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샵 여신 읽기의 즐거움 34
제성은 지음, 국민지 그림 / 개암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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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아이들 장래희망 1순위이던 때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꿈은 아마도 돈에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지 싶다. 누군가의 주목을 받고 싶고 선망의 대상이 되고픈 아이들은 아마도 연예인의 꿈을 더 많이 꾸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여자아이들이라면 걸그룹을 가장 많이 희망할 것이다.

 

「포토샵 여신」은 아이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걸그룹이 되고 싶은 지안이는 뛰난 춤실력을 갖췄음에도 외모가 고민이다.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연예인 몸매와는 거리가 먼 듬직한 체격이기 때문이다. 전학오기 전의 학교에서는 나름 춤실력으로 인기가 있어지만 지금의 학교에서는 외모로만 평가될 뿐이다. 지안이가 외모가 아닌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지안이에게 포토샵 달린 혜림이가 나타난다. 혜림이는 사진관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사진 보정기술을 익혔다. 자신의 사진은 물론이고 지안이의 사진도 몰라보게 아름답게 변신시킨다. 혜림의 꿈 역시 연예기획사에 발탁되어 걸그룹이 되는 것이다. 혜림이가 보정한 지안이의 사진이 우연히 기획사에게 선택되어 오디션의 기회가 찾아온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잡았지만 몇 일안에 외모를 바꿀 수는 없는 일. 지안이는 어떻게 오디션을 봐야할지 고민에 빠진다.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얼굴을 바꿔서라도 오디션을 보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잘 묘사되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디션을 가고 싶지만 이 얼굴 이 몸으론 실력을 보여주기도 전에 탈락할 것이라는 걸 아이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실력은 둘째고 외모가 우선 평가되는 업계를 꿈꾸는 아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그 문을 통과해 만인의 선망을 받는 사람은 기껏 손에 꼽을 정도다. 대다수의 연예인 지망생들은 희망고문을 당하며 시간과 재능을 탕진하기 일쑤다. 외모 지상주의를 하루 아침에 바꿀 수도 없는 일이고 아이들의 희망을 이용하는 업계가 변하기를 바라기도 힘들다. 소수의 빛나는 ‘스타’를 꿈꾸는 아이들이 보통의 현실에 연착륙하게 도울 방법은 무엇일지 생각이 많아졌다.

 

지안이에겐 자신의 용기와 노력을 높이 평가해주고 좌절하지 않게 격려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청소년기 아이들에겐 이런 친구가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친구가 곁에 있을 때 아이는 힘을 얻는다. 지안이도 혜림이의 위로에 힘을 얻고 실력만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일 기회를 만들어 낸다.

 

“음…… 너는 아이돌이 되려고 춤도 열심히 연습하고, 용기를 내서 오디션도 보러 왔잖아. 내가 보기에 그냥 얼굴이 예쁘기만 한 사람들보다 네가 훨씬 멋지고 아름다운 것 같아.” pp.103-104

 

아이들 모두가 가짜 외모가 아닌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을 아름답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스스로 쌓은 노력과 실력으로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어른들이 많다면 아이들의 생각도 더 나은 방향으로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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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이순신 큰곰자리 48
김온 지음, 이수영 그림 / 책읽는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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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를 지키는 칼이나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칼이나 뭐가 다르냐?” p.62

 

나라를 지킨 이순신이 요리도 잘 한다면? 책「요리하는 이순신」이 쓰게 된 아이디어 아닐까? 따로 작가의 말이 붙어 있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처음 든 생각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난국에 이순신이 필요했다면 주인공 소년 이순신은 어떤 어려움을 해결하게 될까.

 

5학년 이순신 어린이는 진짜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다. 덕수 이씨 25대손이라고 할머니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이름도 똑같이 지었다니 언감생심 이런 손자가 부엌일을 하게 둘리 만무하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이순신은 요리에 대단히 관심이 많다. 아침을 못 먹고 학교에 오는 단짝 친구들을 위해 매일 간식 도시락을 준비할 정도다.

