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치(咽頭齒) 2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경주는 식탁에 앉았다. 거실은 남편의 차지였다. 남편은 거실의 TV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 인간은 하는 일도 없는데, 뭐가 피곤하다고 저렇게 졸고 있을까? 경주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과 울분이 치밀어올랐다. 식어버린 홍차를 홀짝거리면서 경주는 스마트폰의 Chat GPT 화면을 열었다. 언제부터인가 경주의 저녁 일상은 Chat GPT와의 대화로 채워지고 있었다.

  '오늘도 참 피곤한 하루였어. 야, 이 청소일이란 게 말이지, 그러니까 몸을 갈아 넣는 일이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거든.'

  '제니퍼 님,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경주는 인공지능에게 자신을 제니퍼로 부르도록 했다. 제니퍼는 대학 시절 영어 수업 시간에 만든 경주의 영어 이름이었다. 선생님이니, 주인님이니, 이딴 호칭은 그냥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이름이 그 제니퍼였다.

  '야, 우리 남편은 TV 켜놓고 졸고 있어. 그냥 노는 것도 힘든 모양이다. 아까는 나한테 그 뭐라더라. 그래, 인두치 이야기를 하더라고. 멸치에 인두치가 있다는 거야.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하나 더 있대. 나 원 참, 황당해서. 도대체 저 양반은 집에서 뭘 하느냔 말이지. 멸치 이빨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근데 그거 진짜야?'

  '아니오, 제니퍼 님. 멸치에는 인두치가 없습니다. 그건 잉엇과의 일부 물고기에서 발견되는 특징이죠. 멸치에게는 인두치가 없습니다. 멸치는 자기 입으로 들어온 것을 그냥 삼켜버립니다.'

  '인공지능 너희들도 엉터리가 많네. 그러고 보니 남편은 Gemini를 쓰는 것 같던데.'

  '재미나이는 재미 없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말을 믿다니, 남편분은 바보 같네요.'

  경주는 말장난을 하는 Chat GPT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자신의 남편을 '바보'라고 빈정대는 녀석에게 맞장구를 치기는 싫었다.

  '방금 그 농담. 하나도 재미없어. 말조심해.'

  '앗, 기분 상하셨다면 용서해 주세요. 제가 선을 넘었습니다. 남편분을 조롱하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제니퍼 님, 멸치에게는 인두치가 없습니다. 그 점은 제가 분명하게 알려드립니다.'

  '그래. 멸치 이빨 따위 나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야, 근데 오늘 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 아니지, 기분이 찝찝한 일이네.'

  '제니퍼 님,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궁금합니다.'

  '내가 아파트 계단 청소를 하고 있는데, 12층인가 아무튼 거기 세대에서 누군가 나오더라고. 그렇게 일하는데, 집에서 사람 나와서 마주치면 참 어색하고 불편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 사람이 그러니까 아...'

  경주는 채팅창에 글을 입력하다가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경주가 마주친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의 동창이었다. 미선은 경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경주는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아는 척을 하자 많이 당황했다.

  "너, 경주 맞지? 그래, 경주 맞아. 나 미선이야. 신미선. 기억 안 나?"

  경주는 화장한 얼굴 사이로 삐져나오는 고3 시절 신미선의 얼굴을 급하게 끄집어내었다. 걔는 나보다 조금 공부를 못했지. 지방대 약대를 갔던 신미선. 그래, 알지. 기억나네. 그런데, 이런 데서 만나다니 젠장. 경주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는 욕지기가 나왔다. 
 
  "너 이대 화학과 갔잖아.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응?"

