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요지(山田洋次, Yamada Yoji) 감독의 영화 속 목소리들(Voices)


고향(同胞, The Village, 1975)
학교(学校, Gakko, 1993)
어머니(母べえ, Kabei: Our Mother, 2008)
작은집(小さいおうち, The Little House, 2014)



1. 1970년대 농촌 청년의 목소리: 고향(同胞, The Village, 1975)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 책에는 소설을 잘 쓰기 위한 여러가지 비법들이 적혀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누군가에게 들려주 듯이 쓰라는 것도 있다. 사람의 온기를 지닌 목소리. 영화에서는 그것이 작중 화자의 내레이션이 된다. 뛰어난 이야기꾼이며 역사적 통찰력을 가진 일본의 감독 야마다 요지는 그 '목소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1975년작 영화 '고향(同胞, The Village)'은 이와테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주인공은 마을 청년회 회장 타카시이다. 그는 고단한 농촌의 삶에 지쳐있다. 그런 그에게 도쿄 극단의 히데코가 찾아온다. 히데코는 마을 주민들에게 단합의 기회가 될 거라며 뮤지컬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히데코의 제안은 좋지만, 공연비 65만엔을 티켓 판매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은 청년회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과연 이 시골 마을에서 극단의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내성적이고 소심한 타카시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가씨에게 고백도 못하고 있다. 그에게는 부인과 사별한 후 두 딸을 키우는 형과 어머니가 있다. 농사와 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농촌의 삶은 버겁고 힘들다. 마을 젊은이들에게 도쿄는 꿈의 도시이다. 농사에 마음에 없는 그에게 형은 닥달을 하고, 좋아하는 여자는 도쿄에서 살겠다며 떠나버린다. 1970년대 일본은 고도 성장으로 이룬 경제적 발전과 함께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비대해진 도시의 기능과 생산 인력의 충원을 담당한 것은 농촌과 도시 근교 지방의 젊은이들이었다. 영화 속 타카시와 마을 청년들은 생계 때문에 몸은 농촌에 매여 있지만, 마음은 도시로 향해 있다. 야마다 요지는 거센 도시화의 물결에 직면한 농촌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농촌 청년 타카시의 목소리를 택한다.

  러닝타임 2시간 7분 동안 전반부에는 공연을 올리는 문제를 두고 토론하는 청년회의 모습, 후반부에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도쿄 극단의 뮤지컬 공연이 펼쳐진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적 양식이 혼합된 이 독특한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과 함께 하는 농촌의 삶, 그 소박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이다. 노래와 연극, 탭댄스와 춤이 결합한 극단의 뮤지컬 공연의 제목은 '고향(ふるさと)'이다. 농촌이 싫어 떠났던 청년들이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의 극을 보며 주민들은 울고 웃는다. 청년회의 젊은이들은 공연을 올리기까지 자신들이 애썼던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 삶의 의지를 다진다.
 
  "실패는 두렵지만, 실패하더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낫다구."

  영화는 두 개의 삶을 병치시킨다. 도시로 떠나 중국 음식점 직원과 미용사로 살아가는 외롭고 고단한 삶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 공동체적 유대를 이루는 고향의 삶.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야마다 요지는 농촌의 삶이 젊은 세대들에게도 충분히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일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히데코가 이끄는 도시 극단의 예술적 열정에 의해 일깨워진다. 그렇게 영화 속 타카시의 목소리에는 감독 자신이 동시대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실린다. 야마다 요지의 영화를 통한 이러한 사회적 관심사와 발언은 '학교(学校, Gakko, 1993)'에서도 나타난다.


2. 일본 사회 주변인들의 목소리: 학교(学校, Gakko, 1993)

  야마다 요지 감독을 시리즈의 대가로 알린 영화는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 1969–1995)'연작이었다. 무려 48부작에 이르는 이 영화적 대장정은 방랑 상인 '토라상'의 모험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 편마다 소박하고 유쾌한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전후 중장년층 관객들의 티켓 파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즐겁게 변주되는 토라상의 이야기는 과거에 대한 추억과 함께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연작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 감독은 1993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학교(学校, Gakko)'를 4편까지 이어간다. 그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는 야간 중학교 교사와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맹인 재일 조선인 김 어머니,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함께 사는 비행 소녀 유키, 건물 청소일로 생계를 잇는 카즈,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여중생 에리코,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장, 뇌성마비로 의사소통이 불편한 오사무, 막노동을 하며 경마에 빠져 사는 이노상, 그리고 담임 쿠로이 선생.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펼쳐보이며 관객을 낙오자들의 '학교'로 데려간다. 이 영화에는 여러 주인공들이 각자의 내레이션으로 쿠로이 선생과의 만남이 어떻게 그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는지를 들려준다. 2시간이 넘는 이 영화를 결코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이 영화의 리얼리티는 야간 중학교 졸업생들의 수기를 엮은 원작에서 나온다. 야마다 요지는 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일본 사회의 주변부를 조망한다. 쿠로이 선생이 지도하는 학생들은 일본 사회에서 열외적인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보면 보이지 않는 차별과 냉대 속에 놓인 이들, 그런 그들을 돕는 쿠로이상은 따뜻한 마음과 올바른 신념을 가진 교육자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일깨우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그의 학생들은 인생을 바꿀 내면의 힘을 얻게 된다.

  과연 배움이 우리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가? 영화는 가난한 하층민 이노상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관객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 무더운 여름날, 쿠로이 선생은 이노상의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찜통같은 이노상의 집 창문은 닫혀있다. 쿠로이 선생이 창문을 열자 지나가는 기차의 굉음이 들린다. 소음 때문에 문도 열지 못하고 사는 이노상의 열악한 주거 환경, 그런 곳에서 막노동으로 살아온 그는 중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그를 진단한 의사는 이노상의 몸은 '그가 살아온 험한 삶의 흔적'으로 가득하다고 쿠로이상에게 말한다.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학생들은 그가 야간 중학교에서 보낸 1년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노상은 과연 그 시간이 행복했을까에 대해.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쿠로이 선생이 학생들에게 던지는 그 질문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과연 '돈'이 아닌, 대답할 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그 대답을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실존적 의미에 대한 성찰과 함께 야마다 요지는 '학교'에서 사회의 하층민들과 주변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영화는 그들 또한 일본 사회의 구성원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3. 전쟁을 관조하는 여성의 목소리: 어머니(母べえ, Kabei: Our Mother, 2008), 작은집(小さいおうち, The Little House, 2014)

  야마다 요지는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해 올곧은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원로이기도 하다. 영화 '어머니(母べえ, 2008)'와 '작은집(小さいおうち, 2014)'은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다. 야마다 요지는 두 영화에서 모두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영화 속 여성들은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전쟁이 각자의 삶에 남긴 상흔에 대해 털어놓는다. 두 영화는 침략 전쟁의 병참 기지로서 '국내 전선(Home Front)'의 일본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난이 미시사적 관점에서 구술된다.

  영화 '어머니(2008)'는 1984년에 노가미 테루요가 발표한 '아버지의 레퀴엠'이라는 단행본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자는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을 비판했던 자신의 아버지가 수감된 후에 가족이 겪은 고난을 써냈다.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이는 막내딸 테루미이다. 9살 테루미는 12살 언니, 그리고 엄마와 함께 감옥에 있는 아버지가 풀려나기만을 기다린다. 사상범으로 체포된 아버지는 전향을 거부하고, 혹독한 수감 생활을 감내한다. 아버지의 제자 야마자키, 고모 히사코는 2년이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며 힘이 되어준다.

