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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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두 가지 삶이 주어진다면 어떤 쪽을 선택하겠는가. 타인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이코패스 독재자의 삶. 게다가 이 독재자는 건강하게 장수하기까지 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어찌보면 단순한 질문이다. 마음껏 세상을 좌지우지하는데 암살당할 위험조차 없는 독재자의 삶이 한 번 사는 인생의 ‘가성비’ 측면에서 유리한 선택이 아닐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독립을 위해 일가 전체의 재산과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 자신과 그 후손이 어떻게 살게 됐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처절한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단지 옳다는 이유로. 단지 그런 행동이 선하다는 이유로.

 

‘효용성’을 따지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 과연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철학하는 심리학자 스벤 브링크만이 책「철학이 필요한 순간」전체를 통해 묻는 질문이다. 저자의 답은 정해져 있다. 그 답은 물론 ‘아니다’다.

 

 

저는 삶의 의미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얻기 위한 도구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과 그 자체를 위해 몰두하는 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p.13

 

저자는 의미있는 삶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 ‘도구화’를 경계한다. 책에서 말하는 도구화란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들이 다른 것들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처럼 취급되는 현상’(p.13)을 말한다. 이상적인 삶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돈을 벌려고 애쓰지만 종당에는 돈을 벌려는 목적은 잊은 채 돈만을 숭배하게 되는 것과 같다. 도구주의적 사고는 각자의 삶마저도 가치를 매겨 서로를 비교하고 우위를 판단하려 한다. 이러한 도구화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록 ‘쓸모’를 따지자면 실용성이 없지만 삶의 도구화를 피하기 위해선 삶의 방식으로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철학적 삶의 초점은 우리가 가진 꿈이나 욕망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그 꿈이 우리의 짧은 삶에 비추었을 때 과연 추구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기 때문이다.p.235

 

책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삶을 위한 관점’ 10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1.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선이다(아리스토텔레스)

2. 존엄성은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칸트)

3. 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다(니체)

4. 자기란 관계 그 자체와 관계하는 관계다(키에르케고르)

5. 진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진실할 수 있다(아렌트)

6.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의 삶 무언가를 손에 쥐는 일이다(로이스트루프)

7.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머독)

8.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데리다)

9.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카뮈)

10.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몽테뉴)

 

책에 제시된 철학자들의 말들의 단편만 읽고서는 이 말들이 의미있는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들 철학자에 대한 얼마간의 이해가 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저 대단한 철학자들의 명성만으로도 목차에서부터 난해함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장점이 여기서 발휘된다.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같은 철학자의 말을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해준다. 또 목록에 나온 철학자 외에도 비슷한 주장을 한 철학자를 소개하고 각각의 주장이 어떻게 비슷하고 또 다른지 풀어 설명한다. 부담스런 철학자의 이름들에 무거워졌던 마음을 벗고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나중의 기억은 차치하고라도 책을 읽는 동안은 말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여러 관점 중 타인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남았다. 가성비를 따져서 나에게 득이 되는가, 이익의 크기는 얼마인가를 따지는 주관주의에서 쉽게 간과되는 부분이다. 책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전제로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인간다운 인간은 조직된 사회나 공동체 안에서만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구조 안에서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람이 될 수 있다’(p.52)고 말이다. 윤리 교과서에서 본 듯한 이 말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다. 자기 이해와 자아 성찰 조차도 혼자서는 제대로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자기 성찰만 해서는 결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p.120

 

취향의 존중, 중요하다. 개인의 행복, 이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유한한 인간의 생을 감안할 때 좀 더 의미있는 삶은 무엇일까. 저자는 자신의 제안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며 이를 바탕으로 과연 의미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해보자고 권한다. 주관성과 도구화의 늪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존재인 인간을 인식하고 마땅히 추구해야할 미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말이다.

