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진화하는 페미니즘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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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목표는 권력을 남성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권력에서 폭력을 제거하고 권력의 의미를 바꾸는데 있다. p.5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아마도 먼저 “페미니스트가 뭔가요?”라는 질문으로 답할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도 어설프게 읽어보고 강좌도 들어봤지만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정확한 의미를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읽고 들을 때만 아는가 싶다가 일상의 생각으로 돌아오면 다시 모호해졌다. 그저 뭔가 불편한 느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편함이 내 생각의 단단함에서 기인한다는 걸 깨달았다. 기존 권력 질서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진 고정관념들이 새로운 생각에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탑들이 기반으로 하는 개념들이 얼마나 한 쪽으로 편중된 것인지를 알게 되는 일이 싫었던 것이다.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시각을 갖게 되면 그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을 만난다.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런 새로운 앎은 환희만 가져다 주지 않는다. 고통이 뒤따른다. “페미니스트가 된 다음에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볼 수가 없어요. 재미있게 보던 예능 프로그램도 짜증이 나고, 드라마나 영화도 보면 화가 나요. 친구와 가족과도 점점 말이 안 통해서 조금씩 멀어지는데, 어떡하면 좋죠?”라며 꽤 절박하게 물음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p.60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정희진의 강연에서 인상깊게 들었던 구절을 몇 번이고 되뇌이게 한 책이다. “알게 될수록 사는 게 불편해지시죠? 앞으로 오만가지 것들이 불편하실 거예요.” 강연에서 이런 맥락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근데 이 책을 읽으며 보니 ‘페미니즘’의 눈으로 볼 때 우리의 삶은 부정의가 ‘기본값’이었다. 우리의 세계는 한쪽 성에 또는 다수가 가진 성에 관한 관념만이 존재하는 장소였다. 그러한 세계에서 “우리의 인식 체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페미니즘의 존재는 “불온한”(p.25) 것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책은 저자가 다양한 여성주의 활동에 참여하면서 얻은 단상들이나 책 혹은 영화를 소재로 다룬다. 특히 영화를 보는 저자의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친일 논란으로 흥행에 실패했던 <청연>을 두고 주인공 박경원을 “살아서도 죽어서도 시대와 권력의 무게를 증명하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영화는 “시대를 넘어 하늘을 날고 싶은 여성의 꿈을 그렸지만, 친일 논란에 시달렸다”면서 “애국심은 정말 그렇게 모든 가치에 우선할 정도로 정의로운 것인가”를 묻는다. 영화 <청연>에 대해 ‘친일’에만 방점을 찍었던 나의 생각에 창문을 내는 듯한 문장이었다. 저자는 이어 언론이 <청연>을 다룬 방식에서 보이는 여성혐오적인 태도를 지적한다. 영화에서 박경원을 기존 성역할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다룬 점을 서술한 부분에 가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PC통신의 시대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사람이다. 공저를 여러 권 냈지만 단독 저서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책을 내고 그 책의 무게를 온전히 홀로 책임져야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목소리를 낸다는 건 인신공격에 계속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이런 말의 맥락에서 그녀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로 지낸 세월동안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받는 공격이 일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페미니즘이라는 어휘가 우리 말 속에 등장한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변했을까. 단지 여성주의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회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 책 표지에는 제목이 이렇게 인쇄되어 있다. “다시는________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과 ‘그전으로’ 사이에 긴 밑줄이 그어져 있는데 나게는 이것이 저자의 망설임으로 느껴졌다. ‘그전으로’ 돌아가는 일의 불가능성과 돌아가지 않음으로 해서 예상할 수 있는 고통 사이의 망설임말이다.

 

이 책은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은 것이다. 긴 시간을 통과한 글임에도 글에서 다루는 상황들, 개념들이 여전히 새로운 것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 권김현영은 우리의 영혼이 진화하고 있다고 더불어 페미니즘도 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낙관이 현실이길 바란다.