  러닝타임 2시간 12분은 꽤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야마다 요지는 이야기가 갖는 힘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아버지의 제자 야마자키가 가족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련의 사건들, 어머니의 친척 아저씨가 여름에 와서 지낸 이야기, 경찰인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갈등. 그런 이야기들 중간중간에 야마다 요지는 일본의 뒤틀린 국수주의와 천황제의 폐해를 부각시킨다. 거리에서는 사치가 죄악이라며 귀중품을 국가에 헌납하라고 캠페인을 벌인다. 기차역에서는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을 배웅하며 천황 만세를 외친다. 어머니가 선생으로 있는 초등 학교에서는 천황의 생일을 기념하고 아이들에게 그 은혜를 칭송하게 한다.

  영화 '어머니'에서 묘사되는 당시 일본인들의 모습은 집단적인 최면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가 참석한 반상회에서 마을 대표는 천황궁을 향해 절을 하자고 하는데, 천황이 별장에 머무르니 그쪽을 향해 절해야 한다며 논쟁이 벌어진다. 잡화상의 주인은 진주만 습격 소식을 듣고, 드디어 일본이 미국을 무찌르게 되었다며 크게 반색한다. 외부인의 시각에서는 미쳐 돌아가는 나라이지만, 당시 일본인들에게 그것은 거대한 제국주의적 이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온전한 양심과 합리적 이성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살았던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영화 속 테루미의 아버지는 결국 2년 만에 옥사한다(실제 원작자의 아버지는 전향 후 석방되어 나중에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징집된 야마자키는 군함의 침몰로, 히로시마에 있던 고모 히사코는 원폭으로 사망한다.

  '어머니(2008)'에서 어머니를 연모하는 야마자키의 감정은 매우 절제되어 있고, 그것은 영화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이와는 달리 '작은집(小さいおうち, 2014)'의 경우에는 로맨스가 극의 내러티브를 이끈다. 이 영화도 원작이 되는 소설이 있다. 야마다 요지는 2010년에 나카지마 쿄코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읽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1935년에 시골 출신의 타키는 도쿄 중산층 가정의 하녀가 된다. 영화는 노인이 된 타키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적어 내려가는 글에 따라 전개된다. 타키가 화자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는 주인 마님의 불행한 사랑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도 2시간 17분으로 역시 길다. 아마도 요즘 관객들에게 이러한 긴 호흡의, 이야기 중심의 영화는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주인 마님 토키코와 이타쿠라의 불륜이라는 것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타키가 토키코에게 품는 연모의 감정을 비롯해 중성적 매력을 지닌 토키코의 친구까지, 영화의 동성애적 코드는 기이한 자기검열처럼 삭제되어 있다. 아마도 노감독에게 그런 부분의 묘사는 영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 이 영화는 로맨스 보다 당시 전쟁이 중산층 계급에 미친 영향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타키의 주인은 완구 회사에 다니는데, 그는 계속되는 일본의 전쟁 소식에 흥분한다. 일본의 식민지가 확장되면 그의 회사가 팔 수 있는 장난감 시장이 커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노년의 타키는 자신이 쓴 자서전을 대학생 조카 켄지에게 읽어준다. 타키는 1937년 중일 전쟁 시기 일본이 난징을 함락했을 때의 축제 분위기를 적는다. 하지만 켄지는 난징에서는 대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그 기억이 맞느냐고 반문한다. 침략 전쟁이 극에 달했을 무렵에도 돈까스를 배달시켜 먹었다는 이야기도 켄지에게는 생뚱맞다. 타키는 조카가 모르는 그 시절의 암시장에 대해 들려준다.

  전쟁이 온나라를 쥐어짜내고 있었지만, 가진 사람들에게는 견딜만 했던 것이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이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제임스 아이보리의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1993)'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는 2차 대전 시기에 부유한 귀족 가문의 충복으로 일하는 집사장 스티븐슨의 시선으로 상류층의 일상을 포착한다. 나치와 연계되면서 몰락하는 주인, 맹목적인 충성을 보였지만 결국 회한만 남은 노년의 집사장. 스티븐슨처럼 타키도 평생 독신으로 산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고독사였다.

  야마다 요지의 이 씁쓸한 전쟁 로맨스 영화에는 감독의 명확한 역사적 인식이 담겨져 있다. 영화의 마지막, 조카 켄지는 타키가 그토록 아꼈던 토키코의 아들 쿄이치와 만난다. 쿄이치는 전쟁 시기의 일본인들은 모두 원치 않은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회고한다.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섰던 이들조차도 자신이 원치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시대. 그러나 과연 전쟁을 지원하고 수행했던 일본 국민들에게 원죄를 묻는다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조곤조곤하고 명징하게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은 천황과 군국주의에 대한 광신으로 점철된 침략 전쟁의 이면과 마주하게 된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사진 출처: asianwiki.com



***사진 출처: asianwiki.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필름 느와르, 전후 미국 사회의 불안한 초상


Somewhere in the Night(1946), Joseph L. Mankiewicz
D.O.A.(1950), Rudolph Maté,
No Way Out(1950), Joseph L. Mankiewicz



1. 전후 새로운 젠더 규범의 정의, Somewhere in the Night(1946)

  영화는 병실에서 이제 막 의식을 찾은 남자의 시점 쇼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얼굴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그 때문에 붕대로 칭칭 감겨있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관객은 이 남자에게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남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퇴원 후, '조지 테일러'란 이름으로 제대한 그는 물품 보관소에서 찾은 가방에서 '래리 크라바트'가 남긴 쪽지를 발견한다. 자신은 조지 테일러가 맞을까? 래리 크라바트는 또 누구인가? 래리 크라바트를 찾아가는 남자의 여정에 수상한 이들이 계속해서 들러붙는다.

  조셉 멘케비츠 감독의 'Somewhere in the Night(1946)'에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퇴역 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 내내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에 제작된 이 필름 느와르 영화는 전쟁이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분명히 미국은 압도적인 승전국이었으나, 그것이 아무런 상처가 없는 영광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영화 속 주인공 조지 테일러는 기억을 잃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전쟁은 모두에게 혹독한 것이었으며 특히 남자들, 참전 군인에게 큰 상흔을 남겼다. 영화 속에서 기억상실증으로 고통받는 조지 테일러의 모습은 그 한 단면이다. 그는 입대 직전에 자신이 머무른 것으로 되어 있는 호텔에 가서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 그를 응대하는 프런트의 나이든 직원은 호텔 벨보이들이 전쟁으로 모두 입대해 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이 제대 후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모든 군인들의 사회 적응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단절된 경력의 남성들은 당연히 이전의 사회적 위치를 회복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인공 조지 테일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의문, '나는 누구인가'는 그들이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실존적 과제였다. 남자들은 군인에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또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빠르게 변모해야 했다. 그러한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압박감은 영화 속 조지 테일러를 괴롭히는 '기억상실증'으로 나타난다.

