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글을 잘 쓰고 말도 잘 하는 사람조차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이런 반가움이 마음 바닥을 들쑤셔 친근감을 찾아 일으켜 세운다. 이 책에서도 저자가 한 번 인용했듯이, C.S.Lewis의 말을 빌자면, 이런 것이다.


 "Friendship... is born at the moment when one man says to another, 'What! You too? I thought I was the only one.'"


그런거라면 세상엔 아직도 내가 만나지 못한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책도 셀 수 없이 많다는 거나 마찬가지지. 아직 국내엔 앤 보걸의 책이 한 권도 번역돼 나오지 않은 걸 확인했다. 이럴수가... 가벼운 기분전환용 읽기로 책과 책 읽는 일과 책 읽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만큼 적절한 것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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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도 서점 이야기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 지음, 류순미 옮김 / 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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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름이라는건 호오의 기준이건 질적인 판단의 기준이건 뭐든 갈래로 나누는 기준으로 써 본 말입니다.


요즘 영어공부 겸 (갈수록 언어감이 떨어지는 건 공부밖에 답이 없는...) 북클럽에서 최근 읽기보고때 이야기할 거리를 늘려갈 겸 책 관련 팟캐스트를 발굴해서 듣고 있는데 이 방송 진행방식이 좀 재미있습니다. 진행자가 한 명의 게스트를 초청해요. 그리고 초대손님에게 최애책 3권, 싫어죽겠는 책 1권, 그리고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게 하죠. 그리고 드디어 진행자가 짠! 하고 저는 당신의 다음 읽을거리로 이런 책들을 추천할게요, 하고 3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간략한 소개와 왜 그 책을 추천하고 싶은지 이유를 덧붙여서요. 방송 포맷은 일전에 싫은 소리를 잔뜩 썼던 일본의 어떤 서점원이 쓴 책에서 본인이 했던 책 추천하는 과정과 상당히 닮아있지만,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일단 초대손님들이 '저자'의 신분을 갖고 있던가 꽤나 책벌레라던가 이런 입장의 차이가 좀 있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듣는 재미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쨌건 진행자가 추천을 하면 추천받은 게스트 입장에서 분명히 타이틀 하나 정도는 기억하지 않을 리 없다는 믿음이랄지 확신이랄지 그런 걸 갖고 있는 듯해요. 리스닝 연습은... 힘들지만 해야하는 거고요...


현재까지 한 200여 회차가 올라와 있고 끽해야 다섯 개 정도의 분량밖에 못 들었지만 놀라웠던 건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이야기할 때의 톤이, 초대손님이 누구건 간에 몹시 비슷해진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당연한 건데도요. 좋아하는 감정을 숨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표정도 제스추어도 아무것도 없이 목소리만 갖고도 이 사람이 어떤 표정과 액션을 곁들여 말하고 있는지가 너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더라고요. 일면식도 없는 건 물론이고 이름도 처음 듣는 외국인인데도!!!


여하간, 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쓸 때 참 어렵습니다. 내가 이걸 왜 좋다고 생각하는지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설득력있게 전하고 싶은데 그때마다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고. 그런데 이 마음을 똑같이 본인 책에서 표현한 글 쓰는 이를 발견했어요. 아주 우연하게. 그렇게 그 방송 진행자를 알게 됐습니다. 이만치 독서경험이 풍부하고 책도 몇 권을 쓴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지구상 어딘가에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책 읽는 큰 기쁨 중 하나 아니겠어요. 


아무튼, 말이 길어졌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왜 좋은지 풀어 말하는 것'은 그토록 어렵지만, 별로 안 좋은 것이 왜 안 좋은지를 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조금 편합니다. 그리고 죄송하게도 그 예를 들어 언급할 책을, 좋아하셨던 분들께는 왠지 죄송한 마음이지만 사람이라는 게 원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다 다르니까요. 이유도 같을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그냥 가볍게 보고 넘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당연하죠. 제 경우에도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삶에서 닥쳐오는 어떤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어떤 태도로 견뎌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라도 배우고 싶은 이유에서입니다. 많은 문학이 인간 삶의 여러 측면들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살아간다는 건, 누구나 알듯이 그다지 녹록하지가 못합니다. 꼬일대로 꼬여버린 일들이 쉽게 풀리는 일 따윈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아요. 뜨개실 엉킨 것을 혹시 풀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깊이 공감하시겠지만 그 별것도 아닌 실타래 하나가 꼬여도 이건 사람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가끔은 그냥 가위로 다 잘라버리고 싶어져요. 실의 요정이 나타나서 엉망진창이 된 실타래가 절로 스르륵 풀어져 돌돌 감기도록 지팡이를 휘둘러주는 일 따윈 절대 일어나지 않고요. 