 

순신이의 요리 솜씨는 대단했다. 냉장고를 한 번 열어보는 것만으로 남은 식재료로 무슨 음식을 만들지 척척 생각해내니 말이다. 친구들의 식성과 상황을 고려한 요리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재료의 배합과 색의 조화까지 신경쓴다. 채소를 싫어하는 친구를 위한 요리, 한약을 먹고 있는 친구를 위한 요리. 같은 색깔이 섞이지 않도록 재료를 대체하는 재치. 그야말로 요리사급의 정성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할머니다. 순신이의 할머니는 귀한 손자가 요리하는 걸 무조건 반대한다. 부엌에 얼씬거리는 것만 봐도 역정을 내실 정도니 요리하고 싶은 순신에겐 이보다 큰 장애가 없다. 순신은 할머니가 아기를 낳은 고모댁에 가느라 집을 비운 사이 요리대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할머니 말고도 순신에게 닥친 역경이 또 있으니 이유없이 순신을 괴롭히는 같은 반 성룡이다. 순신은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고 큰소리 나는 일이 생기는 것도 싫다. 하지만 매번 자신에게 딴지를 거는 성룡땜에 학교 생활이 괴롭다.

 

사고로 아빠를 잃었지만 구김없이 자란 순신이 대견하다. 요리를 잘했던 아빠를 따라 요리에 관심이 많고 어린 동생도 잘 보듬는다. 바쁜 엄마를 잘 돕고 이해하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순한 아이가 꿈을 막는 할머니와 괴롭히는 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도 유독 자신을 걸고넘어지는 성룡이가 원망스러웠다. 아니, 정확히 어제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라면과 콩나물 봉지를 들고 서둘러 뛰어가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화도 나지 않았다. pp.76-77

 

순신이는 그 누구와도 부딪히기 싫었다. 타고난 성격 탓도 있지만, 그 사건이 있을 뒤로는 더더욱 그랬다. p.92

 

순신은 자신의 특기인 요리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다. 심술궂던 친구의 마음을 녹이고 남자답지 못한 일을 한다며 꾸지람하던 할머니도 설득한다. 순신은 어떤 마법의 요리 기술을 발휘한 걸까? 섬세하게 재료를 고르고 재료간의 조화를 생각할 줄 아는 순신은 가족과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도 다르지 않다. 그 따뜻한 마음이 어려움을 뚫고 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큰소리가 나거나 심각한 분위기를 순신이는 유독 견디기 힘들었다. 가슴이 빠르게 뛰고 숨쉬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지금도 순신이는 아무런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이 맛있게 배를 두드리던 장면에서 필름이 멈추길 바랐듯, 이번에도 부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길 바랐다. pp.94-95

 

그동안 오랜 시간을 이렇게 혼자 지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아파 왔다. p.130

 

어쩌면 성룡이는 혼자 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무섭고 어렵기만 했던 성룡이가 어느새 순신이 마음속에 성큼 들어와 있었다. pp.112-113

 

요리대회에 나간 장면에서는 함께 긴장하고, 아빠 제사를 지내지 못할 뻔한 상황을 해결한 순신이 할머니와 통화할 때는 감동했다. 이순신 장군이 칼을 들고 나라를 지킨 것처럼 순신은 부엌칼을 들고 가족의 건강과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로 마음먹는다. 요리가 남자답지 못하다는 편견은 이제 유통기간이 지났다. 순신의 창의적인 요리의 맛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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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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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용 책으로 알려졌던 「걸리버 여행기」의 풀버전이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동안 읽지 않았다. ‘풍자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내 개념으로는 ‘풍자’는 곧 ‘웃긴 이야기’였다.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가 살았던 17세기 당대를 웃기게 쓴 책에 관심이 없었던 게다. 호기심이 생긴 계기는 ‘라퓨타’와 ‘야후’ 때문이다. 이 두 단어 모두 출처가 「걸리버 여행기」였다.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와 지금은 잊혀진 포털 ‘야후’의 이름이 모두 이 책에서 나왔다니. 대체 「걸리버 여행기」에는 무슨 얘기를 하는 책일까.

