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Upon a Memory (Hardcover)
Nina Laden / Little Brown & Co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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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열면 드러나는 펼침면의 일러스트는 무대위의 막이 올라가는 순간 같은 연출효과를 냅니다. 바람 타고 날려 들어온 깃털을 줍는 아이 위로 글쓴이가 낭송하는 구절이 울리는 것 같은 착각도 들어요. 

깃털이, 한때 자신이 새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기억할까? 책은? 책은 언젠가 자기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나의 단어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게 무엇이든, 스스로가 작고 볼품없을 때가 있었고, 반대로 지금은 별볼일 없어도 한때는 빛났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까? 책을 덮는 순간에 스스로에게 뭔가 묻고 싶어질지도 모르죠. 


철학하는그림책 

어른도생각해볼문제 

그림으로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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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a Bear on My Chair (Paperback) - 『내 의자에 북극곰이 앉아 있어!』원서
Collins, Ross / Nosy Crow Ltd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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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면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 라이밍 그림책. 

한편으로는 역지사지의 교훈도...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도 당하기 싫을 거라는 건 상식이잖아요. 


웃겨요 

가르쳐주고싶은마음 

말장난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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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초에 있었던 일로 며칠째 마음이 산란하다.

 

세상에 나만큼 치과에 돈 많이 벌어준 사람이 있을쏘냐, 자부하면서 (별 쓰잘데없는 게 다 자랑스럽다) 산 세월이 꽤 길다. 남들은 그 돈과 시간과 건강을 갖다바치기 전에 이미 정신차리고 이를 열심히 관리하면서 살았는데 나란 인간 뭐하고 산 것인가... 여하튼 그래도 뒤늦게나마 정신차리고 주기적으로 치과를 다니며 관리한답시고 노력은 했는데 이미 망가뜨려 놓은 정도가 심하여서 열심히 챙긴다고 해도 건강하다고 보기는 힘든 범위에 들어갔을 거라고 확신한다. 본디 확신이란 말은 좀 긍정적으로 유인원 포즈로 가슴을 두드리며 써야하는 법인데 이렇게 쭈그리 감성으로 쓰고 있다니 이것 참...

 

여하간.

 

워낙 단기 체류인데다가 출국 직전에 두어 번 다니던 치과에서 마지막 점검도 받고 나와서 정말이지, 다른 건 몰라도 치아에 관해서만큼은 아무 걱정을 않고 있었는데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는다. 아, 진짜 울고 싶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 나라의 의료비는 살인적이다. 꽤 괜찮은 치과보험을 들어놓은 집의 아이가 유치를 빼는 데 든 돈이, 보험처리를 하고도 원화로 5만원 넘어 나왔으니 뭐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이들과는 또 다른 이유로 스트레스가 많았고 체력이 심하게 딸려서(허리가 4인치가 줄었다! 살 빠지면 좋겠다 노래를 불렀어도 이런 식으로 빠지는 건 한 개도 반갑지가 않은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데 면역력 저하인지 뭔지 원인은 모르겠어도 어느 날부터 잇몸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원래도 염증이 잘 생겼던 위치인지라 별 걱정도 않고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나아지기는 뭐가 나아지나... 양치할 때마다 세면대에 피를 뱉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소염제를 사다 먹어야 하나, 별로 없네. 민간요법으로 버텨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인도인 친구가 이게 좋다며 클로브를 챙겨다 주는데 하루이틀 지나니 이것도 약발이 다한 것 같고. 하늘 끝까지 솟아오를 기세를 품은 진료비를 감수하며 병원을 가야 돼 말아야 돼 고민하던 어느 날 결국 예약을 잡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한인치과를 갔다. 사람들이 엄청 좋아라하는 서울치대나오신 한국인 원장님은 찾는 분들이 줄을 서셔서 그냥 급한대로 치약광고 모델같은 미소를 짓는 중국인 덴티스트에게 진료를 봤다. 치아가 너무 깨끗하다고!!!! 이렇게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왜 크라운이 이렇게 많은지 좀 미스터리이긴 하다는 그 쌤에게 제가 정신차린 지 몇 해 안 되었다고 말하긴 느무 민망해서, 뭐 그건 됐고 어금니가 약간 감염증상이 있는 것 같고 욱신거리긴 하는데 통증이 심하지는 않은데 신경이 쓰여서 왔다니까 자기가 엑스레이를 보니까 아주 심각하지는 않은데 혹시 모르니 치주전문의한테 더블체크를 받는 게 좋겠다고 해서 다음 예약을 잡았다.