정말 놀랍게도 갈등을 다루는데 미숙한 작가들을 생각외로 자주 만나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 마음 편하게 곱게 자랐어도 속을 할퀴어놓는 감정의 격랑이든 타인과의 갈등이든, 그런 풍랑 한번쯤 겪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왠지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온실 속 화초 같은 분들을 종종 봅니다. 힘들 때마다 이렇게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다가 기적의 문을 열어주다니, 작위적인 설정도 정도가 있다고요. 웹툰도 가끔 보는데 거기서도 갈등을 몰고 올 것 같은 인물이 등장했다가 몹시 어이없게도 어떤 영웅적인 주변인물의 활약으로 그냥 무대 뒤로 사라지는 설정도 꽤 봤어요. 

아... 좀... 허탈해요. 싸움 구경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자신의 삶에서 그러듯 평범미를 자랑하는 주인공이 평범하지 않은 갈등 구조 속에서 내적 평안이든 외적 평화든, 뭐가 됐든 그 모든 것이 다 차분히 정리된 정적인 상태에 어떻게 이르는지를 보고 싶고 책장을 넘기며 응원하고 싶어하는 게 일반적인 독자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첫장부터 막장에 이르기까지 그냥 편편한 스토리가 이어지면, 좀 안타까운 건 사실이죠. 내 인생은 이렇게 뭐가 맞춘 듯 딱 맞아 떨어지지도 않고 어디서 귀인이 갑툭튀할 팔자도 아닌 게 분명한데. 심지어 아니꼬운 기분마저 올라와요. 물론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는 게 좋아서, 남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좋은 착한 사람들도 세상엔 분명히 많아요. 단지 제가 그 착한 사람이 아닐 뿐이고 내 인생의 귀중한 몇 시간을 털어넣은 만큼 여기서 뭔가 하나 건져가고 싶은 기브앤테이크 정신이 투철한 게 문제일 뿐이지... 쓰다보니 내가 이렇게 전투적으로 책에서 뭔가를 털어가려고 하는 사람이었던건가 갑자기 회의가 들기도 하고. 

그래도 이왕이면 남의 인생 행복한 것 보는 게 좋기는 합니다. 다만, 그저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뭔가 나와 좀 다른 부류의 사람 같으면 사알짝 힘이 빠지는 것도 부정하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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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철학하는 아이
제나 모어 론 지음, 강도은 옮김 / 한권의책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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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 생활에의 연관성, 그런 것을 기억해내지는 못하지만 철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철학이 뭔지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지만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는 행위 자체에 실린 책임의 무게가 상식 외로 무겁기 때문에 뭘 안다고 말하는 사실 자체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지긴 합니다. 아무튼, 철학이라는 그 말이 품고 있는 온도가 그저 가까이 다가앉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해야겠어요. 옮긴이의 말 첫머리에 '철학한다는 것은 자기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질문과 탐구 과정들'에 다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걸 읽고 아하, 했어요. 그렇구나. 내가 왜 내 인생, 시간, 하루하루의 의미를 어딘가에 실으려 애썼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늘 철학 언저리를 기웃댔구나. 나름의 이유를 찾았어도, 그게 정말 맞는지 - 맞고 틀리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구나. 어떤 책이건, 책을 읽다보면 일순간 눈 앞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낄때가 종종 있죠. 이런 방식으로.


이 책은 왜 아이에게 도구로서의 철학이 필요한지,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철학적인 사고를 훈련시킬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이득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설득력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을 '독후활동'의 일부로 간주해서 강요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채 아이의 입을 열려고 하면 역효과만 날 거예요. 평소 아이들의 일없는 이야기도 경청해 주고, 어른과 아이가 상호존중하는 태도로 대화하는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가정이라면 꼭 적용해 보시라 권하고 싶어집니다. 


