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제한적으로 구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을 때가 그 사람의 창의력이 폭발하는 순간이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같은 것을 놓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재미있는 점이고, 그렇게 터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때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 어른의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책은 같은 생각을 끌어내기도 하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의 물꼬를 트기도 한다. 어쨌거나 책은 훌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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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관에 간다.

2. 한국 책 섹션으로 간다.

3. 빌리고 싶은 만큼 꺼낸다(물론 권수 제한이 있긴 한데 들고 가는 데는 생각보다 한계가...)

4. 대출기에 카드 인식시키고 몽땅 대출대에 올려놓고 스캔한 뒤 그린라이트가 뜨면 영수증 받고 나가면 끝

 

대강 이러한 프로세스... ㅎㅎㅎ

처음에는 도서관 갈 정신적인 여유도 뭣도 없다가 (여기도 지금은 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데 습한 것만 빼고 그야말로 한국 못잖게 태양작렬이다. 머릿가죽이 홀랑 벗겨지는 느낌인데, 처음엔 뭘 몰라서 그냥 나다니다가 정수리에 화상을 입고 한동안 고생한 뒤에 외출할 때는 반드시 모자를 쓴다. 모자는 패션아이템이 아니라 생존아이템) 가까스로 여유가 생기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이란 데를 갔다. 한국에선 집 나서면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는 몹시 독서친화적 주거환경이었는데, 여기에서는 편도 15분 가량의 산책(가방에 20권 가량 되는 책을 넣고 가는 운동삘 나는 산책)이 필요하다. 음... 덧붙일 말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도서관 카드를 만들겠다고 하면 포토아이디 카드와 (신분증명) 주거지 증명서류를 한 부 가져오라고 한다. 인터넷 요금 청구서라든가 가스요금 청구서라든가 여하간 실거주 증명이 되면 되는데... 도서관은 다른 관공서와는 달리 이걸 엄청 엄격하게 검사하는 건 아니어서 심지어 아마존 영수증 같은 걸 보여줘도 되긴 하지만, 역시 깐깐한 사서한테 걸리면 별 소용 없으므로 케바케...

이 지루한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카드 디자인을 고르란다. 이 지역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네 명의 작품으로 디자인한 카드가 네 종류가 있는데, 다 나름으로 예쁘다. 아이들은 이게 뭐라고 심각하게 고심을 해서 고른다. 두 가지 크기의 카드가 나오는데 휴대성이나 관리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너무 웃긴 게 사서가 안내해 준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애들은 기가 막히게 한국 책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내서 잽싸게 그 서가 앞에서 한참을 맴돈다. 한국 같았으면 쳐다도 안 봤을 책들을, 한글로 씌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침없이 읽겠노라 주장하는 이 아이들을 어쯔끄나 ㅎㅎ 나는 한국 책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도서관처럼 유아동(+청소년) 자료실은 따로 있는데, 그 안에서 이건 또 어떻게 찾아오는건지.  

 

여하간 그렇게 욕심껏 책을 가져오면, 대출을 한다. 앞서 이야기한 그런 스텝으로, 그리고 이런 영수증을 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고, 이메일로 받을 수도 있는데 대출내역 관리의 용이성을 위해 영수증을 받는 쪽을 선택하지만, 쓰레기 양산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책감은 어쩔 수가 없네...

 

 의외로 최근에 발행된, 나름 신간 축에 속하는 책들이 잘 비치되어 있어서 좀 놀랐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것 현지의 그림책들을 많이 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본전 생각나는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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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딱 이 주일 남짓 되었다. 남의 나라 살이가 처음은 아니지만, 나는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생활 환경이 자동적으로 마련되었던 옛날과 달리 이제는 내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어른의 입장이 되었다. 책임질 일만 뵈는 입장에서 주거지를 이렇게 먼 곳으로 옮긴다는 건 얼마나 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 몸살이 나지 않은 게 신기할 것 같은 시간들과 싸우면서 버티고 보니 이제 좀 숨을 돌릴 만하게 되었다. 
 
여기 사는 동안만큼은 한국에서 책 주문해서 보지 말아야지, 굳은 결심을 했었는데 불과 일주일만에 굳다, 라는 단어의 뿌리와 의미를 곱씹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게 냉큼 주문을 넣고 말았다. 먼 나라까지 배송하자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무게를 가격에 반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무료로 받자면 길고 긴 선박배송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엔 도저히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는데, 그거슨 바로 세일즈 텍스...
 
내가 내 나라에서 책 파는 서점에서 책 주문해서 받는데 왜 니네 주에 세금을 내야하니... 것도 10%에 달하는 세금을 왜때문에 내야하는데, 라고 부르짖고 싶으나 나름 문명인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자제하자. 그래도 그렇지. 이 어마무지한 세금과 무게에 덧붙은 추가금액을 대략 합산해 보면, 한국에서 샀다면 지불할 필요가 없었을 30,000원이 추가로 나갔다는 가슴아픈 사실로 실컷 속이 쓰리게 된다.
 
이미 발송이 시작됐다는 주문서 메일을 다시 읽어보면서 주문목록을 찬찬히 다시 살펴본다. 이제서야 드는 생각, 
이게 그다지도 긴급하게 30,000원을 토하면서까지 구입했어야 할 것들이었을까... ㅎㅎㅎ
 
후회해도 늦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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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어요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김정화 옮김 / 봄나무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열 명쯤 되는 어린이들의 자아를 같이 갖고 사는 사람 같습니다. ㅎㅎ

내는 책마다 기발하죠.

나쁜 버릇을 갖고 있는 주인공 어린이가 그 습관에 대해 엄마에게 타박을 들으니 일단 그게 아니라요!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버럭 저질러 놓고 보니 뭔가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제깐엔 나름 타당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갖다 대는데 그게 하나같이 기상천외합니다.

아이 때문에 짜증나는 날 펼쳐보면 그냥 웃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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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읽는 사람이 깨닫기 전에 그를 잘게 쪼개었다가 스리슬쩍 자신의 조각을 집어넣어 솜씨좋게 다시 붙여놓기도 한다. 내 안의 뭔가가 바뀌었구나, 예전과 다르게 생각하게 됐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일은 그보다 훨씬 뒤에 우연히 찾아오는 경우가 많더라.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 책이 살아있는 유기체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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