 

그리하여, 온 김에 딥클리닝을 받고, 물론 엑스레이도 찍긴 했지만- 의사 상담을 했고, 이 비용이 425달러였다는 사실.

ㅋㅋㅋㅋ

원화로 대략 50만원 넘으려나요?

항생제 처방도 받았는데 항생제는 비교적 저렴하게 2만원... ㅠ.ㅠ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항생제 투여가 끝나고 다시 미친듯이 붓기 시작한 잇몸에서 이젠 대놓고 고름이 발생.

때마침 다가온 치주과 담당의 진료예약날을 미뤄야 고민하다가 그냥 갔는데 가지 말 것을 그랬다. 살면서 온갖 의사를 다 만나봤지만 이렇게 의사 안 같은 의사도 처음 봤다. general dentist가 진료한 날의 엑스레이만 보고 (나도 엑스레이 대충 볼 줄 아는데 염증이 뿌리조직까지 간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전에 본 의사도 it looks ok to me... but let's get it double checked for safety 라고까지 말했는데), 툭툭 건드려만 보더니 무조건 뽑아야 한단다. 부가설명 같은 건 일절 없다. 그래도 명색이 어금니인데, 발치하고 뭘 어쩌겠다는 대안은 하나도 없고. 너무 기가 막혀서 안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너 되게 씨리어스한 상황인데 상황파악을 좀 못하는 것 같다, 니가 모르나 본데 너 진짜 큰일나. 지금 당장 빼버려도 균이 옆에 다 퍼져있을 수 있는데 그걸 놔두겠다고? 그러는데... 뭐지, 협박당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내가 이걸 빼더라도 우리나라 가서 빼고 오지, 여기선 안 뺄거야. 그러니까 비행기 타서 고도가 높아지면 통증이 말도 못하게 심해질 거란다. 아, 진짜 싫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그딴 소리나 들어서 혈압 올랐는데 또 십만 원을 결제해야 했다. 살다살다 이렇게 짜증나는 경험도 참 오랜만이었다.

 

집에 와서 분노의 검색질 끝에 알아낸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나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의 치주질환 환자에게도(사진들을 너무 친절하게;;; 올려놓으셔서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더라) 기본적으로 치아를 살리는 방향으로 치료하더라는 거.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수단까지 써봐도 안 될때 발치를 하지 지금 나처럼 통증도 없고, 시린 증상도 그닥 없고, 그렇다고 치아가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이부터 빼자고 달려드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오기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서는 당장 빼야 된다고 난리고, 바로 염증제거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면 최악의 경우에 발치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도 하고, 이러나저러나 결과가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신경 좀 쓰면서 버텨볼 생각.

여기서 염증치료를 받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비용 때문이다!!!!
제대로 해줄 것 같은 병원을 찾아다니는데 드는 비용, 신환등록 하면서 들어갈 기초비용, 이런 거 다 생각하면 정말 수백만원인거다... 정말이지 조기귀국하고 싶어지는 요즈음이다.

 

덧.