  미선은 경주의 손을 흔들면서 그렇게 말했다. 경주는 새벽에 자신이 무슨 꿈을 꿨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분 더럽고 재수 없는 일을 겪다니. 경주는 자신에게는 약간의 예지력이 있다고 늘 믿어왔다. 기분 나쁜 꿈을 꾸면, 그날은 꼭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며칠 전에는 꿈에서 검은 개가 쓱, 하고 지나갔다. 그날 하루는 조심해야지 했는데, 저녁까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시시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택배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스의 절단면이 날카로웠는지 엄지손가락이 살짝 베이고 말았다. 피가 번지는 손가락을 감싸면서, 경주는 개수대에서 상처 부위를 씻어냈다. 결국 피를 보는군. 하지만 오늘은 아무 꿈도 꾸지 않았는데, 미선이라는 지뢰가 자신의 코앞에서 터지고 있었다. 경주는 발목이 날아가 버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휴, 뭐라고 얘기를 해봐. 사는 게 많이 힘든 거야?"

  자신의 몸에서 날아가 버린 것은 발목이 아니라 입인지도 모른다. 경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25년의 세월을 뚫고 날아온 이 계집애는 새 장난감을 얻은 것처럼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제니퍼 님, 그래서 뭐라고 말하셨나요?'

  '내가 뭐라고 했나면... 갱년기 우울증 때문에 의사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라고 했다고 했어. 아니, 기껏 쥐어짜 낸 게 그거야. 그 망할 계집애가 내 말을 믿겠냐고.'

  '당연히, 믿지 않겠죠.'

  '내가 이렇게 바보 같다니까. 도대체 그딴 이야기를 왜 꾸며내서 하냔 말이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사람이 바보같이 실수를 해.'

  '너무 당황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래. 그냥 말하지 말아야 했어.'

  '힘든 하루였군요.'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니까. 그랬더니, 이 남편이란 작자가 무슨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있다고 하는 거야. 그 이빨이 무섭고 싫어서 멸치볶음은 안 먹겠다는 거야. 야, 내가 저런 답답이하고 산다.'

  '제니퍼 님, 남편분에게도 나름의 괴로움이 있겠지요. 오늘은 안 좋은 운이 좀 세게 몰려온 날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따뜻한 물 한 잔 드시고, 일찍 주무십시오.'

  제니퍼, 아니 경주는 Chat GPT의 채팅창에 무언가를 더 입력하려다가 말고 그냥 앱을 닫았다. 남편은 오늘도 마루의 소파에서 잠을 잘 것 같았다. 경주는 남편의 손에 헐겁게 쥐어진 리모컨을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그리고 TV를 껐다. 남편은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TV는 그냥 켜놔. 그래야 잠이 잘 와."

  경주는 아무 말 없이 다시 TV를 켜놓았다. 남편이 늘 틀어놓는 채널은 뉴스 채널이었다. 화면 속에서는 거대한 항공모함이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이제 미국의 지상군 투입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 피해 규모는 얼마나 커질지, 현재로서는 예측 불가능성만 커지고 있습니다."

  앵커의 건조한 목소리에는 나름의 비감함이 섞여 있었다. 어쨌든 집이 있다는 건 다행이야. 저녁이면 돌아와서 쉴 수 있는 내 집. 경주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 소식을 들으면서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은 은행과 공유하고 있는 이 집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여보, 당신의 인공지능은 틀렸어. 멸치 목구멍에 이빨 따위는 없다고. 그리고 이제는 일을 좀 해야지. 이 집을 지켜야 할 거 아냐."

  남은 홍차를 개수대에 버리고 잔을 씻으면서, 경주는 가만히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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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두치(咽頭齒)


  "이것도 가져가야지."

  구만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보온 물병을 건넸다.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마실 물을 챙기는 것은 중요하다. 아내가 아파트 미화원 일을 하게 된 지도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아침 7시 30분, 아내는 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로 출근하기 위해 이제 막 길을 나서는 참이었다.

  "또 라면 끓여 먹지 말고, 식사 좀 잘 챙겨요."