  조지 테일러는 자신에게 의문의 쪽지를 남긴 래리 크라바트가 미국으로 들어온 나치의 비밀 자금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속에서 그가 겪는 모든 곤란은 바로 그 돈의 행방과 관련되어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내가며 래리 크라바트와 조지 테일러의 관계에 대해 알아 내려고 애를 쓴다. 물론 그것은 그 혼자만의 힘으로는 알아낼 수가 없다. 아름답고 착한 밤무대 가수 크리스티는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다. 이러한 조력자로서의 여성 캐릭터의 대조적 지점에 '필리스'가 있다. 천박하고 낮은 사회 계층의 여성으로 묘사되는 이 팜므 파탈은 테일러의 불투명한 과거와 연계된 여성이다. 필리스는 테일러를 곤경으로 몰아가는 뒷골목의 인간들과 함께 한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이런 양분화된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에는 전후 미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시각이 드러난다. 여성들에게는 전쟁에서 돌아온 남성들을 환대하고 따뜻하게 도와주어야 하며, 공적인 영역(전시의 군수 공장과 같은 직장)의 자리를 기꺼이 남자들에게 인계해야할 의무가 부여되었다. 크리스티가 테일러에게 보여주는 순전한 믿음과 도움은 그러한 여성상을 대변한다. 그리고 테일러는 크리스티와 함께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고,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필리스와 같은 여성이 가진 힘은 무력화되어야만 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를 안전하게 사회에 복귀하도록 돕는 여성, 결코 남성에게 위협적이지 않는 여성성에 대한 재정의. 멘케비츠의 이 필름 느와르 영화는 퇴역 군인의 실존적 위기와 함께 전후 새로운 젠더 규범을 내러티브에 직조해 나간다. 


2. 전후 중산층 계급의 편집증적 공포, D.O.A.(1950)

의사: 우선 경찰에 알려야겠소. 이건 살인 사건이니까요.
프랭크 비글로우: 살인 사건이라뇨?
의사: 비글로우 씨,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요. 선생은 살해당하는 중이요.

Dr. MacDonald: Of course, I'll have to notify the police. This is a case for Homicide.
Frank Bigelow: Homicide?
Dr. MacDonald: I don't think you fully understand, Bigelow. You've been murdered.


  남자는 의사로부터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살해당하는 과정에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랬다. 그는 이상한 독성 물질에 중독되어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 길어야 일주일 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장길에 오른 남자는 호텔 옆방 사람들과 잠시 어울렸다. 그리고 바에서 낯선 여자와 술 한 잔을 마셨다. 도대체 왜, 누가 남자를 독살하려는 것일까?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린 남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찾아나선다.

  폴란드 출신의 촬영 감독으로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던 Rudolph Maté는 헐리우드로 옮겨서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갔다. 그가 1950년에 만든 'D.O.A.'는 잘 짜여진 플롯, 거기에 더해진 긴박감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영화의 제목은 '도착 즉시 사망(Dead On Arrival)'이란 단어의 약자로, 주인공 프랭크가 맞이하게 되는 최후와 연결된다. 성실한 회계사이며 공증인으로 살아가던 남자의 일상은 평범하게 잘 짜여져 있다. 안정적인 직업,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 친구까지. 프랭크는 샌프란시스코의 출장길을 신선한 일상 탈출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곧 악몽이 되어버린다.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되는 삶의 마지막 순간, 이 엄청난 재난은 누군가가 그의 술잔에 타놓은 '빛나는 독약' 때문이다. 그것은 '이리듐(Iridium)'이라는 방사성 물질이다. 'Somewhere in the Night(1946)'의 조지 테일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 '나치의 비밀 자금'이 그러했던 것처럼, 'D.O.A.(1950)'에는 낯설고 뜬금없는 방사성 원소가 등장한다. 영화 속 외부의 적대적 세력이 보낸 치명적 물건은 주인공을 무덤 깊숙이 끌고 간다. '나치'와 '방사능'으로 상정된 이러한 위협은 전후 미국 사회가 외부 세계에 느끼는 불안감을 의미하며, 그것이 일종의 편집증적인 공포로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미국인들의 내면에서는 사그라들지 않는 두려움이 상존하고 있었다. '냉전(Cold War)'의 시작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과 사상 검증의 바람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존재가 외부의 악의적 존재에 의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영화 속 주인공 프랭크에게 닥친 일이 그것이다. 그는 그저 열심히 살아온 선량한 시민이다. 그런 그에게 죽음이 다가온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살인범을 찾아나서는 여정, 전에는 귀찮게 느껴지던 여자 친구는 중간중간 그의 안부를 묻는다. 프랭크는 너무 고맙고 그리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다시는 그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프랭크를 연기한 에드먼드 오브라이언(Edmond O'Brien)은 당시 헐리우드의 미남 주연 배우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외모이다. 배우 생활 내내 체중 관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그는 이 영화에서 배 나온 중산층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 속 프랭크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 절박한 추적의 여정은 미국 중산층 계급이 느끼는 불안감과 맞닿아 있다.

  프랭크가 경찰서에 도착해서 들어가는 영화 첫 부분의 인상적인 시퀀스를 비롯해, 'D.O.A.'는 너무나도 멋진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은 나중에 무려 세 번이나 리메이크 될 정도였다. '죽음의 카운트다운'이란 한글 제목으로 번역된 이 영화의 원본으로서의 독보적인 위치는 결국 시대성과 연결된다. 죽어가고 있는 주인공이 길고 어두운 경찰서 복도를 걸어들어갈 때, 그리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형사 앞에서 자백한 후 플래시백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영화적 여정은 관객을 전후 미국 사회의 내면으로 안내한다.

 
3. 195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의 전조, No Way Out(1950)

  조셉 멘케비츠 감독은 캐릭터들의 세부적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No Way Out(1950)'은 그러한 멘케비츠의 면모를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영화는 두 명의 범죄자가 교도소 병동으로 실려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조니와 레이, 이 두 명의 형제 범죄자들을 담당하는 이는 흑인 의사 루터(시드니 포이티에 분)이다. 루터는 의식이 없는 조니의 상태를 보면서 뇌종양을 의심하고 척수 천자 검사를 시행한다. 그러나 검사 도중에 조니가 사망하고, 그것을 본 레이(리처드 위드마크 분)는 루터에게 인종차별적 언사를 퍼붓으며 살인자로 몰아간다. 루터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부검을 요청하지만, 레이는 강하게 반대하고 그것을 기회로 인종 갈등을 부추기려는 공작을 은밀히 계획한다.