 

 

우리는 단순히 행복을 최대한 많이 얻는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사람들과의 복잡다단한 진짜 관계 속에서 말이지요……그리고 삶의 의미는 경험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다고 말하지요. 의미 있는 삶은 오직 우리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 활동에 참여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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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
신소영 지음 / 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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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비혼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마흔 넘으면 세상을 다 알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당혹스러운, 어른이지만 아직 서툰 어른의 이야기입니다.(p.6)

프롤로그에서 신소영 작가가 말한 것처럼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는 비혼, 여성이라는 단어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때와 괜찮지 않을 때를 늘 왔다 갔다(p.283)'하며 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비혼, 중년, 여성에 대해 우려를 사칭한 충고를 핑계로 비혼, 여성의 결함이나 잘못을 지적하려는 편견을 접어둔다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공감’은 ‘공명’하는 것이다. 함께 울리는 것이다. 같은 톤의 소리를 내는 것이다. 상처는 상처로, 아픔은 아픔으로, 나약함은 나약함으로 말이다. 이는 상처를 얘기하는데 치유를 성급하게 꺼내들거나, 아픔을 얘기하는데 인내를 떠올리거나, 나약한 인간으로 만나고자 하는데 자신은 더 나은 인간이라고 여기는 교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닐까. 정용실, 『공감의 언어』 중에서(p.104)

정용실 아나운서가 『공감의 언어』라는 책에 쓴 글이 소개되어있는데 공감에 대한 정용실 아나운서의 말에 공감한다는 신소영 작가의 생각에 공감한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조언과 충고가 얼마나 성의 없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냥 재밌어서요.”
“꼭 쓸데가 있어야만 배우나요?”
말문이 떡 막혔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배울 수도 있는 것인데, ‘언어’는 어딘가 쓸데가 있어야만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 사고의 가난함이라니...(p.240)

작가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이유를 묻자 동료에게서 돌아온 대답이다. ‘재미있어서’라는 대답도 유쾌하고, ‘어딘가에 써먹을 수 있고 득이 되는 쪽으로만 결정하는’ 경제성만 따지는 선택을 ‘사고의 가난함’이라고 한 표현도 흥미롭다. 이 말에 공감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은 경제는 성장했지만 사고는 아직 가난한 모양이다. 사고의 가난함을 채우는 순간들을 쌓아나가면 삶은 더 다채로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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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타라 납치사건
데이비드 I. 커처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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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어린아이를 납치한 종교집단과 아이 가족의 이야기, 근대의 문턱에 선 국가의 변혁에 대한 이야기, 신과 정치가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순간의 이야기, 어린 시절을 빼앗긴 아이의 돌이킬 수 없는 정체성의 변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가 있다. 「모르타라 납치사건」이라는 책안에.

미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I. 커처는 특히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이 많다. 「중앙 이탈리아의 가족생활」, 「교황과 무솔리니」, 「유대인을 박해한 교황들」과 같이 이탈리아의 역사와 생활을 소재로한 책을 저술했다. 관심의 연장선에「모르타라 납치사건」이 있다. 즉 이 이야기는 역사 속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쓴 책이다.

 

1858년 6월 23일 수요일 해질 무렵, 볼로냐에 위치한 유대인 상인 모르타라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그 집의 일곱 아이 중 에드가르도를 데리러 온 것이다. 아이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밝혀졌으므로 이제 교황의 자녀가 되었다는 게 이유다. 무슨말인고 하니 볼로냐는 당시 교황령이었다. 즉 교황의 말이 법이고 경찰도 교황 소속이며 정치도 교황이 하고 있다는 말이다. 세례를 받으면 가톨릭 교도가 되는 것이고 가톨릭 교도는 이교인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르타라는 친부모의 품을 떠나 교황이 운영하는 교육시설로 옮겨져야 한다는 논리다.

교황이 나라를 다스리는 건 그것이 신의 뜻이기 때문이었다. 국민이 통치자를 직접 선택해야 하고, 원하는 대로 사고할 자유가 있어야 하며, 믿고자 하는 바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혁명적 관념-이런 관념은 교황이 보기에 단순히 잘못된 정도가 아니라 이단, 사탄의 소행이며 프리메이슨을 비롯해 하느님과 기독교의 온갖 적의 방해공작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세상은 신이 의도하신 대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진보는 이단이었다. p.12

모르타라 부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지만 지금 기준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 법이 그 당시 로마를 비롯한 교황령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부모 품을 떠난 적이 없는 아이가 도대체 언제 어디서 세례를 받았다는 말인가. 모르타라는 집요하게 아이가 세례받은 일을 파헤치고 무효화하고자 노력한다. 특유의 응집력으로 유럽 전체의 유대인이 이 가족을 도우려 한다. 당시는 사분오열돼 있던 이탈리아 영토의 여러 나라들이 통일 이탈리아를 세우고자 했던 시기이며, 국제 정세 또한 혼란스러웠다.