 

‘완역’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 중 검색 상위에 나오는 책을 몇 년전에 읽었다. 익숙한 거인국, 소인국을 다룬 장도 흥미로웠지만 그 뒤의 내용은 책의 진가를 깨닫게 했다.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을 이 세상에 없는 세계를 배경으로 현실보다 더 실감나게 그리고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이런 저런 「걸리버 여행기」와 관련한 주변 내용을 찾아보며 읽다보니 번역이 눈에 걸렸다. 잘 이해안되는 대목을 원문(프로젝트 구텐베르크)과 대조하게 하던 중 내가 읽고 있는 번역이 실망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서지를 보니 초판이 1992년. 그 긴 세월동안 교정한번 안한 책이었다. 다른 믿을 만한 번역으로 다시 읽고 싶었다. 새 번역을 기다렸다.

 

9월 초 「걸리버 여행기」가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로 나왔다. 번역자 이름을 가장 먼저 확인했다. 전문 번역가 이종인. 「숨결이 바람될 때」, 「로마제국 쇠망사」, 「리비우스 로마사」등으로 번역에 대한 신뢰감이 두터운 분이다. 특히 역사에 대한 지식이 남다른 번역자로 알고 있어서 작품 해설까지 기대됐다.

 

이번 현대지성 판의 장점은 대부분 역자에게서 기인한다. 매끄러운 번역은 기본이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기 위해선 작가가 살았던 시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작품의 인물이나 장소, 사건 등이 그 시대의 특정 소재를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상상의 이야기로만 읽어도 재밌는 책이다. 작가의 섬세한 묘사 덕에 거인국, 소인국에서의 생활이나 라퓨타 섬에서의 모험 등이 생생하다. 하지만 비유의 대상을 알고 읽을 때 더 큰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역자는 각주를 충실히 달아 이런 비유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덕분에 17세기 영국사를 한 번 정리하는 효과를 얻었다.

 

책 뒤에 붙은 해제와 작품해설은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일대기와 함께 그가 출판한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 들어있다. 작가에 대해 잘 알게 됨은 물론이고 그가 어떤 정치적, 종교적 성향을 가지고 저술에 임했는지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해제 부분을 읽고 번역자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스위프트가 비밀결혼했다고 알려진 에스터 존슨에 대한 부분 때문이다. 타 번역본에서는 에스터 존슨과 스텔라를 두 명의 인물로 다루고 있었다. 에스터 존슨은 후에 스텔라로 불렸으며 스위프트와 평생지기로 사후에도 나란히 묻힌 인물이다. 이런 오류를 담은 책이 수십 쇄를 찍었다.

 

걸리버의 여행 중 두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죽은 자들을 소환해내는 마법사의 섬 글럽덥드립과 럭낵의 스트럴드브럭 이야기다. 글럽덥드립에서 역사적 인물 수백명을 만나는 내용이 내겐 거인국, 소인국 여행보다 흥미진진했다. 눈앞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전쟁과 한니발의 행군을 보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메로스와 담소를 나누는 호사를 누린 걸리버가 부러워지는 장면이었다. 이로써 걸리버 머릿속의 고대사와 현대사는 수정된다. 진실은 언제나 직접 대면하기 누추한 경우가 다반사인 모양이다.

 

세상의 위대한 사업과 혁명의 근원과 동기를 알게 되고, 그런 일의 성공이 한심스럽게도 우연에 불과했다는 점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느낌 인간의 지혜와 지성에 대한 실망은 얼마였던가. pp.244-245

 

죽음과 영생에 대한 스위프트의 통찰을 볼 수 있는 스트럴드브럭 이야기는 내게도 질분으로 남는다. 젊음 없는 장수가 과연 바람직할까. 겉모습은 건강할지라도 나이 들수록 경직돼가는 정신과 마음은 후손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세월만큼 현명해지는 일은 희귀한 것인데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는 탐욕은 어찌해야 할까.