저자는 아이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할 때가 바로 철학적인 탐구를 견인할 수 있는 때라고 설명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어른들은 곧잘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질문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볍게 여기곤 합니다. 그래서 '아직 몰라도 돼', '별 게 다 궁금하다'등의 무시하는 반응을 보이죠.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29쪽)에서 읽히듯 그건 그냥 인간으로서의 자연적 본능 중 하나입니다. 즉 철학하는 자아는 인간 본능 중 하나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철학적인 자아는 미지의 낯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아를 말한다.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고 행하는지를 의식하는 능력은 철학하는 자아의 근본을 이룬다. 이 능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의미를 탐색하고 또 다른 물음을 찾아가도록 이끌어간다. -30쪽


자신감을 갖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해간다는 것은,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의문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을 뜻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철학을 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31~32쪽


사고력의 자립은, 경제적 독립만큼이나 중요하지만 그닥 교육적인 면에서 강조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사고력 수학에서 요구하는 범위의 사고능력보다는, 훨씬 더 깊고 폭넓은 의미에서의 사고 능력 - 즉 정답을 찾아가는 능력보다 가능성의 범주를 타진하고 스스로 이성을 움직여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쌓아나갈 때 발달되는 그런 류의 사고력을 동반자로 삼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아이들과의 철학적인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중요한 의문들을 생각해보도록 이끌어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을 때 성장한다. 아이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자기 힘으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때 철학하는 경험을 통해 능동적으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2쪽

말처럼,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확인하지 않고서야 어디로 발을 옮길지를 무슨 수로 알겠나요. 솟아오르는 질문들이 나를 가득 채울 때, 그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나를 추동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을 성실하게 받아주고, 적절한 피드백으로 생각의 항해를 떠나게끔 격려하는 일이 되겠지요. 

어려서부터 세상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고 부모나 믿을 만한 어른과 함께 토론한다면, 아이들은 차근차근 스스로 탐구하는 힘을 갖게 된다. 아이들은 해답보다는 질문에서, 고정되고 정해진 것보다 불확실함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발달하면, 자라면서 만나게 될 복잡한 세상에서도 안정적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기의 위치를 아는 일이다. 철학하는 자아를 길러주면, 아이 스스로 세상을 이해할 때 필요한 논증하는 능력과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233~234쪽


어차피 풍랑이 몰아치는 한가운데로 들어온 마당입니다. 더 이상 기능도 못 할 조타기를 붙들기보다 수영능력을 점검할 때이니까요,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삶에 끌어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인 듯해요. 인간을 인간이게도 하는 비범한 능력, 사고하고 성찰하는 법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좋은 책들을 쓰시는 분들께 응원과 더불어 감사의 마음을 함께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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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교
EBS 미래학교 제작진 지음 / 그린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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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한다>

변했다, 변할 것이다도 아닌 변한다는 말 속에는 진행형의 풍랑을 온 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우리의 불안과 혼란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다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변하는 것들이 대다수이고, 심지어 그 변화의 바람이 우리를 어디까지 불어젖힐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불안한 예측만 할 뿐이죠. 변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을 거고요. 변해야만 하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학교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자라나는 세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가정 다음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보다 평가의 기준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게 사실이죠. 평가의 기준을 따지기에 앞서 학교의 존립 자체가 부분적으로나마 흔들리고 있는 사실부터 직시해야 하는 때인데... 


학교란 과연 무엇일까요. 학교는 어떤 곳으로 존재해 왔으며, 현재에는 어떻고, 앞으로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목고가 언제 없어지고, 학종이 어떻고 저떻고, 중요하지만, 그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주름살 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요. 학교는 뭐 하는 곳이고, 학교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또 뭐고, 이것들이 현재 정의되는 방식과 앞으로의 방식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바로 그 고민과 탐구의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학교란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고민의 여정이죠.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이것도 그저 하나의 '길'로 봐야 한다는 점 정도 아닐까요. 고민을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은 답은 많아질 겁니다. 