  흑인 의사와 백인 범죄자, 루터와 레이로 대변되는 이 인종적이고 계층적인 대립의 양상은 195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매우 놀랍게 느껴진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문직에 종사하게 되었지만, 루터는 '피부색'에 내재된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맹목적이고 극렬한 인종차별주의적 신념을 가진 레이는 자신의 사회적 박탈감과 분노를 루터에게 투사한다. 루터의 적대자는 단지 레이 한 사람만이 아니다. 폭동으로 실려온 백인 환자를 돌보던 그에게 환자의 보호자는 '더러운 깜둥이는 손을 떼라'는 모욕적 언사와 함께 침을 뱉는다. 그가 직면한 거대하고 지독한 차별의 벽은 견고하며, 그것은 '의사'라는 직업적 명망으로도 상쇄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시드니 포이티에가 연기하는 루터의 캐릭터는 고독한 투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그에게 우군이 있기는 하다. 백인이지만 인종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동료 와튼 박사는 루터를 돕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럼에도 루터가 맞닥뜨리는 일련의 곤경은 와튼의 우호적인 태도와 도움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부검을 통해 루터의 결백이 입증되었지만, 분노에 사로잡힌 레이는 병동을 탈출해 루터를 죽이려고 한다. 리처드 위드마크가 연기한 레이의 거의 광기에 가까운 인종적 편견은 그것이 치유불가능한 '질병(disease)'임을 부각시킨다. 영화는 과연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내면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조니의 이혼한 아내 에디의 캐릭터는 그에 대한 하나의 희망적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역시 하층민 출신으로 인종적 편견을 가진 에디는 와튼의 집에서 만난 흑인 가정부 글래디스와의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다. 에디의 개심(改心)은 결국 레이의 살해 위협에서 루터를 구하도록 만든다. 루터는 자신에 대한 레이의 악의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악화된 부상으로 출혈이 심해진 레이를 돌본다. 이러한 루터를 보며 에디는 레이와 같은 인간은 죽게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레이가 가진 인종차별주의, 범죄 전과, 가난, 무지, 그러한 모든 것들은 오직 죽음으로만 사라질 병증으로 여겨진다.

  영화의 마지막, 에디는 레이를 지혈하는 루터를 바라보며 현관문을 열고 경찰을 기다린다. 증오는 복수가 아닌 인본주의적 신념으로 봉합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누구나 그 결말이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게 된다. 미국 사회의 오랜 불안 요소로서 인종차별 문제가 가진 위험성은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였다. 이미 이전에도 여러 도시에서 인종 폭동이 발생했으며, 전쟁은 그 폭력적 사태를 잠시 동안 멈추게 했을 뿐이었다. 이제 전쟁은 끝났고,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환부를 들여다 보아야만 했다. 영화 속에서 도시의 흑백 인종 폭동이 재현되는 시퀀스는 1분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멘케비치가 압축적으로 담은 폭동 장면에는 미국 사회 내부에서 곪아터지기 시작한 인종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No Way Out', 이제 끓어오르는 분노가 빠져나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1950년대 흑인 민권 운동에 대한 명백한 예언자적 발화(發話)를 담고 있다.


*사진 출처: cinemamuseum.org.uk      Somewhere in the Night(1946)   



**사진 출처: cinemamuseum.org.uk      D.O.A.(1950)



***사진 출처: tcm.com             No Way Out(19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현실과 환상의 경계:

City of Pirates(1983), After Hours(1985), Stranger than Fiction(2006)
 


1. 망명자 감독이 써내려간 초현실주의적 'Vanitas', City of Pirates(1983)

  정신분석학 입문 강의의 첫 번째 과제물은 '자유 연상(Free association)'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내는 것이었다. 자유 연상, 말 그대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그 어떤 통제나 검열없이 털어놓게 함으로써 무의식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한 정신분석학적 도구를 발빠르게 수용한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프랑스의 작가로 초현실주의를 주창한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은 무의식의 표현을 위한 '자동 기술법(automatic writing)'을 착안해냈다. 비현실적 환상으로 채워진 영화 세계를 보여주는 칠레 출신의 감독 라울 루이즈(Raúl Ruiz)의 '해적들의 도시(City of Pirates. 1983)' 시나리오도 그런 방식으로 쓰여졌다. 라울 루이즈는 자신에게 떠오르는 무의식적 사고들을 종이 위에 무작정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영화를 찍었다.

  영화는 '해외의 땅, 종전 1주일 전'이라는 의문의 자막으로 시작된다. 이시도르(Isidore)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는 어느 섬에서 어머니, 의붓아버지와 살고 있다. 이시도르는 불안과 우울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의붓아버지의 성추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괴로워하는 이시도르는 방에 숨어든 어린 소년 말로를 만나게 된다. 가족들이 모두 살해당했다는 말로는 이시도르에게 약혼을 제안한다. 어린 약혼자 말로, 버려진 성에 사는 또 다른 추방자 토비, 이시도르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기이한 여정에 나서는데...

  자동기술법에 따라 쓰여진 시나리오를 관객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는 라울 루이즈의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생각의 파편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든 이 다작 감독은 결코 대중적인 작품을 만든 이는 아니었다. 이 감독에게 있어서 생의 결정적인 사건은 칠레의 정치적 격변이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는 라울 루이즈가 칠레를 떠나 프랑스에서 살도록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면 망명자로서 그가 느끼는 조국에 대한 부채의식, 무지막지한 독재자에 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피와 칼의 이미지가 그것을 입증한다.

  이시도르의 어린 약혼자 말로는 가족들을 살해하고 값비싼 보석들을 훔쳐서 달아난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나온다. 소년은 이시도르의 의붓아버지를 살해하고, 이시도르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어떤 면에서 고통받는 이시도르는 감독 자신의 영화적 자아일 수도 있다. 라울 루이즈는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자신의 상황을 조난자, 내지는 해적들에 의해 납치된 비운의 승객으로 여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해적들의 도시'는 영화 속에서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시도르는 섬을 떠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해골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이 영화를 줄거리로 파악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무익하다. 라울 루이즈는 다양한 색들을 사용한 필터로 촬영된 바다의 풍경들,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차용된 이미지들로 내러티브를 만들어 나간다. '해골'의 이미지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 영화가 일종의 '바니타스(Vanitas, 유한한 인생의 허무함을 일깨워주는 그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울 루이즈는 변화시킬 수 없는 조국의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고통, 독재자를 향한 독설을 뒤틀린 환상의 세계로 표현한다. 그는 망명한 예술가로서의 책무를 잊지 않았다. '해적들의 도시'는 해외의 땅에서 내면의 전쟁을 치루는 자신에 대한 보고서인 동시에 조국 칠레를 향해 쏜 비탄의 화살이기도 하다.


2. 작가와 등장인물의 만남, Stranger than Fiction(2006)

  라울 루이즈의 '해적들의 섬'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그린 매운 맛 영화라면, 마크 포르스터의 2006년작 'Stranger than Fiction'은 순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 해롤드 크릭(윌 패럴 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설명하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 국세청 직원으로 오로지 숫자와 씨름하며 정해진 규칙대로 사는 그의 삶에는 '재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설명하는 여자의 목소리 때문에 해롤드는 미쳐버릴 것 같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해롤드의 죽음을 예고한다.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갔더니, 조현병(정신분열증; 주요한 증상은 환청, 환각을 비롯해 망상과 같은 이상 지각이다)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절대로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해롤드는 문학 교수에게서 도움을 구하는데...   
 
