나, 정말 찾아뵐 시간이 안 되는데, 정말 형편이 안 되는데 어쩌나······. 그러다가 이제 찾아뵐 분들이 세상에 별로 남지 않게 되었을 때의 쓸쓸함과 회한 또한 그만큼 컸다.

무언가 생색 나는 선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선물조차도 금방 가치가 평가되고 가격이 매겨질 것만 같은, 또 정말로 그렇기도 한 시류 탓도 있겠고 나를 돋보이려는 허영심도 얼마만큼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받아서 정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은 정작, 물건 값과는 무관한 것이다.

온갖 형태로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또 조금은 전하기도 해야만 하는 때가 찾아오면, 사랑의 표시가 어떠해야 할까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건 아마도 처음 마음을 담는 일일 것이다. 빚을 내듯 무리를 해서, 심지어 일말의 미움까지 섞어서, 무언가 물건을 마련한다는 것은 누구든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건도 마음도 형편만큼, 분수만큼이어야 할 것은 사실 자명한 이치이다. 어쩌면 사랑의 마음이야말로 예금 잔액처럼 바닥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아끼며 지키고, 또 늘려가야 할 무엇인 것 같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교양수업의 하나일 뿐인 수업을 두 사람 다 어떤 지극정성으로 하는지를 보았기에, 그들의 전공이 되고 전업이 된 분야의 일을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든든합니다.

그저 입신양명에 뜻을 두기만 한 사람들이라면 내게 그토록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일 리 없다. 한번은 내 시골집에 와서, 다들 조금씩은 낯설어 하는 곳에서, 사려 깊게 그러나 요란하지 않게 궂은 뒷정리를 가만히 다 해놓고 가는 걸 보았다. 세상에 그런 판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판결을 할 때 역시 저렇게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표 나게 무얼 이룬 사람들만 중요하겠는가. 세상이 얼마나 무정하든 지금 묵묵하게 어려움을 견디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그러면서도 남들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젊은이들이 그들 둘뿐이겠는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튀어서 어지럽게 눈에 보이니까 우리가 못 보는 것일 뿐. 제 아무리 세상에 개탄할 것이 많다 한들, 눈 맑게 해서 그런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그런 사람들이 힘 잃지 않게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박수쳐주는 것이 내가 생애의 마지막까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다.

인간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죄 없는 짐승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이렇게까지 자연을 거스르고도 무사할까. 인간이 잡식동물인 한, 먹이사슬 안에서의 죄야 시비해 보아야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류는 넘으면 안 될 선을 이곳저곳에서 이미 넘어도 많이 넘은 것 같다.

다이어트 이야기는 ? 이윤을 챙겨야 하는 산업에 부추겨지기까지 해서 ? 정말이지 너무도 요란하고 너무도 일상적이다. 건강상의 사유로 필요한 경우도 물론 있지만 너무나도 거침없이, 스스럼없이 우리는 다이어트 이야기를 한다. 남을 항상 생각하면서 살 수야 없지만, 적어도 다이어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직도 허다한 배고픈 사람들은 우리의 안중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많은 지식을 쌓고서, 밥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어버렸으면서, 부끄러움마저 없어졌을까.

누가 묻겠지. 무얼 얻자고, 무얼 바라고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고 사느냐고. 무리는 확실히 하는데 바란 것은 없다. 무얼 얻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한 소득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삶이 얼마나 단순할 수 있는가를 깨달은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여주에 내려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이 사는 데 얼마나 조금만 필요한지를 몸으로 체득했다.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건 정말 조금이었다.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것들에 다들 목을 매달고들 사는지. 그 많은 불필요한 것들 때문에 얼마나 또 불행한지. 그런데 쓸데없는 것들을 좀 버리면 자유로워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제법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저 자본의 메커니즘 속에서 마모되지 않고 이런 삶의 이치를 생각하는 순간도 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가끔씩, 잠시나마 그 사슬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젊은 날 모습을 유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답게 있어야, 그런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세상은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물론 나도 병나서 주변 괴롭게 하는 일까지는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뜯어고쳐 무리해서 오래 살지 않고 웬만한 것은 그냥 껴안고 살만큼 살려고 한다. 그런 일이 사람 마음처럼 되는 일이 아닌 건 알지만, 지금으로서 하는 생각은 고작 그 정도이다. 그 점에서만은 하늘이 좀 도와주면 좋겠다.

글에는 사람의 마음이 담겼는데, 글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야말로 다친 마음을 알아보고 다가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상황 자체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그런 힘없는 말을 그래도 하는 것이 글 읽은 사람의 도리이고, 문학의 진정한 역할 아닐까 이야기했다.

