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전의 폭풍 - 로마 공화정 몰락의 서막
마이크 덩컨 지음, 이은주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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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같은 제목의 역사서다.「폭풍 전의 폭풍」. 어떤 폭풍 전에 무슨 폭풍이 있었단 말인가. 부제에 따르면 책은 ‘로마 공화정 몰락의 서막’을 다룬다. 아우구스투스의 등극을 제정 시작으로 볼 때 공화정 몰락이란 그 바로 전인 카이사르의 시기를 말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공화정을 침몰시킨 카이사르의 폭풍이 일기 이전의 시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로마가 카르타고를 무너뜨리고 세계 제패의 막을 연 기원전 146년부터 카이사르 직전의 로마 일인자 술라의 죽음(기원전 78년)까지다.

 

로마사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제정의 화려한 모습과 건축물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공화정 시기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공화정 시기의 사건이라면 한니발로 유명한 포에니 전쟁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까. 저자는 공화정 말기, 그것도 익숙한 이름 카이사르가 등장하기도 전의 기간에 관심을 가진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특히 이 시기는 현대 공화주의 체제의 취약성을 의심하며 카이사르 세력의 부상을 경고의 메시지로 바라보는 지금의 우리에게 더없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애초에 로마 공화정이 재앙 직전 상황까지 가게 된 과정을 다룬 저작물은 훨씬 적다. 아마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 사회와 관련이 깊은 문제일 텐데 말이다. p.24-25

 

저자는 카이사르의 공화정 파괴가 한 사람의 결단으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앞선 한 세기 동안 진행돼 온 방향이라고 말한다. 작금의 미국을 로마사 연대표에 대입해본다면 ‘위대한 정복 전쟁과 카이사르의 부상 사이 어디쯤’이라고 말하며 이 시기에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밝힌다.

 

카르타고 멸망과 카이사르 등장, 그 사이엔 어떤 일이 있었고 누가 주역일까. 우선은 3차 포에니 전쟁을 끝내고 카르타고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린 푸블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흔히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면서 로마의 미래를 예견했다는 시적인 장면으로 알려진 인물인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책에서는 전쟁 이후 그의 정치 인생을 서술하고 그에 대한 색다른 평가를 제시한다.

 

그의 경력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암시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이밀리아누스 본인은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떠났다. p.113

 

아이밀리아누스는 민회의 군중심리를 이용해 정치적 장애를 제거하는 기술, 사적으로 군단을 모집하는 선례를 남기면서 이후 마리우스, 술라, 카이사르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반면 권력이 평민에게로 기우는 시점에 원로원의 기호에 맞는 주장을 펼쳤다. 민중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고 그 자신이 자신의 불찰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했다.

 

저자는 이처럼 공화정이 내리막을 달리는 시기의 인물들 면면을 새롭게 보여준다. 그라쿠스 형제, 마리우스, 술라가 이 폭풍의 주인공이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에서 술라까지 차례로 권력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또 밀려났다. 민중을 위한 혁명가로 알려진 그라쿠스 형제가 혁명에 목을 매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로마 군단을 징집제에서 모병제로 바꾼 군사개혁가 마리우스는 어떻게 로마를 끝장낼 뻔 했는가. 잔혹한 종신독재관 술라가 돌아가자고 주장한 공화정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책 속의 까만 글자로만 존재하던 인물이 순간순간 죽음을 내건 판단에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기뻐하는 생명체로 느껴진다.

 

‘모스 마이오룸 mos maiorum'은 ’선조들의 관습‘을 말한다. 공화정 시기의 로마인은 조상대대로 지켜져 내려온 불문율을 지켰다. 성문화되지 않은 규율, 전통, 상호 기대를 삶에서 지켰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통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공화정 몰락의 한 축으로 보고 있다. 집정관은 연임할 수 없으며 한 번 집정관에 당선됐던 사람은 일정 기간 다시 선거에 후보고 나설 수 없다는 규정, 로마 시내의 신성한 구역에는 무기를 갖고 들어갈 수 없다던가, 신전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공화정 후기로 갈 수록 무너진다. 민중의 호응에 힘입어 집정관과 호민관이 연임하고 중무장 군인이 신전에서 거침없이 살상을 저지른다.

