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새롭게 알면 통일이 보인다 - 탈북민, 한국 교회에 심어준 하나님의 밀알
김상수 지음 / 두란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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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당연하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위해 구원을 베풀고 계신다. 223쪽


 

오늘도 나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예배를 드리는데도 마음이 열리지 않았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구원을 당연히 받고 탐욕에 눈을 돌린 이유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탐욕의 실체라는 것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한번 빠져버리면 원상복구가 쉽지 않다. 이렇게 나약하고 나약한 나에게 북한 선교에 관한 책을 읽게 하신 이유는 왜일까? 한 권의 신앙도서를 만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왜 오늘, 이 책이 나에게 다가왔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복음은 결코 이념이 될 수 없다. 복음은 이념을 뛰어넘는 가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땅의 문제를 결코 부정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복음은 그것을 초월하는 개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67쪽

 

나의 믿음이 얼마나 좁고 협착한지를 알려주는 문장이었다. 복음을 스스로 이념화 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인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인간 세상의 가치를 더 우선시하며 구할 때가 많’았다. 현재 내가 불편한 것들,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 고민들, 내 입맛에 맞는 상황과 장소만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나에게 통일은 먼 일이라고, 북한 사역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가끔 중보기도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동참하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탈북민들이 남한에 온 이유가 ‘사실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온 것이고, 통일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이 오게 하신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코 받을 자격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름 받았는데, 또 다른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냉대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 얼마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21쪽

 

과연 나의 일이 아닐까? 북한을 아프리카보다 더 모르고, 탈북민들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그저 부담되는 존재, 먼 훗날에 생각하고 싶은 문제로 여겼던 게 사실이다. 저자는 그들을 돌보아야 할 이유가 ‘우리도 조선에 온 외국인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용납하는 사랑을 베풀어 주지 않았더라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탈북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했으며, 바울의 표현처럼 우리는 모두 ‘복음에 빚진 자’일 뿐이라고 했다.

 

북한에 대해 좀 더 알고, 탈북민의 상황을 공감하고 그들을 위해 인내를 가진 뒤에 통일을 꿈꾸는 순서대로 저자는 ‘먼저 온 통일’의 탈북민들의 통해 하나님의 의의를 말하고 있다. 그 과정을 모두 읽다 보면 내가 얼마나 나만의 작은 나라에 살고 있었는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쓰라고 주신 은혜와 자잘한 능력들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살고 있음을 철저히 깨달아갔다. 그렇게 탈북민들의 복음화와 정착을 위해 애쓰는 공동체를 보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함께 기도하고 헌신해야 ‘우리’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을 깨닫자 왜 그동안 통일, 북한사역, 탈북민이 멀게만 느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부적으로 보면 참된 공동체 영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죄와 허물을 마음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211쪽

 

믿음을 결코 혼자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도움을 받거나, 할 수만 있다면 부탁이라고 해야 한다. 즉 내가 회복되어야 누군가에게 함께 해보자고 권유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모일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개척교회를 위해 헌신한다는 우월감을 품은 채 지금껏 개인 신앙을 지키기에 바빴다. 그러다보니 나의 믿음이 협소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개인 경건도 부족하고, 하나님과의 만남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책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은 ‘참된 공동체’의 회복과 필요성을 염두에 두신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반도에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으로 통일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영적 패배주의 때문일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한반도를 향한 하나님 나라의 계획과 비전을 바로 보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적어도 개인 복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공동체를 거부할 때, 온갖 방해하는 것들에 상처만 입고 있을 때, 하나님 나라의 계획과 비전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려운 문제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분단이라는 어려움과 통일에 대한 걱정은 하나님의 시선에서 접근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음을 느낀다. 그때까지 인내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가만히 그런 일들이 나에게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내가 처해 있는 신앙 환경이 복잡다단하게 다가오지만 결국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과 동일함을 부정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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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려나 서점 (여름 스페셜 에디션)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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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저자에 대한 입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한권으로 저자에게 완전 반하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상상할 수 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행복해질만한 책이다. 이런 세상이 있다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라면 함께 살아가고픈 세상을 저자는 맘껏 그려놓았다.