누구를 구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만든다면 생각해 볼 수 있고 논거도 만들어볼 수 있다. 어떻게 함께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겠는가로 문제를 바꿀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죽여야 하는가로 문제를 내고 설득력까지 갖춘 답을 내게 한다면, 또 그 답을 낸다면 그거야말로 범죄라는 것. 세상의 큰 범죄들도 결국은 다 그렇게 해서 생겨나지 않는가.

글 배웠으면 빛나는 논리로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도 있고, 입장을 유리하게 할 수도 있고, 이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이다. 틀린 것은 틀리다고 할 줄 알아야 한다. 그저 생각 없이 순응함으로써, 혹은 작은 목전의 이득을 위해, 혹은 귀찮아서 잠자코 있음으로써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상의 문제를 악화시키는지.

그러나 높인 목소리에 자신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고 남들만 비난하는 것일 때, 그것이 무슨 진정한 힘이 있겠으며 거두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하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글을 읽어오면서 문학이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남기고, 전하고, 읽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글에는 사람이 담긴다.

우리가 가장 힘들여 남기고, 전하고, 읽는 것은 아마도 바른 삶이어야 할 것이다. 글 읽는 시간이란 것도 궁극적으로는 바른 삶을 생각하는 시간일 것이다.

아주 작은 접시에 담겨 내 방 유리장 안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2센티미터도 안 되는 몽당연필. 언젠가 몹시 지쳐서 딸과 함께 먼 나라의 기차 안에 앉아 있었을 때, 곧 그 기차가 다음 정거장에 닿으면 내려서 차를 갈아타고 아주 멀리로 갈 딸이 문득,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연필 한 자루를 부러뜨려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딸도 연필 한 자루밖에는 가진 필기도구가 없었다. 글을 쓰며 피로감을, 고독을, 온 인생의 짐을 지고 가라는 말없는 당부였다.

그 작은 몽당연필로 대단한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생을 감내한 것 같다. 글을 쓰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어느 제자로부터 선물받은 책 한 권 ? 황송하게도 "스승이자 친구이자 어머니인 선생님께"란 글귀가 적혀 있어 값진 책이 되었다.

그 작은 것들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준 기쁨이 간직되어 있다. 살면서 받은 헤아릴 수도 없는 이런 작은 선물들을 돌아보노라면, 가끔씩 치미는 이런저런 불평불만이나 삶에 대한 회의는 터무니없어 보인다. 이 작은 사랑의 징표들이 나를 삶에 붙들어두는 장본인들인 것도 같다.

그런데 왜 나 자신은 무슨 날이 되면 무언가 그럴듯한 선물을 하기 위해 평생 그토록 조바심했던가. 무얼 해야 하나, 또 무슨 선물을 사야 하나, 정말 찾아뵐 시간이 안 되는데, 정말 형편이 안 되는데 어쩌나······. 그러다가 이제 찾아뵐 분들이 세상에 별로 남지 않게 되었을 때의 쓸쓸함과 회한 또한 그만큼 컸다.

무언가 생색 나는 선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선물조차도 금방 가치가 평가되고 가격이 매겨질 것만 같은, 또 정말로 그렇기도 한 시류 탓도 있겠고 나를 돋보이려는 허영심도 얼마만큼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받아서 정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은 정작, 물건 값과는 무관한 것이다.

온갖 형태로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또 조금은 전하기도 해야만 하는 때가 찾아오면, 사랑의 표시가 어떠해야 할까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건 아마도 처음 마음을 담는 일일 것이다. 빚을 내듯 무리를 해서, 심지어 일말의 미움까지 섞어서, 무언가 물건을 마련한다는 것은 누구든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건도 마음도 형편만큼, 분수만큼이어야 할 것은 사실 자명한 이치이다. 어쩌면 사랑의 마음이야말로 예금 잔액처럼 바닥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아끼며 지키고, 또 늘려가야 할 무엇인 것 같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교양수업의 하나일 뿐인 수업을 두 사람 다 어떤 지극정성으로 하는지를 보았기에, 그들의 전공이 되고 전업이 된 분야의 일을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든든합니다.

그저 입신양명에 뜻을 두기만 한 사람들이라면 내게 그토록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일 리 없다. 한번은 내 시골집에 와서, 다들 조금씩은 낯설어 하는 곳에서, 사려 깊게 그러나 요란하지 않게 궂은 뒷정리를 가만히 다 해놓고 가는 걸 보았다. 세상에 그런 판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판결을 할 때 역시 저렇게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표 나게 무얼 이룬 사람들만 중요하겠는가. 세상이 얼마나 무정하든 지금 묵묵하게 어려움을 견디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그러면서도 남들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젊은이들이 그들 둘뿐이겠는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튀어서 어지럽게 눈에 보이니까 우리가 못 보는 것일 뿐. 제 아무리 세상에 개탄할 것이 많다 한들, 눈 맑게 해서 그런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그런 사람들이 힘 잃지 않게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박수쳐주는 것이 내가 생애의 마지막까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다.