 

“그리하여 아셀리오는 법무관 재임 당시 신에게 헌주를 따르던 중에, 그러한 의식의 관례에 따라 금박을 입힌 성스러운 제의를 입은 채로……한창 희생제물을 바치다가 살육되었다.” 그 무엇도 더는 신성시되지 않았다. p.315

 

술라는 1개 군단 전체를 로마의 신성한 경계선인 포메리움 너머로 이끌었다. 원래 신성경계선 안에서는 어떤 시민도 무기를 지닐 수 없었다. 모스 마이오룸 취후의 전선이자 가장 신성한 경계선 중 하나가 무너진 것이다. p.340

 

더 이상 신이 인간을 돌보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간의 어떤 행동도 신의 선의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힘의 제재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악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행동은 큰 권력을 지닌 관직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그런 자리는 사람이원래 가지고 있던 성격을 바꾸어 변덕스럽고 허영심 많고 잔인하게 만든다고 여겨졌다. p.406

 

반대파에 대한 처절한 살육 끝에 전례가 없는 종신 독재관직에 오른 술라는 공화정 복구를 시도했다. 술라는 이미 홀로 누리는 권력의 가능성이 확인된 후, 민중이 자신들의 힘을 깨달은 후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공화정으로 회귀가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개혁을 밀어붙이는 능력은 탁월하나 시대를 보는 시야는 좁았던 탓이다.

 

기원전 78년에 술라는 자신이 공화정에 새 생명을 붕어넣었다고 믿으면서 죽었다. 그러나 일견 새 시대의 여명처럼 보였던 것은 사실상 로마 공화정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전 마지막 순간에 비친 빛이었다. p.446

 

마이크 덩컨의「폭풍 전의 폭풍」은 공화정 말기를 정리하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전문 학자가 아닌 덕에 쉬운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추천사에서도 언급하고 있다시피 무엇보다 번역을 칭찬하고 싶다.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SPQR」(메리 비어드)의 번역에 실망해 현대 작가가 쓴 로마사 번역물에 대해 망설였었는데 이 책은 그런 우려를 깨끗이 날려줬다.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번역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걸리는데 없는 번역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몸젠의 로마사>와 <로마제국 쇠망사> 사이에 뚫린 구명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 적절한 시기에 좋은 책을 만나게 된 행운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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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성덕의 자족충만 생활기
조영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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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를 보고 읽고 싶은 마음이 동한 책이다. 성공한 덕후의 자족충만 생활기.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 저자가 어떻게 그 많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성공‘까지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얼핏 책을 훑어보니 그림도 제법 그리는데다(부친이 만화가시라고)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작가다. 전직은 무려 바리스타. 취미로 자격증만 딴 정도가 아니고 상당기간 카페에서 근무한 전문가다.


타인의 기준에 따른 사회적 성공보다 워라벨을 중요시하고 소모되기보다 힐링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게 즐기면서 하는 일로 성공하는 게 아닐까. 그저 좋아서 한 일인데 생계는 물론 삶의 만족감까지 찾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의 저자 소설가 조영주는 그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일까. 책에서 답을 찾아봤다.


자칭 성덕인 저자는 책을 세 부분으로 나눠놓았다. 먼저 성덕의 일상생활, 다음으로 성덕의 문화생활 마지막은 성덕의 창작생활이다. 성덕의 일상생활은 말 그대로 저자가 살고 잇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았다. 가을이 되자 직접 모과차를 담는 어머니를 보며 드는 생각, 반려견과의 생활, 바리스타로 일하는 동안 생긴 에피소드 등. 그 와중에 덕후의 아우라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집 앞의 카페를 드나들다 바리스타가 된다던가, 눈여겨 뒀던 텀블러를 살 수 없자 일 년간 잊지 않고 있다가 다음 시즌에 기필고 구매한다던가 하는. 밝은 후광이 찬란한 청소년 시절과는 거리가 먼 왕따였다는 이야기도 담담히 한다. 홀로 있어야 했던 그 시간 동안 저자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거듭했다.