 

특수 잉크로 쓴 ‘달빛 아래에서만 볼 수 있는 책’ 이라던가, 특수한 캡슐 안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세계 일주를 하는 ‘세계 일주 독서 여행’과 ‘무덤 속 책장’, ‘수중 도서관’이 특히나 인상 깊었다. 특수 잉크로 쓴 책은 달이 떠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햇볕이나 전등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고, 초승달이 뜬 밤에는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한정적이다. 보름달이 떴을 때 온전히 읽을 수 있다. 특수한 캡슐에 들어가 온갖 풍경을 구경하며 높은 나무 아래, 바다 속, 계속, 산꼭대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제대로 현장 독서를 할 수 있는 여행이다. 여행이 끝난 후 여행이 어떠셨냐고 묻는 직원의 질문에 ‘아! 책 읽느라 바깥 구경은 전혀 못했네요!’라는 답변에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세계 일주 보다 ‘독서’에 더 집중한 애독자의 모습에 공감이 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덤 속 책장’에서는 1년에 한 번 그 사람의 무덤에 찾아가야만 무덤의 문이 열린다. 책장으로 된 내부는 ‘그 사람이 자주 읽은 책, 영향을 받은 책, 그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언젠간 꼭 읽기를 바랐던 책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무덤을 방문한 사람은 한 권의 책을 꺼내가고 대신 ‘천국에서 그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그 해의 추천도서’를 한 권 꽂아 놓는다. 그야말로 책으로 하는 애도인데, 마음이 찡하면서도 그 사람의 흔적을 다른 방식으로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새로웠다. ‘수중 도서관’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어느 부자가 ‘움푹 팬 땅에 어마어마하게 높은 도서관’을 만들어 온갖 책을 채우고 사다리를 치워버린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에 그곳에 물이 차올라 수위가 높아지자 배를 타야만 그 도서관을 갈 수 있다. 물에 잠긴 책들은 이제 일을 수 없고, 눈높이에 맞는 책은 읽을 수 있고, 더 높이 있는 책들은 아직 읽을 수 없다. 그래서 그 도서관의 가장 큰 궁금증은 ‘맨 위 책장에 무슨 책을 두었을까?’다. 아틀란티스처럼 어딘가 존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상적인 도서관이었다.

 

내가 결혼을 해서인지 ‘서점 결혼식’이 가장 부러웠다. 정말 이런 결혼식을 했어야 했는데 하며 안타까워 내 무릎을 칠 정도였다. ‘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서점에서 올리는 결혼식’은 그 자체로 특별했다. 신랑 신부는 서점 카트를 타고 등장하고, 축의금은 도서상품권, 두 사람의 독서 이력을 소개하고 하객들은 좋아하는 책을 즐긴다. 서점의 점장이 선언을 해주고 케이크 절단 대신 책갈피를 끼운다. 부케 대신 책을 던지고 퇴장할 때는 책으로 묶여 마무리를 한다. 책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났다면 정말 이런 결혼식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4천 권이 넘는 내 책장에서 <십자군 이야기> 달랑 한 권 읽는 남편을 보며 그저 아쉬울 뿐이다.

 

몇 가지만 소개를 했는데도 소개하는 내내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이런 상상력도 놀랍지만 정말 이런 서점, 이런 세상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삶이 달라질 것 같다. 책으로 충분히 간접경험을 해서 괜찮다고 여겼지만 실제로 이런 세상이 펼쳐진다면 너무 즐거울 것 같다. 지금껏 조금은 외롭게 책을 좋아했던 시간들이 이 한 권의 책으로 보상받은 기분이다. 너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기쁘기 그지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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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을 이용한지 벌써 13년이나 되었다. 알라딘에서만 책을 구입한지는 최근 5년 정도 된 것 같고, 그 전에는 여러 서점에서도 많이 구입했다. 그 이전의 기록은 굳이 들춰볼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열심히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고, 기록을 남기면 되지 않을까?