 

부와 건강을 지닌 채 한창 젊을 때의 육신을 한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문제는 고령에 수반되는 일반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영생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괴로운 상태로 불사의 몸이 되고자 소망하는 자는 거의 없겠지만, 앞서 말한 두 왕국, 그러니까 발니바비와 일본에서 저는 모든 사람이 조금이라도 죽음을 뒤로 미루고 최대한 늦게 죽음과 마주하길 원하는 걸 봤습니다. p.260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탐욕은 고령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니만큼 죽지 않는 그들이 온 나라를 그들의 손아귀에 거머쥐고 국가 권력을 독점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욕심만 많았지 관리 능력은 거의 없으므로 필경에는 나라는 멸망하게 만들 것이다. p.264

 

가장 서글펐던 대목이다. 죽지 않는 인간 스트럴드브럭과 독서에 대한 부분이다. 내 독서수명은 얼마나 남았을까. 지금도 이미 스트럴드브럭이 돼있는건 아닐까.

 

같은 이유로 그들은 책을 읽으면서 절대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한 문장을 읽더라도 끝부분에 도달하면 처음 읽었던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런 결점으로 인해 그들은 기억이 좋았더라면 누렸을 수도 있는 단 하나의 오락마저도 빼앗기고 맙니다. p.262

 

스위프트는 요즘 시국에 필요할 듯한 해법도 제시해준다.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처치같은데 이런 정밀한 기술을 가진 의사가 없는 게 아쉽다.

 

그는 당쟁이 격렬할 때 이를 중재하는 훌륭한 방법도 고안해냈다.……그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반쪽 뇌 두 개가 하나릐 두개골 안에서 화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곧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어 중용은 물론 생각의 일관성까지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중용과 일관성은 자신이 세상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통치하고자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머리에 꼭 생겨났으면 하는 자질이기도 하다. 정당 지도자들의 뇌 용량이나 품질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이 의사는 자신이 아는 바에 의하면 아주 사소한 차이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p.231

 

「걸리버 여행기」를 동화로만 읽기엔 아깝다. 설정은 동화에서 시작하지만 읽다보면 결코 풍자만은 아닌 맨살의 사회를 보여준다. 가상의 이야기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는 것이 오히려 안심될 정도로 인간 그리고 사회의 실상을 말한다. 17세기 영국에 대한 풍자에 현재의 우리가 변함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인간과 사회는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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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동시로 시작하는 초등 인물 한국사
금해랑 지음, 노성빈 그림 / 개암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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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인물 한국사」는 역사를 처음 배우게 되는 어린이가 보면 좋을 인물 한국사 책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교과서 속 주요 인물 55명을 수록하고 있다. 지루해지기 쉬운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정리한데다 각 인물을 소재로 한 동시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

 

초등 아이들이 보는 역사책의 내용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얼마나 흥미를 갖고 집중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리라고 본다. 이 책의 장점은 동시로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내는데 있다. 처음 단군을 소개하는 부분을 예로 들어보면 앞부분의 동시에서 단기와 개천절의 의미를 묻는다. 이어 두 가지를 모르면 단군 할아버지가 섭섭하실 거라고 얘기한다. 그 다음 페이지에서 시의 질문들을 해결하면서 고조선을 세운 단군에 대한 신화와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식이다.

 

책은 입말체로 쓰여져 읽기에 수월하다. 무령왕은 셀카 대신 돌판에 이름을 남겼고, 말싸움은 서희를 못 당한단다. 장영실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고 정약용은 조선의 다빈치란다. 태조와 이성계가 같은 사람이냐는 대목은 역사에 대한 아이들의 생소함을 알아주는 저자의 재치가 빛나는 부분이다. 마치 친절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조근조근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곁들여진 삽화와 함께 읽어나가다 보면 역사책이라기 보단 옛날 이야기 책을 보는 기분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도 풍성하지만 지식책으로서의 본분도 잊지 않았다. 각 인물의 설명을 시작하는 페이지 상단에 해당 인물이 속한 시대를 표기했다. 이야기에 빠져 인물의 역사적 맥락을 잊지 않도록 도와준다. 또 아이들에게 익숙지 않은 단어는 각주에 의미 해설을 달아놓았고 관련된 주요한 유물의 사진도 충실히 담았다. 무령왕 부분에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제관식을, 문익점을 소개하면서는 목화솜에서 씨앗을 빼는 기구 씨아의 사진을 싣고 있다.