  해롤드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 즉 해롤드를 주인공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한 축에는 글을 쓰다 막힌 작가 카렌(엠마 톰슨 분)과 글쓰기를 돕는 출판사 직원 페니, 그리고 또 다른 축에는 카렌이 써내려가는 해롤드의 삶이 자리한다. 평행선을 달리며 결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작가와 등장인물은 해롤드가 자신의 예고된 죽음을 거부하면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해롤드는 결코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자신이 정한 규칙들을 깨가며 삶을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가와 등장인물과의 만남, 영화 'Stranger than Fiction'의 플롯은 무척 기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새롭지도 않다.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867-1936)의 희곡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는 작가가 창조한 희곡 속 등장인물들을 두고 모델이 된 실제 인물들의 싸움이 리허설 장면에서 펼쳐진다.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이 독특한 희극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진짜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에서 작가 카렌이 만들어낸 등장인물 해롤드는 진짜 현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카렌은 그때까지 써냈던 소설의 주인공에게 늘 그러했듯 죽음으로 끝을 내려한다. 해롤드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작가를 찾아가 결말을 바꾸라고 부탁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해롤드는 그 작가가 누구인지 모른다. 해롤드가 작가를 찾아가는 여정, 그것이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든다.

  'Stranger than Fiction'은 작가가 만들어낸 등장인물이 실제의 삶을 살고 있다는 설정으로 관객들을 유인한다. 여기에 해롤드의 로맨스, 작가의 존재를 특정해 나가는 추리의 과정, 등장인물에게 신과 같은 작가의 현실적 고뇌가 겹쳐진다. 관객들은 그 모든 이야기가 말도 안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가 설계한 환상의 세계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과연 카렌은 삶과 죽음, 그 둘 중 어떤 것을 해롤드에게 선사할 것인가? 이야기의 완결성을 생각한다면 해롤드는 죽어야 하고, 해롤드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게 해야한다. 여러분이 카렌이라면 해롤드의 운명을 어떻게 써내려갈 것인가? 이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 모두 좋은 성과를 냈다. 마크 포르스터는 소설과 현실을 오가는 독특한 이야기를 대중적인 입맛에 맞추어 무난하게 연출했다.


3. 마틴 스콜세지가 그려낸 뉴욕 환상 특급, After Hours(1985)

  어렸을 적에 TV에서 방영된 '환상 특급'이라는 외화 시리즈는 참으로 기괴하고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의 1985년작 '특근(After Hours)'을 보면서 그 '환상 특급'을 떠올렸다. 영화는 평범한 직장인이 경험한 악몽과도 같은 하룻밤의 모험담을 그렸다. 늘 판에 박힌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던 데이터 입력자 폴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여성 마시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소호(Soho)를 찾는다. 총알 택시 기사의 난폭운전에 20달러를 잃은 것부터 어째 조짐이 좋지 않다. 어떻게든 마시를 꼬셔보려는 폴의 시도는 무산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돈이 없어서 지하철도 못탄다. 다시 마시에게로 돌아와 보니, 여자는 죽어있다. 그 와중에 절도범으로 몰린 그는 분노한 소호 자경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과연 그는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만들 무렵의 마틴 스콜세지는 무척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의 이전 작품들은 비평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흥행 수익 면에서는 그렇질 못했다. 그 때문에 그는 제작사들에게 'box-office bomb(흥행 실패작)' 양산자로 여겨졌다. 제작사들의 외면을 받는 괴로운 시기에 스콜세지는 독립 영화를 만드는 심정으로 'After Hours'를 후다닥 만들었다. 그를 움직인 것은 매력적인 시나리오였다. 조셉 미니언의 각본에 스콜세지가 수정을 가한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처음에는 결말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촬영 내내 스콜세지는 지인들에게 결말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엔딩은 정말이지 꽤 괜찮다.

  영화의 주인공 폴이 대변하는 중산층 인텔리 직장인의 작은 일탈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이어진다. 시작은 '헨리 밀러(Henry Miller, 외설적인 내용의 소설로 유명)'의 소설책에서부터 였다. 카페에서 그 책을 읽고 있는 폴에게 마시가 접근한다. 처음에 폴의 머릿속에는 가볍게 하룻밤 보낼 상대를 찾을 심산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시가 머무는 조각가 친구 키키의 집이 있는 소호에 가게 된다. 그러나 소호에서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폴의 성적인 추동(sexual drive)을 좌절시켜 버린다. 죽어버린 마시, 도난범으로 모는 카페 여종업원 줄리, 폴을 추적하는 자경단을 이끄는 게일, 그를 자경단에게서 숨겨준다며 급기야 회반죽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린 준까지. 폴의 수난은 그렇게 이어진다.

  마틴 스콜세지는 폴이 겪는 성적인 좌절감에 더해 실존적 위기를 덧붙인다. 마시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폴은 키키가 있는 클럽 베를린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험악한 인상의 클럽 문지기는 다른 사람은 입장시키면서 폴은 들어갈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스콜세지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심판'의 일부분에서 따왔다. 법정으로 들어가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문지기에 의해 번번히 거부당하는 남자의 이야기. 그처럼 폴도 클럽 베를린과 소호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 억지로 우겨서 들어간 클럽에서 그는 강제로 삭발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그곳은 폴에게 악몽과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끔찍한 공간이 된다.

  그렇게 영화는 '소호'라는 장소에 일탈과 공포, 불안정성과 과격함을 부여함으로써 비현실적 공간으로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폴은 결국 아침 일찍 열리는 직장의 철문을 통과해 사무실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것은 단지 소호에서 직장으로의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환상에서 현실로의 복귀이며 정체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After Hours'는 마틴 스콜세지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스콜세지가 선사하는 기기묘묘, 요절복통 '환상 특급'인 이 영화의 매력을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발견하길 바란다. 

 

  

*사진 출처: usa.newonnetflix.info



**사진 출처: slantmagazine.com      영화 '특근(After Hours)', 영화 음악을 맡은 하워드 쇼어의 클래식에서부터 다양한 팝 음악에 이르는 선곡, 오리지널 스코어가 무척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Duel(1971),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계시 

  그는 12살에 자신의 첫 홈무비를 찍었다. 나중에 영화학과에 들어갔으나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사의 TV 프로덕션 부서에 입사했다. 23살 때의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첫 TV 방영용 영화를 찍은 것이 25세,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자 제작사는 영화 상영을 위해 추가 촬영을 해서 극장에 내걸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첫 작품 'Duel(1971)'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스필버그가 지닌 영화적 재능은 천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명하다. 중년의 샐러리맨 데이비드는 고객과의 만남을 위해 장거리 출장길에 나선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그는 거대한 탱크로리와 마주친다. 길을 막아서는 탱크로리를 어렵사리 추월하고 가려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탱크로리가 데이비드를 계속해서 따라잡으며 위협을 가한다. 그렇게 데이비드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탱크로리 기사와의 고속도로 '결투(Duel)'가 시작된다. 오직 두 대의 차가 벌이는 숨막히는 추격전, 주인공과 탱크로리 기사의 심리전, 스필버그는 러닝타임 90분 동안 관객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Duel'에서 집채만 한 탱크 로리가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며 주인공의 차를 따라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스턴트맨이 낸 속도는 '30mph', km로 환산하면 '48km/h'이다. 그러니까 스필버그는 오직 촬영과 편집만으로 위압적인 속도를 창출해낸 것이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경주로 생각했던 샐러리맨은 죽일 듯이 달려드는 트럭에 공포감을 느낀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다. 악마같은, 미친 운전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는 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영화에서는 그 당시 미국 중산층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과 사회적 피로감이 감지된다. 'Duel'에서의 기계들의 대결은 스필버그의 출세작 '죠스(Jaws, 1975)'의 인간과 식인 상어와의 대결로 비슷하게 재현된다.