 

앞으로도 알라딘과 계속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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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7-05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폰이 문제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북플에 이미지가 안 보여요. 이미지가 안 보여서 알라딘 어플에 들어가서 보고 왔어요. ^^;;

안녕반짝 2019-07-05 20:19   좋아요 0 | URL
캡처해서 pc로 파일 첨부해서 올렸는데, 그렇게 올려서 안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벌거벗은 그리스도인 - 교만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나를 고발합니다
문성 지음 / 두란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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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모습이다. 기꺼이 자기 삶을 주었던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구원을 받고 복음을 아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를 통해 오늘 이 성경이 내 손에 올 수 있었음을 기억하라고 성경책에 붉은색을 칠했다고 들었다. 215쪽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식인도 하고, 문란하고, 언어도 없고, 감정대로 살아가는 파푸아뉴기니 미히 부족 사람들을 보며 은연중에 내가 더 우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악령을 쫓겠다고 얼굴에 잔뜩 분장을 하는 모습을 보며 세수라도 했으면, 말끔하게 외모를 정리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선교사들의 눈에 비쳤던 조선인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자 이게 얼마나 큰 교만인지, 속사람을 본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무시하고 나의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책을 당연하듯 여기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고 나 또한 ‘관념’속에 가두고 있었음이 어렵지 않게 드러났다.

주님은 물질이 너무 부족하여 넘어지지 않게 하셨고 너무 많아 교만하게도 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일용할 양식으로 채우셨다. 오직 영광과 존귀를 받기 원하시는 주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며, 원동력이며, 감격이시다.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을 때에도 인내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에 이르게 하셨다. 167쪽

그냥 먹먹해졌다. 저자가 말하는 물질과 내가 말하는 물질은 비교대상이 될 수가 없지만 나 역시 저런 경험을 너무 많이 했다. 분명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감사함에 어쩔 줄을 모르다 시간이 지나면 이내 감사함이 시들해지고, 나의 안위만을 위해 물질을 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자 부끄러웠다. 기도에 응답이 오지 않을 때도 스스로 합리화를 시켰고, 인내하지 못하고, 판에 박힌 기도들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기도가 없음이 역시나 부끄러웠다.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알고 계시기에 ‘나의 생각과 마음을 언제나 감찰하고 계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일’법도 한데 왜 항상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일까?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니 신앙생활을 해도 성화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행한 모든 신앙의 행동이 어찌 믿음의 일이겠는가? 172쪽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미히 부족 사람들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신앙을 반성했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처럼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미히 부족 사람들의 변화는 내가 하나님을 처음 만나던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십계명을 듣고 부끄러하고, 욕심을 부렸다는 이유로 부끄럽다며 마을을 떠나고, 관습처럼 내려져오는 일들에서 서서히 도덕심을 찾는 모습을 보며 그들처럼 뜨겁게, 그리고 완전히 하나님을 받아들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15-25에서 마음은 선을 행하려 하나 내 안에 선한 것이 없음과 도리어 악을 즐기는 악이 있음을 괴로워하며 자신을 곤고한 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말씀이 우리 삶에 응답된 고백이 되게 하심을 감사한다. 268쪽

내 안에 수많은 악이 있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매일 정욕과 싸우면서도 수없이 넘어지고 오히려 악을 즐길 때도 있음을 고백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죄보다 더 어리석은 건 회개가 없는 것이다. 내 자신을 내려놓지 않을 때, 하나님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고, 그 안에서 복음은 미미할 뿐이다. 회개할 때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때라고 했으니 내가 무언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없다면 회개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응답이며 하나님께 가는 첫 걸음이라 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주님을 위해 무엇을 포기한 것 같으나 포기할 수 없는 자, 무엇을 내려놓은 것 같으나 내려놓을 수 없는 자, 무엇을 희생하는 것 같으나 희생할 수 없는 교만한 자임을 주님은 깨닫게 하셨다. 158쪽

