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장강명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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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컨셉을 좋아합니다. 심심은 한데 호흡이 긴 책을 읽자니 부담스러울 때, 그렇다고 생활밀착형 에세이는 그닥 안 땡기고 그냥저냥 마음을 딴 데 보내서 쉬다 오고 싶을 때 이렇게 여러 명의 작가에게 같은 소재를 나눠주어 백인백색의 원고를 받아 묶은 단편집이 신나게(내용이 신날 수 없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서도,) 가볍게(읽으려는 마음을 갖기가) 읽기에 정말 딱이지 않나 싶어요. 그 기획이 흔하지 않은 컨셉을 갖고 있으면 더 재밌죠. 잘 차린 밥상... 정확히는 반찬가짓 수 많은 밥상 받은 기분 아니겠어요.


이런 기획으로 묶인 책들 중에 지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다행히, 졸업>이군요. 사실 이 제목도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서 어쨌든 졸업이었나, 아무튼 졸업이었나(아무튼 시리즈를 너무 열심히 읽다보니...) 우야든둥 졸업이었나...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았지만요. 여하간 이 책도 장강명 작가의 단편으로 시작합니다. 오프닝 전문 작가셨던 걸까요... 


책 팟캐스트를 주구장창 찾아 듣다보니 <책, 이게 뭐라고>도 즐겨 듣는데 방송에서 조금씩 얻어 만들어진(내 맘대로 머릿속에서 만든) 장강명 작가의 이미지는 웬지 좀 예민하고 시니컬한 패턴을 띠고 있었는데, 이 단편에서 좀, 확실히, 그런 면모를 느끼고야 말았습니다. 르포 작가인 주인공은 장 작가님을(갑자기 작가'님' ...) 많-이 닮은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작가가 어떤 인물을 빚을 땐, 물론 주인공급 인물 이야기지만, 자신과 부분 닮게 만들던가 최소한 어떤 점에서는 본인이 닮고 싶은 면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키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그저 화법과, 말을 다루는 태도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이 전부이지만 그 부분으로 전체를 아주 거칠게 조망해 보겠노라 거만을 떤다면, 인간의 성격도 어느 점에서는 프랙탈적이기도 하지 않느냐고 억지를 부리면서, 이 주인공은 아무래도 장 작가님을 떠올리게 해!!!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님 죄송해요. ㅎㅎ 사실 저는 작가님을 잘 몰라요. 당연하죠, 작가님이 어떤 작품을 쓰시는지 알 것 같다고 떠벌릴 만큼 작품을 많이 읽어본 것도 아니고요. <알골>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내 경험으로는, 첫 만남에서 팬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 실제로 내 책을 읽어본 이는 다섯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 -18쪽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러니까 저도 팬이라고 떠벌려 보겠습니다. 팬이라고 자처하는 치들의 특성에 딱 부합하니까요. 

저는, 주인공의 치밀하고 (일견) 계산적인... 부정적인 뉘앙스는 빼고 말입니다만, 여하간 그런 면모에서 작가님을 되게 많이 떠올렸어요. 선장하고 나누는 대화보다, 알골들과 나누는 대화는 진짜 작가님 육성으로 귀에 들리더라고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팬 어쩌고 하는 데서는 이거 경험담이구나 하고 웃었죠. 스포일러가 되니까 차마 언급 못 하지만 제일 마지막 문장이 진짜 작가님 톤이더라고요. 전혀 모르는 분이지만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닌 분이 쓰는 이야기는, 정말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이승우 작가님이나 김금희 작가님이 쓴 소설은 그냥 소설로 읽히는데, 작가님이 쓴 이야기는 확실히 다르게 읽혀요. 김중혁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긴 했는데 작가님 캐릭터가 훨씬 더 작가를 많이 닮은 편입니다. 친근했어요. 재미있었고요. 여긴 너무 멀어서 배송비가 책값보다 더 나가서 조만간에 작품을 다 읽어보겠다 등의 말은 못하겠지만, 한국 돌아가면 언제고 꼭 읽어봐야겠다 싶네요. 이 말의 빈말 지분은 스스로도 계산이 잘 안 되네요.


아무튼, 

서론만 있는 이상한 글이지만 나름 중요했던 포인트만 더하고 맺자면 이거예요.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타이틀작인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였고, 재일 울림이 컸던 것은 <웨이큰>이었습니다. 와, 진짜 명작이었어요. 음... 설마 이걸 보실리는 없다! 확신하며 아무말 대잔치를 지껄였는데, 왠지 민망해서 덧붙이자면 장작가님, 너무 서운해 말아주세요. 틀림없이 서운해 하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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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좋아해서, 많이 갖고 있기도 하고 도서관에서도 종종 빌려오기도 한다. 어떤 책들은 그냥 휘리릭 넘겨보고 어떤 책들은 좀 더 꼼꼼히 훑어보고, 또 어떤 책은 온라인 서점 검색창을 열어 다른 사람들의 리뷰도 찾아 읽어본다. 마음에 들어온 책일수록 남들의 느낌도 궁금해지기 마련이라... 남들도 나처럼 생각하는지, 아예 다르게 생각하는지. 