  스필버그의 'Duel'은 어떤 면에서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계시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영화 이전에 존재한 선구자격의 영화는 있었다.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형사 스릴러물 '블리트(Bullitt, 1968)'는 잘 짜여진 플롯과 함께 스릴 넘치는 멋진 자동차 추격 장면이 들어있다. 피터 예이츠 감독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시내에서 교외로 이어지는 놀라운 추격신을 보여준다. 자동차 안에서 실제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촬영된 장면은 관객들에게 마치 자신이 운전자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즈음 촬영 장비들의 휴대성과 성능이 좋아짐에 따라 감독의 연출 폭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제작비의 열 배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낸 '블리트'의 성공은 메이저 스튜디오에 영감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2. 속도에의 열망

  '블리트'가 보여준 볼거리로서의 차가 가진 가능성은 1970년대 영화에서 내러티브의 주요한 축으로 확장된다. 그런 면에서 1971년에 나온 두 편의 영화는 마치 영혼의 쌍둥이처럼 보인다. 몬티 헬만의 'Two-Lane Blacktop(1971)'과 리처드 C. 사라피안의 'Vanishing Point(1971)'는 자동차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두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사도 거의 없다. 그들에게 자동차와 운전은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 별 의미도 없는 경주에 자신을 내던지며 도로를 달린다. 식음도 전폐해 가며 도로를 내달리는 이들, 그들은 자동차가 내는 속도에 중독되어 있다.

  이러한 '속도에의 열망'을 보여주는 일련의 영화들의 시작점에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Easy Rider,1969)'가 자리한다. 히피 오토바이족들의 일탈을 그린 이 로드 무비는 젊은 관객들의 취향과 크게 공명했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길바닥에 달리는 무언가만 세워놓아도 돈이 될 것만 같았다. 제임스 구에르시오의 'Electra Glide in Blue(1973)'에 나오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히피족들의 초상은 그 단적인 예이다. 오토바이 영화의 짧은 전성기는 끝났지만, 자동차 영화는 자신의 제국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속도가 주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이러한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동차 회사들의 적극적 마케팅도 작용했다. 그 시기 영화들에 나오는 차들의 차체는 오늘날의 차들에 비해 훨씬 크고, 연비가 아닌 주행 속도에 맞추어 개발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하면 더 크고 멋진 차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했다. 'Two-Lane Blacktop'의 '70 Pontiac GTO, 'Vanishing Point'의 '70 Dodge Challenger와 같은 클래식 카들은 아직도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회자된다. 오늘날, 이런 자동차 영화들을 면밀하고 주의깊게 다루는 매체는 의외로 자동차 관련 잡지들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것만 같았던 자동차 산업은 뜻밖의 복병을 만난다. 1973년 가을에 시작된 '석유 파동(Oil crisis)'이었다. 중동 전쟁이 촉발한 심각한 세계 경제적 위기 속에서 미국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정부는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함으로써 석유 소비량을 줄이고자 했다. 그해에 이미 여러 주에서 속도 제한 법령을 도입했고, 1974년에는 닉슨의 승인으로 미국 전역에 '전국 최고 속도 제한법(National Maximum Speed Law, 제한 속도 55 mph)'이 시행되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차체를 줄이고, 속도 보다는 연비 향상에 신경을 썼다. 베트남전의 패배가 남긴 상처, 석유 파동이 가져다준 경제적인 한파, 그 모든 것이 미국인들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3. 문화와 감성을 덧입힌 자동차 영화

  어려운 시절에 잘 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조지 루카스는 그 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만든 'American Graffiti(1973)'는 정확히 그 10년 전인 1963년의 좋았던 시절로 미국인들을 안내했다. 영화는 한마디로 미국인들의 심장을 강타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자동차와 향수 가득한 팝송이 흐르는 이 영화는 기록적인 흥행 수익을 냈다. 루카스는 돈방석에 앉았고, 그것을 밑천으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내놓을 수 있었다.

  'American Graffiti(1973)'는 자동차 영화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자동차 영화에서 '속도'는 여전히 중요했지만, 특수한 '감성'과 계층 '문화'를 담는 것이 보다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어떻게든 돈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그것은 1970년대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생존 과제였다. 영화는 더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었다. TV 앞으로 몰려간 사람들은 영화관으로 좀처럼 오지 않았다. 수익성의 확대를 위해 관객층을 세분화한 제작 마케팅이 이루어졌다. 흑인 관객층을 겨냥한 'Blaxlpoitation' 필름이 그 단적인 예였다. 마이클 슐츠(Michael Schultz)의 1976년작 'Car Wash'는 바로 Blaxploitation 자동차 영화였다.

  영화 속 배경은 LA의 'Dee-Luxe'란 이름의 세차장이다. 'Car Wash'는 당시 흑인 하위 문화를 총집합해 놓았다. 영화 내내 세차장에서 틀어놓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 DJ의 걸쭉한 입담과 노래들은 자동차와 대중 음악의 밀접한 문화적 연결성을 입증한다. 흑인 동성애자 직원, 창녀, 흑인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사기꾼 설교자, 거만하고 수선스러운 중년의 백인 여성 손님, 'Car Wash'는 세차장을 통해 미국 사회의 주변부를 조망한다.

  백인 사장과 흑인 종업원들의 관계는 미국 사회 내부의 인종적, 계층적 갈등을 암시한다. 마오쩌둥의 어록을 들고 다니며 직원들과 함께 하려는 사장 아들의 행태는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영화는 피상적인 이상주의로 접근하는 백인 지식인들에 대한 멸시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것은 결근을 이유로 해고당한 흑인 직원 압둘라가 총을 들고 세차장을 털려고 하는 장면과 대비된다. 혁명가를 자처하는 압둘라의 과격함을 막아서는 것은 나이 많은 온건한 흑인 동료이다. 그는 압둘라를 체제 순응적인 삶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할 니드햄 감독의 'Smokey and the Bandit(1977)'은 'Car Exploitation' 영화가 가진 관객 확장성을 극대화시켰다. 8만 달러를 받고 맥주 400상자를 로데오 경기장에 총알 배송하기 위해 두 명의 친구가 나섰다. 트럭 기사 친구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 도로를 달리는 동안, 'Bandit(버트 레이놀즈 분)'은 자신의 자동차로 단속 경찰을 따돌리는 임무를 맡는다. 그는 가는 도중에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신부(샐리 필드 분)를 태운다. 신부의 시아버지가 되는 보안관은 그 둘을 필사적으로 쫓는다. 이 간단명료한 줄거리의 영화가 그해 미국 영화 수익률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다. 1등이 그 유명한 '스타 워즈'였다.

  버트 레이놀즈가 보여주는 유쾌하고 신나는 방랑자 캐릭터, 희화화된 시골 보안관, 끊임없이 이어지는 트럭과 자동차들의 질주, 'Smokey and the Bandit'은 자동차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오락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제작사 Universal Pictures는 욕심을 부렸고, 추가로 제작된 2편과 3편 또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짭짤한 수익을 냈다. 20세기 폭스사가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사와 손잡고, 감독 할 니드햄을 내세워 만든 영화가 'The Cannonball Run(1981)'이다. 우리나라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성룡의 캐논볼'로 기억에 남은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인기가 있어서 추가로 후속편이 두 편 더 제작되었다.