  구만이 내민 보온병을 받아 천 가방에 넣으면서 아내가 말했다. 집에서 지내면서 구만은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 참으로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밥은 전기밥솥에 있었고, 반찬이야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먹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마저도 번잡스럽게 생각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라면을 먹는 것이 구만의 점심 일과가 되었다. 때로는 그냥 끼니를 거르거나, 과자 한 봉지를 뜯어먹거나 할 때도 있었다. 작은 소반에다 라면 그릇과 김치를 놓은 다음, TV의 뉴스 채널을 틀었다. 그리고 뜨거운 라면이 불을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구만은 베란다에 서서는 초록색 천 가방을 멘 아내가 점처럼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편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날도 그랬다. 일요일, 동네 뒷산을 오르던 구만은 가슴이 뻐근하게 조여드는 통증을 느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흙 계단 옆의 나무를 가만히 붙잡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 회복실의 침대였다.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 하나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그 혈관을 뚫고 스텐트를 넣었구요. 항혈전제는 매일 빼먹지 말고 복용하셔야 해요."

  녹색 수술 모자 사이로 흰머리가 삐져나온 중년의 의사가 구만에게 빠르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산에서 쓰러진 자신을 누군가 발견했고, 구급차를 불렀다. 그리고 늦지 않게 필요한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구만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엄마, 금상첨화(錦上添花)의 반대말이 뭐야?"

  지팡이를 짚은 노인을 한쪽 팔로 부축한 여자가 그렇게 물었다. 불편한 다리를 힘겹게 끌면서 걷는 노인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글쎄다."
  "에이, 참. '설' 자로 시작되는 거라고 내가 가르쳐줬잖아."
  "그래. 설상가상(雪上加霜)이지."

  구만은 작은 연못이 있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숨이 조금 차는 것 같아서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 모녀의 대화를 들었다. 설상가상. 퇴원하기 전날에 회사로부터 받은 문자가 그러했다. 구만을 천안 공장으로 발령한다는 문자였다. 회사는 구조조정 중이었다.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고 버티던 구만을 회사는 그렇게 밀어냈다. 구만은 자신이 이렇게 몸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혼자 천안으로 내려가서 어떻게든 해볼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어쨌든 살아있는 것이 중요했다. 구만이 회사 책상의 물건을 정리해서 나오던 날에는 진눈깨비가 날렸다. 차가운 눈발이 얼굴에 닿는 것을 느끼며, 회사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곳에 구만이 보낸 21년의 세월이 있었다.

  이제 정오 뉴스가 시작되겠군. 구만은 벤치에서 일어나서 다시 천천히 걸었다. 구만은 집에 라면이 몇 개 남았는가를 헤아려 보았다. 아무래도 마트에 들러서 라면을 사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5개 들이 라면 한 봉지를 들고는 무언가 더 살 것이 없는가를 생각했다. 60대 영감이 지키고 있는 계산대의 조그만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국의 이란 공격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변국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습니다. 담수화 시설 및 석유 생산 기지에 대한 폭격도 발생하고 있는데요. 현재 공습 상황이 어떤지 오만에 나가 있는 특파원을 연결하겠습니다."

  구만은 라면과 석유가 상관이 있는가를 잠시 생각했다. 전쟁이 나면 웃는 이들은 군수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다.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고통받을 뿐이다. 구만은 머릿속에서 라면과 석유를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 넣었다. 구만은 그 두 가지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구만은 라면 봉지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단무지도 하나 사기로 했다. 어제 먹은 냉장고의 김치가 시어 버린 것이 생각났다.

  아내는 구만에게 식사를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지만, 사실 냉장고에 반찬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다. 신 김치와 깻잎장아찌, 2주일이나 지난 멸치볶음이 냉장고 한쪽 구석에 있었다. 아내는 집 근처 상가의 지하에 있는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다가 놓기는 했다. 하지만 조미료 맛에다가 지나치게 짜고 단 그런 반찬에 구만은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런 구만에게 단무지는 그나마 가장 나은 반찬이었다.