혹시나하고 찾아봤는데 번역본이 나와 있었네...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번역본이기는 한 게 작가는 원래 프랑스어로 낸 책이다. 그런 까닭에 원서를 얼마나 잘 살린 번역인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어쨌거나, 여기서 찾아보든 저기서 찾아보든 이 책은 칭찬일색. 


삶이 어떤 형태로 흘러가는지, 혹은 흘러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나긋나긋하게 풀어 그려낸 책이다. 어느 정도로 안온한 어조인가하면,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뭐야... (시간이 정말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야기다) 하면서 책장을 넘길지 몰라도 넘긴 페이지가 많아질수록 코가 맹맹해질 수 있다. 뭐야, 하는 기분으로 시작한 어떤 감정이 천천히 스미는데, 갈수록 찡해져서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달까.

이야기는 이렇다. 

배저 부인은 아주 소박한 사람(?)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산책이라고 하긴 좀 벅차고 본격적으로 산행이라기에도 어딘가 미묘한 걷기가 취미인 듯하다. 정상까지 앞뒤 안보고 마구 올라가는 게 아니라, 주변도 찬찬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자연물이 있으면 줍기도 하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잠시 잡담도 나누면서 급할 것 없이 천-천-히- 올라간다. 배저 부인의 일요일은 대체로 거의 항상 그랬다.

고양이 룰루를 만나기 전까지는.


배저 부인은 수풀에 숨어 흘끔거리며 엿보는 룰루에게 원하면 같이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렇지만 룰루는 자신의 신체조건(산행에는 어째 부족한 듯한)에 겁을 내며 망설인다. 여기서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등장한다. 

배저 부인은, 룰루의 망설임을 이해한다. 누구든 자기 자신을 믿고 도전할 용기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부인은 룰루가 자기 발로 따라나설 때까지 다그치지 않는다. 얼마나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인지! 


부인은 룰루에게 산길을 걸을 때 썩 유용한 지식들도 가르쳐 준다. 호기심이 넘쳐나는 룰루의 질문에 대답도 충실히 해 준다. 그렇게 정상에 오른 룰루는 '표현할 수 없지만, 가슴에 꽉 차오른 그 어떤 감정' 때문에 아무 말 않고 거기에서 보이는 세상을 충분히 오래 바라본다. 이 장면도 정말 좋다. 내 마음에 들어 온 기분을 충분히 더듬어 헤아려 보는 기회가, 실제로는 얼마나 많이 박탈돼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말이지... 





어쨌거나 배저 부인에게 배우고, 많이 따라다니면서 꽤 산을 잘 타게 된 룰루는 이제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 산행이 거뜬하지 못한 부인을 돕는다. 그렇게 함께 산을 오른다. 그러다 결국 노쇠한 부인은 이제 룰루더러 혼자 산에 오르라고 권한다. 다녀와서 무엇을 보고 왔는지 이야기해 달라며 룰루를 보낸다. 

혼자 걷는 산길은 배저 부인과 걸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룰루는 그 고독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성장한 룰루는 어느 새 자기보다 더 어리고, 미숙한 다른 존재와 함께 산길을 걷고, '뭔가'를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인생에 대해 이렇게 할 말 다 하면서 시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단 말야? 이런 압축능력은, 기찬 비유는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돼??, 가 책을 덮고 난 뒤의 솔직한 감상... 

인생이 뭐 엄청 거창한 게 아니야. 위대하고 오래 추앙받는 일을 해야 되는 게 아니야(어릴수록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그냥 내가 경험으로 배운 것이든, 시간이 흘러가며 가르쳐 준 것이든, 사소한 것이라도 잊혀지기엔 아까운 삶의 지혜를 아래세대의 누군가에게 잘 전달해서 이어지도록만 해도 그걸로도 괜찮은 거겠다... 그런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거다. 이런 책을 만나면. 아주 잠깐 생각하고 잊어버릴지언정, 마음속에서 한 번 긍정한 삶의 태도는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는 법이니까. 


한참 이 여운을 굴리고 있다보니 문득 단속사회가 떠오르는 거다.



특히 프롤로그에서 말하는 이 부분을, 이 그림책이 그대로 그려냈구나 생각했다.