인간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죄 없는 짐승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이렇게까지 자연을 거스르고도 무사할까. 인간이 잡식동물인 한, 먹이사슬 안에서의 죄야 시비해 보아야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류는 넘으면 안 될 선을 이곳저곳에서 이미 넘어도 많이 넘은 것 같다.

다이어트 이야기는 ? 이윤을 챙겨야 하는 산업에 부추겨지기까지 해서 ? 정말이지 너무도 요란하고 너무도 일상적이다. 건강상의 사유로 필요한 경우도 물론 있지만 너무나도 거침없이, 스스럼없이 우리는 다이어트 이야기를 한다. 남을 항상 생각하면서 살 수야 없지만, 적어도 다이어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직도 허다한 배고픈 사람들은 우리의 안중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많은 지식을 쌓고서, 밥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어버렸으면서, 부끄러움마저 없어졌을까.

누가 묻겠지. 무얼 얻자고, 무얼 바라고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고 사느냐고. 무리는 확실히 하는데 바란 것은 없다. 무얼 얻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한 소득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삶이 얼마나 단순할 수 있는가를 깨달은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여주에 내려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이 사는 데 얼마나 조금만 필요한지를 몸으로 체득했다.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건 정말 조금이었다.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것들에 다들 목을 매달고들 사는지. 그 많은 불필요한 것들 때문에 얼마나 또 불행한지. 그런데 쓸데없는 것들을 좀 버리면 자유로워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제법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저 자본의 메커니즘 속에서 마모되지 않고 이런 삶의 이치를 생각하는 순간도 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가끔씩, 잠시나마 그 사슬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젊은 날 모습을 유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답게 있어야, 그런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세상은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물론 나도 병나서 주변 괴롭게 하는 일까지는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뜯어고쳐 무리해서 오래 살지 않고 웬만한 것은 그냥 껴안고 살만큼 살려고 한다. 그런 일이 사람 마음처럼 되는 일이 아닌 건 알지만, 지금으로서 하는 생각은 고작 그 정도이다. 그 점에서만은 하늘이 좀 도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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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했다, 투자를 좀 한 게 있는데 그게 2월이면 만기가 된다. 투자 건에 관해서는 비밀스럽게 굴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는 텔레비전 이야기를 하더니, 허리가 망가진 이야기를 했다, 내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돌이 있는 게 아니라면 거기에 낚일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예상할 수 있는 일과 요구되는 일을 모두가 확실히 알아두게 하려고 몇 시간 동안 편지를 썼다.

"걱정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걱정이 돼. 아들들 걱정을 하다가 이제는 내 걱정을 하고 있어. 내 아들이 이런 꼴이 되는 걸 보리라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저 네 아빠가 살아서 이 꼴을 안 보는 게 다행이다 싶을 뿐이다."

쓰렸다, 맞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동생이 가여웠고 곤경이 그의 문을 두드린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제 나 자신의 등이 막다른 벽에 닿아 있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생겨도 동생이 돈을 더 얻으려고 나를 다시 찾지는 않을 것이다?현재 나에게 빚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아무도 그러지는 않을 거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줄 뿐이었다.

동생의 곤경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도 나 나름으로 곤경에 빠져 있었다. 어머니 외에도 나는 다른 몇 명에게 돈을 주고 있었다. 매달 돈을 보내는 전 아내가 있었다. 그것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법원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벨링햄에는 자식이 둘인 딸이 있었고 그 아이한테도 매달 얼마를 보내야 했다. 그애 자식들도 먹어야 했다, 안 그런가? 그 아이는 일을찾으려고 하지도 않는 돼지, 누가 일을 주어도 계속 잡고 있지를 못하는 자와 살고 있었다. 한 번인가 두 번 정말로 괜찮은 일을 찾기는 했으나 늦잠을 자거나 출근하러 가는 길에 차가 고장나거나 그냥 아무런 설명 없이 그만둬버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전에, 오래전에, 이런 문제에 관해 사나이처럼 생각하던 때에 나는 그 자식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 시절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쨌든 그 새끼는 여전히 붙어 있다.