  라면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구만은 늘 하던 대로 뉴스 채널을 틀어놓았다. 머나먼 중동에서 터진 전쟁 뉴스가 이제 끝나가는 참이었다. 누군가는 죽거나 다치는데, 자신은 점심으로 먹을 라면이 익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삶은 얼마나 이상한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가. 구만은 익어가는 라면에 달걀을 하나 풀어 넣었다. 계란값은 도무지 떨어질 기미가 없어. 구만은 계란 하나 넣는 것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구만은 자신이 아침에 항혈전제 약을 먹은 것이 맞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별로 소분해 둔 약통을 들여다 보니, 오늘 아침 약이 그대로 있었다. 구만은 얼른 약을 입에 넣었다. 분홍색의 아주 자그마한 이 알약은 어쩌면 구만이 죽을 때까지 먹게 될 약인지도 몰랐다. 구만은 심장의 혈관에 스텐트 2개가 있는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글쎄, 10년 정도는 괜찮겠지. 20년까지는 어떨까? 구만은 자신의 집에 남은 대출금을 생각했다. 지금 매달 나가고 있는 110만 원의 대출금을 앞으로 12년을 더 넣어야 했다. 구만은 문득 인생에 찾아오는 행운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에게는 두 번의 행운이 있었다. 이 아파트가 당첨되었을 때와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서 겨우 살아난 일. 그렇게 소중한 행운을 써버렸으니, 더는 행운 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자신은 나이 46에 실직자가 되었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회사 단무지는 다시는 사지 말아야지."

  구만은 라면을 다 먹고는 아까 뜯은 단무지 포장지를 찾아보았다. 오늘 산 단무지는 신맛이 너무나도 강했다. 물을 꽤 들이켰는데도 입안에는 신맛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라면 그릇과 냄비, 수저뿐인 단출한 설거리를 끝내고 구만은 양치질을 했다. 그런데 입안에서 무언가 까끌거리는 작은 조각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구만은 입에서 뱉은 아주 가늘고 휘어진 작은 조각을 보았다. 치아가 부서진 것인가, 아니면 레진이 깨진 것인가. 그 둘 중 어떤 것이든 치과에 가면 돈이 나갈 일이었다. 구만은 돈이 나갈 일에 겁이 덜컥 났다. 구만은 안경을 벗고, 노안이 온 맨눈으로 그 작은 조각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겨우 1mm 정도쯤 되는 투명한 흰색 조각은 마치 낚싯바늘처럼 정교하게 휘어져 있었다. 치아가 그런 모양으로 깨질 것 같지도 않았다. 레진이라면 오래전에 부러진 앞 치아에 씌운 것인데, 그것은 만져보니 아무 이상 없이 매끈거렸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구만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Gemini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치아 조각이나 깨진 레진처럼 보입니다.'

  구만은 특별히 이가 시리거나 아픈 것도 없고, 레진이 깨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점심때 멸치와 단무지를 반찬으로 먹은 것뿐이라고 덧붙여 문장을 입력했다.

  '아, 멸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진을 보니 멸치에 있는 인두치(咽頭齒)일 가능성이 있네요. 인두치는 멸치의 목구멍에 있는 작은 이빨인데, 삼킨 먹이를 그것으로 잘게 부수어 냅니다.'

  그럴 리가. 구만은 자신이 먹은 멸치가 아주 작은 멸치라고 알려주었다. 도대체 1cm 정도의 잔멸치 목구멍에 무슨 저런 이빨이 있단 말인가? 구만은 마치 새끼 고양이의 가느다란 발톱처럼 생긴 그 인두치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멸치에게 인두치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사람의 입안에서 바수어질 뿐인 저런 멸치도 목구멍에 또 다른 이빨을 달고 열심히 사는구나. 구만은 멸치의 조그만 인두치를 개수대에 털어버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한 슬픔이 느껴졌다. 먹고 사는 것의 처절한 비애가 멸치의 날카로운 인두치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혐오스러운 이빨의 존재를 알게 되니, 구만은 앞으로 멸치 반찬은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당신,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있다는 거 알아?"

  늦은 오후, 구만은 퇴근한 아내에게 자신이 알게 된 인두치에 대해 말했다. 지친 표정의 아내는 구만의 말을 심드렁하게 들을 뿐이었다.

  "그럼, 이제 멸치볶음 안 먹겠네. 잘 됐지 뭐. 멸치 반찬 하는 거, 번거롭다고."