 

살아가는 것도 그런 일이 아닐까. 줍고 모으고 씀 만하게 잘 다듬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게 살아가는 것일 수도.p.17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깨달았다. 아, 이런 일은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구나. 상대의 마음은 상대의 마음, 나는 “사과하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입장에 서곤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p.21

예전의 나 역시 그랬다. 상대가 좋아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게 즐거웠다.……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내가 사랑한 소녀는 늘 나 자신뿐이었다. 그러 나 자신에게 의구심이 든 건 언제였을까. 그것까진 정확하지 않지만 행복의 기준이 변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인지한다. pp.53-54


저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남들이 좋다니까 혹은 그 길이 편하니까 가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인 것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심지어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말이다.


생각해보면 저 때부터 나는 그랬다. 진심으로 하고 싶어야만 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게 생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했다. 목표가 생기면 잘하고 싶으니까, 잘하면 능숙해지고 싶으니까, 능숙해지면 좀 더 새로운 걸 해내고 싶으니까, 그리하여 즐기고 싶으니까.p.58


저자는 자신이 ‘글을 빨리 쓸 줄은 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챘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꿈이었고 계속 노력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았다는 것도 행운인데다 끈기와 초긍정 마음가짐을 가진 저자는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사람이다. 성공을 이루는데 그늘이 없었을까마는 저자의 마음가짐은 그런 그늘쯤은 너끈히 건너가고 남을 것같다.


요즘 나는 세상이 지나치게 눈부시다. 악평도 황송하다. 《중쇄를 찍자》의 명대사처럼 악평이 달린다는 건 내 팬이 아닌 사람도 내 소설을 읽는다는 뜻이니까.p.82


성덕으로서 저자가 덕질의 방법을 제시했다. 예비 덕후라면 눈여겨 볼 일이다.

1. 우선 즐기라
2. 자신의 재능을 믿고 누구보다 깊이 파고들라
3.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라. 인생 길게 보라
4. 목표는 높게 잡으라 p.83


글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책을 읽는 일이다. 저자는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다’고 말하면서 친절한 책읽기 가이드를 제시한다. 독서의 방법이 궁금한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짝 의문이 들긴 한다. 저자가 말하는 ‘작은 기적’이 누구에게나 오는 것일까 하는.

 

내게 딱 맞는 책을 고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도서관에 간다. 혹은 서점에 간다. 사방에 깔린 챙을 아무거나 손에 든다. 읽는다. 100페이지까지 쉬엄쉬엄 읽히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면 “와! 이거 재밌어!” 하고 읽으면 된다.……물론, 재미없으면 관두면 된다. 어디까지나 독서는 개인적인 일이니까. 그러다 보면 희한한 날이 온다. 예전에 재미없게 본 책이 너무나 재미있게 보이는 작은 기적이랄까. p.95