 

내가 나로 사는 한 결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선 내가 아닌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독립적으로 살고 싶지만 혼자는 싫고, 나를 억압하는 것들이 나를 살게 하기도 하며, 자유는 언제나 위험을 담고 있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언제나 모순과 역설 속에서 어떻게든 길을 찾아냈다. p.12

 

이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저자가 오랜 시간이 걸려서나마 그녀의 글들을 모아 출판하기로 마음먹어줘서 또 다행이다. 책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그었다. 미처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다시 읽고 읽어서 그녀의 말을 온전히 흡수하고 싶었다. 세상을 이해해보려는 나의 눈을 얼마간 밝혀준 책이 고맙다. 저자는 출판사에 두 가지 원고 뭉치를 넘겼다고 한다. 하나는 이 책으로 꾸려진 짧은 글들의 모음이고 또 하나는 긴 글을 모은 연구서라고. 내년 상반기에 나올 조금 더 호흡이 긴 그녀의 글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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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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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The Flatshare」는 번역본 제목「셰어하우스」에 비해 방을 나눠쓴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집과 방은 그 크기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이 나눠쓰는 불편함도 다를 것이다. 집을 나눈다면 그 집에 있는 여러 개의 방을 나누는 것일텐데 방을 나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잠자리를 나누는 것이다. 현재 사회적 개념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으나 방 하나를 나눠쓰는 일은 대개 동성간의 문제이리라 예상된다. 소설은 그 지점을 노렸다.

티피는 방금 전 거부 남친의 집에서 쫒겨난 참이다. 모아놓은 돈과 은행의 부채를 합쳐 남친에 대한 부채를 갚고 나자 빈털터리다.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런던에서 직장을 유지하면서 한 몸 누일 장소를 찾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다 쓰러져가는 곰팡이 충만한 공간을 둘러보다 지친 그녀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셰어하우스’에서 타인과 동거하는 쪽을 선택한다. 주중 야간근무에 주말엔 집을 비운다는 ‘남자’ 간호사의 집 아니 방이다.

소설은 거주지가 절박한 여자 티피와 변호사 비용이 급한 리언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한 방을 둘이 시간을 나눠 사용하다면서 필요해진 소통의 창구로 메모를 활용하는데 책에는 그 둘이 나누는 메모 내용이 서사의 묘미를 담당한다. 등장 인물들이 직접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편지 등을 통해 소통하는 형식에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편지와 편지 사이에 글로 적지 못한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독자는 알지만 편지에 쓰지 못한 사연들을 아는 재미는 그래서 두 주인공이 만난 이후에는 반감된다. 이 소설의 작가 베스 올리리는 구성상의 이런 약점을 리언의 동생이 얽힌 재판 과정의 조마조마함과 전 남친 저스틴을 이용해 현명하게 해결했다.

설정에서 예상되다시피 책의 줄거리는 서로 상처와 문제가 있는 남녀가 만나 우여곡절을 거쳐 해피엔딩에 이르는 로맨스 소설의 서사를 따른다. 내게「셰어하우스」의 흥미로운 지점은 티피와 리언의 연애보다 티피와 그녀의 전 남친 저스틴의 이야기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티피는 키가 몹시 큰 소심녀로 등장한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긴 했지만 결국엔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 믿었던 저스틴의 변심에 패닉에 빠져 있다. 티피가 ‘셰어하우스’에서 혼자의 삶에 적응할 무렵 저스틴이 다시 나타난다. 다른 여자와 나타나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외쳤던 저스틴이다. 진저리를 칠만한 상황임에도 티피는 저스틴의 의도에 순응하는 행동을 한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도 화가 나면서도 마음 속엔 공포가 있다.

 

 

저자는 저스틴과 티피의 관계에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 현상을 심어놓았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다. 심리 조정자에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휘둘리게 되는 것이다. 저스틴의 어떤 행동들이 티피에게 가스라이팅으로 작용한 걸까. 그 지점들을 찾아보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요소가 될 것이다. 티피는 마음 깊이 박혀있는 저스틴의 그늘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리언과의 관계는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을까.

 

 

 

로맨틱 코메디로만 읽기엔 아까운 소설이다. 타인의 의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의 지난함과 용기에 더 눈을 두고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변의 지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에도 관심을 갖기를 권하고 싶다. 이런 자신의 용기와 주변의 도움없이는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빛나는 티피는 없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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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조금만 더 (100쇄 기념 특별판)
존 레이놀즈 가디너 지음, 마샤 슈얼 그림, 김경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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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부드러운 눈이 담요처럼 포근하게 덮인 길을 검은 개가 끄는 썰매가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질주한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려 나가는 개와 썰매 위로 반짝이는 눈송이가 펄펄 내리는 표지 그림은 아름답다.

