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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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119쪽


정말 그렇다. 여전히 그 때를 기다리는 책도 있고, 이미 만나서 기뻐하거나 실망한 책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한 권의 책이 내게 닿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한다. 마치 인생처럼 다시 시작하기 힘들다면 첫 만남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난 수많은 책들 중에서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들이 있기 마련이다. 책 제목에 이미 ‘서점’이 들어가 있어 책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서점 주인이 되는 것에도 나름 영웅적인 면이 있고, 아이를 입양하는 것에도 영웅적인 면모가 있다고요. 130쪽

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아내와 사별하고 우연찮게 마야를 입양하게 된 에이제이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달리 보이지 않을까? 서점 주인과 출판사 홍보 직원 사이로 만난 에이제이와 어밀리아는『늦게 핀 꽃』으로 뒤늦게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출판사 직원이 추천하는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뒤늦게 읽어보고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저절로 마음이 열릴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어밀리아에게 마음이 열렸지만 이미 그녀에겐 약혼자가 있었고 에이제이는 마야를 입양한 터라 시간이 어긋났다.

서점에 버려진 아이 마야. 미혼모인 마야 엄마는 삶을 버리기 직전 아이의 미래를 서점에 맡긴다. 서점에서라면 마야를 잘 거둬줄 거란 믿음. 에이제이가 마야를 키우기엔 여러 조건들이 맞지 않았지만 둘은 운명처럼 혹은 숙명처럼 그렇게 부녀사이가 되고 여러 어긋남을 극복하고 어밀리아도 함께 가족이 된다. 에이제이가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라며 청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남편이 이입되었다. 비교가 능사는 아니지만 서재에 4천 권이 넘는 내 책이 있어도 달랑 한 권 읽은 남편(시오노 나나미의『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과 살고 있어서인지 정말 멋있는 청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인생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정말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에이제이는 불치병에 걸리고, 거액의 치료비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려는 순간 책이 그를 구한다. 희귀본인 애드거 앨런 포의『태멀레인』이 그를 수술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이유로든 책이 사람을 구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수술을 받은 에이제이가 다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랐다.『태멀레인』이 사라졌던 진실이 어렵게 밝혀진 만큼 에이제이를 구한 것은 역시나 책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301쪽

결말을 추측하며 읽고, 이미 과정에서 충분히 만족시켜주며, 때론 반전이 있는 책. 이렇듯 한 권의 책이 담고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결말이 이어질 때 이게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삶처럼 불행도 기쁨도 순식간에 찾아오고 어느 순간 뒤바뀌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점이란 공간과 책이 여러 사람의 삶에 스며들고 얽히는 것을 보며 그럼에도 혼자가 아닌 것에 안도하곤 한다. 내게 주어진 삶의 대부분이 책으로 채워지는 시간. ‘우리는 많은 책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는 믿어야 한다. 때로 실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이따금 환호할 수도 있다.’는 말에 책 대신 다른 말을 대입해 보면 아주 조금 삶을 밀어낼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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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그리울 때 산하작은아이들 43
천위진 글, 오규원 옮김, 마이클 류 그림 / 산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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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십 분만 나가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으면서 바다를 좋다고 여겨본 적이 없다. 산골에서 살았던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건 좋지만 바다를 내내 바라보면서 살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라는 공간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휴가 때마다 바다를 찾아가는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를 보며 마음이 찡해지고 말았다.

 

여전히 바다를 볼 수 없는 두메산골에 살고 있었다면 바다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 속의 아이도 바다를 볼 수 없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 만나는 바다는 항상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자주 가는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다를 향해 가는 발걸음에 설렘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추억이 묻어 있는 장소라는 것 외에도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림책을 읽더라도 늘 글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편인데 이 책은 그림에 마음을 뺏겼다. 섬세하게 표현된 빛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색감의 바다를 만나고, 모든 것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내가 바라보며 사는 바다를 이렇게 자세하게 살펴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렇게 풍부한 색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지 않고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그렇게 바다의 색감에, 그곳에 담긴 추억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는데 이 바다에 엄마와 함께 왔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빠와 아이만 온 터라 엄마가 곁에 없음을 알아버렸다.

 

아이는 바다에서 실컷 놀고 떠나기 직전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에 와 있으며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편지 앞에서 눈물이 날 뻔 했다. 눈물을 참은 이유는 아이의 편지가 슬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감히 짐작할 수도 없지만 엄마와의 추억이 묻어 있는 바다에서 즐겁게 뛰어놀고 엄마의 행복을 생각해주는 아이 앞에서 슬프다고 울 수는 없었다. 그리움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겠지만 적어도 세 가족이 함께 했던 바다에서는 슬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버스에서 머물렀던 바닷가 마을을 돌아보는 아이의 모습에서 꼭 엄마를 두고 오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라도 돌아오면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래서 아이는 하염없이 멀어지는 바다를 보고 있고, 다시 돌아올 힘을 얻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 항상 곁에 있기에 쉽게 지나쳐버린 바다, 언제까지 내 곁에 있어줄 거라 여기고 때때로 소중히 대하지 않는 가족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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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예술의전당 에디션)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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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꾼 새는 귀엽지. 하지만 돈이 아주 많이 들어. 이런 새를 키우는 게 남자에게 얼마나 돈이 드는 일인지. 16쪽