서문에서 이런 물음이 등장하면서 읽는 사람의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토다이라는 일본의 AI는 2013년부터 대입시험에 응시해 왔다고 해요. 첫해 연구진의 고민은 이런 거였다네요. '인간이 쉽게 푸는 것을 왜 AI는 풀지 못할까?' 

그러다 2016년에 이르면 이들의 고민은 좀 더 어두워집니다. '인간이 AI와 경쟁할 수 있을까?'

토다이가 틀린 추론류의 문제를, 일본 중학생의 1/3 가량이 마찬가지로 맞추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 질문은 이런 고뇌에 가 닿습니다. 

인간을 AI처럼 교육시키는 현상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건 아닐까? 이해와 해석, 추론 능력까지 상실한 인간이 AI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방법은 있을까?

사실이건 아니건 이런 고민이 대두됐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제 손으로 제가 들어갈 구덩이를 파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거잖아요. 인공지능보다 월등한 인간의 어떤 지적인 능력을 개발하기보다 묻어버리고, 절대 쫓아갈 수 없는 기계적 능력을 배양하는 데 어린 세대들의 소중한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현실에 저는 전율을 느낍니다. 

최근에 러시아에서 온 어떤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무슨 이야기 끝에 나온 화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죠. 본인이 학생 시절 역사라면 아주 치를 떠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시험 때문에 외워야 했던 역사적 사건들의 핵심 내용과 발생 시기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회상하더군요. 그런데 최근 역사에 아주 깊은 흥미를 느껴서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고 물으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을 만들어 낸, 어찌보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일들의 바닥에 깔려있는 인간의 마음과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들이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관점을 갖고 역사를 다시 접하니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었나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런 호기심의 싹이 좀 더 어릴 때 자랄 수 있도록,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하는 마음을 스스로 키우도록 배려해 주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왜 모두가 다 수학을 잘 해야 하고 영어 도사가 되어야 하나요. 아니 막말로 그렇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쳐 놔도 입 한 번 열기를 어려워하는 것도 참 문제고. 


아무튼,

원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추린 것이라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진 않습니다. 그래도 꼭 알려야 하겠다 싶은 내용을 핵심적으로 추려서 꾸린 책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이건 좀 중요하구나 생각했던 부분만 조금 간추려 볼게요.



영국 UCL 로즈 러킨 교수는 미래의 AI는 지능지수가 500-100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미래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판단할 때의 기준을 학교 성적 잘 받아오는 아이 vs. 못 받아오는 아이로 삼고 있었다면 반성과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죠. 그러니까 이제 정말 중요한 능력은 시험 잘 보는 게 아니라 학습능력 그 자체인 겁니다. 무엇엔가 관심을 갖고 알려고 덤벼들고, 실패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스스로 지적 실험을 거듭하며 그 과정에서 논리력을 훈련할 수 있는 능력. 어떤가요,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아이에게 이런 환경이 주어져 있을까요? 


책에 따르면 싱가폴에서는 SLS- Student Learning Space, KF- Knowledge Forum 이라는 두 종류의 디지털 포럼이 활성화돼 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과목의 학습자료가 제공되며, 뿐만 아니라 교사의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라고 하고요. 

인도는 Tinkering Lab이라는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언제든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르웨이는 태블릿을 이용한 읽기와 쓰기 교육이 현재로서 이루어지고 있고요. AI교사가 바른 읽기를 지도합니다. 짜증과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반복 학습을 시킬 수 있으니 이런 부분에서 AI를 도입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습니다. 


시대의 부름도 그러하거니와 학생 중심의 교육이 실행되려면 디지털 기기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학생 개개인의 학습 진도와 속도, 또 흥미와 이해도, 원하는 학문적 폭과 넓이를 모두 충족시키는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교육의 개인화가 불가피하니까요. 이러한 학습 개인화를 실제 교육 현장에 투입하려면 어마어마한 자원이 투입돼야 함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불신과 투쟁과 기타등등의 불편한 감정적 소모가 몹시 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우려로는 학습이 이렇게 디지털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시력손실도 어마무시하지 않을까... 짐작만 해 보고요.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라는 아이들이 적어도 40대는 되어야 건강 측면에서의 유의미한 데이터가 축적될 것 같아 이 부분은 정말 불안하기만 하네요. 