‘생각하는 속도와 글쓰는 속도가 같다’는 저자도 언제나 글이 잘 써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성덕의 창작생활 부분에서는 저자가 소설을 쓰기 위해 온몸으로 기울인 노력들이 등장한다. 기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의학 전문 출판사에 실제 기자로 취직하고 제과점을 배경르로 쓰기 위해 빵집 아르바이트를 한다. 취재를 하면서도 타인의 삶을 세심히 관찰하는 소설가의 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로 살면서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들인 노력들이 책 곳곳에 보였다. 편안하고 위트있는 문장으로 말하고 있지만 혼자서 글을 쓴다는 일이 녹록지 않았음을 알 수 잇었다. 혼자 버티는 시간을 지나면서 저자는 원하는 걸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노력’으로 채우는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두고 책에 도전한 일이 어렸을 때부터 참 많았다. 끈기의 소산이었고 집착의 발로였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두고 보자는 식으로 물고 늘어지면 언젠가는 내가 이긴다.
느긋하게 살자. 너무 조급하게 읽어치우려고 하지 말고 언제나 지금, 당신이 재미난 책을 읽으라. 재미가 없고 잘 읽히지 않으면 무리하지 마라. 분명 재미가 있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기다려라.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손 놓고 지내진 마라. 찰나는 그냥 오지 않는다. 기다린다는 것과 노력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다. 나는 수많은 책에서 그것을 배웠다.pp.96-97

성덕으로서 조영주는 많은 것을 이뤘다. 그녀의 덕질은 지금도 진행중이므로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말하기엔 시기상조인 듯하다.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은 없다. 좋아하는 게 많다는 것, 덕후가 되는 일도 만만하진 않다는 걸 책을 보면서 느낀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좋아하는 것만 파는 일의 무거움도 조금쯤 느낄 수 있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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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공룡 박물관 네버랜드 팝업북
제니 자코비 지음, 마이크 러브 외 그림, 우순교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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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살아있다. 그것도 공룡 박물관이. 거대한 티라노사우르스와 트리케라톱스의 머리가 반겨주는 공룡 박물관이 두 아이를 반갑게 맞는다. 「살아있는 공룡 박물관」(시공주니어)은 표지부터 흥미진진하다.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공룡 박물관은 전시품을 설치하고 있다. 그림자로 먼저 선을 보인 두 아이를 따라 우리도 함께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안내를 맡은 여자 아이의 이름은 메리다. 영국의 화석 수집가 메리 애닝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메리 애닝은 이크티오사우루스의 뼈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남자 아이는 바넘이다. 공룡 수집가 바넘 브라운의 이름을 땄다. 미국 몬태나주에서 그 유명한 티라노사우르스의 뼈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라고.

 

 

 

이 책은 단순히 공룡의 모먕새나 생태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책 제목이 힌트를 준 것처럼 살아있는 듯 생생한 공룡 화석을 만날 수 있다. 첫 페이지를 열면 왼쪽에 ‘공룡 만들기 DIY 화석 키트’가 있다. 공룡 박물관의 전시물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이 들어있다. 만들기를 좋아한다면 여기서부터 두근구근. 오른쪽의 공룡 박물관 안내도를 따라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보자.

 

 

책은 공룡의 생태와 함께 다양한 공룡의 생긴 모양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공룡이란 무엇일까?’에서는 공룡들의 살았던 시대와 연구방법을 소개한다. ‘공룡들의 방어법’, ‘어디에서 살았을까?’에서는 공룡들이 어떻게 서로 먹고 먹히며,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그림으로 쉽게 설명해하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물을 둘러보는 듯한 그림이 친근하다.

 

드디어 공룡 만들기 키트를 사용해보자. 키드의 안내를 참고하여 공룡의 뼈들을 살살 뜯어내고 조립하면 끝! 풀, 가위가 필요없다. 하지만 완성된 모양은 정말 공룡뼈가 움직이는 듯하다. 책장을 접었다 폈다하면서 관찰하면 공룡의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는 팝업이 완성된다. 트리케라톱스, 스테고사우루스, 티라노사우르스, 르오플레우로돈, 프테라노돈을 조립해볼 수 있다. 특히 티라노사우르스의 커다란 입과 프테라노돈의 넓직한 날개는 움직이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다.

화석 팝업 만들기도 흥미롭지만 전시된 공룡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놓칠 수 없는 책이다. 책을 보면서 공룡과 파충류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됐다. 또 수생 파충류는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았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새끼를 뱃속에 가지고 있는 리오플레우로돈의 화석 그림도 있다. 이 파충류들은 새끼를 꼬리부터 낳았다고.

