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교과서 여행 : 중1 시 - 중학교 국어 교과서 수록 시 작품선 스푼북 청소년 문학
신보경 엮음 / 스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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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간에 배우는 무슨 법이니, 운율이니 이런 말들은 다 버리고 시작하세요. 뭐 우리가 그런 걸 다 외우고 시인의 마음을 다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 마음을 알기도 힘든데 말이에요. 6쪽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온 시를 묶어 놓은 책을 펼치자마자 엮은이가 해주는 말이 참 좋았다. 괜히 ‘재미없겠구나!’ 싶었는데 안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정말 그런 염려를 내려놓고 시를 읽었더니 시가 즐거웠다. 너무 재밌는 시도 있었고, 묘사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하고, ‘시인은 역시 다르구나!’ 느끼면서 시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다.


나무들이/샤워하고 있다//진달래는 분홍 거품이/조팝나무는 하얀 거품이/영산홍은 빨강 거품이/보글보글 일고 있잖아//온 산이 공중목욕탕처럼/색색의 거품으로 부글거리고 있어 <나무들의 목욕> 중 _정현정

시의 일부지만 봄을 이렇게 거품으로 묘사하는 시인의 마음이 참 신선했다. 봄에 꽃으로 만발한 산과 들을 보면 이 시가 떠오를 것 같다. 움트다, 자라다, 맺다로 이뤄진 책의 구성을 바탕으로 시를 따라가다 보니 시를 통해 사계절을 모두 겪은 기분까지 들었다.


소낙비는 오지요/소는 뛰지요/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설사는 났지요/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이 바쁜 때 웬 설사> _김용택

한참 계절을 느끼며 시심에 젖어 있을 때 예기치 않게 이런 시를 만나면 피식 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바작(발채의 전라도 방언)도 알고, 저런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인물의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김용택 시인은 어머니 말을 베낀 시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당시의 상황이 더 사실적이고 급박(?)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너라고 불리고//너는 나로부터 당신으로 불리지만//그대는 같이 불러도 다르면서 또 같다.//이것을 가리키면 이것이 되어 버리고//저것을 가리키면 저것이 되고 마는//문장의 광장 안에서 우뚝 선 깃발인 너. <품사 다시 읽기 - 대명사> _문무학

“‘품사’를 사전적으로 풀면 ‘낱말을 기능, 형태, 의미에 따라 나눈 갈래’라는 의미를 갖는데, 그래서 품사를 낱말 사회의 씨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라며 9품사에 관한 시를 읽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시의 소재는 무궁하구나, 그리고 품사에 인격을 부여할 때 새로운 대상이 되어 시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게 품사에 관한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역할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신기했다.

이 세상/온 우주 모든 것이/한 사람의/‘내’것은 없다. <밭 한 뙈기> _권정생

시를 쓰든, 인생을 살아갈 때든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세상을 좀 더 분별하며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교과서에 실린 시라고 해서 약간의 긴장과 지루함을 가지고 읽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시를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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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길이 되다
이원식 지음 / 두란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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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그 후 성경을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선교사의 역사에서는 일반적인 일.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이미 번역된 한글 성경을 들고 이 땅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정식으로 선교를 시작한 땅도 아닌데 말이다. 도대체 그 한글성경은 누가 번역했으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7쪽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역사도 자세히 몰랐지만 이런 엄청난 과정으로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사실도 몰랐다. 또한 ‘1885년, 미국에서 요코하마를 거쳐 제물포로 들어와 선교 사역을 시작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스크랜턴 모자’가 들고 온 한글성경과는 다른 버전의 한글성경이 이미 한양에 퍼져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세례를 기다리는 조선인들을 만나고 오히려 당황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은 한반도에 어떤 계획이 있는 걸까?