노라의 남편이자 곧 은행총재가 되어 부와 권력을 누리게 될 헬메르는 이런 말을 서슴지 않는다. 1897년에 발표된 소설이기에 당시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더라도 여성이 또 다른 존재가 아닌 ‘돈이 아주 많이’ 드는 ‘낭비꾼 새’로 묘사되는 게 기분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노라는 순간 불쾌해 하긴 해도 남편의 그런 표현과 그렇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락한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앞으로 늘어날 남편의 수입에 대한 기대로 차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린데 부인이 로라를 방문하면서 로라에게 서서히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그 대상이 사라지자 공허함을 느낀 린데 부인과 달리 인형처럼 살고 있는 로라의 삶이 대비된다. 로라는 남편이 크게 아팠을 때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돈을 빌린 사실을 린데 부인에게 털어 놓는다. 당시는 이유를 떠나 남편 몰래 돈을 빌린다는 사실은 남편의 명예 훼손은 물론 치욕으로 느꼈기에 로라가 철저하게 비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로라는 아버지가 치료비를 내 주었다고 거짓말을 한 뒤 차용증서 사인을 도용해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덕분에 남편은 회복될 수 있었고 현재의 안락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신은 나의 행복을 모두 부서뜨렸어. (…) 나는 이제 이렇게 무너져서, 경박한 여자 때문에 망해야 해! 151쪽

돈을 빌렸던 크로그스타드가 직업을 빌미로 로라를 협박해 오고 마침내 비밀이 모두 드러났을 때 헬메르는 로라에게 비난의 말을 쏟아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있으니 모든 걸 감춘 채 로라에게는 집에 있되 아이들의 양육을 맡길 수 없다고 말한다. 로라는 남편 몰래 돈을 빌려 건강을 회복시키고, 그 돈을 갚기 위해 남편이 준 돈을 아끼고 때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건 참 즐거웠지. 내가 꼭 남자가 된 것 같았어.’ 라고 말하며 또 다른 기쁨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정당하지 못한 방법일지라도 남편을 위해서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이 큰 만족감으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때 헬메르가 모든 걸 품어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나 역시 헬메르의 반응이 궁금하긴 했지만 바로 아이들의 양육까지 맡길 수 없다며 존재를 무너뜨리는 발언 앞에서 실망하고 말았다.

나는 나 자신과 바깥일을 모두 깨우치기 위해 온전히 독립해야 해요. 그래서 더 이상 당신 집에 있을 수가 없어요.

163쪽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라며 로라는 집을 나가겠다고 한다. 헬메르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충동적으로 집을 나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까지 두고 아예 다른 존재로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인형 아기로 키웠던 것처럼 헬메르에게 인형 아내로 이어진 모든 것을 철저히 부수고 그녀는 완전히 새로 태어나려고 한다. 아이들을 두고 나가는 것 때문에(정확하게는 로라가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다)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나 역시 처음엔 아이를 두고 나갔다는 것 때문에 마음에 걸렸는데 로라 자신도 유모에게 크고 자신을 키웠던 유모의 손에 로라의 아이들이 크는 것을 보며 걱정을 떨쳤다. 로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나는 나 자신부터 교육해야’ 한다며 헬메르의 말에 완전한 깨달음을 보인다. 더 이상 인형의 집 속에 사는 꼭두각시 같은 로라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로라가 되기로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다.

집과 남편과 가정을 버리다니!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는 생각도 안 하다니! 163쪽

헬메르의 비난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자식 때문에,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 자신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로라를 보며 모든 걸 버리고 자신을 찾으라며 선동하는 게 아니다. 지금껏 ‘나’라는 존재를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사람이 이제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을 위해 첫 발을 내디딘 것임을, 스스로의 선택을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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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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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테이크 가게 딸이라는 것이나 학력이 소소하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수치스러워한 적이 없지만, 다르다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이런 게 사랑이지, 하고 생각했다. 다르니까 좋아하게 되는데, 달라서 닿지 않는다. 94~95쪽

가끔, 연애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한테 얘기하면 찰떡같이 알아먹질 못하고, 퉁명스럽게 ‘연애 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렇게 무뚝뚝한 사람이랑 어쩌다 6개월 만에 결혼을 했으며, 애를 둘이나 낳았을까 싶다가도 이내 포기한다. 그냥 포기하고 책이나 드라마 혹은 영화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게 더 빠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을 통해 연애의 감정을 떠올려봤지만 추억으로 지나갈 뿐 생생하게 떠오르진 않는다. 당연하게도 결혼을 한 후에는 남편에게 설렘을 느끼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오히려 설렘을 느낀다는 게 어색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주인공 미쓰코와 연애를 하게 되는 남자 미야사카에 대한 동경은 있었다. 책만 읽어대고 말이 없다는 이유로 부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긴 했지만 ‘독신에 건물을 갖고 있고, 서점도 물려받을 것이고, 사진을 잘 찍고, 지적이고, 앞으로는 늘 서점에 있고’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풋, 웃었지만(조건이 좋다며^^) 이내 인기가 많을 거라며 풀 죽어 하는 모습에서 늘 연애에 자신 없어 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저자의 소설 인물들 특징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미쓰코는 조건을 보지도 않고, 관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였다면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닐 일에 대해서도 서슴없다. 멀지만 친척 신이치와 연애를 하고 신이치의 아이를 유산한 뒤 아이 때문이 아니라 헤어지지만 주주에서 함께 일하고, 나중에 신이치의 부인이 임신했을 때 함께 산부인과를 가는 일(신이치, 부인과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었기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행동한다.

