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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우즈
린다 라 플란테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7월
평점 :
한 날 한 시에 세 여자의 남편이 죽었다. 세 명의 미망인. 그것도 실패한 현금수송차량털이범의 미망인이다. 졸지에 남편없는 삶이 들이닥친 것도 모자라 남편들이 가담했던 범죄 수사까지 감당해야 한다. 나름 평탄했던 삶이 이렇게 급작스레 꼬이기도 힘들 듯하다. 설상가상으로 주동자였던 해리 돌린스가 작성한 장부를 내놓으라는 조직의 압박이 시작된다. 미망인은 아니 미망인들은 선택 앞에 선다. 장부를 공개하고 조직에게 당하느냐 혹은 장부의 또다른 계획에 따라 현금수송차량을 털어 자금을 마련해 도피하느냐. 그녀들의 선택은 무려 현금수송차량 절도.
이야기가 폭포수처럼 흘러간다. 남편들의 범죄가 사고로 치닫는 순간에서 시작한 소설은 등장인물의 시점을 건너 뛰어가며 쉬지 않고 결말을 향해간다. 잡으려는 자와 도망가려는 자가 닿을 듯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스쳐간다. 삶의 밑바닥에서 도망치려는 미망인들, 해리의 장부를 쫒는 조직의 아니와 장부를 손에 넣은 돌리, 쫒는 경찰 레스닉과 그림자 조차 숨긴 해리, 해리의 흔적을 쫒는 돌리와 오로지 돈을 쫒는 해리.
이야기의 중심에는 해리와 돌리가 있다. 얼핏 성실한 가장으로 보이는 해리는 범죄 조직의 냉혹한 보스다. 돌리는 해리를 순정적으로 사랑했다. 그의 실체가 무엇이든 둘 사이엔 남들이 알 수 없는 끈끈한 무엇이 있다고 믿는다. 현금수송차량털이에 실패하고 전소된 차량에서 해리의 손목시계만 간신히 남았을 때 돌리의 세상은 무너졌다.
마음속 아픔을 멈출 수만 있다면 뭐라도,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경찰은 해리의 시신이 너무 심하게 손상되었다며 보여주기 않았고, 도리는 마음 한구석에서 경찰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놈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녀는 확신했다. p.10
돌리를 해리에게 이끈 것은 번쩍이는 E타입 재규어 자동차도, 잘생긴 얼굴이나 매력도 아니었다. 물론 그런 점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그들의 교감은 그보다 훨씬 깊은 것이었다. p.17
사랑하는 남편 해리가 남긴 장부에는 이루지 못한 계획이 들어있다. 돌리는 해리가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루어 남편과 가까워지려 한다. 여기에 다른 미망인들이 엮여들고 제 4의 인물 벨라가 합류한다. 4명의 여성들은 각각 사건에 참여하는 이유가 다르다. 사랑 그리고 돈.
갑작스레 예비 범죄자가 된 여자들 앞에는 처절한 준비과정이 펼쳐진다. 각종 장비를 스스로 준비하고 무거운 돈 배낭을 옮기기 위해 체력도 안배해야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들을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경찰과 조직의 눈을 속이면서 해내야한다. 리더 돌리의 지휘 아래 모든 준비는 착착 진행되지만 여자들 간의 믿음이 계속 흔들리는 가운데 해리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다. 해리의 준비된 배신을 알게 된 돌리는 계획을 끝까지 실행할 것인가.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해리라는 인물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랑도 아닌 의심스런 핏줄에 대한 집착 때문에 평생 쌓은 영국에서의 삶을 모두 버리고 스페인으로 탈출을 꿈꾸다니. 게다라 유전자 검사 한 번이면 끝날 의혹을 계속 여자에게 하는 질문으로 끌고 가다니. 1980년대 드라마를 소설화한 작품의 한계일까. 또 해리가 가진 돌리에 대한 증오의 감정도 혼란스럽다. 자신이 실패한 사건을 보란 듯이 성공시킨 여자에 대한 열등감인지, 자신이 배신한 돌리에 대한 죄책감이 엉뚱하게 폭발하는 것인지 또는 자신이 보스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풀이인지. 이 모든 감정이 해리가 돌리를 그토록 증오할 수 있는 이유가 될까. 의문이다.
해리는 두 손에 머리를 묻고 거실을 오락가락하며 감정의 소용돌이와 싸웠다. 자신이 실패한 일을 해낸 돌리가 증오스러웠다. 돌리에게서 모두 빼앗아 누가 보스인지 보여주고 싶었다.……하지만 자식 같은 울프를 정말로 잃었다면, 그러서는 돌리의 뒤통수를 치는 일에서 죄책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p.388
인생을 걸고 난생처음 범죄자가 될 결심을 한 여자들은 마음이 통하기까지 지독한 어려움을 겪는다. 서로를 향한 신뢰는 계속 엇갈리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심은 계속된다. 의심의 대상은 주로 돌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린다. 셜리, 벨라와 달리 돌리가 현금털이범이 되어야할 이유가 납득키 어렵기 때문이다. 돌리는 계속 의심받는다. 해리와 짜고 나머지 여자들을 배신하려는 건 아닐까. 아니면 혼자서 돈을 갖고 튀려는 건 아닐까. 모두가 돌리에게 이용만 당하는 건 아닐까. 왜 아니겠는가. 눈앞의 사건으로 최소 무장강도, 잘못하면 무장강도살해범이 될 테니 말이다. 허나 여자들은 위험을 잘 헤쳐 나간다. 마지막에 터뜨리는 샴페인이 시원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아직 살아있는 해리, 돌리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해리 덕에 속편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쉴 새 없는 이야기의 소용돌이에 눈길을 맞기고 보니 저녁나절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위도우즈」는 큰 고민없이 영화 한 편 보듯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잡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