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웃게 하십니다 - 창세기 5 김양재의 큐티 노트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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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때문에 힘 빼지 않으면 기운이 남아돌아서 세상에 나가 헛짓이나 할 테니, 아이라도 붙들고 씨름하라고 말이죠. 주님은 저를 참 잘 아시는 분입니다. 200쪽

 

이 구절을 읽는데 웃음이 나고 말았다. 이제 살만 한 건가? 눈물이나 좌절이 아닌 웃음이 났다는 건 내 아이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고 여겼다. 태어날 때부터 뱃속에서 숨을 못 쉬어 응급으로 태어나고, 뇌 손상까지 입었던 둘째.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받고 태어난 덕분인지 자라면서 뇌 손상은 가뿐히 덮어 버리고,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기도에 정말 건강하게만 자라주고 있는 아이. 그것만으로 감사가 넘쳐났다. 나에게 왜 이런 아이를 주셨는지 곰곰 생각할 틈이 없었지만 늘 불안감은 있었다. 둘째는 49개월에 기저귀를 뗐고, 말이 터진 건 거의 최근이다. 말이 터지기 전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질러대는 탓에 매일매일 집안 분위기는 쑥대밭이었다. 놀이치료를 1년을 다니고, 화도 내고, 혼도 내고, 울며 기도하면서 어찌저찌 기다리다보니 말이 터졌고, 다섯 살에 할 수 있는 말보다 훨씬 느리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나는 숨통이 트인다. 어쩌면 ‘세상에 나가 나의 헛짓’을 막기 위해 이렇게 특별히 사랑스러운(?) 아이를 주셨나보다.

 

세상에서 성공을 했건 실패를 했건 하나님만이 나에게 하나님 되시는 것이 가장 큰 위로와 기쁨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위로가 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증표입니다. 157쪽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인 큰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예언처럼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고 있다. 그런 그의 곁에서 순종했던 사라의 모습, 쫓겨난 사갈과 이스마엘이 무작정 내쳐진 것이 아님을, 그리고 이삭을 낳기까지 아브라함의 회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하나님만이 나에게 하나님 되시는 것’을 붙들고 살지 않았다면 결코 버틸 수 없었을 인생이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끊어내는 것. 그것을 알아가는 것도 어렵고, 회개도 끊어내는 것은 더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나의 위로’가 하나님이 되지 못하고, 남 탓하고 신세한탄 하는 노예근성을 알고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말씀 중간에 ‘나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노예근성 때문에 계속해서 비교하고 멸시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란 날카로운 질문들을 그냥 아무런 대답을 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계속 회개를 했고, 나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를 똑바로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증표’의 첫 걸음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사실임을 깨달았다.

 

별 인생 없습니다. 나에게 하나님 되시는 인생이 최고입니다. 196쪽

 

내 존재도,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도, 하물며 배우자와 자녀도 내 뜻대로 된 것이 없음을 철저히 인정했다. 나에게 주권이 없음이 불행하고 나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맡겨 버릴 때 얼마나 평안한지를 다시 한 번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어리석게도 신앙이 정기적으로 기복적이 된다. 한동안 충만했다가 그보다 더 오래 무기력감에 빠진다.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노예근성으로 ‘탓’ 돌리기에 바빴다. 내 교회, 내 환경, 내 처지, 내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신앙을 보면서 언제나처럼 휘둘리고 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회개하면서 조금씩 신앙이 회복되어 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심을, 늘 나를 건지시고 돌보아주신다는 사실을 또 알게 되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내가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가족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어진 환경에 마지막까지 순종하는 것이 약속의 땅을 사는 것인 줄 믿습니다. 330쪽

 

그리고 내가 이 땅에서 내 안위와 세속적인 성공과 내 가정만의 평안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닌 약속의 땅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죄밖에 없는 내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내가 하나님의 땅에서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은혜는 용서와 사랑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못하면 복음도, 하나님의 계획도, 이 땅이 약속이 땅이 될 수 있음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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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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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했다. 이상하게 거리감이 느껴졌고, 글을 읽고 있는 내가 겉돌았다.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책을 펼친 건 아니었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46쪽)” 라는 사실을 다소 황당하고 겸연쩍은 방법으로 터득했다. 깊은 밤, 이불 속에 몸을 깊숙이 묻고 스탠드 불빛 아래서 책을 읽다 거실로 나왔다. 식탁에 앉아 독서대에 책을 올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 읽었다. 약간의 물리적 거리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는데, 희한하게도 ‘나는 너를 모른다’가 되었다. 그리고 어떠한 책임감도 묻어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읽기를 즐겼다.