아이는 어느 날 밤 전화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자식 둘이 있고 또 함께 사는 부랑자 개자식이 있는 젊은 여자일 뿐이야. 다른 많은 여자와 다를 게 없어. 나는 힘든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냥 기회만 줘. 그게 내가 세상에 부탁하는 거야." 아이는 혼자라면 그냥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파구가 생길 때까지, 기회가 문을 두드릴 때까지 딸이 걱정하는 건 자식들이었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버틸 수 있다. "아빠가 없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아빠." 그게 딸이 한 말이다. 심장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물론 나는 딸을 도와야 했다. 아이를 도와줄 능력이 반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나에게는 일자리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딸이나 내 가족의 다른 모두와 비교하면 나는 버텨낸 셈이다. 나머지 가족과 비교할 때 나는 잘살아왔다.

나는 딸이 부탁하는 돈을 보냈다. 부탁할 때마다 보냈다. 그러다 매달 초에 일정액의 돈, 목돈은 아니라도 어쨌든 돈을 보내는 게 더 간단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건 딸이 의지할 수 있는 돈이 될 거고,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딸의 돈이 될 거다?딸의 돈이자 아이들의 돈. 어쨌든 그게 내가 바란 거였다. 딸과 함께 사는 새끼가 내 돈으로 사는 오렌지나 빵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한다는 걸 확인할 방법이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런 건 없었다. 그냥 그대로 돈을 보내고 그 자식이 내 달걀과 비스킷이 담긴 접시에 곧바로 입을 들이대든 말든 걱정하지 말아야 했다.

아들이 빌릴 수 있는 모든 돈, 눈에 보이는 모든 돈을 빌린 뒤에는, 독일에서 이학년을 다니기에 충분한 비용까지 빌린 뒤에는, 그뒤에는 내가 돈을, 그것도 많은 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더는 보낼 수 없다고 하자 아들은 답장을 보내 만일 그렇다면, 정말로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자신은 마약을 팔거나 은행을 털 거라고, 살아갈 돈을 구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다 총에 맞거나 감옥에 가지 않으면 나는 운이 좋은 거다.

어떤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내 양심은 많은 짐을 지고 있었다.

나는 내 상황을 감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했다. 그것이 또 매달 나가야 할 돈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외식을 중단해야 했다. 나는 혼자 살았기 때문에 밖에서 먹는 것은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었으나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영화를 보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조심해야 했다. 옷을 살 수도 치과에 갈 수도 없었다. 차는 망가지고 있었다. 새 신발도 필요했지만 포기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그들 누구도 사실 내가 오스트레일리아에 갈 거라고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꽉 쥐고 있었고 또 그것을 알았다. 내가 필사적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안타까워했으며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달 첫날 내가 앉아서 수표를 써야 할 때가 오면 그 모든 것은 지난 일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다는 이야기를 편지로 한 번 하자 어머니는 답장을 보내 이제는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리의 부기만 빠지면, 어머니는 말했다, 그 즉시 일을 찾아 나서겠다. 나이가 일흔다섯이지만 어쩌면 웨이트리스 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답장을 보내 어리석은 짓 하지 말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도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도울 수 있어 기뻤다. 그저 복권이 당첨될 필요가 있을 뿐이었다.

딸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내가 모두에게 이제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휴식과 기운을 북돋울 뭔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면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통조림 공장 일을 하러 가겠다고 썼다. 하루 열두 시간에서 열네 시간, 일주일에 이레 일을 할 수 있을 거다, 문제없다. 그냥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만 하면 몸이 말을 들을 거다. 적당한 보모만 찾으면 된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특별한 보모가 필요하다. 애들을 봐야 할 시간이 길고 애초에 애들이 지나치게 흥분하는 쪽이다. 그건 애들이 매일 먹어치우는 팝시클이며 투시롤이며 M&M 같은 것들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애들이 먹고 싶어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계속 찾으면 적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일하러 가려면 신발과 옷을 사야 하고, 그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다.

아들은 이 상황에 자기가 관련되어 있다는 게 미안하며 당장 모든 걸 끝내는 게 자신에게나 나에게나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편지를 보냈다.

전 아내는 그 문제에 관해서 아무런 할말이 없었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저멀리 시드니에서 온다 해도 어쨌든 매달 첫날 자기 돈을 받을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못 받을 때는 전화로 변호사와 이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동생은 형편이 어떠냐고 묻고 나는 매달 돈이 나가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트밀이며 코카인이며 통조림 공장이며 자살이며 은행털이 이야기까지 했고 이제 영화관도 못 가고 외식도 못한다고 말했다. 신발에 구멍이 났다고 말했다. 전 아내에게 계속 나가는 돈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물론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생은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나는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동생이 건 전화였으니까. 그러나 그가 말을 하는 동안,이 전화요금은 어떻게 낼 거냐, 빌리?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 요금을 낼 사람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분, 아니 몇 초 사이에 다 결정이 났다.