 

교황청에 의한 모르타라 납치 사건은 가톨릭과 유대인 집단에게 각각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고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오스트리아를 견제하기 위한 빌미로 모르타라 사건을 이용한다. 이탈리아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은 교황제의 억압성과 전근대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을 왜곡시킨다. 전 유럽이 이 사건의 향방에 촉각을 세우지만 어느 누구도 모르타라 가족과 에드가르도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자유주의 신문 <라 페르세베란차>가 명백히 광신도 풍자극으로 본 사건을 <일 카톨리코>의 독실한 편집자들은 신앙과 기독교가 적의 만행에 맞서 승리한 감동 실화로 해석한 것이다. 묘사한 상황이 그들의 상상 속에서만 일어났다는 점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p.359

에드가르도는 풀려나지 못한 채 가톨릭 교육기관에서 무려 12년의 교육을 받게 된다. 그 사이 교황령은 무너지고 사보이 가문을 수장으로 하는 통일 이탈리아 정부가 들어선다. 새로운 정부는 구세력의 대표적인 잔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에드가르도를 자유롭게 풀어주려 한다. 모르타라 가족은 꿈에 그리던 상봉을 기대하며 로마로 달려온다. 12년의 간극이 가족에게 가져온 끔찍한 변화는 어떤 결말을 가져왔을까.(이 부분이 스필버그가 영화화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시길.)

통일 이탈리아의 군대가 진격해오기 전에 교황의 로마지배가 종식되기를 바란 모르타라 가족의 기도는 오랜 기다림 끝에 1870년에야 응답을 받았다.……교황청 경찰이 볼로냐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에드가르도는 여섯 살이었다. 이제 그는 열여덟 살이었다. pp.476-477

나에겐 이 책이 세계사와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 일개 가족과 개인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지만 크고 작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가족이 찢기고 개인의 인생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는다. 개인의 정체성마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바뀌고 만다. 무엇보다 모르타라의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라는데 큰 울림이 있다. 흔한 말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다. 작가는 모르타라 가족의 서사를 풀어나감과 동시에 그 사건을 바라보는국가 내외의 다양한 시선, 가톨릭과 유대교인의 서로 다른 주장을 입체적으로 서술한다. 이 사건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뿐 아니라 교황청 관계자, 각국의 대사와 정치인들, 이탈리아 각지의 유력인사들의 진술 자료를 서사구조 사이사이에 체계적으로 직조하는 솜씨를 발휘한다.  수많은 자료를 한 줄기의 이야기 속에 매끄럽게 직조해 넣은 덕분에 숨 쉴 틈 없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모르타라 납치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탈리아 땅의 세계관이 뒤바뀌는 시기였다. 교황이 모든 것의 중심이던 시대에서 개인의 법앞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거대한 역사의 변화를 거스르려던 교황령의 사람들은 바티칸을 유지하는 선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구체제가 스러지는 와중에 부서져나간 개인의 삶은 어디서 되찾을 수 있을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유연하게 변화할 능력이 없는 집단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 집단이 크면 클수록 또 우리 삶과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이 휘청일 때 우리의 일상도 흔들린다. 그들이 제때 변화하지 못하는지 자신들의 특권만 움켜쥐려 변화를 거부하는지 제대로 지켜볼 일이다. 우리 삶이 함께 쓸려 내려가는 고통을 얼마간이라도 줄여보려면 말이다.

 

1997년에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던 책이 이제 와 출판된 이유는 소설보다 더 믿기 어려운 이 이야기가 영화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화계의 미다스의 손’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서. 주연배우 이름까지 책 날개에 명시되어 있는 걸 보면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출판된지 20년이 넘은 책, 그것도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이탈리아 근대사를 다룬 책을 출판되도록 만드는 영상화의 힘, 아니 스필버그의 힘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탈리아의 중세가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그 와중에 ‘모르타라’라는 이름의 개인이 겪은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지 영영 알 일이 없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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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이야기 과학과 친해지는 책 24
이지유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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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 책을 읽었다면 동물학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과학자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의 열혈 시청자였지만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동물 다큐멘터리로는 알 수 없는 신기한 이야기가 책안에 가득 들어있었다.