막판에 정신차려서 몇 년 좀 신경썼더니 치과의사한테 관리 잘했다고 칭찬받는 착한 어른이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책을 알려드리자면,

 

그니까요! 가능하면 뽑지 말라잖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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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로자문드 필처의 The Shell Seekers가 최애소설로 쭈욱 남아 있었는데 드디어 새로운 왕좌의 주인이 등극했다... 쟁쟁한 후보들이 많았지만 감수성 최고 예민한 시절에 제대로 꽂혔던 소설을 밀어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나 보다. 그나마 제일 가까이 갔던 소설이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클럽이었는데... 뒷심이 딸렸어... 그래서 그 대단한 책이 뭐냐면,



이거다!


각설하고.

이 책과의 만남을 주선했던 책은 이거였다(책이 주선한 책 치고 그렇게 나빴던 기억은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당신의 책더미를 3배 더 늘리는 게 목적이라고 공언하는 이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물론 있을 수 있다, 당연한 말을)? 그림도 글 못지않게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더욱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도 열심히 읽기야 하지만 어느 순간 책등과 표지 그림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는 책이다. 그렇게 책 구경하다 글 읽다 문득 77페이지에 이르면, 책 사랑하는 1인으로 한번쯤 로망을 가져봤을 북클럽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맞은편으로 비스듬히 시선을 옮기면 문득 시선을 끄는 노란색 책등에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한 쌍의 눈, 정확히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만남은 후에 돌이켜봐도 아무 개연성을 찾을 수 없기도 한데 이 경험이 딱 그랬다. 도대체 무슨 연관성을 읽어낼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소재를 다룬 글을 읽다 문득 발견한, 아마도 주인공인 것 같은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이 책을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 검색 시작. 


그리고 우리의 자랑할만한 검색엔진은 이 책이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는 정보를 전해준다. 고맙게도 '직배송 중고'로 상태좋은 중고가 한 권 등록돼 있었다. 이럴 때를 위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 이건 사야 해!"

모든 상황이 그린라이트를 깜박이며 Go 사인을 열렬하게 보내고 있는데 차려놓은 밥상도 못 찾아먹는 바보가 될 순 없다. 그래서 굳이 먼 바다를 건너오게 해서 읽었다. 이 책도 따지고 보면 먼 바다를 건너 온 아이의 이야기가 주된 소재다.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가 없다. 왜 원서로 읽지 않았는가하면, 논픽션이라면 몰라도 문학 원전의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없을 때도 많지만) 있는 건 그림책까지만이라서... 


나한테 되게 달라붙는 책이구나 또 실감한 건 책장을 열고 나서. 

책을 손에 들기 불과 한 시간 전에 바로 주인공 소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도시에 다녀온 참이었기 때문이지... 그 동네엔 한인타운도 있고 재팬타운도 있는데, 이 아이는 아마도 그곳에 살았었겠구나, 그러면서 완전히 실존인물로 착각하게 됐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각별했던 장소가 내게 물리적으로 가깝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발길 댈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 현실과 책 속 사건 사이의 거리감을 이렇게 순식간에 좁혀버린다. 


나오는 흔히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들보다 훨씬 영민하고 섬세하다. 이런 캐릭터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는데. 분명히 읽었던 책이었어도 마지막장을 덮으면 거의 모든 것을 망각해버리는 성능의 브레인 소유주이므로 한참을 더듬어서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오래된 기억의 방에서 끄집어낸다. 여기에 등장했던 팔로마가 나오와 아주 비슷한 인상을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얘 이름도 까먹어서 책 정보를 뒤져 기억해낸 거지만. 훨씬 연상의 친구와 마음을 나눈다는 설정도 비슷한 듯. 


정확히는 마음을 나눴다기보다, 여기에서는 일방적으로 맡겨둔 느낌이 더 강하긴 하다. 변덕스럽고 감정적인 또래 문화에 자기를 갈아넣지 않고 혼자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나오가 일방적으로 미움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사회가 갈수록 튀는 존재를 용인하지 않는데, 10대들의 리그라고 특별히 다를 것도 없겠다. 아무리 괴롭혀도 나오는 그대로 단단해 보였으므로, 아이들은 아예 나오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한다. 갈 데까지 간 괴롭힘의 끄트머리에서도 이 아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도대체 어떤 관계, 어떤 힘, 어떤 마음 때문이었을까.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작품 속의 루스는 나오에게 무엇을 준 것일까. 