삶의 실제적 경험으로부터 조언과 충고가 온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나와는 다른 경험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필요하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 사회는 망한 사회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 사회가 '사회'일 수 있는 것은 연속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연속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경험과 지혜가 끊임없이 갱신되면서 후대들에게 전승될 수 있음을 뜻한다.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고 또 그 환경을 바꾸귀 위해 사람은 한편으로는 선대의 경험과 지혜를 필요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새롭게 바꾸어내야 한다. 

- 20~21쪽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경청해야 하고, 좀 더 다듬은 말을 해야 한다. 내 살아온 인생을 주구장창 말로 전시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곧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므로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구걸 내지는 하소연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말이 나눔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심과 걱정이 타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사적인 투덜거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겪고 있는 무제를 자신만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 아니면 적어도 사회적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내 이야기에 누군가 다른 이가 맞장구를 치며, 자신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을 통해 사적인 관심과 걱정은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사적인 투덜거림이나 징징거림을 그 자체로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다만 그 자체가 독백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말 걸기이며 자시느이 경험을 나누기 위한 초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다.

이야기는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며 듣는 사람이 그 이야기에 "참여"할 때에만 계속 이어지고 풍부해질 수 있다. 

- 186~187쪽


젊은 사람들이 중장년, 노인들의 말을 대체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그게 대부분 공감하며 들어주기를 강요하는(문제는 그게 불가능한 전제라는 건데!!!) 징징거림, 푸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개별성에서 보편적 담론을 끌어냈던 어른들은, 늘 존경받았다. 


개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것이다. '나'라는 개인은 다른 누구하고도 다른 자기만의 독특함을 지닌다. 이 독특함은 다른 어떤 특성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것으로 강제로 환원하려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엄기호'라는 사람은 경상도 사람이고,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국제연대활동을 위해 외국에서 몇해간 돌아다녔고,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이 모든 것은 '나'라고 가리켜지는 한 사람의 특징을 어떤 특정한 집단 혹은 범주로 환원하는 방식의 설명이다. 경상도, 90년대, 국제연대, 강사 등이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나'가 먼저 나온 뒤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안에 수많은 '우리'가 있는 셈이다.


그렇더라고 나에게는 최종적으로 우리라는 그 어떤 '묶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만의 독특한 그 무엇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이 없어지면 나는 그저 묶음의 묶음에 지나지 않는다.

- 109~110쪽


즉 집단정체성을 제외하고도 순수한 나,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내가 남아 있어야 나는 타인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고, 후대에 개인의 문화를 전승할 수 있는 것이다. 오버하자면 개인은 그 사람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개인문화의 아이콘이어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와서, 배저 부인은 그저 일요일마다 산봉우리에 오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다. 그렇지만, 산책과 산행과 여가가 오묘하게 뒤섞인 그 걷기에 더불어 쌓인 경험과 지식이 지혜를 생성했고,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곁이 생겨나고 그 걷기의 문화가 쭈욱 누군가에게로 이어진다는 것은, 아 그게 그렇구나 그런가보지, 하고 잊어버려도 될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일의 중요성이, 그게 결국 사회에 퍼트릴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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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굳이 아이 인생설계까지 잘 해주려고 나서서 극성을 떨 것이 하나도 없다. 엄마들의 원대한 자녀미래 설계가 실제로 성공적이었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으니까. 내게서 사회적 정체성을 지워냈을 때에도 여전히 나를 나로써 남아있게 하는 그 무엇이 없는 것이 더 슬픈 일이고, 빨리 바로잡아야 하는 일인 이유를, 참 설득력있게 잘 쓰셨다. 


아이의 현재를 빼앗지 말 것. 나는 여기다 잘 먹을 권리, 충분히 깊이, 넉넉히 잘 권리를 더해주고 싶다. 잘 자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기회에. 


뭐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오전 10시가 다 되어가는데 우리 중딩이는 아침 먹고 또 뻗쳐 주무시고 계신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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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 눈뜨는 시간
라문숙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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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지 않아도 그의 단정한 살림을 짐작할 수 있는 깔끔한 문장. 질척거리지 않지만 들여다보고싶게 하는 일상의 묘사. 갖은 부정적인 묘사는 다 들러붙는 ‘우리‘ 집단에도 이렇게 산뜻한 글을 쓰고 감정을 차분히 갈무리하는 분이 있다는 것이, 어쩐지 나까지 으쓱해지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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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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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하도 이야기하니까 외려 더 손이 안 갔던 책.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책. 주인공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바라보게 하면서, 그들의 가장 깊은 마음 가까이에 앉혀주는 문장들. 사소하게는 말줄임표에서 크게는 한 사람의 행동이 품을 수 있는 주름의 폭을 헤아려 보게 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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