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기자의 본령을 '취재'라고 생각하는 기자들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중요 어젠다를 세팅하고, 현장에 가서 취재하고,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하고, 그걸 정리해 '기사'라는 형태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믿는 기자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기자의 본령은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취재를 하는 것이라고 믿는 기자들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니까요. 이처럼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일자리의 지형도가 아니라 업무의 지형도입니다.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 중요합니다.  -270쪽

 

직업을 수단이라고까지 표현한 글도 본 기억이 있는데, 기억의 밑바닥이 지지리도 깊어 출처는 죄송하게도 역시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내가 이것, 그러니까 직업이라든가 작업이라든가? 등등을 통해 무엇(목적, 스케일 키우자면 사명....쯤?)을 성취하겠다는 어떤 지향점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 차이를 알고, 알려주는 것이 중요한 거구나 생각하게 됐다. 나는 나이 사십이 넘었어도 내가 죽는 날까지 무슨 일을 통해서 뭘 할 건지 계속 재고 있는 중인데(물론 이러다 쫑나겠네, 그런 가능성도 염두에 늘 둔다 ㅋㅋ) 고작 십 대 언저리의 아이들에게 그런 중대사를 단지 성적표와 진로적성검사라는 가이드만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해 보라는 건 너무 가혹한 듯. 여하간 핵심은 지치지 않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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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아저씨의 선물 우리 그림책 22
고혜진 지음 / 국민서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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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테고리에 글을 올릴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원본보다 못 생기게 그려서 죄송해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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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수업에서 난 '평생' 학습의 본디 뜻을 배웠다. 어떤 이들을 평생 배우고 쓴다지만 특정한 서사를 주어진 틀 안에서 되풀이하고, 어떤 이들은 뒤늦게 배우고 쓰면서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기죽지 않고'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95쪽

 

어제 어떤 '좋은' 사람 때문에 되게 괴로웠다. 다정 상냥한 사람이고, 착한 사람인데, 그 사람의 특정한 언어습관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이 사람을 끊어낼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읽었던 책에서 마침 이 문장을 발견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왜 매번 같은 고리를 만들어 그 안에서 계속 맴을 돌고 있는지... 그건 본인은 절대 모르겠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마음의 거리를, 200킬로미터쯤 늘리면 되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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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을 재봉틀에 비유한다면, 산책은 섬세한 손바느질이다. 그것도 기억의 바탕화면에 꼼꼼하고 단단하게 여행의 기억을 못박는 되박음질이다. -41쪽

 

그래도 남들의 이해를 돕고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구체적인 스토리텔링과 비유에서 나온다. 실컷 추상에 관한 이야기를 써 놓고 이 무슨 손바닥 뒤집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지만... ㅎㅎㅎ

뱀발.

그런데 의외로 손바느질보다 미싱질(?)이 튼튼하고... 단단하답니다. 왜냐하면 재봉틀은 위아래 양면에서 박음질이 먹히는 구조거든요. 으하하하하하(이따위 태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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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보폭 - 구체적인 삶을 강요받는 사람들을 위한 추상적으로 사는 법
모리 히로시 지음, 박재현 옮김 / 마인드빌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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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논문을 쓸 때였습니다. 도무지 늘어날 것 같아 뵈지 않는 요지의 논문을 있는 힘껏 잡아당겨서 늘려놨는데, 그걸 또 한 페이지 가량으로 줄여야 하는 시지프스적 노동에 어처구니없어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요약문 앞에는 왠지 있어보이는 타이틀이 붙게 돼 있습니다. Abstract. 그 때 abstract이 팔 벌려 안아들이는 의미의 친족들이 이렇게나 계보가 복잡했구나, 처음 알았습니다.

 

모리 히로시라는 작가는 『작가의 수지』라는 책으로 처음 만났어요. 그 적나라한 제목에 홀리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요. 이 사람이 글로 꽤나 수지를 맞았던 인물이라는 걸 알고는 더더욱. 소설은, 안타깝게도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습니다만.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함부로 추천하기 힘든 책이라는 점입니다. 간결하고 구체적(bold again)인 글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절대 비추예요. 시종일관 축축한 새벽안개길을 헤매는 기분이니까요. 안개가 보통 그렇듯 어쩌다 반짝 선명한 길잡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시야가 다시 부예져서 말이죠. 이 애매함을 꿋꿋하게 버텨나갈 수 있는 읽기 근지구력을 갖춘, 그리고 새로운 발상법을 배우고 싶은 의욕충만한 분꼐 한정하여 권해도 될까 말까조차 망설여지고요. 추상성과 추상화 능력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책답게 문장도 지극히 추상 일변도입니다(쓰면서도 슬슬 ㅊㅅ에 멀미가...). 가끔은 어쩌라고! 주먹을 내리치고 싶을 정도?

여기에서 무엇을 추상해서 나만의 행동강령으로 구체화할 것인지를 전적으로 독자 몫으로 떠넘기는 불친절한 책이지만, 사고의 혁신을 도모하는... 아, 거창해진다.

여하간, 뭔가 식상함을 털고 새로운 통찰을 얻고 싶다면 그 정도의 수고와 노력쯤은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은근히 독려하는 책이기도 한 것이죠.

제 경우에는,

 

'왠지 이런 게 좋다'는 기분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으면 자신도 '어떤 좋은' 것을 만들고 싶어진다. 따라서 창작을 하려는 욕구의 밑바닥에는 대상을 추상적으로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중략) 그래도 무엇인가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 생각의 보폭은 넓어져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구체적으로 앞으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건 아직 존재하지 않기에 처음에는 추상적이다. 추상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행위를 우리는 '창조한다'고 말한다. -134쪽

 

이 대목이 흡사 동앗줄 같았거든요. 늘 '난 뭘 좀 하고 싶은데' 말만 주워섬기고, 그러면서 딱히 뭘 구체적으로 열심히 하지는 않는. 그런데 그 무쓸모의 집합체나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던 무형의 물컹거리는 무엇이 의미가 있다고 누가 말해주는데 그게 얼마나 고맙겠어요. 진실인지 아닌지 따지는 건 잠깐 미뤄두더라도.

 

저자는 '생각의 정원'이라는 아이디어가 자신이 이 책을 쓰면서 걷어올린 가장 가치있는 발상이라고까지 단언하더군요. 저는 인용했던 부분이 개인적 가치를 느낀 단락이었고요. 그게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누군가를 문장을 통해 만나, 지금껏 어두웠던 머릿속 혹은 마음속 어딘가에 반짝, 불이 밝혀질 때의 그 경이로움 때문에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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