"누가 내 공간을 침해했어. 강간당한 기분이야."

오랫동안 아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때든 깨어 있을 때든 아빠는 이제 내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가족에게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겠다고 을러댔을 때 그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상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고, 심지어 약간 겁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다, 나를 알기 때문에, 아마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이 웃는 걸 생각하자 이제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하, 하, 하. 마치 어딘가에서 웃는 방법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거기 식탁에서 딱 그런 소리를 냈다?하, 하, 하.

진실은 팀북투에도 달에도 북극에도 가지 않을 것이듯 오스트레일리아에도 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젠장,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이것을 이해하고 나자, 내가 거기에, 또는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다른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임을 이해하고 나자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커피를 더 따랐다. 커피에 넣을 우유가 없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하루쯤 커피에 우유 넣는 것을 건너뛸 수 있고 그래도 죽지 않는다. 곧 점심을 싸고 보온병을 채우고 병을 도시락통에 넣었다. 그런 뒤에 밖으로 나섰다.

집안에는 없다고 해서 살지 못할 물건은 없었다. 텔레비전이 있었지만 그걸 보는 데 신물이 났다. 누가 침입해서 그걸 내 손에서 빼앗아가준다면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게 될 거였다.

사실 여름이었고 오래지 않아 여름은 끝날 거였다. 전에 여름은,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의 운이 바뀌어가는 때였다.

물론 지금의 형편은 모두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운이 따르지 않은 것뿐이다. 상황은 곧 바뀔 수밖에 없다. 아마 가을이면 다시 좋아질 거다. 기대할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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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사는 것보단, 그래도 남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위험하지 않겠어?"
"위험하긴요. 사실 저 안전하려고 혼자 사는 거예요. 여자는 남자랑 같이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생존율이 통계적으로 더 높대요. 전 세계적으로 살해당하는 여자들의 절반이 남편이나 전남편, 남자친구나 전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는걸요. 그러니까 저 오래 살려고 남자랑 같이 안 살려는 거예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통계적으로 사실이죠. 남자를 사귄다고 모두가 살해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살해당하거나 폭행당할 통계적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죠. 그건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을 거예요."

"당연하죠!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죠! 하지만 통계적으로 남자와 같이 사는 여자보다 남자와 함께 살지 않는 여자의 생존율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건 담배를 피운다고 모두가 폐암에 걸리는 건 아닌 것과 비슷해요. 흡연자 전부가 폐암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선배들은 원래 법의학은 만화와 드라마로 공부하는 거라고 했다. 법의학은 사건을 통해서 공부하는 것이니,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법의학 전문의 사요코와 히카루는 그런 여자들의 시신을 통해 범죄 현장을 재구성해내고 범인을 추적한다. 아무 증거도 없어 미제 사건으로 묻힐 뻔했던 죽음과 고통을 위로하고, 무의미한 죽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나는 이렇게 끝까지 강간살해범을 잡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애도라고 느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애도해야 한다. 범인을 반드시 추적해서 잡아야 한다.

사귀다 보니 이상한 낌새가 있어 위험을 감지하게 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만나지 말고 헤어지자고 얘기하는 순간이 가장 살해당하기 쉬운 시점이 된다. 그런 사람인지 알기 전까지는 헤어질 이유가 없다가 그런 무서운 느낌이 들어 헤어지자고 얘기하면 폭행/살해당한다니, 이건 뭐, 절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분노에 떨며 악몽에 잠을 설친 그날 밤 이후로 나는 법의학자가 되는 꿈을 접었다. 분을 삭이기도 힘들었지만, 이런 일을 평생 하면서 살 수 없겠다는 판단은 한 번이면 족하다.

검도 도장에 다니면서 점점 밤길이 안 무서워졌던 건 아니다. 그런 건 점차 느끼는 게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어랏, 내가 밤 대학로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네’라고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신체의 힘을 키우는 것은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과도 같다.

지금은 검도 같은 대련하는 운동을 하지 않으니까 그 느낌이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어, 나 쫄지 않아도 돼!’라고 느껴본 사람은, 다시는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기 힘들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무슨 운동이 되었든 반드시 운동하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신체를 단련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무엇으로도 용서가 안 되겠지만, 그놈이 미운 만큼 합의금을 많이 받아내라. 합의금을 받으면 꽃뱀이라고 그놈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는 것 같고 자존심 팔아서 몸 팔아서 받은 돈 같아서 그 돈이 꼴도 보기 싫겠지만, 그놈이 나쁜 거지 돈이 나쁜 게 아니다. 돈으로라도 실제로 그놈에게 타격을 줘야 한다. 돈이 아니면 무엇으로 타격을 주겠나.