 

만들기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펼쳐볼 때마다 공룡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책이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공룡이 지구를 2억년 가까이 활보했다니, 겨우 20만년전부터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인간은 아직 지구새내기일 뿐인가 싶었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도,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공룡이 헤엄치고 익룡이 날아다니던 시대에 대한 추억에 있는 어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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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지음, 에디트 그림,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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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화가 났다. 동생이 홍역에 걸리는 바람에 방학을 같이 보내지 못하고 이모네 집에 가게 됐기 때문이다. 답답한 연립주택에서 몇 주를 갖혀 지내야 하다니. 이번 여름방학은 망한 거나 다름없다. 이모네 집 현관에서 마주친 건 커다란 괘종시계. 톰의 키 두 배쯤 되는 시계다. 이모부는 그 시계가 제때 울리는 법이 없다며 투덜댄다.

하루 종일 ‘먹고 심심해하고 먹고 심심해하‘는 일을 반복하니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 한 참을 뒤척이던 중 괘종시계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하나, 둘, 셋... 무심코 시계 소리를 세던 톰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열셋? 괘종시계를 확인하러 갔던 톰은 뒷문 밖에서 낮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정원을 발견한다. 엄청나게 넓은 정원이다. 보물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든 톰은 다음 날 낮 뒷문을 열어보고 다시 한 번 놀란다. 그곳엔 협소한 뒷마당이 있을 뿐이다.

 

 

어딘가 혼자만 아는 비밀 통로를 지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매력적이다. 한밤중 괘종시계가 열세 번 울릴 때 톰은 뒷문을 열고 자기만의 정원으로 나선다. 신기한 건 정원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못 본다는 것이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작은 소녀 해티. 가족과 떨어져 외로웠던 톰은 해티와 친구가 되어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

 

 

톰은 밤에만 갈 수 있는 정원의 비밀을 풀어보려 한다. 궁리 끝에 얻은 결론은 정원의 세계는 지나간 시간 속이며 그 안의 인물들은 과거에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해티는 자신이 죽은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톰이 유령이 아니냐고 반박한다. 정원에 갈 때마다 톰에게 보이는 해티의 모습은 변한다. 어느 날은 아이의 모습이었다가 어느 날은 톰의 또래로 바뀐다. 톰이 집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 올 무렵엔 거의 성인이 된 해티를 만나게 된다. 정원 안의 세계에 애착을 갖게 된 톰은 해티가 죽은 세계 속의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낸다. 그리고 해티의 세계에서 살려고 한다. 톰의 계획은 성공할까. 톰은 해티와 톰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은 카네기 상 수상작인 필리파 피어스「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를 원작으로 한 그래픽 노블이다. 소설의 내용을 압축해 그림으로 표현할 경우 원작의 내용이 얼마나 농밀하게 담길 수 있을까가 궁금했었다. 비록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림책 자체로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문을 열고 나가면 만나게 되는 신기한 세계에 대한 톰의 감정이나 큰어머니댁에 얹혀살면서 느끼는 해티의 외로움 등이 훌륭히 묘사되어 있었다.

톰이 뒷문을 열고 정원에 들어갔을 때 느낌처럼 책 표지를 열자마자 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주인공이 미지의 세계에서 돌아올 때 느끼는 아쉬움이 책장을 덮으면서 똑같이 느껴졌다. 이런 상상속의 여행은 동심을 간직했을 때 더욱 강렬하게 와닿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 펼쳐졌던 이런 가슴뛰는 여행의 기억은 성인이 된 뒤에도 무의식 한 구석에 남는다 이런 기억들이 쌓여 한 사람의 내면을 풍요롭게 한다.「나니아 연대기」가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나니아의 세계에서는 옷장 속 겨울 옷들의 촉감을 느끼다보면 어느 새 차가운 눈송이가 손에 닿는다. 그리고 모험이 시작된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를 읽은 아이들에겐 괘종시계 울리는 소리가 여행의 시작을 알려줄 것이다.(괘종시계가 희귀한 게 아쉽다.)