 

 

책을 처음 봤을 때 아프리카 이야기라는 평범한 제목을 흘려봤다. 큰 제목 글씨 앞에 붙은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가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그 땐 몰랐다. 이 책의 작가는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과학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과학 교양서를 냈다. 「공룡 이야기」, 「우주 이야기」, 「지구 이야기」, 「화산 이야기」, 「몸 이야기」, 「사막 이야기」 등, 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 시리즈다. 비슷한 어린이 과학책이 그렇듯 단순한 스토리에 과학지식을 엮은 책일까 싶었다.

 

별똥별 아줌마 이지유 작가는 2018년 12월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 등을 여행하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반 년만에 근사한 만듦새를 갖춘 책을 써낸 것이다. 작가가 직접 찍은 생생한 사진과 그림들로 눈이 즐거운 책이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응고롱고로 보존 지구, 만야라 호수의 생태를 주로 다루지만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지질 구조에 대한 이야기에서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인간도 다른 동물들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일 뿐이라는 게 실감 났어요. p.240

인간과 다른 언어를 사용할 뿐, 동물에게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어요. p.191

 

그림을 잘 그리는 아프리카 동물 박사 민우와 미래의 1인 방송 크리에이터 민지가 며칠간의 사파리 여행을 떠난다. 동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민우는 아프리카 동물에 대한 신기한 정보를 알려준다. 또 민지가 영상으로 잡아내는 야생 생태계의 특별한 장면들은 익숙해진 다큐멘터리 영상과 실제의 동물계다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는 이런 장면이 잘 나오지 않아요. 흥미를 끌 만한 자극적인 장면만 골라서 보여 주기 때문이에요. p.129

 

작가는 책 ‘1부 사파리 여행을 떠나요!’에서 아프리카에서 사파리 여행이 어떤 것인지, 사파리 여행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조심해야할 일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물론 사파리 여행의 가장 흥분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빠뜨리지 않는다.

 

'2부 세렝게티의 개성 만점 동물들‘과 ’3부 반전매력 요모조모‘ 부분에서는 탄자니아 최대 국립공원 동물들의 매력을 소개한다. 익숙한 동물들이지만 그들의 생김이 왜 그러한 모양새를 띠게 되었는지 또 동물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4부 대초원에서 배우는 동물행동학’ 에서는 동물 행동에 담긴 놀라운 숨은 의미를 연구하는 동물행동학을 소개한다. ‘5부 놀라운 새들’에는 습지에 사는 새들을 소개하면서 민지와 민우의 사파리 여행을 마무리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가 이야기 구조에 맞춰 찍은 사진들이다. 민지와 민우가 여행하는 이야기 또 설명하는 주변 상황을 보는 시선에 맞는 사진들이 같은 페이지에 제시된다. 때문에 이야기와 이미지가 걷돌지 않고 잘 어울려 흘러간다. 마치 독자가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즐기는 듯하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과학이 풀지 못한 생물계의 신비를 곳곳에 제시한 것이다.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체체파리가 줄무늬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날 때 울림통 역할을 해 천적의 눈에 쉽게 띄는 뿔을 코뿔새는 대체 왜 가지게 된 걸까? 거대한 하마는 어떻게 그렇게 멀리 떨어진 물웅덩이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걸까?

 

여행을 마친 아이들은 동물과 인간이 사는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둘 모두가 지구상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이 다른 생물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태도는 자신들의 생존도 위협하는 일이라는 사실과 함께. 자연과 동물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그들 나름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을 다잡는데 「별똥별 아줌마의 아프리카 이야기」가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물들이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들도 많다는 검이에요. 동물들이 사라지면 인간도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죠.……

이 모든 노력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랄 따름이에요. p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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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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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은 페미니즘 테마소설집이다. 비교적 근래에 활동을 시작한 작가 6명의 작품을 모았다. 출판계에 한 분야로 자리잡은 페미니즘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장르인 듯하다. 잘 알아보기도 전에 대놓고 불편해 하는 시선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또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국민의 절반 또는 세계의 절반이 몸담고 있는 생활이다. 뭔가 심정이 상하고 부정적인 마음이 들더라도 외면하고 살 수만은 없다. 범죄로 다루어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고 내 앞의 현실이다.