아무리 강력한 이끌림이 있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마흔이 다 되어서 하던 사업을 접고 가족을 데리고 언어도 없는 원시 부족의 틈으로 사역을 나간다는 게 쉬울까? 그곳에서 하나님이 네 번이나 목숨을 살려주셨음에도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저자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교만한 자라고 말한다. 25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오히려 ‘말씀을 전해야 하는 책무를 가진 나 자신의 깊은 회개’를 했다고 말씀 앞에 이 책은 단순히 간증을 담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나님이 어떻게 살아 계신지, 어떻게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어떻게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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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입는 시간 - 영혼을 위한 7가지 절대 습관
켄 시게마츠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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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습관은 우리를 입힐 뿐 아니라 벗기기도 한다. 우리의 습관은 우리 안에 있는 상처와 열등감, 우상, 중독, 혼돈을 담아낸다. 우리가 품은 소망과 꿈, 소원, 영혼도 습관에서 드러난다. 습관은 곧 우리 자신이다. 17쪽


책을 좋아하는 나는 습관 때문에 독서가 익숙한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껏 주일은 습관적으로 지키면서도 일상에서 묵상, 성경읽기, 기도가 습관이 잡히지 않을 것을 보며 내가 이중적으로 느껴졌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과 만나기를 원하고 있는가, 혹은 하나님께 모든 걸 전적으로 맡기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려 하지 말고, 그분께로 가까이 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19쪽

의지가 부족한 나에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까이 오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에 늘 부합하지 못하는 내가 좀 어리석어 보인다. 어쩌면 내가 습관을 잘 들여 묵상하고, 성경 읽고, 기도도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계획을 세워도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사실에 좌절해 멈칫 하고 있는 나에게 저자는 ‘실패하든 성공하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걸 알기에 이제는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을 대신 전해주었다. 하나님은 나의 성공을 바라고 계신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규칙이 몸에 잘 배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것을 원하는데 내가 먼저 선을 긋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반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찬양하면 점점 그분께 가까워진다. 137쪽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저자는 하루에 세 가지의 감사 목록만 만들어 습관을 들여도 하나님께 훨씬 가까워지고, 인정욕구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결국 많은 문제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멀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거부할 때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겼을 때 반대로 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 받음은 물론 삶도 변화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나는 어정쩡하게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뜨거웠던 가슴이 식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지도 않고 설레지도 않는다. 기대감도 없고 그저 모든 게 뜨뜻미지근하다.

좋은 옷과 자동차, 집 같은 물질은 잠시나마 쾌감을 준다. 하지만 그 쾌감은 어디까지나 ‘가장 낮은’ 수준의 행복일 뿐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은 나눔에서 비롯한다. 즉 무조건이고 무한한 사랑으로 남들에게 자신을 내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 150~151쪽

행복하지 않다는 것. 나의 문제는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가장 낮은’ 수준의 행복에 빠져 허우적대다 보니 이상한 습관이 나를 차지해도 내버려두고, 그 습관들을 영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의 기쁨을 맛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랑을 그냥 받기만 하면 되는데도, 어떨 때는 기쁘게 받다가 기쁘지 않다며 시무룩해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가장 낮은’ 수준의 행복에 연연한 탓이다. 그리고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을 모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수고로우면 힘들다 불평하고,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 바라고, 타인의 시선에 자꾸 신경을 쓴 탓이다. 나는 ‘무엇을 하느냐로 증명되는 인간이 아니라 사랑받는 아들과 딸, 즉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하나님께 나는 그런 존재다.

이 사실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사실을 어떻게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 다가가려는 작은 시도라도 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 폰을 보는 습관이 아니라 짧게나마 묵상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작은 시간들이 모여 다시 내 가슴을 뜨겁게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세상을 향한, 내 욕구 충족을 향한, 인정 욕구를 향한 뜨거움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한 분 만을 위한 뜨거움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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