 

「조금만, 조금만 더」는 지은이 존 레이놀즈 가디너가 1974년 아이다호주의 허드슨 카페에서 들은 로키산 전설을 바탕으로 쓴 어린이책이다. 보호자인 할아버지가 갑자기 사는 것을 포기하는 바람에 열 살 소년 윌리가 할아버지를 돌보고 감자 농장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이다.

 

윌리는 할아버지와 번개와 함께 와이오밍주의 작은 감자 농장에서 살고 있었다. 번개는 윌리와 똑같은 날에 태어나서 열 살이 넘은 나이가 꽤 든 암캐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윌리는 할아버지가 10년 넘게 세금을 내지 않아서 농장을 빼앗기게 되었고, 그 때문에 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호자를 잃은 윌리를 번개가 감자 수확을 돕고 썰매로 학교에 등하교시키며 곁에서 지킨다.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보살펴 드릴 간병인을 부르고, 무일푼으로 끝장나기 전에 농장을 팔아 세금을 내라고 조언을 한다. 그러나 윌리는 ‘개 썰매 대회’에 나가 우승 상금으로 세금을 낼 수 있다며, 대학에 가서 공부하기 위해 저축한 돈을 어른 대회 참가비로 낸다. 우승을 하여도 밀린 세금을 낼 수 있을 뿐 농장을 계속 지킬 수 있는 것도 생계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윌리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우승을 확신하며 열 살 다운 결정을 한다.

 

얼음 거인이 경주에서 진 적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윌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윌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얼음 거인이라 해도 막을 수 없었다.(p.66)

 

아무도 막을 수 없고 ‘오로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의심 없이 단순한’ 윌리를 열정과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응원해야 할까, 격려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래서 스미스 선생님이 윌리에게 해주는 충고와 격려가 인상적이다.

 

“우선, 너는 대학 갈 돈을 경주에 참가하는 데 썼는데, 난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너에게 알려 주고 싶다.”

윌리는 마룻바닥을 쳐다보았다.

“네, 선생님.”

“그렇지만, 이미 끝난 일이지, 그러니까 이제는 격려하고 싶다.”

윌리는 스미스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정말요?”

“이겨라, 윌리. 내일 경주에서 이기는 거다.” (p.68~69)

 

힘도 들이지 않고 눈을 가로지르는 다섯 마리의 사모예드들을 상대로 홀로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번개에게 ‘조그만, 조금만 더’라고 외치는 윌리의 재촉은 참사를 부른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달린 번개가 ‘보여준 용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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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시집
박정섭 지음 / 사계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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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린 물고기」의 박정섭 작가의 신작이라니 기대가 무척 컸다. 전작에서 보여준 이야기의 재미와 속 깊은 의미를 또 다른 이야기로 만날 수 있다니. 그렇게 만난 책. 그런데 제목이 「똥시집」이란다. 재기발랄한 똥 이야기인가. 말 그대로 ‘시집’이라면 망하는 건데. 난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이다. 책은 정말로 시집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시만 담겨 있는 게 아니었다.

 

박정섭 쓰고 그리고 노래하다

 

작가는 이 책을 위해 글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사·작곡에 노래까지 했다. 박정섭이라는 엔터테이너가 춤 빼고는 모든 걸 다한 거다. 아니, 어쩌면 책을 쓰는 중간중간 분명 춤도 췄을 거라 믿는다. 책을 보면 아니 들어보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보고 느끼는 일상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몸을 거쳐 또 다른 결과물로 태어난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책에는 작가의 일상에서 솎아낸 상념들이 작가 특유의 위트 넘치는 글과 그림으로 담겨있다. 음식을 먹고 마시면 똥이 나오듯이 일상을 거친 작가의 생활은 똥시가 되어 남았다. 작가는 ‘똥시 왈츠’와 함께 자신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책 속엔 작가가 직접 만든 노래들이 담겨있다. 악보도 수록돼 있지만 오선지 위의 콩나물 대가리 읽기에 까막눈인 독자를 위해 작가가 친히 연주하고 노래한 음원이 QR코드로 연결돼 있다. 똥시 왈츠, 먼지 여행, 코끼리 주전자, 꿀벌 여행, 노총각 아저씨, 쭈글쭈글곶감, 훌쩍훌쩍, 하얀거북이, 제목부터 친근하게 느껴지는 노래들이다. 작가가 직접 기타를 치며 꾸밈없는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준다. 보사노바 리듬의 꿀벌 여행을 들으면서 “흔들 흔들 바람이 불어온다”는 가사에 맞춰 몸을 흔들흔들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책의 내용과 맞물리는 노래를 듣다보니 어느새 나의 생각도 시가 될 것만 같다.