 

더 말안해도 될 법한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이후로 특별한 사건이 아닌 생활 속의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환기되기 시작했다. 할머니 세대, 어머니 세대에는 당연시 되던 생활이 왜 당연한 것이 아닌지를 어렴풋이 알아채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의 그런 말들, 저런 행동들이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새벽의 방문자들」도 그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책 뒷표지의 말처럼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여섯 편의” 불편하지만 일상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2018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장류진 작가의 「새벽의 방문자들」이 표제작이다.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여자’의 집 초인종을 새벽마다 울리는 남자‘들’이 있다. ‘여자’는 그들이 성매수를 위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느 날 익숙한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결혼을 하자며 핑크빛 미래를 속삭이던 남자. 작가는 여성의 대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도 성매수에 대한 대화는 어떤 자리에서는 스스럼없이 오가는 주제일 것이다. 작가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비뚤어져 있는 지점을 짚어준다.

 

솔직히, 여성과의 관계를 돈 주고 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게 어떤 형태였든 별로 인간 취급을 해주고 싶지가 않다. 여자를 구매 가능한 서비스 재화로 취급하는 사람을, 왜 나는 인격체를 가진 안간 취급을 해줘야 하지? p.40

 

2016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하유지 작가는 「룰루와 랄라」에서 약간의 희망을 보여준다. 함께 사는 비정규직 남자와 프리랜서 여자는 자주 마주치는 한 동네 여자 ‘룰루’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여자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공장에 취직한다. 불합리한 공장 생활에 치이던 중 침울해 보이기만 하던 룰루의 사연을 알게 된다. 작가는 침묵을 강요당하는 현실과 사람이 주는 용기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침묵해야 하고 지울 수 없는 기억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 자들이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정지향 작가는 2014년 활동을 시작했다. 「베이비 그루피」에서 작가는 ‘그루피’라는 말 그대로 밴드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그린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베이비’라는 말이다. 미성년. 그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틈도 없이 밴드의 구성원들에게 휘둘린다. ‘나’는 우연히 알게 된 밴드 멤버 P와의 관계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 지 고민한다. ‘나’는 ‘그루피’라는 단어에서 자신 정체성을 확인한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거모아도 설명되지 않던 한 시절이 그 단의 발견과 함께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p.135

그 시절의 우리는 자기감정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p.137

「예의 바른 악당」은 2009년 데뷔한 박민정 작가의 단편이다. 「아내들의 학교」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줬던 터라 반가웠다. 이번 단편에서 작가는 대의를 쫒는 자들이 주변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지들과 정의를 추구하지만 연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연인, 나를 위해 많은 것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친절이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친구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라는 말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일 수 없었다. p.188

 

200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현 작가의 「유미의 기분」은 스쿨미투를 소재로 한다. 교사인 형석은 수업시간에 생각없이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농담을 하고 학생 유미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를 따져 묻는다. 게이인 형석은 소수자로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스쿨미투를 감행한 유미의 기분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는 차별받는 입장에 서보지 못한 자들의 오만을, 또 그들의 사과가 어떠해야할지를 이야기한다.

 

형석은 유미의 말을 계속 들었다. p.225

 

작가 김현진(1999년 작품활동 시작)은 「누구세요?」에서 이 소설집에 등장한 인물 중 가장 특이할 만 한 캐릭터를 소개한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로 권고퇴직당한 여자 친구를 자신의 미래 계획에 차질을 주었다면 차버리는 남자말이다. 여자는 사회생활하면서 그만한 일은 감수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말’도 한다. 게다가 함께 모은 결혼자금은 맞벌이 부부의 꿈을 깬 위자료라며 가져간다. 그들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는 모르겠다. 작가의 말대로 ‘자신을 약자의 위치에 놓아볼 상상력이 없는 어떤 남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쯤 성찰할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랄 뿐이다.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군인들 중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려는 정책을 취하자 수많은 이성애자들이 분개했는데, 이것은 ‘공포’에 가까웠다고 한다. 늘 이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아온 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성적 대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p.266

 

이야기가 길어졌다.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었다. 이런 소설을 써줘서 고맙다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들,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이야기들, 하지만 응어리와 수치심이 얽혀 파묻힌 이야기들. 우리의 이런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우리의 생각을 더 해부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책에 실린 단편에서 한 발 씩 더 나아간 이야기를 지치지 말고 들려달라고 당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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