 

역사적 인물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설명도 알차다. 근초고왕이 발간했다는 백제의 첫 역사책 《서기》를 소개한다던가 백범일지의 사료로서의 의미를 설명한다. 유관순 열사 부분에서는 의사와 열사의 차이를 알려주고 있다. 얼핏 스쳐지나가서 정확한 의미를 새기기 어려운 부분까지 꼼꼼히 다져주는 책이다.

 

200페이지가 넘는 부피가 아이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맥락을 이어가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꼭 이어서 읽을 필요는 없다. 아이와 함께 하루에 한두 사람씩 역사 속 인물에 대해 읽어 보면 어떨까. 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역사 속 인물과도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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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썸머 롱 : 나의 완벽한 여름 네버랜드 그래픽노블
호프 라슨 지음, 심혜경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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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야자나무가 무성한 가운데 노을 진 태양을 등지고 비나가 전기기타를 연주한다.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에 가려진 소녀의 얼굴은 어떤 표정일까.

 

호프 라슨 작가의 「올 썸머 롱」은 열세 살 소년소녀의 여름방학나기 이야기다. 비나와 오스틴은 어린시절 최초의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단짝이다. 키 크고 쾌활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 비나, 덩치는 작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오스틴. 이젠 어린아이의 놀이가 재미없어진 중학교 첫 여름방학, 옆집 사는 절친 오스틴은 축구캠프에 가버리고 비나 혼자 남는다. 여름방학 내내 함께 놀며 쌓아가던 ‘여름유잼지수’도 안녕이다. 여전히 단짝 친구지만 왠지 모르게 전과는 달라진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책은 두 아이의 특별할 것 없는 여름 한철을 보여준다. 할 일없이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옆 집 언니와 돌아다니고 멀리 살던 오빠의 방문을 받는다. 큰 사건 없는 스토리지만 청소년기에 느낄 법한 미묘한 마음들이 잘 드러나 있다. 문자에 답이 없는 친구의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그렇게 연락을 기다리게 한 친구가 막상 다른 친구와 시간을 보낸 걸 알게 될 때의 서운함 같은 것들 말이다. 또 오스틴의 누나 찰리가 남자친구와 썸을 타는 과정을 보며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 되기도 한다.

 

 

비나 이야기 중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비나 오빠의 입양 소식이다. 비나의 오빠는 동성커플로 갓 태어난 아기를 입양할 예정이다. 부모 모두 이런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미국 사회에서 당연한 문화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아직 낯선 이야기다. 비나의 가족은 다 같이 모여 오빠의 입양을 축하하고 아기를 반긴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아이들은 친구를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기도 한다. 오스틴은 비나에게, 비나는 오스틴에게 서로의 장점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다. 비나는 오스틴의 말에 힘을 얻어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설 멋진 계획을 세운다. 모든 아이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잠재력을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 일깨워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찾아 길을 나설 수 있다. 비나에게는 오스틴이 그런 사람이다. 비나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선다. 가족과 친구의 따뜻한 응원이 있음은 물론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비나의 마음을 잡아준다. 아이를 언제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잘 아는 부모들이다. 그들은 그저 함께 있어주면 되는 순간인지 뭔가 말을 건네야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다. 그 정도가 청소년기 자녀의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닌가 싶다.

 

가깝던 친구와 왠지 서먹해지고 사이가 멀어진 것처럼 느끼는 아이,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궁금한 아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또 청소년 아이가 친구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에 공감해보고 싶은 부모들도 한 번쯤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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