이도 저도 안 되겠으면 그냥 소문을 흘려라. 꼭 총여학생회 명의를 걸고 대자보 붙여야만 그게 옳은 거냐. 그놈이 학교 안에서 또 그런 짓을 못 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으냐. 과방에, 동아리방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으냐. 누가 썼는지도 모르게 대자보를 붙일 수도 있고, 조용히 뒤로만 성폭력범이라고 소문을 낼 수도 있다. 아니, 훼손될 명예도 없는 것들이 어디서 명예훼손이라고 고소하고 지랄이야!

싸우는 방법에 얽매이지 말고, 싸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싸우라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 스스로를 잘 지키라는 것!

이러한 몇 가지 일이 있은 후 나는 ‘쌈닭’으로 이미 찍혀, 친해지고 싶지도 않지만 건드리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포지션은 아주 유리하다. 암, 유리하지. 어차피 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면 애초에 ‘미친년’으로 찍히는 게 낫거든. 건드리면 재미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최고다.

인턴 업무가 아닌 일을 인턴에게 시키면 안 된다고, 나는 당신의 비서가 아니라고 소리를 질렀다. 말싸움 끝에 화가 난 전공의는 "나는 인턴 때 이러지 않았다"라며 홀로 비운에 젖은 채 병동을 뛰쳐나갔고, 나의 싸움을 관전하던 병동 간호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런 극강의 쪽팔림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전공의는 나와 병동 간호사들을 다시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꼭 공개적으로 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번은 동료 여자 의사가 같이 일하는 다른 과 전공의한테서 성희롱을 당했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왔다. 무슨 일인고 하니, 둘은 같은 병동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놈이 일하다 말고 만날 이 선생님에게 피곤해서 부부관계가 힘들다는 둥, 아침에 텐트도 안 선다는 둥 하는 얘기들을 자주 했던 것이다. 처음엔 동료 의사가 자신의 질환에 대해 상담한다고 생각하여 점잖게 응대해주던 선생님이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이 싸움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계산하면서 싸우는 것, 누구와는 싸우고 누구와는 동지가 될 것인지 고려하는 것, 어떤 방법으로 싸울지 신중하게 전략을 세우는 것, 무엇보다 싸울지 말지부터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꼭 싸워야만 하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스스로를 잘 지키고 숨죽여 지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의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가 있다. 병원 안에서 싸우는 데는 정말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남자가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심장내과로 보내지고 여자가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정신과로 보내진다는 얘기는 자조적인 농담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급성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들 58만 명의 사망률을 의사-환자 간 성별 차이로 분석한 결과, 환자와 의사의 성별이 불일치한 경우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특히 남자 의사가 치료한 여자 환자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남자 의사는 여자 환자의 심근경색 증상에 좀 덜 민감하고, 여자 환자가 가슴이 아프다고 하는 경우 심근경색이 아닌 다른 질환을 더 의심했다는 것이다. 결국 골든타임을 놓친 심근경색증 여자 환자들이 더 많이 사망했다.

의사의 성별에 따라 환자의 생존율을 분석한 다른 연구도 있다. 역시 미국에서 노인 입원 환자 158만 명을 대상으로 사망률과 재입원율을 분석한 결과, 여자 의사에게 치료받은 환자들이 남자 의사에게 치료받은 환자들에 비해 사망률과 30일 이내 재입원율이 낮았다. 여자 의사의 진료 실적이 더 좋았다는 뜻이다.

왜 여자 의사가 남자 의사보다 실력이 좋을까? 의대 내의 성차별, 전공의·교수 선발 과정에서의 성차별은 여자 의사·의대생으로 하여금 더 열심히 공부하게 만든다. 내가 의대에 다닐 때만 떠올려도, 여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과의 전공의가 되자면, 그 과에서 정한 여자 티오TO 숫자 안에 들어야 했는데, 소수의 인기 과들은 여자 티오가 한 명에 불과했다. 그 한 명도 다른 남자 지원자들보다 성적이 훌륭해야 뽑히곤 하였다. 큰 과도 다르지 않았다. 여자 전공의 숫자가 많아지면 과의 세력이 약해진다며, 여자들이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여자:남자 전공의 비율을 1:1로 한다는 등의 내부 기준을 정한 과들이 많았다. 그 좁은 문을 두고 여학생들은 여학생끼리 경쟁하면서도, 또 남학생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여자 의사들의 실력을 키워주고 있는 성차별에 경례!)