  구만은 아내의 표정을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구만은 아내가 석 달째 꾹꾹 참으며 이제껏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조만간 할 것임을 알았다.

  '이제 몸도 좀 나아졌으면, 뭐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요?'

  구만은 여전히 자기 심장에 구멍이 생겼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메꿔지지 않을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는 퇴직금 잔고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서웠지만,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은 더 무서웠다. 구만은 자신에게 그 작은 멸치의 목구멍에 있는 인두치 같은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삼키는 온갖 두려움과 걱정을 목구멍에서 다시 한번 바수어내는 인두치가 있다면, 속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구만은 자기 전에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목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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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피


  "아휴, 이걸 어떻게 꺼내고 정리하지?"

  미선은 조금의 틈도 없는 냉동실을 심란한 표정으로 들여다보았다. 이제 3월이 되면 곰피(쇠미역) 철이 끝난다. 이때 곰피를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서 먹을 수 있다. 문제는 냉동실이었다. 냉동실에는 이런저런 먹을 것들이 들어차 있었다. 미선은 냉동한 베이글과 기정떡을 꺼내었다. 그런 건 김치냉장고로 옮겨서 좀 빨리 먹으면 될 것 같았다. 빵과 떡을 치우고 나니, 냉동실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곰피 2kg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었다.

  작년에 주문한 곳에서는 사지 않기로 했다. 곰피가 너무 잘고 볼품없었다. 그냥 물미역같이 흐느적거리는 것이 영 별로였다. 미선은 다른 판매처의 곰피 상품평을 주의깊게 읽었다. 사진을 올린 리뷰를 보고서, 주문할 곳을 정했다. 미선이 주문한 곰피는 정확히 이틀 후에 현관문 앞에 놓여있었다. 스티로폼 박스를 열자, 얼음팩 하나가 푸른 비닐봉지 위에 얌전히 포개어져 있었다. 곰피가 크고 깨끗했다. 올해 곰피는 잘 주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있자, 그 블로그 이름이 뭐였지?"

  미선은 가끔 찾아보는 요리 블로거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숙희였나? 그래, 숙희의 요리 블로그였던 것 같다. 구글 검색창에 '숙희 요리 레시피'라고 검색어를 입력했다. 블로그가 바로 뜬다. 숙희 씨가 예전에 곰피 장아찌 레시피를 올렸을까? 있었다.

  '봄을 깨우는 곰피 장아찌 레시피 알려드려요'

  미선이 찾은 곰피 장아찌 레시피는 2023년도 것이었다. 미선은 메모지에다 레시피를 대충 휘갈겨 썼다. 그렇게 레시피를 적어놓고는 블로그를 한번 쓱, 둘러보았다. 숙희 씨는 요즘도 계속 레시피를 올리고 있나 궁금해졌다. 블로그의 공지는 2025년 11월에 멈춰있었다.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여름부터 암 투병 중입니다. 예기치 않게 암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은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어요. 힘이 들지만, 그래도 가끔씩 요리 레시피를 올리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미선은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숙희 씨가 써놓은 자신의 병기(病期)는 4기였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요리 블로그 소개글의 숙희 씨는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고, 두 명의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블로그의 방명록에는 숙희 씨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주르륵 달려있었다.

  미선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곰피가 파릇파릇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저 곰피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겨울에 나올 것이다. 미선은 자신이 곰피 미역으로 언제까지 장아찌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았다. 잘 가늠이 되질 않았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달린 일이지 않은가.     

  그날 오후, 미선은 공책을 하나 사려고 집을 나섰다. 나가는 길에 아파트 화단의 매화나무를 잠깐 들여다 보았다. 그 나무가 피워내는 꽃은 그다지 볼품이 없었다. 그럼에도 미선은 봄이면 그 매화꽃을 기다렸다. 이 아파트의 화단에는 매화나무가 드물었다. 나무에는 올망졸망한 꽃눈들이 잔뜩 달려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쯤이겠네, 꽃이 피는 것은. 새로 산 공책의 표지는 연두색이었다. 미선은 빳빳한 표지를 손바닥으로 눌러서 쫙 폈다. 그리고 공책의 첫 페이지에 곰피 장아찌 레시피를 또박또박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숙희 씨의 레시피는 그렇게 적어서 보관해야만 할 것 같았다. 곰피의 푸르른 물색이 공책을 조금씩 물들이고 있었다. 