미래학교를 설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커리큘럼을 짜는 일이었다고 해요. 많은 논의 끝에 지식 전달 - 실생활과의 연계성 - 자발적 설계/탐구 과정을 아우르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군요. PBL project based learning이 필요한 이유겠지요. 실제로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미래역량에 해당하는 창의성 - 협업능력 - 의사소통능력을 놀라울 정도로 발달시킵니다. 더하여 디지털 기반 교육과정에서는 현 교육환경에서 사실상 쉽지 않은 교사와 학생간 소통채널이 아주 활성화되었으며, 학생간 소통도 원활했다고도 하고요. 또한 개인 맞춤화라는 말이 무색치 않게 각 개인의 진도와 관심사에 따라 교과서 내용을 자유롭게 추가 및 편집하게끔 유연하게 구성했다고 합니다. 클라우드를 적절히 할당해 스스로 자신만의 교과서를 만들게 했다고 하니, 자료를 모으고 적절하게 편집하는 능력 또한 발달했겠지요. 


후반으로 가면 학교의 존재와 교사의 역량에 대한 고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러니 이 지점에서 교사들도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교사의 존재의미를 리포지셔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 역량에 대한 중요성은 강조되는데, '그걸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 헌직 교사들도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들 역시 과목별로 전문성을 키운 사람들이잖아요. 교과목 내에서는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학습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통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창의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건 교사로서도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과목별로 '이 과목은 소통이 중요하다' '또 다른 과목은 창의성이 중요하다'라는 식의 구분법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게 사실이죠. 


디지털 네이티브는 대부분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 교과 내용을 전달하는 수업에 대해서 '얼마든지 온라인 강의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학교에 대해 '다닐 필요를 모르겠다' '수업 시간에 모르는 게 없어서 질문이 없다'라고 평가했던 디지털 네이티브가 '미래학교는 다르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래학교의 교사들은 지식 전달이 아닌 미래 역량을 키우는 수업 디자인과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170-171쪽


선생님들이 항상 배우는 즐거움, 아는 즐거움이라는 말씀을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배우는 즐거움보다 '해보는 즐거움'이 더 큰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왜 해보는 즐거움을 경험하면 안 되죠?

-181쪽


수업을 듣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건 학교에서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활동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코딩을 정말 잘하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건 신청 안 했어요. 이걸 어떻게 내 실생활과 연결하고, 변화시키느냐 그걸 생각해보고 싶어서요. 미래학교에서도 실생활과의 연계를 모색할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182쪽


학교의 변화 속도는 더디고, 한동안 계속 더딜 겁니다. 가정에서 - 아웃소싱할 수 없는 교육이라는 게 있는 법이예요 - 아이들에게 조금씩 알려줘야 합니다. 새 시대를 향해 열릴 문 손잡이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을요.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을 보면 다 아는 거네, 별 것도 아닌 걸 참 대단한 것처럼 포장했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뻔하고 쉬운 방법일수록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마치 우리 모두가 건강한 다이어트의 정석을 알고 있어도 그 방식으로 성공하는 다이어터는 극히 소수인 것처럼요. 그러니 시시하고 별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실천이라도 해 볼 일입니다. 원래 큰 변화는 일상의 작은 습관으로부터 비롯하기도 하고요. 


조금이지만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미리 미래를 경험한 거잖아요. 제가 성인이 될 무렵에는 '세상이 이렇게 바뀔 거고, 이런 게 가능해질 거다'라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돼요. 예전에는 '중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 버텨낸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말이죠. 미래가 그렇게 머지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지금 공부하는 걸 조금씩 융합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겠다는 게 항상 머릿속에 있죠.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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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을 탐구하려고 하는 사람의 위치는 늘 바깥쪽이다. 겪고자 하는 사람은 안에서 함께 파도 맞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삶은 밖에서 관찰하고 연구하기보다, 살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삶은 그것을 기꺼이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품을 내어준다. 그렇게 파고들어 치열하게 버텨나간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삶의 일부분밖에 알 수가 없다. 죽는 날까지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인생은 이렇고 저렇고 말이 길어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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