젊은 여자들은 통증을 설명하기 위해 너무 많은 애를 쓴다. 눈물로 호소하면 감정적이라고 믿어주질 않는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보이려고 침착하게 통증을 참고 설명하면, 그렇게까지 절절히 아프지 않다고 여긴다. 여기서도 도대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녀가 진짜로 자신의 통증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느낀 순간은, 통증이 너무 심해 ‘횡문근융해증’이 생겼을 때였다. 전신 근육의 떨림으로 인해 근육이 녹아내렸고, 드디어 혈액검사에서까지 녹아내린 근섬유의 흔적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그 검사 결과를 의사들이 보고 놀랐을 때, 그녀는 ‘그것 봐, 내가 아프다고 했잖아. 나는 진짜로 죽을 만큼 아팠다고!’라고 생각했다. 횡문근융해증을 겪었으니 근육통은 어느 때보다도 컸을 터였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극심하게 아팠기에 가장 인정받고 위로받았다고 한다. 이제야 아프다고 주장할 수 있는 ‘환자’의 범주에 공식적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인정받은 기분이었고, 그것이 큰 안도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좋아지고 어떻게 하면 안 좋아지는지를 잘 모르니까, 내 몸에 대한 주도권을 질병에게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든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라, 질병을 앓고 있는 내 몸이 나의 주인 혹은 조건이라고.

그녀가 농담처럼 ‘명의’라는 단어를 썼지만, 내가 아는 나는 명의가 아니다. 다만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그 말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사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연구들은 ‘여자 환자의 아프다는 호소를 믿기 힘들어하는 의사들이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환자의 말을 믿는 것이 환자를 살리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가족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누구와 같이 사시나 여쭸더니 따님은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혼자 살고 있다. 15년째 어머니가 아프시니, 결혼은 생각도 못 했다’는 대답이다. 아픈 어머니와 나이 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결혼하지 않은 딸…. 정말 많은 왕진 가구에서 반복 재생되는 모습에 나는 잠시 한숨이 나오려 했으나, 꾹 참았다.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은 곧바로 ‘그녀에게 돌봐야 할 다른 사람들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고, 그것만으로도 돌봄 노동에 소환될 명분으로 충분했으니까.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 누구에게라도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말. 친근하고 헌신적인 돌봄은 항상 ‘딸, 며느리, 아내, 어머니’처럼 여성의 형태를 취해야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이 표현들의 자연스러움에 취하는 순간, 돌보는 당사자인 그 여성들의 고립감은 더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돌봄이 실제로는 노동이며, 이 노동이 어느 계층, 어느 성별의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몰리고 있는지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독박 노동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에 무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동네에서 만들고자 하는 돌봄의 생태계는 이런 자연스러움의 함정을 의심하는, 평등하고 호혜적인 돌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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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어릴 때 이런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 내 나이가 쉰이 넘었는데, 실제 내가 통과해온 시간은 3백 년도 더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 P70

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순원의 소설은 거의 다 어머니가1
써주고(『수색 그 물빛 무늬) 아버지가 써주고(아들과 함께 걷는길) 할아버지가 써주고(나무』 망배) 친척이 써주고(『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말을 찾아서』) 초등학교 동창들이 써주고(첫사랑』 『강릉 가는 옛길) 고등학교 동창들이 써주고(영혼은 호수로가 잠든다) 동네 고향 사람들이 써주고(순수) 정말 자기가쓴 건 압구정동엔비상구가 없다』 『은비령』 『19세』등 몇개밖에 없다고 했다. - P71

그래, 그렇게 써주는 사람이 많은데도 나는 늘 내 재능에목이 마르고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다. - P71

"나는 소설을 글로 짓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의 소재,
집을 짓는 재료에 따라서, 초가집을 짓는 것과 기와집을 짓는 것과 양옥을 짓는 것, 또 아파트를 짓는 것들은 저마다 공법이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품마다 문체와 분위기가똑같아서 몇 줄만 봐도 이것이 누구 작품인지표가 나는 그런 소설을 계속 써나갈 바에는 바로 지금이라도 대관령으로농사를 지으러 올라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P74

그러나 강원도의 자연을 잘 알기 때문에 무대를 강원도로 잡는 것은 아니다. 은비령」 같은 경우에도 이 작품을 쓸 때까지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 작품을 쓰고 나서 독자들과 함께가봤다. 말을 찾아서』의 경우도 그 작품의 무대가 되는 봉평을 나중에 독자들과 함께 가보고, 서울 가까이에 있는 압구정동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쓰기 전에 사전 조사를 다니지 않았다. 가서 보기는 쉽지만, 가서 보고 나면 오히려 상상력의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 P75