4. The Driver(1978), 작가주의적 관점과의 결합

  'Bullitt(1968)'의 조감독 보조(크레딧에 올라가지 않음)로 참여한 월터 힐(Walter Hill)은 당시 피터 예이츠의 자동차 장면 연출 방식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78년에 자신만의 자동차 영화를 내놓았다. 'The Driver'는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이 영화의 플롯은 장 피에르 멜빌(Jean-Pierre Melville)의 '사무라이(Le Samouraï, 1967)'를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 알랭 들롱이 연기한 살인 청부업자 제프는 라이언 오닐의 'driver' 역으로 대체되었다. 'The Driver'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영화는 그러한 도시인의 익명성과 함께 도시의 차가움과 고독함을 재현하는 데에 촛점을 맞춘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가 그림으로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보여준 것처럼, 월터 힐은 공동체와 단절된 개인과 금속 덩어리인 자동차를 결합해 그것을 보여준다.   

  'Love Story(1970)'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라이언 오닐에게 이 영화는 실질적인 경력의 끝자락에 자리한다. 자기 관리에 실패했고, 자신에게 맞는 배역이 더이상 들어오지 않으면서 이 배우의 전성기는 너무나 빨리 끝나버렸다. 그 때문인지 'Le Samouraï'의 알랭 들롱이 보여준 냉혹함과는 달리, 오닐에게서는 무거운 침울함이 번져나온다. 그가 연기한 영화 속 'driver'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극한의 자동차 스턴트로 구현된 장면들에서이다. 'driver'는 신출귀몰할 운전 실력으로 강도들의 도주를 돕는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강도들에게 그들의 차를 미친 듯한 운전으로 망가뜨려가며 납득을 시킨다. 월터 힐은 엉성한 플롯의 빈자리를 자동차를 이용한 놀라운 추격 장면으로 메꾸어 넣었다.     

  'The Driver'에서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는 모두 절제되어 있다. 심지어 음악조차 별로 나오지 않는다. 영화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자동차'이며, 그것이 내뿜는 모든 것이다. 관객의 귀를 강타하는 거친 차량 배기음, 그것들이 충돌할 때에 내는 폭발음, 차체에 반사되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도시의 네온 불빛, 그 모든 것들이 내러티브가 된다. 'driver'를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된 형사는 그를 '카우보이(cowboy)'라고 부른다. 그것은 자신이 만든 영화들은 모두 '서부극(Western)'이라고 한 월터 힐의 말과 연결된다. 이 영화는 서부의 공간성을 '도시'로, 카우보이의 총을 '자동차'로 치환한다. 가족도, 정해진 주거지도 없는 떠돌이 카우보이처럼 'driver'는 그렇게 도시를 부유한다. 그의 유일한 소지품은 '자동차'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과 맞선다.

  월터 힐의 이 미니멀리즘 도시 서부극은 당시의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낯설고 재미없는 것이었다.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이 영화의 결말을 포함해 'The Driver'에는 허무주의가 베어져 나온다. 그리고 이는 1970년대 미국인들이 느꼈던 국가와 자유주의에 대한 실망감과 맞닿아 있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집결했고, 레이건의 시대가 열릴 참이었다. 정체성을 찾고, 새로운 모험을 기대하며 길 위로 쏟아져 나왔던 미국인들과 그들의 자동차, 그 영화의 시대는 분명 저물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Go home!"

  영화 속 'driver'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강도를 제거한 후, 풋내기 부하를 살려 보내며 그렇게 말한다. 'Bullitt(1968)'의 차가운 도시 남자와 자동차의 물리적 결합은 월터 힐의 작가주의적 각인이 찍힌 'The Driver'로 재탄생했다. 동시에 그것은 자동차 영화 시대의 고별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한 속도에 묶여버린 무한 질주에의 욕망, 경제 침체, 확장된 개인주의, 그러한 요인들을 자양분으로 1970년대의 자동차 영화는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자동차 영화들은 단순히 멋진 기계로서의 자동차들의 전시와 질주가 아니라, 시대적 욕망과 사회적 풍경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그 영화들을 보는 것은 1970년대 미국의 펄떡이는 심장부로 직진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tcm.com      'Bullitt(1968)'의 스티브 맥퀸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에드워드 호퍼 'Nighthawks(1942)', 시카고 미술관 소장




***본문에서 언급한 영화들

Le samouraï(1967), 장 피에르 멜빌

Bullitt(1968), 피터 예이츠
Easy Rider(1969), 데니스 호퍼


Two-Lane Blacktop(1971), 몬티 헬만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1970-two-lane-blacktop-1971.html
The Duel(1971), 스티븐 스필버그
Vanishing Point(1971), 리처드 C. 사라피안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at-full-speed-vanishing-point-1971.html
Electra Glide in Blue(1973), 제임스 구에르시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hippie-movement-electra-glide-in.html
American Graffiti(1973), 조지 루카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american-graffiti-1973.html

Car Wash(1976), 마이클 슐츠  
Smokey and the Bandit(1977), 할 니드햄 
The Driver(1978), 월터 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글은 하나의 도형 그림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그림 출처(en.wikipedia.org)


  여러분은 위 그림에서 두 개의 주황색 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대다수는 오른쪽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두 점의 크기는 똑같다. 다만 그 주변을 둘러싼 원들의 크기가 보는 이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에빙하우스 착시 또는 티치너 원(Ebbinghaus illusion or Titchener circles)'이라고 불리는 이 도형 그림은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에서 잘 알려진 '맥락 효과(Context Effect)'를 입증한다. 그것은 주변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하나의 자극에 대한 인식이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의 영화 제작자 세르게이 로즈니차(Sergei Loznitsa) 감독의 2021년작 다큐 'Babi Yar. Context' 제목에 바로 그 '맥락(Context)'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Babi Yar'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Kyiv)에 있는 협곡의 지명이다. 그곳에는 숨겨진 학살의 역사가 자리한다. 1941년 9월 29일부터 30일, 그 이틀 동안 바비 야르에서는 키에프 거주 유대인이 독일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밝혀진 희생자의 숫자만 33,771명이다. 1943년 11월, 소련군이 키에프를 탈환할 때까지 최소 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추가로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비 야르 학살은 나치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의 기록 가운데 단시일에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으로 여겨진다. 도대체 1941년 9월의 끝자락에 키에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개인적인 의문은 그렇게 'Babi Yar. Context' 제작으로 이어졌다.

  다큐는 귀를 찢는 듯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다.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시커먼 포연이 한가로워 보이던 키에프 교외의 풍광을 집어잠킬 것만 같다. 1941년 6월, 폴란드를 점령한 데에 이어 독일군은 우크라이나로 진격했다. 황급히 퇴각하던 소련군은 키에프 곳곳에 폭약을 설치했고, 그렇게 망가진 도시를 독일군에게 넘겨줄 심산이었다. 무너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키에프 시민들의 희생이 잇따랐다. 9월 19일에 키에프를 장악한 독일군은 그것을 유대인 절멸의 기회로 보았다. 1923년의 관동대지진에 재일 조선인들이 희생양이 되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그 모든 파괴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자 나치는 신속하게 학살 계획을 수행했다.

