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스(Milkis)의 맛


오래전 주윤발(周潤發)의 광고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싸랑해요, 밀키스!

오랜만에 밀키스를 샀다
이걸 마지막으로 마신 지가
20년도 더 된 것 같아
익숙하고도 그리운 맛

그런데, 씁쓸한 밀키스 zero
어쩌면 나는 설탕의 시간을
추억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주윤발의 젊은 날과
나의 학생 시절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삶은 그때도 괴로웠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래도, 밀키스의 맛
오늘처럼 그리워질 테지
식탁에 턱을 괴고
희뿌연 탄산음료에
축축한 눈을 맞춘다

자, 한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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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쓸모



시를 쓰다가 미쳐버린 사람
시를 쓰다가 굶어 죽은 사람
시를 쓰다가 중독자가 된 사람

혈관에 풀어놓은 뱀독 마냥
시가 인생을 삼켜버리고
결국 시인은 쪼그라든
아주 작은 점으로
무섭고 슬픈 이야기

6월,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흘러내리고
아가의 옹알이 소리
살아있다는 것

아주 멀고 먼 옛날
라스코 동굴(Lascaux Caves)의 그들은
쓸모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지

미래의 독자에게 보내는
희미한 수신호(手信號)
재로 짓이겨진 동굴 벽
검푸른 자귀나무의
잎사귀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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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산책


참새는 대가리를
치고받으면서
싸우는 중이다
참새가 저렇게
사납게 구는 건
처음 본다 정말

무자유카는
주렁주렁 흰 꽃을
늘어뜨리고 자신의
때를 과시하지만
너에게는 향기가 없지

공원에는 처절한 세금 낭비인
노인 일자리 정책의 노인들
거리 청소를 위한 빗자루는
조용히 잠들어 있어
자식이 얼마나 용돈을 주는지
자랑을 늘어놓는
무료한 농담의 대잔치

자, 우리 초코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
젊은 여자는 목줄을
풀고 강아지를
가슴에 품는다

건너편 아파트에서는
홀로 집을 지키는 개가
목이 터져라 짖고 있어

족저근막염에 걸린
발이 아파서 비명을 지를 무렵
어디선가 자그맣게 들리는 소리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달력에다 자그맣게 써넣는다

매미가 울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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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시


아주 젊은 나이에 죽은
시인의 시를 읽었다
지상에서의 불행한 삶
가정폭력의 피해자
성소수자 그리고
시인이란 이름의 굴레

더럽고 슬프고
눈물과 분노가 가득한
절망의 시
시인은 영원의 시간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쾅,

미쳐서 죽지 않으려면
시를 쓰지 않는 편이 좋아
누군가 그렇게 충고하는
것을 들었다

정상(正常)의 삶은
쉽게 주어지지 않지
이해와 안온한 일상이
있는 풍경 저 너머
죽은 시인의 시가
꺽꺽 우는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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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려주고 싶은


목이 고장난 선풍기는
앉는 법을 잊어버렸다
길게 늘어진 아픈 목에서는
가끔 끼익 끼익 소리가 난다
거 참, 듣기 싫군

그럴 땐 말이죠
이렇게 하는 겁니다
한 대 딱, 때려주는
거예요 그러면 대개는
기계들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가거든요

딱, 그렇게 선풍기를
한 번 세게 때려주었다
15년 된 컴퓨터의
하드가 드르륵거리며
힘겹게 작업을 할 때도
주저없이 때려주었다

가끔, 인생도 그렇게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한다
그런데 어딜 때려주어야 할까

약한 부분을 때려야지
아프게 움직이는 과거
오늘의 나는 전혀
새롭지 않으며
반복되는 이야기

툭, 찻잔의 이가
깨지며 떨어졌다
그래, 시를 쓰자
노래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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