 

 

책을 보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해티의 세계에서 정원사로 일하던 아저씨와 톰의 이모부의 관계다. 둘의 모습은 정말 많이 닮았다. 작가가 별 생각없이 둘을 같은 모습으로 그리진 않았을 것이다. 헌데 그림책 내용 중엔 힌트가 없다. 원작 도서를 찾아서 읽어보는 수 밖에. 톰의 정원으로 가는 또 한번의 여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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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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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억압적 가정 속 사춘기 소녀의 삶’을 초과하는 이야기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우리나라에「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와 「엄마는 페미니스트」같은 비소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작가의 재능은 소설 쪽으로 더 기운 듯하다. 2003년 발표한 첫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그 예다. 이 책은 얼핏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란 소녀 캄빌리의 성장기로 보인다. 그러나 캄빌리가 통과하는 시간 속에는 쿠데타라는 국가적 사태와 군부 통치하의 혼란스런 사회상, 종교와 전통의 문제까지 섞여있다. 작가는 한 권의 책, 소녀의 이야기에 이 모든 상황을 조화롭게 버무려 넣었다. 심지어 나이지리아 토착어와 토속 음식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는 열여섯 살 소녀 캄빌리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아이지만 2등 성적표를 받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아버지 때문이다. 캄빌리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사회적 명망이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독실한 사람이다. 그를 설명하는 구절이 끝이 없다. 미사 설교에서 신부가 교황님 다음으로 언급하는 사람, 신실한 신자, 겸손함의 중요함을 아는 사람, 올바른 정치 의식을 지닌 사람. 아버지는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쿠데타 세력을 비판하는 일간지 발행인이기도 하다. 덕분에 《앰네스티 월드》에서 수여하는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훌륭한 아버지의 모습 이면에 가족을 공포에 떨게 하는 아버지가 숨어 있다. 그는 가족을 폭행해야 하는 의무를 지녔다고 생각한 것일까. 딸이 생리통 진통제를 먹기 위해 금식을 어겼을 때 혁대로 때린다. 이교도인 할아버지와 한 집에 있었다는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끓는 물에 발을 담그는 벌을 준다. 영성체 수업에서 1등하지 못한 아들의 왼손 손가락을 불구로 만든다. 폭행은 아내에게도 예외가 없다. 캄빌리와 자자의 어머니 비어트리스는 일상적인 폭력을 말없이 견뎠다. 부은 눈이 너무 익은 아보카도처럼 검푸르러지고 이마에 지그재그형 흉터가 생기고 유산이 계속됐다. 가족의 피를 흘리는 폭행 후 유진 아치케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신께 기도한다. 그가 생각한 신의 보호, 구원, 공정함의 정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이십 분 동안 우리를 사악한 자들과 세력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나이지리아와 나이지리아를 다스리는 불신자들을 구원해 달라고, 우리가 계속 공정함 속에서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p.81

 

아버지 유진 아치케가 어떤 신을 믿는 것일까. 그는 스스로 신의 대리자가 되어 신의 이름으로라면 가족을 학대하는 일도 불사할 수 있게 된 걸까.

 

너는 내가 왜 그렇게 너랑 오빠한테 최고만 주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니? 너는 이 모든 특권을 누리는 만큼 뭔가를 해야만 해. 하느님이 너에게 많은 것을 주셨으니 기대하시는 것 또한 많단 말이야. 하느님은 완벽을 기대하셔. p.44

 

종교와 억압에 대한 적절한 은유는 다른 아이의 입에서 나온다. 종교는 억압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고 유진 아치케는 그 사실을 온 생애를 통해 실현했다.