의주 사람들이 처음으로 한글성경 번역에 참여했으며, 그들이 곧 한국 최초의 세례자들이었고, 그들에 의해 한국 최초의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평양이 부흥의 땅이라면, 의주는 그 부흥을 잉태하기 위해 예비된 어머니 같은 땅이다. 39쪽

그 기적은 만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1882년, 조선의 국경 너무 만주 땅, 그곳에서 최초의 한글성경이 번역·인쇄 되었’고 만주 지역과 조선의 북쪽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한글번역이 이뤄질 수 있었던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 압록강변 마을 의주 출신의 상인인 백 씨’가 우연히 만주로 넘어가 장사를 하다 존 로스 선교사에게 한문으로 쓰여진 얇은 성경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백 씨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성경을 가지고 무사히 고향으로 가져갔고, 여러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 또한 그로인해 최초의 한글성경이 번역되었음은 물론, 나라가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성경을 퍼트리다 ‘고문과 옥고를 치르고 전 재산을 잃고도 성경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조선의 사도 바울로 불리는 백홍준’이다.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존 로스 선교사는 조선 땅을 위해 기도했던 선배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존 로스와 그의 매제인 매킨타이어와 조선 말 선생 이응찬은 함께 한글 번역을 했다. 존 로스는 한글 성경이 번역되면 ‘조선의 여인들과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될 것’이라 여겼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낮은 자들을 위해 준비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성경을 번역하면서 조선 땅에 선교사가 들어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한 달 뒤에 제물포를 통해 선교사가 들어왔고 놀랍게도 그들의 손에는 또 다른 한글 성경 번역본이 들려있었다.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 만주에서 한글 성경이 번역되는 것도 놀라운데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도 한글성경이 다른 방법과 루트로 번역되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하나님은 두 가지 성경이 번역되게 하셨을까?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과 두 번째 한글성경이 중국 만주에서 인쇄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조선에서는 임오군란이 일어난다. 그때 중전 민씨의 조카 민영익과 둘도 없는 친구였던 이수정은 중전 민씨가 피신하도록 도움을 주어 수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가는 특혜를 얻게 된다. 그리고 농학자 츠다센을 소개 받고 그의 집에 걸린 산상수훈 액자에 사로잡힌다. 그는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온 지 7개월 만에 미국 선교사 녹스 목사에게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조선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복음이라 여겼고, 수신사가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남아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다. 엄밀히 말하면 한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문성경에 토를 다는 ‘현토’라는 작업을 했다. 그 와중에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미국에 보내기도 했다. 그 호소문은 세계선교평론지에 실렸고, 결국 1885년 4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는 일본에서 이수정을 만나 한글 성경을 전달 받아 조선에 오게 된다.

그렇게 번역된 한글성경은 조선 각지로 흘러가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기도하게 했다. 그리고 평양 대부흥 운동까지 이어졌고, 이런 역사를 지켜보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임을’ 깨닫게 된다.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세운 교회가 한국 교회’였고, ‘동양인으로서 처음으로 동양에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면 당시의 간절했던 마음보다 각박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더 멀리하는 사람들, 복음 이외에 다른 것을 탐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하는 것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의주가 조선의 기독교 역사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 분단 된 뒤에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지하교회로 숨어 들어가 지금도 목숨을 건 예배를 드리고 있’는 상황을 만들고, 남한은 남한대로 풍요로움 속에서 또 다른 구원을 바라게 만드는 상황을 왜 만드신 걸까? 저자는 ‘회복’이라고 했다. 남한과 북한에 다른 시련을 주시고 훈련하심으로 회복되기를 바라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남과 북이 다시 하나가 되어 통일 한국이 될 때를 기다리고 계’시며, ‘오래전 이 땅에 있었던 대부흥을 다시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솔직히 북한, 통일, 전 세계를 위한 기도가 잘 되지 않아 형식적으로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북한땅에서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되고, 가난하지만 영적 성장을 이룬 북한과 반대인 남한이 하나 될 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기독교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수많은 감정들이 밀려왔다. 정확히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한 미안함,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에 대한 반성들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믿음의 선배들에게 복음을 빚졌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현재 내가 이렇게 편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배드릴 수 있는 것.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하심이 먼저지만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정말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믿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과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기쁘게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기도가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꺼이 그 기도를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오로지 기도뿐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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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뜨거워지시죠? 저도 그랬어요 성경이 중국쪽에서 들어올때 종이를 새끼줄로 얽어매서 보부상들이 들여왔을정도로 성경을 사랑한 민족이 우리나라 선조들이었죠 설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샬롬!☕️
 