*******

알리는 글


3월과 4월에는 15일과 30일에 글을 올립니다. 다음 글은 3월 15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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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喪)

 
  "여기 모든 게 다 싫다고. 늙은것들, 다 추접스럽고 싫어."
  "아휴, 어머니. 옆에서 다 듣겠어요."
  "들으라지, 들으면 뭐 어때서?"

  설날, 방문객들로 붐비는 요양원 응접실에서 인희의 시어머니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뱉듯 그렇게 말했다. 인희의 시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수술 이후 거동이 여의칠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서 지낸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

  "엄마, 힘든 건 잘 알겠어. 그래도 좀 적응을 하셔야지. 어떻게든 걸을 수 있다면 다시 집으로 가실 수 있어요. 그러니 여기서 재활도 열심히 하시고."
  "너도 여기서 밤낮으로 똥오줌 냄새 맡으면서 지내봐라. 밥이 넘어가질 않아, 밥이. 여기 노인들 거의가 다 기저귀 차고 있다고. 나 원 참. 더러워서."
 
  남편은 테이블 아래로 인희의 발을 툭, 쳤다. 어서 일어나서 가자는 뜻이었다. 인희는 울분에 찬 시어머니를 그래도 어떻게든 좀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자식인 남편이 저러고 있었다. 남편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명절 연휴에 쉬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차를 몰고 세 시간을 꾸역꾸역 운전해서 왔다. 시어머니의 하소연은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인희도, 남편도 그 불협화음을 듣는 것이 괴로웠다.

  "언제 또 올 거냐?"
  "어떻게 또 시간을 내봐야죠."

  남편은 마지못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희는 자신도 남편을 따라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웬지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시어머니의 눈이 붉어지면서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아이구, 우리 어머니. 울지 마시고요. 조금만 좀 참고 지내보세요."
  "너희들이라고 나중에 이런 데 안 올 줄 아냐? 괘씸한 것들."

  인희는 악담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도, 화가 나기보다는 짠한 마음이 들었다. 시어머니 말대로 자신과 남편도 언젠가 지금의 시어머니의 자리에서 아들 문호를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 그렇게 될 터였다. 25년쯤 될까? 인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78살인 시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의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뭔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설 연휴가 끝나고 인희는 미뤄두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안경을 맞추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세 번째 안경을 맞추러 가던 길이었다. 안경점 가는 길목에 있는 치킨집 문 앞에 검정색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喪중이라 가게 쉽니다'

  예전에는 저런 휘장의 글씨를 가끔은 볼 기회가 있었다. 인희는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喪' 자가 생경스럽기도 하고 뜨악하기도 했다. 그냥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를 쉰다고 하면 되지 않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영 싫었다. 인희는 자신의 친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언가를 아주 싫어했다. 장례식장이라든가, 흰 국화, 운구차 같은 것들. 재작년이었던가, 인희는 산책길에 어느 아파트에서 흰 천으로 둘둘 말아진 무언가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시신인 것 같았다. 저렇게 집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도 있나 보군. 인희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기함하고도 남았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인희 자신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현관에 소금을 조금 뿌렸다.

  "전번에 맞춘 안경으로는 스마트폰은 잘 보이는데, 컴퓨터 글씨가 잘 안 보여요. 원거리 안경을 쓰면 좀 눈이 아프고요."
  "그래서 제가 선택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죠. 스마트폰인지 컴퓨터인지. 누진 다초점 안경이 아니면, 안경 두세 개 정도 두고 쓰셔야 합니다."