  당시 키에프에 주둔한 독일군 장병과 장교들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던 카메라와 영사기로 그 일련의 상황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로즈니차는 아주 다양한 경로로 자료들을 입수했다. 흑백과 컬러 사진들, 8mm와 16mm, 35mm 네가티브 필름들의 품질은 제각각이었다. 다큐를 위해 일부는 복원 과정을 거쳤고, 그가 무엇보다 공을 들였던 것은 '사운드'였다. 실제 연설 장면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리는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배우나 성우가 아닌 일반인들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사운드를 가공했다. 그러한 사운드 디자인에는 배경 소음도 포함되었다. 예를 들어 학살지 근방에 커다란 짐짝처럼 쌓인 유대인들의 옷가지를 찍은 스틸 사진들이 제시될 때,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어간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마치 Babi Yar 협곡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큐에는 직접적인 학살 장면이 들어있지 않다. 영화의 제목에 들어있는 'Context'가 의미하듯, 이 다큐는 'Babi Yar 학살 사건'의 전후 맥락만을 제시할 뿐이다. 독일군의 키에프 침공과 점령, 유태인들이 나치의 소집 명령에 따라 협곡으로 끌려가는 과정, 그리고 학살이 이루어진 이후의 풍경, 소련군의 키에프 탈환, 그리고 학살 주동자 재판까지 여러 자료 화면들이 겹겹이 덧붙여 이어진다. 내레이션은 없으며, 중간중간 실제 역사적 사실이 자막으로 제시된다. 로즈니차가 보여주는 이러한 편집 방식은 매우 건조하고 중립적이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제작자의 관점을 관객에게 제시하기 보다는, 자신을 독자적으로 발굴한 풍성한 역사적 사료의 제공자로 자처한다. 그러므로 자료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내 목표는 관객들을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마주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당시 사건의 주변 분위기를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죠. 나는 그러한 영화적 방식이 일종의 통찰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My aim is to make the spectator 'face' and 'experience' the events and the atmosphere of the time, as if he/she was there in-person. I believe that cinema is capable of stimulating and generating this kind of insight)." - The Times of Israel과의 인터뷰 가운데 

  'Babi Yar. Context'에서 관객들이 목도하게 되는 것은 학살 그 자체가 아니라, 학살을 둘러싼 여러 복잡한 상황들이다. 키에프에 진입하는 독일군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환영하는 시민들(동원된 관중이 아니라 자발적으로)의 모습은 관객들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러시아인들에게 1941년의 그 키에프 시민들은 배신자들이며, 국외자인 관객들에게는 의문의 대상이 된다. 찢겨져 나가는 스탈린의 초상 대신 창문에 빳빳하게 붙여진 히틀러의 사진을 비롯해 독일 장군의 연설에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 왜 그들은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인식했는가? 거기에는 국외자가 잘 알지 못하는 '우크라이나'라는 지역이 가진 역사적 특수성과 함께 스탈린의 폭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키에프 시민들은 스탈린의 압제 하에서 굶어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나치 치하에서 보다 나은 생존을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큐는 키에프 시내의 유대인들이 시민들에 의해 건물에서 끌려나오고 모욕과 함께 가혹한 린치를 당하는 장면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구경꾼들은 더러 웃기도 하면서, 포식자에게 쫓기는 짐승처럼 울부짖고 두려워하는 유대인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본다. 그렇게 쫓겨난 유대인들 소유의 집과 귀중품들은 그곳의 시민들에게 약탈과 은닉의 대상이 되었다. 학살의 주모자는 분명히 나치 독일군이지만, 다큐는 상당수 키에프 시민들이 적극적 또는 암묵적 동조자였음을 보여준다. Babi Yar 학살 사건은 그러한 시민들의 협조 속에 이루어졌다.

  독일군은 키에프 시민들을 동원해 Babi Yar 협곡 주변을 파게 했다. 그곳은 곧 학살지와 거대한 암매장지가 된다. 나치의 공고문에 따라 신분증과 귀중품, 약간의 소지품을 들고 나섰던 유대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협곡으로 실려갔다. 영상에 담긴 대다수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죽음을 예감한 어느 여인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매장을 용이하게 하기 죽기 직전에 옷을 벗게 했으며, 다큐는 그렇게 들판의 무수한 짚단처럼 쌓인 옷가지들로 죽은 이들의 숫자를 가늠하게 만든다.

  파이를 굽기 위해 얇은 반죽으로 겹겹이 층을 내듯, 독일군은 한 무리의 유대인들을 총살시킨 후 그 위에 또 다른 무리를 몰아놓고 시신을 쌓아 나갔다. 협곡은 말 그대로 죽음의 계곡이 되었다. 소련군이 키에프를 탈환한 후에 이루어진 학살자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생존자 여성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암매장당한 시신들 속에서 죽은 척 연기를 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쌓인 시신 대부분은 유대인들이었지만, 그 가운데에는 집시와 정신질환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소련군 포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치에게는 모두 제거해야 마땅한 열등 분자들이었다.

  히틀러의 군대를 환영했던 키에프 시민들의 입장은 1943년 11월에 바뀌었다. 소련군은 키에프를 탈환했고, 1946년 1월에 전범 재판을 열어 주동자들을 키에프의 칼리닌 광장에서 공개처형했다. 다큐 속 영상에는 그들의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나와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로마 시대 콜로세움의 관중들처럼 시민들은 전범들의 처형을 바라본다. 더러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려고 사람들을 헤집고 높은 곳에 매달리기도 했다. 시민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이후 Babi Yar에 묻힌 원혼들의 존재는 잊혀지기 시작했다. 권좌를 지켜낸 스탈린은 어떤 식으로든 전쟁과 학살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계곡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 되었다.

  1952년에 Babi Yar가 홍수로 범람하자, 키에프 시는 벽돌 공장에서 나오는 토사 부산물로 계곡 일대를 메꾸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죽은 이들은 오물을 뒤집어 쓰고 세월의 망각 속에 잊혀져 갔다. 로즈니차는 그것을 'Chronocide(time killing, 시간에 의한 죽음)'라고 말한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매몰되길 바라는 것은 가해자와 압제자가 바라는 것이다. 거기에 반대하여 다큐 제작자로서 그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자신이 엄선한 역사적 영상 자료를 가지고 잊혀진 학살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한다. '와서 보고 느끼시오. 키에프의 협곡 Babi Yar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그 어떤 학살의 장면이 나오지 않는, 'context'만으로 구성된 이 다큐를 보는 관객들은 각자가 처한 자신들의 입장에서 'Babi Yar'의 실체적 진실을 인식하게 된다.




*'Babi(y) Yar'는 러시아어의 로마자 음차 표기이다. 우크라이나어의 로마자 표기는 'Babyn Yar'이다. 벨라루스 출신으로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러시아 국립 영화학교(VGIK)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현재는 독일에서 거주한다. 그가 왜 우크라이나어식 표기가 아닌 러시아어 음차 표기를 제목으로 썼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인터넷 검색시 'Babyn Yar'로 치면 더 많은 공식적인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 '스탈린의 장례식'을 다룬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2019년작 다큐 'State Funeral'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1/great-farewell1953-state-funeral2019.html



****사진 출처: independent.co.uk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