프랑켄슈타인과 철학 좀 하는 괴물 - 괴물, 인간을 탐구하다 나무클래식 1
문명식 지음, 원혜진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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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모든 사물들을 흉내 내어 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존재, 그게 다름 아닌 이데아 아니겠소? 61쪽

프랑켄슈타인과 철학을 논하게 될 줄 몰랐다. 하지만 존재의 의미에서 프랑켄슈타인만큼 적합한 인물이 있을까 싶었다. 또한 프랑켄슈타인을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 전에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박사이며, 창조해놓고 너무 끔찍해서 내쫓아버렸기 때문에 이름조차 없지만 자연스레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을 구분해서 말하고자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창조자이자 없애려고 하는 인물이며, 괴물은 존재의 근원을 찾아 헤매다 복수하고 상처 입은 존재라고 말이다.

중세 사람들은 심지어 스스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소. 예를 들면 이 세계는 무엇일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참된 지식은 무엇일까 따위의 고민은 하지도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소. 67쪽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 의해 창조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좀 더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려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그런 의도도 모른 채 겉모습으로 인해 쫓겨난 괴물은 정처 없이 헤맨다. 그저 따뜻한 불이 있어 다가갔고, 배가 고파 음식을 찾아 다녔지만 사람들은 그를 피하고 매질을 한다. 사람들이 왜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지 용납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주기는커녕 자신을 해칠 존재로 대하고 있었고, 그건 괴물이 자처한 것이 아니기에 혼란과 불협화음은 당연했다.


그러다 서로에게 친절한 한 가족의 오두막을 알게 되었고, 여러 가지 도움을 주지만 결국엔 괴물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부되는 것을 보며 깊은 상처를 입는다. 괴물은 모든 것이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잘못이라 여겨 그의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씩 해친다. 그러면서 왜 나를 창조했는지 묻지만 프랑켄슈타인 박사조차 철저히 외면하는 바람에 그들은 서로 목숨을 걸고 죽이려는 관계가 되고 만다. <프랑켄슈타인>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 어디까지가 소설과 일치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 소설을 바탕으로 플라톤을 등장시켜 괴물과의 철학적 대화를 통해 본질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하게 한다.

존재의 고민을 누구보다 간절히 하며,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 했던 괴물에게 플라톤의 등장은 귀찮고 힘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통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프랑켄슈타인, 괴물, 플라톤의 입장이 되어 각각의 처지를 생각해볼 때 굵직한 질문을 만들어냈다. 괴물은 인간인가, 그저 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인가, 인간이란 존재는 과연 존중받고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 말이다. 당연하게도 어떤 질문에도 쉽게 답을 말할 수 없었다.

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네. 세계든 인간이든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이성은 그럴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 이 모습으로 태어난 건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오늘과 미래의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만들어 나갈 수 있어.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인간이고 그게 바로 인간만의 본질일 거야. 214쪽

플라톤 역시 그러한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한다. 과연 그런 공간을 인간이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인간의 본질이 맞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마치 인간에게 부여된 숙제처럼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이러한 질문들이 더 밀접하게 다가올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질문에 대한 본질을 잃지 않는다면 조금이나마 답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어디에도 정확한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답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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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반짝님 새해 복많이받으시고 명절연휴에 맛있는거 많이 드소서! Be happy~🎶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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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어차피 노인네니까! 41쪽


시장에서 오징어 낚시를 하다 바지에 물총을 맞은 남편이 옷을 갈아입으려 하자 부인이 ‘굳이 갈아입으러 가고 그래요. 금방 마를 텐데.’ 라며 말린다. 하필 젖은 부위가 오줌 싼 것처럼 오해할 수 있어 갈아입으려다 ‘어차피 노인네니까.’ 하고 그냥 둔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좀 씁쓸했다. 노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아줌만데 뭐, 어때?’ 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에는 상황에 따라 장,단점이 작용한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는 옷이 꼬질꼬질해도, 화장기 하나 없고 배가 나와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육아에 찌들어 나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점점 커서 몸이 자유로워지면서도 타인의 눈살을 찌푸릴 정도만 아니면 역시나 아줌만데 뭐 어떠냐는 식으로 넘어갈 때가 많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소소한 일상을 공감 있게 담아내서 좋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무심코 지나가는 대화에 내 경험을 끌어낼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타인의 소소한 일상을 지켜보면서 안도하듯 지나쳐버리는 내 일상들을 되짚어 보는 것.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는 책들도 좋지만 종종 이렇게 긴장감을 늦추고 편하게 사색할 수 있는 책도 좋다. 읽고 나서 ‘무슨 얘기를 읽은 거지?’란 느낌이 남지 않아도 뿌듯한 책이라고나 할까? 제목처럼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이야기는 그렇게 노부부의 일상, 딸의 일상,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세상의 넓이는 느끼는 것은 ‘이동’ 뿐만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내 안의 힘이야. 140쪽