꼭 대단하고 멋진 것이 아니어도

삶의 모든 부분이 시와 그림, 음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똥시집을 지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자유롭게 쓰고, 그리고, 노래하며 사는 법”을 배웠다는 작가는 새로운 똥시 채집 여행에 독자를 초대한다. “매일 먹고 마시고 똥 누는 것처럼” 자신의 일상을 똥시로 만들어보자고 말한다. 앙증맞은 ‘똥시 행진곡’을 들으면 ‘그럼 나도 한 번’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전작에서 보여준 위트 가득한 표현들은 이번 책에서도 변함없다. 냉장고에서 꺼낸 참외가 과일칼 앞에서 땀을 흘린다는 시 ‘식은 땀’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에게 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주문이라고 말하며 그런 엄마에게 ‘유아신속안정부적’과 ‘엄마신속안정부적’을 선물하는 작가의 위트가 유쾌하다. 생활 주변 이야기, 환경 문제, 일상을 사는 고단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들이 유머러스한 그림과 함께 한다.

 

 

깨알같은 생활 상식도 담겨 있다. 이를테면 계피를 이용한 “천연 모기약 만들기”같은. 에탄올과 계피로 천연 모기약을 만들고 얼마간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사용하는지 또 바쁠때 속성으로 만드는 방법까지 친절히 설명한다. 좋은 계피 고르는 법은 보너스.

 

책 읽는 방법을 제안한다면 한 번에 쭉 읽기보다는 몇 페이지씩 아껴 읽기를 권한다. 작가가 만든 음악도 들으며 우리 삶과 가까운 이야기를 미소와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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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강아지 초롱이 읽기의 즐거움 35
박정안 지음, 이민혜 그림 / 개암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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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강아지가 자신의 기일에 제삿밥을 먹으러 온다니.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에겐 으스스한 호러로 느껴지지만 동물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챙기는 집도 드물어지는 때에 강아지 제사를 소재로 다룬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용재네에서 사랑을 받던 강아지 초롱이는 몸이 약했던 탓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1년 후 기일이 되어 제사를 지내준다고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용재네 집을 찾아간다. 일찍 도착한 집에서 생각지 못했던 사람 아니 귀신을 만난다. 바로 용재의 할아버지 귀신이다. 할아버지의 음력 제삿날이 초롱이의 기일과 겹친 것. 할아버지는 자신도 용재의 가족이라고 우기는 강아지 초롱이를 무시한다. 강아지가 무슨 가족이냐며. 할아버지도 초롱이도 용재 가족이 자신들을 기억하고 제삿밥을 차려줄 것이라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용재 부모님은 승진 축하 손님맞이에만 정신을 쏟는다.

제사라는 의례가 언제부터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희미해졌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엔 거의 모든 친구들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주변에 제사를 과거와 같은 형태로 지내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제사라는 격식을 차리는 집도 드문 형편이다. 제사의 의미가 뭘까. 이 책에서와 같은 의미라면 조상 귀신에게 밥을 차려 올리면서 그 분들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쯤 해보는 것 아닐까.

 

용재 할아버지는 후손에게 제삿상을 못 받는 친구들까지 대동하고 자신의 아들집을 찾았었다. 첫 번째 기일인데, 이제 일 년이 지났을 뿐인데 하며. 하지만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추모의 방식과 자녀들이 생각하는 추모의 방식은 달랐다. 지금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설정이다. 직장 일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시대에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통을 계속할 수도 없는 일이다.

 

조상을 모시는 과거의 방법을 믿는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서운하다해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할아버지는 자식을 해코지하려는 악귀를 온 몸을 던져 막아낸다. 그 과정에 힘을 보탠 강아지 초롱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한다.

 

“그래, 너도 나도 모두 가족인 거야. 피를 나눠야만 가족인가? 함께 살면서 서로 걱정하고 도와주고 마음을 나누면 가족이지.”

 p.98

 

「귀신 강아지 초롱이」는 사회변화에 따른 전통예절의 변화를 보여준다. 방법이 변했을 뿐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형식이 바뀌면서 생각도 희미해진 듯 하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귀찮은 허례로서의 전통이 아니라 나의 뿌리로서 조상을 기리는 방법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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