 

‘골목’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어릴 적 살았던 고향집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두메산골이라 골목보다는 휑뎅그렁한 풍경이 전부였지만 저자가 언급한 ‘다락 방’도 많은 식구가 비좁게 자야 했던 좁은 방의 이야기도 이미 공유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고향집으로 수리하기 전에 다락에 전화기가 있었고, 벽에서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힘들게 올라가면 작은 내 몸 정도는 숨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당연히 부모님에게 들키면 혼쭐이 났지만 형제들과 다락에서의 놀이를 멈출 수 없었던 기억이 문득 올라왔다. 9남매 중의 막내인 나는 무엇보다 식구들이 많을 때의 복작거림과 아무리 식구라고 해도 경쟁의 대상이 될 때의 불편한 감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막내라고 해서 특별히 귀여움을 받지도 않았지만, 딱히 고생을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이기심도 너그러움도 배우지도 못한 모호한 위치였다. 그래서 골목골목에 깃든 이야기들을 온 힘을 다해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치부를 들킬까봐, 미화 된 유년 시절을 다른 기억으로 대체해야 할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절대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들었고,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유지했지만 건조함은 끝내 잘라내지 못했다. ‘어쩌면 행복이란 즐겁고 만족 가득한 상태, 그 자체를 말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정지되고 멈춰있는 어떤 순간이 아니라 생의 움직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90쪽)’라는 말처럼 이 글을 마주하고 있는 나의 상태가, 행복을 차치하고라도 ‘생의 움직임 그 자체’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과거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잠시 현재를 잊었다가, ‘지금’을 드러내는 이야기 앞에서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생의 움직임’이 너무 격렬한 탓인지 유년 시절의 추억에 젖어 있던 ‘나’가 쨍하고 깨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나’가 아님을 부정할 수 없었다. 골목에 비유한 다양한 저자의 모습과 기억과 생각처럼 그렇게 갈라지는 여러 개의 ‘나’도 그냥 ‘나’였다.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 긴장이 시시때때로 올라와 감히 ‘행복’이란 단어를 꺼낼 수 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어울리지 않는 근본적인 물음들이 올라왔다. 왜 굳이 시간을 들여, 잠을 줄여가며, 내 할 일을 방치하며(게으름도 한 몫 한다) 긴장감을 팽팽하게 끌어올리면서까지 타인의 생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내 자신도 유치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였는데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나도 때때로 타인의 삶에 대해 간섭하고 규정하고 통제하는 오만을 저지르며 살고 있다는 뜻(152쪽)’을 부정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이렇게 거창한 이유보다는 ‘자신 없을 때는 한 발 더 내디뎌보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97쪽)’라는 말이 더 와 닿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행위는 그저 ‘한 발 더 내디뎌보는 용기’일 뿐이었다고 말이다. 나는 그저 모든 순간에 약간의 용기를 내 본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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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1월 5일까지의 기록이다.
금요일에 주문한 책이 포함이 안 된 게 다행인걸까? ㅋ

올해는 월 독서 구입비를 10만원을 넘기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얼추 지켜진 것 같다.

1월과 9월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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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르네 놀트 그림,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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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들이 입고 있는 목부터 퍼지는 붉은 드레스가 뭔가를 불안하게 한다. 화려한 색은 시녀임을 밝히고 있지만 존재는 철저히 가려지는 역설. 시녀 양성 교육 센터를 거친 오브프레드의 독백으로 그녀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전말이 드러난다. 전체주의 속에 갇혀 버린 그녀의 삶은 생기라곤 하나도 없이, 오로지 사령관의 아이를 가져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여자들의 옷으로 신분을 판별하고, ‘가게 이름조차 과도한 유혹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그림으로 간판을 식별하게 만드는 곳. 장벽에는 불법을 저지른 자들의 시체를 메달아 놓고, 그것을 보며 경멸과 증오심을 가져도 되는 곳. 그런 곳을 알아가는 것조차 결코 녹록치 않았다.

 

시녀로 살아가는 게 비참을 넘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게 만들게 하는 힘은 아무래도 소설보다 그래픽 노블의 힘이 아닌가 싶다. 소설로 읽었다면 너무 어두워 덮어버렸을지도 모를 작품을, 화려하고 생생하면서 참담함으로 이끄는 그림의 힘이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활자만으로 불가능했던 압도적 표현력’이라는 말처럼, 어느 한 장면을 허투루 볼 수 없었다. 그림이 색을 띠지 않을 때보다 오히려 화려하게 색을 띠는 것조차 부자연스럽게 만들었고, 내면 깊숙이 불안을 끌어냈다. 결론을 알 수 없어 막막했고, 이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혼란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오브프레드의 독백과 함께 완전히 이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령관과 단둘이 만나는 건 금지된 일이다. 우리는 번식을 위해 존재한다. 첩도 아니고, 게이샤나 창녀도 아니다. 우리는 두 발 달린 자궁이자 성스러운 그릇, 걸어 다니는 성배일 뿐.