나오처럼 홀로 세상을 견디고 있는 아이는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까. 현실이 항상 소설처럼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아니면 누가 신경을 쓰겠어요? 세상이 지코 할머니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으면 블로그에다 할머니 얘기를 올렸겠죠. 하지만 그건 오래전에 그만뒀어요. 저기 사이버 공간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이 내 생각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 믿는 척하는 날 보니 슬퍼지더라고요. 사실은 아무도 관심이 없잖아요. 수백만의 사람들이 각자의 쓸쓸하고 하찮은 방에 앉아 쓸쓸하고 하찮은 페이지에 미친 듯이 글을 쓰고 올리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글을 쓰고 올리느라 바빠서 아무도 읽지 않아요. 내 슬픈 감정에 그런 수백만의 사람들을 곱해보면 난 좀 가슴이 아파요. -41쪽


시간과 집중은 재미있는 방식으로 상호 작용한다.

한쪽 극단에서, 루스가 인터넷 검색에 강박적으로 매달려 초집중하고 있었을 때 시간은 파도처럼 모이고 높아져 하루의 대부분을 집어삼켰다. 반대편 극단에서, 집중이 느슨해지고 분열되면 시간은 마치 알갱이가 있는 것처럼, 매 순간이 정체된 물에 녹지 않고 퍼져 있는 입자처럼 느껴졌다. -131쪽


지코 할머니는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은 헤이와보케라고 말해요. 그걸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그건 우리가 전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멍하고 부주의하다는 뜻이에요. 전쟁이 끝난 뒤에 태어났고 평화 말고는 기억하는 게 없기 때문에 일본은 평화로운 나라라고 생각하고 그냥 그대로 좋다고 느끼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모두 전쟁과 과거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했어요. -254쪽


사실은 내가 아는 게 꽤 많더라고요. 특히 영어는 더 그랬고. 하지만 답조차 쓰지 않은 게 태반이에요. 점수가 어찌나 낮던지 무슨 장난 같기도 하고 내게 지적 장애라도 있나 싶더라고요. 그래도 난 뭐 그러거나 말거나 했어요. 이제 고등학교엔 갈 수 없겠구나, 그래서 우리 하루키 1번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배웠던 모든 것들을 배울 수 없겠구나 생각하면, 크게는 아니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어요. 그러니까 그게, 곧 죽을 사람이 그런 것들을 배워서 뭐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고 또 그 말이 맞기도 하지만, 끝까지 해보려는 노력엔 고결한 뭔가가 있어요. 지코 할머니의 슈퍼히어로 간노 스가코처럼요. 교수형에 처해지던 바로 그날까지도 계속 영어 공부를 했고 일기를 썼다고 하잖아요. -468쪽


내가 왜 이런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왠지 당신은 알고 싶어할 것 같아요. 우리 아빠는 자기가 가진 슈퍼파워를 찾은 것 같았어요. 어쩌면 나도 내 슈퍼파워를 찾은 것도 같아요. 바로 당신에게 이 글을 쓰는 거요. -548쪽


자문자답.