일본문학을 읽었던 초기에는 다른 정서, 다른 문화, 다른 생각과 행동들이 낯설었다. 그리고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여전히 걸리는 부분들도 있다. 저자의 최근작들을 좋아하게 되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보니 어떤 상황이 등장해도 ‘그러려니’가 되었다. 작품에 항상 죽음이 등장하는 것도 익숙하고, 미쓰코의 엄마가 돌아가시면서부터 ‘주주’가 시작되었다는 것, 미야사카 역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에 고향으로 돌아와 서점을 물려받게 된다는 점들이 낯설지가 않다. 또한 이 소설의 시작이 미쓰코의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지옥의 살라미 짱>이란 만화책이 등장한다는 것에 막연하게 미야사카와 이어질 거라고 혼자서 추측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스테이크 레스토랑 ‘주주’에 대한 자부심, 예의를 갖추지만 타인의 시선대로 살지 않는 모습, 끊임없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에 따라가려는 모습에 동경을 느꼈다. 처음에는 연애에 대한 대리만족이었다면, 점점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 부러웠다. 주변의 환경에 순응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사는 것. 처음엔 소소한 이야기라고만 치부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아무래도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 환경을 탓하고, 나의 선택을 탓하는 나와는 상반되는 모습이어서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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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민주주의를 훔쳐 갔을까? - 현대사와 함께 읽는 진짜 정치 이야기 사회 시간에 세상 읽기 1
김은식 지음, 소복이 그림 / 이상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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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덮고 나도 모르게 “좋은 책이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고 역사에 생생히 묻어있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하지만 오로지 의미 전달로만 묻히기엔 더 뜨거운 뭔가가 있었다. 너무나 쉽게 들어왔던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누군가의 피로 이뤄진 사실이라는 말을 오롯이 실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몰랐던, 내 생활에 급급해 잊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미안함도 쉴 새 없이 묻어 나왔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소중함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없는 상태’가 왜 문제인지도 잘 모른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야. 그러다 보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과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나 방법도 잘 모르게 될 수 있겠지 11쪽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모든 구성원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각각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념이라면, 그 이념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대화와 토론과 설득과 타협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 과정이’라는 말을 제대로 인지하니 ‘날치기’와 ‘다수결’의 폐해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의미를 알아가자 근현대사의 민낯이 보였고, 구성원을 인정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를 억압한 지도자들의 만행에 분노가 일었다.

제주 4.3사건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세 가지 만행(친일파 청산 좌절, 한국전쟁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지 못함,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 동원)이 이후 역사에 끼친 영향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박정희라는 사람이 일본군 장교로 해방이 되던 해에 중위를 달고 있었으므로 ‘만약 제대로 친일파에 대한 처단과 문책이 이루어졌다면 더 이상 군인으로서 그렇게 승승장구할 수 없었을 사람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친일파 청산은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보다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 모든 게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사람들은 ‘민주주의는 스스로 지켜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등장해 4·19 혁명이 무색할 정도로 18년 동안 민주주의와 먼 독제체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18년 동안 권력을 쥔 것은 잘못이지만 덕분에 잘 살게 되지 않았냐고. 그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경제적 발전이 늦더라도 4·19 혁명으로 이뤄낸 민주주의를 잘 지켜냈다면 많은 사람들이 덜 고통 받으며 함께 갈 수 있었다는 이런 생각이 어려운 것일까? 그렇게 잘못된 지도자로 늦춰진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룬 것은 ‘평범한 대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시민들’이었다.

1981년생인 나는 어렸을 적, 어렴풋이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전두환이란 사람이 기억난다. 내가 태어나기 약 일 년 전에, 고향에서 1시간 거리의 광주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얼마나 섬뜩했는지 모른다.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5·18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사람들보다 역시나 더 잘 살고 있다. 이런 역사의 편협함을 보면서 분노가 치미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그런 역사를 정면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아는 것도 두려워 답답하기만 하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 항쟁은 ‘30여 년 이상 이어지던 군사 정부 시대가 끝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므로 현재 내가 누리는 민주주주의 대가를 치러준 수많은 분들에게 나는 그저 빚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조화를 이루고 어울려 사는 방식’이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내 가족과도 대화를 하다 틀어지고 마음이 상하기 일쑤인데, 생각이 다른 모든 구성원과 이뤄나가는 게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권리를 잘 실천해야 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 내가 뽑은 지도자가 어떻게 하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 하다못해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고 내가 이해한 민주주의 의미를 생활 속에 녹여내는 것도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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