 

시녀들의 목적이 분명하기에 사령관과 관계를 맺을 때도 경악스럽다. 시녀가 철저히 자궁의 역할만 하도록 사령관의 아내도 그 자리에 동석한다. 일을 치르고 난 뒤 누가 더 괴로운지는 알 수 없지만 각자의 역할만 수행했을 때 나름의 평화(?)가 공존한다. 그런 그녀에게 사령관은 은밀하게 따로 만나기를 원한다. 나름의 데이트라는 명목으로 비밀스런 클럽에 데려가고 그곳은 과거의 자유를 방탕하게 누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시녀 생활을 적응하지 못한 오브프레드의 친구를 만난다. 장소만 다를 뿐 그곳 생활도 정상적인 삶은 아니다. 오히려 그곳은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것들이 하나도 없기에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이 이야기 속에는 너무 많은 고통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철저히 감시받고 자유가 사라진 사회는 아니었다. 오브프레드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딸아이도 있다. 시녀로 살아가야 하는 중에도 종종 떠올린 그녀의 과거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회였다. 하지만 딸아이의 생사를 몰랐다 겨우 알게 되었을 땐 자신은 그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려는 부분이 보였다. 사소한 것부터 욕망에 이르기까지는 그녀는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기에 오히려 위험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사령관이 숙청되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탈출인지 처형을 당하러 가는 것인지 모를 차를 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역사적 주해’에서는 이 이야기가 담긴 테이프가 발견된 장소, 그녀의 이름조차 ‘가부장제적 명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녀가 살았던 시절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탈출해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또 다른 지옥 속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혹은 ‘과거의 거대한 암흑’으로 빨려들어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를 정확히 해독’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남긴 흔적을 통해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아마도 곧 출간 될 후속작『증언들』에서 그 흔적을 더 비참하게, 낱낱이 목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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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 반사
키크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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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8시 28분. 둘째가 어린이집 차량을 8시 35분에 타야 하는데 순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이들이 놀라 일어나고, 그때부터 정신 나간 여자처럼 준비했다. 18kg이 넘는 둘째를 안고 달리면서 왜 알람소리를 못 들었는지 후회를 해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알람을 더 촘촘히 맞추는 수밖에. 그렇게 아이 둘을 보내고 기력이 딸려 멍 때리며 여행 프로그램을 보며 따끔거리는 목을 달래려 아침부터 컵라면을 먹고, 집안일을 했다. 어제 개켜둔 빨래 정리부터 물건들을 제자리 넣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왜 물건들은 손대는 순간 제자리에 돌아가지 못할까? 어이없는 한탄을 하며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 특별할 것 없지만 나의 일상은 이렇게 오늘도 돌아가고 있다.


요즘은 똑같이 그리기보다는 나라면 이런 소재를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낼까 하는 생각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 18쪽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을 재미있게 읽어서 저자의 에세이가 가미 된 후속작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무척 궁금했다. 역시나 재미있게 읽었고, 그림 그리는 ‘키크니’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다. 어쩌다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프리랜서의 삶, 가족, 우정, 먹는 것, 저자의 등치(?) 같은 것을 세세히 알다 보니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오늘 아침에 일을 주절이주절이 떠들어봤다. 저자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낼까’에 고심했겠지만 나는 타인의 일상에 더불어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기억해 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상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는 게 뭔지 모르지만 든든해 보였다.

어릴 적부터 가사보다 멜로디가 좋아 음악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저릿함을 느끼게 하는 가사도 있었지만, 어릴 때는 가사의 뜻도 잘 몰랐기 때문에 주로 멜로디에 심취했다. 내 상황에 멜로디는 이입하는 재미가 있었다. 67쪽

완전 내 이야기 같았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도 나는 가사의 뜻을 모르고 여전히 멜로디에 심취한다는 점이다. 철저히 멜로디 위주다 보니 한 소절만 듣고도 반해 음반을 사거나(나머지 곡이 다 별로인 경우 허다), 수백 번을 반복해서 들을 때도 있었다. 주로 외국곡이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 가사를 찾아보고 놀란 적도 많았지만 내 귀에 확 꽂히는 멜로디가 주는 매력을 버릴 수가 없다.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는데 이 구절을 읽고 정말 너무 공감이 가서 마음이 후련할 정도였다. ‘남보다 특이한 상상을, 그것도 아주 길게 하고 있’다며 한탄을 하지만 정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전작을 읽을 때는 투박하게 느껴졌던 그림체가 이번에는 뭔가 정리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네 컷 만화의 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말풍선의 내용도 많아지고 익숙한 형식이어서 그런지 훨씬 더 재미있었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많아 이름처럼 키 큰(키가 커서 ‘키크니’) 사람이 들려주는 이런저런 얘기 같았다. 이런 책을 만나면 늘 그렇듯 별 볼일 없는 나의 일상이, 무탈한 나의 하루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나의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감사하게 된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우여곡절도 많지만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게 그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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