쓰는 일이 출구가 될 수도 있겠다. 가능한 한 자세히, 옆에서 함께 지켜본 것처럼.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마치 옆에서 무심하게 관찰하고 있었던 듯 쓰고, 마음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휘몰아쳤던 감정들을 뿌리부터 하나씩 갈라놓아 찬찬히 펼쳐 쓰는 일이 나오에게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고 가질 수 있는 슈퍼파워가 될 수도 있다. 그냥, 말이 되든 안 되든 문장이 단정하건 소란스럽건, 일단은 쓰기 시작하면 정말로 뭔가가 바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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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느닷없이 물었다. 엄마 내가 필력이 많이 딸려? 솔직한 마음으로, 열 넷짜리가 무슨 필력 운운이니, 필력이란 말이 부끄러워서 낱자로 산산히 부서지겠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뇌내대공사중인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수습 불가능한 구멍이 뚫릴 것만 같아 "잘 쓴다고 말하기가 힘들긴 해" 정도로 대답해 주었다. 허니 아이가 다시 엄마 그러면 나 상처받아도 괜찮으니까, 그냥 엄마가 진짜 솔직히 생각하는대로 말해 줘, 내가 어느 정도로 써? 되물어왔다. 살면서 온갖 난감한 질문 자존심 상하는 질문, 행여 대답 잘못해서 관계 틀어질까 저어되는 질문... 나름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한 시간들이 다 헛것이었나 싶게 대답이 궁색해져서 한참을 고민했더니 "대답할 말을 못 찾는 걸 보니까 진짜 못 쓰나보다" 한다.

 

맞아, 멘탈이 부분적으로 깨져나가도 할 수 없지만, 재보수할 수 있는 걸 뭐. 솔직히 말해줄게, 엄마 생각엔 딱 3-4학년 수준인 것 같아. 이 말에 철옹성같던 자존감에 금이라도 간 표정으로 아이는 내가 정말 그렇게 못 쓰나... 생각하더니 사실 자기가 한국 떠나오기 직전에 국어쌤하고도 그 문제로 상담을 했단다. 선생님은 필사를 권하셨다고. 무슨 책을 권하시더냐 물어봤더니 스스로의 수준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따로 메모해 오진 않았는데 김유정 작가의 작품들을 필사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단다. 김유정이라...  


한국에서 같았으면야 뭐가 문제일까, 바로 집 옆에 있는 도서관 가서 책 빌려오고 공책 하나 사 주고 자, 그럼 쌤도 권하셨겠다, 이제부터 필사를 시작해보려무나. 이러고 말았겠지. 그러나 이곳은 디 유나이티드 스테잇ㅊ... 아니었던가... 책은 중고로 구해보고, 공책은 한 권 따로 사야하려나 이러다가 문득 나는 이런 걸 발견하고야 만다.



세상 참 좋네.

출판사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내가 이렇게 격리(...)된 상황이 아니었다면 구매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상황이 뜻밖의 쇼핑욕구(뭐가 뜻밖이냐, 맨날 머릿속으로 카드번호를 감으며 외웠다 키보드 위에 풀어놓는 게 일상이면서)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리 없잖은가. 그래도 이왕이면 무료배송 받아야지, 하면서 50달러를 기어코 채운다. 이해는 하면서도 약간 억울한 게 국내판매가와 US판매가가 달라서 사실상 이게 무슨 무료배송이야 배송비 다 받으면서... 주세도 꼬박꼬박 다 떼이는데... 싶지만... 아쉬운 놈이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열심히 구입한다. 세상에 내가 여기 건너와서도 플래티넘 멤버쉽을 유지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도 몰랐는데. 

우스운 건 정확히 1주일이면 물 건너 알라딘 박스가 현관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다는 거다. 아마존 프라임 멤버가 아닌 이상, 같은 미국 안에서 주문한 물건도 일주일이 족히 걸려야 도착할까 말까 하는데 태평양 건너 오는 택배가 더도 덜도 아닌 7일만에(사실 지난번엔 5일만에 도착해서 기함하기도 했다) 온다는 사실은 꽤나 놀라운 동시에 좀... 그 짧은 시간안에 도착하게 하려고 애를 썼을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기도 하다. 얘네는 1주일이고 2주일이고 갈 때 되면 가니까 기다려 좀, 이래서 사람을 황당하게 하더니만. 


아무튼 적지 않은 금액의 카드를 긋게 하셨으니 큰 따님, 필사 열심히 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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