홀로 여행을 떠난 히토미 씨가 여행하면서 한 생각이다. 여행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것과 목적은 여러 가지겠지만 눈으로 보고 직접 발로 뛰지 않아도 ‘내 안의 힘’으로도 세상의 넓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특히나 움직이는 것, 여행, 직접 발을 내딛어 찾아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적확한 말일 정도로 울림을 주었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면 그것 또한 마찬가지지 않을까? 외부의 수많은 유혹과 자극이 들어올 때 적절히 ‘내 안의 힘’에 미루어 결정하고 따라가는 것. 물론 언제나 ‘내 안의 힘’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중심이 잡혀있을 때와 없을 때의 혼란을 알기 때문에 ‘내 안의 힘’을 기르자고 해석했다.


며칠 전 인생은 길어야 백 년이기 때문에 인생은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는 강연을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라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길어야 100년이라고 했듯이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에 소소할지라도 의미를 두면 좀 달라 보이지 않을까?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담은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의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기에 내 삶을 다양한 이미를 두어 만끽해보려 한다. 특별한 변화는 없을지라도 매일매일 다채로운 날들을 맞이하고 있다 여기면 그 사실에 감사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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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 딸기 레이어 케이크 편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 대원앤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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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 푸드 에피소드’로 만난 빨강 머리 앤이 눈물을 머금게 할 줄은 몰랐다. 짤막한 글과 애니메이션 그대로의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처음에는 음식에만 집중되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읽어나갔다. 그러다 점점 음식에 깊게 얽힌 에피소드를 만나게 되었고 감정이입이 되었다. 2년 전에 초콜릿 캐러멜을 먹어봤다는 앤의 이야기에 사탕 가게에 들른 매튜 씨, 그런 캐러멜을 절친 다이애나와 나눠먹고 기뻐하는 모습이 뭉클했다.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고, 자신만의 도시락을 갖게 된 기쁨, 직접 만든 브라우니를 함께 나누는 모습에서 되레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추억이 드러날수록 앤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남자 아이를 입양하길 원했지만 착오로 앤이 오게 되었고 결국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서툴지만 서서히 앤으로 인해 마음이 열리고, 사랑을 알게 되는 마릴라 아줌마와 매튜 아저씨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했다. 앤은 처음부터 초록 지붕 집을 좋아했다. 그런 만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애정을 쏟는 것처럼 ‘우리 집’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 처음으로 음악 콘서트에 다녀 온 날 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 준 마릴라 아줌마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고, 앤이 콘서트 보다 더 좋았던 건 ‘집에 돌아오는 거였어요!’ 라고 말할 때 내가 더 기뻤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가족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당연해서 모든 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날 밤, 마릴라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이제 복도 저편에 있는 작은 방에서 발랄하고 착했던 앤의 모습을 볼 수 없고, 따뜻한 숨결도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을 쥐어짜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138쪽

침대에서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는 마릴라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앤이 공부를 위해 집을 떠났고, 앞으로 독립할 것을 생각하면 마릴라의 마음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면서 헤어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넌 이곳 에이번리의 앤이야. 초록 지붕 집의 앤이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말이다.’ 라고 책은 마무리 되지만 앞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이야기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오래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봤으면서도 기억이 가물가물 해 다시 알고 싶어졌다. 이 책에 애니메이션으로 되어 있어 같은 그림의 책으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출간되고 있는 만화를 구입해서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 이번 기회로 빨강 머리 앤을 다시 만나보려 한다. 사랑스런 앤의 세계를 맘껏 누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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