그물 자리를 넓게 잡는다고 반드시 큰 고기가 걸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 P76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있건 없건, 몸 상태가 어떻건 간에 매일 꾸준하게, 직업인처럼 쓰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시간과청소를 하는 시간 등을 합쳐서 ‘근무시간‘을 정해놨는데, 그시간을 매일 스톱워치로 재서 엑셀 파일에 기록한다. - P79

왜 2,200시간이냐 하면, 한국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이 2,100시간 남짓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출퇴근 시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1년에 최소한 2,200시간 정도는 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내 책을 사주는 독자에 대한 나름의 예의이기도 하고, 그런 숫자를 정해놓지 않으면 마냥 게을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야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을 그나마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P80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도 받는데, 나도 영감의 존재를 믿기는 한다. 그런데 영감을 불러일으키려면 먼저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고 본다. 당장 결과가나오지 않아도 뇌에 일정 시간 이상 압박을 줘야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목욕을 할 때 비로소 뒤늦게 답을 얻게 되는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몇 줄 뒤에 다시 적도록 하겠다. - P81

반면 절정에서는 고민해야 할 점들이 많아진다. 폭탄을 하나 터뜨려야 하는데, 그게 앞에서 발전시킨 이야기나 인물과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하고, 소설 전체의 중심을 잡아줄 만한폭발력이나 무게감도 있어야 한다. - P83

벌집을 만드는 것은 꿀벌 개체의 개별 의지라기보다는 그종의 유전 정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벌집이 그런 모양이 되는 것은 벌이라는 종의 생물학적 특성보다는 오히려 수학과관련이 있다. 우리 우주에서는 뭔가를 겹쳐서 쌓아 올릴 때육각형 구조가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소설을 쓰는 작업의 배후에도 그런 거대한 힘과원리들이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 P85

어떤 때에는 의미의 세계가 실재하고, 내가 소설을 쓸 때잠시나마 그 세계에 들어가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듯한 느낌을 맛본다. 나의 존재는 쪼그라든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다른 세계의 의미를 우리 세계에 전하는 영매 같은 역할을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다른 세계의 타자기나 프린터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경우에는 ‘나는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이 그냥 스스로를 쓰고 있는 듯하다. - P87

원고는 늘 안 써진다. 잘 써지는 날은 없다. 안 써지는 날에도, 어쩌다 잘 써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이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날 하루 분량의 원고를 쓰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것조차 되지 않으면 빈 모니터를 바라본 채 묵묵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글이써지지 않아도 물러서지도 도망가지도 않겠다는 비교적 담담한 마음으로, 그런 자세로 이십여 년 앉아 있었던 게 허리에 큰 무리를 준 모양이었다. - P91

서 잠시 누워 있었다. 거실 창으로 환하고 때때로 붉은빛을띠는 빛이 들어와 바닥에 밝은 그늘을 만들었다. 빛이 있어서 만들어지는 그 그늘을 바라보며 얼마쯤 누워 있다 보면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지금 내게 주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순간은 곧 지나가버릴지도 모른다는 경이로움과안타까움이 함께 몰려왔다. 그 느낌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 P94

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웠으나 고독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열흘.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마침내 냉장고가텅 비었고 커피도 떨어졌다. - P94

계속 걷다 보면 ‘칼(KAL) 호텔‘이 나왔고 이따금 일층카페에 들어가 밤이 늦도록 앉아 있기도 했다. 그 안전한 실내에서 보는 일몰은 해안가 검은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는 것과는 다른 데가 있었고, 자연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호텔 커피숍의 커다란 통창 안에 있을 때가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 P97

세상의 여느 엄마와 딸처럼 별것 아닌 일로, 다른 사람한테는 할 수없는 가장 아픈 말들을 거침없이 주고받으며,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그 돌길을 걸으며 그렇게 어머니와 나는 맹렬히 싸웠다. - P99

"나는 전적으로 공간에 매혹 당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작가가 조이스 캐롤 오츠였던가. "공간이 희망이다"라고 말한 작가는 조르주 상드. - P99

인생에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여기서 살게 되겠지. 다행히 나에게는 일 년에 한두 차례다른 도시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기고 또 스스로 기회를 만들곤 한다. 나에게는 낯선 공간에서의 긴장과 호기심이 늘 필요하고 나는 그곳에서 내가 본 것, 느낀 것, 나를 불편하게하는 것, 나를 더욱 삶 쪽으로 끌어당기게 된 것들에 관해 쓴다. 지금도 종종 서서 쓴다.
어딜 가든 나에게는 푹신푹신한 운동화 한 켤레가 필요할뿐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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