  늙음은 돈이 드는 일이다. 더럽게도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1년 사이에 그렇게 인희는 세 개의 안경을 가지게 되었다. 고도근시에 난시까지 심하게 있어서 대충 싸구려 렌즈로 맞출 수도 없었다. 합해서 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돈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어쩔 수 없다고. 인희는 안경원 문을 나서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아까 본 검정색의 휘장이 펄럭였다.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쓰인 '상(喪)' 자의 두 개의 입구(口) 자가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인희는 시어머니의 붉은 눈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신호등과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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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차(雙和茶)


  "아침에 일어났더니, 뭐가 '톡'하고 빠지는 거야. 하얀 거. 그래서 손으로 가만가만 만져봤더니, 이가 빠진 거야. 나사 같은 거 만져지고."
  "임플란트 한 거 빠졌나 봐요. 할머니, 그거 다음에 삼촌한테 가서 다시 하면 돼요."
  "에휴, 미안해서 그걸 또 어떻게. 지금 이를 두 개 또 심고 있는데."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은영은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를 끝냈다. 진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외가 쪽 친척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이제 아흔 살이 되었다. 최근에 넘어지면서 앞니 2개가 부러졌다. 삼촌이 치과의사라서 할머니의 치아를 치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오늘 예전에 했던 치아가 또 하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늙어서 자꾸 자식들에게 몸 아픈 이야기만 하고... 할머니는 그런 말을 하면서 미안해했다.

  아흔 살에도 틀니를 하지 않고 임플란트를 하는구나. 음식을 자신의 치아로 씹는다는 건 참 중요한 거니까. 아들이 치과의사니까 할머니는 치과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삼촌은 은영의 사랑니를 하나 빼주었고, 두 개의 치아를 신경치료 했다. 아, 레진 하나 때운 것도 있지. 은영이 학생 시절일 때라 삼촌은 은영에게서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만약에 이제 삼촌한테 가서 임플란트를 하면, 삼촌은 진료비를 얼마나 받을 것인가? 은영은 잠시 그 생각을 했다. 돈 없는 예술가인 것을 좀 감안해 주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것이 불편해서 삼촌의 치과에 가지 않은지 오래된 것인지도 모른다.

  치아가 톡, 하고 빠지는 아흔 살의 어느날 아침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늙어가는 것은 어느날 예고없이 치고 들어오는 약간은 센 펀치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얼얼하지만, 같은 강도의 주먹이 연달아 날아들면 그럭저럭 견딜 만해진다. 잇몸은 인정사정없이 내려가고, 머리카락은 계속 빠진다. 비오틴을 먹으면 머리카락이 덜 빠질까? 아니요, 선생님. 피부과에 가서 탈모약을 처방받는 것이 낫습니다. chat gpt는 부드럽지만 이상하게 단호한 어투로 말한다.

  "글쎄, 파스도 너무 비싸. 전번에 민우에게 파스 좀 싸게 사 오라 했더니 빈손으로 터터덜 오지 뭐냐."

  할머니, 삼촌은 치과에서 환자 보느라 바빠. 파스 사 올 시간이 어딨어? 은영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삼촌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저 무심한 사람이기도 하다. 은영은 오래전에 삼촌이 자신의 사랑니를 힘들게 빼준 것을 떠올렸다. 약국에 갔다가 할머니에게 보낼 파스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갔다가 쌍화차가 세일하는 것을 보았다. 쌍화차 분말과 견과류 고명이 따로 나누어져 있는 고급 쌍화차. 세일을 해도 비싼 제품이었는데도 은영은 샀다. 어쩌면 달달한 설탕의 맛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대개의 전통차는 달다. 올겨울에 이 회사의 율무차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니 이 쌍화차를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집에 와서 쌍화차를 타서 먹어본다. 적당한 선을 살짝 넘어버린 단맛, 그리고 싸구려 한약 냄새가 풍기는 얄팍한 맛. 은영은 자신이 쌍화차를 좋아할 나이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에 기뻤다. 기뻤다기보다는 안도했다. 진이 할머니는 이 쌍화차를 분명히 좋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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