 

“있잖아요, 신부님, 그건 옥파 만드는 거랑 비슷해요.”……“밤바라땅콩 가루랑 야자유를 섞어서 몇시간 동안 쪄요. 그런 다음에 거기서 밤바라땅콩 가루만 빼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은 야자유만 빼낼 수 있을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아마디 신부가 물었다.

“종교와 억압요.” 오비오라가 말했다. p.214

 

남매의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가톨릭의 하느님은 자식이 부모를 존중하는 법을 무시하는 종교다. 조상을 존중하는 일을 우상숭배라며 금지시키면서도 성직자에게는 무릎을 꿇고 손에 입맞추게 하는 모순덩어리다.

 

당신들이 숭배하는 신은 어디 있소?……그러면 살해당한 사람, 선교관 밖 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누구요? 그는 그분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아들과 아버지가 동등하다더군. 그때 그 백인이 미쳤다는 걸 알았지.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다고? 투피아! 모르겠니? 그래서 유진이 나를 무시할 수 있는 거야. 우리가 동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p.110

 

가족뿐 아니라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안의 사람들에게 신이 된 유진에게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여동생 이페오마뿐이다. 이페오마는 남매를 자신의 집에 불러와 순종만이 절대가치가 아님을 가르친다. 또 전통과 가톨릭이 평화롭게 공존할 가능성에 대해 알려준다.

 

“오빠는 하느님 행세를 그만둬야 해요. 하느님은 다 큰 어른이니까 당신 일은 당신이 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가 조상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하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 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p.124

 

“저항은 때때로 좋은 것릴 수도 있어.”……“저항은 대마초 같은 거거든. 제대로만 쓰면 나쁜 게 아니야.” p.182

 

……파파은누쿠(할아버지)는 이교도가 아니라 전통주의자라고, 낯선 것이 익숙한 것만큼 좋을 때도 있다고, 파파은누쿠가 아침마다 하는 이투은주-자신이 무죄함을 선언하는 의식-는 우리가 하는 묵주 기도와 같다고 말했다. pp.206-207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허락한 말, 아버지를 기쁘게 할 말만을 할 수 있었던 아이들은 고모네 집이 있는 은수카에 머물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뜬다.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입을 뗄 수 없었던 아이들은 웃고 말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들의 상황이 비정상이었음을 아버지의 그늘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몸만 큰 어린 아이였음을 알게 된다. 남매는 ‘입술보다 마음으로 이야기할 때가 더 많았던 세월’을 건너뛴다.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혔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p.274

 

아이가 자라기 위해선 믿음이 필요했다. 두려움보다는 믿음.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마음 말이다. 은수카의 아마디 신부는 캄빌리에게 그런 믿음의 말을 들려준다.

 

“연기 못해요. 해 본 적 없어요.”

“이제부터 해 보면 되지.”……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할수 있어. 캄빌리.” p.290

 

오빠 자자는 은수카의 고모댁 정원에서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가져다 앞마당에 심는다. 그 전 앞마당의 모든 히비스커스는 빨간 색이었다. 자유를 의미하는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자신의 집에서 잘 자라나길 바라며 스스로 원하는 것을 고민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p.27

 

캄빌리는 일련의 사건 이후 아마디 신부에게서 마음의 의지처를 찾는다. 소녀는 자라고 아버지의 말 대신 ‘아마디 신부가 말하는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말했고 그의 말이 참이기 때문이다.’(p.360) 캄빌리에게 나타난 또다른 신 또는 신의 대리자가 전과는 다른 존재이길 바란다. 더 나은 결론은 캄빌리 자신이 스스로 우뚝서는 일이겠지만 저자는 그녀를 홀로두지 않았다. 하지만 절반보다 나은 성공이다.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 나이지리아의 소녀가 겪는 이야기는 이질적인 한편 우리의 지나온 시간과 묘하게 닮아있어 기시감마저 느껴졌다. 캄빌리의 성장기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동시에 이야기가 좀 더 계속 되길 바라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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